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능력의 조율

관련해서 내가 여러 번 포스팅했고,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을 포함, 나를 만나본 분들은 나한테 자주 듣는 말인데,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관련 내용이다. 작든 크든, 회사를 운영할 때 대표이사는 스스로에게 매우 냉정하게 물어보고 확인해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본인과 팀이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구분해야 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여기서 말하는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회사의 스킬과 능력이다. 예를 들어, 팀이 그동안 해왔던 게 개발이라면, 이 팀이 잘하는 건 개발이다. ‘하고 싶은 것’은 말 그대로 회사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이 팀이 하고 싶은 일이다. 즉, 욕심이다. 잘하는 건 개발일 수도 있지만, 대표이사가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열심히 취미 생활을 했던 건 케이팝 공연 기획일 수도 있다. 이 회사는 개발을 해야할까 케이팝 공연을 기획해야 할까?

이렇게 회사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다르면, 사업의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질 확률이 높다. 이 경우에 너무 많은 창업가가 본인과 팀이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시하고 과소평가하고, 하고 싶은 것에만 초점을 맞춰서 회사의 모든 자원을 여기에 집중한다. 최악의 경우엔,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너무나 하고 싶은 일에 계속 무모한 도전을 하면서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걸 너무 많이 봤다.

이 구조에 따라서 사업을 멀리서 바라보면 – 너무 가까이서 보면 내가 지금 잘하는 걸 하는지, 아니면 내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지, 이게 잘 안 보일 때가 있다 –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는 두 원이 일치하는 완벽한 교집합에서 사업을 하면 성공의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론적으론 이게 맞지만, 이 완벽한 교집합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서 나는 대부분의 창업가들에게 이 두 원이 조금이라도 겹치는 접점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창업하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교집합은 지금 당장 내가 상대적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일 테고, 그 교집합의 면적이 작아서 일단 작게 시작해 보면, 작지만,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내가 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작지만, 그 작은 목표 또한 상대적으로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와 자신감이 생기면, 이를 기반으로 실력을 더 강화한 후 이 두 원의 교집합의 면적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 결론은 무조건 내가 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을 파악하고, 이게 모든 결정의 시작이 돼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을 기반으로,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를 판단해 보고, 아니라면 하지 말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조금이라도 내가 잘하는 것과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기반으로, 이게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인지를 – 즉, 시장이 존재하는지 –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항상 강조하지만,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완벽하게 일치하는 분야에서 창업한다면, 그만큼 성공 확률이 높다. 하지만, 세 가지 중 두 가지만 어느 정도 일치해도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두 가지가 어느 정도 일치되면, 나머지 하나의 원과 교집합이 만들어질 수 있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고, 운 좋으면 이 과정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접점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연합

“한국은 시장이 작다.”

이 말은 내가 13년 넘게 한국에 투자하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이 듣던 말이다. 우리 같은 VC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한국과 외국 투자자들이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너무 많이 하는 지적이고, 심지어 창업가들도 한국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항상 해외 시장을 타겟 하거나 아예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걸 고민하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본다. 시장이 작다는 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국 시장이 작다고 말하는 분들은 대부분 한국의 5,000만 명 인구를 의미한다. 5,000만 인구로 만들 수 있는 GDP와 같은 출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시장은 완전히 의미 없을 정도로 작진 않지만, 아무리 커져도 확실히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내가 전에 이 에서 이제 한국 창업가들이 드디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능력, 배짱, 그리고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은 한국의 5,000만 명으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일본이나 동남아 시장도 우리의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인구 5,000만 명의 나라지만, 한국 창업가들의 시장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외에도 경제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국 시장 크기의 한계를 극복하는 두 가지 방법은 북한과의 통일, 그리고 더 많은 외국인을 수입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한과의 통일은 단기간 내에 이룩하기 어렵고, 솔직히 요새 많은 분과 이야기해 보면 통일을 오히려 원치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더 많은 외국인을 –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은 외국인 노동자보단, 지식근로자를 의미한다 – 한국으로 수입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외국인 비자 정책을 더 쉽고 간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외국인 비자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고 사는 게 은근히 어렵다. 그리고 아직도 일부는 한국 젊은이들도 취업을 못 하는데,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그나마 없는 일자리를 다 “뺐어” 가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표시하는 분들도 있어서 이 또한 단시간 내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같다.

내가 요새 생각하는 한국의 경제 규모와 시장 크기를 확장하는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조금 뜬금없지만, 우리의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과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선 한국-일본-대만, 이렇게 세 나라가 EU와 같은 경제공동체 AU(Asian Union)를 만드는 것이다. 세 나라는 공통점이 많다. 모두 다 아시아 문화권이고, 모두 다 잘 사는 나라들이고, 모두 다 인구밀도도 비슷해서 이 바닥에서 말하는 ARPU가 높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모두 다 서로를 좋아하고 교류가 많다. 이런 말을 전에 공개적으로 했는데, 어떤 분들은 일본과 우리가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아이디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부분 나이가 든 노인들이었는데, 나는 이분들에게 얼마나 많은 한국 젊은이가 일본을 좋아하고, 얼마나 많은 일본 젊은이가 한국을 좋아하는지 강조했다. 솔직히 잘 먹히진 않았지만, 어차피 노인들은 곧 죽을 것이고, 양국의 정치 또한 젊은이들이 할 것이라서 나는 이 아이디어가 그렇게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대만은 중국이 있어서 좀 어렵긴 할 것 같지만, 이미 월드 클래스인 세 나라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면, 시장 크기, 인구 크기, 경제 크기, 이 모든 면에서 정말 거대하고 대단한 규모의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습관을 형성하는 기계

얼마 전에 한 팟캐스트에서 습관에 대해 연구하는 작가의 인터뷰를 들었다. 이분이 최근에 출시한 책은 습관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습관을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인데, 이 책을 출간하면서 가장 많이 참고했던 게 군대이고, 가장 많이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군인이라고 한다. 특히 작가가 했던 말 중 내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았던 말은 “군대는 습관을 인위적으로 형성하는 거대한 기계”였다. 이 말을 하면서 예로 들었던 건,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18살짜리 애도 수색하다가 폭탄이 발견되면 완전히 기계같이 행동한다는 내용이었다.

위의 예처럼 폭탄이 발견되면 기계같이 행동하는 군인들이 있지만, 또 그렇게 하지 않는 군인도 있는데, 어쨌든 전반적으로 군대 자체가 모두의 습관을 형성하는 거대한 기계의 역할을 하므로, 입대하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습관들이 다른 업종 사람들보다 더 잘 형성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군대만큼 습관을 형성해 주는 거대한 기계는 바로 스타트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모든 창업가 중 사업을 오랫동안, 꾸준히 잘하는 분들은 모두 다 습관의 동물들이다. 실은 나도 스트롱벤처스를 만들었으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창업가라고 할 수 있는데, 나에게도 스트롱벤처스는 지난 13년 동안 습관을 – 좋은 습관도 있고 좋지 않은 습관도 있지만, 대부분 너무 좋은 습관 – 형성해 준 작은 기계와도 같다. 아마도 투자자로서의 습관, 그리고 실제로 사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로서의 습관은 조금 다르겠지만, 내가 창업가들을 관찰하면서 느끼는, 이들이 스타트업을 하기 때문에 형성된 가장 두드러진 습관은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인지적 습관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주위에서 잔소리와 훈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이 모든 것을 무시하면서, 실제로 나에게 도움을 주는 조언과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잡음을 구분하고,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에만 우선순위를 매기는 습관은 내가 아는 사람 중 창업가들이 가장 잘 한다.

스타트업이 창업가들에게 기계적으로 형성시켜 주는 또 다른 습관은 행동하고, 이를 계속 반복하는 행동이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founders are machines of iteration”인데, 한정된 자원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론보단 실제로 뭔가를 만들어 테스팅하고,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오래 끙끙 고민하기보단 그냥 바로 실행하는 게 창업가들이다. 아주 훌륭한 습관이다.

그리고 또 다른 습관은 위기에서 빠져나가서 살 수 있는 기회와 패턴을 남들보다 더 잘 볼 수 있는 것도 스타트업이 창업가들에게 단련시키는 습관 중 하나인 것 같다. 위기 앞에서 남들은 감정적으로 휩쓸리면서, 가장 덜 고통스럽게 포기하는 방법을 찾지만, 창업가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습관적으로 찾게 되는데, 이건 스타트업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형성되기 어려운 습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좋아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아무리 나빠도 별로 낙담하지 않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습관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경험 많은 창업가들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실은, 나도 비슷한 성향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좋을 땐 기뻐하고, 너무 화가 날 땐 슬퍼하는 감정에 빠진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정말 노련한 창업가들은 “이기면 다음 시합을 준비하고, 져도 다음 시합을 준비한다.”라는 덤덤한 마인드로 사업을 하고 인생을 사는데, 이것 또한 스타트업이라는 습관을 형성해 주는 거대한 기계가 아니면 생길 수 없는 좋은 습관인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습관들은 내가 지난 13년 동안 창업가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항상 감탄하면서 동시에 나도 내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는 그런 좋은 장점들인데, 어떻게 보면 이런 습관은 내가 항상 강조하는 창업가의 바퀴벌레와 같은 특성을 기반으로 형성되기도 하는 것 같다. 원래 바퀴벌레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창업하는 건지, 아니면 창업하게 되면 스타트업이라는 기계가 바퀴벌레의 습관을 형성하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아마 둘 다이지 않을까 싶다.

장수(longevity)

올해 하반기부터 우린 매달 오피스아워(Office Hour: OH)를 진행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스트롱의 투자팀원이 6명인데, 각자 돌아가면서 매달 본인들이 요새 관심 있는 분야에서 창업을 고민하고 있거나, 이미 창업한 분들을 만나기 위한 우리의 작은 노력 중 하나의 활동인데, 9월의 OH는 내가 진행한다.

이미 학생 창업가, 여성 창업가, 그리고 콘텐츠 창업가 OH를 통해서 스트롱의 박형우 심사역, 유혜림 심사역, 그리고 신득환 심사역이 좋은 분들을 만났는데, 나는 장수(longevity) 분야의 창업가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장수 OH를 진행해 보려고 한다.

‘장수’ 스타트업이라 하면 좀 뜬금없긴 한데, 오래만 살 수 있는 장수라기 보단, 건강하게 오래 사는 장수를 가능케 하는 기술력과 전문 지식을 가진 창업가와 스타트업을 의미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에 갈 때마다 장수 관련 회사와 창업가들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걸 목격했다. 이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분들을 팔로우하면서 느낀 점은, 인터넷에 있는 대부분의 장수 관련 기술과 제품은 가짜이고,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통과한, 100% 과학적으로 증명된 기술과 제품이 거의 없지만, 이 중 일부는 과학적 근거가 있고,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술과 약에 관심이 있고 NMN, NAD+, NR, mTOR, 라파마이신 등 관련 스타트업 또는 관련 연구를 하는 분 중 창업을 꿈꾸고 있는 분들과 이야기해 보고 싶다. 한가지 먼저 공개하고 싶은 건, 내가 과학자가 아니라서 과학에 대한 아주 깊은 대화는 힘들지만, 이걸 사업화하는 것 관련해서는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OH의 특성상, 심각한 피칭 미팅이 아니라 가볍게 이야기하면서 서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양방향 배움의 기회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이 링크를 통해서 편안하게 지원하면 된다. 내가 만나고 싶은 분들에겐 따로 연락을 할 것이다.

해야 할 이유

스타트업은 대기업에 비해 돈도 없고, 사람도 없다. 특히,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 많은 걸 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에게 내가 항상 조언하는 내용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보겠다. 실은, 이 내용도 내가 블로그를 통해서 지금까지 여러 번 강조했는데, 여러 번 지나치게 강조해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투자하는 동안에는 계속 이 잔소리를 하고 싶다.

작은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 더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뭘 더 안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라는 말을 나는 자주 강조한다. 기술이 너무 좋아졌고, 창업가들도 더 똑똑해졌고, 특히 AI를 잘 활용하면 훨씬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할 수 있는 창업가도 가끔 본다.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고, 더 다양한 창업가와 회사와 경쟁해야 하므로, 여러 가지를 대충해서는 승산은 더욱더 낮아질 것이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표현인데, 큰 식빵에 땅콩버터를 얇게 바르는 전략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즉, 여러 가지 일을 대충 하기보단, 한 가지만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잘해야지만 생존의 확률을 올릴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최근에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세 분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해야 할 이유가 있는 일”과 “안 할 이유가 없는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 회사들 모두 내가 봤을 땐, 본인들이 집중해야 하는 본업도 제대로 못 하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분야로 진출하거나, 해외에 지사를 만들거나, 정부 보조금을 받아서 우리 사업과 상관없는 일을 벌이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왜 본업도 제대로 못 하고, 한국에서도 사업을 제대로 못 하면서 다른 일들을 벌리는지 물어보니 세 분 모두 “안 할 이유가 없다”라는 답변을 줬다.

“배대표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걸 우리가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난 이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가끔 이런 말을 창업가들이 하면 정말 싸대기를 한 대 때려주면서 “싸대기를 안 때릴 이유가 없었다.”라고 해주고 싶다.

안 할 이유가 없어서 사업을 계속 벌이다 보면, 안 그래도 돈도 없고 사람도 없는 스타트업은 없는 자원을 자꾸 쪼개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하면서도 스스로에겐 이건 어차피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 시간과 에너지는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자위한다. 이렇게 자원을 분산할수록 우리 본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은 희석되고, 이렇게 되면 우리의 성공 확률은 희석되는 자원 대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이렇게 안 할 이유가 없는 모든 일을 하다 보면, 창업가 본인도 정확히 뭘 해야 할지 확신이 안 서고, 그러다 보면 그냥 이것저것 하다가 하나만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 빡센 비즈니스 세계에서 사업의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다면, 안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하는게 아니라, 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여러 번 물어야 한다 “우리가 이걸 지금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지금 이 사업을 해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면, 그땐 이걸 하는 게 맞다.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태도로 사업을 하면 자원을 최적화하고, 최적화된 자원을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한다. 이게 초기 스타트업이 그나마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이다.

안 할 이유가 없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해야 할 이유가 있는게 중요하다. 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 해야 한다. 안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하는 건 자살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