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Tag Along, Drag Along

이제 갓 투자에 입문한 투자자, 또는 첫 번째 투자유치를 하는 창업가에게 투자계약서 자체는 한글이지만, 그 내용은 거의 외국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자 경험이 있는 투자자나 투자유치 경험이 있는 창업가는 이미 잘 아는 내용이지만, 최근에 우리 투자사 대표들이 나한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용어가 동반매도참여권(Tag Along Right: TAR)과 공동매각요청권(Drag Along Right: DAR) 이어서 여기서 몇 자 적어본다.

대부분 사람이 이 두 가지 권리는 창업가보다는 투자자를 위한 조항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실은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를 위한 권리이다. 참고로, 간혹 두 가지 항목이 모두 들어간 계약서도 있지만, 대부분 둘 중 한 가지만 포함된다.

일단, 동반매도참여권(TAR)은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항목인데, 간단히 말해서 회사의 대주주가 주식을 매각하게 되면, 소액주주도 같은 가격과 조건에 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이다.

TAR이 존재하는 이유는 큰돈을 굴리는 VC와 같은 기관투자자에 비해서 개인 소액투자자는 회사의 주주로서 큰 힘이 없으므로,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기관투자자만큼의 협상 권리와 힘을 주기 위해서이다. 특히, 유동성이 떨어지는 비상장 주식을 매각할 때 큰 기관투자자는 구매자를 더 쉽게 찾을 수 있고, 규모를 이용해서 더 좋은 가격이나 조건을 협의할 수 있다. 반면에, 개인투자자는 구매자를 찾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부족하고, 찾아도 워낙 소액주주이기 때문에 좋은 조건을 협의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TAR 항목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으면, 기관투자자와 같은 대주주가 주식을 인수할 구매자를 섭외하고, 좋은 조건을 협의해 놓으면, 소액주주는 그냥 여기에 ‘묻어서’ 주식을 판매할 수 있다.

동반매도참여권리가 없으면 대주주는 이미 투자한 가격보다 더 좋은 가격에 회사의 주식을 판매하고 회수를 했는데, 소액주주는 아직도 미래가 불투명한 스타트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대부분 소액주주는 대주주가 주식을 처분했다는 사실도 모른다. 스타트업이 결국 상장하거나 좋은 조건에 매각된다면, 끝까지 주식을 가지고 있던 소액주주가 재미를 보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망하거나, 가격이 왔다 갔다 하므로 적절한 기회가 있으면 주식을 매각하는 것도 현명하므로 소액주주한테 TAR은 중요하다.

공동매각요청권(DAR)도 비슷한 종류의 권리인데, TAR이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면 DAR은 대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대주주가 회사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이 권리가 행사되면, 소액주주도 강제로 같은 조건에 주식을 판매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인수나 합병되면, 인수하는 회사는 피인수 회사의 경영권을 완전히 가져가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소액지분까지 포함해서 지분 100%를 인수하길 원한다. 그런데, 간혹가다 소액주주가 회사의 매각이나 청산을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경우가 있고, 이럴 경우 스타트업의 대주주가 인수를 승인해도 소액주주가 반대하면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수가 있다. 또는, 회사의 정관에 인수나 합병은 모든 주주가 만장일치로 승인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DAR은 대주주를 포함해서 소액주주도 모두 같은 조건에 주식을 강제로 판매하게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TAR과 DAR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용은 거의 같지만, 그 권리가 행사되는 시점의 상황과 누가 그 권리를 행사하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대주주나 소액주주나 모두 – 내가 앞서 이 권리들은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했는데, 창업가나 투자자 모두 소액주주가 될 수도 있고, 대주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이 두 가지 권리를 본인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으므로, 최근에 내가 본 계약서는 동반매도참여권과 공동매각요청권이 포함되어 있고, 이 내용은 특별한 이유 없이는 계약서에서 제외하는 건 힘들다.

섣부른 마케팅

마케팅은 참 어렵다.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창업가는 “우린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시장이 잘 모르는 거 같으니까, 이젠 마케팅을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한다. 내 글을 계속 읽으신 분들은 마케팅에 대한 내 기본적인 생각을 아실 거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큰돈을 쓰는 마케팅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게 내 지론이고 지금도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시장에서 반응이 없다면, 마케팅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제품이 후졌기 때문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제품 그 자체가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제품을 출시 한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스타트업들을 만나면 모두가 어떻게 하면 마케팅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중 최근에 만난 회사들은 큰 무대에 나가서 피칭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자료를 만들고 여기저기 지원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거 같았는데, 이게 왜 현명하지 않은 전략인지 내 경험 두 가지를 공유해본다. 실은 좀 오래된 경험이라서 현실감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2007년 9월 17일 샌프란시스코 Palace 호텔에서 제1회 TechCrunch 행사가 열렸고, 뮤직쉐이크는 운 좋게 최종 피칭 회사로 선정되었다. 원래는 TechCrunch20라는 이름의 행사로 20개의 최종 스타트업이 피칭하는 자리였는데, 좋은 회사들이 너무 많아서 TechCrunch40로 행사 이름을 바꿔서 40개의 스타트업이 피칭을 했다. 이 행사가 계속 커지면서 지금의 TechCrunch Disrupt로 진화한 것이다. 여기 지원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고, 테크크런치 스태프들과 인터뷰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발표 준비를 위해서 며칠을 이 행사에만 집중해야 했다. 당연히 실제 비즈니스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우리가 너무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걸 세상이 알 수 있게 멋지게 발표해서 마케팅하면 우리도 과도한 트래픽으로 인해 서버가 뻗어버리는 즐거운 고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확신했다.

워낙 연습을 많이 해서 발표는 잘했고, 재미있는 제품이라서 그런지 청중의 환호가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성공적인 피칭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테크크런치의 힘을 받아 전 세계에 뮤직쉐이크를 알렸고, 과거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트래픽이 우리 사이트로 몰렸다. 그런데 이 기쁨도 며칠 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우리 제품을 사용해보니, 여기저기 버그들이 발견되었고, 사용자들에게 우리 제품의 가치를 완벽하게 전달할만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트래픽이 엄청나게 왔다가, 엄청나게 다시 다 빠졌다.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었다면, 많은 사용자를 계속 lock-in 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갑자기 상승했다가 수직으로 하강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그림을 구글 애널리틱스에 남겼다. 제품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섣부른 마케팅은 회사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나는 스스로 내렸다.

현명한 사람은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하는데, 나는 현명하지 못한 거 같다. 위에서 말한 경험이 있음에도 나는 2012년에 똑같은 실수를 범했다. 이번에는 우리 투자사 The Good Ear Company가 VentureBeat에서 개최하는 MobileBeat 2012 스마트폰 앱 대회에 지원했는데, 최종 발표 업체로 선정되었고, 미국에는 인력이 없는 이유로 내가 대신해서 피칭을 했다. 테크크런치만큼 크거나 유명한 대회는 아니었지만, 내 할 일 모두 제치고 열심히 준비했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지만, 1등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 앱이 아직 아이폰 앱스토어 심사 중이어서 결국 내 피칭을 보고 이 앱에 관심을 보였던 그 많은 청중이 그 자리에서 앱을 당장 사용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이렇게 힘들게 일으킨 관심은 몇 시간 만에 곧바로 증발했다.

이 두 경험을 통해서 내가 배운 점은 다음과 같다:

1/ 사용자들이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가 없는 제품은 아무리 마케팅해도 소용없다
2/ 출시하지도 않은 제품은 아무리 마케팅해도 소용없다
3/ 섣부른 마케팅은 시간 낭비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제대로 된 제품도 없는데 여기저기 피칭 대회에 기웃거리는 창업가들이 너무나 많다. 가끔 이런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가보면, 발전 없는 쓰레기 같은 제품으로 2년 동안 이런 대회에만 나오는 대표이사들도 만나봤다. 팀이 정말 자랑스러워할 만한 제품을 출시한 후, 시장의 반응이 궁금해서 이런 대회에 한 번 정도 나가서 피칭하는건 괜찮은 거 같다. 그 이상은 절대적인 시간 낭비다. 그럴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제대로 된 제품이나 만들어라. 그게 진짜이자, 유일하게 의미 있는 마케팅이다.

디캠프 썰전에 대한 단상

짧은 미국 출장 중, 썰전 전원책 변호사의 디캠프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접했다. 관련 내용으로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도배되었고, 업계 분들이 이미 다양한 이야기와 의견을 표시했다. 남의 집 살림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나도 몇 마디만 하고 넘어가고 싶다.

스트롱도 디캠프가 출자한(회사가 아니라 펀드에 투자하는걸 ‘출자’라고 한다) 펀드 중 하나이며, 나는 디캠프가 생긴 이후 계속 업무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재단 분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있으므로 이 조직이 어떤 철학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디캠프의 장부를 보거나, 내부 사정과 상황까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전변 보다는 잘 안다고 자신한다. 방송을 보신 분들은 이제 스트롱도 무슨 특혜를 받아서 디캠프의 출자를 받은 걸로 생각하실 텐데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100% 존과 나의 실력과 노력만으로 출자를 받았고, 출자 결정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졌다. 그 모든 과정에 내가 직접, 100%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비즈니스라는 게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사고가 터지는 경우도 있고, 이는 벤처캐피털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사고 때문에 특혜성 출자 이야기가 나온 것 같고, 우리 사회의 특성상, 이 작은 불씨가 모든 벤처캐피털과 디캠프와 같은 출자자들을 싸잡아서 활활 불태워버리고 있는 게 아쉽다.

실은 디캠프는 굉장히 lean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조직이다. 내가 아는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더 잘 운영되고 있고, 스타트업 정신에 따라서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제대로 하는 조직인데 사무실 1개, 상근자 1명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전변이 아는 대부분의 재단은 아마도 상근 직원 1명이 충분히 운영할 수 있고, 이 사람한테 주는 월급마저 아까운 그런 구조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캠프는 다르다. 마루 180과 구글캠퍼스가 생기기 전, 가장 먼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판을 짜기 시작했고, 디캠프가 현재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은 한국의 창업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많은 일을 소수정예로 운영하다 보니, 전 직원 모두 업무 과부하가 걸려 있는걸 내가 잘 알기 때문에, 방송에서의 이런 발언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펀드출자와 벤처 투자는 10만 원 단위로 집행되는 게 아니다. 꽤 큰 단위의 금액이 집행된다. 우리도 100억 원 이상의 펀드를 운용하지만, 이 분야에서는 이게 큰 규모의 펀드가 아니며, 미국의 펀드들과 비교하면 정말로 아주 작은 수준이다. 돈이 누구한테, 어떻게, 왜 투자되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히 공부를 해보면 과연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페이스북의 댓글들을 보면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밝히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내가 장담하건대, 밝혀도 이분들은 이해를 못 할 것이다. 벤처 펀드가 출자를 받고, 다른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펀드가 운용되는 프로세스는 그냥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꽤 복잡하기 때문이다. 물론, 복잡하다는 게 합법적이지 않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마지막으로, 전원책 변호사가 썰전을 벌이기 전에 디캠프에 딱 한 번만 방문을 했다면, 재단 분들과 딱 한 번만 이야기했다면, 젊은 친구들이 컴퓨터 하나로 네이버와 같은 회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광경을 딱 한 번만 봤다면, 그리고 이 창업가들과 딱 한 번만 이야기를 해봤다면,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번도 아니고, 세 번도 아니다. 한 시간만 할애해서 딱 한 번만 선릉에 왔었다면, 안 그래도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많은 업계 분들이 잠을 설치지 않았을 것이다.

거절하는 투자자한테 물어볼 2가지

사업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 힘든 사업을 가지고 투자 받는 건 더 힘들다. 스타트업을 현재 운영하고 있거나, 과거에 운영했던 창업가들은 누구나 다 투자자들 앞에서 피칭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남보다 이런 경험이 훨씬 많을 텐데, 피칭한 경험이 많을수록 투자받은 횟수보다는 거절당한 횟수가 월등하게 많을 것이다. 그리고 피칭 횟수가 증가할수록 거절의 횟수는 가속도가 붙으면서 비선형적으로 증가한다.

우리는 투자 금액 자체가 크지는 않지만, 꽤 많은 회사에 투자한다. 많은 회사에 투자를 한 다는 건, 다른 면에서 보면 그만큼 많은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정확한 계산은 안 해봤지만, 10개를 검토하면 이 중 한 회사에 투자를 하는 거 같다. 지금까지 60개 이상의 회사에 투자했으니, 최소 600개 이상의 회사를 검토했고, 500명 이상의 대표이사님들에게 “우리는 pass 할게요”라는 거절 의사를 전달한 거 같다.

인생을 걸고 피칭했던 투자자한테 거절당한다는 건 매우 쓰라리다. 그리고 투자를 받기 위해서 지금까지 들였던 공과 시간을 뒤로 한 채로 고스란히 다시 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 왜냐하면 투자유치 과정은 scalable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상상은 두렵기까지 해서 공황장애를 일으킬 수준이다. 그래도 어떡하나? 이게 현실이고 나를 믿는 팀원들과 우리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투자유치는 필수이기 때문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

거절당한 창업가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조언 세 가지가 있다:

1/ 투자자들은 주로 이메일로 거절의 의사를 전달한다. 실은, 그동안 창업가가 들인 공을 생각하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주는 게 예의지만 서로 바쁘기도 하고, 좋지 않은 소식을 전달하는데 얼굴을 본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런 거절의 이메일을 받았으면, 최소한 이메일 잘 받았다는 답변이라도 보내라. 같은 인간으로서 투자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언제 다시 이 투자자를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딜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professional 한 이미지를 남기고 헤어지는 게 좋다. 우리도 회사를 검토하다가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소식을 전하면, 창업가가 화가 나서 그런지 아예 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런 경우에는 나도 이 분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

2/ 반드시 피드백을 달라고 부탁해라. 여러 번 만났던 투자자가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냥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까 투자하기가 싫어서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거기에는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투자를 거절한 거는 상관없지만,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투자자한테 건설적인 피드백을 요청하는 게 좋다. 만약에 방금 나를 거절한 투자자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다른 투자자와 미래에 만난다면,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서 만나야지만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발표 자료나,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는 스타일이나, 또는 비즈니스의 방향이나 모델에 문제가 있어서 거절을 당한 거라면, 이런 점들은 다른 투자자들에게도 약점으로 비칠 테니, 투자자한테 거절을 당할 때마다 내가 부족했던 점들과 고쳐야 할 점들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라. 다음 투자자 미팅 전에 그런 약점을 보완하는걸 반복하다 보면 투자확률이 계속 올라간다.

3/ 한 명의 투자자한테 거절당했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세상은 넓고, VC들도 많고, 돈도 넘쳐흐른다. 하지만, 경험 없는 창업가의 네트워크로 이런 투자자들을 다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특정 투자자한테 거절을 당했어도, 이 분이 아는 다른 투자자 소개를 부탁해라. 이런 분야에 투자하지 않는 VC라서 거절을 했다면, 이 투자자의 네트워크 안에 이런 분야에 투자할만한 다른 VC 딱 한 명만 소개해달라고 부탁해라.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투자하지 않는 VC라서 거절을 했다면, 이 투자자의 네트워크 안에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할만한 다른 VC 딱 한 명만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라. 이렇게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투자자를 만날 기회가 열릴 것이다.

실은 이렇게 해도 피드백도 안 주고, 소개도 안 해주는 VC들이 꽤 많다. 하지만, 거절을 당한 후에도 낙심하지 않고 진정성을 갖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피드백을 요청하고, 소개를 부탁하는 창업가들을 대부분의 투자자는 잘 기억할 것이다(그렇지 않은 창업가보다는). 그리고 이 투자자를 다시 만나면 – 내가 장담하건대, 이 분야에 계속 종사하다 보면 다시 만날 것이다 – “아 저 대표이사 옛날에 만났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상당히 진지하고 professional 했던 기억이 나네” 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뭔가 건진 거다.

기억해라. 피드백과 소개. 그리고 한번 해봐라. 차이를 느낄 것이다.

블로깅의 습관화

내가 블로그를 처음 쓰기 시작한 건 2007년 4월이다. 그 이전에는 취미로 글을 쓴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6년도에 MBA 준비를 하면서 서점을 기웃거리다 보니, MBA 준비 과정에 대한 책들은 넘쳐흘렀지만 실제로 MBA를 시작하면 학교생활은 어떻고, 공부는 할 만한지, 그리고 어떤 걸 경험하고 배우는지에 대한 내용을 경험 위주로 서술한 책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히 MBA 준비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에 못지않게 MBA 과정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 학생이나 직장인들도 많다는 걸 내가 준비하면서 느꼈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이런 책을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년간의 MBA 과정을 아주 생생하게 책으로 남기면 재미있지 않겠냐는 이 컨셉을 출판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상의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들이 좋아서 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워튼에 입학을 했다.

일기 형태로 일주일에 2~3번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이걸 2년 후에 편집해서 책 한 권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글솜씨도 없었지만, 열심히 블로깅을 시작했다. 이때 내 블로그의 제목이 ‘Life At Wharton’이었다. 당시에는 수업, 학교 다니면서 만난 친구들, 워튼이라는 학교, 과외활동, 기혼자로서의 MBA 생활 등에 대한 내용을 위주로 글을 썼다.
솔직히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고 힘들었다. 말로 할 수 있는 걸 글로 쓰려니 3배의 시간이 걸렸고, 글을 쓴 후에도 이걸 2번 정도는 더 검토하고 포스팅하다 보니 하루에 한두 시간은 여기에 할애해야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걸 꾸준히 하다 보니까 속도도 붙으면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습관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2008년 2월에 나는 뮤직쉐이크를 하기 위해서 학교를 그만두면서, MBA 과정에 대한 책 만드는 걸 포기하고 글쓰기를 중단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블로그를 열심히 구독하고 읽는 독자층이 생겼고, 담백한 글들이 재미있으니 꼭 MBA가 아니더라도 그냥 뭐라도 계속 블로깅을 했으면 좋겠다는 시장의 피드백들이 있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의 제목도 ‘Life Away From Wharton’으로 바꿨다. 하는 게 스타트업이라서 주로 이 분야와 관련된 글들을 쓰다 보니 ‘스타트업 바이블‘이라는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고, 그 이후 쭉 ‘The Startup Bible’이라는 제목으로 이 블로그를 운영해왔다.

내가 이 분야에서 블로깅을 하면서 role model로 삼고 있는 두 분이 있는데 바로 YC의 Paul Graham과 USV의 Fred Wilson이다. 여전히 내 우상이고, 솔직히 내 경험이나 글솜씨는 이분들을 따라가려면 – 따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한참 멀었다. 초기에는 나도 폴 그레이엄 같이 꽤 긴 글들을 비정기적으로 포스팅하다가, 한 3년 전부터는 프레드 윌슨과 같이 짧은 글들을 정기적으로 포스팅하면서 이제는 가능하면 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개의 글을 올린다. 참고로 프레드 윌슨은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글을 쓰는데, 나도 한번 이렇게 해볼까 고민하다가 도저히 지속해서 못 할 거 같아서 포기했다.

나는 왜 글을 쓸까?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도 바쁘고 힘든데, 왜 굳이 뭔가를 창작하는지에 대해서 나도 스스로 생각해 봤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나한테 의미 있는 건 다음과 같다.

약 8년 동안 꾸준히 블로깅을 해보니까 이제는 글 쓰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고, 아무리 바빠도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만들다 보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부분 투자자는 사람 만나는데 시간을 많이 사용한다. 내 일정도 보면 하루에 3~4개 미팅이 잡혀있으니, 일주일에 20명 이상을 만나는데, 이렇게 하다 보면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다. 실은 VC들이야말로 미래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는데, 사람만 만나다 보니 이걸 잘 못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바쁜 마음을 내려놓고, 여유 있게 글 쓰는 내용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일주일에 2~3 시간이지만, 매우 생산적이고 정신적으로 보상받는 시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글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고, 독자에게 새로운 상식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글을 쓰려면 통찰력이 필요한데, 사람의 통찰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사물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블로깅은 나한테 이런 새로운 능력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이다. 좋은 내용의 글을 쓰려면, 좋은 주제가 있어야 하는데, 좋은 주제는 항상 눈과 마음을 열어놓고 내 주변의 현상과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글을 꾸준히 쓰다 보니 관찰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너무 당연하다. 누구나 머릿속에는 좋은 생각들이 있고, 이걸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생각을 정말로 내 것으로 만들고, 조금 더 나아가서 남들에게 잘 설명하려면 차분하게 글로 정리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거나 흐릿해지지만, 머릿속의 이 생각을 손끝으로 정리하고, 다시 한 번 종이 위의 내용을 읽으면서 머리에 입력시키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최근 들어 내가 블로깅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는데, 나 스스로 좀 편해지기 위해서이다. 나는 다양한 질문을 꽤 많이 받는다. 주로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이 가장 활발하게 질문을 하는데, 질문들을 받다 보면 비슷한 내용이 꽤 많다. 그러다 보면, 이메일을 검색해서 과거의 비슷한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을 찾아서 카피 페이스트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관련 내용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을 한 후에, 그 링크만 보내주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하니까 시간을 꽤 많이 절약할 수 있다.

꾸준히 블로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솜씨도 늘고, 일관성이 습관화되었고, 사물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조금 생겼고, 나 자신과 스트롱벤처스를 위한 훌륭한 마케팅 채널을 하나 확보할 수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글을 전혀 못 쓰던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이 정도까지 올 수 있다면, 누구나 다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한 훈련과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블로깅을 시작하는 건 모두에게 권장하고 싶다. 다만, 시작했으면 밥 먹고 똥 싸는 것처럼 꾸준히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