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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회장님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그리고 애플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회사가 됐거나, 남아 있어도 공룡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거 같다. 나는 아직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장래가 밝다고 생각하고,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보다 오히려 사회에 더 큰 긍정적인 공헌을 하는 회사라고 믿는다. 실은, 이런 좋은 느낌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보다는 43년 전에 이 회사를 창업한 빌 게이츠에 대한 존경과 믿음 때문에 생기는 거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했지만, 그동안 빌 게이츠 회장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었고, 운 좋게도 직접 이야기할 기회도 있었는데, 비즈니스를 떠나서 그냥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 분을 좋아하게 됐다. 물론, 사업을 하면서 이상한 결정도 했고, 힘을 이용해 약자를 완전히 뭉개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인류에 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반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빌 게이츠는 이제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서 Bill & Melinda Gates 재단을 통해서 세계 빈곤과 질병과 싸우고 있고, 교육기회를 확대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 재단의 2018년도 연례편지에 빌과 멜린다 재단에 대해 사람들이 물어보는 가장 어려운 10가지 질문과 답이 실렸는데, 여기서는 질문만 일단 소개해본다:

1/ 왜 미국에는 더 기부하지 않나요? (Why don’t you give more in the United States?)
2/ 미국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수조 원을 투자했는데, 어떤 성과가 있나요? (What do you have to show for the billions you’ve spent on U.S. education?)
3/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왜 기부하지 않나요? (Why don’t you give money to fight climate change?)
4/ 두 분의 개인적인 가치를 다른 문화에 강요하는 건 아닌가요? (Are you imposing your values on other cultures?)
5/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면 오히려 인구과잉이 발생하지 않나요? (Does saving kids’ lives lead to overpopulation?)
6/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재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How are President Trump’s policies affecting your foundation’s work?)
7/ 기업들과 왜 협업하나요? (Why do you work with corporations?)
8/ 재단의 영향이 너무 센 거 아닌가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Is it fair that you have so much influence?)
9/ 두 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What happens when the two of you disagree?)
10/ 개인 돈을 굳이 왜 기부하나요? 개인적으로 얻는 게 뭐가 있나요? (Why are you really giving your money away – what’s in it for you?)

좀 길지만, 영어 공부하는 셈 치고라도 한 번 시간을 내서 읽어보는 걸 권장하고 싶다.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 담백하다. 트럼프 정부에 대한 의견도 소신 있어서 좋고, 지금까지 재단이 잘 못 한 점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내용도 좋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곳에 집중 투자 – 교육 투자도 다른 분야보다는 고등학교 교육에 집중 투자 – 하는 전략은 대기업 경영 경험이 없으면 할 수 없기에 더 멋진 거 같다.

마지막 질문은 빌 게이츠뿐만 아니라, 자수성가해서 이룬 부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분들한테 나도 항상 하고 싶은 질문이다. 의미 있는 일이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한다는 빌 게이츠의 답변에서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도 있고,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건 참 쉽지 않은데,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도 그랬고, 재단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누구나 젊을 땐 열심히 일하지만, 나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아주 열심히 일했다. 결국은 빌 게이츠를 부자로 만들어 준 거라서 당시엔 좀 씁쓸했지만,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로 번 100조 원 이상의 돈 중 99%를 살아 있을 때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준거라서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빌 게이츠가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많이 벌어서 좋은 일에 다 쓰고, 그리고 가난하게 죽는 건 아주 좋은 거 같다. 노벨 평화상은 빌 게이츠가 받아야 한다고 한 내 트친이 있었는데,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다크호스와 블랙스완

테크크런치에서 발행한 Top-Heavy US VC Market May Lose Footing As Early-Stage Deals Slip Away 라는 글을 읽었다. 좋은 내용이 많은데, 내가 자세히 봤던 건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시드와 초기 투자가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지난 54개월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이런 추세가 아주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아마도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이들은 분석한다. 일단 스타트업이 전반적으로 성숙해져서 초기 투자보다는 그 이후의 투자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과 소수의 특정 회사들이 자기만의 시장을 독식하면서 대부분 돈이 극소수의 회사에 몰린다는 분석이다(예를 들면 아마존의 이커머스 독식; 페이스북과 구글의 웹과 모바일 독식; 우버와 리프트의 택시/운송 시장 독식이 있다).

실제 몇 개의 차트를 보면 소수의 회사가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는 분석이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 지난 54개월 동안 미국 여행 분야 스타트업의 전체 펀딩 중 절반이 에어비앤비에 투자되었고, 택시/운송 분야 전체 펀딩의 절반 이상이 우버와 리프트, 이 두 회사에 투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의 뉘앙스는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앞으로 새로운 슈퍼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건 정말로 힘들 것이고, 조금 커져도 결국엔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등과 같은 공룡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초기 스타트업의 펀딩은 계속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결론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과거를 보면 미래가 그대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미래를 보여준다면, 비즈니스의 세계는 계속 반복된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회사가 갑자기 급성장하면서, 특정 시장을 수직적으로 독식하고, 다른 시장으로 수평적으로 확장하면서 세상을 먹을 기세로 커지는 걸 우린 자주 볼 수 있다. 지금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회사가 여기에 속하지만, 이런 회사는 과거에도 찾아볼 수 있었다. 90년대 말에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시스코 같은 회사가 세상을 먹을 기세로 성장했고, 그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모든 사람이 이제 이 회사가 세상을 접수하겠다는 생각을 할 때, 갑자기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스타트업이 탄생한다. 그리고 비슷한 현상은 반복된다.

아마존을 능가할 수 있는 이커머스 플레이어가 내가 죽기 전에 과연 나올까? 현실적으로 보면 힘들다. 페이스북을 능가하는 소셜 미디어가 내가 죽기 전에 과연 나올까? 이 또한 현실적으로 보면 힘들다. 하지만, 그래서 스타트업이 재미있는 거 같다. 분명히 어디에서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올 것이고, 다시 한번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는 걸 나는 믿는다. 현실적으로는 힘든 걸 비현실적으로 가능케 한다.

세상은 다크호스와 블랙스완이 넘쳐흐르지만, 실제 벌어지기 전까지는 잘 안 보인다는 게 묘미다.

멈추지 않는 변신 – Windows 10

a마이크로소프트가 어제 Windows 10을 발표 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tech 관련 전문가, 분석가 그리고 기자들은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정기적으로 하는 새로운 윈도우스 발표라고 생각했고 Windows 8이 기대이하였기 때문에 8에서 실수했던 부분들을 고친 운영체제 정도로 생각을 했다.

발표를 실시간으로 전부 다 보지는 못 했지만 내가 가장 놀랐던 건 독점적인 위치를 이용해 30년 이상 고객들한테 1원이라도 더 쥐어짜내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스 10 무료 업그레이드를 제공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로 인해 약 5,5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 뭐, 이 정도는 마이크로스프트한테 큰 돈은 아니다 – 돈을 떠나서 ‘독점적인 소프트웨어를 최대한 비싸게 팔자’ 라는 회사의 방향 자체를 180도 바꾸는거라서 놀라웠다. 물론, 내부적으로 많은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했고, 윈도우스를 무료로 주면 이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장기적인 추가 매출이 더 높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겠지만 작년 매출 90조원을 한 큰 회사한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3번째 대표이사인 Satya Nadella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장 취임한지 1년도 안 되었지만 그동안 기업문화를 바꾸고, 과거에 절대로 물어보지 않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고, 변화하고 있는 시장을 더욱 더 경청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40년을 과감하게 버리고 앞으로 갈 40년을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한테도 현실은 만만치 않다. 세상은 레드몬드의 공룡보다 조금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더 작고 빠른 기업들이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마이크로스프트의 밥을 야금 야금 먹고 있다. 특히 모바일과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완전 후발주자이다. 그렇게 갈길은 멀지만, 드디어 방향은 잘 잡은거 같다. 똑똑한 인재들, 엄청난 돈, 그리고 좋은 리더십을 잘 이용해서 더 빨리 뛰어서 꼴찌를 모면하길 바란다.

Windows 10 – 세상은 조금 더 좋아진 운영체제를 기대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이상을 보여줬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다는걸 보여줬다. 그리고 회사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줬다. 아, 맞다….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가상현실과 홀로그램도 보여줬다.

멋지다. 그리고 기대된다.

마이크로소프트 관련 과거 포스팅:
마이크로소프트의 현실 받아들이기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습

<이미지 출처 = https://www.dailyherald.com/article/20150122/business/150129644/>

마이크로소프트의 현실 받아들이기

사람이든 기업이든 누구나 다 어느 순간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지만 쓸데없는 자존심과 과거를 과감하게 버리고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다. 스티브 발머 체제하의 마이크로소프트는 불행하게도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거 PC 체제의 독점 시장만을 생각하면서 모바일이나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검색 분야의 경쟁에서 계속 뒤처지는 걸 인정하지 않고 –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지 않는 것 (인식하지 못하면 정말 바보다) – 과거에 항상 1등 했으니까 새로운 시장에서도 돈을 펑펑 쓰면 언젠가는 또 1등 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비즈니스를 해왔던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마이크로소프트에도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고 새로운 사장이 영입된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그 효과는 이미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물론 기대심리에 많은 영향을 받는 주가랑 실제 회사의 상황이랑은 큰 상관은 없다). 스티브 발머가 은퇴를 발표한 후 거의 40년 동안 딱 두 명의 CEO만을 가졌던 마이크로소프트의 3번째 사장이 누가 될지에 대해서 엄청난 관심과 말들이 많았다. 다른 생각과 시각을 가진 외부인사를 영입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컴퓨팅 시장을 공략하냐 아니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훈련받고 회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내부인사를 승진시켜서 보수적인 비즈니스를 하면서 월가를 만족하게 하냐. Tech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이에 대해 생각해 봤을 거 같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에서 선택한 사람은 내부인사 Satya Nadella 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Nadella 사장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전문가들과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존 비즈니스와 새로운 비즈니스들을 잘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내부 영업력이 뛰어난 경영자인 거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점수를 보면 Nadella 사장이 방향은 잘 잡은 거 같다. 2월 4일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사장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한 후 2달 만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40달러를 웃돌고 있는데 이는 최근 14년 동안 가장 높은 값이다. 특히 iPad 용 오피스 앱 출시와 스마트폰과 소형 스크린 태블릿들을 위한 Windows 무료화 발표는 업계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었다. 드디어 마이크로소프트도 미래의 기기들은 Windows 기반이 아닐 확률이 더 높고,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사용하지 않을 회사원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업계를 재평가하고 미래의 전략을 실행하겠다는 의지로 이해하면 될 거 같다. 나델라 사장은 또한 앞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후발주자의) 도전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혁신을 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스티브 발머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들이다.

최근 들어 다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좋아졌다. 구글도 애플도 이젠 사악하게 느껴진다. 아마존은 너무 얄밉고 페이스북은 깍쟁이 같다. 아직 많은 욕을 먹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지만 앞으로 잘해서 다시 한번 예전의 명성을 되찾길.

<이미지 출처 = http://www.businessinsider.com/microsoft-stock-near-high-2014-3>

ActiveX –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를 탓해라

바로 전에 포스팅한 글이 대한민국 전자정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한국 전자정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뺄 수 없는 게 바로 ActiveX이다. 액티브엑스가 짜증 나는 건 잘 알지만, 솔직히 나도 왜 한국 사이트들이 액티브엑스로 도배 되어 있는지는 잘 몰랐는데 이번 기회를 계기로 나름대로 한번 조사를 해봤다. 어떤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를 탓하는데 내가 좀 알아보니 이건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잘못된 선택이다.

1999년 2월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은 (현 KISA) 안전한 전자상거래를 위해 SEED라는 자체 암호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의 자세한 내용은 나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온라인 거래를 하는 모든 사용자는 전자인증서와 비밀번호를 통해서 전자상거래를 하는 사람이 본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웹사이트들이 이런 전자인증서를 인증하기 위해서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ActiveX 플러그인을 사용해야 한다. Wikipedia에 의하면 ‘ActiveX’는 웹 사용자의 PC에 설치해 여러 종류의 파일과 데이터들을 웹에서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러그인 기술이다. 액티브엑스와 인증서 사용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동반되는데 그 중 으뜸은 바로 액티브엑스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스 플랫폼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한국 정부가 전자인증서를 통한 본인 인증을 법으로 의무화시키면서 한국의 모든 웹사이트와 인터넷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액티브엑스가 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브라우저는 IE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모든 네티즌이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사용하게 되었고, 전자금융거래와 전자상거래 사이트만 액티브엑스를 사용하면 되지만 자연스럽게 한국의 웹 개발자들은 모든 웹사이트와 인터넷 프로그램을 IE에 최적화해서 출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해외 거주자들이나 한국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해외 고객들은 불평하기 시작했고, 시대를 거슬러가는 무식한 정책이라는 걸 한국 정부도 깨닫고 이 사태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법안을 마련했다. 2010년도에는 액티브엑스를 의무적으로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법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바로 액티브엑스를 사용하지 않으려면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보안을 제공하는 기술을 사용해야 하며, 그 기술을 사용하려면 정부에서 별도로 만든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귀찮은 과정을 거쳐 가면서 누가 사이트를 다시 개발하겠는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2년 7월의 통계에 따르면 전자결제 이용률이 높은 금융 분야 웹사이트의 93%가 액티브엑스를 사용하며, 서점 분야는 100%가 액티브엑스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멍청하고 책임감 없는 정부의 선택이었는가? 아무 생각도 없고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우물 안 개구리들이 13년 전에 선택한 정책이 – 분명히 그들은 이제 다른 나라에서 한국을 벤치 마크할 것이라고 박수치면서 좋아했겠지 –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모든 국민과 비즈니스들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한국 서비스들이 글로벌 서비스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잘 사용하다가 결제를 하려고 하면 액티브엑스의 무한루프에 빠지게 되는데 요새 이런 걸 참을 수 있는 외국인은 없기 때문이다.
보안 때문이라고? 오히려 액티브엑스는 코드 실행에 대한 제약이 없으므로 바이러스나 악성 스파이웨어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서 실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조차 ActiveX의 사용자제를 권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용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주로 사용하는 미국보다 한국에서 전자금융사고와 사기가 더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액티브엑스를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법안을 통과하겠다는 움직임들이 최근 들어 많이 보이지만, 역시 책상에서 연필만 깎는 분들이 생각하고 만드는 정책이기 때문에 난 별로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런 보안과 인증 정책에 정부가 개입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며, 굳이 정부에서 이런 걸 해야겠다면 뭘 좀 제대로 알고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