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보단 질문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언급하고 공유한 적이 있는데, 나는 ‘How I Built This(HIBT)’라는 팟캐스트를 거의 매일 듣는다. 이 팟캐스트에는 손님으로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제일 많이 출연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온갖 비즈니스를 만든 창업가들이 출연하고, 이들이 어떻게 창업해서 사업을 어떻게 만들고 성장시켰는지에 대한 굉장히 깊고 솔직한 인터뷰 형식의 대담을 들을 수 있다. 실은, 이와 비슷한 팟캐스트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너무 많은데, 유독 내가 HIBT만을 즐겨 듣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내용이 다른 팟캐스트와는 질적으로 다르고 너무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여기만 이렇게 콘텐츠의 수준이 높은지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로 이 팟캐스트의 진행자 Guy Raz의 질문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좋은 질문을 하기 때문에 좋은 답변이 나오는 것이다.

우문현답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이 맞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현문현답이 가장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답을 얻기 위해서는, 질문이 좋아야 한다. 좋은 질문은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답변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Guy가 하나의 팟캐스트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마치 일등하는 학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는 것 같이 철저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조사해서 준비한다. 인터뷰할 사람에 대한 모든 기사를 다 읽고, 관련된 자료를 철저히 공부하고, 과거에 그 사람과 같이 일했고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인터뷰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인터뷰하는 사람의 유년기와 학창 시절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서, 한 시간 ~ 한 시간 반 동안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하면서 청중이 게스트에 대해서 매우 잘 이해할 수 있게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실은 HIBT의 손님 중 다른 매체와 인터뷰 한 분들도 많이 있지만, HIBT 팟캐스트에서 들을 수 있는 내용은 정말 유니크하다.

나도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직업을 가졌고, 우리가 하는 많은 미팅이 서로에 대해서 질문하는 인터뷰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는 창업가에 대해서 더 자세하고 많은 내용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나한테 하는 이야기를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이 사람한테 하는 질문이다. 내가 좋은 질문을 해야지만, 미팅하는 창업가의 전부를 파악할 수 있다. 창업가에게 그냥 “대표님과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라고 질문하면, 이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하고 있는 사업의 일부만 알 수 있고, 말주변이 없는 창업가라면 본인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의 30%도 못 꺼낸다. 하지만, 내가 좋은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이분의 인생과 사업 이야기의 120%를 끌어낼 수 있다.

결국엔, 답보단 질문이 중요하고,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사람의 꽤 큰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준비가 전혀 없이 미팅에 들어가서 모두의 시간을 낭비하는 질문을 하는데, 결국 돌아오는 것도 모두의 시간을 낭비하는 답변일 확률이 높다.

Product fit or market fit?

이 업계에서는 product market fit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국에서는 이걸 줄여서 PMF라고도 많이 하는데, 실은 미국에서는 이렇게 줄여서 사용하진 않지만, 편의상 그냥 이 글에서는 PMF라고 하겠다. 사람마다 PMF에 대한 생각과 정의는 다르긴 하다. 내가 생각하는 이 단어의 뜻과 가장 비슷한 정의는 ChatGPT가 훌륭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간단하게 말해보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시장(market)을 창업가가 찾았는지, 그리고 그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product)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product와 market, 이 두 가지가 말 그대로 딱 겹치는지(fit), 이 상태를 찾았으면 PMF를 찾았다고 한다.

즉, 시장의 needs를 스타트업이 잘 파악했고, 이 needs를 제대로 충족하는 제품을 만들었냐를 판단할 수 있는 일종의 기준이라고 보면 된다. 시장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PMF 여부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고객들의 지급 의향(willingness to pay)이다. 우리가 만든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기꺼이 돈을 내는 고객이 존재한다면, 기본적인 PMF를 찾았다고 생각해도 된다.

실은 여기까지 오는 것도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실패한다. 시간과 돈을 들여 열심히 제품을 만들었지만, 그 누구도 돈 내고 사용하지 않는 게 대부분 스타트업의 현실이다. 하지만, 소수의 창업가는 본인들이 만든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기꺼이 돈을 내는 고객들을 찾게 되고, 이 유료 고객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한다. 우리가 투자하는 많은 회사가 실은 이 단계까지는 오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이다. 돈을 내는 소수의 고객은 존재하는데, 어떤 방법을 써도 이 소수의 고객을 다수의 고객으로 만들지 못하고, 온갖 테스팅과 실험을 해도 유료 고객의 수가 너무 더디게 증가한다는 점이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지만, 실은 이다음부터가 회사엔 중대한 결정을 연속적으로 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만약에 인입되는 트래픽 자체가 엄청난 제품을 만들었고, 이를 유료화했는데, 엄청난 양의 유저가 이탈하지 않고 돈을 내고 우리 제품을 사용한다면, 좋은 시장을 찾았고, 이 시장에서의 문제점을 잘 해결하는 좋은 제품을 만든 것이다. 즉, 거의 완벽한 PMF를 찾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하는 창업가는 전 세계에 거의 없다. 대부분 product market fit을 못 찾고, 찾았어도 이 fit을 확장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market의 문제인지, product의 문제인지 잘 고민해봐야 한다. 제품은 제대로 만들었는데, 처음부터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자체가 크지 않아서 시장이 너무 작다면, 더 큰 시장을 찾아봐야 하거나, 아니면 작은 시장을 완전히 압도적으로 다 먹어야 한다.
아니면, 어쩌면 시장은 엄청 큰데, 우리 제품이 그만큼 시장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지 못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계속 테스팅과 반복을 통해서 fit이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결론은, product의 문제인가 market의 문제인가, 이 정확한 문제를 파악하기도 너무 어렵고, 파악해도 해결하기도 너무 어렵다. 실은 이게 창업가들이 사업을 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풀려고 노력해야 하는 큰 숙제이기도 하다.

펀딩도 이런 PMF를 고려하면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시드 투자를 받은 후 확실한 PMF를 찾기 전에는 그다음 투자는 받지 않는 게 모두에게 좋다고 생각한다. PMF를 확실히 찾기 전까지 창업가들은 돈을 최대한 아끼면서, 최소의 인력으로 사업을 하고, 뭔가 찾았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 투자를 받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PMF를 찾은 후에, 여기에다가 돈을 투자하면, 작은 불씨에 기름을 부으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우리 사업도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의 지분 할당

회사들과 미팅할 때 우리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공동창업가나 직원들에 대한 지분/스톡옵션 할당량이다. 비즈니스의 대부분 이슈와 비슷하게, 이 또한 정답이 없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 특히 미국에서 – 다음과 같은 지분/스톡옵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고, 우리도 이 가이드와 비슷하게 창업가들에게 조언한다:

1/ C-level의 임원: 0.5%~3%
2/ 부사장급: 0.5%~2%
3/ 이사급: 0.2%~1%
4/ 매니저급: 0.1%~0.5%
5/ 일반 직원: 0.05%~0.2%
*ChatGPT에도 물어봤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보단, 그냥 “그때그때 회사의 상황과 전략에 따라서 결정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받았다.

이 숫자들을 말해주면,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너무 낮은 게 아니냐면서 놀라고, 이 지분을 제안받는 분들 또한 너무 낮다고 불평한다. 아마도 대기업에서의 직장 경험이 있거나, 다른 큰 스타트업에서 팀장급 이상의 경험을 했던 분들은 작은 스타트업에 오면서 연봉은 희생하지만, 회사 지분을 많이 받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고, 개인마다 이 지분의 양은 다르겠지만, 어떤 분은 15%까지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내가 전에 관련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지분율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지분의 현재의 가치와 미래의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코파운더가 아니고 나중에 조인하는 임원이나 직원은 너무 과한 지분을 기대하면 입사 협상 과정에서 마찰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스타트업의 지분은 정말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도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이 소중한 지분을 아껴야 한다고 조언하고, 지분을 주거나 스톡옵션을 부여할 땐, 수량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한다. 일단 공동창업가가 아니라면, 무조건 최소로 조언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을 잘하면, 이 분들에겐 그때 더 주면 된다. 그런데 너무 많이 줬다가 일을 못 하면, 나중에 다시 뺏는 건 정말 힘들다. 그래서 무조건 처음엔 적게 주고, 여러 가지 장치와 조건을 기반으로 나중에 오히려 더 많이 주는 게 좋다. 외부에서 새로운 대표이사를 영입하든, 임원을 채용하든, 일반 직원을 채용하든, 이건 공통으로 적용된다.

참고로, 공동창업가는 처음부터 리스크를 같이 지고 창업하는 사람들이다. 실제 창업은 대표이사가 혼자 했는데, 이전 회사에서 받을 상여금 다 받고, 옵션 다 행사하고, 모든 리스크를 de-risk하고 한참 후에 조인하는 사람은 진정한 공동창업가라고 할 수 없다. 이런 분도 일반 직원의 수준으로 지분을 받아야 하고, 동일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일을 잘하면 더 주면 된다.

시간, 모든 스타트업의 가장 큰 고객

프라이머 21기 회사 중 폴러리라는 팟캐스트 스타트업이 있다. 내가 담당하는 회사라서 이 회사의 대표님과 몇 달 동안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오디오 콘텐츠와 팟캐스트 시장과 사업에 대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고, 나도 이 산업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폴러리와 이야기하면서 콘텐츠 시장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었고,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 세계 모든 인간에겐 하루 24시간의 시간이 주어진다. 24시간을 줄일 수도 없고, 늘릴 수도 없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24시간은 공평하다.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약 8시간이 남는데, 이 8시간을 선점하기 위해서 모든 B2C 제품과 서비스들이 매일 전쟁과 같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 시간에 나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팟캐스트를 들을 수도 있고, 넷플릭스를 시청할 수도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이 외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확실한 건,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물리적으로 이 8시간이 늘어나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이 시간 동안 즐길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매일 매일 새로운 제품과 앱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들은 모두 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시간을 조금 더 뺏어와서 그들의 제품을 사용하게 하고 돈을 쓰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다. 이 고민을 하는 게 스타트업 사람들의 full-time job이다.

이런 시각에서 시장을 보면,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만 사용하는 앱들은 엄청난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수천 개 ~ 수만 개의 선택지가 있는데, 한정된 시간에 이 앱들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사용한다는 건, 정말 스타트업의 인간승리다. 유튜브, 페이스북, 틱톡,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쿠팡, 당근마켓 등과 같이 거의 매일 사용하는 앱은 신의 경지에 오른 제품들이다. 잠자고 일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매일 이런 제품을 사용하게 만드는 제품의 강제성, 완벽성, 그리고 중독성은 위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요새 개인적으로 사람들의 물리적인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기술, 몸을 손상하지 않고 잠을 줄일 수 있는 기술 또는 뇌를 더욱더 활성화할 수 있는 기술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시간이야말로 모든 스타트업이 확보해야 하는 가장 큰 고객인데, 이런 다양한 기술과 제품을 이용해서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으면, 새로운 기회들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사회적 동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우린 너무나 많이 한다.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인간은 개인으로는 존재하고 있어도 혼자 살 수 없으며, 공동 사회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우리는 혼자 이 세상에 오고, 갈 때도 혼자 가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연을 만들고, 다른 사람과 끊임없는 관계를 통한 상호교류를 해야지만 인간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동물의 정의를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살아야 하므로 스스로 행동하기보단,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냐에 따라서 본인의 생각과 행동이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다. 즉, 내가 나를 정의하지 않고, 남이 나를 정의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은 이 정의가 점점 더 적합해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나는 요새 느끼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단, 내가 이걸 하면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고, 내가 나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하기보단, 남이 나를 판단하게 놔두는 분위기가 이미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가끔은 그냥 반사회적 동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남이 나를 정의하게 하지 않고, 내가 나를 정의하고,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내 삶을 살고 싶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이 이런 반사회적 인간들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이런 맥락에서는 반사회적 인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