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대비 펀딩 비율

스타트업이 수백억 원 규모의 펀딩을 받았다는 소식을 이젠 국내에서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만큼 한국의 벤쳐캐피탈 규모도 커졌고, 좋은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의미인 거 같다. 미국은 내가 다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큰 규모의 투자 소식이 많은데,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투자받은 규모와 이 회사의 실제 실력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데, 이럴 때 그냥 간단하게 계산해보면 재미있는 지표가 있다.

매출대비펀딩(revenue-to-funding) 이라는 지표인데, 스타트업의 가치를 비교적 간단하게 비교해볼 수 있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물론,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이 지표 또한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가장 최근 12개월 매출 대비 총 펀딩 금액으로 계산해보기로 한다:
1/ A라는 스타트업은 지금까지 100억 원의 펀딩을 받았고, 최근 12개월 매출이 20억 원이면, 이 지표는 0.2
2/ B라는 같은 분야의 스타트업은 지금까지 100억 원의 펀딩을 받았고, 최근 12개월 매출이 200억 원이면, 매출대비펀딩비율은 2
3/ C라는 스타트업은 지금까지 50억 원의 펀딩을 받았고, 최근 12개월 매출이 500억 원이면 이 지표는 10

좀 간단한 숫자들이고, 비교를 위해서 극적으로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에, 누가 봐도 C라는 회사가 가장 건강한데, 이 매출대비펀딩비율이 높다는 건, 이 회사가 투자금을 실제로 매출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좋다는 뜻이다. 비율이 낮다는 말은 투자금을 실제 매출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비슷한 분야의 회사들에 대해 이 비율을 계산해보면 은근히 재미있는 패턴이 나온다.

통합지표

얼마 전에 우버에 새로 부임한 다라 코스로샤히 대표에 대한 긴 글을 읽었는데, 조금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어서 공유한다. 한국에서는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비즈니스의 건강과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를 의미한다. 사람의 건강으로 따져보면 KPI는 근육량, 체지방, 몸무게 등이 있을 거 같다. 기업의 KPI는 그 기업이 속한 산업군, 지역, 성장 단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기업의 비전과 미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비슷한 분야에 있더라도 어떤 기업은 절대적인 매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고, 다른 기업은 매출보다는 수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또는, 공급과 수요를 원활하게 매칭해주는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는 매출이나 수익보단 공급과 수요의 볼륨이 이 비즈니스가 잘 되고 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스타트업이 투자유치 할 때도 이 KPI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결국 투자를 받는 이유는, 스타트업한테 가장 중요한 수치를 개선하기 위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돈을 받는 건데, 대표이사는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잘 성장하려면 수많은 지표 중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KPI다. 그런데, 문제는 핵심 KPI 마저 그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내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 할 때의 경험을 기억해보면, 회사 전체의 KPI 마저 한 10개가 넘었던 거 같다. 매출, 수익, 고객 만족 등의, 중요하지만 너무 많은 KPI를 목표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핵심 수치에 집중하기보단 그냥 모든 걸 다 잘 해야 한다는 인상을 받기가 쉽다.

우리 투자사들도 항상 이런 고민을 하곤 한다. 한정된 자원과 돈으로 우리 회사가 집중해야 하는 단 하나의 핵심 지표와 수치는 무엇일까? 실은 상당히 어려운 주제인데, 우버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이런 KPI에 대한 우버의 입장에서 좋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우버의 새로 온 대표는 그동안 우버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모든 KPI를 대표할 수 있는 지표로 ‘예약 건수 대비 기사/승객의 불평 수‘를 선택했다. 우버를 통해서 하루에 1만 개의 택시 예약이 이루어졌는데, 택시승차가 종료된 후 택시 기사가 손님에 대해서 불평, 또는 손님이 택시 기사에 대해서 불평한 건수가 1,000개면, 이 수치는 10%가 되는 거다. 이 예약대비불평 수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버의 운영, 물류, 제품, 기술 그리고 고객서비스가 잘 맞물려 최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이 지표가 개선되면 외형적인 매출과 수익은 자연스럽게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우버는 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회사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모든 지표를 대표하는 이 단일지표를 ‘통합 지표(Unifier Metric)’라고 한다.

대표이사는 이 통합 지표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과 모든 자원을 딱 하나의 지표에 집중해야 한다면, 그 통합 지표는 과연 무엇일까?

Always Stay Humble

6월 20일 프라이머 13기 데모데이가 있었다. 나도 프라이머 파트너로서 활동한 지 이제 거의 3년이 되는데, 항상 느끼지만, 꼬꼬마 초기 스타트업과 같이 일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과 배움은 크다. 내가 프라이머 회사들에 주는 도움도 물론 있겠지만, 실은 내가 이들한테 배우는 점이 더 많다. 특히, 대부분 젊은 분들이라서 이들의 포기를 모르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다 보면, 항상 힘이 솟아난다.

이번 데모데이부턴 기조연설을 없앴다. 대신, 프라이머 선배 기수 창업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는데 이번에는 직방에 인수된 호갱노노의 심상민 대표와 대기업의 자회사인 29CM를 인수해서 화제가 되었던 스타일쉐어의 윤자영 대표가 그 주인공이었다. 나는 두 분 다 개인적으로 안다. 특히, 심상민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알았고 호갱노노가 성장하는 모습을 꽤 가까운 곳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이 두 분에 대해서는 이제 시작하는, 젊고, 경험보다는 패기로 사업하는 창업가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데모데이 무대에서 발표하는 걸 보니 짧은 시간 동안 훌륭한 사업가로 성장하신 거 같아서 기뻤다.

특히, 윤자영 대표님이 정말 좋은 발표를 했는데, 일반인들이 보면 스타일쉐어는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온 회사지만, 정작 그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본인은 스타일쉐어를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 주변에는 누구나 다 알만한 대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들도 있는데, 이 중 몇 분은 아직도 회사가 잘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을 하시고, 항상 초심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이런 분들 참 존경스럽다. 항상 겸손하고, 지금까지 이룬 일보단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지만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기업인이 작은 일 때문에 자만하는 경우를 목격하는데, 자만하기 시작하면 더 올라갈 곳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부턴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계속 위로 오르고 싶으면, 항상 겸손해야 한다.

스타트업(Startup)이라는 단어 자체가 뭔가를 시작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회사가 작든, 크든, 잘 되든, 안 되든, 항상 이제 시작하고 있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중요하다.

대등한 경쟁

지난주 한국 – 멕시코 월드컵 축구경기에 대해서 어떤 외국인이 나한테 “한국 팀치곤 그 정도면 괜찮게 했다”라고 했는데, 난 이 말을 듣고 얼마 전에 어떤 외국 VC가 했던 “한국 스타트업치곤 나쁘지 않네”라는 말이 생각나서 기분이 좀 그랬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한 회사에 최소 수백억 원 규모의 투자를 하는 꽤 큰 미국 투자자를 만나서 우리가 투자한 몇 스타트업에 대한 설명을 한 적이 있다. 큰 규모의 투자를 하므로, 우리 투자사 중에서도 내가 생각하기에 꽤 잘하고, 글로벌 기준으로 봐도 수치나 팀의 수준이 괜찮은 회사들 이야기를 했다. 흥미 있게 들었지만, 결국 “Not bad. For a Korean startup”이라는 말을 했다.

실은,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냐에 따라서 반응이 달라질 텐데, 나는 이 말을 좀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은 자존심도 상했다. 그냥 좋은 회사면 좋은 회사지, 굳이 “한국 회사치곤”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 스타트업에 비교해서 부족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반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 전에 태국에 갔다가 TV에서 태국 음악 프로그램을 봤는데, 태국을 대표하는 가수조차 흔한 한국 연습생보다 춤과 노래 실력이 떨어진다는 걸 느꼈다. 그때, “그래도 태국치곤 나쁘지 않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마도 위에서 말한 그 투자자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나는 앞으로 한국 스타트업이 더 잘해줬으면 한다. 지금도 충분히 잘 성장하고 있고, 실은 한 나라에서 좋은 회사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거 보다 훨씬 더 많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시간이 5년~10년은 더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나는 가능하면 이 시간을 계속 단축하는 노력을 창업가, 투자자, 기업인, 정부, 학교가 해줬으면 한다. 그래서 ‘한국 회사치곤’이 아닌, 누가 봐도 좋은 회사가 – 글로벌 시장에서 조금도 양보받지 않고, 남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그런 좋은 회사 – 한국에서 많이 탄생했으면 한다.

실은 이렇게 대등한 경쟁을 하려면, 우리 스스로 잘 해야 한다. 알토스벤처스 한 킴 대표님이 항상 강조하는 “더, 더, 더”를 모든 창업가가 매일 연습해야 한다. 한국을 벗어나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영어도 더 잘 해야 하고,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숫자/데이터 기반의 비즈니스를 더 잘 해야 하고, 한국 축구가 강조하는 투혼이 아니라 실적과 성과가 뒷받침되는 진정한 실력을 더 잘 키워야 한다.

나도 이 여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국 축구의 미래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스타트업의 미래는 밝다.

학습된 무력감

최근 유명인 두 명의 자살로 인해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디자이너 케이트스페이드와 셰프/작가/방송인 앤소니 보데인이 며칠 사이 연이어 자신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정확한 원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둘 다 오랫동안 우울증과 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나는 케이트 스페이드는 잘 모르고, 큰 관심이 없었지만 앤소니 보데인의 프로그램 Parts Unknown은 즐겨 시청했었고, 남의 나라의 문화와 음식에 대해서 그 나라 사람보다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보데인씨의 능력에는 항상 놀라곤 했는데, 이 분을 다시 못 본다는 생각을 하니까 좀 슬프긴 하다.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인 이 두 유명인의 자살 소식을 접하니, 유명인 못지않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창업가 커뮤니티에 다시 한번 눈을 돌리게 됐다.

실은 공황장애나 우울증은 이제 ‘병’이라기 보단, 지치고 스트레스받는 현대인이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 그 정도는 다르지만 –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나 같은 VC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항상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진해야 하는 미션이 있는 창업가가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나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힘들게 운영하면서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 괜찮냐는 질문을 한다. 비즈니스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정신건강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아쉬운 건, 아직도 한국에서는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병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남한테 잘 내색하지 않는데, 이건 정말 좋지 않다. 정신적으로 힘들면, 가족이나 친구 또는 주위 동료한테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면 남들은 절대로 모르고, 이런 스트레스는 계속 속으로 가져가다 보면 정말로 몸과 마음이 크게 고장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새 나는 ‘불평하라’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에는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창업가가 경험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이 학습된 무력감 때문에 올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학습된 무력감은 피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와도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자포자기하는 현상이다. 실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면, 피할 수 없거나 내 힘으로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 매일 반복되고, 인생이 거절의 연속이기 때문에, 이런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기 쉽고, 무력감에 빠지면, “아, 나는 뭘 해도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지속되면 거의 100%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이런 학습된 무력감을 극복하는데 좋은 방법 2가지가 책에서 소개된다.
첫째는 내가 경험하는 연속되는 거절이나 시련이 내 능력 밖이 아닌, 내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통제가 가능하다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다. 실은, 나는 이와 반대로 생각을 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데도 일이 잘 안 풀리면 스트레스를 더 받을 것이니, 그냥 상황을 탓하거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하면서 넘어가는 게 덜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더 스트레스를 받고 이거야말로 즉시 무력감을 생성하기 때문에, 모든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있고, 다만 그 방법을 찾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한다.
두 번째는, 이 상황은 영구적이 아니라 일시적이라고 생각하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다.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주고, 오늘 거절 당한 건 그냥 오늘 거절 당한 거지, 내일이 오면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어야 한다.

이렇게, 힘든 일은 일시적이고, 그 상황 또한 내가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인드가 강한 사람들은 좀처럼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계속 건강한 정신으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오늘도 어디선가 거절당하고, 좌절하고, 스스로 “난 역시 안되나 봐”라고 하는 창업가들, 모두 힘내세요. 계속 지다 보면, 가끔 이길 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