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ings Digital – Mark Zuckerberg편

Mark Zuckerberg, CEO of Facebook – Getting Personal. But Too Personal?
2004년 하버드 대학 재학 시절, Mark Zuckerberg는 기숙사에서 Facebook 이라는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창업하였다. 6년만에 Facebook은 전세계 5억명의 유저들이 매일 활발하게 사용하는 거대한 서비스로 진화하였으며 현재 private 시장에서 대략 3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밸류에이션에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Facebook이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특히 최근에 privacy 정책때문에 도마위에 올라가 있는 Facebook과 어린 CEO Mark Zuckerberg를 WSJ의 Walt Mossberg와 Kara Swisher가 단독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다.

Mossberg: Facebook의 개념 자체가 폐쇄된 네트워크 – 싸이월드의 1촌 개념과 같이 친구가 아니면 상대방의 정보를 100% 접근할 수가 없다 – 라는건 저도 이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 정보가 친구들한테 공개되는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최근에 유저들이 느끼는점들은 사용자가 수동적으로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너무나 많은 개인정보가 Facebook 네트워크상에서 공유된다는 점인데 이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Zuckerberg: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는 서비스인만큼 개개인의 privacy는 우리한테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Facebook의 privacy에 대한 정책과 시스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거 같은데 제가 몇가지 예를 통해서 이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Facebook을 전세계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용도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친구들 및 지인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기 위해서 애용하고 있습니다. 가령, 휴가를 다녀와서 가족들과 찍은 사진들은 몇몇 아주 친한 친구들과 가족들이랑만 공유하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다양한 setting을 바꾸면 됩니다. 이런 경우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미 나랑 친구맺기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 사진을 공유하는거니까요. 그런데, 이와는 달리 아직 Facebook상에서 친구는 아니지만 나랑 관계가 있는 사람을 찾고싶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회사 제품개발 담당자는 Chris Cox라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미국에만 Chris Cox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백만명 이상될거예요. 그런데 제가 Facebook에 들어와서 우리회사 동료인 Chris Cox를 찾으려면 – 친구가 이미 안되어 있는 상황에서 – 단순한 이름외에 뭔가 다른 정보가 공개되어야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령, Facebook이라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고, 고향은 어디이며 등등…즉, 이런 경우에는 Chris Cox도 자신의 지인들이 본인을 찾을 수 있도록 이러한 기본적인 정보는 기본적으로 공개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겁니다.
아마도 이러한 사례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Facebook은 개인 신상 정보를 너무 많이 공개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고 틀린 사실들입니다. 친구들과 지인들이랑만 공유해야하는 성격의 정보가 있는가하면, 조금은 더 open하게 모든 사람들한테 공개해야하는 성격의 정보가 존재한다고 저는 생각하며 Facebook은 바로 이런 기능들을 조금 더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손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과 투자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우리는 유저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러한 privacy setting을 적용하였는데 많은 사용자들이 이거는 너무 복잡하고 오바인거 같다는 피드백을 제공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유저들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모든 정보의 privacy setting을 손쉽게 수정할 수 있는 main setting을 만들었는데 아마도 이게 다시 도마위에 올라와 있는거 같네요.
Mossberg: “Social graph”라는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Zuckerberg: Social graph의 개념은 나 자신과 이 세상 다른 사람들간의 관계를 visual하게 표현해본 일종의 지도이자 도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러한 추상적인 관계가 도표로써 정량화가 된다면 Facebook 자체 서비스나 Facebook에서 사용할 수 있는 타 서비스를 통해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조금 더 재미있고 의미있게 제공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Mossberg: 재미있는데, social graph를 가지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Zuckerberg: 한가지 방법은 광고입니다. Social graph를 잘만 활용한다면 지금까지의 그 어떤 광고 서비스보다 개개인한테 특화된 광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Social graph 상에서는 누구를 알고, 누구와 무엇을 하며, 본인과 친구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가 매우 정확하게 파악될 수 있으니까요. 가령 지금 우리가 스타벅스와 같이 진행하는 캠페인을 예로 든다면, 나만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내 지인 중 누가 스타벅스를 좋아하는지 파악되기 때문에 내가 스타벅스의 광고를 본다면 나는 내 주위의 친구들 중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도 이 광고에 대해서 말을 할 확률이 매우 높아지죠.
Swisher: Facebook의 경쟁사는?
Zuckerberg: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모바일쪽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1년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플랫폼들이 새로 생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Facebook의 경쟁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흥업체가 될 확률이 높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실체가 없는 경쟁자에 신경쓰는거보다는 우리는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 일들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게 맞다고 생각됩니다.

Mark Zuckerberg – 그는 나보다 10년이나 어린 대단한 천재이다.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올해나 내년에 Facebook이 나스닥에 상장을 한다면 그는 하룻밤 사이에 역대 최연소 억만장자가 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마찬가지로 내 주위에는 Mark Zuckerberg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몇명 있다. 이들의 마크에 대한 평은 비즈니스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David Kirkpatrick이 쓴 “The Facebook Effect”라는 책 – 아직 한국에서는 판매되지 않지만 곧 출간될거다. 나랑 친한 스탠포드 후배가 번역을 하였다 – 을 보면 Facebook과 Mark Zuckerberg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과 이야기들로 재미있게 구성되어져 있는데 물론 책이라는게 어느정도 과장이 가미되어 있겠지만 그런점을 감안하고 읽어봐도 새파랗게 젊었던 (물론 아직도 새파랗게 젊다) 하버드 학부생이 어떤 과정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세계적인 기업의 CEO로써의 자질을 갖추면서 발전할 수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보는 Facebook은 친구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social networking 서비스이지만, Mark가 보는 Facebook은 세상이 communicate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근간이자 ultimate destination 이다. 나보다 10살 어린 친구의 생각치고는 꽤 괜찮고 근사한 비전인거 같다.

참고로, Facebook의 성장과 함께 성장해온 private 시장에서의 밸류에이션은 다음과 같다:

2004년 6월: 1,000만 달러 – 외부 투자자들이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겠다고 오퍼를 줌
2004년 가을:490만 달러 – Peter Thiel (The Founders Fund)이 회사 지분 10.2%에 50만 달러를 투자
2005년 3월: 7,500만 달러 – Viacom이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힘
2005년 4월: 9,800만 달러 – Accel Partners가 회사 지분 15%에 1,270만 달러 투자
2006년 4월: 5억5,000만 달러 – Greylock Partners가 275만 달러 투자
2006년 봄: 15억 달러 – Viacom이 8억달러 현금을 포함하여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힘
2006년 7월: 10억 달러 – 야후가 10억달러를 현금으로 주고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힘
2007년 10월: 150억 달러 – 마이크로소프트가 회사 지분 1.6%에 2억4천만 달러 투자
2008년 5월: 100억 달러 – Digital Sky Technologies가 회사 지분 1.96%에 2억 달러 투자
2010년 4월: 240억 달러 – Facebook의 주가가 private 시장에서 아주 급격하게 상승함

All Things Digital – Steve Jobs편

Wall Street Journal이 주최하는 tech관련 conference인 D:All Things Digital이 올해로 8살이 되었다. 올해는 LA 근교 태평양에 인접한 부촌이자 휴양지인 Rancho Palos Verdes에서 이 행사가 열렸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였던 그 어떤 conference보다 재미있는 주제들과 카리스마있는 스피커들로 구성되어서 눈, 귀와 머리가 참으로 즐거웠던 내용들로 알차게 구성되었던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WSJ의 tech 컬럼니스트인 Walt Mossberg와 Kara Swisher가 현재 IT 업계를 lead하고 있는 회사들의 CEO들과 일대일로 진행한 인터뷰들은 현재 산업 동향에 대한 이해 및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내용들이라고 생각되어서 여기서 시간날때 하나씩 공유하도록 하겠다.

올해의 큰 주제는 “변화”였다. 뭐, 변화라는 단어는 우리한테 생소하지는 않다. 어차피 우리는 매일, 매시, 매초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인생의 소용돌이속에서 혼란스럽게 살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최근 12개월 동안 IT 산업은 그동안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였던 속도로 변신에 변화를 거듭하였으며 이 바닥에서 매일 숨쉬면서 살고 있는 나조차도 계속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다 따라잡는게 벅찰 정도이다. Apple사의 Steve Jobs는 PC는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기기 (iPad와 같은)로 대체될것이라는 발언을 하였고, 이에 대해서 Microsoft의 Steve Ballmer는 할말이 꽤 많았다 ㅎㅎ. Facebook의 Mark Zuckerberg는 개인신상정보를 어디까지 공개해야하며 private과 public의 경계는 어디냐에 대한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느라 똥줄이 탔다고 한다. 아바타의 감독 James Cameron 또한 인터뷰를 통해서 3D 기술의 위대함과 대단함을 찬양하였지만, 아무리 기술이 앞서가더라도 일단 영화의 키포인트는 스토리라인 (컨텐츠)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실로 이번 D:All Things Digital 행사는 technology, media와 entertainment의 거장들이 직접 참석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현재와 미래의 주소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것인지에 대한 개인적이면서도 전문가다운 견해를 제시한 conference라는 점에서 다른 행사와 많이 차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메가톤급 변화가 산업전반에 큰 disruption을 가져왔던거는 아마도 15년전에 인터넷과 웹이 상용화되었을때라고 전문가들은 말을 한다. 물론, Wall Street Journal이 주최하였다는 점 또한 이 행사의 권위와 절대로 저렴하지 않은 행사비용을 다시 한번 정당화하였다.

Steve Jobs, CEO of Apple – The iPad: Past, Present, Future
Apple의 대표이사로써 personal computing의 새로운 시대를 개쳑한 스티브 잡스는 창업 33년 후인 오늘날도 지속적인 혁신으로 전세계를 감탄시키고 있다. 그의 지휘하에 애플은 iPod와 iTunes를 가지고 디지탈 음악 시장에 일대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iPhone으로 휴대폰 시장의 그 누구도 보지 못하였던 완벽한 블루오션을 창조하였다. 그런 그가 2010년 4월에 다시 한번 세계를 놀래켰다. 바로 iPad라는 태블릿을 시장에 소개하면서 차세대 컴퓨팅에 새로운 물결 (wave)을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iPad는 출시 2개월만에 2백만대가 팔리면서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 가치를 추월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였다. 여기 그가 Walt Mossberg와 Kara Swisher와 진행한 인터뷰의 핵심 내용을 추스려서 공유한다.

Mossberg: 제 기억으로는 당신은 과거에는 태블릿 PC가 상당히 나쁜 아이디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아마도 애플은 통신 캐리어들과 절대로 같이 일을 하지 않을거기 때문에 휴대폰 시장으로 진입하는 일은 없을거라고 말한걸로 알고 있는데요.
Jobs: 네, 맞습니다. 그때는 그랬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시장의 역학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발견하였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휴대폰을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팔 수 있는 방법을 결국에는 찾았기 때문에 휴대폰 비즈니스에 뛰어들었죠.
태블릿에 대해서 제가 전에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던거는 아마도 손으로 쓰는 필기야말로 가장 느린 입력 방식이기 때문에 필기도구가 필요한 태블릿은 꽝이라는 말일꺼였을겁니다. 이러한 선상에서 생각을 해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완전히 실패한거죠. 마이크로소프트가 태블릿 관련해서 많은 돈을 투자하였고 재미있는 시도들을 많이 하였지만 결국 만든 제품은 입력용 펜을 필요로 하였죠. 태블릿에 입력용 펜이 필요하면 이건 완전히 쓸모없는 제품이 되는거죠.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작한 태블릿 컴퓨팅에 아주 새로운 생각과 컨셉을 적용하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태블릿은 PC 기반의 제품이었습니다. PC가 필요로하는 모든 제반비용을 가지고 있었고 PC 배터리 수명을 가지고 있었죠. 무게도 PC랑 똑같았죠.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동물 (animal)”을 창조하였습니다. 바로 PC 운영체제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운영 체제 기반의 펜이 필요없는 터치모듈 – 그것도 그냥 터치가 아닌 “멀티터치” – 의 제품을 말입니다.
Mossberg: 손가락 기반의 멀티터치 모듈의 운영체제는 태블릿에 적용하기전에 아이폰에 적용하였잖아요. 아이폰에 적용할 당시 태블릿에 적용할 생각도 하셨나요?
Jobs: 이건 비밀인데요 실은 아이폰보다 태블릿을 먼저 시작하였습니다. 2000년도 초반부터 우리는 태블릿을 연구하기 시작했죠. 저는 키보드가 너무 싫어서 물리적 키보드를 아예 없애버릴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고 애플 엔지니어들한테 키보드를 대체할 수 있는 멀티터치 디스플레이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라고 시켰는데 한 6개월 후에 우리 회사의 천재 UI 엔지니어가 꽤 괜찮은 제품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태블릿보다는 전화가 우선순위가 더 높은 제품이라서 일단은 전화에 적용을 하고 최근에 와서야 다시 태블릿에 대한 개발에 박차를 가한거죠. 전화를 만들면서 쌓았던 노하우와 경험을 태블릿에 빠르게 적용하였고 우리는 iPad라는 대단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제가 iPad를 발표하면서 “magical”이라는 말을 쓴거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이 상당히 많은데 정말로 마술과도 같은 제품이예요.
Mossberg: 앞으로 태블릿이 laptop을 완전히 대체할거라고 생각하시나요?
Jobs: 미국이 농업국가 였을때에는 모든 자동차가 트럭이었죠. 그렇지만, 자동차가 농장뿐만이 아니라 점점 시내에서도 필요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오토 트랜스미션이나 파워 핸들과 같이 트럭에는 필요없는 새로운 기능들이 점점 더 중요한 기능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트럭위주의 자동차 산업이 승용차로 바뀌었습니다.
PC는 바로 트럭과도 같은 제품입니다. 없어지지는 않을거고, 많은 사람들한테 유용한 제품이되겠지만 결국 PC를 사용하는 인구는 급격하게 감소할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PC를 대체할 제품이 iPad일까요? 그건 저도 모르죠. 만약에 그렇다면 언제? 5년 후? 7년 후? 내년? 아무도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 방향으로 우리는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Steve Jobs – 그는 정말로 대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연구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위에는 스티브 잡스와 직접 일을 해본 사람들도 있고 그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도 몇명 있다. 이들이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말하는걸 잘 들어보면 제각기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스티브 잡스의 인간성은 제로이다. 비즈니스를 떠나서 인간성에 대해서만 말을 하자면 그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인간쓰레기” “나쁜새끼”이자 “개새끼”이다. 하지만, 맨주먹으로 스스로 일으킨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쓰러져가는 회사를 15년만에 세상에서 2번째로 가치가 높은 회사로 만들 수 있는 그의 경영/디자인/운영 능력은 정말로 존경스럽고 전설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애플의 현재 위치를 해명할 수 있는 별 다른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나는 뮤직쉐이크 사무실이 위치한 LA 코리아타운에서 집까지 가는 통근 기차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서 내 주위를 돌아보니 참으로 재미있는 광경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내 옆에 있는 몸무게 150kg 아저씨는 iPad를 가지고 그 두꺼운 손가락을 가지고 책을 읽고 있고, 두 좌석 건너편에 있는 동양인 아줌마도 iPad를 가지고 열심히 뭔가를 적고 있는게 보인다. 내 옆의 아저씨랑 바로 앞에 앉은 학생으로 보이는 동양인, 그리고 그 옆 좌석에 앉은 4명 중 3명은 iPhone을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게임이랑 이메일을 하고 있는게 보인다. 아마존의 Kindle도 몇개씩 보이는거 같다. 이상하게도 laptop은 몇개 보이지 않는거 같다. 역시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것일까?

앞으로 5년 후에 같은 기차를 타면서 내 주위를 돌아보면 그때는 과연 어떤 진풍경이 펼쳐질까 나는 눈을 감고 한번 상상을 해본다. 기술의 발전은 실로 눈부시며, 이러한 발전으로 인한 “변화”는 어쩔때는 겁이 날 정도로 빠르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어쩔때는 너무나 스트레스풀해서 그냥 죽을때까지 더이상 변화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도 가끔은 한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내가 이러한 발전과 변화의 중심에서 사는걸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스티브 잡스만큼은 아니지만 미약하지만서도 조금이라도 이러한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도 인생을 그렇게 헛살고 있지는 않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빌 게이츠의 소아마비 퇴치 작전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명성에 걸맞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조직은 매우 크고 복잡하다. 워낙 많은 제품을 다양한 시장에 공급하기 때문인데, 특히 마케팅은 다른 조직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vertical & horizontal 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제품을 담당하는 product marketing 조직 – 즉, Windows OS, Office, Windows Server, SQL Server 등 – 이 있는가 하면 모든 제품을 특정 시장에 마케팅하는 조직 –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Small and Medium Marketing,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Enterprise Marketing – 이 존재한다. 나는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는 Mid Market Marketing Manager(M4)라는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매우 challenging하고 회사의 매출과 직결된 중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그런 직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조직을 분석하려면 제품별 숫자만을 봐야 하는 게 아니라, 특정 market 별 숫자 또한 자세히 분석을 해야 한다. Bill Gates 회장은 임원 미팅에서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경영진들에게 하였다. “내년에 우리가 더 성장하려면 Office나 SQL 서버와 같은 구체적인 vertical 시장에 더 투자 해야 할까요 아니면 특정 제품보다는 대기업, 교육, 공공 분야와 같은 전반적인 horizontal 시장에 집중해야 할까요?”

매우 재미있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2008년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손을 뗀 후 340억 달러라는 막대한 기금과 대통령보다도 더 유명한 슈퍼파워를 이용해서 개발도상국의 질병 퇴치와 보건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게이츠 회장이 바로 똑같은 질문을 세계 보건기구에 얼마 전에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아마비와 같은 개별 질병을 퇴치하는 데 집중해야 할까요? 아니면 전반적인 건강과 위생 개선책을 – 위생 상태 개선, 예방 접종 확산, 식수 정화 – 추구하는 게 맞을까요? 어떤 게 인류의 건강을 위한 제일 나은 방법일까요?”라는 질문이었다. 정답은 둘 다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빌 게이츠 회장과 같은 자선사업가들의 돈을 무기로 세계 보건 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는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을 불구로 만들고 있는 무서운 병 소아마비에 이러한 총체적인 접근방법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질병 퇴치를 하려면 특정 질병을 1대 1로 공격해야 한다는 과거의 방식과는 다른 총체적인 방법은 특정 질병을 퇴치하려면 전반적인 보건 시스템의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만약 이 방법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세계 보건 전략은 이러한 총체적 전략을 토대로 운영될 것이지만, 실패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인류 보건 역사상 가장 비싼 수업료로 기억될 것이다. 소아마비 하나에만 이미 20년 동안 82억 달러라는 예산이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기부자는 그동안 vertical 전략을 선호하였다. 즉, 일정 금액의 기부금을 가지고 특정 질병을 퇴치하는 데 집중하는걸 좋아했다. 이 전략이 성공한 사례가 바로 1979년도에 인류가 유일하게 완벽하게 퇴치할 수 있었던 수두 사례였다. 이와는 반대로 horizontal 전략은 조금은 모호한 접근 방법과 당장 수치화할 수 없는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며, 그 결과 또한 장기적으로 보고 접근을 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vertical 전략으로 시행된 소아마비 퇴치는 참담하게 실패했고, 빌 게이츠와 세계 보건 기구는 이번에는 vertical & horizontal 전략을 적용하는 모험을 해보기로 하였다.

2010년 초,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 보건 기구(WHO)를 방문했다. WHO의 지하벙커에서 진행된 미팅에서 그가 접한 소식은 전 세계 질병을 퇴치하려는 그의 노력에 브레이크를 거는 나쁜 소식이었다. 바로 그가 8,500억 원이라는 거금을 가지고 퇴치하려고 하였던 소아마비 질병이 아프리카에서는 계속 번지고 있다는 비보였다. 작년 여름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소아마비가 2010년 4월에는 19년 동안 소아마비 사례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던 타지키스탄에서 재발하면서 소아마비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추방하려는 세계 보건 기구들의 노력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현재 소아마비를 퇴치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기관은 WHO, UNICEF, Rotary International과 U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과 같은 헤비급 단체이고, 빌 게이츠가 가장 많이 기부한 분야이기도 하다. 2009년도에 빌 게이츠는 소아마비가 가장 많이 발병하는 아프리카에 여러 번 방문하여 의사, 간호사, 자선단체 담당자 및 부족장들과의 회동을 통해서 이 병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논의를 한 적이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의 아프리카 방문 일정에는 나이지리아의 Sokoto라는 도시 족장과의 간담회가 잡혀 있었다. 아이패드로 책을 보는 세상에서 웬 족장이라고 묻겠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각 마을의 족장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2003년도에 북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리더들은 소아마비 예방 접종을 하면 무슬림 여자들의 생식기능이 없어진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퍼졌고 궁극적으로는 20개의 다른 개발도상 국가들에 퍼졌다고 WHO는 발표하였다. 전 세계 1,600건의 소아마비 케이스 중 과반수가 나이지리아에서 발병하였으며, 바로 Sokoto의 족장과 같은 사람들과 협심하여야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질병 퇴치 캠페인을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족장 또한 소아마비만을 공략하는 vertical 전략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다른 보건과 위생 문제들도 같이 검토가 되어야 합니다. 소아마비를 퇴치하려면 결핵, AIDS, 말라리아, 콜레라 등과 같은 질병들도 같이 총체적으로 퇴치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빌 게이츠 회장한테 충고하였다.

30년 전 성공적인 수두 근절 이후 대부분의 질병 퇴치 프로그램들은 vertical 전략을 택하기 시작하였으며 소아마비 퇴치 캠페인 또한 이렇게 진행되었으며 초기에는 대성공이었다. Rotary 클럽의 기부금을 가지고 WHO가 진두지휘하였던 이 캠페인은 1988년 350,000건이나 발생하였던 소아마비 발병 수를 2000년도에는 1,000건 이하로 줄였으며 곧 수두와 같이 소아마비 또한 교과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역사 속의 질병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소아마비는 오늘도 개발도상국에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으며 발병 건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Sokoto의 한 보건소를 빌 게이츠가 방문할 때 발생한 일이다; 한 아프리카 아이의 예방접종 기록표를 보면서 그는 “이 아이가 디프테리아 접종을 하였나요?”라고 물어보자 보건소 당국 직원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보건소에는 B형 간염 접종약도 없었고 황열병 접종액도 턱없이 모자랐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보건소 밖에서는 소아마비 퇴치 캠페인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소아마비 퇴치 캠페인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고, 소아마비 접종액도 부족함 없이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었다. 그다음 날 나이지리아의 보건당국 국장인 Pate 박사는 이러한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한 vertical vs. horizontal 전략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를 하였다. 그의 주장은 아무리 소아마비 발병률을 줄여도, 전반적인 위생과 보건 상태를 강화하지 못하면 이러한 노력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소아마비 또한 ‘교육’ , ‘질병 관리’ , ‘위생’ 등과 같이 아프리카가 해결해야 하는 큰 그림 중 하나일 뿐이지 소아마비 질병에 모든 돈과 자원을 투자하는 건 매우 현명하지 못한 전략이라고 지적하였다.

빌 게이츠는 이러한 vertical & horizontal 전략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의 소아마비 발병 건수가 이제 거의 바닥인 이 시점에서 아프리카는 소아마비 퇴치에 모든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게 맞다고 반박하였다. 일단 시작한 거는 끝을 봐야 하며, 끝이 이렇게 가까운 시점에 중단하는 건 옳지 않으며 소아마비가 완전히 퇴치되면 그만큼 다른 질병과 전반적인 보건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이 풀릴 거라고 하였다. 막상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아프리카 순회를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이미 퇴치되었다고 믿고 있었던 소아마비가 다시 발병하면서 특정 질병만을 공략하는 vertical 전략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을 스스로 하기 시작하였다.

2009년 8월에 WHO가 엄선한 질병 전문가들이 앙골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와 나이지리아에 파견되어서 소아마비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재평가를 하였다. 전문가들의 결론은 소아마비라는 질병 자체가 인간의 배설물과 오염된 물을 통해서 전염되는 병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위생과 영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론은 빌 게이츠를 비롯한 소아마비 퇴치에 앞장서왔던 많은 단체와 담당자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과연 vertical 소아마비 전략이 최상의 방법인지를 모두 다시 한번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10월에 Gates 재단은 UNICEF, 질병관리국과 로터리 재단이 포함된 소아마비 퇴치 운동 기부자들을 시애틀 본사로 긴급 소집하여서 전략회의를 열었으며 이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곧 WHO의 새로운 전략에 반영될 것이다. 새로운 전략은 2012년 말까지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치하는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하였으며 vertical 전략과 horizontal 전략을 적절하게 혼합한 형태의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큰 축이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전략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testbed는 나이지리아가 될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나이지리아와 인접 국가들에서 소아마비가 퇴치되느냐에 따라서 vertical & horizontal 전략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이 새로운 소아마비 퇴치 프로그램이 필요로 하는 예산은 대략 26억 달러인데 현재 게이츠 재단에서 할당한 예산은 12억 달러밖에 안 된다. 물론, 빌 게이츠한테 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한다면 개인 재산을 더 투자해도 되고 안 된다면 다시 모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 회장이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려 하고, 이를 위해서 돈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기꺼이 재산을 기부할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영리 프로그램을 운영함에서도 영리조직의 경영 방법과 전략들이 적용된다는 게 참으로 재미있는 거 같고 빌 게이츠같이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계속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Football, soccer, 축구

1,500개 – 2010 월드컵 축구 선수들을 위해서 개별 제조되는 축구화 수.
1억2천5백만명 – 월드컵 축구를 생중개로 볼 전세계 관람객 수.
125억 달러 – 2010년도 월드컵이 남아공의 경제에 기여하는 금액. 참고로 2010년도 남아공 GDP의 20%라고 한다.

영국식 영어로는 축구를 football이라고 하고 영어를 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football=축구로 통용되지만 미국만이 유독 soccer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이미 미국에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인 American Football에 football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보이지않는 라이벌 의식이 있어서 그런지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가 않다. 깊게 대화하다보면 유럽 사람들한테 비춰지는 미국인들의 이미지는 무식하고 문화적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햄버거와 콜라로 포식하는 야만인들이고, 미국인들한테 비춰지는 유럽사람들의 이미지는 겉으로 고상한척하면서 일도 안하고 3시간씩 수다떠면서 점심을 먹는 한심한 인간들이다. 그런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사람들은 축구라는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축구는 주류 운동으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다. LA Galaxy 구단에서 미국에 축구를 전파하기 위해서 영국의 스타 데이빗 베컴을 데려오고 (전에 홍명보 선수도 잠깐 여기서 뛴적이 있다) 많은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식축구/농구/야구에 비해서 축구는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운동은 아니다. 미국사람들은 미식 축구에 비해서 축구는 충분히 거칠거나 남성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덩치가 산만한 선수들도 없고, 헬멧 착용도 하지 않을 뿐더러 미식축구에서는 경기의 일부인 거친 몸싸움을 축구에서는 법으로 금지해놓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 축구가 미식축구에 비해서 거칠거나 남성적이지 못한 스포츠일까? 물론, 많은 축구선수들이 몸에 손도 닿지 않았는데 할리우드 액션 배우를 능가하는 액션 연기를 하면서 땅으로 고꾸라지고있다. 얼마전에 일본과 치룬 평가전에서 박주영 선수의 페널티 킥 또한 액션 연기였다. 이미 넘어지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일본 골키퍼 손과 박선수의 다리가 닿았고 그 기회를 놓칠새라 매우 생동감넘치는 액션으로 페널티 킥을 얻어 우리에게 귀한 2번째 골을 선물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면 바로 이렇게 땅으로 넘어지는 축구 선수 중 많은 선수들이 다시 바로 일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6월11일 드디어 4년을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월드컵이 시작한다. 실은 나는 한국의 예선 3경기 (대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표를 재수좋게 구해서 가지고 있는데 어쩌다가 사정이 생겨서 남아공에 못가게 되었다. 하지만 월드컵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나와 같은 팬들과는 달리 많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인해서 월드컵 자체를 불참하거나 특정 경기 불참으로 인해서 감독과 자국민들의 발을 동동구르게 만들고 있다. 유럽의 영국과 독일에서 아프리카의 가나에 걸쳐서 감독, 선수들, 국민들이 현재 부상당한 자국 선수들이 최종 선수 명단에 올라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부상 통계를 종합해 보면 축구야말로 신체 접촉이 가장 많은 스포츠이며 그에 따른 부상율도 가장 높은 위험한 스포츠라는 말을 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이런 위험한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막상 경기장이나 TV로 축국 경기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축구가 이렇게 위험한 운동임을 잘 모르고 있다. 축구 선수들의 부상율이 다른 운동선수보다 높은 이유는 지속적인 신체 접촉이 발생하는 운동이기 때문이지만 그외에 몇가지 다른 이유들도 있다:

1. LONG seasons – 미식축구나 미국의 다른 팀스포츠는 정기시즌 종료 후 4개월 ~ 6개월의 비시즌을 가지고 운영된다. 즉, 선수들이 새로운 시즌에 임하기 전에 충분한 휴식과 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축구는 조금 다르다. 특히 가장 경기일수가 많기로 알려진 영국의 Premier League는 8월 중순부터 5월초까지가 정기 시즌이며 정기 시즌외에 월드컵, 유럽컵과 같은 빠질 수 없는 행사들과 “친선 경기”라고 하는 국가 대항전들이 비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선수들의 휴식을 방해하고 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팀인 Chelsea는 이번 시즌에 정기 시즌 경기외에 추가적으로 18개의 경기를 하였다. “경기가 너무 많아요.” ESPN의 분석가인 Tommy Smyth의 말이다. “Fulham은 올해Europa League 결승 진출을 하기 위해서 62 경기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선수들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내야겠다는 구단의 속셈이죠.” 다른 유럽 리그들은 통상 12월과 1월달에 몇 주 정도를 쉬면서 리그를 운영하지만 영국의 Premier League는 동계휴식이 없이 운영된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2. 비접촉 부상 – 이 또한 재미있는 사실인데 축구 선수들은 워낙 많은 경기를 뛰기 때문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어서 상대방과의 신체적 접촉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끈임없이 뛰어야하는 축구 경기의 생리, 슬라이딩, 태클링과 점핑 덕분에 발목이나 무릎이 성한 축구 선수는 거의 없다고 한다. FIFA의 공식 의료기록에 의하면 2006년도 월드컵 부상 중 27%가 선수들간의 직접적인 신체접촉이 없었다고 한다. 미국의 스타 수비수 Oguchi Onyewu 선수는 작년 10월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코너킥을 헤딩하는 도중에 왼쪽 슬개 힘줄을 다쳤고 이제서야 다시 경기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정도로 회복을 하였다. “제가 다쳤던 상황을 녹화방송으로 다시 보기 전에는 분명히 상대방 선수가 제 다리를 발로 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동영상을 보니까 저 혼자 넘어져서 다쳤더라구요.” 라면서 그 당시 상황을 회상한다.

다음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출전 팀 중 주목할만한 부상 선수 명단이다:

한국 – 장단지 부상으로 인해서 이동국 선수가 그리스전에 출전할 수 있을지 아직 미정이다.
영국 – 3월에 다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서 베컴 선수는 이번 월드컵 출전을 이미 포기한 상태이다. 베컴 선수는 AC Milan과의 경기에서 주위에 아무도 없었는데 스스로 발목을 접지르면서 부상을 당했다.
스페인 – 올해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는 “무적함대” 스페인의 주전 포워드 Fernando Torres는 몇달전에 무릎 수술을 하였으며, 미드필더 Cesc Fabregas는 다리 깁스를 푼지 얼마되지 않았다.
미국 – 주장 Carlos Bocanegra 또한 복근 수술을 하였지만 다행히도 주전 명단에는 올라갔다.
독일 – 독일의 주장이자 최고의 스타인 미드필더 Michael Ballack은 가나의 선수인 Kevin-Prince Boateng의 위험천만한 태클로 인해서 오른쪽 발목 인대 부상을 당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일과 가나는 월드컵 D조에서 서로 경쟁하는 팀이라서 이 부상은 특히 더욱 더 큰 국제적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골키퍼 Rene Adler와 또다른 미드필더 Christian Traesch도 부상으로 인해서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가나 – 첼시의 스타 미드필더 Michael Essien은 무릎 부상으로 인해서 월드컵 출전을 포기한 상태이다.

한국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Musicshake Re-loaded

2007년 7월 20일, 갓 결혼한 새 신랑이었던 나는 와이프와 함께 필라델피아 공항에 도착하였다. 정말로 가고 싶었던 Harvard Business School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MBA 명성으로 따지면 더 유명한 워튼 스쿨은 다행히도 붙어서 2년 동안 MBA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 미국으로 왔다 (첫 수업을 들은 후 이 기대는 실망으로 바로 바뀌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월가에서 돈을 만지는거 보다는 ‘벤처’에 대한 미련이 항상 남아있었고 어떻게 보면 동부에 있으면서도 내 눈과 귀는 계속 서부의 실리콘 밸리쪽을 바라보면서 좋은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학교를 다니면서 동시에 나는 어릴적 죽마고우인 John Nahm과 국제 브로커 전문 회사인 Oceans International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한국 벤처기업들의 해외 투자 유치를 도와주면서 커미션을 챙겨먹는 비즈니스를 병행하고 있었다.

MBA를 시작하기 몇개월 전인 4월에 나는 아는 형님으로부터 “뮤직쉐이크”라는 회사를 소개 받았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제품도 아직 없었던 한국의 벤처 기업이었는데 인터넷+음악+사용자제작 이라는 컨셉은 나한테 큰 호감과 매력을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뮤직쉐이크의 미국 funding을 도와주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하였다. 성공적인 funding을 성사시키면서 동시에 나는 뮤직쉐이크의 2007 TechCrunch40 행사 결승진출까지 얼떨결에 성사를 시킬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의 벤처 bug가 서서히 나를 다시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나는 30 동안의 나의 커리어 방황을 끝내면서 과감하게 학교를 때려치우고 뮤직쉐이크의 미국 사무실을 설립하고 운영하기로 결심하였다.

2007년 9월 18일, Blue 사장님과 나는 TechCrunch40 행사를 통해서 뮤직쉐이크를 화려하게 미국에서 launch하였다. 김연아 선수가 7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모든것을 아이스링크에서 보여줘야했던거처럼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은 8분이었다. 이 8분 동안 우리는 우리의 모든걸 실리콘 밸리와 전세계에 알려야 했으며 that’s exactly what we did. 몇십번이나 이 동영상을 보지만, 볼때마다 내가 과연 제정신이었을까 (저런 어이없는 스텝을 밟았을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여러번 하게된다. 여기 그 동영상을 잠시 공유한다:




이 무대를 시작으로 나는 워튼 스쿨에 휴학계를 냈다. TechCrunch40 행사를 통해서 뮤직쉐이크의 미국 성공을 나 자신이 스스로 확신할 수 있었으며, 한국벤처를 미국에서 운영하는거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와이프 또한 이 발표를 통해서 설득할 수 있었다. 무대에서 바라보는 2,000명 이상의 청중 중 내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곳은 심사위원이었던 구글의 Marissa Mayer도 아니고 실리콘 밸리의 대부 Ron Conway도 아니었다. 바로 나랑 같이 이 행사에 참석한 와이프였다. 8분 동안의 신나는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와이프의 얼굴에 비쳤던 그 미소. 그 sweet한 미소는 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뮤직쉐이크 운영을 허락한다는 승락이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2년반 후인 2010년 6월1일,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직도 TechCrunch40을 통해서 일으켰던 센세이션만큼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이후로 하고 싶은것도 많았고 했어야하는 일들도 많았지만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이런저런 핑계로 많은 개발이 delay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뮤직쉐이크 US는 어느정도 상황이 좋아졌고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대대적인 웹사이트/웹서비스 개편을 할때가 온거 같다. 이를 위해서 미국 현지 개발팀 또한 많이 보강하였고 한국에서 엔지니어를 공수도 해왔다.
오늘부터 우리는 세상을 다시 한번 바꿀 큰 프로젝트를 kick off 하였다. 많은 시행착오를 할것이며, 많은 좌절과 실패를 몇개월 동안 경험할것이다. 그렇지만, 똑똑한 사람들과 열정적인 친구들과 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쓸데없는 걱정과 두려움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게 한다.

4개월 후에 완전히 바뀔 뮤직쉐이크 US 서비스를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