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들의 취업 전략

phd_spelled_in_childrens_building_blocks얼마 전에 상당히 재미있는 글을 읽어서 bookmark를 해놨는데 이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도 관심을 가지실 거 같아서 여기서 공유하고자 한다. 내 주위에는 박사 (특히 공학 박사)들이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는 본인들이 정말로 학문을 좋아해서 박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와는 달리 어쩔 수 없이 하다 보니 박사까지 하게 된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 4년 학부만 하고 학교를 떠나서 사회로 진출하는 게 조금 두려워서 그냥 2년 석사 공부를 더 하면서 앞으로 뭐를 할지 고민을 하였고, 석사를 하다 보니 그냥 내친김에 박사까지 해야겠다 하고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그냥 학교 연구실에서 교수 시다바리하면서 5~6년을 보낸 사람들도 많다. 주로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해외 박사들도 있지만, 국내 박사들이 더 많은 거 같다(no offense guys!).

어찌 되었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문제는 이제 졸업하고 뭐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하였는데 academia로 모든 박사가 진출하기에는 교수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고, 대기업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도 엄청나게 피를 튀기는 경쟁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거보다는 다른 데 있다. 많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거의 10년 이상을 대학교 연구실에서 시간과 돈을 투자하였지만, 그들도 보고 들은 게 있는지라, 교수나 연구원이 되는 거보다 아싸리 비즈니스 세계에 진출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조금은 더 멋지고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동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내 주위에는 나한테 이와 관련된 고민과 질문들을 하는 박사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조금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제 친구는 공학 박사를 받은 후에 맥킨지에서 컨설팅을 하는데 돈도 많이 벌고 출장도 자주 다녀서 저도 하고 싶습니다. 어떤 친구는 여의도 증권사에 취직하였는데 제가 공부한 지식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적용하는 거라서 은근히 재미있을 거 같네요.”와 비슷한 부류의 질문들이다. 문제는 – 어떻게 평생을 연구실에서 공부해온 박사들이 비즈니스 세계로 career change를 할 수 있을까?

평생 공부만 해온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작은 방을 뛰쳐 나아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조언을 Bilal Zuberi는 제공해주고 있다. 물론, 정답은 아니지만,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상당히 유용한 충고를 주고 있다. Bilal Zuberi는 MIT에서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의 지도교수는 1995년도 노벨 화학 수상자인 Mario Molina 교수이다. 물리학 자체도 어렵고, 화학도 어려운 분야인데 물리화학이란…. 정말 미스테리어스한 학문일거 같다. 그는 졸업 후에 학계 쪽으로 진출하지 않았고 경영 컨설턴트로써 일을 하다가 직접 창업을 하였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동부 Cambridge에 위치한 General Catalyst Partners에서 VC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독특하고 부러움 살만한 백그라운드 덕분에 Bilal은 하루에도 대학원생, 포닥, 연구원 심지어는 교수들로부터 기술적인 직업 분야에서 비즈니스 분야로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메일을 여러 통 받는다고 한다. Bilal한테 이메일을 보내는 대부분 과학자/공학자들이 계속 기술적인 분야에 남아줬으면 하는 그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지만, 평생을 연구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일보다는 즉시 결과와 피드백이 생성되는 비즈니스 세계를 동경한다거나 아니면 그냥 지금까지 공부한 거 말고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거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여기 그가 제시하는 몇 가지 insightful 한 포인트들을 소개하겠다.:

1/공학박사 과정 학생들도 MBA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가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해야 한다. 시간 날 때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와 하고 싶은 분야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주위 친구들이나, 동문들과 이야기를 함으로써 과연 나한테 맞는 진로인지를 지속해서 평가해라.

2/박사학위를 받는 5년 뒤를 계획하기보다는 내년을 보고 단기적으로 계획을 지속해서 세우고 수정해라. 그리고 내년에 내가 뭐를 하고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지금 뭐를 해야 할지를 고민해라.

3/남들보다 뛰어난 공학 백그라운드가 있다면 (대부분의 공학 박사들은 일반인들보다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너무나 많은 박사가 비즈니스 분야로 진로를 바꿀 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과는 너무나 무관하고 막막한 분야만을 찾는다. 나노기술 쪽으로 공부를 하였다면, 나노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분야를 찾는 게 당연한데 호텔 경영이나, 영화 제작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능력을 왜 자꾸 부인하고, 영업과 마케팅 분야에서 수년 동안 훈련을 받고 실력을 다듬은 사람들과 같은 수준에서 경쟁하려고 하는가? 과학/기술/공학 백그라운드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부채가 아니라 아주 훌륭한 자산임을 숙지해라. 물론, 이러한 박사학위를 유용한 자산으로 만들려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기술이나 능력을 재적용 해야 한다. 비즈니스나 경영전략의 세계에서 기술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는 주로 analytical thinking, rigorous frameworks, hypothesis driven approach와 quantitative skill이다.

4/특정 job에 딱 맞는 사람들이 있다고 정의하는 건 너무 극단적인 발상이지만, 그런데도 특정 job을 수행하려면 도움이 되는 유리한 성격과 기술들이 있다. 내가 이런 job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내 친구들과 지인들한테 물어보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투자은행: 사교적이고 팀워크를 중시하며 무엇보다 하루에 20시간씩 일할 체력이 있어야 한다.
-경영 컨설팅: MBTI ‘A’형 성격. 사교적이며 분석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
-Entrepreneurship: 기술 백그라운드가 있으면 굳이 사장이나 경영 관련된 일을 하지 않고 technical co-founder로 시작하고, 비즈니스 co-founder를 찾으면 된다.
-대기업 임원: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사람과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

5/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학교 다닐 때 경제, 금융 또는 경영 관련된 수업을 들어야 하냐고 물어본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그의 짧은 대답은 “No”이며, 긴 대답은 “Maybe. 그렇지만 매우 신중하게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경영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서 굳이 학교에서 전략, 회계학, 또는 금융 관련된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다. 이러한 기술과 지식은 어차피 일하면서 배우는 것들이다. 오히려 리더쉽, 팀웍과 조직 행동론과 관련된 수업이 경영컨설팅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차피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매우 한정된 지식이기 때문에 실제 일할 때 field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훈련을 해야 하는 부분은 남이 가르쳐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면서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이 가설을 백업할 수 있는 framework를 만들 수 있는 그러한 사고방식인데 이런 기술들은 대부분 책으로 배울 수 없으며 몸으로 부딪히면서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

6/네트워킹을 많이 해야 한다. 과학자나 공학도들한테 네트워킹이라는 단어는 매우 생소할 수 있지만,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거쳐 가야 하는 절차이니 이왕 하려면 기분 좋게 제대로 하는 게 좋다. 네트워킹에 대해서 한가지 유의할 점은 바로 네트워킹 자체만을 위한 네트워킹은 삼가는 게 좋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채용 관련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고 해서 그 행사에서 의무적으로 아무랑 악수하고 인사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최종 목적은 상대방을 감동하게 해서 직업을 구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꼭 너무 그 목적에 충실할 필요는 없다. 좋은 행사에서 친구 몇 명 더 만드는 셈 치고 진지한 대화를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기술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면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해라. “기술” 외에 그와 관련된 시장 동향이나 재미있는 사실이나 일화를 가지고 상대방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면 아주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한다. 가령,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태양열 전지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면 앞으로 이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어떤 업체들이 어떤 제품들을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 분야에 투자하려면 어떤 점들을 잘 고려해야 하는지 등과 같은 조금은 더 “재미있는” 사실들을 상대방과 공유할 수 있다면 상대방에게 이름만을 말해주는 과정을 밤새도록 반복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7/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상대방과 대화를 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강의”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미 상대방은 당신이 좋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보다는 당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으므로 마치 머리에 들어있는 5년 동안 쌓인 지식을 상대방의 머리에 한방에 쏟아부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네트워킹 또한 삶의 한 부분이며, 나 못지않게 상대방도 대화를 통해서 자신이 누군지를 남들한테 알려주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자기 자랑만 하지 말고, 상대방한테도 말할 기회를 좀 주는 게 중요하다. 본인 소개를 하고 상대방이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소재 거리를 미끼로 던져봐라. 가족, 자녀들, 학교, 운동, 정치 등등…

8/앞서 말했듯이, 지금까지 공부한 기술은 남들과 나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임을 잊지 마라. 자신의 전공과 완전히 다른 분야의 직장 인터뷰를 할 때 이러한 점을 잘 강조해야 한다. 5년 동안 학교에 투자한 돈과 시간이 절대로 시간 낭비가 아니었으며, 이 기간에 내가 뭘 배웠는지 인터뷰어한테 이해하기 쉽게 말해줘라. 박사 과정의 좋았던 경험들과(굉장히 많이 있을 것이다) 이때의 경험이 어떻게 나와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강조해라. 솔직히 말해서 MBA들의 인생 이야기는 대부분 똑같다. 은행에서 근무하거나 대기업에서 마케팅하다가 자기 계발을 위해서 학교로 왔다는…그렇지만 박사 과정의 학생들은 이와는 달리 모두 자기만의 독특한 경험과 인생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을 팍팍 강조하면서 나의 독특한 경험과 지식이 어떻게 이 회사 미래의 매출과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운 데로 논리적으로 답변하면 상대방이 무쟈게 감동 받을 것이다.

Bilal의 조언은 여기까지이다. 여기에 내가 한가지의 조언을 더 추가하자면 채용/인터뷰 과정은 영업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어차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행되는 일이니만큼 끈기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항상 강조하는 “끝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회사와 채용이라는 게 분명히 언제 어디선가는 다시 만날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들 사이에 진행되는 프로세스이다. 즉, 오늘 인터뷰하였는데 별로 맘에 안 들었던 사람을 같은 회사에서 미래에 다시 인터뷰할 수 있고, 인터뷰 담당자가 다른 회사로 옮긴 후에 다시 나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채용 담당자들은 이 사람이 굳이 맘에 안 들어도 눈앞에서 바로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없다. 그냥 계속 뭉그적거리면서 일단 자기의 후보 리스트에 담아두었다가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연락을 다시 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인터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애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인터뷰를 하였으면, Yes/No 확실한 대답을 들을 때까지 그 사람을 괴롭혀야 한다. 이건 나 자신의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상대방한테도 내가 정말 이 일을 하고 싶고 매우 진지하게 이번 기회에 임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각인시켜줄 기회이다. 만약에 대답이 No라고 한다면 왜 내가 채용이 안 되었는지 그리고 다음 기회에 이 회사에 취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피드백을 반드시 요청해라.

언젠가 직장을 구함에 있어서 매우 소심하고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박사 친구한테 이런 말을 하니까 “야, 아무리 그래도 좀 구차하지 않냐…박사까지 받았는데 그런 식으로 구걸하다시피 사람을 보채는 게 상대방한테 좀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솔직히 나도 좀 쪽팔린다”

그 친구는 결국 1년 넘게 직장을 구하다가 얼마 전에 정말로 가고 싶지 않았던 연구소로 “할 수 없이” 취직을 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dayjob.com/content/phd-degree-874.htm>

Private Equity에 대한 끝없는 논쟁

dividend-recap1그동안 이 블로그를 통해서 아주 가끔씩 private equity fund(사모펀드)에 대한 내용과 내 개인적인 견해에 대해서 블로깅을 한적이 몇 번 있다. 2008년도 월가로부터 시작된 이 지저분한 mess 때문인지, “펀드”라는 말이 붙은 단어나 주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이야기하길 꺼려하는 이 시점에 Wall Street Journal에서 얼마전에 읽은 기고문과 그 기고문에 대한 신랄한 반대 답변들을 종합해서 여기서 몇 자 적어본다. 솔직히 말해서 사모펀드에 대한 내 개인적인 견해는 매우 긍정적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전문가들이 어떤말을 하던간에 나는 궁극적으로 사모펀드는 썩은 회사를 다시 살려서 세계 경제에 긍정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우량회사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부폐한 금융인들과 경영인들이 같이 손잡고 저지르는 사악한 범죄들도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어찌되었던간에 사모펀드는 좋다고 생각을 한다. 1천1백5십만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는 미국 최대의 노동조합 단체인 AFL-CIO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nd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의 대표이사인 Richard Trumka씨는 “It’s Time to Restrict Private Equity“라는 글을 4월13일 기고하였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2009년도 가을에 13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침대매트리스 제조업체 시몬스사는 파산신청을 하면서 1,000명의 직원을 해고하였다. 소비자들한테는 매우 익숙한 브랜드이지만 시몬스사는 과거 20년 동안 일곱번이나 다른 사모펀드사들한테 매각되었다가 팔린 얼룩진 과거를 가지고 있다. Trumka씨는 시몬스사의 스토리야말로 자산보다 더 많은 부채를 이용해서 기업을 도박판의 칩과 같이 사고 팔고 있는 사모펀드들의 위험과 탐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면서, 반드시 미국 정부가 이러한 사모펀드사들의 장난을 근절할 수 있는 극단적인 조치와 규제를 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와 금융업체들을 규제하려고 전쟁을 선포한것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Trumka씨에 의하면 시몬스사를 파산시킨 사모펀드 회사는 이 회사를 파산시키는 과정에서 8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발생시켰으며, 배당금으로 또한 수천억원을 챙겼다고 주장한다. 파산절차를 중간에서 브로커한 월가의 투자은행들 또한 많은 돈을 벌었고, 결국 이 일방적인 게임에서 손해를 본 사람들은 직장을 잃은 시몬스사 1,000명의 직원들과 5,000억원 이상의 손해를본 채권자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장 애석한 점은 바로 백년 이상 미국인들한테 숙면의 꿈을 심어주고 가치를 창출한 “시몬스”라는 브랜드가 죽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시몬스뿐만이 아니라 Linens ‘n Things, KB Toys와 Mervyns는 모두 평범한 미국인 중산층들이 애용하던 브랜드였지만, 사모펀드 회사들이 이 회사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사용하였던 과도한 부채의 무게를 못 이기고 모두 망한 브랜드들이다. 작년에 파산하였던 비금융권 회사 163개 중 절반 이상이 사모펀드 소유의 회사였다고 한다.

그외에 그는 몇가지 사례들을 더 소개한다. Connecticut에 있는 사모펀드 회사인 Brynwood Partners는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7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뉴욕의 Stella D’Oro라는 제과점과의 연봉삭감 관련 소송에서 불리한 판결을 얻자마자 바로 이 회사의 문을 닫아버렸다. 또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양복메이커인 Hugo Boss를 소유하고 있는 사모펀드회사에서 Hugo Boss 직원들의 연봉을 삭감하려는 결정에 공장직원들이 필사적으로 반대하자, 미국의 공장을 해외로 옮기겠다는 발표를 해버렸다.

사모펀드는 흔히 이 바닥에서 말한는 LBO (Leveraged Buyout)라는 기법을 사용해서 부채를 가지고 기업을 매각한다. LBO에 대해서는 내가 전에 포스팅한적이 있는 ‘LBO의 매력’이라는 글을 보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LBO의 이론은 당연히 MBA 프로그램이나 경제/경영학 수업에서 배우며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을 실제 deal에 적용해서 복잡한 기업인수를 직접 실행하는건 또 다른 이야기이다. 나도 워튼 스쿨에서 많은 교수들한테 LBO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지만, 모두 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이론만을 가르쳐줄 뿐이지 아주 정확하게 어떻게 이런 deal들이 형성되고 어떤 방법으로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이 돈을 버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 (?)만 있을뿐이다. 이러한 특수하고 애매한 성질때문에 미국 정부도 사모펀드를 정확하게 규제할 수 없으며, 대부분의 deal들은 비밀에 둘려쌓인 상태에서 진행된다.

현재 미국 금융법에 의하면 private investment – 헤지펀드, 사모펀드와 벤쳐캐피탈 펀드 – 를 규제할 수 있는 마땅한 법안은 없다. 수조 달러를 주무르면서 수억명의 미국인들을 고용하고 있는 이러한 금융기관들이 정부의 제제를 받지 않고 그림자같이 활동하고있다는 사실은 강대국 미국한테는 매우 치욕스러운 사실이 아닐 수 없으며, 반드시 개혁이 필요하다고 Trumka씨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펀드들은 미증권거래위원회인 SEC한테 정보의 투명성을 제공해야하며, SEC는 사모펀드 회사들이 투자자, 협력업체 및 채권자들한테 그들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강압적으로 압력을 가애햐한다고 주장한다.

Richard Trumka는 이렇게 신랄하게 대놓고 사모펀드를 욕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재미있는건 그 다음날 Wall Street Journal 편집자한테 온 독자들의 항변글들의 내용이다. 이 글을 읽고 동의하지 않는 많은 독자들이 재미있는 이메일을 편집자한테 보냈는데 그 중 몇가지를 또 여기서 공유해본다:

“Trumka씨는 사모펀드들이 과도한 부채를 가지고 부실기업들을 인수하는 이유가 바로 무능한 직원들의 연봉과 연금이 결국에는 그들이 일하고 있는 회사의 수익성을 저해할것이기 때문이라는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거 같네요. 이렇게 되면 손해보는 사람들은 그 회사의 직원들이 아니라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 나같은 선량한 미국의 시민입니다.”

“미주리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1984년부터 2006년 사이에 상장되거나 다른 회사에 매각된 사모펀드 투자를 받은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 13%나 더 많은 고용 창출을 하였습니다. 또한, 세계 경제 포럼의 연구조사단은 사모펀드 소유의 기업들은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더욱 더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결론을 발표한적이 있습니다. Trumka씨가 주장하는 사모펀드의 불투명성과 [그림자] 이론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의 이런 주장들은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바램에 기반한 근거없는 넋두리라고 생각합니다.”

“Trumka씨는 사모펀드를 욕하기전에 디트로이트 자동차 제조업체의 노조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직장을 하루아침에 잃었고, 미국이 자동차 산업을 일본과 한국한테 빼앗겼는지를 생각해봐야합니다. 욕심으로 가득찬 노조원들이 즐기고 있던 복지혜택과 말도 안되게 높은 연봉은 한때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자동차 산업을 완전히 몰락시켰습니다. 시몬스사와 Stella D’Oro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브랜드였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구성원들인 노조의 불합리한 사고방식과 요구조건때문에 망한거지 사모펀드 때문은 아닙니다.”

“사모펀드와 같이 창조적이고 똑똑한 자본을 왜 증권거래위원회한테 감시받도록 해야하는지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증권거래위원회는 수년동안 GM의 재무재표와 내부정보를 ‘투명’하게 볼 수 있었지만, 이러한 ‘투명성’은 그다지 큰 효과가 없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문제는 바로 실업률은 높지만, 여기저기에 놀고있는 자본이 많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할일은 바로 이런 노는 자본을 유용하게 사용해서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일인데 계속해서 정부가 금융시장을 규제하고 세금만 인상한다면 노는 자본은 더욱 더 많아질겁니다.”

위의 이런 반대의견들을 읽다보면 또 이 사람들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 물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사모펀드에 대한 견해는 다르지만, 내가 몇 년 전에 ‘Private Equity의 진실’이라는 블로그 포스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은적이 있는데 나는 아직도 사모펀드는 무능력한 기업을 개선해서 고용 창출과 경제 발전이라는 궁극적으로는 발전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좋은 펀드라고 생각한다.

“Getzler Henrich라 는 사모펀드 (구조조정 전문) 회사의 managing director인 Dino Mauricio는 1998년부터 2002년, 4년 동안 6개의 세탁/청소 서비스 관련된 지역적인 회사들을 인수 합병하여 SMS Modern Cleaning Services라는 직원 7,000명 이상 규모의 전국적인 세탁/청소 서비스 회사로 통합하였다. 작은 회사들을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인력, 특히 중간 경영진이 불필요하게 남아돌아서 전체 직원의 약 15%를 해고하였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고용 창출을 저해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통합된 회사의 비즈니스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결국 해고된 15%의 인력 이상의 직원들을 고용하였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고용 창출을 촉진한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SMS Modern Cleaning Services가 성장하면서 규모의 경제의 싸움에서 밀린 동네 구멍가게들은 지속적으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고용 창출을 저해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문을 닫은 구멍가게에서 일하던 대부분의 인력들이 SMS Modern Cleaning Services에 취직하여 직원이 된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고용 창출을 촉진한다!)

<이미지 출처 = http://journalrecord.com/2010/11/29/dividend-recapitalizations-cash-alternatives-for-private-equity/>

Check-In or Be Square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서 이 블로그를 follow 하시는 분들이라면 50% 이상은 아이폰 소유자일것이다. 그리고 아이폰 소유자라면 아마도 Foursquare라는 앱을 통해서 하루에 한번 이상은 check-in을 할것이다. 내가 Foursquare를 처음 접한 계기는 페이스북을 통해서인데, 페북친구인 넥슨의 모부사장님의 newsfeed에 어느날부터인가 계속 “xxx just checked-in @ 식당이름”이라는 포맷의 포스팅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이 분이 영어가 서툴러서 호텔같은곳에 check in을 하는건데 식당에서도 check in이라는 말을 사용하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다른 친구들이 계속 여기저기서 check in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때 나는 뭔가 viral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바로 Foursquare라는 아이폰 앱의 출현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제는 특정 지역에서 가장 잘나가는 식당이나 술집을 찾기 위해서 친구들과 직접 “check-in”하지 않고 대신위치 기반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인 Foursquare를 통해서 가상세계에서 “check-in”을 하고 있다.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특정 지역이나 식당에서 스마트폰 (주로 아이폰)을 통해서 Foursquare 앱을 실행하고 “check-in”을 하면 된다. 그러면 내 친구들은 내가 현재 어디서 뭐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나 또한 내 친구들이 지금 내가 자주 가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거나, 나만 빼놓고 지네들끼리 나이트가서 부킹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Foursquare는 Dennis Crowley와 Naveen Selvadurai에 의해서 뉴욕에서 창업되었다. 참고로 Dennis Crowly는 이미 Foursquare와 비슷한 Dodgeball이라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2000년도 초에 개발하여 2005년도에 구글한테 매각한 경험이 있는 성공적인 entrepreneur이다. Dodgeball은 SMS 문자를 통해서 친구들한테 내 소식과 업데이트를 전달해 주는 서비스였는데 그 당시만해도 스마트폰이 지금과 같이 널리 전파되지 않은 관계로 구글도 그다지 큰 재미를 보지 못하였고 결국 서비스를 죽여버렸다. Foursquare는 해마다 텍사스에서 개최되는 음악/디지털 미디어 행사인 South by Southwest에서 2009년도에 론치하였고 론치 후 열흘만에 100,000명의 유저들이 이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 Foursquare는 백만명 이상의 유저들이 전세계에서 “check-in”을 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이렇게 특정 위치에서 check-in을 하는 기능외에 Foursquare는 check-in의 횟수에 따라서 다양한 포인트 제도, virtual badge를 이용한 훈장 제도 및 명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가장 매력적인 명예는 바로 한 장소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 check-in을 하는 사람한테 주어지는 Mayor (시장) 뱃지이다.

나는 지금은 조금 시들해졌지만 한때는 하루에 7번이상 check-in을 하였으며 회사와 집 근처 식당과 공원 8군대의 Mayor를 자랑스럽게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쓰잘대기 없고 매우 distracting한 앱 – 가는곳 마다 핸드폰을 꺼내서 체크인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엄청 짜증낸다 – 이지만, Foursquare는 유저들로 하여금 은근히 경쟁심을 유발시키고 그 자체가 재미있다는 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하지만 이 앱이 제공하는 유용한 정보와 가치의 진정한 수혜자들은 유저들보다는 유저들이 check-in을 하는 가게와 식당들이다. 이런 위치 기반의 소셜 서비스들 덕분에 이제 비즈니스들은 그들의 고객들이 정확히 어디서 뭘하는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으며, 이러한 고객들의 성향과 위치를 바탕으로 적절한 offering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유비쿼터스해지고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젊은 층뿐만이 아니라 더욱 더 광범위한 연령대의 고객들에 의해서 사용됨에 따라서 소비자들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매우 구체적인 정보를 이용하면 특정 고객들이 특정 순간에 하고 있는 활동에 매우 적절한 광고나 special discount를 광고주들은 push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친구들과 가상관계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네티즌들은 “위치”라는 변수를 이용해서 특정 시간대에 특정 위치에서 물리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실은 위치 기반 서비스의 개념은 그다지 새로운건 아니다. 이미 소개하였듯이 2000년도 초에 Dodgeball과 같은 위치 서비스가 핸드폰에 적용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mainstream 도입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아이폰이 혜성같이 등장하였으며, 모든게 바뀌기 시작하였다. 아이폰이야말로 mainstream 소비자들의 손과 주머니에 아주 사용하기 쉬운 위치기반 서비스들을 직접 제공해준 최초의 모바일 기기였다. 많은 서비스들이 지도 서비스를 아이폰 앱에 손쉽게 통합시켰으며, 아이폰의 GPS 기능을 통해서 탄생한 [고객+실시간 위치+모바일 = 매출]이라는 공식을 모든 비즈니스들이 이제는 무시 못하게 되었다. 공동 창업자 Selvadurai씨는 “위치 서비스는 항상 흥미로운 컨셉이었는데 최근에 와서 기술과 융합되면서 실제 상품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아이폰의 부상과 더불어 드디어 우리는 전통적인 캐리어들을 통해서 비즈니스를 할 필요가 없어졌고, 모바일 기기에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집어넣으려면 과거에 거쳐야했던 지루하고 관료주의적인 프로세스를 통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모바일 앱을 개발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체제가 마련이 된거 같습니다.”라고 말을 한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도입과 사용은 최근에 엄청나게 성장하였다. Pew Research Center의 Internet & American Life Project에 의하면 미국 성인인구의 32%가 모바일 기기로 인터넷을 접속하였다고 한다 (2007년도에는 24%였다). 2005년도만 해도 성인 인구의 8%만이 소셜 사이트에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었는데 2009년도에는 이 숫자가 47%로 증가하였고 특히 18세-29세 연령대 성인들의 72%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 본인들의 프로파일을 가지고, 관리하고 있다고 하였다. Hitwise에 의하면 Foursquare와 같은 위치기반의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의 미국 트래픽은 작년에만 350%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Foursquare의 유저 프로파일과 demographics는 이러한 자료들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데 check-in을 하는 대부분의 유저들은 도시에 사는 20-30대의 젊은이들과 대학생이라고 한다. Foursquare는 처음에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대도시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하였는데 2009년 12월부터는 전세계로 서비스를 확장하였다. 현재 Foursquare check-in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도시는 뉴욕인데 2위는 놀랍게도 미국 도시가 아니라 동경이라고 한다. 이런 새롭고 cool한 서비스를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않지만, 워튼 스쿨의 Kartik Hosanagar 교수는 위치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은 더 높은 연령대의 시장 진입 또한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뭔가를 공유 (sharing)한다는 아이디어는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갈구하고 욕망하는 원초적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대학생이던, 70살 노인이던 누구나 다 특정 집단이나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싶어하고 자신이 속해있는 동네의 전문가가 되어서 어떤 식당이 맛이있고 어떤 나이트클럽이 잘나가는지를 친구들한테 자랑스럽게 말해주고 싶어합니다.” 라고 그는 말을 한다.

또다른 워튼의 마케팅 담당 교수인 Eric Bradlow는 마케팅 전문가 답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어떠한 제품이라도 한번에 모든 시장을 다 공략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특정 시장을 대상으로 시작하고, 그 시장에서의 성공과 reference를 기반으로 다른 시장 진입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Foursquare와 같은 위치 기반 서비스들은 이러한 단계적인 과정을 아주 극적으로 단축시켰는데 그 방법 또한 매우 재미있습니다. Foursquare가 직접 다른 시장으로 진입을 시도한게 아니라 이미 다른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있고 고객들과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대형 브랜드들이 먼저 Foursquare한테 접근을 해서 파트너쉽을 맺게 되었는데 Foursquare와 Bravo Television과의 파트너쉽이 이걸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런데 과연 Foursquare와 같은 위치 기반 서비스가 정말 인생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일까? 안그래도 복잡하고 할일 많은 인생인데 가는곳마다 check-in을 하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모든 친구들한테 방송을 하고 다녀야하는것일까? 나도 처음에는 미친듯이 check-in을 하다가 요새는 조금 시들시들해진거를 보면 아닌거 같다. 오히려 인생에 도움이 되기 보다는 distraction이 된다는 생각을 요새와서 조금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Foursquare의 급부상을 다른 서비스들이 그냥 보고 있을리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Twitter, Facebook이나 Yelp와 같은 서비스들은 모두 Foursquare와 같은 check-in 기능을 구상중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외형보다는 check-in이라는게 유저들한테 실제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곰곰히 연구하는게 여기서 key factor라고 한다. 물론 새로운 제품을 매우 “쿨”한 제품으로 홍보를 하는건 단시간안에 많은 유저들을 유치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빨리 들어오는만큼 그만큼 빨리 사람들이 싫증을 내어서 다른 “쿨”한 제품이나 서비스로 떠날 우려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다. 뮤직쉐이크.com이 초기에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TechCrunch와 같은 블로그를 통해서 사람들한테 알려졌을때 하루에 수만명의 유저들이 사이트 방문을 하였지만 단순하게 “쿨”하였던 그 당시의 서비스는 수만명의 유저들을 사이트에 오래 잡아두지를 못하였다. 결국 일주일만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빠져나갔고 최근에 와서야 우리는 떠난 유저들을 다시 잡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롱런하는 서비스를 만들고자 한다면 미래의 특정 시점에서 “새롭고 쿨”한 제품에서 “기능적으로 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전환을 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말을 한다. Foursquare와 다른 서비스들이 풀어야하는 지상과제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재미있어하는 단계를 넘어서 “실시간 위치”라는 유용한 정보를 사용해서 돈을 벌수 있는 그 다음 단계의 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15년 전 이메일 마케팅을 한번 생각해보자. 어느날 내가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상점에서 다음과 같은 이메일이 왔다. “고객님만을 위한 특별한 할인 행사를 이번 주에 하고 있습니다. 고객님이 관심가질만한 이번 주의 특별 할인 제품들입니다.” 이런 이메일을 받은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이거 대박인데. 내가 어떤 제품을 좋아하는지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클릭을 하고 이런저런 제품들을 보고 심지어는 구매까지 한 사람들도 더러 있는걸로 알고 있다. 이런 이메일을 몇번 더 받을때까지만 해도 아직 신기해하겠지만, 그 이후로는 아마도 싫증을 내면서 이런 홍보성 이메일 제목만 봐도 그냥 바로 지웠을것이다. Foursquare도 어느 시점에서 바로 이런 문제점을 분명히 직면할것이다.

얼마전에 Yahoo가 Foursquare를 1,000억원 이상을 주고 사고 싶어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제발…야후한테만은 팔지말았으면 좋겠다. 야후는 스타트업들이 죽으러 가는 묘지와도 같다). 상당히 높은 밸류에이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Foursquare 멤버들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회사가 위기에 쳐해있다는건 절대 아니다. 아마도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열심히 check-in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테고, 이러한 유저들과 함께 Foursquare의 밸류에이션은 날이 갈수록 계속 올라갈것이다 – 어느 시점까지는…앞으로 이 회사가 어떤식으로 진화할지 무척이나 궁금해하면서 나도 오늘은 간만에 순두부집에서 check-in을 해서 Mayor 자리를 유지해야하겠다.

행동하든지. 닥치든지. – Part 2

행동의 아름다움을 몸소 실천하셔서 나한테 감동을 주신 또다른 분은 내가 지금까지 블로깅을 하던 내용들과는 완전 상반되는 상당히 low-tech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를 맨손으로 일구어내신 분이다. 이 분에 대한 소개를 하기전에 내가 과거에 하였던 비즈니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할거 같다. 뮤직쉐이크에서 일하기전에 나는 불알친구 John Nahm과 투자자문/브로커 회사인 Oceans International을 운영하고 있었다. 실은 뮤직쉐이크도 Oceans의 고객사 중 하나였는데 운이 좋아서 이렇게 엮이게 된것이다. 지금은 뮤직쉐이크때문에 잠시 나는 Oceans에서 손을 땠지만 잘나갈때 우리는 한해에 5-6개 회사의 투자 성사 및 미국 진출을 도와주고 있었다. 브로커라는 일 자체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일이기 때문에 이걸 하면서도 나는 한국과 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캘리포니아의 호두/아몬드 재배업체와 연결이 되면서 – John이 은행에서 잠시 일했었는데 그당시 고객사 였다 – 이 업체의 한국 진출을 도와주기 시작하였다. IT라는 무형자산과 넛트라는 유형자산이라는 차이가 있을뿐 본질은 한국사람과 미국사람을 연결해주는 업무였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두려움은 없었다. 좌충우돌하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정말로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이 우연한 기회에 대해서 또 이야기하자면 책 한권 정도 분량이 나온다 ㅋㅋ) 한국 호두 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업체의 사장님과 연결이 되어서 우리는 캘리포니아 호두/아몬드를 한국 시장으로 수출하는 브로커 사업을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Oceans International과 구분을 두기 위해서 무역업무만을 처리하는 자회사인 Oceans Exports를 설립하여 이 브랜드를 통해서 무역 업무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조금 현실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당시만 해도 우리는 Oceans란 브랜드를 삼성과 같은 문어발식 재벌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꿈을 꾸고 있었다 ㅎㅎ (물론 그 꿈은 지금도 매일매일 꾼다. 그러다가 매일 또 깨어난다.)

Anyways, 그렇게 장난삼아 시작하였던 넛트 무역 비즈니스는 해마다 double growth를 기록하였다. 첫해 우리는 한국 시장에 호두와 아몬드를 25만 파운드 정도 수출하였고 작년에는 1백만 파운드를 돌파하였다. 참고로 1백만 파운드는 대략적으로 컨테이너 40개 정도의 분량이다. TV나 자동차와 같이 크고 무거운 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즐겨 먹는 너트로 40 컨테이너이니 상당한 분량이다. 아마도 알게 모르게 독자분들이 드시는 호두, 아몬드, 빠리바게트 제품 중 호두가 들어간 빵들, 호두과자 등등에 Oceans가 브로커링을 한 포션이 꽤 될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나는 길림양행 이라는 회사의 창업자이신 윤태원 사장이라는 amazing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윤태원 – (주)길림양행 창업자 및 대표이사
내 나이 또래 분들은 아마도 이 CM 송을 기억하실거다. “블루~블루~다이아몬드~~.” 가수 조영남씨가 기타를 치면서 부르던 캘리포니아 블루 다이아몬드 아몬드 선전 CM 송이다. 블루 다이아몬드사 (Blue Diamond Growers)는 미국에서 가장 큰 농업혐동조합 중의 하나이자 세계 최대의 아몬드 공급사이다.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위치한 본부는 11만평 규모로 20개의 빌딩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일 5천500톤 이상의 아몬드를 생산하며 매년 9만톤 이상이 세계 95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주)길림양행은 블루다이아몬드의 한국독점 에이전트이며 대한민국에 아몬드라는 제품을 처음으로 소개한 무역상사이다. 국내최초로 아몬드를 수입하며 견과류 업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호두, 건포도 등의 다양한 견과류를 수입 및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는 길림양행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오늘날 호두나 아몬드와 같은 넛트를 이렇게 다양한 맛과 형태로 즐기지 못할것이다.

때는 1982년도. 길림양행 설립자 윤태원 사장은 국내 선박회사에서 젊은 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당시 그는 회사내에서도 일잘하고 영어를 잘하는 직원으로 소문이 나있었는데 자신만의 사업을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고, 좋은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항상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농림수산부에서 근무하는 선배한테 오랜만에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는 전화가 왔다. 그날 저녁 그 선배는 윤사장한테 다음과 같은 귀뜸을 해주었다. “앞으로 미국과 무역관계가 개선되면서 ‘아몬드’라는 제품에 대한 수입허가가 곧 떨어질거 같다. 땅콩이랑 비슷한 넛트인데 캘리포니아에서 많이 재배되며 이미 서양에서는 고단백 저칼로리 저콜레스테롤 건강음식으로 매우 인기가 좋은 제품이다. 너 이거 한번 해볼 생각 없냐?” 재미있는 사실은 그당시 윤사장은 ‘아몬드’라는 제품을 구경한번 해본적이 없었고, 선배가 가져온 사진을 통해서 처음으로 이 요상스럽게 생긴 넛트를 봤다고 한다.

그날 밤 윤태원 사장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수년간 선박회사에서 일한 직감에 의하면 이건 하늘이 자신한테 주신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누가봐도 위험하고 미친짓임에도 틀림없었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제품을 – 그것도 사람들이 먹는 식품을 – 수입해서 판다는거는 리스크 그 자체였고 한국 시장이 아직 개방된것도 아니고 아몬드를 미국 어디에서 수입을 해와야하는지도 막막한 미지수 투성이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잘만 된다면 이건 바로 일생일대의 대박기회가 아닌가?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건강 식품을 수입해서 time to market을 극적으로 줄일 수만 있다면 후발업체들보다 최소한 수개월 앞서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임을 또한 부인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미국 아몬드 업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있었던때가 아니라 그는 미국에 국제전화를 해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아몬드 재배업체가 Blue Diamond Grower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 회사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밤을 꼴딱 새고 그 다음날 윤태원 사장은 선박회사에 시골집에 일이 생겼다고 하고 일주일 긴급 휴가를 신청하였다. 같은날 몇 시간 후 그는 서울발 캘리포니아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렌트카를 운전해서 새크라멘토 블루다이아몬드 본사로 찾아간 윤사장은 본인 소개를 하고 앞으로의 한국 시장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블루다이아몬드 아몬드에 대한 한국 독점 유통권을 다짜고짜 자신한테 달라고 하였다. 솔직히 지금같으면 100% 문전박대 당해야하는 황당한 상황이지만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 당시 미국인들한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지금과 같이 눈부신 발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블루다이아몬드 사장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고 한국에서 단숨에 미국으로 날라온 이 젊은이한테 흔쾌히 한국 독점 유통권을 주었다. 윤사장은 이 계약서를 가지고 한국으로 귀국해서 향 후 몇개월 동안 선박회사를 다니면서 밤에 회사 설립 준비와 아몬드 시장 공부를 틈틈히 하였으며, 선배의 말대로 얼마 안있어 한국은 1982년도에 캘리포니아 아몬드에 대해서 시장을 개방하였다.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윤사장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길림양행의 모체가 된 (주)길상사를 설립하고 블루다이아몬드로부터 아몬드를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시장이 개방되었지만 전면개방이 아닌 quota 기반의 개방이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양의 아몬드를 수입할 수 있는 환경은 아직 조성되지 않았었다. 그해 길상사는 미국으로부터 블루다이아몬드 아몬드 5 컨테이너를 대한민국 최초로 수입을 하였다.

자, 이제 28년을 앞으로 돌려보자. 2009년도 길림양행은 캘리포니아로부터 약 300 컨테이너의 아몬드를 수입하였고, 매출 400억원을 달성하였다. 아몬드가 땅콩인지 호두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던 젊은이가 28년전에 맨땅에 헤딩해서 설립한 작은 무역상사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결과가 아닌가?

Part 1의 호리 회장도 대단하시지만 길림의 윤사장님은 어떻게 보면 더욱 더 우리에게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는걸 잘 시사해주시는 분이다. 지금은 건강상 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나셨고 그 아드님이 길림을 경영하고 있는데 올해 매출 500억원은 무난히 달성할거라는 귀뜸을 전에 한번 해주신 적이 있다. 우리 주위에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더욱 많지만, 이렇게 훌륭하고 배울점이 많은 분들도 간혹 만날 수 있다는게 인생의 묘미이자 축복인거 같다. 솔직히 넛트 수입해서 가져다 파는건 나나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독자분들이 involve되어 있는 최첨단 산업과는 완전히 다른 low tech industry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이런 무역업을 하시는 분들을 무식하고 못배웠다고 손가락질하고 욕을 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어릴적에는 그랬으니까. 연봉 1천만원 받아도 무역상사보다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 일하는게 내 명예나 가오를 위해서는 훨씬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을때가 있었으니까…

대한민국은 Yoshito Hori나 윤태원같은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요새같은 시대에는 양놈들이 말하는 소위 “walk the walk”를 할 줄 아는 진국들이 더욱 더 필요하기에 이 두분들의 개인적인 인생 스토리를 이 미약한 블로그를 통해서 살짝 소개해봤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행동으로 옮겨라. 그렇게 못할거 같으면 정말 제발 잘난 주둥이는 닥치는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행동하든지. 닥치든지. – Part 1

2008년도 초,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US를 맨땅에서 시작했다. 매출 빵원 회사를 2년만에 월매출 수천만원 회사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super team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었다는점과 아직 그 팀원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게 오늘따라 매우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미국에서 2년 반동안 뮤직쉐이크를 운영하는 동안 나는 인터넷 비즈니스와 엔터테인먼트 분야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만났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걸음마 단계의 비즈니스를 두발로 일어설 수 있게 하려고 이사람 저사람 닥치는 대로 연락도 해보고 소개도 해서 만났던 수천명 사람들의 명함을 얼마전에 쫙 정리를 하였다. 그 중에는 지금은 실리콘 밸리에서 상당한 슈퍼스타들이 된 Zynga의 Mark Pincus, 구글의 Marissa Mayer, TechCrunch의 Michael Arrington, imvu의 Cary Rosenzweig, Smule의 Jeff Smith, AdMob의 Omar Hamoui,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흑인 가수 MC Hammer 등이 포함되어 있다. 2년전만해도 즉석에서 연락해서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연락 조차 잘 안되는 잘나가는 유명인사들이 된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그동안 뭐하고 있었나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과 평가를 요 몇일동안 상당히 많이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내가 미국에서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한 부류는 입으로 일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즉, 말만 많고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들과 겉으로는 show off하지 않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알짜배기 사람들이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내 주위의 99% 사람들은 주둥이만 놀리는 놈들이다. 아마도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거 같다. 인생 자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만 하지 직접 뭘 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들로 바글바글하니까…오늘도 나는 이런 쓰레기 2명과 미팅을 하였다 (아 씨…시간 아까워).

Mr. A: 아 그사람? 제가 잘 아는 사람이죠. 제 대학 동긴데 학교 다닐때는 별거 아니었는데 지금 엄청 잘 나가요. 우리 외삼촌이 그회사 부사장이라서 그 회사에 대해서는 제가잘 알죠.
(A씨는 주위에 잘나가는 사람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거 같다. 문제는 본인은 전혀 못나간다는 점이다. 즉, 지는 별볼일 없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잘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데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다.)
배기홍 (속으로): 씨발. 근데 어쩌라고? 너는 모하는데?

Ms. B: 지금 개네가 하는 비즈니스를 내가 5년전에 생각했던 건데. 아 진짜 아깝네…누가 그렇게 잘 될줄 알았을까. 내가 학교 다닐때 친구들이랑 생각했던 아이템이 이건데 바로 똑같은 아이템으로 지금 이 회사가 수백억월을 벌고 있다니까..
(B양은 무슨 회사 이야기만 나오면 그 회사의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자기가 전에 생각했던거라고 말을 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즉, 지는 뭐하나 제대로 해본적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배기홍 (속으로): 씨발. 근데 어쩌라고? 그럼 니가 해보지?

내 주위 99%의 사람들이 A씨와 B양과 같은 DNA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솔직히 짜증이 좀 많이 난다. 그 잘난 주둥이를 나불나불 거릴 시간에 하나라도 한번 직접 몸으로 해봤으면 지금쯤 훌륭한 사람들이 됬을텐데…오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행동하는거란 과연 무엇인가를 솔선수범으로 보여준 나랑 각별하게 친한 두 사람에 대해서 몇마디 적어보려고 한다. 물론, 이 사람들 말고도 이 세상 1%의 행동가 중에는 너무나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entrepreneur들이 다 이 1%에 속한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내가 아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여기서 내가 소개하는 이 두분들이야말로 행동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아주 생생하게 나한테 보여준 분들이며 지금도 나는 일을 할때 항상 이 분들의 젊었을때의 용기와 행동에 대해서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inspiration을 많이 받곤 한다.

Yoshito Hori – Founder and CEO of the Globis Group
나는 요시토 호리 회장을 2000년도 스탠포드 대학 캠퍼스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스탠포드 대학 아시아 학생회에서 돌아가면서 아시아 출신의 성공적인 비즈니스맨들과 entrepreneur들을 초청해서 강연의 자리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의 스피커 중 한명이었다. 그당시에는 글로비스라는 회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이분의 몇가지 강연 내용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었다. 그 중 하나가 글로비스가 일본 회사지만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 진출할 기회가 생기면 본사를 일본이 아닌 한국에 설립하겠다는 주장이었다. 그당시 대부분의 회사들은 아시아 본부를 싱가폴이나 홍콩에 설립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는 한국과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dynamics에 대한 예찬을 하였다. 한국 사람을 칭찬하는 일본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라서 나는 강연이 끝난 후 호리 회장한테 다가가서 나를 소개하고 그 이후 계속 이메일로 연락을 하면서 지냈었다. 그리고 세상이 참으로 좁다는걸 다시 한번 느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서 근무하였던 자이오넥스라는 한국의 벤처 기업의 최대 투자자가 요시토 호리 회장이라는 점이었다. 하여튼 호리 회장과 나는 그동안 약 10년동안 알고 지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였고 서로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직간적접으로 아는 사이고 뭐 이렇게 엮인 부분들이 많았던 분이다.

Anyways, 요시토 호리는 1992년도에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서 MBA를 땄다. 그는 하버드에서 경영학 석사를 공부하면서 대부분의 수업에서 활용되는 Harvard Case Study에 상당히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 상황에서 벌어졌던 비즈니스 케이스들을 전략, 마케팅, 영업, 리더쉽 등등의 각기 다른 분야로 분류한 후에 학생들한테 케이스를 읽게 만들고 “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겠니?”라는 질문을 하면서 학생들을 실제 경영자 입장의 위치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방식이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그로써는 매우 신선하였으며 그는 이러한 케이스 방식을 일본의 교육에 접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하게 되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HBS 관계자들을 찾아가서 일본에 하버드 경영 대학원 분교를 시작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였지만 보기좋게 거절당하였다. 하지만 HBS는 호리에게 하버드의 case study에 대한 일본 유통권을 주었다. 물론 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았다. HBS에서 분교를 만들기 싫다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는 미국의 케이스 방식을 활용한 자신만의 일본식 경영대학원을 일본에 세우기로 결심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일본인들은 한국인들과는 달리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쭈욱 할 계획이면 해외유학보다는 오히려 일본에서 학교를 계속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본에서 인맥을 쌓는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인이나 한국인들같이 해외 유학을 가는 일본인들은 그렇게 많지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면 나도 스탠포드나 워튼 다닐때 한국 유학생들에 비해서 일본인들의 수는 매우 적었던게 기억나는데 아마도 이러한 이유때문인가 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굳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하고 유학의 길에 오르는거 보다는 일본 현지에서 full-time 또는 part-time으로 다닐 수 있는 MBA 프로그램이 일본인들의 정서와 문화에 더 맞을거라는 생각을 그는 하였다.

하지만 졸업 후 일본으로 귀국한 호리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MBA 학위와 하버드 케이스 스터디 유통권을 제외하고 그가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은 달랑 $7,000이었다. 특히 시대적으로는 일본의 경기는 망가질대로 망가졌고 젊은이들한테는 꿈조차 없던 암울한 시대에 그는 귀국을 한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일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을 하고 본인의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선배의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사용하며 Globis MBA (Globis Management School – GMS) 경영 대학원에 대한 찌라시와 브로셔를 직접 손으로 만들어서 당시 일본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들한테 우편으로 보내고 전화로 follow up을 하였다. 초기 반응은 당연히 매우 부정적이었다. 듣도보지도 못한 젊은이가 경영대학원을 운영한다며 일본 유수 대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니 나같아도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비웃었을거다. 인사담당자들은 유명한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하버드 케이스 스터디를 가지고 실전경영학을 가르쳐줄거라고 예상을 하였지만 막상 강사진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면, “제가 직접 가르칩니다.”라는 말을 들으니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브로셔 발송과 cold call을 한 지 몇개월이 지났다. 한명의 학생이라고 나타나기면 하면 성심성의껏 본인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모두 가르쳐 줄 준비가 되었지만 아직 그 누구한테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물론, 초기 자본금 $7,000은 거의 바닥이 났다. 그래도 호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브로셔와 커리큘럼을 잘 포장하여 대기업 인사담당자들한테 보냈고, 전화를 해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열성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렇게 몇개월을 노력하니…하늘도 이 젊고 포기를 모르는 일본인을 가엽게 여기셨는지 일생일대의 기회를 주셨다. 마침 일본 최대의 통신회사인 NTT의 인사 담당자가 NTT의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미국식 MBA 야간 교육 과정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와중에 호리가 보낸 찌라시를 우연한 기회에 보게되었고 그는 Globis에 문의전화를 하였다. 호리가 믿을만한 젊은이임을 확인한 후에 흔쾌히 NTT 중역 20명을 Globis Management School의 첫 수강생으로 등록을 시켰고 호리는 동경 시부야의 작고 허름한 강의실 빌려서 2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그가 지금까지 HBS에서 배운 내용을 죽을 각오로 자신보다 20~30살이나 더 많은 일본 노인네들을 대상으로 강의하였다. 아시아 스타일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던 NTT의 일본 중역들은 처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케이스 방식을 접하게 되었으며 호리는 강의실 중앙에서 아주 훌륭한 orchestrator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시부야의 허름한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던 글로비스의 첫 수업은 대성공이었고 NTT의 인사담당자는 그 자리에서 회사 간부들의 글로비스 경영대학원 장기 계약을 하였다. 글로비스 MBA 프로그램에 대한 입소문이 드디어 일본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부터는 우리가 영어로 흔히 말하는…and the rest is history 이다.

그 이후로 10년을 fast forward 해보자. 2006년도 말 Globis Management School은 한 학기에 2,000명의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대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학교를 다니지만 학생 중 10%는 full-time으로 학교를 다니는 개인 사업자들이다. GMS의 학생들은 첫 고객인 NTT를 포함한 약 250여개 일본 대기업의 직장인들이다. 나도 동경 한복판의 금싸가리같은 땅에 위치한 글로비스의 본사를 2번 방문하엿는데 빌딩 시가만해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들었다. 내가 갔을때는 MBA 수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미국 MBA 강의실을 본떠서 만든 계단형 원형 강의실에서 직접 강연하는 호리 회장과 그를 아주 열정적으로 청강하고 수업에 참여하였던 일본 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호리 회장은 그동안 MBA 프로그램과 더불어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였으며 그 중 하나가 벤처 캐피탌업이다. 그는 글로비스의 브랜드하에 1996년도에 50억원 규모의 Globis Capital Partners라는 VC을 launch하였고 1999년도에는 영국의 Apax Partners와 공동으로 2,000억원 규모의 fund를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 Globis Capital Partners는 1999년도에 일본식 회계 소프트웨어 벤처인 Works Application에 40억원을 투자하였는데 이 회사가 2002년도에 JASDAQ에 상장하면서 투자금액을 11배수에 회수하면서 초대박이 났다. 그외에 Globis Capital Partners는 Afro Samurai 애니매를 제작한 Gonzo Digimation, 일본의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인 Gree 및 Clara Online과 같은 다양한 벤처기업들에 투자를 하였다. 호리 회장은 Globis의 벤처 투자와 성공 케이스를 통하여 더 많은 학생들이 Globis MBA 프로그램에 지원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MBA 학생 중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MBA 강의실 바로 위층에 있는 Globis Capital Partners를 통해서 투자를 받을 기회를 갖을 수 있게 된다. 참고로 그는 MBA와 관련된 책을 또한 몇 권 출간하였는데 이 책들이 모두 일본에서 best seller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entrepreneur 중 한명이자 VC 이기도 하며, 아시아의 경제 발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visionary로 인정받고 있다.

호리 회장의 창업 스토리는 나한테 정말로 많은걸 느끼게 하였다. 인생은, 특히 비즈니스는 이렇게 해야하는거 같다. 호리 회장은 말을 많이 아낀다. 항상 남이 말하는걸 듣는편이지 본인은 정작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행동으로 우리에게 많은걸 보여준다. 1992년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면서 불가능하다고 욕을 하였던 일본식 경영 대학원의 설립을 혼자서 맨손으로 성공시켰던거와 같이…

나도 맘먹은게 있으면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이다. 전에 블로그에서 한번 mention하였지만 한국에서 나는 미수금을 받기위해서 거래처 사장의 면상에 식칼을 들이대민적도 있다. 가끔씩 와이프가 우스개소리로 (I really hope it’s 우스개소리..)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오빠가 내편인게 참 다행이다. 내 매니저나 또는 적이었다면 인생 피곤할거야…” 나랑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가끔씩 이런 말을 한다. “I am glad we are on the same boat. 너를 적으로 두고 비즈니스 해야한다면 인생 정말 우울할거야…”

이 말들이 과연 좋은 말들인가? 좋게 보면 좋은 말들이지만 어떻게 들으면 내가 인생을 참 냉정하고 병신같이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들이기도하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한다.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뭔가를 보여주고싶다면 행동으로 보여줘라. 그렇게 못할거 같다면 잘난 주둥이는 영원히 닥치고 있자.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