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무력감

최근 유명인 두 명의 자살로 인해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디자이너 케이트스페이드와 셰프/작가/방송인 앤소니 보데인이 며칠 사이 연이어 자신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정확한 원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둘 다 오랫동안 우울증과 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나는 케이트 스페이드는 잘 모르고, 큰 관심이 없었지만 앤소니 보데인의 프로그램 Parts Unknown은 즐겨 시청했었고, 남의 나라의 문화와 음식에 대해서 그 나라 사람보다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보데인씨의 능력에는 항상 놀라곤 했는데, 이 분을 다시 못 본다는 생각을 하니까 좀 슬프긴 하다.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인 이 두 유명인의 자살 소식을 접하니, 유명인 못지않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창업가 커뮤니티에 다시 한번 눈을 돌리게 됐다.

실은 공황장애나 우울증은 이제 ‘병’이라기 보단, 지치고 스트레스받는 현대인이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 그 정도는 다르지만 –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나 같은 VC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항상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진해야 하는 미션이 있는 창업가가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나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힘들게 운영하면서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 괜찮냐는 질문을 한다. 비즈니스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정신건강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아쉬운 건, 아직도 한국에서는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병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남한테 잘 내색하지 않는데, 이건 정말 좋지 않다. 정신적으로 힘들면, 가족이나 친구 또는 주위 동료한테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면 남들은 절대로 모르고, 이런 스트레스는 계속 속으로 가져가다 보면 정말로 몸과 마음이 크게 고장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새 나는 ‘불평하라’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에는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창업가가 경험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이 학습된 무력감 때문에 올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학습된 무력감은 피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와도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자포자기하는 현상이다. 실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면, 피할 수 없거나 내 힘으로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 매일 반복되고, 인생이 거절의 연속이기 때문에, 이런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기 쉽고, 무력감에 빠지면, “아, 나는 뭘 해도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지속되면 거의 100%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이런 학습된 무력감을 극복하는데 좋은 방법 2가지가 책에서 소개된다.
첫째는 내가 경험하는 연속되는 거절이나 시련이 내 능력 밖이 아닌, 내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통제가 가능하다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다. 실은, 나는 이와 반대로 생각을 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데도 일이 잘 안 풀리면 스트레스를 더 받을 것이니, 그냥 상황을 탓하거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하면서 넘어가는 게 덜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더 스트레스를 받고 이거야말로 즉시 무력감을 생성하기 때문에, 모든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있고, 다만 그 방법을 찾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한다.
두 번째는, 이 상황은 영구적이 아니라 일시적이라고 생각하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다.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주고, 오늘 거절 당한 건 그냥 오늘 거절 당한 거지, 내일이 오면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어야 한다.

이렇게, 힘든 일은 일시적이고, 그 상황 또한 내가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인드가 강한 사람들은 좀처럼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계속 건강한 정신으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오늘도 어디선가 거절당하고, 좌절하고, 스스로 “난 역시 안되나 봐”라고 하는 창업가들, 모두 힘내세요. 계속 지다 보면, 가끔 이길 때도 있습니다.

투자와 투기

나는 워런 버핏의 팬이다. 버핏의 가치투자에 대해서 여러 번 을 썼고, 실은 벤처투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은근히 비슷한 부분도 상당히 많다는 걸 항상 느끼고 있다. 어쩌면, 버핏의 투자철학과 내 개인적인 철학에 공통점이 많을 수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버핏이 좋아서 이 분의 투자철학을 내 일과 인생에 적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잘 아는 분야에 투자하는데 많은 시간을 집중했다. 나는 실은 내가 잘 못 하는 분야를 개선하는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기보단, 내가 잘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투자하는 방식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거 같다. 그래서 아무리 시장이 크고, 좋아 보이는 비즈니스라도,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별로 도움이나 가치를 더해줄 수 없으면, 과감하게 패스를 했다. 실은 이런 투자 방식이 맞냐 틀리냐에 대해서는 항상 찬반의 논쟁이 있지만, 어쨌든 이건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 투기는 귀로 하고, 투자는 눈으로 하는 거라고 하는데, 어쨌든 나는 투기가 아니라 투자를 하는 사람이다.

블록체인과 크립토가 이제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보이면서, 나의 이런 철학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백서를 읽고, 다양한 ICO들의 기반 기술과 비즈니스에 대한 나름의 연구, 조사와 공부를 해봤지만, 도저히 내가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기와 사기가 아닌 크립토 비즈니스와 ICO를 구분하는 건 이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기가 아닌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비즈니스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까진 오지 못했다. 아직 내 지식이 얕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이해하지 못하면 투자하지 말자는 원칙에 충실하게, 잘 이해하지 못하는 ICO나 크립토 비즈니스는 거의 패스하긴 했다. 남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고, 유명한 투자자들이 줄을 서도, 투기하긴 싫었다.

그런데 조금만 다른 시각에서 생각을 해보면, 실은 크립토 분야를 정말 잘 이해하는 사람은 아직 없는 거 같다. 너무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고, 크립토의 특성상 글로벌 단위에서 이런 엄청난 변화들이 잠도 안 자고 24시간 내내 일어나고 있다. 법도 없기 때문에 계속 규제가 생겨나고 있고, 규제의 변화에 맞춰 또 다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시장과 기술의 특성상, 100% 이해하긴 힘들고, 또 그렇게 100% 이해한 후에 투자하면 이미 늦을 것이다. 적절한 비유일진 모르겠지만, 90년도 후반에 아마존과 구글에 투자한 사람들이 과연 이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고 투자했을까? 아닐 것이다. 창업팀이 좋고, 비전 자체는 공감했기 때문에 투자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는 어쩌면 이건 투자라기보단, 눈과 귀로 투자와 투기를 동시에 한 게 더 맞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치투자는 확실히 아녔다.

크립토와 ICO도 이런 접근을 해야 하지 않으냐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고 있다. 일단 확실한 건, 생각만큼 커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반짝하다가 없어질 유행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정말로 세상이 탈중앙화되고, 전 세계가 토큰화된다면, 이건 엄청난 game changer가 될 것이고, 이 분야에 투자하지 않은 VC는 도태될 것이라는 건 너무나 명확하다. 잘 모르지만, 그래도 계속 예의주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너무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블록체인과 크립토 분야에 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뭐, 그게 이 분야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고,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지만, 내가 최근에 만난 좋은 개발인력의 절반은 블록체인, 크립토, ICO를 하고 있고,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투자자들도 이 분야에 베팅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똑똑한 인력이 새로운 분야에 올인 하는건, 분명히 뭔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나 기술에 대해서는, 투기와 투자가 섞인 형태의 투자전략이 필요할 거 같다. 시간이 지나면 판명될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잘 되면 이건 투자고, 잘 안 되면 투기다.

생각 조금 더 하기

며칠 전에 프레드 윌슨이 쓴 이 을 읽으면서 많이 동의했다. 왜냐하면 나도 최근 이런 경험을 몇 번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회사 이메일로 콜드 이메일이 꽤 많이 온다. 대부분 투자유치를 위한 미팅 요청 이메일인데, 모든 이메일에 답변하진 않지만, 그래도 다 읽어보긴 한다. 그런데 몇 줄 읽다가 이메일을 바로 지워버리는 경우도 많은데, 이분들은 스트롱벤처스나 나에 대한 최소한의 숙제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웹사이트를 한 번이라도 봤으면, 또는 스트롱벤처스에 대해서 읽어보거나 검색을 해보면, 우리는 실리콘밸리 기반이 아니라 LA 기반이라는 사실이 너무 명확한데, 실리콘밸리의 한국계 VC한테 투자를 받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정말 많이 받는다. 이런 이메일은 바로 지워버린다. 이런 기초적인 숙제도 하지 않은 분들이 보낸 이메일에 굳이 내 시간을 낭비하면서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초기 투자를 하는데, 1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고 연락 오는 분들의 이메일도 바로 지운다.

얼마 전에는 “우리 회사 소개자료를 배기홍 심사역님한테 전달 부탁드립니다.”라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이 분은 정말 스트롱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검색해보지 않았고, 주위 분들한테 물어보지도 않은 게 확실하다. 나는 처음부터 스트롱의 대표였고, 심사역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과거 기사에도 배기홍 심사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실은, 전에도 비슷한 글을 내가 쓴 적이 있는데, 이렇게 사전에 조금만 조사해보고,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정말 쉬운 거고, 솔직히 그냥 생각을 조금만 하면 되는 건데, 좀 아쉽다.

인생은 거절의 연속

rejection며칠 전에 쓴 에서 우리 같은 VC가 투자받는 게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이 VC한테 투자 받는 거 보다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론은, 스타트업이나 VC나 아무리 숫자가 좋고 잘 나가도, 일단 남한테 돈을 받는 건 무조건 힘든 거 같다.

우리도 지난 2개의 펀드를 만들면서, 투자받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몸으로 직접 경험했고, 이번 3호 펀드도 똑같이 어렵거나, 조금 더 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울 거라는걸 잘 알고 있었다. 이 또한 여러 명의 투자자한테 피칭하면, 그중 운 좋게 한 명과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확률 게임이기 때문에, 일단은 양으로 승부하는 게임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한국과 미국, 그리고 다른 나라의 기관 LP와 그동안 내가 한 번이라도 만나거나 인사했던 분 중 벤처 펀드에 출자하는 분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봤다. 100개가 훌쩍 넘는 기관투자자와 고액 개인 자산가들의 연락처가 완성되었고, 이 리스트는 계속 커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물어보거나, 검색을 통해 파악한 이들의 취향, 성향, 그리고 우리와 궁합이 어느 정도 맞는지 다 기록해놨다. 집중해야 하는 우선순위와 연락할 순서를 위해서. 그리고, 아주 지루하게, 하나씩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10명 중 5명은 전혀 답이 없고, 4명은 관심 없다는 거절을 하고, 간혹 1명 정도는 조금 더 정보를 달라고 하거나, 전화로 통화를 한 번 하자는 요청을 한다. 이 분과 전화 통화를 하고 난 후, 며칠 후에 관심 없다는 거절의 이메일을 어김없이 받는다.

실은 나는 과거에는 거절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와서라기보단, 그냥 평범한 학교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 다니는 분들은 누군가한테 크게 거절당하는 경험을 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뮤직쉐이크를 5년 동안 하면서 이게 많이 바뀌었다. 그 5년 동안 나는 크고 작은 거절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경험했고, 그런 경험을 하면서 거절에 대해서 익숙해지고, 몸과 마음이 단련된 거 같다. 당시에는 이렇게 디지털 문전박대를 당하면 기분이 정말 더러웠고, 비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거절도 계속 당하다 보니까, 오히려 일을 꼭 성사시켜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고, 이 오기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발산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더 열심히 전화를 돌리면서 발로 뛰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결과가 항상 아름답진 않았고, 반타작하면 잘 하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거절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고, 뭔가 일을 성사시키려면 기본적으로 무수히 많은 거절을 당해야 한다는 현실을 몸으로 잘 배울 수 있었다.

야구에서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어떤 경기는 이기고, 어떤 경기는 지고, 어떤 경기는 비 와서 못 한다(Sometimes you win, sometimes you lose, sometimes it rains)” 중요한 건 경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삶은 계속되고, 아무도 내가 거절 받은 거에 대해서 신경도 안 쓴다.

<이미지 출처 = Designing Your Life Today>

날카로운 칼

knife sharpen시장에 아무리 돈이 많이 풀렸어도, 펀드레이징은 항상 어렵다. 나도 오래전에 스타트업을 하면서 투자유치를 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도 정말 어려웠고, 이제 시장이 더욱더 빡빡해지고, 더 좋은 경쟁상대들도 많기 때문에, 요새 투자 받는 건 더 어려워진 거 같다. 그런데 지금 투자받기 위해서 열심히 자료 만들고, 투자자들 연락하고, 피칭하고 있는 대표님들한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말을 하나 하자면, 우리 같은 VC들이 투자금을 모으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아니, 오히려 스타트업이 VC한테 투자 받는 거 보다, VC가 LP들한테 투자 받는 건(이걸 ‘출자’라고 한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스타트업은 제품, 매출, 사용자 등 뭔가 보여줄 만한 게 있지만, VC의 실적은 최소 5년이 지나야지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펀드는 10년이 지나도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 그 실적이 나오기 전까지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스토리를 가지고 정말 열심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투자유치를 해야 한다.

우리도 요새 새로운 펀드를 만들고 있는데,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왜 펀드 규모를 더 키우지 않냐이고, 두 번째는 왜 스트롱은 한국과 LA 지역에만 투자하냐이다. 실은 항상 받는 질문들이기도 하지만, 이 질문들에 대한 우리 생각이 우리의 태생과 철학을 잘 반영하기 때문에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우리 현재 펀드 규모는 약 180억 원이고, 이번에 새로 만드는 건 조금 더 크다. 하지만, 그래도 대형 기관한테는 – 특히, 해외기관 – 너무 작은 사이즈다. 대형 기관들은 펀드에 출자하려면, 최소 규모 이상으로 출자를 해야 하는데, 이게 전체 펀드의 특정 퍼센트를 넘기면 안 된다. 예를 들면, 특정 기관투자자가 펀드에 출자할 수 있는 최소규모가 500억 원인데, 이게 전체 펀드의 10% 이하여야 되면, 그 펀드의 규모는 최소 5,000억 원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펀드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해외 기관투자자들과는 항상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스트롱이 하려고 하는 건 좋은 거 같은데, 펀드 규모가 너무 작으니까, 아예 펀드 규모를 더 키우면 출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도 돈이 필요한 입장에서 귀가 솔깃해진다.

어쩌면 펀드 규모가 더 커지면 펀드레이징이 더 수월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태생과 뿌리를 항상 스스로 상기시킨다. 우린 초기 투자자다. 가끔은 법인도 없고, 제품도 없는 팀한테 투자하고, 다른 투자자가 항상 “저게 될까? 너무 초기라서 잘 모르겠네.”라고 하는 단계에 과감하게 투자한다. 스트롱은 이걸 공식적으로 7년 동안 해왔기 때문에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존과 내가 이 전에 미국에서 직접 스타트업을 운영해보면서 개고생한 경험이 풍부하고, 이 경험을 기반으로 스타트업들을 도와주려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초기 투자를 해왔고, 이걸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펀드 규모가 커질수록 초기 투자만 하는 게 힘들어진다. 더 큰 규모의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하면서도 항상 큰 펀드의 큰 수익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좋아하고, 그나마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초기 소액 투자를 할 수가 없게 된다. 펀드가 커지면 사람도 더 필요한데, 실은 이 부분도 나는 자신이 없다. 큰 규모의 팀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을 관리해야 하는 건 나에겐 매우 힘든 일이다.

왜 우리는 다른 지역에 투자하지 않나? 이게 우리가 펀드레이징 할 때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이다. 많은 한국의 VC나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에 투자하고 있는데 왜 스트롱은 7년 동안 한국과 LA 지역에, 그것도 ‘한국’이라는 테마를 고집하는지 LP 들이 물어본다. 일단 나는 VC라는 업은 겉으로 보면 상당히 글로벌한 직업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상당히 로컬(=local)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로컬 하다 못해 하이퍼로컬 하다. 한 지역의 회사에 투자하려면, 그 지역의 언어를 알아야 하고, 지역의 창업가/투자자/기업 커뮤니티와 깊숙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해지려면 그 지역에 있어야 하고, 그 지역을 잘 알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국과 LA에 7년 동안 투자하면서, 이 두 시장의 특성을 인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실은, 이 두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완전히 own 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기에, 이 시점에 내가 전혀 모르고, 말도 못 하고, 전혀 네트워크가 없는 새로운 지역에 투자하는 건 왠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은 위 두 개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을 쉽게 풀어 말하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에 집중하고, 잘하는 걸 더 잘 연마하는 거다. 7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어느 정도 평판을 쌓았으면, 이걸 계속 더 잘 할 수 있도록 더욱더 집중하고 싶다. 내가 창업가들한테 자주 말하는 “칼날을 더욱더 날카롭게 다듬는” 작업이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겁지만, 날이 뭉툭한 칼로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자를 수가 없다. 반면에, 작고 가볍지만, 날이 예리한 칼은 깊게 자를 수 있다.

결국, 투자하는 투자자나, 투자받는 창업가나 지속해서 칼을 날카롭게 만들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InsideJapan T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