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Coke의 교훈

Coca-Cola Company는 1985년도에 “New Coke”를 출시하였다. 잘 아시다시피 콜라는 굉장히 단순한 음료수이다. 물에 설탕이랑 색소를 적당히 섞어서 가스를 집어넣은 “탄산 설탕물”이다. (여담이지만 콜라 이야기만 나오면 1983년도에 그 당시 펩시 콜라의 중역이었던 John Sculley를 Apple의 사장으로 스카웃하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가 “나랑 같이 애플에서 세상을 바꾸겠습니까 아니면 평생 펩시에서 설탕 물을 팔래요?”라는 질문을 하였던게 생각난다. 존 스컬리는 이 말 한마디에 혹해서 애플로 넘어왔다). 본질은 설탕물이지만 코라 콜라는 단순한 음료수가 아니라 미국을 상징하는 가장 미국적인 음료수이기도 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인의 자유정신과 개척자 정신이 이 설탕물에 내포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특히 New Coke의 출시는 단순한 신제품의 launch를 넘은 미국 사회와 정치와도 밀접한 상관이 있는 대단히 상징적인 이벤트이기도 하였다. 코카 콜라를 안마시는 인구를 포함하여 코카 콜라가 미국인들의 (그리고 미국인들이 아닌 외국인들조차) 머리와 가슴에 이런 애국적인 이미지들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대단한거 같다.

New Coke는 출시하기 전부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이르켰었고, 코카 콜라 중역들이 New Coke에 거는 기대는 대단하였다. 그럴수밖에 없던게 출시 전 사전 시장 조사에서 New Coke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었기 때문이다. 눈을 가리고 다른 콜라와 New Coke를 비교하는 blind taste 테스트에서는 모든 소비자들이 New Coke가 펩시 콜라보다 맛이 좋았고 심지어는 Coca-Cola 보다도 맛이 좋다고 하였을 정도로 New Coke의 맛은 신선하였다. 하지만, 사전 테스트와 출시 초반의 판매호조와는 반대로 곧 New Coke에 반대하는 소비자 반대와 데모가 시작되었으며 소규모로 시작되었던 이러한 반대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New Coke의 매출은 급격하게 추락하였다. 출시 몇일만에 New Coke는 코칼 콜라 최악의 실패작이 될 운명에 처한것이었다. 솔직히 나중에 이러한 이유들을 분석해보니 New Coke가 맛이 없어서 소비자들이 반대한게 아니라 신제품을 팔기 위해서 미국인들이 사랑하던 Coca-Cola 제품을 가판대에서 치워버림으로써 손상된 미국인들의 정서가 그 주된 이유였다. 어찌되었던간에 회사 절대절명의 위기 순간에 코카콜라의 경영진들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행동을 취하였다. 수조원의 연구개발과 마케팅 비용을 투자해서 만든 신제품 New Coke 출시 77일만에 그들은 미국 전역의 New Coke를 회수하는 동시에 New Coke 브랜드를 죽였다. Yes, 말 그대로 죽여버렸고 그 이후로 다시는 New Coke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Coca-Cola Classic이라는 브랜드로 원래 콜라를 부활시켜서 다시 슈퍼마켓 가판대로 돌려놓았다. 당시 코카 콜라 대표이사였던 Donald Keough씨는 미국 전역 공중파 TV에 나와서 미국인들한테 미안하다고 사죄하였으며, 코카 콜라 경영진들이 큰 실수를 범했다고 순순히 인정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좋은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하였다.

“우리는 정말 바보같이 큰 실수를 저지렀습니다. 그렇지만, 코카 콜라 경영진들은 고객의 목소리를 무시할만큼 병신은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고 Coca-Cola를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미국인들은 오리지날 코라콜라의 귀환을 대환영하였으며, 코카 콜라의 매출은 급등하여 그 해 기록갱신을 하였다. 그래서 몇몇 전문가들은 이 모든게 코카 콜라의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을까라는 의심도 하지만 설마 그정도로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을까…

25년 전에 코카 콜라의 경영진과 대표이사가 자존심과 쪽팔림을 무릅쓰고 TV에 나와서 본인들의 실수를 인정하였던거는 가오 살리기 바쁜 super-ego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한박자 쉬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살다보면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거는 그때마다 스스로의 실수를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다.”라는 좋은 교훈을 우리는 New Coke 마케팅 실패사건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아쉬운 사실이지만 오늘날 기업인들, 그리고 특히 정치인들한테는 실수를 인정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하다는걸 우리는 현재와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트렌드는 더욱 더 확고하게 전세계 구석구석에 바이러스 처럼 번지고 있다. 실수를 인정하는게 그렇게 어려운것일까? 나도 살면서 실수를 많이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실수는 사람을 죽이거나, 인간성을 배신하는 그러한 도덕적인 실수를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 순간적인 miscalculation으로 인한 실수 (주로 비즈니스적인)를 뜻한다. 실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이다. 어떠한 의도로 실수를 하였던간에 실수라는건 자신의 모자람과 그릇된 판단의 증거이자 산출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실수가 수만명의 직원들과 그 직원들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 회사의 중요한 전략에 관한것이라면, 아니면 더 나아가서 수천만명 국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국가 운명에 대한것이라면 빨리 실수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아직도 우리는 국민학생들도 이해할법한 이런 사실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거 같다.

아직도 계속 이슈화가 되고 있는 도요타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해프닝들과 (참고로 나도 피해자 중 한명이다. 얼마전에 렉서스 brake pad 교체하라는 안내장을 받은적이 있다) 일본 자동차 산업 사상 최악의 사태를 계속 follow 하면서 나는 도요타 자동차와 대표이사 Akio Toyoda씨한테 참으로 크게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이유로 인하였던간에, 그리고 그 결함의 크기에 상관없이 도요타 자동차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한거는 기정사실이다. 특히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는 자동차에서 이런 결함이 발생하였다면 그 회사의 대표이사와 경영진들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바로 그들을 믿고 제품을 사준 – 그것도 일이백원 하는 껌이 아닌 몇천만원씩 하는 고가의 자동차이다 – 고객들한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하는 것이다. 도요타같이 세계적인 회사에서 본인들의 실수를 순수히 인정하는거는 회사의 이미지와 일본의 얼굴에 먹칠하는거와 같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자존심 한번 죽이고, 가오 한번 죽이고 잘못을 인정하는게 과연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언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사건 발생 한참 후에 공중파를 통해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스미마쎙~”하는 도요다 사장의 모습과 얼굴을 보니 그 얼굴에 토라도 해주고 싶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나와 같은 사람은 이런 일들이 대기업의 PR과 매출에 얼만큼의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잘 이해 못해서 이런 발언을 한다고 욕해도 상관없다. 이건 분명히 아닌거 같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을 하는 순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나 그 잘못을 받아들이는 소비자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는것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 한화의 김승연 회장과 같은 기업인이나 이명박 대통령, 유인촌 장관과 같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도 25년전 코카 콜라의 경영진이 취하였던 행동으로부터 많은것을 배울 수 있는 자세를 지금이라도 조금씩 만들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못을 인정한다고 모든 잘못이 용서받을 수 있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잘못을 하고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속이고, 주위의 가족과 직원들과 고객을 속이는건 더더욱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면 본인들은 잠이 잘 올까?

Life and Rejections

며칠 전에 김수로 씨가 나온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를 다 봤다. 일본 만화가 원작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유치한 장면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다. 아마도 나도 한국의 수험생활을 경험하였고 나의 고3 경험을 계속 떠올리면서 그때 상황을 머릿속에 재연해서 더 재미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블로그를 보시는 모든 분은 아마도 인생의 한 시점에 대학 입학시험 (나랑 나이가 비슷한 분들은 학력고사를 보셨을 것이고, 더 어린 사람들은 수능을 봤을 거다)을 봤을 테고, 성적에 따라서 대학교를 갔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들이나 대학원생들도 있을 것이다. 머리도 좋고 운도 좋아서 한 번에 원하는 학교에 가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재수하거나 아니면 원하는 학교에는 못 들어가서 그냥 차선책으로 다른 학교에 가신 분들도 있을 거다.

실은 나도 그랬다. 나는 유럽에서 초등학교랑 중학교를 거의 다 마치고 중학교 3학년 끝날 무렵에 부모님을 따라서 다시 귀국했다. 일단 우리말도 서툴렀을뿐더러,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의 중/고 수학의 난이도는 세계 최고였다 (지금도 다르지는 않다). 외국에서 매일 축구랑 테니스만 하던 내가 하루에 20시간씩 공부만 하는 한국 토종 학생들을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솔직히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을 꼭 가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에 나는 고 2까지만 해도 전교 200등 밖의 최하위 성적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어떤 계기를 통해서 대학을 꼭 가야겠다는 결심을 고2 말에 하였고 고등학교 3학년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서울대는 아니고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중앙대학교가 어디 있는지도 그때는 몰랐다. 서울대나 연세대에 가고 싶었고, 그냥 1년 재수를 해볼까도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렇지만 1년 더 공부해서 성적을 확 올릴 자신도 없었고, 1년 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고생을 하는 거보다 좀 더 일찍 대학생활을 해서 뭔가 자신에게 변화를 빨리 주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대학 입학 결정을 하였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인생이 바뀌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중앙대학교 졸업 후 내 인생은 나쁘게 풀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 재수를 할지 말지, 생각지도 않았던 학교에 입학할지 말지에 대해서 고민할 때는 정말 많이 괴로웠고 내 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자신을 자책하였던 기억이 난다.

올가을 미국의 대학 신입생 수는 290만 명이 될거라고 한다. 합격 예상자 수가 290만명이면 불합격자 수는 그 이상일것인데 고3때는 대학 불합격 통지서만큼 stressful한 이벤트가 없는거 같다. 나도 그 나이때는 그랬었지만 가고 싶은 학교에서 뺀찌먹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억만장자들, 노벨 수상자들, 대학 총장들, 베스트셀러 작가들, 방송인들, 존경받는 비즈니스맨들 모두 다 인생의 한 시점에서는 이와 비슷한 불합격 경험을 가지고 있다. 워렌 버펫과 “Today” 쇼의 호스트 Meredith Vieira는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하버드 대학을 떨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워렌과 메레딧스를 있을수 있게 한 인생의 스승들을 예상치 못하였던 학교에서 만났다. 노벨 의학 수상자인 Harold Varmus는 하버드 의대에 2번이나 낙방하였고, 그 이후 군입대까지 권장받았다. 그는 차선책이었던 Columbia 의대에 진학하면서 스스로의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스승들과 환경을 비로서 찾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흔히 rejection이라고하는 대학입학불합격 통보는 상당히 흔한 현상이다. 하버드 대학교는 해마다 29,000명의 지원자들의 원서를 받지만 그 중 단지 7%만을 합격시키고 스탠포드 대학은 이보다 더 낮은 합격률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그 당시에는 하늘이 무너지고 인생이 끝날것만도 같았던 그 불합격 통지서로 인해서 전화위복이 된거 같습니다.”라고 버펫 회장은 말한다. “건강 악화를 제외하고는 인생에 있어서 일시적인 좌절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연명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거 같네요. 일시적인 좌절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현상이지 영구적인 실패가 아니라는걸 일찌감치 깨닫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이런 일시적인 좌절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걸 배우게 된거 같습니다.” 버펫 회장은 19살때 경험하였던 하버드 대학교 불합격 통지는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본인이 하고 싶은 분야와 성향은 하버드 대학과 잘 맞지 않았다고 생각되지만 하여튼 그 당시에는 무조건 하버드 대학을 입학해야만 하는 인생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시카고에서 진행되었던 하버드 대학 입학 인터뷰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때는 상당히 괴로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하버드 대학말고 대안을 찾던 중 그가 평소 존경하던 두명의 투자자들인 Benjamin Graham과 David Dodd가 Columbia 경영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그는 늦었지만 컬럼비아 대학에 지원을해서 막판에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오마하의 현자이자 우리 시대 최고의 투자자인 워렌 버펫 회장의 투자철학의 기본이 되는 핵심 원리들이 바로 이 두명의 선생님들로부터 배운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rejection은 Columbia 대학한테도 큰 횡재를 가져왔다. 버펫회장의 가족은 2008년도에 컬럼비아 대학교에 Susan Thompson Buffett 재단을 통해서 1,2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였다.

Columbia 대학 총장 Lee Bolllinger도 하버드 대학교로부터 뺀찌를 먹었다. 이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운명과 잠재력을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나아가야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시골에서 자랐던 Bollinger 총장은 자신보다 교육의 기회가 많은 친구들과 경쟁하려면 스스로 몇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한다는걸 어릴적부터 깨달았으며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는 진리를 이미 몸으로 배웠다고 한다. 그는 하버드 대학의 리젝션 편지를 받은 후 장학금을 받고 Oregon 대학에 입학하여 하버드 대학에 진학한 동기들보다 더 열심히 인생을 살았고 졸업 후에는 Columbia Law School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Today” 쇼의 진행자 Meredith Vieira씨도 1971년도에 하버드 대학에 원서를 냈다가 불합격 통지를 받은 사람 중 한명이다. 그녀는 하버드에 못간거에 대해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서 Tufts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신입생 기간 동안에는 주말마다 Tufts 대학에서 얼마 안 떨어진 하버드 대학 캠퍼스에 놀러가곤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Tufts에서 신문방송학의 대가를 만났고 그 교수를 통해서 방송분야로 입문을 하였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하버드대학에서 Meredith를 받아줬다면 아마도 우리는 오늘 이렇게 재미있는 “Today” 쇼를 즐기지 못할것이다.

유명한 앵커 Tom Brokaw 또한 하버드 대학 불합격 학생 중 한명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인생에서 실패라는걸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하버드 대학 불합격 통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잘나가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고 하고 그 이후로 술과 여자를 멀리하고 인생을 진지하게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 리젝션은 큰 쇼크였지만 저를 정신차리게 만든 큰 계기였죠.”라고 Tom은 그당시를 회상하면서 말한다.

뉴욕의 Memorial Sloan-Kettering 암 센터 연구소장이자 노벨 의학 수상자인 Harold Varmus 박사 또한 2년 연속 하버드 의대로부터 퇴짜를 먹고 심각한 충격에 휩싸여있었다. 첫번재 불합격 통보를 받은 그는 너무나 가고 싶었던 학교였기 때문에 의대를 포기하고 대신 문학 수업 몇개를 수강해서 듣기까지 했지만 역시 문학에 재미를 붙이지는 못했다. 1년 뒤 그는 다시 하버드 의대에 지원하였으며 또다시 불합격을 하였다. 입학 인터뷰에서 하버드 의대 총장은 그의 태도와 생각이 유치하고 일정하지 못해서 입학을 허락할 수 없다는 말을 하였고 그로부터 의대에 지원하지 말고 그냥 군대나 가라는 치욕적인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하버드 의대와는 달리 Columbia 의대의 교수들은 Varmus 박사의 과학과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관심을 높게 평가하였으며 입학을 허락하였다. Varmus 박사는 대학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한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보다는 나를 받아주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세요. 물론 내가 가고 싶은 학교가 나를 받아주는 학교면 금상첨화죠.”

Northwestern Mutual 보험회사의 대표이사인 John Schlifske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Yale 대학으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는 차선책으로 미네소타주에 있는 작은 Carleton College로 진학하였으며 거기서 생각지도 못하였던 우수한 교육을 받았고 Yale에 갔으면 만년 후보선수로 벤치에 앉아있어야하는 실력이었지만 Carleton에서는 항상 주전 선수로 미식 축구 경기를 하였다. “누군가 나를 원한다는 그 기분은 참으로 좋은 기분이죠. Carleton 대학이 나를 원하던 것처럼요.”라고 말을 한다. 이런 경험은 John의 아들한테까지 되물림 되었다. 2006년도에 John의 아들인 Dan이 가장 가고 싶었던 Duke 대학으로부터 리젝을 당했을때 그는 아들한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준다.”아들아, Duke 대학에서 No를 했다고 네가 갈 수 있는 다른 학교가 없다는건 아니지 않니. 너를 받아주고, 네가 좋은 교육을 받고, 4년을 즐길 수 있는 다른 학교에 가면 된단다.” Dan은 아버지의 충고를 받으들여서 Washington 대학에 진학하였으며 현재 너무너무 행복하게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예시로, 나 또한 하버드 경영 대학원으로부터 rejection을 먹은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2007년 가을 입학을 목표로 하버드, 스탠포드, 워튼, INSEAD, LBS 등등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들에 지원을 하였지만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는 딱 하나였다. 바로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는 Harvard Business School.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 대해서는 수많은 루머와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항간에 떠돌고 있다. 해마다 한국 학생들한테는 quota가 적게 주어진다니, 집안에 HBS 출신이 있어야만 입학한다니 또는 재벌집이나 정치인 자녀면 입학이 더 수월하다니…그런데 재수좋게도 나는 인터뷰 초청을 받았다. 평소 인터뷰라면 자신이 있었기에 드디어 나도 하버드 학생이 되는구나라고 혼자 좋아했었는데 아주 보기 좋게 ding 먹었을때는 역시나 대학입학때와 비슷하게 아주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나는 나머지 비즈니스 스쿨 중 워튼을 선택하였고 비록 졸업은 못해서 MBA 학위는 못 땄지만 UPenn에 간걸 매우 다행이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하버드 MBA에 갔다면 너무나 가고 싶었던 학교이기 때문에 졸업하는데 연연해서 지금쯤 이런 startup 생활보다는 월가에서 돈을 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워튼에 갔기 때문에 공부보다는 이런저런 딴짓을 많이 해서 지금 LA에서 뮤직쉐이크를 운영하고 있는걸지도 모르는걸 보면 나도 하버드 떨어진게 잘된일? (ㅋㅋ 그건 아닌거 같고, 오히려 하버드 갔으면 더 잘됐겠지…)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모두 하버드 대학에 떨어졌기 때문에 잘되었다는 말을 하는건 논리의 비약이다. 오히려 하버드 대학에 진학을 했다면 이 사람들은 오히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히 목표하였던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게 인생에 있어서 큰 자극제가 되었음에는 분명한 사실들인거 같다. 생각해보면 나도 서울대와 연고대 진학한 친구들보다 네임브랜드가 떨어지는 중대를 졸업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였던 면도 있는거 같으니까. 인생을 살다보면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진리이다. 실패할때마다 그냥 좋은 경험했다하고 다시 일어서서 아무일 없었던것처럼 새로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Don’t let rejections control your life. To allow other people’s assessment of you to determine your own self-assessment is a very big mistake.”

-Lee Bollinger, Columbia University President who was once rejected by Harvard University

The Superstar Effect

타이거 우즈가 드디어 돌아왔다. 5개월간의 공백을 깨고 2010년도 Masters 대회로 멋지게 복귀한 우즈의 컴백은 나와같은 우즈의 팬들은 두말할것 없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만, 그동안 호랑이 없는 숲에서 열심히 골프를 치던 동료 골프 선수들도 우즈의 복귀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만년 2인자 필 미켈슨 선수도 얼마전 인터뷰에서 “골프라는 운동은 나보다 뛰어난 상대와 같이 경쟁을 해야지만 performance가 더욱 더 향상됩니다.”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달리기 시합에서 혼자 뛸때보다 옆에 같이 뛰는 상대선수가 있을때 기록을 더욱 더 단축시킬 수 있다는 이론과 비슷한거 같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그럴까? (참고로 이 포스팅을 시작했을때는 마스터즈 대회가 진행 중이었지만 결과는 필 미켈슨의 우승으로 74회 마스터즈 대회가 막을 내렸다)

체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체스의 달인 Bobby Fischer 선수를 잘 알고 있을것이다. Fischer와 체스를 두었던 선수들은 하나같이 “Fischer 효과” 때문에 졌다고들 한다.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Fischer 효과란 바로 Fischer 선수와 체스 시합을 두면 상대방이 감기몸살 증상과 비슷한 통증을 호소한다는 점이다. Fischer 선수와 체스 시합을 두었던 동료 선수들은 하나같이 편두통, 갑작스러운 맥박상승 심지어는 식은땀과 같은 증상을 경험해서 평소 실력발휘를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Fischer의 가장 가까웠던 라이벌 Boris Spassky 선수는 “Bobby와 체스 시합을 두면 이기냐 지냐가 아니라, 생존 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Fischer 효과는 무서운 증상이었다고 한다.

Welcome to the world of Superstars. 최근들어 많은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효과를 우리는 슈퍼스타 효과라고한다. 운동이나 비즈니스나, 심지어는 학교에서도 경쟁 상대가 있다는건 부정적인 효과보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하는걸로 우리는 배워왔다. 혼자 하는거보다 본인과 실력이 비슷한 경쟁상대가 있으면 소위말하는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하는 모든 사람들이 평소보다 나은 실력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렇지만 명심해야하는 사실은 바로 이런 현상은 경쟁 상대들의 실력이 거의 비슷할때만 그렇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실력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면 우리는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냥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종종있다. 이게 바로 슈퍼스타 효과이다. 슈퍼스타 효과는 특히 현대 골프 시합에서 잘 관찰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타이거 우즈라는 천재 골퍼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우즈 선수는 PGA를 압도적으로 지배하였다. 타이거 우즈라는 이름 자체가 너무나 대단한 골퍼의 이미지를 떠오르게하기 때문에 우즈가 골프장에 있으면 그와 같이 치는 상대 골퍼들이 평소실력보다 훨씬 더 못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Kellogg 경영대학원의 응용 거시 경제학자인 Jennifer Brown은 그녀의 논문을 통해서 설명을 한다. 일단 우즈가 시합에 나오면 그의 팬들이나 심지어는 같이 경쟁하는 골퍼들조차 그가 우승할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같이 치는 골퍼들은 항상 지게 되있다고 한다. Brown 교수는 이러한 슈퍼스타 효과는 골프라는 운동에 국한되는게 아니라 일반 기업 또는 변호사 사무실 등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능력있는 사람들과 경쟁을 하면 본인도 평소보다 더 잘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타이거 우즈 선수를 자세히 분석해본 결과 저희가 보통 알고 있는 사실과는 180도 다른 결과가 생길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상대방이 운동선수던, 동료 변호사던, 사무실 옆에 있는 입사 동기던간에…결과는 뻔히 내가 지는건데 굳이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브라운 교수는 말한다.

Brown 교수는 1999년부터 2006년까지 개최되었던 PGA 골프 경기에 대한 모든 골프 선수들의 자료를 분석하면서 이러한 슈퍼스타 효과를 발견하였다. 다른 운동도 많은데 골프라는 운동을 브라운 교수가 선택한 이유는 첫째로 개인의 객관적인 능력에 기복을 줄 수 있는 team 역학이라는게 골프에는 없어서 객관적인 분석이 용이하였고, 둘째는 PGA만큼 완벽하게 과거 자료를 정리하고 관리하는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운동이나 직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타이거 우즈라는 명백한 1인자가 골프에는 오랫동안 존재하였다는것도 큰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숫자들을 분석해보니 역시 브라운 교수가 예상하였던 모든 가설들이 증명되었다. 작년 11월달에 타이거 우즈가 일시적인 휴식을 선언하였을 당시 우즈의 World Golf Ranking 스코어는 16.169였는데 이 숫자는 2위와 3위 선수들의 점수를 합한 숫자의 두배가 넘는 스코어이다. 현재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 어떤 골퍼보다 우즈는 메이저 대회 우승을 많이 하였으며 올해의 PGA 선수 상을 지금까지 무려 10번이나 받았다. 우즈 선수와 같이 골프를 치는 선수들은 평균적으로 0.8 스트로크를 더 많이 쳤으며, 골퍼들의 순위를 보여주는 리더보드에서 우즈 선수 이름에 가까이 있는 선수일수록 실력 발휘를 못한다는 객관적인 데이타를 브라운 교수는 찾을 수 있었다.

슈퍼스타 효과와 브라운 교수의 결과는 경제학적인 전문 용어로는 economic tournament 이론이라고 하는데 이 이론은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서 승자가 결정되기 보다는 서로에 대한 상대적인 실적에 의해서 결과가 매겨지는 상황에 많이 적용되는 경제학 이론이다. 현대 경영학에서는 직원들의 실력과 output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치 운동 경기와 같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걸 가장 잘 실천하였던 경영자는 GE의 Jack Welch씨였다. 그는 인사관리에 20-70-10 법칙을 적용하였는데, 실적이 가장 좋은 상위 20% 직원들은 크게 포상하지만 실적이 좋지 않은 하위 10% 직원들은 회사에서 짤라버리는 매우 극단적인 관리 방법이다. 아직도 나는 매우 효과적인 인사관리 정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merit 기반의 인센티브 제도는 직원들을 자극해서 능력의 110%를 발휘하게 하는데 효과적이라는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직원 중에 다른 직원 보다 훨등하게 머리가 좋거나 능력이 좋은 사람 – 타이거 우즈와 같은 슈퍼스타 – 이 있으며 이러한 시스템에 short가 생긴다. 즉, 아무리 노력을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니까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스스로 포기를 해버린다는 것이다.

슈퍼스타 효과는 이겼을때 받는 인센티브 구조가 비선형적일때 더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브라운 교수는 말을 한다. 즉, 1등은 1억원, 2등은 5천만원, 3등은 2천5백만원을 받는 선형적인 인센티브 구조가 아니라 1등만 1억원의 상금을 가져가는 비선형적인 인센티브 체제를 말한다 (“어차피 슈퍼스타가 이길텐데 뭐하러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냐”라는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게된다). 또다시 골프를 예로 들어보자. 몇일전에 끝난 마스터즈 대회를 보면 1등 필 미켈슨이 모든 상금과 명성을 가져갔다. 2등과 3등한테는 솔직히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비선형적인 인센티브 구조의 또다른 예는 law firm의 신참 변호사들간의 경쟁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신참 변호사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계속 law firm에 남아서 파트너로 승진을 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 퇴사해야하는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다들 비슷한 학교를 나오고 실력이 비슷하면 경쟁에서 이기려고 서로 바둥바둥 노력하지만, 남들보다 월등한 실력과 체력의 입사 동기가 있어서 누가봐도 이 사람이 law firm에 남을게 확실한 상황에서는 다른 신참 변호사들은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그냥 대충대충 일을 한다. 어차피 질게 뻔한 전쟁에서는 의미없는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변호사만큼 사리판단을 잘 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는거 같다. 결국 선의의 경쟁이 회사의 생산성을 더 높게 만든다는 이론과는 달리 슈퍼스타가 포함된 경쟁은 오히려 남들의 사기를 떨어뜨려서 전체적인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야기시킨다. 대학입학 시험을 치루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슈퍼스타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University of Michigan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 대학 입학 시험인 SAT 점수는 시험을 같이 보는 학생들의 수가 더 많을수록 평균 점수는 낮아진다고 한다. 아마도 시험보는 수험생 입장에서 시험당일 시험장에서 같이 시험보는 학생의 수가 많을수록 시험을 잘봐야하겠다는 동기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많은 학생들이 SAT를 보는데 내가 무슨 수로 높은 점수를 받아서 하버드 대학에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을 무의식 중에서 모두 하고 있는 것이다.

타이거 우즈 선수의 경기로 다시 돌아와보자. 우즈와 같은 슈퍼스타와 같이 경기를 하면 어차피 못이기니까 열심히하고 싶어하는 motivation 자체가 줄어드는 효과도 발생하지만, 이와 완전히 반대인 또다른 슈퍼스타 효과는 바로 평소보다 훨씬 더 잘 하려고 해서 불필요한 실수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타이거 우즈가 코스위에 있는 존재감 자체가 다른 선수들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드는데, 우즈를 이기려면 아주 완벽한 게임을 해야한다는걸 모두가 알고 있으며 모든 미디어가 우즈 선수한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못치면 전국구 방송에서 엄청나게 쪽팔릴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무의식 중에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하던 스윙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고, 잘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잡생각을 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몸과 마음이 따로노는 상당히 바람직하지 못한 경기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우즈와 같은 슈퍼스타와 같이 경기를 하면 스스로의 경기내용을 슈퍼스타급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하는데 이와 반대로 상대가 타이거 우즈라는 압박과 중압감 때문에 마치 아마추어 골프 선수와 같은 mentality를 갖게되고 경기 결과도 아마추어틱하게 된다는 말이다.

시카고 대학 심리학과 Sian Beilock 교수도 이런 슈퍼스타 효과에 대한 많은 실험을 하는데 한번은 승부심이 매우 강한 학생들한테 어려운 수학 문제를 내면서 먼저 푸는 사람들한테 현금을 상금으로 걸었고, 상대적으로 승부근성이 약한 다른 부류의 학생들한테는 똑같은 문제를 주면서 그냥 최선을 다해서 풀어보라고 하였다. 결과는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푼 학생들이 월등하게 많은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Beilock 교수에 의하면 “시합”이라는 단어로 인한 불안감이 정신적/육체적 자원을 쓸데없이 많이 소모해서 그냥 relax한 상태에서 문제를 푸는 학생들보다 더 좋지 못한 결과를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할수록, 더욱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는거죠.”라고 그녀는 말한다. 슈퍼스타와 경쟁을 하면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평소실력조차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나보다 실력이 월등한 사람을 보면 볼수록 나 스스로의 미약함을 인식하게 되어서 평소 보다 더 좋지 않은 performance가 나온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시험을 볼때는 교실 맨 앞에 앉아서 시험을 보는게 좋다고 한다. 맨 뒤에 앉으면 앞에 앉은 동료들과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비교하게 된다고 한다.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 비즈니스의 잭 웰치, 야구의 베이브 루스, 농구의 마이클 조던,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 골프의 타이거 우즈…이런 사람들이 바로 같이 있다는 존재감만으로도 상대방을 압도하고 긴장시키는 진정한 슈퍼스타들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이러한 슈퍼스타들의 독주에 종지부를 찍을 새로운 슈퍼 슈퍼스타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복싱의 플로이드 메이웨더, 비즈니스의 스티브 잡스, 야구의 알렉스 로드리게즈, 농구의 코비 브라이언트, 테니스의 라파엘 나달이 바로 기존의 슈퍼스타들을 제치고 급부상하고 있는 슈퍼 슈퍼스타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몇년 후에는 또다른 뉴페이스들이 나타날것임이 분명한걸 보면 항상 뛰는놈 위에는 나는놈이 있다는 말이 맞는거 같다.

Anyways, 말이 또 조금 다른 곳으로 빠지려고 하는거 같은데….선의의 경쟁 심리를 이용해서 직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려고 한다면 HR 담당자들은 반드시 이러한 슈퍼스타 효과가 고려된 정책을 만들어야한다. 특 A급 인재를 영입해서 나머지 직원들을 자극하려다가 오히려 B급 인재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팀보다 더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불행하면서 실적도 저조한 직원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회사로 타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의 다른 면 – Quant의 세계

1994년 Salomon Brothers의 부회장이자 채권 트레이딩을 담당하고 있던 월가의 파워트레이더 John Meriwether는 수십억의 연봉을 받던 직장을 그만두고 LTCM (Long Term Capital Management)이라는 헤지펀드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의 이사회에는 1997년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Myron Scholes와 Robert C. Merton을 비롯한 수학과 경제학의 내노라하는 천재들이 합류되어 있었다. LTCM은 그당시 일반 헤지펀드와는 두가지 면에서 달랐는데 하나는 서로 다른 시장에서의 가격 차이를 통해서 돈을 버는 arbitrage라는 전략을 매우 교묘하게 잘 활용하였다는 점 – fixed income arbitrage, statistical arbitrage 등등 – 과 두번째는 트레이딩 floor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트레이더들의 기술과 경험보다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한 거래를 무기로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LTCM은 설립 후 몇년 동안은 해마다 40%라는 믿지못할 수익율을 생성해서 모든 금융인들과 투자자의 선망대상이 되었지만 1998년도 러시아 경제 붕괴 이후 4개월만에 46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실액을 발생시켜 월가 전체와 더 나아가서는 세계 경제의 붕괴까지 위협하는 큰 경제 위기를 초래하기까지 하였다. 미 연방은행과 다른 은행들의 컨소시엄에 의해 마지막 순간에 구제를 받았지만 2000년도 초에 LTCM은 공식적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금융권에서는 얼마나 큰 사건이었냐하면 이 사건을 매우 디테일하게 다룬 “When Genius Failed”라는 베스트셀러 책까지 출간되었고, 헤지 펀드 바닥에서 LTCM은 인간의 무모한 욕심과 과다한 부채를 이용하여 회사를 운영하여 망한 대표적인 펀드의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 나도 몇번이나 When Genius Failed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때마다 참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은 LTCM이 타 헤지펀드와 달랐던 두번째 이유 – 기계와 알고리즘에 기반한 트레이딩 방식 – 에 대해서 몇자 적어보려고 한다. 1982년도에 수학자이자 미소 냉전시대의 특급 암호해독가였던 James Simons는 Renaissance Technologies LLC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Simons는 천재적인 머리와 그동안의 경험을 이용하여 그당시만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수학적 모델과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시장의 행동과 방향을 예측하는 새로운 트레이딩 방법을 선구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후에 이러한 정량적인 (quantitative) 방법을 이용하여 시장을 예측하는 헤지펀드들이 하나둘씩 생겼는데 D.E.Shaw Group, AQR Capital Management와 Citadel Investment Group이 소위 quant라고 말하는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헤지펀드들이다. Amazon.com의 창업자 Jeff Bezos도 실은 D.E. Shaw Group 출신이고 나도 2000년도 스탠포드 대학원을 졸업할때 Shaw Group과 인터뷰를 하였던게 기억난다. 정말 보기좋게 떨어졌는데 맥킨지의 case interview를 무슨 애들 장난같아 보이게 만들 정도로 어렵고 brain power가 상당히 많이 필요하는 질문들을 받고 똥줄 탔던 기억이 난다^^. Quant 펀드들의 트레이딩은 100% 자동화되어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사람의 생각이나 의사결정의 개입이 전혀 없이 트레이딩이 기계적으로 이루어 진다는 말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에 의해서 프로그램된 컴퓨터들이 정해진 방식과 정해진 시점에 여러가지 자산을 사고 팔면서 과거 몇십년 동안 축적된 데이타와 현재의 시장 패턴을 지속적으로 비교하면서 그때그때 순간적인 결정이 만들어지게 된다.

Simons는 Renaissance의 대표적인 펀드인 Medallion을 통해서 부와 명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Medallion은 1988년도에 만들어진 펀드로써 지금까지 해마다 평균 45%의 return을 생성하였으며, 1999년 1사분기에 0.5%의 손실이 1995년 이후 손실을 냈던 유일한 시기인 엄청나게 수익성이 높은 펀드이다. 이 숫자들을 한번 자세히 보면 Medallion의 return은 워렌 버펫의 년평균 20% return을 능가하는 놀라운 숫자들이다. Medallion 펀드의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품목들의 가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서, 미국의 대표적인 기름 주식인 Exxon Mobil과 Chevron 사의 주가는 역사적으로 비슷하게 움직이고 하나가 떨어지면 다른 하나가 떨어지고, 올라가면 같이 올라가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두 회사의 주가 공히 기름 생산량과 유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에 Exxon의 주가가 상승하는데 Chevron의 주가는 그만큼 올라가지 않는다면, Medallion 펀드는 Chevron 주식을 구매하고 Exxon 주식은 short (short가 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설명하기에는 좀 길어질거 같아서 각자 조사 해보길 권장한다)를 해서 비슷한 종목들의 주가가 궁극적으로는 한 방향으로 모여서 돈을 벌 수 있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물론, 기본적인 이론이 이렇다는것이고 실제로 이 프로그램들을 뜯어보면 상당히 복잡하게 되어 있다. 단순한 가격 뿐만이 아니라 주가와 주식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백만가지 외부 요소들을 고려해서 행동을 취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전략이다. “잡음 투성이인 시장에서 눈에 잘 안보이는 숨어있는 행동 패턴들을 찾아서 예측할 수 있도록 우리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시적인 현상이 수초, 수분 또는 수일동안 평형을 이룰때 사거나 파는거죠.”라고 Renaissance의 어떤 연구원이 말한다.

Renaissance는 빨리 사고 빨리 파는걸로 매우 유명하다. 주로 주식이나 선물 계약을 몇 분 동안만 보유하고 있으며, 어쩔때는 몇 초만에 사고 파는걸로 유명하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몇 주 동안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자동화된 트레이딩을 가능케 하는 회사의 컴퓨터 서버에 Renaissance 직원들은 Laddersnake, Howler3와 Neon과 같은 독특한 이름을 지어주는데 르네상스에는 테니스장만한 방 3개가 컴퓨터 서버로 가득 차 있다. 바로 이 서버들에서 발생되는 마력에 의해서 회사의 전체 트레이딩이 관리되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300명 가량되는 직원 중에는 과학, 수학, 공학 (전 포스팅에서 말한 STEM 교육 전공자들이다 ㅎㅎ) 박사들이 약 90명이나 있다. 이 중에는 인공 지능이나 양자물리학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학문의 전문가들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거의 모든 트레이딩이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 회사는 특별히 trading floor가 없다. 모든 직원들이 실리콘 밸리의 IT 회사와 같이 개별 방에서 일하고, 강의실이나 회사의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있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르네상스의 정신적인 지주인 James Simons씨가 이제 곧 은퇴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전설적인 quant geek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아서 르네상스의 이미지와 return을 유지해야하는 의무는 이제 이 회사의 새로운 공동대표이사들인 Bob Mercer와 Peter Brown 씨이다. Simons씨도 언론을 피하기로 유명하지만 워낙 잘나가는 사람이라서 금융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지만 Mercer와 Brown씨는 금융업계 사람들 조차 이름을 잘 모르는 르네상스의 2인자들이다. 헤지펀드와 같이 작지만 큰돈을 주무르는 비즈니스의 특징은 바로 창업자가 회사를 떠나면 얼마 안되어서 펀드의 수익률이 극적으로 떨어져서 closing 된다는 것이다. 물론 조지 소로스와 같은 사람들은 후계자 양성을 수년전부터 계획해서 Soros Fund Management LLC는 현재 소로스 회장이 관리할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Arthur Samberg가 창업한 Pequot Capital Management나 Julian Robertson Jr.의 Tiger Management는 창업자들이 은퇴하자마자 타락의 길을 걸었던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르네상스의 Simons 또한 후계자 물색 작업을 일찌감치 시작하였으며 컴퓨터와 음성인식 기술의 전문가인 Mercer와 Brown씨를 공동대표이사로 임명한거는 르네상스 내부에서는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물론 은퇴 후에도 Simons는 회장직을 맡을 계획이지만 수학교육 및 자폐증 퇴치를 위한 자선사업에 더 많은 시간과 재산을 할애할것이라고 발표하였다.

Bob Mercer (63세) 와 Peter Brown (55세)은 1980년대부터 IBM에서 같이 일을 하던 동료들이다. 둘다 음성 인식 기술의 대가였고 오늘날 IBM 연구소의 모든 음성인식 기술 기반의 소프트웨어는 이 두명의 머리에서 나온것이라고들 한다. Brown씨는 카네기멜론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매우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Mercer 씨는 혼자 사색을 많이 하며 직원들과 거의 말수를 교환하지 않는걸로 유명하다. Mercer씨는 취미생활로 자택 지하에서 대형 모형 기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걸 즐기는데 “나는 누구한테도 말을 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만족합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한다. IBM에서 이들의 업무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음성 인식 기술을 향상시키거나 자동 통/번역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는거였으며, 주식시장이나 투자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1993년도 미 국방성에서 암호해독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하였던 당시 르네상스 연구원인 Nick Patterson씨가 이들한테 연락을 해서 혹시 르네상스에서 같이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시장의 행동을 예측하는 방법과 음성 인식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기술적으로 매우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걸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두 전문가들을 채용하고 싶었습니다.”라고 Patterson 씨는 당시 상황을 회상한다. Brown씨는 르네상스에서 보낸 초청장을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Mercer씨는 궁금해서 르네상스 본사를 방문하였고, 평생 자신이 공부한 기술과 학문이 주식 시장에 활용될 수 있다는 재미있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IBM으로 다시 돌아온 후부터 계속 Brown씨를 꼬드겼으며 결국에는 설득에 성공하여 이 2명의 천재들은 IBM 연구소를 박차고 월가로 진출하였다. 르네상스 직원이 된 후에 Mercer씨가 매니저였던 Henry Laufer한테 르네상스의 퇴직금 제도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을때 돌아온 대답은,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서 은퇴하는게 우리의 제도입니다.”라고 한다.

이들이 입사하기 얼마전에 르네상스는 모간스탠리의 수학자 Robert Frey씨가 창업한 컴퓨터 기반의 주식 트레이딩 회사를 인수하여서 Nova라는 이름으로 운영하였는데, 1993년도 Mercer와 Brown이 르네상스에 입사할 당시 Nova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입사하자마자 두명은 첫번째 프로젝트로 Nova를 개선할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당시 두명은 한 아파트에 살면서 밤을 세우면서 프로젝트에 매달렸으며 그 결과 Nova의 트레이딩 모델을 상당히 향상시킬 수 있었다. 큰 문제점들을 해결하였고, 사람의 개입이 거의 필요없이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선하여 르네상스 내부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가 된 Nova는 1997년도 Medallion 펀드로 융합되었다. Nova 프로젝트가 크게 성공하자 Mercer와 Brown의 회사 내부 입지는 상당히 탄탄해졌으며, 이미 많은 동료들이 이 두명 중 한명이 미래에는 르네상스를 이끌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모두가 다 이 두명을 달갑게 봤던거는 아니며 기존 수구 세력들은 본인들이 더 똑똑하고 능력있다는걸 증명해보이기 위해서 새로운 수학적 모델과 트레이딩 모델을 만들어봤지만 Mercer와 Brown 만든 모델 기반의 결과들이 우수하다는게 매번 증명되었다.

2002년도에 치즈버거 점심을 먹으면서 Simons는 Brown씨한테 본인의 후계자 계획을 밝혔다. “Brown씨와 Mercer씨가 앞으로 우리 회사를 맡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Simons는 말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 르네상스에는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가 발생하면서 정식 후계자 수업과 후계자 발표가 계속 delay되었다. 그 중 가장 새로운 프로젝트는 바로 외부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었던 펀드 설립이었다. 2005년도에 Simons는 기존의 Medallion 펀드와는 다른 투자 방식을 도입하는 Renaissance Institutional Equities Fund (RIEF)를 설립하였다. RIEF는 미국 증시에서 거래되는 주식만을 사고팔며, 장기적인 타임라인을 두고 3년이라는 기간 동안 S&P; 지수보다 특정 % 이상 만큼의 수익을 생성하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탄생하였으며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외부 투자자들을 모집하였다. 이미 Simons의 명성과 Renaissance의 수익률을 익히 알고 있는 외부 투자자들이 줄을 서서 돈을 붇기 시작하였으며, 2007년도에는 회사는 선물거래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또다른 외부 투자자 펀드인 Renaissance Institutional Futures Fund (RIFF)를 설립하였다. RIEF와 RIFF 투자자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르네상스는 월가의 브로커들을 마케팅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Medallion 펀드의 성공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이 펀드에서 사용되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이 적용된 RIEF와 RIFF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라고 돈많은 부자들을 꼬드겼다. 하지만, 그해 8월부터 금융 위기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아무리 컴퓨터의 힘을 빌리는 르네상스의 펀드들이지만 경기의 타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Simons, Mercer와 Brown씨는 밤마다 르네상스 본사 회의실에 모여서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해야할지에 대한 회의를 하였으며, 전체적인 회사의 트레이딩을 줄이기로 결정하였다. 덕분에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던 주식시장에도 불구하고 2008년도에 Medallion 펀드는 80%의 수익을 기록하였다. 그렇지만 단기성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 Medallion과는 달리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운영되는 새로운 펀드들의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2개 외부 펀드 중 더 규모가 큰 RIEF는 16%의 손실을 생성하였다. 물론 전체적인 시장의 성적보다는 훨씬 양호한 숫자였지만 Medallion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이러한 return에 대해서 투자자들은 불평하기 시작하였으며 몇몇 투자자들은 돈을 회수하기까지 하였다.

Mercer와 Brown 공동 대표는 시장의 변화에 따라서 르네상스의 전략을 완전히 바꿀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외부 투자자들한테 열려있는 2개의 펀드인 RIEF와 RIFF를 중단해야할 필요는 있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2007년도에 이 두 펀드의 크기는 약 300억 달러였지만 그동안의 좋지않은 실적으로 인해서 많은 투자자들이 돈을 회수하였으며 펀드 자체의 손실을 감안한 현재 자산의 합은 60억 달러로 많이 감소한 상황이다. 만약 이 두 펀드를 닫는다면 르네상스는 외부 투자자들한테는 접근이 불가능한 100억 달러짜리 Medallion 펀드만을 운영하게 되는 셈이다. Medallion은 주로 내부 투자자들 – 즉, 르네상스 직원 및 직원들 식구들 – 로만 구성되어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quant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Simons와 Renaissance Technologies의 행로와 움직임에 현재 월가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비록 나는 지금 MBA를 중간에 그만 두고 스타트업에 몸을 담고 있지만 한때는 (그리고 너무 늙기전에 언젠가는 한번 해보고도 싶다) 월가에서 학교에서 배운 금융관련 기술을 사용해서 수백억원의 연봉과 보너스를 받는 직장 생활을 꿈꿔온 적이 있다. Greenwich에는 큰 저택을 소유하고, East Hampton에는 휴가용 별장을 가지고 있으며 Central Park를 바라보고 있는 사무실로 브리오니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뉴요커 직장 생활을 한때는 동경하던 사람 중 한명으로써 Renaissance와 같은 회사의 이야기는 참으로 재미있다. 나랑 같이 스탠포드를 졸업한 기계공학과 박사 선배들이 (나는 입학을 기계공학으로 하였지만, 중간에 과를 바꾸었다) 자동차 회사나 전자제품 회사로 취직하지 않고 월가로 간다고 할때 상당히 의아해하였던게 기억난다. 그것도 이름이라도 들어본 Goldman Sachs나 JP Morgan이면 모르겠지만 컴퓨터를 이용하여 트레이딩을 하는 Renaissance Technologies라는 회사라고 하면?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기계공학의 학문 중 하나인 유체역학이 (유체의 성질과 운동을 공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문. 비행기, 자동차, 배를 만드는데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학문이다) 월가에서 돈의 흐름을 분석하고 예측하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즉, 물과 같은 유체가 움직이는 성향과 돈이 움직이는 성향이 같다고나 할까 ㅎㅎ. 그 당시만해도 그냥 농담인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틀린말은 아닌것도 같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같이 근무하던 직장 동료가 알스퀘어라는 한국의 신생 quant 펀드로 이직하였다고 하는데 이와같은 한국 토종 quant 펀드의 수익률은 얼마나 좋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iPad FAQs


1박 2일의 짧은 실리콘 밸리 출장을 마치고 어제 밤에 다시 LA로 돌아왔다. YouTube와 미팅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열렸던 Stanford CPX (Cool Product Expo) 행사 참석차 갔었던 출장인데 두 행사 모두 의미있고 생산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출장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드디어 소문으로만 듣던 iPad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봤다는 것이다. 솔직히 지난 3주 동안 내 친구들의 Facebook 벽과 트위트들의 85%가 iPad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참고로 나머지 10%는 iPhone 내용 그리고 5%만이 개인적인 내용이었다 (아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인생 정말 우울하네 ㅋㅋ). 역시 잡스 형님과 애플은 이번에도 물건을 하나 내놓았다. iPad가 iPhone과 같은 히트가 될지에 대해서는 내 개인적인 의견들이 있지만 나중에 쪽팔릴까봐 그냥 여기에 나열하지는 않도록 하겠다. 하지만 아주 멋지고 cool한 제품임에는 틀림없어서 오늘 우리도 office 용으로 하나 구입해서 오후 내내 낼모레면 40인 남자 3명이서 이것저거서 해보면서 놀았는데 시간 가는줄을 모르겠더라.

확실한 숫자는 없지만 지금까지 iPad가 약 30만 ~ 50만개가 팔렸을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대부분 technology enthusiast (early adopter라고도 한다) 들일 거다. 과연 mainstream 고객들도 iPad를 구매할지는 조금 더 두고봐야하겠지만 벌써부터 iPad에 대한 질문들의 봇물이 터지고 있다. 오늘 Wall Street Journal의 tech 전문가 Walter Mossberg 형님이 iPad에 대한 가장 흔한 질문들과 그 답변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는데 아직 한국에는 iPad 구매가 불가능하지만 technology enthusiast 분들을 위해서 여기서 소개를 한다.

1. iPad에서 출력을 할 수 있나요?
iPad로부터 바로 출력을 할 수 있게 하는 메뉴를 애플에서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출력” 버튼을 눌러서 사진이나 이메일을 프린트 할 수는 없지만 이미 App Store에는 네트워크 프린터를 통해서 다양한 자료와 문서를 출력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을 여러 개발사들이 등록해놓았습니다. 그 중 제가 $5 주고 구매해서 사용해본 프로그램이 Print Online인데 꽤 잘 작동합니다. 그래도 기본빵으로 built-in된 프린트 기능을 대체할 정도로 간단하지가 않네요.

2. iPad에는 USB 포트가 없는데 외부 파일들을 아이패드로 어떻게 옮길 수 있나요?
iPhone과 iPod Touch와 같이 iPad도 Apple connector 포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iPad를 구매하면 기본적으로 PC나 Mac의 USB 포트와 iPad를 연결할 수 있는 케이블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이 케이블을 이용해서 iTunes와 iPad를 싱크하면 노래, 사진, 동영상, 연락처, 앱 등등의 컨텐츠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최신 버전 iTunes 기능 중에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문서와 같은 document를 PC나 Mac으로부터 iPad로 옮길 수 있는 기능들이 있는데 이 기능을 사용하려면 iPad에 몇가지 문서 편집 프로그램을 깔아야만 합니다. 대부분 유료 프로그램인데 대표적인 문서 편집 프로그램은 애플사의 워드, 스프레드쉬트, 프레젠테이션 편집 프로그램입니다. 참고로 $10입니다. 또한, 반대방향인 iPad에서 문서들을 PC나 Mac으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몇몇 문서들은 무선으로 iPad로 다운받을 수 있는데 이메일 첨부나 웹에서 다운로드 받는 문서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친구가 워드 문서를 이메일에 첨부해서 보내주고, Apple의 Page 워드프로세서가 깔려있다면 첨부 문서를 저장해서 편집이 가능합니다. 편집 후에는 Page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곧 바로 다시 이메일로 친구한테 보낼 수 있습니다.

3. 터치스크린 가상 키보드말고 iPad에 효과적으로 타이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여러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Apple에서 $39에 파는 케이스가 있는데 이 케이스를 이용하면 iPad를 타이핑하기 아주 편리한 각도로 고정해놓고 타이핑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볼때도 두순으로 잡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69 짜리 키보드+도크도 훌륭한 악세사리이며 $69짜리 Mac용 무선 키보드도 iPad와 호환이 가능합니다.

4. iPad에서 Windows나 Mac용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나요?
No. 별도의 iPad용 프로그램을 제조사에서 공급을 해야만 가능합니다. iPad는 Mac OS나 Windows OS를 운영 체제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default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iPhone OS를 운용체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iPhone App들만 현재 호환 가능합니다. 몇몇 앱들은 iPad를 이용해서 remote로 PC나 Mac을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데 이거는 iPad에 이러한 프로그램을 직접 깔아서 사용하는거랑은 많이 다르죠.

5. iPad도 iPhone과 비슷하게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이게 사실인가요?
일단 한가지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갑시다. iPad와 iPhone 둘다 공히 기술적으로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합니다. 즉, 한번에 하나 이상의 프로그램을 돌리는게 시스템적으로는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Apple이 선택한 방법은 Apple 고유의 프로그램 몇개만 멀티태스킹이 가능케 하였고 외주업체들이 만든 앱들의 멀티태스킹은 현재 disable해 놓았습니다. 가령, iPad로 동영상을 보는 도중에도 built-in 이메일 프로그램으로 이메일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멀티태스킹이 된다는 말이죠. 저도 개인적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멀티태스킹이 되었으면 하는데 그건 스티브 잡스 회장이 언젠가는 가능케 하겠죠.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Pandora 앱을 이용해서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면서 트위터 포스트들을 계속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면 인생이 훨씬 더 생산적이 될텐데요.

6. iPad 배터리는 어떻게 교환하죠?
유저가 직접 배터리를 교체할 수는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107을 지불하면 애플에서 완전히 새로운 배터리가 들어간 새로운 iPad로 일주일 안으로 대체해줍니다 ($107에는 운송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안좋은 점은 iPad안에 있던 기존의 모든 data가 날라가기 때문에 iPad를 교체받기 전에 모든 data를 백업해놓아야하는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