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CEO들

최근에 ‘워렌버핏이 선택한 CEO들(The Warren Buffett CEO)’이라는 책을 읽었다. 실은 2003년도에 발행된 책이라서 연식도 있고, 당시 내용과 2017년 현실과는 다른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워렌버핏 관련 책을 많이 읽었고, 인수할 회사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 책으로는 배웠는데 바로,
1/ 이해할 수 있는 기업
2/ 장기 전망이 밝은 기업
3/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경영하는 기업
4/ 가격이 매력적인 기업
이다. 그런데 3번의 정직하고 유능한 CEO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제공한다.

버크셔해서웨이의 회사 CEO의 인생은 기업 인수 전과 후가 별반 다르지 않다. 버핏이 회사를 인수한 이후에도(주로 통째로 인수) 변하는 건 없고,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회사를 잘 운영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월가와 같은 외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본인이 하는 비즈니스만 잘 하면 되기 때문에, 인수 이후 오히려 사업에 대한 집중도는 높아지고, 실적은 대부분 향상한다. 대부분 자신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설명하지만, 본인의 업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도 한다. 외부의 잡음에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컨트롤 할 수 있는걸 가장 잘하는 이런 모습은 실은 워렌버핏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20명 이상의 CEO들이 버핏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서로 만난 적도 없으며, 같은 주인을 모시지만, 서로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버핏이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대하는 게 사실인 거 같다. 아, 물론, 버핏을 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 다 칭찬만 하는데, 그 디테일이 너무 같아서 신기할 뿐이다.

이 책을 덮고, 과연 스트롱 대표님들은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우리도 이제 투자사 숫자가 거의 90개에 육박하는데, 이 중 나랑 대화를 많이 하는 분도 있고, 거의 안 하는 분도 있을 텐데,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모든 분들한테 보여준 모습과 태도는 한결같았는지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는 버핏과 같이 남한테 좋은 인상만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버핏은 의도적으로 남들한테 좋은 인상만 보여주길 원하는 거로 알고 있다). 실은,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보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도 싫다. 살면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와 캐릭터를 가지는 건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든 나쁘든, 모든 사람이 나를 한결같이 보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스트롱 대표님들,
올해도 1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내년에도 죽을 각오로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불타고,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잘 되는 회사들은 모두 열심히 합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THANK YOU.

1백만

sketchware_1M install안드로이드 모바일 앱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모바일 앱 스케치웨어가 얼마 전에 백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실은, 요새 워낙 좋은 앱들이 많아서 1백만 다운로드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숫자가 나한테 의미하는 건 조금 특별하다. 프라이머와 스트롱이 같이 투자한 이 회사에 우리가 어떻게 투자하게 되었는지 여기서 잠깐 적어본다.

작년 6월 말, 나는 스케치웨어 김기한 대표의 cold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는 웬만한 콜드이메일은 다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많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놓치는 것도 있는데, 다행히도 이 이메일은 내가 봤고, 첨부한 사업계획서도 읽어봤다(간결했다). 나도 이 분야를 잘 모르지만, 괜찮다고 생각해서 일단 화상으로 통화를 하고, 프라이머 파트너십과도 공유했다. 한국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순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그리고 시장 자체가 한국보다는 해외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모두 높게 평가했지만, 그만큼 더 어려운 시장이고, 이 팀이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이번에는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메일로 답변을 드렸다.

보통 여기까지 오면, 대부분 창업가는 다른 투자사를 찾아보는데, 며칠 뒤에 스케치웨어로 부터 이메일을 하나 더 받았다. 솔직히 투자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냥 대충 보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나는 사무실에서 큰 모니터로 이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읽었다. 스케치웨어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글로 나한테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 하지만, 비굴한 어조는 전혀 없었다. 왜 지금 회사는 투자가 필요하고, 그나마 여기까지 온 투자사는 프라이머와 스트롱 밖에 없고, 이 비즈니스의 진가를 알아보는 VC를 만나는 게 너무 힘든데, 그동안의 대화가 즐거웠고, 이런 대화를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메일을 읽자마자 지금은 쿠팡에 인수된 우리 투자사 Recomio의 창업가 태호한테 스케치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알려달라고 했다. 참고로, 내가 소프트웨어 기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순수 기술 회사에 대해서는 내가 믿는 사람들의 조언을 항상 구하는데, 태호는 그중 내가 가장 믿는 엔지니어다. 태호는 굉장히 좋은 반응을 보였고, 왜 스케치웨어가 크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해줬다.

나는 이런 내용을 정리해서 프라이머 파트너십에 다시 투자제안을 했고, 결국 프라이머와 스트롱이 공동 투자하기로 하면서 스케치웨어에 작은 초기 투자를 했다. 이후 우리는 한 번 더 추가 투자를 했고, 다행히도 회사는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백 만 다운로드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용자의 꿈을 실현해 주 수 있는 좋은 제품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5백만 다운로드가 벌써 기대된다.

YULIP 2번째 이야기

Yulip-2구글캠퍼스서울에서 진행하는 ‘엄마를 위한 캠퍼스(Campus for Mom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체에 무해한 립스틱 YULIP을 만드는 원혜성 대표님 이야기를 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6월 텀블벅을 통해서 진행한 첫 번째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목표를 350% 초과 달성해서 1,750만 원으로 마감한 것도 성공이었지만, 실제 제작과 발송이 지연되는 많은 크라우드펀딩 캠페인과는 달리 약속했던 납기를 정확하게 맞춘 것도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고객들의 피드백을 취합하고 반영하면서 드디어 신제품을 위한 두 번째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이 며칠 전에 다시 텀블벅을 통해서 돌아왔다. 첫 번째 캠페인과 같이 3가지의 새로운 립스틱이 양산될 예정이며, 이 중 립 올마이티라는 제품은 100% 비건 립스틱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율립은 우리 투자사도 아니고, 나랑은 그 어떠한 비즈니스적인 관계도 없다. 다만, 그동안 나는 원 대표님과 가끔 만나서 사업 이야기를 하면서, 전혀 모르는 화장품 시장에 대해서 나름 공부하면서, 한 창업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실체가 없던 무형의 아이디어가, 립스틱이라는 유형의 제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멀리서 보면서, 이런 분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가 응원하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기저기 유니콘 이야기만 들리고 보이는데, 이 유니콘들의 시작은 모두 소박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 같다…아모레퍼시픽도 1945년 개성에서 모발용 동백기름을 가내수공업으로 판매하면서 만들어진 회사라는 걸 나는 항상 스스로 상기시킨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 있으면 여기서 펀딩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텀블벅>

부분 유료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들다. 버티컬과 산업군을 막론하고, 사용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의 수는 너무 많다. 찾고 있는 제품군을 앱스토어에서 검색해보면, 비슷한 제품이 적으면 수십 개에서 수 백개가 – 카메라와 같은 – 발견된다. 이렇게 많은 유사 제품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건 모든 스타트업의 지상과제이자 로망이다. 대부분 실패하지만, 운 좋은 팀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반응을 일으키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유도하는 제품의 기능이나 디자인 요소를 잘 파악하고, 그 요소를 더욱더 깊게 개발하고 개선하면 제품은 향상된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이제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데, 제품을 만드는 것 만큼 힘든 게 비즈니스 모델이다. B2C와 B2B를 막론하고, 많은 회사가 freemium 모델로(free + premium. 부분유료화) 시작한다. 기본적인 기능은 모두 무료로 제공하고, 그 이상의 고급 기능에 대해서는 유료로 제공하는데, 내 주변 많은 인터넷/모바일 제품들이 프리미엄 방식으로 과금을 하고 있다. 지메일, 드롭박스, 에버노트와 같은 제품은 기본 용량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그 이상의 저장공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월 또는 년 단위로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 게임의 경우, 기본 아이템은 무료로 사용하지만, 고급 아이템은 결제를 해야 한다. 또는, 시간을 투자하면 획득할 수 있지만, 돈을 내면 즉시 획득할 수 있다. 어떤 B2B 제품은 소규모 그룹은 무료로 사용하지만, 특정 인원수가 초과하면 과금하는 프리미엄 정책을 도입한다. 방법은 천차만별이지만, 일부 기능은 무료로 제공하고 일부 기능은 유료로 제공하는 기본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고, 어떤 걸 유료로 제공해야지만 사용자 경험을 해치지 않으면서 회사도 돈을 벌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게 좋은 과금 정책인데,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걸 명확하게 결정하는 게 힘들다. 최근에 내가 B2B SaaS 서비스를 만드는 몇 팀을 만났다. 모두 시장에서 우리 제품이 필요하다는 초기 반응은 확인했는데, 어떻게 과금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정답은 없지만, 복잡한 문제일수록 간단하게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게 기존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이며, 이 서비스가 필요한 고객군이 명확하게 증명되었다면, 과금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필요한 제품이고, 우리밖에 없다면, 시장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독점적 위치를 장악해서 우리가 부르는게 값이 될 수가 있다. 문제는, 우리만 제공하는 제품이 이제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미 경쟁사가 제공하는 기능과 비슷하다면, 이건 그냥 무료로 제공하는 게 좋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있는데, 굳이 비슷한 걸 돈 내고 사용할 사람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고 인지도가 있다면, 우리도 무료로 제공하면 초기 고객을 조금 더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비슷한 기능이지만, 우리가 제공하는 기능이 더 고급이거나, 완전히 다른 방향의 사용 용도가 있다면 이건 유료로 제공해볼 만하다.

물론, 제품과 비슷하게 이런 과금 정책 또한 다양한 테스트가 필요하긴 하지만, 고객한테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이 가는 부분이라서 제품 테스트보다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 그냥 남들이 만드는 제품과 비슷하고, 기능도 거의 비슷하다면, 그리고 그 다른 제품과 기능이 무료면, 우리 제품을 유료로 전환하는 건 상당히 힘들다.

땅과 건물에 투자하기

12월 4일 자로 전체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은 370조 원(340B USD)을 넘겼다. 370조 원 시가총액을 우리가 알만한 회사와 비교해본다면, 페이스북의 시총이 553조 원이고, 삼성전자의 시총이 394조 원이니, 엄청난 금액이다. 특히, 올해 초 가상화폐의 시총이 20조 원 정도였으니, 경이롭고 비정상적인 성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얼마전에 내가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페이스북에 했다.

crypto market cap fb posting

12월 14일 자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Top 10 가상화폐 순위이며, 이들의 시총은 476조 원(439B USD)이였다. 비트코인과 이더의 시가총액이 다른 화폐보다는 압도적으로 높지만, 재미있는 건 화폐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그 시총이 높은 건 아니다. 시총이 높은 이유는 이들의 유용성이 높기 때문인데, 단순히 사고파는 자산이 아니라 이 화폐의 기반 기술 위에 다른 분산 애플리케이션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유용성이 높고, 그 높은 유용성이 높은 가격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흔히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HTTP 나 SMTP와 같은 프로토콜에 비유하는데, HTTP와 SMTP와는 달리 비트코인/이더리움은 프로토콜 단(프로토콜=비트코인과 이더)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프로토콜 위에 구현된 애플리케이션에도 투자할 수 있다는 건 꽤 재미있는 특성이다. HTTP에는 우리가 투자하지 못하지만, 그 위에 만들어진 쿠팡이나 토스 같은 애플리케이션에는 투자할 수 있다. 이게 지금까지의 투자모델이었다. 비트코인의 경우, 비트코인이라는 프로토콜에도 투자할 수 있고(비트코인을 구매), 그 위에 만들어진 코빗이나 모인같은 애플리케이션에도 투자할 수 있다. 이 개념을 재해석해보면, 비트코인이라는 프로토콜에 투자하는 건 땅에 투자하는 거랑 비슷하고, 그 위에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에 투자하는 건 땅 위에 올라가는 집, 상가 또는 건물에 투자하는 거랑 비슷하다. 땅값이 올라가면 부동산의 가치도 올라가고, 부동산의 가치가 올라가면, 땅값도 올라가는 것이다.

실은, 이런 이유로 나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가장 강력한 가상화폐라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가상화폐가 생겨나고 있지만, 대부분 비트코인의 프로토콜과 블록체인을 변형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의 가치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비트코인의 가치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더리움도 마찬가지지만, 비탈린 부테릭과 그의 친구들은 계속 이를 탈피한 기술을 개발하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넘쳐나는 ICO 중, 어떤 곳에 참여를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면, 내 첫 번째 조언은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굳이 참여해야 한다면, 그 비즈니스 자체가 블록체인을 얼마큼 활용하고 있는지 잘 따져 본 후에 투자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비즈니스의 코어가 블록체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면, 비즈니스와 코인의 가치가 일치하기 때문에 조금 더 합리적으로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햄버거를 판매하는 비즈니스가 버거코인이라는 토큰을 발행하는 ICO를 진행한다면, 비즈니스와 토큰의 상관관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ICO는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