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YULIP – 엄마의 프로젝트

yulip
우리 서울 사무실이 위치한 구글캠퍼스서울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엄마를 위한 캠퍼스(Campus for Moms)’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9주 동안 창업을 하고 싶거나, 창업에 관심이 있는 엄마와 아빠를 위한 일종의 스타트업 교육 프로그램인데, 사업계획서 작성부터 펀드레이징까지의 전반적인 과정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개론적으로 설명해준다. 아기와 함께 참여해도 되며, 아기 놀이 공간과 돌보미 서비스까지 제공해주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나도 작년부터 투자와 관련된 세션에 초대받아 참여하고 있는데, 항상 많이 배우고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다. 일단, 내가 주로 만나는 분들이 아니라서 – 아빠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 엄마다 – 신선한 아이디어와 사고를 접할 수 있어서 좋고, 반대로 이분들도 창업이 자주 접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어떻게 보면 내가 하는 말과 공유하는 경험이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도 보람이 크다. 물론, 참여하시는 분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모두 다 창업하는 건 아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모두 의지와 사기가 불타오르지만, 육아와 가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다시 부딪히면, 뭔가를 시작하는 게 참 어렵기 때문이다.

2016년 프로그램 참석하신 분 중 인체에 무해한 립스틱 ‘율립’을 창업한 원혜성 대표님이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드디어 첫 번째 제품의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하셨다. 10년 이상의 매거진 뷰티에디터 경험과 다양한 화장품 브랜드 PR 실무를 바탕으로, 본인과 같이 민감한 피부 때문에 고생하는 여성분들을 위한 립스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고, 엄마캠을 통해서 용기와 실행에 대한 의지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 투자사 텀블벅을 통해서 진행되고 있는데, 재미있는 건, 텀블벅 염재승 대표도 2016년 엄마를 위한 캠퍼스 프로그램에 스피커로 참여하면서 원 대표님과 인연이 생겼다.

참고로, 율립은 우리 투자사도 아니고, 나랑은 그 어떠한 비즈니스적인 관계도 없다. 다만,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런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그 과정,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열정을 응원해주고 싶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 있으면 여기서 펀딩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텀블벅>

심플한 비즈니스

simplify2심플이 최고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인생 전반에 걸쳐 유용하게 적용되는 진리 중 하나인 거 같다. 요새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가능하면 모든 걸 간소화하세요”인데,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스타트업은 모든 걸 더 간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품의 UI와 UX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하고, 비즈니스 모델과 회사의 내부 프로세스도 가능한 간소화해야 한다. 인력도 최소화해서, 조직도 자체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실은, 우리가 투자하는 기술 스타트업들은 기본적으로 조금은 복잡하다. 사용하는 기술도 복잡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차별화하기 위해서 계속 변화를 주다 보니,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대표이사는 항상 simplicity를 추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잘 안되는 곳의 공통점은, 바로 뭔가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창업 초기 비즈니스모델은 상당히 간단했고, 이 간단한 모델을 누구보다 더 빨리, 그리고 잘 실행하는 게 목표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모델이 복잡해졌고, 이 복잡한 모델을 구현하기 위해서, 프로세스도 복잡해졌고, 이를 위한 인력 배치도 복잡해진 회사들이 몇 있다. 간혹, 누가 나한테 이 회사에 관해서 물어보면, “아 그 회사요…모델이 좀 복잡한데요….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렇게 복잡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실은 나도 이 회사들이 정확하게 뭘 하는지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려워진다.

주로, 이런 회사들은 비즈니스가 잘 안 된다. 반대로, “그 회사는 이런 걸 하는 스타트업입니다”라는 단순한 답을 줄 수 있는 회사들은 대부분 비즈니스를 잘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나는 내가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스타트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투자사 중, 비즈니스가 진화는 하지만, 진화하는 방향이 복잡도가 증가하는 쪽이라면, 경계하고 대표이사한테 다시 한번 고민해서 가능하면 모든 걸 더 심플하게 하라고 한다.

실은, 규모가 커지는데, 비즈니스를 더 심플하게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이렇게 하려면, 해야 할 일 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더 잘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하고 싶은 일, 우리가 꼭 해야 할 일들을 잘 구분해서, 가능하면 새로운 일이나 프로세스를 추가하지 않고, 지금 잘 하는 걸 더 잘할 수 있는 각도로 회사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미지 출처 = Jason Whitehurst>

The Soft VC

VC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돈을 관리해주는 사람들이다(물론, 자기 돈으로만 투자하는 부러운 VC도 있다). 그래서 실은 모든 걸 굉장히 냉정하고 냉철하게 보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좋은 기술, 재미있는 기술, 좋은 팀에 투자를 하는 거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펀드 출자자분들한테 원금뿐만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높은 배수의 자금을 돌려줘야 할 책임이 있으므로, 결국에 “이 회사에 지금 100원을 투자하면, 이게 몇 년 후에는 얼마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투자자’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차갑고, 욕심 많고, 인간미 없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내가 아는 어떤 투자자들은 정말로 이렇다. 실은, 나도 한때는 제대도 된 투자를 하려면, 감성적인 면은 철저히 배제하고, 이성으로만 모든 걸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펀드의 수익만을 생각하면, 잘하는 회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상대적으로 못 하는 회사에는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말고, 망할 거 같은 회사는 그냥 과감하게 버리는, 이른바 성공적인 선배 투자자들이 말하는 double down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리도 이제 투자한 회사가 많아져서, 회사들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다. 너무나 잘하고 있는 회사, 고생하고 있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 그리고 고생하고 있고 망하는 게 거의 확실한 회사, 이렇게 나눌 수가 있다. 펀드의 수익률만 고려한다면, 잘하고 있는 회사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 이 회사들에는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 망할 회사들은 그냥 포기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회사들은 대부분 잘 안될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펀드를 계속 만들어서, 투자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냉정한’ VC가 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나는 요새 오히려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 같다. 워낙 많은 창업가를 만나는데, 대부분 힘들어하고, 밖에서 내가 말은 안 하지만, 모두가 나름대로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하나씩 있어서 그런지, 이런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이성보다는 감성이 많이 발달하는 거 같다. 요새 나를 오랜만에 본 분들은 내가 많이 유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도 여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거 같다.

전에 Fred Wilson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VC 투자의 특성상 극소수의 잘 되는 회사가 펀드의 수익률을 좌지우지 하므로, 다수의 회사가 망해도, 이 망하는 회사는 펀드 수익률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보면, VC 한테 이런 망하는 회사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 망하는 회사들의 창업가와 가족한테 이 회사는 인생 그 자체이자 전부이다. VC의 수익률과는 눈곱만큼 상관 없을 수 있지만, 이들의 인생에는 큰 영향을 미치고, 훌륭한 VC이기 전에,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런 회사들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한 배를 탔다는건 이런 의미인 거 같다. 다행인 건, 내가 아는 많은 VC가 투자자 이전에 훌륭한 인간들이라는 점이다.

마이듀티

우리 투자사 중 잘 하는 회사들이 더러 있고, 이들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많은 고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포휠스가 만드는, 간호사를 위한 일정관리 앱 ‘마이듀티‘도 이런 좋은 제품인데, 이 앱은 간호사 일정관리 앱 분야에서는 글로벌 No. 1 이다. 한국 간호사들의 60%, 홍콩 간호사 90%, 및 대만 간호사 80% 이상이 매일 마이듀티를 사용하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 같은 유럽 국가에서도 좋은 성장 곡선이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모든 지표를 다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현재 40만 명의 회원이 20만 개의 비공개 그룹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22만 MAU와 10만 DAU라는 상당히 높고 끈적끈적한(=sticky) 수치가 별다른 마케팅 없이 잘 유지되고 있다. 프라이머 회사이기도 한 마이듀티 정석모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는, 시장의 크기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간호사 시장에 대한 개인적인 무지도 있었지만, 앞으로 절대적인 시장 자체가 더 크게 성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개월 동안은 이 시장과 앱을 지켜봤는데, 그동안 내가 본 내용이 상당히 맘에 들었다. 10조 원짜리 시장은 확실히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이 시장을 마이듀티가 야금야금 먹으면서, 빨리 시장의 일인자가 되는 걸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무료 버전에 필요한 많은 기능이 내재하여 있어서, 앱을 유료화할 수 있는 빠른 길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몇 달 전부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실험하고 있고, 다행히도 반응은 나쁘지 않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No. 1 필수 앱이 되니, 고객들의 다양한 피드백들을 수집하고, 이를 다시 제품에 반영할 수 있는 실험들이 사용자 경험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끊임없이 유지될 수 있었는데, 만약에 이런 유료화 실험들을 어설픈 시장 점유율을 달성했을 때 했다면, 고객의 충성심보다 앱에 대한 실망감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을 거 같다.

얼마 전부터 스타트업의 growth hacking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몇 가지 꼼수를 이용해서, 단기간의 해킹은 가능하겠지만, 장기적인 growth를 위한 해킹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많은 사용자가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고, 회사가 원하기보다는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기능을 만드는 게 growth hacking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큰 시장, 작은 시장

각자의 세세한 취향과 시각은 다르지만, 대부분 벤처투자자는 회사를 평가할 때 크게 팀, 시장, 기술을 보는 거 같다. 나도 처음 만나는 회사에 대해서는,
1/ 어떤 팀인가?
2/ 이 팀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시장 크기)
3/ 이 팀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지?
라는 큰 프레임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본다.

오늘은 2번째 포인트인 ‘시장크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실은, 창업가나 투자자한테 시장 크기는 매우 중요하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전체 시장의 크기가 250억 원이면 우리 같은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는 힘들다.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라도 시장의 100%를 가져가는 건 불가능하고, 30% 정도만 점유해도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데, 250억 원짜리 시장의 30%는 75억 원이다. 즉, 이 비즈니스가 아무리 잘 되도 75억 원 이상의 비즈니스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한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건 쉽지 않다. 창업자의 경우, 75억 원짜리 비즈니스를 운영하면 아주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살 수도 있지만, 우리같이 투자금의 큰 배수를 다시 회수해야 하는 VC는 이보다 더 빠르고 크게 성장하는 시장을 공략하는 비즈니스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나도 초기에는 이런 시장의 크기를 많이 따졌다. 요새 피칭 자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이 1,000억 원 이하의 비즈니스는” 시장크기가 너무 작아요.”라는 얄미운 피드백으로 투자검토를 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내가 마치 유니콘 비즈니스에 투자경험이 있는 VC인 양 “그렇게 작은 시장에서 사업해서 얼마만큼 성장하겠어요?”라고 몰아붙인 적도 있다. 그럼 우리는 엄청나게 큰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에만 투자했나? 그렇지 않다. 실은, 이와는 반대로, 남들이 보기엔 너무나 작은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에도 꽤 많이 투자했는데, 그동안 이 시장 크기에 대한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단 조 단위 규모의 시장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우리도 투자경험이 있는 사교육 시장, 음식 배달 시장, 부동산 시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모두 다 몇십조 ~ 몇백조 원 규모의 큰 시장이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절대적인 시장규모에 군침을 흘리게 된다. 이 어마어마한 시장의 5%만 먹어도 엄청난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중국 산수를(=”중국의 인구가 14억 명인데, 이 인구의 1%만 우리 고객으로 만들어도 1,400만 명이다”라는 비현실적인 시장 크기 산출 방법) 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 더 냉정하게 시장을 보면 – 특히, 투자한 후에 – 이 스타트업은 이미 존재하는 엄청난 시장의 일부를, 이미 그 시장에 오랫동안 포진해 있던 경쟁사와 우리와 비슷한 전략으로 최근에 진입한 신규 경쟁사들과 힘들게 싸워서 뺏어와야 하는 쉽지 않은 위치에 놓여있다는걸 알게 된다. 시장은 이미 존재하고, 엄청나게 크지만, 그 시장의 일부를 가지려면, 산전수전 다 겪은 온갖 경쟁을 이겨야 한다. 이거 진짜 쉽지 않다.

그럼 작은 시장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이 시장의 스타트업은, 위에서 말한 250억 원짜리 시장, 또는 이보다 더 작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시장으로 진입해서, 작은 시장을 더 키우거나, 또는 아예 없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투자자는 여기서 이 회사와의 대화를 멈춘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지만, 이런 비즈니스를 그냥 무시하고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경험 또한 여러 번 했다. 현재 시장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도 있지만, 이 시장에서는 없으면 안 되는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면서 시장 자체를 더 키우는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탄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쉽지 않다. 위에서 말한 이미 존재하는 시장을 공략하는 비즈니스와는 다르게, 없는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완전히 바닥부터 모든 걸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제품이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고객과 시장의 욕구 자체를 맨땅에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 또한 쉽지 않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시장이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고, 시장이 없다고 나쁜 게 아니다. 큰 시장일수록 그 일부를 점유하는 게 어려울 수 있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없는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게 예상외로 수월할 수 있다. 결국, 나만 잘하면 시장의 크기도 내가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