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재미있는 인연

우리 투자사 중 오라이츠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출판과 책 분야의 비즈니스인데, 글로벌 출판 시장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업데이트해주는 서비스이다. 일반인들한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분야이지만, 꽤 의미 있는 규모의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명확한 고객들이 존재하는 시장이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가는 김혜원 대표와 이정도 이사인데, 오늘은 이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2009년도 뮤직쉐이크 시절, 콜드 이메일을 받았다. ‘파이카’라는 한국의 신생 출판사인데, 내가 쓰는 블로그 내용을 기반으로 책을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이메일이고, 당시 굉장히 바빴던 시기라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출판사이길래 나같이 못 나가는 사람한테 책을 쓰자고 할까 궁금했고, 출판사 김혜원 대표가 워튼스쿨 후배라서 한 번 이야기는 해보자는 생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책 출판 의도 자체가 벤처로 성공한 선배 창업가가 후배들한테 “이렇게 하니까 성공하더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같이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동료 창업가가 “나도 같이 구르고 있는데, 미국에서 남들보다 약간 먼저 구르다 보니 이런 경험을 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라서 책을 써보기로 했고, 그 책이 ‘스타트업 바이블(1권)‘이다. 실은 책 내용도 나쁘지는 않지만, 책 제목을 워낙 잘 지었는데, ‘스타트업 바이블’이라는 제목은 파이카 김혜원 대표의 작품이다.

책 출간 몇 개월 후, 파이카에서 연락이 왔다. LA에서 남미 아르헨티나까지 오토바이 종단 여행을 떠난 이정도 씨와 용현석 씨에 대한 소개였는데, 종단을 마친 후에 파이카에서 책을 만들 계획이었다. LA에서 나는 이 젊은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식사도 하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후 친분을 유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종단은 성공했지만, 책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얼마 후 파이카의 김혜원 대표와 오토바이 청년 이정도 씨는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했다. 에브리클래스라는 미국의 Skillshare와 비슷한 비즈니스였는데, 이 회사는 프라이머의 투자를 받았다(Strong이 프라이머 활동하기 전).

에브리클래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이 팀은 글로벌 출판 정보 플랫폼인 Frontlist를 운영하는 오라이츠라는 새로운 서비스로 피봇을 했고, 우리는 이 회사에 투자했다. 그리고 에브리클래스에서 오라이츠로 서비스가 피봇하는 기간 중 김혜원 대표와 이정도 씨는 결혼을 해서 스트롱벤처스가 투자한 3번째 부부창업 스타트업이 되었다. 참고로 에브리클래스에서 오늘의 오라이츠가 탄생하기까지는 거의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는데, 김혜원 대표와 이정도 이사가 스스로 코딩을 공부해서 개발자로 다시 탄생하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오라이츠팀과 미팅을 하고,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가에 대해 생각하다가 참 재미있는 인연이어서 혼자 씩 웃었다. 우리가 투자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오래 알고 지낸 분들이고, 그만큼 인간적으로 신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적진 속으로

프라이머 회사이자, 스트롱의 투자사인 바이탈힌트코리아(‘해먹남녀’ 운영)의 정지웅 대표님이 최근에 일부 멤버들과 함께 상하이로 거처를 옮겨 이주했다. 여기서 ‘미식남녀(美食男女)’라는 새로운 브랜드 하에 중국 비즈니스를 준비하기 위해서 칼을 열심히 갈고 있다. 최근에 신규 펀딩도 유치했고, 한국에서의 지표들도 좋고, 언젠가는 한국을 넘어서는 서비스로 성장시킬 계획은 갖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빨리 중국 시장을 두드리는 이 결정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 긍정 보다는 약간의 불안이 가미된 중립이라고 하는 게 정확 할 거 같다.

중국 시장 도전은 실은 해먹남녀가 꾸준히 고민하고 준비했었고, 여러 가지 데이터와 시장의 트렌드를 분석했을 때 이 움직임은 맞다고 생각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중국에 큰 부분이 달려있고, 이제 중국이 tech 트렌드를 어느 정도 리딩하는 모습이 보이고, 해먹남녀가 바라보는 비전과 비즈니스를 한국 시장의 인프라가 완벽히 지원하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것이 예상됐기 때문에 이런 큰 결정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중국 시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땅이 크고, 인구가 많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는 일반적인 것만 알지, 중국어 한마디 못하고, 중국에서 사업을 같이할만한 파트너와 관계도 전혀 없다. 하지만, 미국 시장보다는 성숙하지 못하고, 규제와 제도가 아직은 불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 시장 진출하는 스타트업보다 오히려 중국 시장 진출하는 스타트업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봤기 때문에 우리 투자사인 해먹남녀가 한정된 자원을 기반으로 적진 속으로 들어가는 게 사실 좀 걱정된다.

정지웅 대표님이 나한테 서울에 있는 집을 완전히 정리하고 중국으로 이사한다는 이메일을 보낸 날 오후, 2008년 뮤직쉐이크를 미국에서 시작하기 위해서 동부에서(필라델피아) 서부로(로스앤젤레스) 처음 왔을 때 생각을 잠시 했다. 무식함, 패기, 그리고 열정만을 갖고 시작했던 미국 비즈니스의 시작은 지금 뒤돌아보면 참으로 무모하고 승산이 낮았던 도전이었다. 정말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힘들었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마도 정지웅 대표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당시의 나보다 훨씬 경험도 많고, 사업 능력도 뛰어난 분이지만,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하면 누구나 다 바닥부터 시작하고, 누구나 다 죽어라 고생할 수 밖에 없다. 대기업도 그런 과정을 오랫동안 거치는데, 돈 없고 사람 없는 작은 스타트업은 오죽하리.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는 내가 잘 알고, 현재 잘하고 있고, 좋은 사람을 더 잘 뽑을 수 있는, 그런 시장을 먼저 완전히 장악해서 1등을 먹고, 그 이후에 다른 시장으로 진출하는 전략을 더 선호한다. 그렇게 해서 잘 된 회사들이 잘 안 된 회사들보다 많기 때문이다. 해먹남녀가 한국에서는 잘 성장하고 있지만, 이 분야에서 1등은 아직 아니므로 나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나는 미식남녀의 중국 도전을 응원한다. 위에서 내가 나열한 점들 말고도 지금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면 안 되는 이유는 100가지가 넘을 것이다. 그래도 소신 있는 결정을 하고, 이를 빠르게 실행한 미식남녀팀한테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정말 쉽지 않은 산들을 넘어야겠지만, 이 팀이 항상 해왔듯이 꾸준히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면, 그 중 몇 개는 열릴 것이다. 정대표님이 이와 관련해서 페이스북에 올린 피드 중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제 위치와 역할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것이 내 이웃의 사회에 장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면, 태어나서 한 번쯤 모든 것을 걸어볼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식남녀가 중국에서 성공하길 진심으로 응원하지만, 워낙 힘든 사업이고, 더 힘든 시장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걸고 해본다면 성공의 여부를 떠나서 많은 배움과 깨달음이 있을 것이고, 이는 한국의 창업 생태계에 매우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학생 창업에 대해서

famous-student-entrepreneurs우리가 지금까지 투자한 약 70개 스타트업 중 (대)학생들이 창업한 회사는 6개이다. 모두 분야도 다르고, 재학생도 있고, 휴학생도 있다. 어떤 창업가한테는 첫 번째 창업이지만, 짧은 기간 동안 창업 비슷한 걸 몇 번 해본 경험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학생 창업가를 일반화하는 건 적절치 않지만, 이 중 몇 회사와는 내가 꽤 가까이 일을 하므로 그동안 학생 창업팀에 대해서 느낀 점을 나열해보려고 한다. 실은 이 내용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본엔젤스 박은우 님의 “대학생 창업자들의 흔한 오해” 라는 재미있고 통찰력 있는 포스팅을 보고 나도 생각난 김에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해본다.

일단, 학생 창업가를 보면 모든 걸 떠나서 나는 너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20대 초반에는 상상도 못 하던 사업이라는걸 이 젊은 친구들은 거침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성공과 실패와는 상관없이. 학생창업의 장점과 이를 가능케 하는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있는데 일단 물리적으로 젊다는 건 온몸으로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거나, 또는 창업이 아닌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 세대에 비하면 요새 학생들은 걱정이 많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취업 걱정을 해야 하고, 계속 복잡해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인생 계획을 학창시절에 세워야 하는데, 이건 우리가 학생일 때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래도 가정이 있는 직장인들에 비하면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돈에 대한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창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요즘 대학생들 공부 많이 해야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학생 창업가들과 일을 해본 경험에 의하면, 학창시절만큼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기는 인생에서 없는 거 같다. 시간이 많으므로 일을 더 오래, 그리고 열심히 할 수 있고, 젊으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체력적으로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인생에 대한 걱정이 없으므로 이 모든 게 가능하다.

또 다른 장점은 대학교만큼 전 세계 또는 전국의 인재들이 한 공간에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강제적으로 집합되어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4년을 지내다 보면, 스타트업을 돌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자양분인 사람을 – 그것도 다양한 스킬을 가진 – 만나고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실은, 학교에 다니면 이런 좋은 기회가 매일 생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학교가 아닌 사회보다는 팀을 만들어서 창업하는 게 상당히 수월하다.

그런데도 대학생 창업이 우리 주변에 아직도 흔하지 않다. 그리고 창업한 학생팀 중 잘 성장해서 성공하는 팀들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학생팀의 성장을 방해하는 단점도 매우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학생 창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한국의 부모님이다. 실은 부모님이 문제라기보다는 성인이 되어도 스스로 생각하거나 독립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더 문제지만, 하여튼 한국의 학부모들은 좀 심할 정도로 자식들의 인생에 관여를 많이 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창업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대학교 교수님한테 학부모가 연락해서 불평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취업해야 하는 자식한테 왜 자꾸 창업하라고 교수가 부추기냐는 내용의 항의 전화인데, 이게 한국 부모들의 현실인 거 같다. 심지어는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는 팀원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설득하고 허락을 받은 경우도 있다.

위에서, 학생들은 젊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창업을 결정하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했는데, 실은 이건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젊고 시간이 많아서 학생들한테는 여러 가지 옵션이 있다. 소위 말하는 Plan B, C, D, E이다. 창업해서 열심히 하지만, 만약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고, 아니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할 수도 있는 옵션이 있으므로 내가 봤던 꽤 많은 학생팀이 진지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모든 것을 걸고 스타트업에 올인하지 않았던 경우도 많이 봤다. 이들한테는 ‘창업’이 단지 이력서에 추가할 수 있는 한 줄짜리 경험이 된다. 그래서인지 학생팀을 만나면 내가 요새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은 “이 사업 정말 제대로 할 마음 있나요?” 이다.

많은 대학교가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면서 교내 벤처기업에 사무공간과 혜택을 제공한다. 가난한 학생 스타트업한테는 좋은 제안이고 그 취지는 고귀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학교를 사무실로 사용하면 장점보다는 단점들이 더 많은 거 같다. 일만 죽어라 해도 잘 안 되는 게 벤처인데, 학교 안에 있으면 일을 방해하는 잡음이 많다. 학교라는 상아탑 안에 있다 보니, 눈에 레이저를 키고 일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힘들 수도 있고, 학생 친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분위기를 망치는 것도 몇 번 봤다. 실은 학교 안에 있으면 아르바이트생이나 인턴들을 채용하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한데 – 어떤 학교들은 교내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하면 학점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 이럴 경우 소위 말하는 ‘뜨내기’들이 너무 많아지고, 사무실이 휴학생이나 복학생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휴식공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무료 또는 매우 저렴하게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홍보활동과 행사에 참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군 복무를 아직 하지 않은 남자 학생들에게는 군대가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잘 결심해서 창업했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재미도 있고 사업도 성장을 해서, 제대로 해보려고 휴학을 하면 덜컥 영장이 나오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옵션이 별로 없다. 우리가 투자한 몇 학생팀도 군 복무 문제 때문에 병역특례 지정업체 신청부터 대학원 진학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행위는 어쩔 수 없이 사업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어쨌든 나는 우리가 투자한 학생팀들을 좋아하고 응원한다. 내 나이의 절반인 이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다는 건 매우 멋지고 즐거운 일이다.

<이미지 출처 = http://getentrepreneurial.com/archives/famous-student-entrepreneurs/>

Strong Women

며칠 전에 포브스지에서 한국의 IT 산업을 대표하는 여성 리더들을 소개한 기사를 읽었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을 포함해서 나도 아는 분들이 많아서 반가웠다. 이 기사를 읽고 스트롱이 투자한 회사 중 여성이 CEO인 스타트업이 몇 개가 될까 궁금해서 계산을 해봤다.

우리가 첫 번째 펀드에서 25개의 회사, 현재 운용하고 있는 두 번째 펀드에서 지금까지 45개의 회사, 총 70개의 한국과 미국 회사에 투자했다. 이 중 7개 회사의 대표이사가 여성이니, 딱 10%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많은 숫자도 아니고 적은 숫자도 아닌 거 같다.
–MagTag: 크라우드소싱 기반 패션/스타일 플랫폼. 잘 안돼서 문 닫았다
Poprageous: 고급 여성 레깅스를 시작으로 여성을 위한 lifestyle 의류를 직접 디자인, 제작, 판매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원투웨어: 여성을 위한 개인화된 스타일링 의류 이커머스 마켓
오라이츠: 신간 도서 발굴 및 추천을 위한 플랫폼
트레이지: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 여행 플랫폼
핀다: 금융상품 추천 플랫폼
트라이문: 여성용 기성화/수제화 이커머스 마켓

실은 이 성 비율이 실리콘밸리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큰 화두이다. 여성 창업가 또는 여성 VC 수가 남성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더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나는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남성과 여성의 적절한 밸런스가 유지되면서 산업이 성장해야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다는 생각에도 나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여성의 비율을 인위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다. 우리가 투자한 위의 회사들은 대표이사가 여성이라서 투자한 게 아니라, 이분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좋은 사업을 하는 좋은 CEO라서 투자했다.

중요한 건 창업가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심이나 편견을 버리고 그냥 그 비즈니스와 사람의 본질을 보고 판단을 하는 거다.

옵션 풀(Option Pool) 효과

곧 마무리할 투자가 하나 있는데, 이 회사와 계약서 관련 협의를 하다가 스톡옵션 풀 이야기가 나와서 몇 자 적어본다. 한국의 투자 계약서를 보면 “주식매수선택권의 부여”라는 항목이 있는걸 종종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주로 이걸 스톡옵션풀이라고 한다. 이는 전에 내가 설명한 미국에서 말하는 옵션 풀과는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 한국 계약서의 스톡옵션 풀은 투자 후 발행될 때마다 기존 투자자들의 지분이 희석되지만, 미국의 경우 스톡옵션 풀은 프리머니 밸류에 이미 반영된 상태에서 투자가 집행되기 때문에 옵션이 발행되어도 투자자들의 지분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전에 사용한 예를 그대로 정리해서 다시 사용해보면,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라서 매출도 없지만, 팀과 기술력을 인정받아서 청담파트너스라는 VC가 프리머니밸류 9억 원에 1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현재 회사에는 90,000주가 발행되어있기 때문에, 당연히 주당 1만 원(9억 원 / 9만 주)이라고 대표는 생각했는데, 투자계약서를 검토하다 보니 주당 가격은 8,333원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미 전 포스팅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다시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주당 가격이 1만 원이 아니라 8,333원인 이유는 정확하게 말해서 이 투자 조건은 “프리머니 밸류에이션 9억 원에 1억 원을 투자하지만, 이 프리머니 밸류 9억 원에는 포스트머니 밸류 10억 원 기준 15%의 옵션 풀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투자자가 실제로 의미하는 건 “이 스타트업의 현재 가치는 7.5억 원입니다. 그런데 1.5억 원 규모의 신규 옵션을 만들고 이 가치에 더해서 최종적으로 이 회사의 프리머니 밸류는 9억 원이라고 합시다.” 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투자 전 주식 가격이 1만 원이 아니라 8,333원이 되는 것이다(7.5억 원 / 9만 주).

한국은 아직 이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본 한국 투자계약서에는 옵션풀이 없지만, 미국 VC에 투자를 받으면 거의 100% 이 옵션풀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옵션 풀의 효과는 투자자한테는 유리하지만, 피투자 기업에는 상당히 불리할 수 있다.

일단, 옵션 풀은 보통주주만 희석시킨다. 포스트머니 밸류에 옵션풀이 포함된다면 보통주주와 우선주주 모두 희석시키지만, 옵션 풀은 포스트머니 밸류를 기반으로, 프리머니 밸류에 포함된다. 그래서 주로 보통주를 갖게 되는 창업팀과 직원들만 희석된다.

둘째, 옵션 풀은 생각보다 더 많다. 위 예에서 옵션 풀은 포스트머니 밸류 기준으로는 15% 지만, 프리머니 밸류의 16.7% 이다(1.5억 원 옵션 / 9억 원 프리머니 밸류). 그 이유는 이미 설명한 대로 옵션 풀은 포스트머니 밸류 기준으로 표시하지만, 실제로는 프리머니 밸류에서 발행되기 때문이다.

또한, Series B 투자 전에 회사가 매각되면, 미발행 또는 vesting 되지 않은 옵션은 자동으로 취소되면서 기존 투자자들한테 지분율대로 재분배되는데, 이는 보통주주와 우선주주 모두한테 해당한다. 즉, 옵션풀이 만들어질 때는 보통주주들만 희석이 되었지만, 남은 옵션들이 재분배되면 보통주주와 우선주주 모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보통주주들이 손해를 본다.

미국 투자자와 협상할 때 옵션 풀을 완전히 빼는 건 불가능하지만, 가능한 한 작게 가져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또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옵션 풀은 한국 계약서의 “주식매수선택권의 부여”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은 명심하도록.

-참고: Option P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