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의 잉크

%ea%b0%84%ec%9d%b82012년도에 Strong Seed Fund 1호로 공식적인 벤처투자를 시작한 우리는 지금까지 약 4년 동안 60개가 넘는 한국과 미국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정확한 계산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이 중 약 40개 정도의 회사에 스트롱은 최초로 투자했다. 지금도 계속 남들보다 먼저 회사를 발굴해서 가장 먼저 투자하는 first investor 전략을 고집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공동투자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과거에도 좋은 회사들이 많았고, 지금도 많지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요새 초기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동투자를 하면 스트롱 보다는 다른 투자사들이 라운드를 lead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우리는 계약서를 따로 사용하지 않고 리드 투자사의 계약서를 그대로 사용한다. 즉, 남의 투자계약서에 우리 이름과 투자 금액만 추가해서 묻어간다. 이렇게 하는 게 우리도 편하지만, 투자를 받는 회사들에도 계약서 검토 시간과 비용면에서 훨씬 더 수월하다. 특히 우리가 투자하는 단계에서는 많은 대표이사가 법률용어와 익숙지 않기 때문에 그냥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계약하거나, 아니면 법률검토에 과도한 비용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능하면 우리는 두 회사 간 법적 서명을 해야 하는 계약서의 프레임은 유지하되, 세부 항목들은 스탠다드하게 유지한다.

공동투자를 하면 다른 투자사의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기회가 있는데, 가끔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계약서를 빡빡하게 만드는 투자사들도 있다. 어떤 항목들은 굳이 계약서에 넣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만드는데, 물어보면 두 회사가 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발생 가능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무조건 다 포함해야 한다고 한다. 이분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이 벤처 업계는 다른 산업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같이 초기회사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비즈니스나 시장보다는 대표이사와 창업팀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대표이사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믿을 수 있는지, 나랑 교감이 가능하며 비즈니스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이분들을 100% 믿고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투자를 한다(물론, 이런 내 생각과 감이 항상 맞지는 않는다. 이상한 인간들한테 투자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단계까지 오면 계약서는 투자하기 전에 자동으로 작성하는 기계적인 문서이지, 상대방을 불신하기 때문에 각 항목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작성해야 하는 문서는 아니다. 이때부터는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같이 가는 모드로 전환되어야 하고, 우리가 투자한 팀이 잘해서 서로 이길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위에서 말한, 계약서가 존재하는 이유인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회사가 잘 안돼서 망하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냥 서로 손해를 보는 거다. 만약에 대표이사가 딴 맘을 먹고 계약을 위반하면 참으로 짜증 나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법정으로 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투자한 금액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도 서로 손해를 보고 끝날 확률이 높다. 즉, 스탠다드한 계약서이든 엄청 깐깐한 계약서이든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투자자나 피투자 기업이나 둘 다 손해를 보고 끝나는 것이다.

한국 투자자와 공동투자를 하면 50장에 육박하는 계약서에 간인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최근에 만난 투자사 대표이사는 도장 찍느라고 손목을 다쳤다고 했는데, 공동투자사들이 2개만 넘어도 50장짜리 계약서에는 도장을 100번 이상 찍어야 한다. 거기에다 요새는 무슨 펀칭까지 하는 걸 봤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원래 그렇게 하기 때문에 한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간인을 하지 않으면 혹시나 중간에 있는 페이지를 누가 몰래 바꿔서 계약 내용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경우 스트롱이 단독으로 투자하면 전자서명을 하고, 이렇게 하면 서명해야 하는 페이지는 단 한 장이다. 투자자나 피투자사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전자서명이 아니라 스캔을 해서 PDF를 교환할 때도 우리는 서명을 해야 하는 페이지만 스캔해서 PDF로 만든 후에 나머지 계약서에 PDF로 붙여서 통합해버린다. 계약서가 아무리 길어도 실제로 서명해야 하는 페이지는 단 한 장인데, 모든 페이지에 서명하거나 도장을 찍는 건 정말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페이지마다 간인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계약이라는 건 당사자들이 그 계약을 서로 인정하면 법적 효력을 갖는 걸로 알고 있고, 투자자와 피투자 기업 간 깊은 신뢰와 믿음이 있다면 이건 충분히 가능하다. 나중에 서로 딴소리를 한다면 그 투자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랑 존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계약서는 결국 종이 위의 잉크일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자체가 비즈니스라는.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정말 멋진 말이고, 모든 계약 관계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우리가 일하는 멋진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sallimnea/130137902550>

비트코인 가격 앞으로 어떻게 될까?

btc-chart2016년도 비트코인에는 조용한 한 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연초에 온갖 소문으로 인해 가격이 요동치다가 400달러 선에서 어느 정도 안정되는가 싶더니, 6월 Brexit 소식 이후 거의 800달러까지 상승했다가, 8월 Bitfinex 해킹 소식 발표 이후로 다시 500달러대로 하락했다. 그 와중에 7월에는 비트코인 채굴비용이 25 btc에서 12.5 btc로 반 토막(=halving) 나기도 해서 다양한 추측이 시장에 돌았지만, 비트코인은 여전히 탄력있게 잘 버티고 있는 거 같다. 9월 11일 자로 비트코인 가격은 약 630달러로 서서히 다시 상승하고 있고, 비트코인 소유자 및 사용자로서 나는 연말까지 이 랠리가 지속하여 1,000달러를 돌파하길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비트코인 가격은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 하는 거 자체가 우습지만, 많은 전문가의 이론, 그리고 많은 투자자와 투기꾼들의 기대심리를 종합해 보면 앞으로 큰 천재지변이나 외부 충격이 없으면 비트코인의 가격은 오를 확률이 높다.

일단 비트코인 ETF 상품들이 곧 공식적으로 승인될 움직임이 보인다. 비트코인 ETF 상품인 SolidX Bitcoin Trust와 영화 ‘소셜네트워크’로 유명해진 윙클보스 쌍둥이들의 Winklevoss Bitcoin Trust가 7월에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등록 신청을 했는데, 이 2개 중 하나라도 승인이 되면 비트코인과 연관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으니까 비트코인의 유동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ETF 상품이 출시되면 이와 연관된 자산들의 유동성이 확보되면서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금, 은, 천연가스 등이 좋은 예다.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또한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한몫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번에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쓴 적이 있는데, 현재 블록체인이 초당 처리할 수 있는 거래 수는 비자 네트워크에 비교하면 너무 적다. 그리고 이 용량을 확장하는 거에 대해서는 비트코인/블록체인 커뮤니티의 입장들이 너무 달라서 합의를 못 하는 상태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건 대부분 동의하고 있어서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비트코인의 유동성이 좋아지면서 가격도 오르지 않을까 예상된다.

국제 금융 시장을 예측하는 건 힘들지만 연이은 악재로 인해서 시장이 불안해지면 많은 투자자가 비트코인과 같은 safe haven 투자 상품을 선호할 것이고, 더욱더 많은 정부에서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화폐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비트코인 가격은 고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워낙 up and down이 심했고, 아직도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단계라서 외부 충격에 상당히 민감한 건 사실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행복한 직원들을 위한 두가지 서비스

happy smiley faces내 포스팅을 자주 보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너무 적나라하게 우리 투자사들을 홍보하는 글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보통, 특정 주제 또는 이슈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 투자사들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글들을 쓰는데 이번 포스팅은 그냥 단순 홍보용이다.

오늘은 우리 투자사 플레이팅국민도서관 책꽂이가 제공하는 기업용 B2B 서비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중소기업의 사장님 또는 HR 담당자분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관심사는 바로 회사의 직원들이다. 직원들이야말로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이며, 행복한 직원들은 돈 잘 벌어서 행복한 회사를 만든다. 사장님과 HR 매니저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의 직원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끝없이 해야 하는데 플레이팅은 그중 먹는 고민을 해결해준다. 플레이팅은 셰프가 만든 음식을 적절한 가격에 집으로 배달해 주는 서비스인데 최근에 기업 대상 서비스를 시작했다. 회사에서 케이터링 식사를 제공하거나 야근을 많이 해서 직원들이 저녁을 자주 시켜 먹는다면 고려해볼 만한 서비스이다. 또한, 행사를 자주 하는 회사이거나, 직원들 대상으로 대규모 행사를 할 때에도 좋은 케이터링 서비스를 받아 볼 수 있다. 완전히 차별화된 질 좋고 맛있는 음식을 할인된 가격에 받을 수 있는데, 자세한 소개서는 여기서 볼 수 있다.

플레이팅이 직원들에게 양식을 제공한다면, 국민도서관 책꽂이는 마음의 양식을 제공해준다. 많은 회사가 직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사내도서관을 운영하는데, 삼성이나 현대 정도 규모가 되지 않으면 그냥 구색 맞추는 수준의 책꽂이에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만 갖춰 놓는다. 국민도서관 책꽂이의 B2B 서비스를 이용하면 굳이 사내도서관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지 않아도 6만 권 이상의 도서를 – 장서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 직원들이 저렴한 연회비로 수시로 빌려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추석 같은 명절 때 상품권보다 이런 국민도서관 이용권을 선물하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쏘카와 같은 기업에서 사용하고(사내도서관 설명 및 쏘카의 사용기 보기)국민도서관 책꽂이의 기업용 서비스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받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하여 설문양식에 등록하면 된다.

<이미지 출처 = http://indy100.independent.co.uk/article/this-is-probably-the-most-indepth-analysis-of-worldwide-emoji-usage-ever-undertaken–xysJ9KjRyZ>

경험의 차별화

O2O 비즈니스는 정말 어렵다. 뭐, 어렵지 않은 비즈니스는 없겠지만, O2O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운영과 물류의 어려움, 그리고 온라인 비즈니스의 제품과 시장의 어려움을 모두 갖고 있어서 더욱더 쉽지 않은 거 같다. 우리도 이 분야에 투자했고, 계속 하고 있지만, 알면 알수록 이 비즈니스는 더 빨리 성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얼마 전에 미국의 대표적인 온디맨드 세탁 서비스 Washio가 안타깝게 문을 닫았다. 집으로 찾아와서 세탁물을 수거하고 24시간 안으로 가져다주는 이 서비스는 5.99 달러의 배송비에 파운드 당 2.15 달러의 세탁 비용을 받았는데, 돈을 벌 수가 없는 비용구조였고, 아마도 이 때문에 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3년 전에 창업됐고, 약 200억 원의 펀딩을 유치한 워시오가 문을 닫은 건 O2O 비즈니스들에는 큰 타격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진입장벽이 없고 마진이 적은 비즈니스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성장을 시작한 온디맨드 세탁서비스들이 있는데, 한국은 미국같이 현금출혈이 심하지는 않지만, 워시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에도 ‘마이너스매출총이익’이라는 글에서 잠깐 언급을 했는데, 대부분의 O2O 서비스들은 빠른 고객 획득을 통한 시장 석권을 위해서 주문이 발생할 때마다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돈을 잃는 구조의 비즈니스 전략을 택한다. 그리고 엄청난 펀딩을 통해서 성장을 시도하고, 성공적으로 시장을 독점하면 그 이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사업을 전개한다. 우버는 이러한 시장 독점을 향해서 잘 가고 있지만, 많은 비즈니스가 워시오 같이 망하기도 한다.

이런 O2O 서비스들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전통 플레이어들과의 차별점이다. 정확한 개념의 ‘온디맨드’는 아니지만, 온디맨드 세탁이나 가사도우미 서비스는 한국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스트롱도 온디맨드 가사도우미 서비스 미소에 투자해서 나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솔직히 편리하긴 편리하다. 네이버 검색, 가사도우미 중개업체 전화, 전화로 날짜랑 시간 예약, 그리고 무통장입금하는 과정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은근히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누구랑 전화 하는 거 자체가 불안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앱을 통해서 몇 번의 클릭으로 해결하는 게 얼마나 편리한가?”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 동의하지는 않는다. 우리 와이프만 해도 이런 앱들이 뭐가 O2O냐고 물어본다. 그냥 옛날부터 있던 걸 앱으로 주문하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 어차피 O2O 앱이나 인력소개서를 통해서 오는 아줌마들 모두 친절하고 일 잘한다고 한다. 오히려 앱 설치하고 가입하는 게 더 귀찮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시오같은 온디맨드 세탁 앱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내 주변에 많다. 미국이야 다르지만, 한국의 경우 동네 세탁소 아저씨들이 20년 전부터 아파트 돌아다니면서 세탁물 수거해서 깨끗하게 세탁하고, 그다음 날 배송비 없이 다시 집으로 가져다줬다. 특히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세탁하시던 분들은 동, 호수를 다 외우고 세탁물만 봐도 어떤 집인지 아신다. 물론 동네 세탁소는 자정까지 세탁물을 수거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늦게 세탁물을 맡겨야 하는 분들도 별로 없는 거 같다. 나는 솔직히 세탁특공대 같은 앱이 엄청 편해서 좋아하는데, 내 주변 분들은 앱으로 세탁 주문하는 거 외에는 동네 세탁소랑 뭐가 다르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이미 존재하던 오프라인 사업에 온라인을 적용하는 O2O 비즈니스라면 “옛날 방식과 뭐가 그렇게 다른데?”라는 의구심을 확실하게 잠재울 수 있는 ‘경험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오프라인 부분의 차별화는 힘들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오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던 분들보다 (이 분야의 경험이 없고, 인터넷 비즈니스에 더 익숙한 분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렵다. 그러므로 온라인 부분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앱으로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주문하는 걸 넘어서 정말로 부드럽고 마찰이 없는 완벽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서 경쟁사들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지속적인 투자를 유치해야 하니 정말로 쉽지 않다.

이미 와 있는 미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골고루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윌리엄 깁슨

공상과학 소설가 William Gibson의 명언이다. 안철수 씨가 대선 출마 선언문에도 인용했고, 잭도시도 인용을 해서 더욱더 유명해졌다. 요새 나는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특히나 미래지향적인 기술이나 비즈니스를 검토하면서 “이거 분명히 될 텐데, 과연 언제 현실화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면서 냉정하지만, 어느 정도의 주관을 갖고 곰곰이 생각해본다(참고로, “이게 과연 될까?”라는 의문을 갖는 비즈니스들도 많지만 이런 비즈니스는 또 다른 부류이다).

우리가 굳게 믿는 비트코인도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아예 안 될 거라는 투자자들도 많지만 나는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은 대량 상용화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가상현실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전문가나 투자자들은 앞으로 VR의 시대가 활짝 열릴 거라고 하지만, 선뜻 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 5년 후가 될지, 50년 후가 될지 그 시기에 대해서는 각각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챗봇에(bot) 대해서 공부를 좀 해봤는데, 이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페이스북이 챗봇에 대해서 발표했을 당시만 해도 앞으로 봇이 사람을 대체하고, 이게 미래이기 때문에, 모든 개발자가 이 분야로 뛰어들 거 같았지만, 아직 봇의 현실은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거 같다. 봇과 인간이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많은 스타트업의 약속이 일상생활 일부가 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 분야 많은 사람이 참고하는 가트너 그룹의 Technology Curve에 의하면 모든 새로운 기술은 비슷한 진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나오고, 믿을만한 전문가들이나 기업들이 이 기술을 밀어주고 홍보를 하면 거품이 끼면서 엄청난 hype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이 초기에 한 약속들을 지키지 못하고, 대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곧이어 실망의 과정이 시작된다. 대량 투자가 중단되고, 신기술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던 많은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개발을 진행하던 회사들이 문을 닫는 이 시기에는 “이거 사기 아냐”라는 의심까지도 나온다. 물론, 사기라면 거기서 끝나지만 그렇지 않고 정말로 뭔가 있는 기술이라면 바닥을 찍은 바로 이 시점부터 본격적인 개발과 가속이 붙으면서 대중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상용화 과정이 시작된다. 위에서 언급한 기술들이 모두 이 단계에 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미래의 기술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서도 각각 의견들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대기업들의 장기적인 투자, 좋은 인력들로 구성된 개발자 네트워크의 활성화,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기 위한 개방된 코드 베이스의 발전, 기술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하드웨어와 클라우드 인프라의 발전 등이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killer app의 등장이다 – 마치 포케몬고가 지난 수년 동안 되니 안 되니 말이 많던 AR을 대중 속으로 끌고 들어왔던 거와 같이. 어떻게 보면 우리 같은 투자자들은 굉장히 운이 좋고 특권을 누리고 있는 소수집단이라고 생각을 하는 게, 이런 미래의 기술들을 남들보다 훨씬 더 먼저 접하기 때문이다. 큰 힘과 자본이 있는 투자자들은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1997년 뉴욕 타임스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컴퓨터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려면 100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이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인공지능은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19년 후인 2016년도에 컴퓨터는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들을 이겼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미래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아직 소수만 미래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