투자자나 창업가나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가 자주 하는 질문은 과연 특정 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이 가능할까인데 영어로 이 질문을 하면 “이 비즈니스가 얼마나 scalable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유니콘 회사가 아주 빠르게 성장을 했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스타트업 분야에서 워낙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들이 이 단어에 집착한다고 난 생각한다. 아주 효율적으로,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건 당연히 좋고, 투자자로서 나도 스케일이 가능한 사업을 발견하면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쉽게, 그리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요새 정말 찾기 힘들다. 나는 오히려 이런 비즈니스가 있다고 하면 약간 의심하고,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필요 이상으로 스케일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 같다.
최근에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많은 창업가들이 성장보단 생존에 집중하고 있는데, 계속 성장을 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은 이런 상황이 죽고 싶어질 정도로 답답할 것이다. 우리 투자사 대표 몇 분은 이런 답답함과 짜증 남에 대해서 우리랑 편안하게 자주 이야기하는 편인데, 최근에 했던 이런 대화가 기억난다. B2B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영업 속도가 느리고 매출 성장이 너무 더뎌서 매우 초조해하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 분과의 미팅이었다.
일단, 기업에 판매할 B2B 제품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제품보단 주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가 투자한 어떤 B2B SaaS 회사들은 제품만 만드는 데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힘들게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 제품을 기업 고객에게 판매하는 건,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첫 번째 B2B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 달 이상 영업하는 경우도 자주 보는데, 이렇게 해서 확보한 고객에게 발생하는 매출은 기대 이하이다. 이분은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년 열심히 영업해도 유료 고객이 15개도 안 될 것이고, 이들로부터 나오는 매출도 크지 않아서, 과연 내가 맞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고객 한 명 한 명씩 영업하는 방법이 맞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미친 성장’을 하는 다른 스타트업같이 아주 효율적으로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회사는 아주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솔직한 의견은, B2C 제품이나, B2B 제품이나,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론에서는 마치 쉽게 사업을 확장하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모든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같이 포장하는데, 나는 큰 스케일은 수많은 작은 노가다가 축적될 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샌 웬만한 사람들이 다 사용하는 드롭박스 같은 제품도 사업 초반에는 창업자가 직접 지인들 사무실을 방문해서 이들의 PC에 제품을 설치해 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주면서 성장했고, 에어비앤비도 창업자들이 직접 호스트의 숙소를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서 대신 올려주면서 성장했다. 우리 투자사 당근도 판교에서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창업자들이 직접 물건을 하나씩 올려서 판매하면서 시작했다.
동네 가게를 위한 B2B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많은 동네 가게 사장님들에게 한 방에 크게 노출할 수 있는지 고민할 시간에, 그냥 하루 종일 동네 가게 문 두드리고 찾아가서 영업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뚜벅뚜벅 걸어 다니면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들에게 직접 제품을 설치해 주다 보면, 진짜 사업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세상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고객 한 명씩 상대하면서 노가다 작업을 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 계속 스스로 의심하겠지만, 고객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다섯 명이 되고, 다섯 명이 50명이 되면서, 그때부터 사업엔 스케일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스케일이 생기기 전 까진 그냥 옛날 방식대로 하나씩 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뛰어야 한다.
스케일은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하고, 이런 노가다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큰 스케일이 만들어진다. 대신, 멈추지 말고 계속 해야 한다.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세상의 모든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익명
B2B 제품 만드는 데 1년 걸리고 첫 고객 1달 걸리면 누구나 B2B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제가 아는 많은 회사들의 경우 (심지어 데카콘들조차도) 창업 이후 첫 제품 나오는 데에 3-4년은 걸렸고, 첫 제품 출시 이후 매출 나오는 데에 또 3-4년 걸렸습니다.
개 노가다이고, 이 개 노가다 자체가 해자라고 생각합니다.
Kihong Bae
이걸 보는, 현재 고생하고 있는 B2B SaaS 파운더들에게 더 큰 용기를 줄 수 있는 경험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JH
3년전 Primer 파이널인터뷰 전에 저희 회사굿즈 선물드렸을 때, 영업할 때 쓰라고하시며 안받으셔서 서운했는데 요즘 블로그 글들 보면서 그 참뜻을 간접적으로나마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연휴도 속칭 ‘B2B노가다’로 Cashcow를 창출하면서, Star를 바라보며 뒹굴고있는 저희 팀에 큰 힘이 되는 글입니다! 팀원들에게도 힘이 될 듯하여 전체공유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리고, 즐거운 명절연휴되십시오!
Kihong Bae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파이팅입니다!
Wayd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가는 발걸음이 더딜지라도,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Kihong Bae
응원합니다. 파이팅.
때밀이
안녕하세요.
이번 ‘노가다’편도 저번 ‘개밥 먹기(?)’과 마찬가지로, 스타트업 대표부터 직원까지 ‘머리’뿐 아니라 ‘몸’으로 사업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소중한 전언이네요^^
전 직장에서 ‘오프라인 VAN사업’을 진행했는데..
오프라인 VAN 사업이라는 것이,
1. 지역별 대리점(총판)을 끼고 하는 영업방식과
2. 가맹점 하나하나 방문하는 (일명 ‘빌딩 탄다고’ 표현한는데요 진짜 노가다라고 불립니다 ㅠ) 영업방식
2개로 구분되더군요.
1번 방식은 한방에 많은 가맹점을 가져올 수 있지만 수익은 박하고
2번 방식은 한땀한땀 가맹점을 모집하는거라 속도는 (무지하게) 더디지만 수익은 좋습니다.
결국 저희는 2번 방식으로 진행했는데요.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오너가 기다려주지 않더군요
오너는 1번의 가맹점수에 2번의 수익율을 바러더군요 ㅠㅠ
그래서 선택한게 프랜차이즈였는데… 프랜차이즈는 또 직영과 가맹점의 대혼돈의 카오스더군요ㅠㅠ
여튼 노가다는 언제든 할 준비가 되어 있고, 기꺼이 할 수 있는데, 전략(ex:3년안에 BEP를 맞춘다)과 전술(ex:일부 대리점+일부 빌딩타기+일부 프랜차이즈..)를 오너 혹은 대표님에게 잘 설득(3년은 기다려주겠다!!)한 후 진행해겠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Kihong Bae
좋은 경험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항상 이런 댓글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네요 🙂
khlee1108
잊고 있었던 중요한 교훈을 다시 깨우쳐 주시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Kihong Bae
You are wel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