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El Capitan

storm_widescreen-wide구글캠퍼스에는 엄마들을 위한 Google for Moms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엄마가 되면서 휴직을 했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다시 직업 전선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여성분들 중 창업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한 세션에서 내가 스타트업에 투자를 한다는 건 바로 남의 배에 같이 탑승을 하는 것과 똑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탑승하기 전에는 이것저것 따지지만, 일단 배에 탑승을 하면 그 이후에는 선장과 그의 선원들에게 내 목숨을 맡겨야 한다.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들과 내가 평소 했던 생각들을 ‘배와 선장’의 프레임워크 안에서 비유하면서 이야기를 해봤는데, 지난 주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이게 굉장히 좋은 비유라는걸 깨달았다.

투자하기 전에 스타트업에 대해서 실사하고, 시장 조사를 하고, 레퍼런스 체크를 한다. 실사는 마치 배를 타고 항해를 떠나기 전에 배는 어떤 재질로 만들었는지,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보는 거와 비슷한다. 시장 조사는 이 배가 항해할 바다의 기류는 어떤지, 항해하는 동안 풍량과 풍속은 어떤지, 가는 곳에 해적선이 출몰하는지를 조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레퍼런스 체크는 이 선장과 선원들이 믿을 만한 사람들인지, 과거의 항해 기록은 어떤지에 대해서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아보는 것과 같다. 배를 타려면 운임을 내야하는데 과연 그 비용이 합당한지, 혹시 너무 비싼건 아닌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네고하는건 마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것과 비슷하다. 어떤 배를 타고, 어떤 선장과 선원들과 항해를 떠날지 결정하는건 쉽지 않기 때문에 오래 고민을 해야하는 중요한 일이다. 바다로 들어가는 그 순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건 거의 없고 내 목숨을 이 배와 선장한테 맡겨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를 직접 만들거나, 몰아보지 않은 사람들은(=대부분의 투자자들) 아무리 사전 조사와 준비를 많이 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 배를 봐도 이 배가 튼튼한 배인지 모르고, 바다를 아무리 봐도 파도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직접 배를 타 본 사람들이라도 바다와 날씨는 워낙 변덕스럽기 때문에 항해를 할 때마다 사정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 배를 항해할 사람들한테 베팅을 한다. 그 중에서도 우두머리인 선장한테 모든걸 맡긴다. 배가 아무리 조잡하더라도 능력있는 선장은 선원들을 설득하고 통제하면서 험한 바다를 뚫고 목적지까지 손님들을 무사히 모시기 때문이다.

우리같은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스타트업 경험이 없고, 실제 경험이 있더라도 이 바닥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변수가 많기 때문에 투자자가 스타트업을 성공으로 안내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시장조사를 하고 고민을 많이 해도 투자가 집행된 그 순간 부터는 우리는 남의 배를 타고, 대표이사인 그 배의 선장한테 목숨을 맡기는 것이다. 모든 투자자들은 잠잠하게 항해해서 목적지까지 무난하게 가길 원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태풍이 올 것이고, 선원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해적선들은 우리 배에 올라와서 모두 죽이려고 할 것이다. 실은 성공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확률은 매우 낮다. 대부분의 배들은 항해를 시작하자마자 침몰해서 전원 사망할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항해를 해야한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그 항해를 어떤 용감한 이들은 몸으로 부딪히면서 계속 도전한다. 우리같은 투자자들은 이런 선장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배를 타려고 한다. 침몰하면 어쩔 수 없이 다 같이 죽는다. 하지만, 침몰할때는 침몰하더라도 아주 멋있고, 흥분되고, 짜릿한 그런 항해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거친 바다 위에서 한 배를 탄 모든 사람들이 대동단결 하면서 고난을 극복하는 그러한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다.

오늘도 태풍속으로 무모하게 돌진하는 우리들의 capitan 들을 위해서.

<이미지 출처 = http://blindedbythelightt.blogspot.kr/2013/01/the-perfect-storm-how-increase-in.html>

기성세대가 문제인가?

얼마전에 ‘일자리가 미래다’ 라는 KBS 특집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다 보게 되었다. 요새 계속 화두가 되고 있고, 누구나 다 공감하는 청년실업 관련 내용이었다. 실은 나도 여기저기서 듣기만 해서 자세한 건 몰랐는데 이 다큐를 보면서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 많이 느꼈고 공감을 했다.

그래도 동의할 수 없었던 내용도 많았다. 다큐멘터리의 일부 내용이 방영 된 후에 방송국 현장무대에서 패널리스트들이 이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형태였는데, 요리사(전 코미디언) 팽현숙씨가 패널리스트 중 한 분 이었다. 취직을 못해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자살을 택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방영되자 팽현숙씨가 이 여자가 죽은건 (자기와 같은)기성세대의 잘못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젊은이들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데 기성세대가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서 일자리가 없으니, 이런 현상을 기성세대들이 올바로 고쳐야 한다는게 팽씨의 주장이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실은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정말로 슬펐다. 젊은 친구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방황하고, 위에서 말한거와 같이 어떤 분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하는 이 현실이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성세대들이 잘못을 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어느 시대나 문제는 존재하고, 어느 시대나 사는건 어렵다. 내 기억으로는 지금까지 한국이든 미국이든 주위 사람들이 “요새 경기가 너무 좋아서 살 맛 나요!” 라고 한 적은 없다. 힘들지 않았던 시대가 과연 역사에서 존재했을까?

세상은 어차피 복잡하고, 골치아프고, 불공평하다. 누구나 다 힘들다. 그리고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더욱 더 힘들어 질 것이다. 모두가 다 만족하는 일자리가 넘쳐 흐르던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다큐멘터리를 계속 보면 차이가 뚜렷한 두 부류의 젊은이들이 소개된다. 한 쪽에는 대기업 정규직 취업이 안 되니까 취업을 아예 포기한 젊은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또 한 쪽에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거나 택배회사에서 포장을 하는 – 즉, 뭐라도 하면서 생계비를 벌고, 계속 기회를 찾는 그런 젊은이들 – 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이 지방대학을 나와서 대기업 취직이 안 된다고 말하고, 고졸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라고 한탄할때, 중학교도 안 나와서 기업을 만들고 재벌이 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어느 시대라도 찾아볼 수 있다. 세월이 힘들지만, 이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잘 살고, 성공을 한다. 남들이 기성세대와 정부를 탓할때.

다른 분야는 잘 모르지만, 최소한 내가 일하고 있는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일이 잘 안 풀리면 기성세대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탓하고 채찍질 하면서 계속 전진한다. 기성세대를 탓하고, 나라를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운을 시대와 기성세대를 탓하는 순간, 우리는 동정받는 존재로 전락한다. 자신의 인생을 자기 손으로 어쩌지 못하고, 그저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다니는 무기력한 존재말이다.

내가 만약에 KBS 방송국 패널에 있었다면 팽현숙씨한테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뭐를 했는데?” 실은 나도 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남을 탓하지는 않는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우리 세대도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Switching cost

고객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건 과거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과거보다는 현재가 훨씬 더 어렵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에 비해서 웹서비스나 모바일 앱들의 종류와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제품들 사이에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입소문을 타고 고객들의 관심을 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만 하루에도 수 백개의 새로운 제품들이 구상되고 개발되는거 같다. 대부분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 있지만, 뭔가 문제가 있거나 사용상에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그런 단점들을 개선한 제품들이다. 그 누구나 다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하면 시장에 존재하는 기존 제품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특별한 기능이나 경험을 우리 제품은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많은 경쟁 제품의 고객들을 다 가져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뭐, 당장은 그렇게 되진 않겠지만 결국 그렇게 될 거라는 기대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현실은 주로 그렇지 않다. 아니, 완전 반대다. 창업팀이 생각하는 대로 어쩌면 그들의 제품은 그동안 시장에 없던 새로운 기능이나 경험을 제공할지도 모르지만, 이걸로 사용자를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는걸 많은 분들이 경험했고, 현재 경험하고 있고, 앞으로 경험할 것이다. 나도 이런 창업가들을 많이 만난다. 아니, 거의 매일 만나는데 이 분들에게 내가 항상 강조하는건 switching cost 이다. 즉, 이미 잘 사용하고 있는 유사 제품이 있는데 조금 더 좋은 기능이나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타는데(=switching)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 “현재 경쟁사는 초점을 잘 못 잡고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제품은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라며 자신의 제품과 논리를 방어한다. 어쩌면 이들이 맞을 수도 있다. 제품을 출시하면 엄청나게 인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나는 새로운 앱을 설치하는걸 정말 싫어한다. 수 많은 앱들이 내 아이폰에 깔려 있는데 정말로 필수 앱이 아니라면 – 우리 투자사 앱들은 예외다. 필수 앱이 아니라도 대부분 설치해서 사용해본다 – 내 아이폰 스크린에 설치될 확률은 매우 낮다. 실은 나는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내 주위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현대인이라면 ‘앱 피로’ 현상을 매일 경험한다. 어떨때는 앱스토의 아이콘들만 봐도 토할거 같다. 현실이 이러니 사용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앱을 설치하게 하는 건 정말로 쉽지 않다. 설치 후에 앱을 실행했는데 로그인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만약에 페이스북 회원가입 프로세스가 없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면 바로 나가버리고 다시는 그 앱을 사용하지 않는게 일반적인 행동이다.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게 만드는게 이렇게 힘들다. 새로운 기능이나 경험은 커녕, 대부분 그 전에 앱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 특히 이 앱이 이미 내가 잘 사용하고 있는 제품과 비슷하다면. 그만큼 switching cost가 높다.

그러니까 이미 존재하는 제품에 비해 아무리 새로운 기능과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을 만들어도, 내 인생에 정말로 유용하지 않으면 사용자들을 확보하는게 매우 어렵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보다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 모든 창업팀은 이 ‘더’의 의미를 잘 정의해야한다. 이미 잘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기존 제품이 아무리 완벽하지 않고 몇 가지 기능이 빠져있더라고,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타는 switching cost가 너무 높으면 원래 사용하던 익숙한 제품을 계속 사용할 확률이 높다. 이 말을 조금 더 간단하게 풀어보면,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하고, 새 기능들에 익숙해져야하는 귀찮음이 새로운 제품이 제공하는 가치보다 크다면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수치에 대해서

6-common-questions-hr-metrics-answered2000년도 초에 나는 스탠포드 대학원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제 1차 벤처 거품이 터지기 바로 직전이었는데, 이 때는 사업계획서 만으로도 펀딩을 받는 회사들이 주위에 꽤 있었다. 워드로 만든 50장 – 100장 짜리 사업계획서를 읽다보면 이 회사가 정말 잘 될 거 같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로 자세하고 잘 만들어진 자료들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이런 소설같은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투자자들을 만나는 창업가들은 거의 없다.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말 보다는 행동이 더 효과적이라서 다들 실제 제품을 개발하고 고객을 만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고, 이렇게 하는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비즈니스를 누가 하고 있고, 어떤 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어떻게 현존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할지에 대한 간략한 자료는 준비하는게 좋다. 나도 지겹도록 회사소개서들을 많이 보는데, 한정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비즈니스들을 보다보니 글씨보다는 그림이나 수치들을 선호한다. 창업을 하고 제품을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시장에서 실행을 해 본 팀이라면 누구나 다 기본적인 수치를 갖고 있을 것이다. 모바일 제품이라면 DAU, MAU, 체류시간 등과 같은 수치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웹서비스라면 UV, PV, 리텐션, 재방문율 등의 수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매출이나 ARPU와 같은 수치는 기본이다.

소개자료에 이런 수치들이 들어가 있다면,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 각 수치에 대한 정의를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수치들의 기본적인 의미는 정의되어 있지만, 운영하는 서비스와 회사의 기준들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나기 때문이다. 가령, 50%의 재방문율이라는 수치가 나한테 크게 와 닿지 않는데 그 이유는 전체 유저의 절반이 매일 재방문을 하는건지,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방문을 하는건지, 아니면 일 년에 한 번 이상 방문을 하는건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사용자의 절반이 매일 재방문을 하는 제품이라면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한 달에 두 번 방문을 하는 거라면…뭐,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매출도 마찬가지이다. 쿠팡이나 지마켓과 같이 다른 업체들이 입점해서 물건을 판매하는 오픈마켓의 경우, 어떤 회사들은 전체 ‘거래액’을 ‘매출’로 잡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매출이 조 단위가 나온다. 하지만, ‘판매수수료’를 ‘매출’로 잡는 회사들은 매출이 수 백억원 또는 수 천억원 단위로 잡힌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런 수치를 말할때는 정확한 정의도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또 한가지는, 회사와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서 그 비즈니스한테 중요한 수치들이 다를텐데, 이 또한 창업가들이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같은 전자상거래 회사라도 비전과 카테고리에 따라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수치들은 다를 수 있다. 모든 걸 판매하고 규모의 성장을 중요시 하는 전자상거래 업체라면 전체거래액이나 절대적인 사용자 수를 우선시 할 수 있지만, 특이하고 한정적인 제품만을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업체한테는 절대적인 사용자 수 보다는 – 어차피, 비싸고 특이한 제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의 수는 많지 않으니까 – 사용자 당 평균 구매액이나 재구매율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창업가들은 회사 설립을 하자마자 우리 회사한테 가장 중요한 수치들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 수치들을 종교와도 같이 열심히 측정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halogensoftware.com/ae/learn/centers-of-excellence/hr-metrics>

서로에 대한 존중

스트롱벤처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VC는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VC도 아니다. 아직 역사도 짧고, 우리는 정말 잘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우리보다 더 잘하는 훌륭한 투자사들이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최고의 투자자는 아니다. 실은 실적으로 보나, 인간적인 성품으로 보나, 이와는 거리가 많이 멀다. 잘 하고 싶고, 최선을 다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알파고가 아니라서 항상 틀리고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디가서 막 욕을 먹지는 않는다(그런거 같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신뢰와 존중을 가지고 일 하고, 이 바닥에서는 잘 될 때보다는 잘 안 될 때가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투자사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상식 밖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없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VC 들이 많다. 창업자들한테 VC는 아주 중요하고, 어떻게 보면 생명줄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VC가 자기 돈을 가지고 투자하는 건 아니지만, 어쨋든 회사의 생명줄인 돈줄을 잡았다 폈다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 보여야 하고 VC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항상 최선을 다한다. 이런 창업가들은 우리같은 VC들 한테는 매일 만나는 수 많은 스타트업 중 하나이지만, 창업가들에게 VC는 정말로 만나기 힘들고,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짧은 미팅을 위해서 몇 일을 고민하고 준비해야하는, 그런 존재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요새 펀드레이징 한다고 정말 바쁘다. 운이 좋아서 순조롭게 진행되는 회사들도 있지만, 대부분 잘 안되고 힘들어 한다. 이 중 한 회사가 어떤 VC에게 최종 발표를 했다. 한국에서는 이걸 최종 IR 미팅이라고 하는거 같다. 그 창투사의 사장을 포함한 모든 임원들이 참석했고, 우리 투자사 대표는 혼신을 다해서 만든 자료를 열변을 토하면서 발표했다. 모든 임원들이 좋아했고 okay를 했는데, 단 한 명이 – 대표이사가 – 반대를 해서 결국 통과하지 못 했다. 아무리 대표이사라지만, 다른 임원/파트너들이 다 찬성을 하는데 혼자 반대한다고 투자가 성사되지 않는것도 좀 희한하지만, 뭐 회사의 방침이 다 다르니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대표이사가 왜 반대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그냥 무조건 싫다고 하는데, 이건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임원들도 한 마디도 못하고 그냥 대표이사가 반대해서 안 되니, 미안하고 그동안 고생했다 하면서 그냥 그렇게 투심 미팅은 종료되었다.

이게 첫번째 미팅이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동안 오래 이야기를 했고, 여러 번 만났고, 내부적으로 괜찮으니 전체 파트너쉽 투심 미팅을 하게 된 거다. 여기에 우리 투자사 대표가 쏟아부은 시간, 노력, 노심초사, 마음고생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최종 투자 미팅에서는 당연히 찬성과 반대가 있을테고, 반대가 많으면 딜이 성사가 안 되는 건 당연하다. 내가 화가 나는 건 투자가 성사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최종 미팅까지 왔는데 투자가 결렬되면, 최소한 왜 안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창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아주 잘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목숨을 바쳐서 일을 하고, 이 미팅을 위해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 바친 이 젊은이에게 우리 같은 투자자들이 보여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건 투자자 대 창업가가 아니라 그냥 같은 인간 대 인간의 기본적인 에티켓이다. 그냥 이렇게 끝내는 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우리 투자사 대표는 이제 VC 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다. 좋지 않은 소문은 빠르게 퍼지고, 이렇게 되면 나는 한국의 전체 벤처 생태계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은 투자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VC 투자를 돈 따먹기로 생각한다면 가능하겠지만, VC 투자는 단순한 돈 따먹기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투자자와 창업가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갖고 일을 해야한다. 위에서 말 한 대로 나도 존경받는 대단한 VC는 아니지만, 이런 투자자들 때문에 우리같이 선량한? 투자자들도 싸잡아서 욕을 먹는다. 참고로, 이 업계에는 나쁜 VC 보다는 좋은 VC 들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는 해주고 싶고, 운이 좋지 않았던 우리 투자사 대표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면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