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불안 세대

phone anxiety얼마 전 지하철에서 내 옆에 어떤 여중생과 엄마가 앉았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여중생 목소리가 워낙 커서 엄마와 하는 이야기가 다 들렸는데, 세대차이도 느끼고 우리 비즈니스에 대해서 또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대화 내용:

–엄마: “너 그거 학원 선생님께 전화해서 설명하면 간단한 걸 왜 힘들게 계속 문자로 해?”
–여중생 딸: “아 씨…요새 누가 통화해? 다 톡으로 하지. 난 전화로 누구랑 이야기 하는 거 자체가 너무 불편해”

요새 젊은 친구들은 나랑 완전히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뭔가 복잡한 걸 설명하려면 난 가능하면 전화기를 들어서 통화하는 걸 선호한다. 글로 쓰면 엄청 길고 복잡해지는 걸 말로 설명하면 더 간단하고 짧게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은 더이상 누구와 전화 통화 하는 거 자체를 부담스러워서 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작은 화면에 작은 자판으로 오타 나면서 뭔가를 계속 타이핑하는 걸 전혀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요새 젊은 친구들은 오타도 거의 내지 않을 정도로 이미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는 훈련이 되어 있기도 하다.

주위 많은 분이 우리한테 왜 특정 회사에 투자했냐고 물어본다. 특히, 한국에서 말하는 O2O 서비스들은 수십 년 동안 존재하던 서비스를 그냥 앱으로 포장해서 주문만 앱으로 하고 나머지는 기존 오프라인 프로세스랑 같은데 이런 게 무슨 new business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실은, 이분들이 하는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투자한 온디맨드 세탁서비스 세탁특공대나 가사도우미 서비스 미소를 겉으로만 보면 그냥 동네 세탁소에 전화하는 대신 앱으로 사람을 부르고, 인력서비스에 전화하는 대신 앱으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더 깊게 보면 과거에는 100% 오프라인으로 운영되는 비즈니스의 많은 부분을 온라인화하고, 이로 인한 부가적인 가치 또한 창출하면서 성장하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은 서비스들이다. 또한, 이 회사들은 위의 여고생이 말한 변화하는 사회적 트렌드를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상 위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 또는 우리 세대는 동네 세탁소에 전화해서 아파트와 동호수를 알려주고, 세탁물이 몇 개니까 언제까지 와서 가져가라는 말을 실제 사람한테 하는 걸 꺼리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좀 다르다. 일단 전화를 들어서 잘 모르는 사람과 통화하는 거 자체를 꺼리고, 스트레스까지 받는다. 별거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전화하려면 왠지 생각을 해야 하고, 할 말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마음의 준비까지 해야 한다고 이들은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그냥 폰 화면에 이 모든 정보를 기재하고, 결제 자체도 그냥 폰으로 하는 걸 선호한다.

Benchmark Capital 의 빌 걸리가 이런 현상을 ‘불안 해소(anxiety relief)‘라고 했는데, 앞으로 이 현상은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우리한테는 계속 좋은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이미지 출처 = Healthline.com>

옷 벗는건 무책임

10월 말에 열린 국내 여자골프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KB금융 스타챔피언십 대회가 골프선수들의 반발로 1라운드가 완전히 취소되는 아주 이상한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겠지만….조금만 설명을 하면…그린 옆 프린지의 잔디가 그린과 쉽게 구별이 안 될 만큼 짧게 깎아놓아서, 일부 선수들이 프린지를 그린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여기에 떨어진 공을 집어 들어서 벌타를 받는 사태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선수들의 불만이 터지자, 경기위원회는 그린과 프린지가 구별이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이로 인한 선수들의 벌타를 모두 면제해줬는데, 이게 벌타를 받지 않은 다른 선수들의 엄청난 반발을 산 것이다. 그리고, 선수들은 형평성 문제를 들어 1라운드 결과를 무효로 처리하라며 대회 출전을 거부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니, 위원회는 공식 사과와 함께 1라운드 자체를 아예 취소해버리고 원래 4라운드 경기를 3라운드로 축소를 했다. 상당히 미숙한 운영이고, 이렇게 1라운드를 취소한 것도 이상하지만,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건, 경기위원장의 사임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습니다”라면서, 90도 인사하고 사임하는 게 과연 책임을 지는 것인가?

실은, 우리는 이와 비슷한 현상을 주변에서 너무 자주 본다. 큰 사건이 터지면, 담당 장관이 옷을 벗고, 기업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엄밀히 말해서 그 사건과 직접적으로는 관련 없는 고위간부가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둔다. “그거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고 그만두면 되잖아.”라는 말이 난무하는 사회이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임하는 건 책임 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책임을 지고 싶다면, 그전에 잘못한 거를 깨끗하게 인정하되, 그 잘못된 걸 올바르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똥은 왕창 싸놓고, 그냥 옷 벗으면, 이걸 누가 처리하란 말인가?

나는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면, 가끔 사임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을 오히려 좋게 볼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수치심도 없는 부끄러운 인간들이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잘못했으면, 그 잘못을 가장 잘 고칠 수 있는 건 그 사람 본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태도가 더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단지 사임하는 건, 오히려 더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다크호스와 블랙스완

테크크런치에서 발행한 Top-Heavy US VC Market May Lose Footing As Early-Stage Deals Slip Away 라는 글을 읽었다. 좋은 내용이 많은데, 내가 자세히 봤던 건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시드와 초기 투자가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지난 54개월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이런 추세가 아주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아마도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이들은 분석한다. 일단 스타트업이 전반적으로 성숙해져서 초기 투자보다는 그 이후의 투자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과 소수의 특정 회사들이 자기만의 시장을 독식하면서 대부분 돈이 극소수의 회사에 몰린다는 분석이다(예를 들면 아마존의 이커머스 독식; 페이스북과 구글의 웹과 모바일 독식; 우버와 리프트의 택시/운송 시장 독식이 있다).

실제 몇 개의 차트를 보면 소수의 회사가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는 분석이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 지난 54개월 동안 미국 여행 분야 스타트업의 전체 펀딩 중 절반이 에어비앤비에 투자되었고, 택시/운송 분야 전체 펀딩의 절반 이상이 우버와 리프트, 이 두 회사에 투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의 뉘앙스는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앞으로 새로운 슈퍼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건 정말로 힘들 것이고, 조금 커져도 결국엔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등과 같은 공룡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초기 스타트업의 펀딩은 계속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결론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과거를 보면 미래가 그대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미래를 보여준다면, 비즈니스의 세계는 계속 반복된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회사가 갑자기 급성장하면서, 특정 시장을 수직적으로 독식하고, 다른 시장으로 수평적으로 확장하면서 세상을 먹을 기세로 커지는 걸 우린 자주 볼 수 있다. 지금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회사가 여기에 속하지만, 이런 회사는 과거에도 찾아볼 수 있었다. 90년대 말에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시스코 같은 회사가 세상을 먹을 기세로 성장했고, 그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모든 사람이 이제 이 회사가 세상을 접수하겠다는 생각을 할 때, 갑자기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스타트업이 탄생한다. 그리고 비슷한 현상은 반복된다.

아마존을 능가할 수 있는 이커머스 플레이어가 내가 죽기 전에 과연 나올까? 현실적으로 보면 힘들다. 페이스북을 능가하는 소셜 미디어가 내가 죽기 전에 과연 나올까? 이 또한 현실적으로 보면 힘들다. 하지만, 그래서 스타트업이 재미있는 거 같다. 분명히 어디에서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올 것이고, 다시 한번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는 걸 나는 믿는다. 현실적으로는 힘든 걸 비현실적으로 가능케 한다.

세상은 다크호스와 블랙스완이 넘쳐흐르지만, 실제 벌어지기 전까지는 잘 안 보인다는 게 묘미다.

비트코인캐시

주말에 별 생각 없이 비트코인 가격을 확인했는데 거의 30%나 하락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전날 $7,500이었는데, $5,500까지 떨어졌다). 최근 들어 이렇게 가격 변동이 심한 적이 없었고, 나는 이제 $7,000 이하로 떨어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시장을 예측하는 건 부질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대신 비트코인캐시의 폭풍 같은 상승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루 만에 거의 2배 이상 폭등하고 $2,000까지도 가면서 갑자기 모든 투기가 이쪽으로 집중되고 있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의 가격이 미친 듯이 변동하고 있다. 계속 변하고 있지만 비트코인캐시의 시가총액이 30조 원까지도 갔다.

지난번에 비트코인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과 변화에 대해서 포스팅한 적이 있다. 실은 11월 16일 정도에 블록체인의 블록 크기를 2MB로 증가하는 Segwit2x의 구현이 어느 정도 합의가 됐었는데, 이 프로젝트의 리더들이 계획을 백지화시키면서 당분간은 진행하지 않기로 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 결정 또한 기술적인 이유보다는 개발자와 채굴자 커뮤니티의 합의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실은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블록체인 크기의 증가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스러운 발표가 나자마자 SegWit2x의 지지자들은 더이상 비트코인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코인과 채굴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비트코인캐시쪽으로 옮기면서 이런 급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비트코인이라는 나라는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믿을 수가 없어서 비트코인캐시라는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다른 나라로 이민 가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어떻게 끝날 것인가? 비트코인 부정론자들은 모든 자원이 비트코인캐시로 이동하면서 비트코인은 이제 완전히 죽을 것이라고 하고, 비트코인 맹신론자들은 이미 우리가 과거에 많이 경험했듯이, 일시적인 현상이고 모든 게 정상화되면 비트코인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난 더이상 이 시장이 어떻게 될지는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남들이 욕심을 낼 때는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땐 욕심을 내라”는 원칙에 충실하게 오늘도 비트코인을 좀 샀다.

시스템 만들기

공개적으로 자주 말하는데, 우리는 개발인력이 있는 팀을 선호하고, 아무리 단순해도 기술을 이용해서 기존의 방법보다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싸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팀을 찾는 게 쉽지 않다. 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에는 개발자보다는 기획자가 더 많은데, 내 마음속에 기획자는 그냥 ‘개발자가 아닌 사람’ 이지,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실은 순수 소프트웨어 사업이 아니라면, 개발력이 없는 팀도 사업을 시작해서 어느 정도 굴러가게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이커머스 비즈니스인데, 겉으로 봤을 때는 이커머스 비즈니스의 핵심은 물건을 판매하는 장사라서, 좋은 제품을 확보하고, 잘 판매하고, 배송하는 체계를 만들면 매출이 발생하는 사업을 단기간 안에 만들 수 있다. 이런 경우, 대표이사가 발로 직접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발품을 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매출이 발생한다는 건 스타트업으로써는 큰 영광이다. 그리고 매출이 발생하면서 회사의 실적이 매일 성장하는 걸 경험하면서 대표와 팀은 계속 이렇게 발로 뛰면서 사업을 한다. 그리고 계속 이런 방법으로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인력을 채용하는데, 주로 개발 인력은 뒷전이 된다.

탄탄한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려면 좋은 개발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이런 어려움 때문인지, 이커머스 시스템에 투자하는 팀을 보기가 힘들다. 일단 판매할 물건을 확보하면, 지마켓이나 쿠팡과 같은 오픈마켓에 올려서 판매하거나 – 실은 이렇게 시작하는 건 나쁘지 않다. 시장을 테스트하는 차원에서는 – 워드프레스 같은 툴로 간단한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카톡으로 주문받고, 계좌이체로 돈을 받고, 배송을 시작함으로써 비즈니스를 시작한다. 실은 이런 시작은 매우 좋다. 거창하게 모든 걸 갖추고 시작할 시간이나 자원이 없다면, 일단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렇게 시작하는 건 창업가의 좋은 실행력이다.

하지만, 진짜 큰 비즈니스를 만들고 싶다면, 이 과정을 시스템화하고 자동화 해야 한다. 카톡으로 주문을 받거나, 계좌이체로 입금 받는걸 평생 할 순 없다. 고객이 50명일 때와 5만 명일 때는 비즈니스의 스케일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면, 시작은 간단하게 해서 생존을 위해 대표가 발로 뛰고, 매뉴얼로 모든 걸 처리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엔지니어링 팀을 만들어야 하고, 좋은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너무 많은 대표가 “우린 물건을 판매하는 비즈니스라서 기술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아요”라는 말을 하는데, 이러면 많은 걸 놓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커머스나 O2O 비즈니스를 검토할 때 사업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매출이 많이 발생하는 회사라도 이런 시스템이 없고, 대표가 기술의 힘을 믿지 않으면, 관심도가 떨어진다. 이와 반대로 매출이 오랫동안 없는 회사라도 잘 만든 시스템이 있고, 기술로 돌아가는 플랫폼을 대표가 믿는다면, 관심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