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C 회사의 밸류에이션

우리 포트폴리오에도 몇 개가 있고, 내가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는 조금 더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는 영역 중 하나가 소위 말하는 DTC(Direct-to-Customer) 스타트업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최근 5년 동안 이 분야에 엄청나게 많은 VC 펀딩이 투자되고 있는데, 그냥 간단히 말하면 스타트업이 직접 만든 자체 브랜드를 – 주로 안경, 신발, 옷, 시계와 같은 소비재 – 이커머스 사이트나 앱과 같은 온라인 채널을 활용해서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중간 판매상 없이 직접 고객한테 판매하는 비즈니스다.

우리도 이 분야에 투자했는데, 여성 신발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트라이문, 숙취해소 드링크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82Labs, 유기농 생리대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라엘 등이 있다. 나도 정확한 조사는 안 해봤지만, DTC 스타트업 중 1조 원 이상의 평가를 받는 유니콘 회사들도 많고, 우리 본사가 있는 LA 지역 출신으로는 유니레버가 1.2조 원에 인수한 남성 면도 제품 스타트업 Dollar Shave Club이 크게 성공했다. 그리고, 한때는 유니콘 회사였지만, 이후 밸류에이션이 많이 깎인 유명 배우 제시카 알바와 한인 Brian Lee가 공동 창업한 유아용 제품 스타트업 Honest Company도 LA 회사이다.

그런데 나도 이 카테고리의 회사를 검토하면서, 이런 회사를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주가 되는 이커머스 회사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그보단 그냥 자체 제품을 더 빠르고, 싸고, 좋게 제조해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마케팅하고, 전혀 다른 채널을 통해서 유통하는 브랜딩/제품 회사로 봐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비즈니스의 코어에 소프트웨어가 있냐 없냐에 따라서 이 회사의 확장성(scalability)이 결정될 수 있고, 여기서 회사의 밸류애이션에 큰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Recode의 기사를 읽었는데, 여기에 재미있는 의견 몇 가지가 제시된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인데, 일단 DTC 스타트업은 테크 회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아주 매끈한 이커머스 플랫폼을 직접 만들고, 다양한 마케팅 자동화 기능을 도입하고, 간단한 인공지능 챗봇과 같은 CS 관련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회사도 있지만, 비즈니스의 코어에는 소프트웨어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특히 미국의 Shopify나 한국의 카페24와 고도몰과 같이 이커머스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싸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이 시점에서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건 lean 하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다.

이렇게 테크가 기반이 안 되는 회사의 비즈니스에는 네트워크 효과가 일어날 수 없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가 네트워크 효과 위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서비스인데, 더 많은 사람이 특정 서비스를 사용할수록, 그 서비스의 가치가 더욱더 빠르게 증가하는 효과다. 나 혼자 사용하면 아무 의미가 없지만, 더욱더 많은 사람이 페이스북을 사용할수록, 이 서비스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이 기사에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없기 때문에 DTC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이 VC들이 전통적으로 투자하던 소프트웨어 회사만큼 높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 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도 이런 회사들의 밸류에이션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건, 제대로 된 시장조사나 실사를 하지 않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VC들과 본인들이 운영하는 회사가 소프트웨어가 코어가 되는 테크회사라고 착각하고 있는 창업가들 때문이라고 한다. 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좀 뜨끔하긴 했다. 우리는 초기 소액 투자지만, 이런 회사를 평가할 때 일반 소프트웨어 회사를 평가하는 기준을 적용해서 회사의 제품 자체에 큰 밸류에이션을 부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밸류에션이 낮은 거 보단 높은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긴 하지만, 이런 DTC 회사한테는 밸류에이션이 높을수록 exit의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게 이 기사의 핵심이다. IPO보다는 다른 더 큰 회사에 인수되는 게 더 현실적인 exit 전략인데, 대부분의 큰 회사는 VC와 창업가가 만들어 놓은 터무니 없는 밸류에이션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직원 10명의 매출 한 푼도 없는 회사를 수조 원 주고 인수하는 현상이 너무 자연스럽지만, 매트리스나 신발을 판매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이런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없고,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소비재는 진입장벽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카피할 수 있고, 카피를 많이 하다 보면,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들어서 판매할 수 있는 회사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리고,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여러 회사 중, VC 투자를 한 푼도 받지 않은 회사가 있을 것이고,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VC 투자를 받은 회사보다 현저하게 낮을 것이다.

그러면, 인수하는 대기업 사장이라면 어떤 회사를 인수할 것인가? 비슷한 수치와 실적이면, 당연히 더 싼 회사를 선호할 것이다. 인수하는 사장의 입장에서는 exit 시점에 그 회사에 투자한 VC가 돈을 벌어야 하므로 굳이 더 비싼 가격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외부 투자를 받지 않은 회사는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과 고객관리를 철저하게 하지만, 투자를 받은 회사는 손실이 나더라도 고객획득과 성장에 주로 집중하기 때문에, 인수한 후에 비용 관리가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에 보도된 DTC 회사 인수 건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대부분 외부 투자 유치를 하지 않았고, 인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이다. P&G는 Native라는 천연 데오드란트 스타트업을 1,100억 원에 인수했는데, 창업가가 회사의 90%를 소유하고 있었다. Movado는 MVMT라는 DTC 시계 스타트업을 2,200억 원에 인수했는데, 이 회사는 투자를 한 푼도 유치하지 않았고, 내부에서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었다. 데오드란트와 시계 분야에는 실은 다른 좋은 스타트업도 많았지만, 그중 가장 좋은 회사를 가장 저렴한 가격에 P&G랑 Movado가 인수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수한 회사들이 VC 투자를 받지 않아서 가격에 거품이 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그렇다고 모든 DTC 회사가 투자를 받지 말고, 밸류에이션도 낮게 책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회사가 다르고, 모든 시장이 다르고, 모든 제품이 다르기 때문에, 그 상황에 맞는 비즈니스를 하는 게 맞지만, 그래도 자체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창업가라면 한번 곱씹어 보면 좋은 내용인 거 같다.

Keep Going

얼마전에 미국에서 어떤 백인 아저씨랑 한 조가 돼서 같이 골프를 쳤다. 어차피 혼자 하는 게임이라서 처음에 인사만 하고 각자의 공에 집중하다가, 중간부터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하는 가장 흔한 질문이 어디서 왔냐 직업이 뭐냐인데, 이분은 동네에서 가정집이나 가게를 페인팅 해주는 작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자영업자인데,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는 큰 회사에서 사무직을 하다가, 대량해고를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평소 본인이 관심을 두고, 취미생활로 주말에 하던 페인트칠로 창업을 한 케이스다. 실은 이분은 우리 같은 VC가 투자하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또는 유니콘 회사를 만들고 싶어서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비즈니스를 시작한 그런 창업가는 아니다. 어쩔 수 없어서,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건 할 줄 몰라서, 필요에 의해서 창업한 자영업자이다.

돈벌이가 좋냐고 물어보니, 그 아저씨는 “I keep going. I just keep going(계속하죠. 그냥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하고 있죠)” 이라고 말했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나한테는 울림이 깊은 말이었다. ‘Keep going’ 은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가 도와주고 있는 창업가들이 평생 하는 모든 걸 상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Keep going은 가족을 포함, 모두가 미쳤다고 손가락질 할 때 자신을 믿으면서 계속 전진하는 걸 의미한다.

Keep going은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지만, 그래도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코딩하고, 사무실에 나가서 직원들과 대화하고, 고객한테 전화 한 통이라도 더 걸어서 영업하면서 전진하는 걸 의미한다.

Keep going은 자신도 과연 이 비즈니스가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매일 전진하는 걸 의미한다.

Keep going은 자고 일어나면 꺼야 할 불이 너무 많고, 싸워야 할 전투가 너무 많아서 도망가고 싶지만, 그래도 계속 전진하는 걸 의미한다.

Keep going은 우리 삶 그 자체이다. 멈추면 죽고, 죽으면 전진하고 싶어도 멈춘다.

Let’s keep going.

했다면

ATP 랭킹 23위인, 한국이 낳은 역사상 최고의 테니스 선수 정현이 부상이 잦아서 최근에 큰 대회에 출전하지 않거나, 출전해도 경기 내용이 영 신통치 않은 걸 많이 봤다. 안타깝긴 한데, 이에 대해서 많은 해설가가, “정현 선수가 부상만 당하지 않았어도 이 대회 8강까지 갔을 텐데요.” , “저 선수는 정현 선수한테 원래는 상대도 안 되는데, 부상 때문에 정현 선수가 졌네요.”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 걸 들었다.

다 bullshit 같은 말이다. 물론, 정현 선수가 다치지 않았으면, 잘 쳤을 것이고, 메이저 대회 8강까지 갔을 수도 있고, 수많은 선수를 이겼을 수도 있다. 그런데 부상 때문에 본인의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해서 졌고 탈락했다. 이게 현실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그때 그 부상만 없었으면….” 이라는 변명은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냥, 앞으로 더 잘 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넘어가면 된다.

일하면서도 비슷한 말을 많이 듣는다. 그때 돈만 있었으면, 회사가 잘 돼서 지금쯤 엄청나게 성장 했을 거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에 사는 창업가들이 있다. 1년 전 아주 중요한 계약이 성사됐으면, 높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아서 현재 우리 보다 잘하고 있는 경쟁사보다 더 잘하고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1년 넘게 못 버리고 있는 창업가도 있다. 이와 같은 “~ 했다면” 생각은 상당히 쓸모없고, 미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항상 이런 생각을 하긴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곤해지고, 앞으로 전진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서, 아무리 곱씹어서 생각해봐도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누구나 다 아는데, 사람이 감정의 동물이라서 그런지 가슴으로는 계속 “아, 그때 그게 됐다면”이라는 생각을 쉽게 못 버리는 거 같다.

일어나지 않았고, 바뀌지 않을 과거에 대해서 평생 후회하는 변명의 삶을 살고 싶지 않으면, 그냥 잊어버리고, 생각을 놓아버리고, 전진해야 한다.

호기심에 대해서

온디맨드 가사도우미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우리 투자사 미소가 최근에 1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지만, YC를 거친 회사고, 투자자들도 글로벌 VC라서 그런지, 시리즈 A 내용을 한국과 미국 tech 언론에서 보도했다.

한국 언론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잘 써준 벤처스퀘어 기사를 보면, 누가 봐도 글을 쓴 분이 큰 고민하지 않고 회사에서 그냥 제공한 내용을 기반으로 기사를 썼다는걸 알 수 있다. 아주 짧고, 그냥 미소라는 회사가 이번에 어떤 VC들한테 얼마를 투자받았고, 이 돈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 거라는 내용이다.

미국 언론 중에서는 TechCrunch가 가장 잘 커버한 거 같은데, 이 기사를 보면 글을 쓴 분이 상당히 많은 고민과 질문을 한 흔적이 보이고, 미소라는 회사가 어떤 회사고, 어떻게 돈을 벌고, 왜 겉으로 보면 평범한 온디맨드 청소 서비스가 이런 투자를 받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외국 기자지만, 한국 기자들보다 한국 서비스에 대해서 더 자세한 디테일과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아주 잘 다뤘다는 인상을 받는다.

실은 나도 어떤 과정을 통해서 취재가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미소에서 한국 언론보단 미국 언론에 더 많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했을지도 모르고, 더 많은 인터뷰 시간을 할애해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그냥 글을 쓰는 분들의 호기심의 정도의 차이가 이런 다른 결과물을 생성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에 비춰봐도, 한국 기자들은 회사에서 제공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기사화한다. 대부분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반면에 미국 기자들은, 제공한 내용에 대해서 이런저런 다양한 질문을 하고, 본인이 충분히 그 내용을 잘 숙직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그때 기사를 쓴다. 취미가 아니라, 직업으로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만드는 기사에 대해서는 일반인보다 훨씬 더 많은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질문을 해야 하고, 그 질문에 대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독자들한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은 이 부분이 매우 약한 거 같다. 이는 tech 분야뿐만 아니라, 전 분야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나는 한국 신문이나 언론보단 미국 신문을 보고 더 잘 이해한 경험이 상당히 많다. 북한 이슈도 마찬가지다. Tech 분야는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2012년도에 한국에는 제대로 된 tech 기자들이 없다는 을 썼는데, 안타깝게도 6년이 지난 오늘도 똑같다.

기자들이 조금만 더 호기심을 갖고,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교육의 재정의

최근 알리바바의 마윈이 곧 사업에서 은퇴하고, 교육 사업에 전념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과연 그가 알리바바를 무에서 만든 것처럼 교육 사업도 잘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충분히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경험, 의지, 그리고 자본이 마윈에겐 있기 때문에 전 세계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마윈 그 자신도 알리바바를 창업하기 전에 영어 선생님 이었으니, 학교 시스템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마윈의 이런 결심에 큰 영향을 준 건 빌과 멜린다 게이츠가 재단을 통해서 하는 다양한 시도인데, 한국에도 사업을 통해 부를 창출한 선배 창업가들이 한국의 고장 난 교육 시스템을 고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다 긍정적인 신호다.

빌 게이츠와 마윈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은 Fred Wilson은 ‘Reinventing Education‘이라는 글에서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일단, 값싸고 질 좋은 교육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접근 가능해야 하며, 또 하나는 기업이 인재를 채용할 때 사용하는 전통적인 교육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한다. 나는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미 많은 창업가가 사업을 통해 더 질 좋고, 더 싸고, 더 접근성이 좋은 교육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될 것이고, 부자든 가난하든, 앞으로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두 번째 이슈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같이 출신 학교와 학벌 자체를 교육 수준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명문대 나온 사람들이 비명문대나 지방대 나온 사람보다 모든 분야에서 특혜를 받는다. 또는, 채용에서는 대졸이 고졸보다 조건 없는 우위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기업이 인재를 채용할 때 수십 년 동안 적용하던 전통적인 기준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대졸, 또는 명문대 졸업이 아니면, 아예 채용 대상에서 제외돼서 면접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지만, 점점 학벌-교육-지식-업무능력의 상관관계가 매우 약하다는 걸 인지하면서, 대기업도 서서히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걸 느끼고 있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롱 투자사만 해도 그렇다. 대부분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명문대 출신은 별로 없다. 우리 투자사 대표 중 고졸도 있다. 우린 투자할 때 창업가의 학벌을 절대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은,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의 출신 학교도 잘 모르고, 미팅할 때, “학교 어디 나왔어요?” 물어보지도 않고,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다. 왜냐하면, 출신 학교와 비즈니스 능력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항상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 창업가들이 사업을 잘하는 경우도 많지만, 비명문대 출신 창업가들이 사업을 잘하는 경우도 똑같이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학벌이 아니라 업무능력, 지식, 그리고 호기심이다.

하지만, 나는 ‘교육’ 자체의 중요성은 항상 강조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교육은 꼭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교수님한테 뭔가를 배우고 습득하는 게 아니다. 과거에는 그랬지만, 이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좋은 교육은 오히려 학교 밖에서 습득하는 게 훨씬 쉽다. 책, 구글, 유튜브, 수많은 인터넷 무료 콘텐츠, 사업현장, 길거리 등, 본인이 맘만 먹고 의지와 호기심만 있다면 학교에 가지 않고도 웬만한 전문가보다 더 훌륭한 지식으로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다. 인터넷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있으면 구글에서 검색해서 열심히 공부하면 노벨상도 탈 수 있다는 농담까지 하겠는가. 우리 투자사 대표나 CTO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냥 스스로 코딩을 배운 분들이 훨씬 많고, 어떤 분들은 대학도 안 가고 그냥 중학교 때부터 책 보고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모두가 원하는 만큼 빠르진 않지만, 교육의 재발명과 재정의는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