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자해

비즈니스에서 자주 사용하는 영어 중 ‘cannibalizat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인 의미는 “비슷한 신상품 도입으로 자사품의 매출 감소를 가져오다.” 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비즈니스적으로 이 영어를 가장 잘 설명하는 한국 단어는 ‘자해’라고 생각한다.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를 해쳐야 한다는 점에서 자해와 의미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그 분야에서 아주 오랫동안 1등을 하던 기존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그냥 무시하고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 어떤 경우에는 수백년 – 그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의 자리를 유지했기 때문에 본인들이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과 자만감이 합쳐진 자세이다. 두 번째는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의 자세를 취하면서 이 기술이 반짝하다가 끝날 건지, 아니면 진짜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할 정도로 의미가 있는 건지 두고 보는 것이다. 당장 구체적인 행동을 하진 않지만, 필요하면 뭔가 할 수 있게 준비하는 자세이다. 세 번째는, 그리고 이건 가장 드문데, 뭔가 바로 행동을 하는 경우이다. 지금 잘하는 사업이 있기 때문에, 당장 회사의 방향을 바꿀 순 없지만, 구체적으로 이 새로운 기술을 수용할 준비를 하면서 관련된 조직을 만들고, 사람을 채용하는, 소위 말하는 TF(Task Force)팀을 구성한다.

이 세 가지 부류의 회사 중,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를 타고 등장해서 주목받으면서 급성장하는 스타트업의 공격을 받아도 계속 성공하거나, 아니면 최소의 타격을 받으면서 기존 1등 자리를 유지하는 곳은 어디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를 무시하는 회사는 아마도 곧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에 사라지지 않더라고,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를 매번 이렇게 무시한다면 회사의 장기적인 생존은 보장되지 않는다. 계속 “기다려 봅시다”라는 생각을 하는 회사도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항상 기다리다가 기회를 놓친다.

그럼 서둘러서 준비하고 TF팀을 만드는 세 번째 부류의 회사가 그나마 제일 잘할 것 같은데, 이런 회사도 내 경험에 의하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 실패하는 걸 많이 봤다. 현재 잘되고 있는 비즈니스에서 그 어떤 자원이라도 다른 곳으로 재배치 하는 건, 스스로를 자해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런 방식의 접근은 주로 신사업과 신기술에 대비해서 구색만 갖추는 것이기 때문에 이 TF팀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예를 들면, 대형 육류 회사에서 공급이 부족할 정도로 고기를 잘 팔고 있지만, 대체육류/단백질 시장 또한 무시할 수 없으니 육류 회사 내부에 대체육류 팀을 만드는 경우이다. 힘들게 팀원들을 내, 외부에서 모집해서 신사업 팀을 만들긴 하지만, 현재 너무 잘되고 있는 본인들의 비즈니스를 cannibalize 할 순 없기 때문에, 주로 구색만 갖추고 실제로 신사업은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엔 이 신사업 팀원들이 하는 게 없어서 스스로 팀을 떠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도 있다.

결국엔, 대기업이 기존 사업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적극 수용하려면, 고통스럽겠지만, 스스로 자해를 해야 한다. DVD 사업이 잘되고 있을 때, 이 사업을 스스로 없애고 스트리밍으로 전환한 넷플릭스가 이런 자해를 성공적으로 한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기업이 이걸 못 하기 때문에 항상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으로 빨리 결정하고 움직이는 스타트업에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Z세대, 음식, 그리고 건강

소비자 트렌드에 대한 좋은 시장 조사, 그리고 이를 통해 통찰력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The New Consumer에서 2023년도 음식과 웰니스에 대한 리포트 ‘The New Consumer Food & Wellness Special 2023’를 얼마 전에 발행했다. 특히, 이번 리포트가 더 재미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나이대의 청중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고, 이 결과를 보강하기 위해서 Instacart의 온라인 구매 데이터와 비교 분석했는데, 흥미로운 발견들이 꽤 많았다.

이 분야에서 일하거나 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리포트를 완독하면 되는데,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MZ 세대가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건강이 최고의 자산이며, 좋은 음식이 건강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
2/ 온라인으로 식음료를 구매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3/ 젊을수록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새로운 음식과 식당을 발견한다
4/ 경기가 나빠도 미국인들은 먹고 마시는 데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

실은 내가 제일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3번째 포인트인데, 이 차트가 특별히 흥미로웠다. 새로운 음식이나 음료에 대한 레시피를 주로 어디서 발견하냐에 대한 답변인데 MZ 세대 대부분은 유튜브나 틱톡인데, 나 같은 X 세대는 친구나 요리책을 통해서 찾는다고 답변한 걸 보니까 그냥 웃음이 나왔다.

MZ finds recipes on YT and Tiktok

Gen. Z and Millennials discover recipes differently: On YouTube and TikTok

그리고 이 차트도 매우 흥미로웠는데, 틱톡에서 음식 관련 영상이 바이럴을 타면, 실제로 이 제품이 온라인에서 굉장히 많이 팔린다는 걸 보여주는 그래프다. ‘Baked Feta Pasta’ 관련 틱톡 영상이 바이럴을 타자, 곧바로 인스타카트에서 이 요리의 재료들이 많이 팔린걸 볼 수 있다.

Baked Feta Pasta

A viral TikTok food video can drive a real shift in online grocery orders

많은 젊은 세대가 모든 걸 유튜브나 틱톡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해결하는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이 보고서를 통해서 이런 현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직접 확인하니까 더욱더 흥미로웠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음식과 웰빙/웰니스를 바라보는 태도는 솔직히 우리 X 세대나 MZ 세대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위 4가지 항목 중 3번을 빼곤, 나머지는 나도 100% 같은 입장이고, 어떤 분야에서는 내가 오히려 Z 세대들보다 더 건강과 웰빙에 민감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요새 젊은 친구들이 다르긴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은 비슷하고, 그냥 시대의 흐름에 대한 각 개인의 민감도에 따라서 이런 생각과 관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인 창업팀

이제 막 시작한 어떤 창업가랑 미팅을 했는데, 좋은 개발자 창업가였고, 하려고 하는 사업도 괜찮은 것 같았다. 우려되는 점은 코파운더가 없는, 일인 창업팀이었고, 이전 직장 동료와 학교 친구들이 시간 날 때마다 파트타임으로 개발을 도와주고 있는 형태로 창업한 분이었다.

미팅 끝나고 대표님에게 다른 건 다 괜찮은 것 같은데 “코파운더가 없는 게 걱정된다”라고 하니까, 본인의 개발력과 개발팀 관리 능력이 좋기 때문에 다른 파트타이머 개발자들에게 업무 지시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이들을 잘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회사가 일인창업팀이라는게 걱정되는 이유가 다른 파트타이머나 직원들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반대였다. 일인창업팀이라서 오히려 창업가에 대한 걱정이 커서 이런 우려를 표시한 것이었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지만, 창업의 길은 어렵고 외롭다. 외로움도 어려움의 일부인지, 아니면 어려움이 외로움의 일부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창업가들이 나에게 하는 말은 창업은 너무너무 어렵고, 너무너무 외로워서, 항상 이 두 가지 생각과 감정과 싸우다 보면, 몸과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걸 거의 매일 경험한다고 자주 호소한다.

창업가마다 이런 어려움과 외로움과 싸우는 방법도 다양하다. 나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받고, 답답하고, 공황상태가 올 때마다 육체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운동을 많이 한다. 어떤 분들은 술을 먹는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당히 먹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다른 분은 명상을 하고 독서도 한다.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고 호흡하면 이 외로운 세상이 덜 외롭다고 한다. 어쨌든 모든 창업가마다 힘든 상황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방법이 이렇게 다양하다.

이렇게 누구나 다 자기만의 크지만, 조용한 전투를 할 때, 옆에 이 어려움과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큰 위안이 되는데, 공동 창업가가 이런 역할을 훌륭하게 해줄 수 있다. 공동 창업가는 같이 사업을 하는 사람 그 이상이다. 제품을 같이 만들고, 펀딩을 같이하고, 채용을 같이하고,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면서 같이 사업을 성장시키는 사람이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창업가들이 서로 지치지 않고, 미치지 않고, 맑고 따듯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코파운더가 있는 건 매우 중요하다.

우리도 투자할 때 일인 창업가 팀이라면 항상 걱정하는데, 혼자서 사업을 잘 못 할 것 같아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외로운 길을 혼자서 오래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다. 일인 창업가면 오히려 혼자서 모든 결정을 빨리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단기적인 성과는 공동창업가가 있는 것보다 더 좋을 수 있지만, 마라톤과 같은 길고 지루하고 외로운 싸움을(=창업) 하려면 앞, 뒤, 또는 옆에서 같이 보조를 맞춰주는 동료가 있는 게 훨씬 덜 지친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면, 공동창업가가 없어서 내가 우려를 표명한 건, 사업의 운영에 대한 우려보단, 오히려 일인창업가인 대표이사의 정신적 건강, 웰빙,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우려였다.

소셜비 전략

나는 소셜미디어랑 이 블로그를 통해서 행사와 이벤트 참석에 대한 내 의견을 자주 공유했었다. 얼마 전에 이제 사업을 시작한 젊은 창업가가 이런 외부 활동에 대한 내 생각과 의견을 물어봐서 같이 꽤 오랫동안 이야기했었는데, 이날 이야기한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기록을 남겨본다.

한국만 해도 스타트업 관련 행사가 넘친다. 맘만 먹으면, 1년 365일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는 이벤트가 많고, 이제 코로나로부터 서서히 해방되면서 오프라인 행사가 폭발적으로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런 행사에 많이 참석하는 소셜비(social bee) 전략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참고로, 나도 2008년과 2009년 뮤직쉐이크 첫 2년 동안엔 LA와 실리콘밸리의 웬만한 이벤트는 모두 다 참석했고,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관련 행사에서는 꽤 얼굴이 알려진 “흔들면 음악을 만드는 그 뮤직쉐이크 guy”로 통했던 적이 있다.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2년 동안 거의 100개 넘는 스타트업 행사에 참석해서 얼굴도장을 찍었던 것 같다. 그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이런 곳에 가서 업계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교류하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고, 스타트업하는데 다른 창업가나 투자자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지 않으면 의미 있는 협업도 못 하고 결국엔 투자도 잘 못 받는 줄 알았다.

그래서 없는 시간을 쪼갰고, 가기 싫어도 행사에 참석했다. 사업은 잘 안됐지만, 왠지 이런 행사에 가서 자주 보던 업계 사람들과 아는 척하고 술도 먹으면서 노가리 까면 기분도 더 좋아지고 사업이 더 잘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자리에 오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 할 업계 동료들도 많이 알게 됐고, 이들과 나중에 의미 있는 협업도 했다. 또한, 아주 거물급은 아니지만 적당한 규모의 VC와 개인 투자자들도 많이 알게 돼서 뮤직쉐이크를 세게 피칭하고 데모도 열심히 했었다.(뮤직쉐이크로 만든 음악은 고음질로 들어야지만, 이 사업의 진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당시 꽤 큰 휴대용 BOSE 스피커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기회만 나면 주변 환경 신경 쓰지 않고 노트북과 스피커로 열심히 데모를 했었다.)

그리고 어떤 창업가와 투자자들에겐 이렇게 모든 행사를 열심히 다니면서 얼굴 익히고, 행사에 오는 사람들을 아는 척하는 소셜비 전략이 잘 먹혔다. 이들에게 나는 이 행사 저 행사에 매번 보이는,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사람만 만나면 뮤직쉐이크 이야기를 하면서 제품 데모를 휴대용 스피커를 통해서 보여주는,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는 스타트업 창업가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이들을 통해서 좋은 사람들도 소개받고, 내가 잘 몰랐던 분야의 네트워크도 생기는 즐거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행사에 기웃거리기 시작한 후 2년 만에 이 소셜비 전략을 완전히 끝냈다. 위에서 말 한대로 가끔은 좋은 사람도 만났지만, 결국 이렇게 나를 도와줄 누군가를 내가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행사는 영양가가 별로 없다는 걸 몸소 체험했고, 어느 순간 이후로는 새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행사만 자주 찾아다니는 같은 얼굴만 보이기 시작해서, 네트워크 확장에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하지만, 내가 이런 소셜비 전략을 완전히 버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진짜로 유용한 뭔가를 만드는 창업가들은 이런 행사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이다. 스타트업 이벤트에서 네트워킹에 열을 올리는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말로만 창업했고, 말로만 제품을 만들고 있었고, 이 사람 중 아무도 좋은 회사를 만들고 있지 않았다. 진짜 창업가들은 이런 행사에 참석할 시간에 제품을 개발하고, 고객을 만나고 있었고, 실제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들은 모두 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도 이젠 스타트업 강국이 되면서 관련 행사들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다. 나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지만, 내가 오래전에 미국에서 느꼈던 그 분위기랑 요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행사에 참석하지 말고, 내가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제대로 된 창업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