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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한 거부

인간은 천성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comfort zone을 가지고 있고, 이 범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마치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거 처럼 긴장하고, 불안감이 온몸을 감싸면서 몸은 방어태세로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보면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스스로 차버리고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는 창업가들은 약간 미친 사람들이다.

나는 벤처 관련된 일을 하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내 comfort zone 밖으로 나가야 한다. 변화에 민감하고 스스로 변화하려고 항상 노력하지만 변화라는건 나한테도 쉬운게 아니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느낀건 바로 학력이 높고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일수록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점이다. 더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의 생각과 다른걸 인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돈,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라도 불확실하고 새로운걸 시도해 보려고 하지 않는 경우를 나는 많이 봤다. 그 중 한 부류가 의사들이다 (참고로, 이 글은 의사들을 일반화 하려는건 절대 아니다. 그냥 내 개인적인 경험이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하나인 The Good Ear Company의 첫번째  제품인 Better Hearing이 얼마전에 아이폰 앱으로 출시되었다. 이 앱은 TSC(Threshold Sound Conditioning)이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제품이며, 딱 한가지 기능이 있다: 우리의 청각 시스템에서(달팽이관) 가장 기능이 약한 부위(주파수)를 파악해서 그 부위를 향상시키는 기능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약간 특이하다: 약물투입, 수술 또는 외부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침해적인 방법이 아닌, 단순하게 소리를 사용해서 특정 부위를 자극하고 컨디셔닝하는 방법이다. 사용자는 그냥 이 소리를 특정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듣기만 하면 청력이 좋아질 수 있다. 마치 우리가 규칙적으로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면 없던 근육이 생기는거와 같이 귀를 ‘훈련’시키면 청력이 향상된다는 논리이다.

별거 아닌거 같지만 ‘한번 나빠진 청력은 개선될 수 없다’라는 이론을 기반으로 힘든 의과대학 공부를 한 의사들 – 특히, 이비인후과 – 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론이다. 우리가 이 이론과 기술에 대해서 많은 의사들과 이야기를 해봤지만 거의 모두 부정적인 피드백과 사기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대화는 끝난다. 어떤 이론을 기반으로 개발된 기술인지 그리고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어디있는지…전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이 기술이 사실이라면 본인들의 밥그릇이 없어지거나 작아지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가장 신경을 써야하는 환자들의 안정과 편리함은 안중에도 없다. 궁극적으로는 청력을 손상시키는 비싼 보청기를 팔고, 살을 찢는 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해야지만 의사, 의료 기기, 보청기 회사들이 모두 다 안정적으로 잘먹고 잘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더 오픈 마인드로 변화와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Better Hearing의 경우, 과연 이 기술이 널리 사용된다고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없어질까? 아니다. 오히려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더 생산적이고, 환자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일에 그만큼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내 의견에 대한 반대 의견도 충분히 많다. 가장 흔한건 바로 “의학적으로 100% 입증되지 않은 기술을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 이다. 절대로 틀린 말은 아니다. 실은 이걸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재 스탠포드 대학 병원과 임상실험을 진행 중이다(이미 한국에서 중앙대학교 부속 병원과 삼성의료원과 진행한 임상 실험 결과가 있지만 외국의 임상실험 결과를 잘 믿지 않는 미국 의사들을 위해서 다시 하고 있다). 실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며, 이렇게 되면 우리 입지는 불리해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건 오히려 새로운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의사들과 같이 배운 사람들의 폐쇄된 자세와 태도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의학 기술과 이론만 바뀌지 말란 법이 있을까? 내가 학교에서 배운거와 다르다고, 또는 내 밥그릇이 위기에 처한다고 변화를 거부하고 다른 의견들에 대해 귀를 막으면 그 사람은 물론 이 세상에는 발전이란게 없을 것이다.

오늘의 커피

In Beans We Trust‘라는 커피 예찬을 할 정도로 나는 커피를 즐긴다. 향도 즐기고 맛도 즐기고 분위기도 즐기고 다 좋아한다. 대신 맛은 좋아야 한다. 살짝 맛만 보거나, 아니면 향만 맡아도 그 커피의 원산지를 정확히 맞출 정도의 실력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맛이 없는 커피랑 맛있는 커피 정도는 구분을 할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느낀게 있는데 바로 한국의 커피샾에는 ‘오늘의 커피’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까페 베네, 탐앤탐스, 파스쿠치와 같은 국내 커피샾에서 “오늘의 커피 주세요”라고 하면 “그건 없고 아메리카노 있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막상 아메리카노는 drip brewed 커피랑은 완전히 다른건데도 바리스타들은 계속 아메리카노만을 고집한다. 오늘의 커피는 그날 그날 커피를 정해서 계속 내려놓고 손님들이 찾을때마다 부어서 서빙하는 커피고,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를 뜨거운 물에 탄 커피다. 결과는 주로 아메리카노가 물탄 맛의 연한 커피고 오늘의 커피는 조금 더 진한 맛의 커피다. 미국의 경우 아메리카노가 주로 더 비싸고 에스프레소를 내려야하기 때문에 제조 시간도 더 걸린다. 물론,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해서 먹으면 더 진해지지만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거랑 커피를 drip brew한거랑은 맛 자체가 매우 다르다.

스타벅스나 커피빈과 같은 미국계 커피샾에 가면 메뉴에는 ‘오늘의 커피’가 있긴 있다. 그런데 아무도 찾지 않아서 그런지 주문하면 항상 3분을 기다리라고 한다. 왜 기다려야하냐 물어보면 주문을 받을때마다 커피를 내려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다리지 않고 빨리 커피 한잔 사가려고 하는 ‘오늘의 커피’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커피가 the first and the last brew이다. 가장 첫번째 커피는 맛이 좀 밍밍하고 마지막 커피는 너무 독하고 커피 가루가 항상 섞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킬때마다 내리면 내 오늘의 커피는 항상 first brew가 된다.

뭐, 이게 잘못되었다는건 아니고….하지만 최소한 바리스타들은 이런 차이점을 좀 알았으면 한다. 서울에서 제대로 된 ‘오늘의 커피’를 먹을 수 있는 곳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던킨 도넛 밖에 없었다.

신 경제의 슈퍼스타들 – 개발자와 디자이너

제품이 후져도 영업력 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아마도 우리 아버지 세대였던거 같다. 그때는 무조건 영업과 마케팅 능력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었던 때였던거 같다. 영업/마케팅 인력이 회사를 먹여살렸기 때문에 이들이 회사에서 가장 인정받고 몸값도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실리콘 밸리의 새로운 슈퍼스타들은 영업 이사도 마케팅 이사도 아닌 개발자와 디자이너다.

The Engineer
Strong Ventures의 웹 사이트에는 ‘창업팀에 개발자가 없는 스타트업이라면 정중히 거절합니다. 스트롱 벤처스는 직접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팀만을 지원합니다.’라고 써놨다. 우리와는 다른 레벨인 Y 콤비네이터가 투자하는 모든 스타트업은 개발자 출신의 공동 창업자가 있던지, 창업 구성원 모두가 개발자 출신이다. Y 콤비네이터가 소액 투자해서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서비스가 에어비앤비와 드롭박스인데, 두 스타트업 모두 개발자가 창업팀의 주를 이루고 있다.

언젠가 어떤 젊은 친구가 좋은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왔다. 그런데 그는 프로그래밍 능력이 없었고 개발자 공동 창업자도 없었다. 우리는 투자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창업팀에 개발자가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왜 아이디어에 투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가끔 ‘백만불 짜리 아이디어’라는 말을 하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모순이다. 아이디어는 실제 제품화가 되어서 형체를 갖기 전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개발자’이다. 그런 개발자가 없는 팀에 투자하는건 돈 낭비이다.

벤처기업의 최초 제품의 개발은 절대로 외주하면 안된다. 개발 외주는 영업으로 먹고사는 원청회사나 하는 하도급이다. 전세계 식당을 평가하는 Michelin Guide에서 별점 만점을 받는 음식점은 절대 공장 소스를 쓰지 않는다. 하물며 기술 기반의 인터넷 벤처가 자신의 혼과 생명인 제품 개발을 어떻게 외부인에게 맡기나? 외주업체는 그냥 돈 받은 만큼 일해서 제품을 넘기면 끝이다. 제품에 대한 사랑도 책임감도 없다. 나중에 잘못되도 상관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찮게 본다. 이미 우리나라 대학교에는 수년 동안 공대 지망생이 줄고 있고, 공대 학생마저 요새는 고시나 회계사 시험을 공부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기계적으로 열심히 밤새서 일하는 비숙련 노동자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과는 너무나 다른 슬픈 현실이다. 언젠가 내가 유튜브와 트위터를 방문했을 때 매니저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우리 회사 최고 자산은 엔지니어죠”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페이스북은 제품보다는 우수한 개발 인력을 통째로 채용하려고 회사를 인수한다. 페이스북의 이런 도매금 인력 인수는 ‘acqhire’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인수를 의미하는 ‘acquire’와 채용을 의미하는 ‘hire’의 합성어다. 회사 자산 중에 사람이 제일 탐나서 회사를 인수하는 걸 의미한다. 물론 저커버그도 개발자 출신이다.

The Designer
유튜브의 공동 창업자 채드 헐리, 그루폰의 공동 창업자 앤드루 메이슨, 그리고 애플의 공동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기술이나 기능은 나중 문제라고 생각하는 ‘디자인’ 근본주의다. 특히 채드 헐리와 앤드루 메이슨은 디자이너 출신이다. 채드 헐리는 첫 직장 페이팔에서 회사 로고를 디자인했고, 앤드루 메이슨은 시카고에서 웹 디자인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유튜브와 그루폰 사이트를 방문해보면 단순한 느낌이 들면서도 유용하다. 요란한 화장 없이 단정하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기능을 배열한 이런 디자인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물론 소비자 가전제품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애플의 제품 디자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오죽했으면 최근에 내가 만난 실리콘 밸리의 투자자들은 “일단 디자인이 좋으면 무조건 투자하겠다”고 할까?

웹 서비스의 – 특히 B2C – 생명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 경험(UX)이다. 즉, 인간은 새 서비스를 볼 때 첫 느낌이 좋아야 서비스를 계속 사용하고 싶어한다. 아니면 바로 사이트를 떠난다. 아무리 기능이 좋고 유용한 서비스라도 ‘나쁜 디자인’ 안에 갇혀 있으면 사용자의 눈길도 못 받는다. 소개팅에서는 일단 상대 외모가 좋아야 호감이 간다. 첫인상이 나쁘면, 사람을 더 알고 싶은 흥미가 없어서 빨리 자리를 벗어나려고 꾀를 쓴다. 웹 서비스에서도 첫인상이 나쁘면 바로 웹 브라우저 탭을 닫아버린다. 디자인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벤처는 대개 창업 단계에 디자이너를 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디자이너가 아예 없는 회사도 많다. 전에 개발자가 없는 창업팀은 시작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하나 더 말하면, 디자이너가 없는 창업팀은 시작은 해도 오래가기가 어렵다.

왜 창업팀에는 디자이너가 있어야 할까? 오랫동안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디자인을 컨설팅한 디자이너 펀드의 Enrique Allen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 경쟁이 심화하면서, 브랜드와 사용자 경험이 성공을 이끄는 필수 조건이 됐다. 제품의 기술은 둘째다.
-혁신의 핵심은 전면적인 협업이다. 디자인·기술·비즈니스 지식의 전면적인 융합은 제품의 수정과 반복을 더 빠르게 하고 제품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
-디자이너 출신 창업자는 단순히 시각적 능력뿐 아니라, 인간의 욕구와 겉으로 표출되지 않은 기회를 발견하는 독보적인 능력이 있다.

개발자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대체로 디자인이 대접을 못 받고 있다. 많은 CEO가 애플을 벤치마킹하면서 “우리 회사의 핵심은 디자인입니다”라고 말은 해도, 막상 행동은 반대다. 디자인 인력을 줄이고, 디자이너를 막 부린다. 디자이너는 많이 생각하고, 많이 그려보고, 많이 실험하는 게 생명인데 밤새워서 시키는일 하느라 바쁜게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일상인거 같다. 거의 막노동자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디자인을 정통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용자 경험까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감수성이 예민한 창업자였다. 스티브 잡스처럼 기술이 인간과 친구가 되려면 어떤 형태를 갖추고 어떤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창업자야말로 기술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 중심에서 두 세계를 적절하게 혼합할 수 있는 마법사다.

자동차 운전대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와 자동차 전체와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수 있는 디자이너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오래가는 벤처를 하려면 둘 다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창업팀에 필요하다.

역시 멋진 서비스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개발자가 없다면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없고, 디자이너가 없다면 스타트업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우리시대의 슈퍼스타인 개발자와 디자이너들과 어울려라, 그리고 잘 모셔라. 이 사람들이 없으면 창업해서 성공 못한다.

스타트업 바이블 2: 계명 10 – 개발자와 동업해라‘와 ‘계명 11 – 명품에는 명품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를 정리한 내용이다.

LIFE

내가 1974년 생이니까 한국 나이로는 이제 38이다. 물론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많은 나이도 아니다. 그만큼 애매한 나이인거 같다. 우리 인생 자체가 고민 투성이고 죽을때까지 “인생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만 왠지 ’40’이란 숫자는 굉장히 특별하고 심각하게 느껴진다.
올해는 특히 바쁜 와중에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앞으로 이 삶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 진지한 생각과 질문들을 많이 한거 같다. 뭐, 거창한거는 아니고 그냥 이 나이의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는 그런 것들. 가족, 직장, 일, 돈 등…..

그러다 언젠가 마더테레사가 인생에 대해서 쓴 글을 읽었다. 많이 공감했고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인생을 살되 정말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Life is an opportunity, benefit from it. Life is a beauty, admire it.
Life is a dream, realize it. Life is a challenge, meet it. Life is a duty, complete it.
Life is a game, play it. Life is a promise, fulfill it. Life is sorrow, overcome it.
Life is a song, sing it. Life is a struggle, accept it. Life is a tragedy, confront it.
Life is an adventure, dare it. Life is luck, make it. Life is life, fight for it!

MBA와 창업

“MBA 학위는 창업함에 있어서 유용할까?”

나 또한 MBA 과정에 발을 담가 봤고, 내 주위에는 MBA 출신들이 엄청 많기 때문에 매우 예민한 이슈이다. 분명히 나랑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사실 MBA는 창업과는 전혀 상관없고, 오히려 창업에 방해가 되는 학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도 MBA 과정에 발을 담가봤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MBA 프로그램 중 하나인 와튼 경영 대학원에 입학해서 첫 학기를 다녔다. 졸업도 못해놓고 다 아는 양 말하긴 민망하지만, 가장 바쁘고 힘든 첫 학기를 보낸 학생 관점에서 MBA 과정이 대략 어떤지는 안다. 와튼 스쿨의 MBA 과정에는 해마다 약 900명이 입학한다. 이 중 대략 30% 정도가 – 물론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 졸업 후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에 취업하거나 본인이 직접 창업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왜 바로 창업하지 않고 굳이 20만 달러 가까운 혹독한 수업료를 내고,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MBA 학위가 필요할까?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난 후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하려고요.

공자님 말씀이다. 다만, 현실성과 신빙성이 떨어진다. 나도 MBA 과정에서 경영 이론과 마케팅 전략을 공부했다. 또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기존 기업이 특정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신물 나도록 읽어보고 리포트를 작성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가 창업을 해보니 MBA 과정에서 배운 어떤 이론이나 사례도 통하지 않았다. 이론은 말 그대로 실용성이 떨어지는 일반론이며,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교과서적인 모범 전략을 구사할 만한 인력도 자금도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다른 기업이 내 회사와 같은 상황이 아닌 이상, 다른 기업의 사례는 말 그대로 다른 회사의 사례일 뿐이다.

내 경험상 벤처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MBA 과정에서 배운 내용은 첫째, 남들보다 빠르고, 좋고, 싼 걸 추구해야 하는 벤처 창업에서는 이미 과거의 것이다. 둘째, 와튼 스쿨에서 배출한 MBA 졸업생이 지금까지 총 8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이는 나뿐만 아니라 내 동문이자 잠재적 경쟁자도 다 똑같은 내용을 안다는 뜻이다.

벤처 현장은 전쟁터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시대로 움직이지 말고 현장에서 싸우는 자신이 직접 현장을 분석하고 전략을 짜서 즉각 행동해야 한다. 이런 기술은 책으로는 못 배운다. 오로지 몸으로 부딪히고 쓰러지고 일어나는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다.

MBA 학위가 창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창업의 꿈을 가지고 입학한 사람도 막상 졸업이 가까와지면 투자비 회수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2년간 소중한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면, 수익은 둘째치고 본전 생각이 간절해진다. MBA로 월급쟁이 몇 년 하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도 있는데 창업이란 기약도 없는 투자를 한 번 더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더 현실적인 어려움은 대출 상환에 대한 압박이다. MBA 졸업생 대부분은 20만 달러 가까이 되는 MBA 과정 학비 때문에 대출을 받는다. 보통 평균 10만 달러 넘게 빚을 진다. 학자금 대출이 1억 원이 넘는데 억대 연봉을 뿌리치고 무급 창업자의 길을 밟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 MBA 과정의 기본이 되는 cost-benefit 분석을 해보면 완전 미친 짓이다.

앞에서 언급한, 졸업 후 창업하겠다던 와튼 MBA 학생 중 몇 명이나 실제로 창업을 했을까? 내가 아는 건 4명 미만이다. 대신 MBA 학위는커녕 학사 학위도 없는 젊고 거침없는 청년이 세상을 바꿀만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한다. 하버드를 중퇴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나 졸업을 6개월 앞두고 MIT를 중퇴한 드롭박스 공동 창업자 아라쉬 퍼도우스키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고 MBA가 아주 쓸모없는 학위라고 생각하지 말자. 대기업, 컨설팅, 은행 또는 중견 벤처에 취업할 때는 아주 유용하다. 다만, 실제 창업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또한, MBA 과정을 졸업하면 누릴 수 있는 큰 특혜가 있는데 바로 동문 인맥이다. 미국에도 학연이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동문이 전화했는데 일면식이 없다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일 진행이 훨씬 편하다. 대신, 좋은 동문 인맥을 만드려면 좋은 학교에서 MBA를 해야한다.

“돈이 많으면 좋지만, 평생 그 돈을 쓰지 않는 건 마치 늙어서 섹스하려고 체력을 비축하는 거와 같습니다.” 오마하의 현자 워런 버핏이 한 명언이다.

공부 더하고 경험 더 쌓고 창업하려고 MBA 과정 2년을 보내는 건 마치 40대에 섹스하려고 20~30대에 체력을 비축하는 거와 같다

아직도 창업하기 위해서 MBA를 하겠는가? ‘스타트업 바이블 2: 계명 03 – MBA 갈 돈으로 창업하라‘를 읽고 판단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