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하지만 부러운

우리가 2번째 펀드에서 투자를 시작한 지가 이제 약 1년 3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45개 정도의 회사에 투자했다. 며칠 전에 나도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 10기 대상 첫 번째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자료를 조금 정리하면서 계산을 해보니,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절반 정도가 프라이머 출신 한국과 미국의 스타트업이었다. 프라이머와 초기에 같이 투자한 회사들도 있지만, 주로 후속 투자를 스트롱이 많이 했는데, 프라이머 회사들과 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이 중 몇 회사들과는 정기적으로 교류함으로써 발생한 결과인 거 같다. 물론, 대부분 회사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다.

나도 이제는 실제 스타트업 운영에서 손을 뗀 지가 7년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회사와 만나면서 시장, 방향, 운영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시장이나 방향에 대해서는 내 의견을 자신 있게 표현하지만, ‘운영’에 대해서는 나는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의 dynamic 한 운영에 대해서는 나보다는 대표이사님이 훨씬 더 잘 알기 때문이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고객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대표보다 나 같은 뜨내기가 이 비즈니스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투자하는 초기 기업들과 같이 일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 새로운 분야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머 10기 약 20개 스타트업이 참석한 워크숍에서 창업가들을 보고 ‘불쌍하다’와 ‘부럽다’라는 두 가지 감정이 교체하는 걸 느꼈다. 프라이머 투자와 acceleration을 통해서 이제 막 힘차게 시작하는 분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이제 그 힘든 전쟁터에 입문해서 고생할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창업자분들이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하겠지만, 내가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느꼈던 건 회사를 시작해서 운영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힘듦은 내 예상보다 5배~10배 정도였다. 이분들의 머릿속에서는 분명히, “엄청 힘들겠지만, 나는 잘 하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할 것이지만, 이 회사 중 90%는 5년 후에는 어쩌면 죽는 게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에 모두 단단히 육체적/정신적으로 중무장을 해야 한다. 하여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분들이 너무 부러웠다. 일단 나 같은 투자자는 할 수 없는 진정한 변화를 창업가들은 만들 수 있다. 대기업에서 일하거나, 남의 밑에서 일을 하면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하지만 내 사업을 하면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100% 모든 노력과 자원을 투자할 수 있다. 내가 뭔가를 직접 만들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고 싶어도 나는 직접 하지 못하지만, 창업가들은 할 수 있다. 이게 너무 부러웠다.

또 한가지는, 성공은 힘들고 확률적으로 낮지만, 성공하면 이분들은 돈을 엄청 벌 수 있다. 나 같은 투자자들은 좋은 회사에 투자해도 엄청난 대박이 아니면 – 그리고 한국은 exit 시장이 미국만큼 크진 않기 때문에 이런 초대박이 나오기란 쉽지 않다 – 큰돈을 벌수가 없다. 나도 투자를 시작할 때는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해서 개인적으로도 돈을 좀 벌어보자는 기대를 했지만, 현실적으로 벤처산업에서 정말 큰돈을 벌 수 있는 분들은 창업팀밖에 없다. 연초에 올린 “부자의 대열에 끼기“라는 포스팅에서 언급했지만, 조 원대의 재산을 축적해서 정말로 부자의 대열에 끼고 싶다면 기술 창업을 통한 성공이 가장 빠르고 유일한 방법이다. 참고로, 삼성전자 사장을 10년 동안 하면서 150억 연봉을 그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다 저축을 해도 1,500억 원밖에 못 모은다. 1조 원의 7분의 1 이다.

어쨌든 프라이머 10기 모든 회사들에 행운을 빌고, 앞으로 3개월 동안 나도 많이 배우길 기대한다.

새로운 플랫폼들

%ec%82%ac%ec%a7%84-2016-9-13-%ec%98%a4%ed%9b%84-1-48-49나는 주로 비즈니스 출장을 가면 가격과는 상관없이 호텔을 선호한다. 어차피 잠만 자고, 어디를 가나 같은 quality가 보장되는 체인형 호텔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LA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Palm Springs라는 사막에서 2주 동안 휴가를 즐겼는데, 이번에는 에어비앤비로 집을 통째로 빌렸고, 에어비앤비 단기투숙할 때와는 다르게 몇 가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초기의 에어비앤비는 집주인이 장기 출장을 가거나,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 또는 집에 남는 방이 있을 때 이 과잉공급공간을 필요로 하는 타인에게 돈을 받고 빌려주는 모델이었다. 물론, 기업가치 30조 원 에어비앤비는 지금도 이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 플랫폼이 엄청난 수요와 공급을 창출하는 거대한 마켓플레이스가 되면서,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임대업을 본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요가 많은 지역에 다양한 부동산을 매매하여, 에어비앤비 플랫폼에서 상당히 수익성이 높은 임대업을 하는 비즈니스들이 미국에는 상당히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은 아직 미국만큼 크진 않지만, 우리 아파트에 사는 어떤 젊은 친구도 강남에 아파트 3개를 확보해서 에어비앤비에서 계속 돌리고 있는데, 공실률이 10% 안 된다고 하니까 단순하게 계산을 해도 수익성이 상당히 좋은 거 같다.

그런데 에어비앤비에 집을 등록만 해 놓으면 수요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수많은 옵션 중 우리 집을 선택하게 하려면 나름 집을 잘 꾸며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집들을 리모델링한다. 특히 우리가 묵었던 지역의 전체 인테리어와 리모델링 비즈니스의 30% 정도가 에어비앤비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니 이 동네 경제에 상당한 이바지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대여를 계속한다면 이런 리모델링을 정기적으로 해야 하니 업체들에는 예측 가능한 신규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에어비앤비에 많은 부동산을 올려놨다면 관리의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도 이 집을 예약하고 체크인을 하기 전에 집주인한테(=호스트) 이미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2주 동안 묵으면서도 자잘 구리 한 요청과 질문을 많이 했다. 이럴 때마다 호스트는 상당히 빠르게 우리의 요청에 매우 친절하게 응대해줬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들은 좋은 리뷰를 써주지 않고, 좋지 않은 리뷰는 호스트의 비즈니스에 큰 타격을 준다. 그런데 많은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이렇게 빠른 고객 응대를 하는 게 어렵다. 특히 손님들이 외국에 있으면 시간대도 맞지 않고, 집주인이 만약에 다른 full-time 직업을 갖고 있다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위해서 에어비앤비 집들만 따로 관리해주는 비즈니스들이 미국에는 존재한다. 이들은 고객 응대 뿐만 아니라, 집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를 – 고장, 물품 부족, 전구 교체 등 – 제때 해결해주고,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원활하게 운영하면서 청소와 빨래 같은 업무까지 모두 알아서 해준다.

손님이 체크아웃하면 다음 손님을 맞기 전에 집을 청소하고 침대 시트나 수건 등을 세탁한다. 일반 가정집은 청소나 빨래는 대부분 외주를 주지 않고 – 물론, 가정부가 하는 경우도 있고 요새는 온디맨드 서비스들도 많지만 – 집주인이 직접 하지만, 에어비앤비의 특성상 청소와 세탁은 외주업체들이 처리한다. 에어비앤비 집들만 전문적으로 청소하고 세탁을 해주는 비즈니스들이 존재하고, 기존 청소업체나 세탁소들에는 엄청난 신규 비즈니스의 기회를 에어비앤비가 제공하는 셈이다. 우리가 있던 동네는 워낙 더운 사막이라서 모든 집에 수영장이 있다. 남한테 돈을 받고 집을 빌려주기 때문에 수영장의 청결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멕시코 아저씨가 와서 수영장 청소하고 수질관리를 해주셨는데, 이런 분들도 에어비앤비 때문에 더 많은 신규 비즈니스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또 한가지 재미있었던 거는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장기투숙을 하면 그 지역이나 동네에 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데, 그 경험이 좋으면 그 지역의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부동산 중개업자들한테도 신규 비즈니스의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우리가 있었던 집에도 “이 집에서의 숙박이 마음에 드셨나요? 저한테 연락 주시면 고객님에게 딱 맞는 좋은 부동산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라는 전단지와 함께 중개업자 명함이 입구 옆에 놓여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에어비앤비는 이제는 단순한 대형 마켓플레이스가 아니라, 수많은 비즈니스들과 사람들에게 새로운 수입원을 제공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대형 플랫폼이 되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인테리어업자, 리모델링 업자, 에어비앤비 관리사, 청소업체, 세탁업체 및 수영장관리사는 에어비앤비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거나 훨씬 더 적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지금은 아직 미약하지만, 에어비앤비와 같은 큰 플랫폼이 될 가능성을 가진 비즈니스들이 있는데, 기대가 많이 된다.

새로운 제2외국어

programming-languages얼마 전에 초등학교 아이의 아빠인 내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아이한테 본격적인 제2외국어 교육을 하려고 하는데 메인으로 배워야 하는 게 영어인가 중국어인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중국은 잘 모르지만, 미국은 좀 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지식이나 한정된 경험에 의하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영어를 메인으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 지금부터 코딩을 가르치라고 했다.

전 세계 12억 명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인구수가 영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코딩’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밍이나 코딩이라고 하면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이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나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코딩을 단순하게 보면 사람과 기계를 연결해 주는 일종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만, 앞으로는 기계들이 더욱더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 과거에는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하지 않고 반복적인 일들을 수행하면서 로봇과 같은 기계들이 사람을 대체했지만, 앞으로는 고도의 사고력과 결정력이 필요한 업무 또한 기계들이 대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공지능, 로보틱스, 자율주행 자동차 등…. 이 모든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세계 최고의 기술 회사들이 수조 원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기계들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될수록 우리는 이 기계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기계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코딩이다.

미국 못지않게 한국도 이러한 추세를 잘 파악하고 있는 거 같다. 최근에 검토한 많은 회사가 이 분야에 있는데, 언어교육과 마찬가지로 코딩도 어릴 때 시작하는 게 좋으므로 어린이들을 위한 코딩 교육 게임이나 학원 비즈니스를 생각하고 있는 창업가들이 많은 거 같다. 내 또래 분 중 80년 후반 – 90년 후반에 유명했던 비트 컴퓨터 학원과 같은 물리적인 코딩 학원에 다니면서 실력을 키운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코딩’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고, ‘프로그래밍’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나도 C++를 배우러 컴퓨터 학원에 몇 달 다녔던 기억이 나는데, 자리마다 컴퓨터가 한 대씩 있었고 교실 앞에서 선생님이 수업하고 과제를 시켰던 전형적인 강의실 포맷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5.25″ 나 3.5″ 플로피 디스크에 과제를 담아서 제출했었던 기억도 난다.

이후 물리적인 학원은 없어지고 Codecademy나 Lynda와 같은 인터넷 강의의 시대가 왔다. 더는 칙칙한 학원에 직접 가지 않아도 집이나 사무실 또는 내가 편한 그 어느 곳에서 내 페이스대로 코딩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인터넷 동영상 강의는 아직도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인터넷 강의를 통해 100% 자율적으로 학습하다 보니까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진도와 실력의 향상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발견되었다. 그래서 새로 등장한 포맷이 물리적 학원의 강제성과 인터넷 동영상 강의의 자율성을 잘 혼합한 하이브리드 코딩 학원이다. 한국도 이미 이런 비즈니스들이 창업되어서 잘 운영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몇 군데 있다.

애가 있는 친구들한테 나는 항상 제2외국어로써 코딩 교육을 권장한다. 국어·영어도 중요하고, 그 이후의 토익이나 토플 시험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가장 많은 세계인이 사용할 언어는 코딩이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내 주변에 엄마와 아빠가 모두 개발자인 많은 가족조차 애들한테는 코딩을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에서 개발자의 삶은 배고프고 대우를 못 받는다고 하면서, 아이들한테는 변호사나 의사의 길을 권장하고 있다. 이분들이 코딩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사람과 기계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www.serendipity35.net/index.php?/archives/3278-Coding-as-a-second-Language.html>

가끔은 욕을 먹을 것이다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며칠 전에 복귀했다. 이번에는 쉬면서 책을 많이 읽을 계획이었지만, 두 권을 읽었다. 이 중 내가 공감했던 내용이 많았던 ‘The ONE Thing’ 이라는 책을 꽤 흥미롭게 읽었다. 내용이 특별히 새롭지는 않았고, 이미 여기저기서 주워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저자는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정리를 잘 해주었다. 책의 핵심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지만, 정작 본인한테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를 잘 파악해서 이와 관련된 것에만 집중해야지만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이 일이 나한테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와 연관되어 있는가?”를 물어보고,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미루거나 하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실은 요새 내가 살려고 하는 삶의 철학이 이 책의 내용과 상당히 비슷하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은 우리의 인생이지만 안 그래도 짧은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서는 나한테 중요한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 데 나를 비롯한 내 주변 너무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 보다는 남을 위한, 그리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거 같다. 실은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보다는 남을 위한 삶을 살아왔고, 어떤 일을 하면서 “이게 나한테 어떤 가치가 있지?”를 물어보기보다는 “이걸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는 “이걸 하지 않으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질문했던 거 같다. 그리고 진정 나한테 중요한 일과는 상관없고, 나한테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시간을 빼앗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받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했던 거 같다.

한 5년 전부터인가? 나는 이렇게 살지 않기로 했다. 나한테 진짜로 중요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정말로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데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말만큼 쉽지는 않더라. 나같이 여러 이해관계자와 같이 일을 해야 하는 VC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부탁도 많이 받고, 또 부탁도 많이 해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 다는 건 굉장히 어렵고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 나는 아직도 이 세상을 내 맘대로 살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올라와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나한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만 하면서 살고 싶고,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에 밀리는 일은 일단 거절하거나 미루고, 나보다는 남을 위해 더 중요한 일이라면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분은 나한테 똑같은 부탁을 여러 번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고민도 하지 않고 너무 단호하게 거절한다. 미안하지만 이보다는 내가 당장 해야 할 일, 그리고 나한테 개인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우리 서울 사무실이 있는 구글캠퍼스에는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정말 많이 왔다 갔다 하는데, 구글캠퍼스 들렸으니 커피 한잔 하자는 분들이 정말 많다. 미안하지만 가능하면 거절을 한다. 이분들한테는 커피 한 잔이지만, 나는 이런 분들과 하루에 커피를 10잔 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면 나한테 정말 중요하고, 내가 정말로 해야 하는 일을 못 하게 된다. 나한테 정말 중요한 건 우리 투자사들과 같이 일하고 새로운 회사들을 발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에서 말 한 분들을 내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고, 모두 다 기쁘게 해주고 싶지만, 일단 나한테 중요한 일을 처리해서 나 자신을 먼저 기쁘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실은 이렇게 나 자신만의 목표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이 초점만을 위해서 사는 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서 욕도 많이 먹는다. 어떤 분은 나를 다시는 보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나를 나쁜 놈이라고 평생 욕할지도 모른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할 수도 있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남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면 이런 게 걱정이 되겠지만, 이제 나는 그 단계는 지났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산다. 그리고 남한테 가끔 욕을 먹는 행동에 대해 나는 절대로 해명하지 않는다. 내 인생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굳이 남한테 허락받거나 정당화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인생을 살고 있거나,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쓴다면 기쁘게 해주지 못할 단 한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고, 이렇게 인생을 산다면 정말로 가치 없는 삶이 될 것이다.

당신이 누굴 아는지 난 관심 없다

6a00d834516b3c69e2015437f86d20970c-500wi나는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 싫다. 1시간짜리 미팅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1시간 내내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방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랑 만나면 굉장히 피곤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저 누구 알아요”로 모든 대화를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다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은 주변에 있을 텐데, 이상하게 나는 이런 사람들을 최근에 많이 만난 거 같다. 나도 꽤 바쁜 사람이라서 나랑 미팅하려면 그래도 며칠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한다. 이렇게 어렵게 나랑 약속을 잡은 분을 얼마 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한 시간 가량 만났다. 그런데 나한테 스스로와 현재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한 시간 동안 설명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이 분은 자기가 아는 사람들 이름만 줄줄이 읊다가 미팅을 끝냈다. 뭐, 들어보면 굉장히 유명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아는것 같고, 그중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은 분들 이름도 있었지만, 솔직히 나는 이 분이 아는 사람들보다는 이 분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자신이 어떤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고, 왜 이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매우 궁금했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누가 옛날 직장 동료였고, 지금 이 분야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 대학교 동아리 선배고, 같은 아파트에 상장한 인터넷 기업의 부사장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미팅의 절반을 이런 ‘이름 들먹이기(name dropping)’ 하는데 허비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런 사람들은 항상 있는데, 역시나 땅도 좁고 바닥이 좁은 한국이 더 심한 거 같다. 특히 내가 누구냐 보다는 내가 누굴 아는 게 더 중요한 한국의 ‘보여주기’ 문화는 이런 현상을 심화시키는 거 같다.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게 없는데 누군가 유명한 사람을 알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요새 너무 많다. 그리고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을 잘 안다고 하면, 그 사람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취급해주는 사회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정작 본인은 내세울 게 없고, 내실 없고 껍데기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이렇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

그런데 어차피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업계 분들이라서 이들이 안다고 주장하는 많은 분을 나도 안다. “나는 그분을 아는데, 그분은 날 모르죠”가 아니라 그래도 서로 알고 지내는 그런 관계이다. 이 중 정말 친한 분들도 있고, 행사 같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내가 누굴 안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괜히 말했다가 그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안 그래도 바쁜 사람들한테 누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누굴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이 간다. 정말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명함 한 번 교환한 것인지.

나는 당신한테 관심이 있지, 당신이 누굴 알던 관심 없습니다. 당신이 아는 남들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지 말고, 당신 스스로에 대해서 그렇게 자랑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세요.

<이미지 출처 = https://asheathersworldturns.wordpress.com/2015/03/13/name-drop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