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2015년 한국 스타트업 현장에 대한 단상

158723763스타트업 바이블 1권이 나온지 벌써 4년 반이나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보다 더 빨리 변하는 벤처 업계에는 그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0년 8월 책 출간 당시 한국에서는 ‘스타트업’ 이라는 단어조차 굉장히 생소했다. 뭐, 내 책 때문에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알려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기여를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한다. 지난 5년 동안 한국의 벤처 현장은 굉장히 재미있고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부정적인 부분도 적지 않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훨씬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같은 투자자들, 창업가들, 이들과 공생하는 기업들, 미래의 창업가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와 학원들, 스타트업과 연관된 다양한 기관들, 그리고 칭찬보다는 주로 욕을 먹는 정부기관들과 같은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헛짓들과 노력을 동시에 하면서 한국의 스타트업 현장은 이제 어느정도의 기초가 다듬어졌고 이 모든게 점점 유형화 되어가고 있다.

작년부터 한국에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창업되어 성장하고 있다는걸 몸으로 많이 느끼기 시작했다 – 이는 벤처생태계의 건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이 회사들이 성장을 얼만큼 했고, 고용을 어느정도 창출했고, 매출을 얼만큼 만들었고 등과 같은 구체적인 수치를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고 조사도 해보지 않았지만 항상 한국의 스타트업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이런 좋은 변화가 눈에 보이고, 한국 나올때마다 “아, 한국에서 이제 이런 회사들이 나오는구나” 라고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있다.

그동안 2권의 책을 썼다. 스타트업 업계의 속도로 보면 이제 거의 골동품이 된 책들이지만 아직도 꾸준히 팔리고 벤처를 하시는 분들이나 벤처에 관심있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이들 읽고 나한테 연락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업이나 학교에서도 강연이나 Q&A 세션에 대한 요청이 정기적으로 들어온다. 내가 물리적으로 미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관계로 잘 하지는 못하는데 이번 3월 한국 방문때는 시간과 기회가 되어서 몇 번 진행을 해봤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강연이 2개가 있었다.

하나는 울산과기대(UNIST) 학생들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서울 외 지역의 팀, 회사 및 기회에 대해서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비서울 지역의 스타트업들에 요새 관심이 매우 많다. 울산과기대 교수님과도 친분이 있었지만, 이 지역의 학생들과 벤처에 대한 생각 등 여러가지가 궁금해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예상보다 수준도 높고 왠만한 서울의 학생들보다 진지한 눈빛과 질문들에 많은걸 느끼고 배웠던 소중한 강연이었다. 특히, 순수하고 경험이 상대적으로 없는 학생들 이라서 그런지 나 스스로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질문들도 꽤 있었다.

다른 하나는 상암동의 명물 술파는 서점 북바이북에서 했던 저자와의 번개 모임이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30명 정도의 독자와 청중이 이 공간을 꽉 채웠던 열기 넘치는 장소였고 시간도 꽤 늦은 오후 8시에 시작해서 10시가 넘어 끝났지만 그 누구도 일찍 떠나지 않았다. 북바이북의 청중은 대부분 창업에 관심이 있거나 곧 창업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들 또는 현재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어서 그런지 질의응답을 거의 1시간 동안 했다. 질문의 수준도 굉장히 높고 상당히 진지한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베어있는 그런 종류의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런 모든 경험이 스타트업 바이블이 출간된 2010년과는 사뭇 달랐다. 창업을 해서 이미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젊은 친구들의 눈빛은 살아있었고 실행은 공격적이었다. 이들은 500억원 짜리 회사를 만들어서 남한테 파는데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1조원의 회사를 만들 생각으로 진지하게 제품을 만들고 비즈니스에 임하고 있었다. 직장인들의 태도도 과거와 달랐다.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4-5년 전 내가 만났던 학생들에 비해서 많이 발전했고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93년의 나보다는 한 10 단계는 더 성숙해 있었다.

모든걸 종합해 봤을때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벤처 생태계는 앞으로 더 탄탄해지고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앞으로 한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에 조금이라도 기여해 보고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www.gettyimages.ae/detail/photo/sunset-over-the-han-river-seoul-royalty-free-image/158723763>

같은 행동 = 같은 결과

해마다 반복되고 해마다 보는 상황이다.

우리 동네 헬스클럽 골드짐에 1월/2월이면 회원수가 거의 3배 증가한다.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고 락커룸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가끔 줄을 서서 샤워를 해야한다. 그런데 이러다가 만다. 5월이면 신규 회원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모든건 일상으로 돌아온다. 새해에는 건강하게 살고 살을 빼야겠다는 결심은 일상생활속의 바쁨과 게으름에 밀려버린다. 전형적인 작심삼일이다.

금연, 살빼기, 금주, 건강한 식단 유지, 일찍 일어나서 영어공부하기 등…..내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새해 결심들이다. 모두가 다 현재와는 극적으로 다른 결과를 원하고 이를 위한 결심들을 한다. 그런데 하는 행동들은 똑같다. 행동은 과거와 다르지 않은데 어떻게 결과가 달라지겠는가. 초등학생들도 아는 이 사실을 내 주위 많은 어른들이 모르는거 같다. 과거와 변함없이 과식하고, 거의 매일 술먹고,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올해는 반드시 체중을 줄여서 건강해져야 한다고 하는 친구들을 거의 10년째 보고 있다. 똑같이 먹고 똑같이 안 움직이는데 어떻게 체중이 줄고 건강해지겠는가 이 친구들아.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정말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작년과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 올해는 회사한테 정말로 중요한 한 해가 될거라는 말만 하고 행동은 그대로라면 결과도 똑같을 수 밖에 없다. 그 결과가 더 좋든 나쁘든 어쨌든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과거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극적으로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행동 또한 그만큼 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오늘의 행동이 어제와 같다면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에듀캐스트 투자

article-0-1B6C6098000005DC-99_634x411작년 가을 테니스 리그전에서 나보다 좀 어린 친구랑 시합을 한적이 있다. 나도 어릴적부터 테니스를 제대로 배워서 실력이 나쁘지 않은 편인데 이 친구도 여러면에서 봤을때 그냥 취미로 배운건 아니고 어릴적부터 제대로 친 실력이었다. 내가 졌는데, 시합이 끝나고 혹시 중학교나 고등학교때 선수였냐고 물어봤다. 대답은 의외였다. “한번도 정식으로 배운적은 없고 유투브로 테니스를 배웠어요.”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고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다시 한번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걸 느꼈다. 유투브라는 회사는 2004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10년 이라는 길지않은 기간 동안 엄청난 성장을 했고 유투브가 시작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많은 전통 비즈니스에 disruption을 가져오고 있다.

교육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몇백년 동안 교육만큼 바뀌지 않은 분야가 있을까? 고대 로마 시대부터 교육은 교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소수의 선생님들은 가르치고 다수의 학생들은 들으면서 배우는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빨리 바뀌는 세상에서 이렇게 바뀌지 않는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이다. 하지만, 기술이 우리가 배움을 얻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풍부한 bandwidth, 전세계 어디서나 사용가능한 인터넷, 무료 컨텐츠, 그리고 유투브나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 대규모 온라인 공개수업)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온라인 교육의 위력에 대해 스탠포드 동문 잡지인 Stanford Magazine에 다음과 같은 글이 소개된 적이 있다:

Christos Porios는 그리스의 알렉산드로포울로스에 사는 16살 고등학생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과는 전혀 연관되어 있지 않고, 스탠포드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스탠포드 대학의 한 수업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포리오스 학생은 작년 가을학기에 머신러닝 관련 시범 온라인 수업에 등록한 10만명의 학생 중 한명이다. 컴퓨터공학 교수 Andrew Ng은 스탠포드 학생들을 위해서 이 수업을 만들었는데, 수업 시작하기 몇일 전 누구나 무료로 이 수업을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시험도 보고, 숙제도 제출할 수 있도록 온라인 공개 강의로 변경을 했다.

포리오스 학생은 이 소식을 트위터로 접했다. 물론, 수업을 마친 후 스탠포드 대학 정식 학점을 취득하지는 못했다. 그냥 수업을 무사히 잘 수료했다는 축하 편지만 받았지만, 이 경험은 그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비록 한번도 직접 만나본적은 없지만, Andrew Ng 교수는 제 인생 최고의 선생님 입니다. 이런 엄청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Nightcrawler 라는 영화를 보면, Louis Bloom 이라는 주인공은 사회적 외톨이/왕따이다. 그래서 변변찮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위키피디아를 통해서 엄청난 지식을 습득한다(심지어는 연애하는 방법까지 위키피디어로 부터 배운다). 영화이지만 그는 왠만한 전문가나 방송일을 오래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이 배움에 이렇게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박사학위를 받을 목적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지식을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거의 무료로 습득이 가능하다. 물론, 이 분야의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교수님을 통해서 배우는거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수는 있겠지만, 의지만 있고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면 왠만한 전문지식은 다 온라인상에서 배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학교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베스트셀러 ‘Outlier’ 에서 말하듯이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들과 적절한 운이 필요한데 학교라는 물리적인 공간은 단순한 학문적 지식 외에 다양한 인간관계와 혼자서 인터넷으로 접하기 어려운 수많은 기회들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정해진 시간내에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강제성까지 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효과적이다. 물론, 이를 위해 수천만원의 학비를 부담할 의향이 있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다시 위의 테니스 예로 가보자. 학문적인 지식은 유투브를 보고 습득할 수 있지만 이제는 테니스같이 몸으로 하는 운동까지 유투브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인터넷, 가상현실, 블록체인 등의 기술이 성숙해지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세계의 모든 지식을 거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세상이 곧 올것이다.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고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TNTcrowd라는 회사가 있다. 젊고, 기술력이 풍부하고, 똑똑한 친구들로 구성된 이 팀은 에듀캐스트라는 서비스를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 친구들의 사고방식과 태도가 좋아서 최근에 투자하고 한 배를 같이 탔다.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를 응원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400941/The-world-s-biggest-school-47-000-pupils-1-000-classrooms-run-3-800-staff-India.html>

작고 빠른 벤처의 힘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그대로 베끼는 현상에 대한 내 의견은 전과 변함없다.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냐, 아니면 그들이 하는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하냐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문제이다. 인수 가격이 1,000억 원인데, 그보다 더 저렴하게 대기업이 직접 더 훌륭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면 그대로 카피하는 게 맞다. 그런데, 되는 경우도 있지만, 돈과 자원이 훨씬 더 많은 대기업이라고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그렇게 뛰어난 인재들과 돈이 있는 구글이 작은 회사들이 하는 서비스를 금방 카피해서 이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항상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대표적인 예로 페이스북을 모방하려다 실패한 구글플러스가 있다(물론,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수십 가지의 서비스가 존재한다). 네이버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스타트업이 잘 하는 거 같으면 이들을 카피하는 걸 우리는 여러 번 봤다. 이 중 성공하는 것도 있지만, 직원 10명 이하의 회사가 운영하는 서비스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접는 것도 우리는 목격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다시 작고 빠른 회사들의 product iteration, 그리고 그 결과물인 ‘사용자 경험의 오너쉽’ 이 바로 대기업도 절대로 넘지 못하는 커다란 진입장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새 이 바닥에서 많이 사용되는 Slack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나도 조금은 써봤는데 – 우린 큰 조직이 아니므로 Slack을 제대로 사용할 기회가 없다 – 기존의 협업 제품들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그리고 편리하게 잘 만들었다. 껍데기만을 보면 다른 비슷한 제품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이걸 깊게 사용해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미묘한 디테일과 사용자 경험이 최적화되어 있다. 아마도 수많은 사용자의 피드백과 제품 활용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계속 기능, UI, 경험을 빠르게 고치기 때문인 거 같다. 그리고 이런 지속적인 iteration이 가능한 속도와 민첩성은 대기업들이 카피하기 쉽지 않다.

또 다른 예로는 마케팅용 이메일 서비스 MailChimp를 들 수 있다. 메일침프는 내가 굉장히 자세히 사용해 봤는데, 이렇게 모든 사용자 시나리오를 생각한 제품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만든 제품이다. 메일침프를 사용하다 보면 “와, 이런 거까지 생각했다니” 라는 감탄을 하는 경우가 몇 번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완성도 높은 제품을 출시하지는 않았다. 유저수가 늘어나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사용자 경험과 시나리오들이 발생하면서 이에 발맞춰서 지속해서 제품을 수정한 결과이다. 메일침프는 아직도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기능도 조금씩 추가하고, 바꾸고 UI도 계속 수정하고 있다.

Slack이나 MailChimp나 이제는 ‘작은 스타트업’이라고 정의하기엔 모호하지만, 이들도 한-두 명이 구멍가게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벤처기업들이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이런 서비스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무수히 많고, 실은 아직도 비슷한 서비스들을 계속 직접 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워낙 시장이 크고 벌 수 있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원이 많은 대기업도 오랫동안 수만 번의 iteration을 통해 사용자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own 하는 스타트업들과 맞짱 뜨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대량메일 솔루션? 그거 그냥 우리가 만들면 되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메일침프를 통해 매달 700만 명의 사용자들이 100억 개 이상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형성된 ‘관계’와 제품에 녹아 들어가 있는 ‘사용자들의 경험’ 이란 아무리 돈과 인력이 있어도 단시간 내에 카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대기업들이 직접 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이다. ‘한국 대기업들도 할 말 많다‘ 에서 내가 강조했지만, 대기업들에 높은 가격에 인수되고 싶다면 이런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이나 네이버가 내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했는데, 훨씬 더 잘 되어서 우리 회사가 망하면 그건 대기업의 횡포가 아니라 우리 서비스가 아직 부족해서이다.

소프트웨어의 아름다움 – product iteration

Photo Jan 15, 11 08 24 AM며칠 전 산호세 공항 화장실에서 찍은 사진이다. 물, 비누 모두 동작센서로 작동되는데 비누가 나오는 구멍이 수도꼭지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물로 손을 씻다 보면 동작이 감지되어 비누가 자동으로 계속 나오는 문제가 있었다. 이 화장실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손을 씻을 텐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비누가 나오는 건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된다. 설계를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시공을 잘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다시 고치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자동 비누 디스펜서를 물리적으로 뜯어내고 다시 공사해서 다른 위치로 옮겨야 한다.

그런데 다른 위치로 옮겼는데도 너무 가까워서 계속 비누가 낭비된다면? 또는, 비누는 낭비되지 않지만, 너무 멀리 위치해서 사용자들이 불편해한다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제대로 하려면 정확한 위치를 찾을 때까지 여러 번 뜯어내고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비싼 product iteration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소프트웨어는 정말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수만 번의 product iteration을 큰 비용과 시간의 손실 없이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스타트업 중 하루에도 몇 번씩 product iteration을 하는 회사들이 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만 있으면 된다. 물론 소프트웨어를 고치는 게 말처럼 간단한 거는 아니지만, 하드웨어를 부수고 다시 만드는 거에 비하면 코드를 고치는 건 정말 간편하다. 하드웨어는 일단 출시를 하면 뜯어고치고 다시 대량생산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product iteration이 더 쉬우므로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제품을 상당히 높은 완성도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 그런데 내 주위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정말로 완성도가 매우 높은 제품을 가지고 고객들을 만족하게 해주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쉬움에도 불구하고 product iteration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비즈니스가 제공하는 이런 장점을 좋은 회사들은 잘 활용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도 시장이 인정해주는 제품이 만들어질 확률은 3%도 안 된다. Product iteration을 십분 활용하지 않는 게으른 회사들에 이 확률은 0%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