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더블 다운 하기

블랙잭 게임에서 오리지널 베트의 금액만큼 베트를 증가시켜 카드 한 장을 받는 걸 doubling down이라고 하는데 요새 나는 이 더블 다운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블랙잭에 취미를 붙인 건 아니고, 투자 관련 더블 다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도 이제 투자한 포트폴리오 사들의 수가 꽤 늘어났다. 현재 15개 회사에 투자했는데 이 중 어떤 회사들은 예상보다 잘하고 있고 또 이와는 반대로 어떤 회사들은 생각했던 거 보다 고전하고 있다. 그리고 잘하는 회사들과 그렇지 못한 회사들 사이의 gap이 커질수록 나는 고민하게 된다. 나한테 가장 소중한 자산은 시간인데 이 시간이라는 건 한정되어 있고, 이 소중한 시간을 어느 회사들과 같이 보내는 게 가장 효율적일까? 돈을 집어넣고 회수율만을 생각하는 순수 financial 투자자의 처지에서 봤을 때는 가능성이 작아 보이는 건 과감하게 포기하고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회사들에 시간과 돈을 더블 다운하는 게 스스로나 그 투자자한테 투자한 투자자들을 위해서는 그나마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투자 전략일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회사를 같이 만들어가는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더블 다운 전략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항상 고민하는 점이다.

투자를 오랫동안 해오신 업계 선배들은 ‘더블 다운’은 중요하다고 하신다. 어차피 냉정하고 치열한 바닥이고 이 업계도 강자만이 생존할 수 있으므로 이런 강자들을 일찌감치 발견한 후에 이 회사들에 최대한 집중 – 시간과 돈 모두 – 해야 한다고 하신다. 이성적으로는 이게 맞고 나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으로 생각할수록 나는 현재 고생하고 고전하고 있는 회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이들은 아직 정확한 product fit을 찾지 못했고, 고객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했고 비즈니스 모델도 못 만들어서 지금 이 글을 쓰는 현재에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회사들이다. 물론, 나는 돈만 조금 보태준 제 3자라서 창업팀만큼 이 비즈니스나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보다는 이 팀에 투자했기 때문에 나는 이 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들이 하려고 하는 걸 계속 지원해주고 응원해주고 싶다.

그러다가 운 좋게 tipping point를 찾으면, 갑자기 이들도 ‘강자’가 될 수 있다. 만약 운이 없으면 그냥 망하고, 숫자로 보면 시간 낭비한 게 되겠지만, 단순히 돈을 대준 투자자보다는 상황이 좋을 때나 궂을 때나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과 끝까지 같이 한 ‘파트너’로 기억되면 좋겠다.

나는 좆밥 회사들에 투자한다

사진 2014. 1. 4. 오후 8 50 00

얼마 전에 올린 ‘한국 대기업들도 할 말 많다‘라는 글에 대해서 논란도 많았고 예상치 못했던 코멘트들도 많이 달렸다. 솔직히 나는 이 글을 나쁜 의도 보다는 좋은 의도에서 썼는데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분들도 많았나 보다. 전반적인 의견은 한국과 미국은 환경 자체가 다르므로 미국과 같은 exit을 한국에서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많은 댓글 중 솔직히 상당히 거슬렸던 내용이 있었는데, 여기서 한번 공유해 본다(내 블로그에 직접 올라온 거는 아니고 비석세스에 올라온 답글이다). 그런데 이 정도 소신으로 답글을 쓰시려면 왠만하면 ‘익명’이나 ‘가명’이 아닌 본명을 쓰라고 권장하고 싶다. 이딴 욕지거리를 익명으로 쓰는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강하다기보다는 그냥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글을 읽어보면 기본적으로 그냥 너는 ‘미국 상황 잘모르는 병신’ ‘너는 자본주의 개념조차 모르는 jot밥’ ‘자유경쟁이 뭔지 모르는 개병신’ 이렇게 상대를 기본적으로 하대하고 글을 적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기업가 분이였는데 정말 큰 실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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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자본주의 개념 많이 배우고 똑똑하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미국에서 창업 경험해보았고, 대 성공(?)은 모르겠으나 투자자로 활동하셔서 스타트업 평가하는 사회적 위치에 올라가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미국상황 잘 모르는 한국 스타트업에 ‘닥치고 개발해라’라고 좋은 말씀해주시면 ‘어익후’ ‘이런 좋은 말씀을’ 하고 립서비스 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좋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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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배기홍님. 아무리 좆밥처럼 보이는 아시아 변방, 한국의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소통하시길 권합니다. 배기홍님이 좆밥처럼 생각한 한국 스타트업 중에서도 인고의 세월을 거쳐 훌륭한 기업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잘나셨는지 모르겠으나 겸손하시길 권합니다.

솔직히 난 이 분의 정확한 포인트를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분이 옳다 틀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싶지도, 할 자격도 없다. 이건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어차피 우린 우리만의 의견이 모두 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우리 Strong Ventures는 이 분이 말하는 ‘좆밥’같은 한국 회사들에 매우 활발하게 투자를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이 좆밥같은 회사들이 빨리 글로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회사들로 성장할 수 있을까 대가리 터지게 1년 365일 고민하고 있다. 이 분이 말하는 “배기홍님이 좆밥처럼 생각한 한국 스타트업 중에서도 인고의 세월을 거쳐 훌륭한 기업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 와, 제발 이렇게 되길, 그리고 제발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이렇게 훌륭한 기업이 되길 나랑 내 파트너 John은 매일 기도하고 있다. 이 분은 뭘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투자한 한국 스타트업들의 결과에 따라서 천국으로 날아갈 수도 있고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과 커리어가 이 분이 말하는 ‘좆밥’같은 한국 스타트업에 달려있는데 내가 과연 ‘너무 잘나서’ 한국 회사들이 잘 안 되길 바라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우리가 투자한 한국 회사들이 잘 돼야 하지만, 이 중 너무 매력적이어서 대기업이 당장 큰 금액에 인수를 고려하게끔 하는 회사들은 아직 없다. 아니 – 우리가 투자해서 어떻게 보면 우리 얼굴에 침 뱉기지만 – 대부분의 회사는 한참 멀었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들로 구성된 회사라면 항상 가능성은 존재하며, 우리 모두 창업팀들과 같이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그래, 어쩌면 전에 쓴 글에서 내가 한국 스타트업들을 ‘좆밥’으로 보고 있다는 냄새를 풍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야말로 이 회사들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같이 일하고 있고 한국 회사들이 잘되길 가장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점도 제발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분은 이렇게 열정적으로 댓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제발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시길. 벤처를 운영하시는 분이라면 자신의 회사가 ‘좆밥’이 되지 않도록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정말로.

Strong Ventures 유래

우리 회사 이름은 Strong Ventures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이름이 그냥 ‘강한(strong)’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이보다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다.

(VC들은 잘 아실 텐데 일반인들은 잘 모를 것이다) 대부분의 벤처 펀드들의 이름은 창투사가 위치한 지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거나 창투사 founder들의 이름/학교/지역/고향 등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즉, 대부분의 펀드는 단순한 이름을 넘어서 더 개인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예를 들면:
–Sequoia Capital은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Sequoia 나무에서 유래
–Palo Alto Investors는 회사가 위치한 동네 Palo Alto에서 유래
–DFJ는 펀드 창업자 3명의 이름 앞 자에서 유래 (Draper, Fisher, Jurvetson)
–Menlo Ventures는 회사가 위치한 동네 Menlo Park에서 유래

등등 대부분 벤처펀드의 이름을 보면 이런 경우가 많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John이랑 나도 펀드를 처음 만들 때 우리랑 개인적으로 연관된 재미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둘 다 어릴 적부터 스페인의 까나리아 군도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 글 참고) 여기서 뭔가 영감을 얻자고 했고 이런저런 지명을 생각해 봤다. 우리가 자란 곳의 영문 이름이 Canary Islands이니까 처음에는 Canary Ventures라는 이름을 생각했는데 ‘카나리아’ 새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고 – 조금 약한 느낌 – 한국사람들 한테는 까나리 액젓도 연상되는 거 같아서 pass. 까나리아 군도의 라스팔마스(Las Palmas)라는 도시에 살았으니까 Las Palmas Ventures도 고려해봤지만(영어로는 Palm Trees) “라스팔마스”는 너무 길어 발음하기가 힘들어서 pass.

그러다가 까나리아 군도의 다른 섬들 이름을 생각해봤다(참고로 까나리아 군도는 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Fuerteventura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의 이름에서 우리 회사 이름이 나왔다. Fuerteventura를 영어로 옮기면 “fuerte = strong” , “ventura = venture(이 번역은 아주 깔끔한 번역은 아니지만 비슷하다)” 라서 Strong Ventures로 정했다.
fuerteventura
다행히도 strongvc.com 도메인이 구매 가능했고(아주 운이 좋았다), “스트롱 벤처스”라는 이름이 누구나 한번 들으면 거의 잊지 않는 이름이며 한국 사람들이 발음/기억하기에도 아주 쉬운 이름이었다. 이게 Strong Ventures 이름의 유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