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풀(Option Pool) 효과

곧 마무리할 투자가 하나 있는데, 이 회사와 계약서 관련 협의를 하다가 스톡옵션 풀 이야기가 나와서 몇 자 적어본다. 한국의 투자 계약서를 보면 “주식매수선택권의 부여”라는 항목이 있는걸 종종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주로 이걸 스톡옵션풀이라고 한다. 이는 전에 내가 설명한 미국에서 말하는 옵션 풀과는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 한국 계약서의 스톡옵션 풀은 투자 후 발행될 때마다 기존 투자자들의 지분이 희석되지만, 미국의 경우 스톡옵션 풀은 프리머니 밸류에 이미 반영된 상태에서 투자가 집행되기 때문에 옵션이 발행되어도 투자자들의 지분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전에 사용한 예를 그대로 정리해서 다시 사용해보면,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라서 매출도 없지만, 팀과 기술력을 인정받아서 청담파트너스라는 VC가 프리머니밸류 9억 원에 1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현재 회사에는 90,000주가 발행되어있기 때문에, 당연히 주당 1만 원(9억 원 / 9만 주)이라고 대표는 생각했는데, 투자계약서를 검토하다 보니 주당 가격은 8,333원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미 전 포스팅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다시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주당 가격이 1만 원이 아니라 8,333원인 이유는 정확하게 말해서 이 투자 조건은 “프리머니 밸류에이션 9억 원에 1억 원을 투자하지만, 이 프리머니 밸류 9억 원에는 포스트머니 밸류 10억 원 기준 15%의 옵션 풀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투자자가 실제로 의미하는 건 “이 스타트업의 현재 가치는 7.5억 원입니다. 그런데 1.5억 원 규모의 신규 옵션을 만들고 이 가치에 더해서 최종적으로 이 회사의 프리머니 밸류는 9억 원이라고 합시다.” 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투자 전 주식 가격이 1만 원이 아니라 8,333원이 되는 것이다(7.5억 원 / 9만 주).

한국은 아직 이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본 한국 투자계약서에는 옵션풀이 없지만, 미국 VC에 투자를 받으면 거의 100% 이 옵션풀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옵션 풀의 효과는 투자자한테는 유리하지만, 피투자 기업에는 상당히 불리할 수 있다.

일단, 옵션 풀은 보통주주만 희석시킨다. 포스트머니 밸류에 옵션풀이 포함된다면 보통주주와 우선주주 모두 희석시키지만, 옵션 풀은 포스트머니 밸류를 기반으로, 프리머니 밸류에 포함된다. 그래서 주로 보통주를 갖게 되는 창업팀과 직원들만 희석된다.

둘째, 옵션 풀은 생각보다 더 많다. 위 예에서 옵션 풀은 포스트머니 밸류 기준으로는 15% 지만, 프리머니 밸류의 16.7% 이다(1.5억 원 옵션 / 9억 원 프리머니 밸류). 그 이유는 이미 설명한 대로 옵션 풀은 포스트머니 밸류 기준으로 표시하지만, 실제로는 프리머니 밸류에서 발행되기 때문이다.

또한, Series B 투자 전에 회사가 매각되면, 미발행 또는 vesting 되지 않은 옵션은 자동으로 취소되면서 기존 투자자들한테 지분율대로 재분배되는데, 이는 보통주주와 우선주주 모두한테 해당한다. 즉, 옵션풀이 만들어질 때는 보통주주들만 희석이 되었지만, 남은 옵션들이 재분배되면 보통주주와 우선주주 모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보통주주들이 손해를 본다.

미국 투자자와 협상할 때 옵션 풀을 완전히 빼는 건 불가능하지만, 가능한 한 작게 가져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또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옵션 풀은 한국 계약서의 “주식매수선택권의 부여”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은 명심하도록.

-참고: Option Pool

Tag Along, Drag Along

이제 갓 투자에 입문한 투자자, 또는 첫 번째 투자유치를 하는 창업가에게 투자계약서 자체는 한글이지만, 그 내용은 거의 외국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자 경험이 있는 투자자나 투자유치 경험이 있는 창업가는 이미 잘 아는 내용이지만, 최근에 우리 투자사 대표들이 나한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용어가 동반매도참여권(Tag Along Right: TAR)과 공동매각요청권(Drag Along Right: DAR) 이어서 여기서 몇 자 적어본다.

대부분 사람이 이 두 가지 권리는 창업가보다는 투자자를 위한 조항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실은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를 위한 권리이다. 참고로, 간혹 두 가지 항목이 모두 들어간 계약서도 있지만, 대부분 둘 중 한 가지만 포함된다.

일단, 동반매도참여권(TAR)은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항목인데, 간단히 말해서 회사의 대주주가 주식을 매각하게 되면, 소액주주도 같은 가격과 조건에 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이다.

TAR이 존재하는 이유는 큰돈을 굴리는 VC와 같은 기관투자자에 비해서 개인 소액투자자는 회사의 주주로서 큰 힘이 없으므로,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기관투자자만큼의 협상 권리와 힘을 주기 위해서이다. 특히, 유동성이 떨어지는 비상장 주식을 매각할 때 큰 기관투자자는 구매자를 더 쉽게 찾을 수 있고, 규모를 이용해서 더 좋은 가격이나 조건을 협의할 수 있다. 반면에, 개인투자자는 구매자를 찾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부족하고, 찾아도 워낙 소액주주이기 때문에 좋은 조건을 협의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TAR 항목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으면, 기관투자자와 같은 대주주가 주식을 인수할 구매자를 섭외하고, 좋은 조건을 협의해 놓으면, 소액주주는 그냥 여기에 ‘묻어서’ 주식을 판매할 수 있다.

동반매도참여권리가 없으면 대주주는 이미 투자한 가격보다 더 좋은 가격에 회사의 주식을 판매하고 회수를 했는데, 소액주주는 아직도 미래가 불투명한 스타트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대부분 소액주주는 대주주가 주식을 처분했다는 사실도 모른다. 스타트업이 결국 상장하거나 좋은 조건에 매각된다면, 끝까지 주식을 가지고 있던 소액주주가 재미를 보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망하거나, 가격이 왔다 갔다 하므로 적절한 기회가 있으면 주식을 매각하는 것도 현명하므로 소액주주한테 TAR은 중요하다.

공동매각요청권(DAR)도 비슷한 종류의 권리인데, TAR이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면 DAR은 대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대주주가 회사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이 권리가 행사되면, 소액주주도 강제로 같은 조건에 주식을 판매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인수나 합병되면, 인수하는 회사는 피인수 회사의 경영권을 완전히 가져가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소액지분까지 포함해서 지분 100%를 인수하길 원한다. 그런데, 간혹가다 소액주주가 회사의 매각이나 청산을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경우가 있고, 이럴 경우 스타트업의 대주주가 인수를 승인해도 소액주주가 반대하면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수가 있다. 또는, 회사의 정관에 인수나 합병은 모든 주주가 만장일치로 승인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DAR은 대주주를 포함해서 소액주주도 모두 같은 조건에 주식을 강제로 판매하게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TAR과 DAR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용은 거의 같지만, 그 권리가 행사되는 시점의 상황과 누가 그 권리를 행사하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대주주나 소액주주나 모두 – 내가 앞서 이 권리들은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했는데, 창업가나 투자자 모두 소액주주가 될 수도 있고, 대주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이 두 가지 권리를 본인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으므로, 최근에 내가 본 계약서는 동반매도참여권과 공동매각요청권이 포함되어 있고, 이 내용은 특별한 이유 없이는 계약서에서 제외하는 건 힘들다.

섣부른 마케팅

마케팅은 참 어렵다.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창업가는 “우린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시장이 잘 모르는 거 같으니까, 이젠 마케팅을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한다. 내 글을 계속 읽으신 분들은 마케팅에 대한 내 기본적인 생각을 아실 거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큰돈을 쓰는 마케팅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게 내 지론이고 지금도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시장에서 반응이 없다면, 마케팅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제품이 후졌기 때문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제품 그 자체가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제품을 출시 한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스타트업들을 만나면 모두가 어떻게 하면 마케팅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중 최근에 만난 회사들은 큰 무대에 나가서 피칭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자료를 만들고 여기저기 지원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거 같았는데, 이게 왜 현명하지 않은 전략인지 내 경험 두 가지를 공유해본다. 실은 좀 오래된 경험이라서 현실감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2007년 9월 17일 샌프란시스코 Palace 호텔에서 제1회 TechCrunch 행사가 열렸고, 뮤직쉐이크는 운 좋게 최종 피칭 회사로 선정되었다. 원래는 TechCrunch20라는 이름의 행사로 20개의 최종 스타트업이 피칭하는 자리였는데, 좋은 회사들이 너무 많아서 TechCrunch40로 행사 이름을 바꿔서 40개의 스타트업이 피칭을 했다. 이 행사가 계속 커지면서 지금의 TechCrunch Disrupt로 진화한 것이다. 여기 지원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고, 테크크런치 스태프들과 인터뷰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발표 준비를 위해서 며칠을 이 행사에만 집중해야 했다. 당연히 실제 비즈니스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우리가 너무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걸 세상이 알 수 있게 멋지게 발표해서 마케팅하면 우리도 과도한 트래픽으로 인해 서버가 뻗어버리는 즐거운 고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확신했다.

워낙 연습을 많이 해서 발표는 잘했고, 재미있는 제품이라서 그런지 청중의 환호가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성공적인 피칭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테크크런치의 힘을 받아 전 세계에 뮤직쉐이크를 알렸고, 과거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트래픽이 우리 사이트로 몰렸다. 그런데 이 기쁨도 며칠 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우리 제품을 사용해보니, 여기저기 버그들이 발견되었고, 사용자들에게 우리 제품의 가치를 완벽하게 전달할만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트래픽이 엄청나게 왔다가, 엄청나게 다시 다 빠졌다.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었다면, 많은 사용자를 계속 lock-in 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갑자기 상승했다가 수직으로 하강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그림을 구글 애널리틱스에 남겼다. 제품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섣부른 마케팅은 회사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나는 스스로 내렸다.

현명한 사람은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하는데, 나는 현명하지 못한 거 같다. 위에서 말한 경험이 있음에도 나는 2012년에 똑같은 실수를 범했다. 이번에는 우리 투자사 The Good Ear Company가 VentureBeat에서 개최하는 MobileBeat 2012 스마트폰 앱 대회에 지원했는데, 최종 발표 업체로 선정되었고, 미국에는 인력이 없는 이유로 내가 대신해서 피칭을 했다. 테크크런치만큼 크거나 유명한 대회는 아니었지만, 내 할 일 모두 제치고 열심히 준비했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지만, 1등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 앱이 아직 아이폰 앱스토어 심사 중이어서 결국 내 피칭을 보고 이 앱에 관심을 보였던 그 많은 청중이 그 자리에서 앱을 당장 사용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이렇게 힘들게 일으킨 관심은 몇 시간 만에 곧바로 증발했다.

이 두 경험을 통해서 내가 배운 점은 다음과 같다:

1/ 사용자들이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가 없는 제품은 아무리 마케팅해도 소용없다
2/ 출시하지도 않은 제품은 아무리 마케팅해도 소용없다
3/ 섣부른 마케팅은 시간 낭비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제대로 된 제품도 없는데 여기저기 피칭 대회에 기웃거리는 창업가들이 너무나 많다. 가끔 이런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가보면, 발전 없는 쓰레기 같은 제품으로 2년 동안 이런 대회에만 나오는 대표이사들도 만나봤다. 팀이 정말 자랑스러워할 만한 제품을 출시한 후, 시장의 반응이 궁금해서 이런 대회에 한 번 정도 나가서 피칭하는건 괜찮은 거 같다. 그 이상은 절대적인 시간 낭비다. 그럴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제대로 된 제품이나 만들어라. 그게 진짜이자, 유일하게 의미 있는 마케팅이다.

이더리움과 forking

ethereum-forked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암호화 화폐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더리움(Ethereum)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이더리움 커뮤니티에서 큰 쟁점이 되었던 포킹(forking)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몇몇 독자들이 이더리움과 포킹에 대해서 설명을 해달라고 해서 나도 내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글을 써본다. 비트코인에 대해서 내가 쓰는 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전문가들이 답글로 설명을 추가해 주면 많은 분들한테 도움이 될 거 같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같은 자체 가상화폐인 이더를 지원한다는 점에서는 블록체인과 비슷한 프로토콜이지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은 바로 스마트계약(=사전에 서로 합의된 조건들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컴퓨터 코드로 만들어진 계약)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실은 블록체인도 이론적으로는 스마트계약서를 지원하고, 앞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스마트계약서가 큰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도 말로만 존재하고 실체는 없다. 이더리움도 마찬가지였다. 비트코인보다는 유연하고 확장성이 좋은 코드로 만들었지만, 스마트계약서는 아직은 이론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2016년 4월 30일 이더리움은 DAO(Distributed Autonomous Organization) 라는 흥미롭고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우리와 같은 VC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DAO의 목적은 사람의 개입이 없는 창투사(VC)를 만드는 것이었다. 투자 결정을 하는 파트너도 없고, 심사역도 없고, DAO는 오로지 코드로 만들어진 규칙을 컴퓨터 프로토콜이 실행하는, 스마트계약서를 통해서 모든 투자 결정이 되는 humanless venture capital을 지향했다.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DAO는 11,000명의 투자자로부터 1.5억 달러를 유치했는데 아마도 역사상 가장 크고 성공적인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Vitalik Buterin과 같은 이더리움의 메인 개발자들은 앞으로 이더리움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이더리움이나 DAO도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6월 17일, 누군가 DAO를 해킹해서 5,000만 달러에 상당하는 이더를 훔쳐갔기 때문이다. 이더리움 개발자들은 결국 이 해커를 다시 해킹해서 훔쳐간 이더를 복귀하고 나머지 펀드를 모두 다른 스마트계약서로 옮겼다. 문제는 DAO의 특성상, 이 해커가 아직도 옮겨진 펀드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간단하다. DAO의 코드를 다시 프로그래밍해서 다른 규칙이 적용된 새로운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된다 – 이게 포킹(forking)이다. 그러면 투자자들이 원하는 대로 투자금을 다시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되지 않나? 문제가 있긴 있다. 그리고 이건 꽤 큰 문제이다. 이렇게 개발자들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네트워크를 수정하는 건 이더리움의 근본적인 사상과 개념을 위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은 분산적이면서 분권화된 플랫폼으로 탄생했는데, 이는 그 누구도 중앙집권적 권력을 행사하여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임의로 변경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네트워크의 권력은 네트워크상 모든 사용자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는데, 소수집단이 개입해서 문제를 고친다는 거 자체가 이 분산적 사상을 위배하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투자된 펀드는 스마트계약에 의해 특정 조건들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집행되어야 하는데, ‘변질할 수 없는’ 성격을 가져야 하는 스마트계약서를 다수의 동의를 얻어서 임의로 변경하는 게 이더리움의 원칙을 위배한다는 의미이다.

스마트계약서를 변경할 수 없다는 ‘코드 순수주의자’와 코드를 변경해서 투자자들에게 돈을 환급하자는 두 이더리움 그룹의 논쟁은 한동안 지속되다가 결국 포킹을 통해 해킹 이전의 DAO로 돌아가서 투자금을 돌려주기로 했다.

많은 분들이 포킹(forking)에 관해서 물어보는데,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포킹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를 참고하면 된다. 이번 이더리움 포킹이 특이한 점은, 여러 개발자가 같은 소스를 기반으로 개발하다가 우연히 코드의 포킹이 발생한 게 아니라, 네트워크의 규칙을 인위적으로 변경할 목적으로 – 즉, 강제적으로 포킹을 유발하기 위해서 – 새로운 버전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포킹을 통해서 블록체인이나 이더리움의 규칙을 바꾸는 건 기술적으로는 어려운 게 아니지만, 한 번 포킹이 되면 – 특히 하드포킹 – 네트워크의 개념과 사상 자체가 바뀌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신중히 해야 한다. 재미있는 건 이 또한 네트워크의 사용자들이 결정한다는 점인데, 이는 마치 대통령 선거와도 비슷하다. 결국엔 국민이 투표를 통해서 대통령을 뽑지만,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들은 불평하면서 계속 한국에 살거나 아니면 이민을 가는 경우도 있다. 이더리움이나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이다. 포킹이 일어나면 이 전략과 방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반대파들은 네트워크를 떠난다. 얼마 전에 내가 블록체인의 크기에 대한 논쟁에 관해서 쓴 적이 있는데, 본질적으로 보면 이 또한 이더리움 포킹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이더의 가격은 약 11 달러이다. DAO의 해킹, 포킹 등과 같은 큰 사건들 때문에 대부분 전문가는 이더의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더리움 커뮤니티는 이 상황을 상당히 잘 수습하면서 과학적인 접근과 개발 방법을 통해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강화하고 있다. 비탈릭 부테린과 이더리움 커뮤니티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이미지 출처 = https://diginomics.com/news/forking-ethereum/>

디캠프 썰전에 대한 단상

짧은 미국 출장 중, 썰전 전원책 변호사의 디캠프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접했다. 관련 내용으로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도배되었고, 업계 분들이 이미 다양한 이야기와 의견을 표시했다. 남의 집 살림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나도 몇 마디만 하고 넘어가고 싶다.

스트롱도 디캠프가 출자한(회사가 아니라 펀드에 투자하는걸 ‘출자’라고 한다) 펀드 중 하나이며, 나는 디캠프가 생긴 이후 계속 업무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재단 분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있으므로 이 조직이 어떤 철학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디캠프의 장부를 보거나, 내부 사정과 상황까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전변 보다는 잘 안다고 자신한다. 방송을 보신 분들은 이제 스트롱도 무슨 특혜를 받아서 디캠프의 출자를 받은 걸로 생각하실 텐데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100% 존과 나의 실력과 노력만으로 출자를 받았고, 출자 결정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졌다. 그 모든 과정에 내가 직접, 100%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비즈니스라는 게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사고가 터지는 경우도 있고, 이는 벤처캐피털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사고 때문에 특혜성 출자 이야기가 나온 것 같고, 우리 사회의 특성상, 이 작은 불씨가 모든 벤처캐피털과 디캠프와 같은 출자자들을 싸잡아서 활활 불태워버리고 있는 게 아쉽다.

실은 디캠프는 굉장히 lean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조직이다. 내가 아는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더 잘 운영되고 있고, 스타트업 정신에 따라서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제대로 하는 조직인데 사무실 1개, 상근자 1명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전변이 아는 대부분의 재단은 아마도 상근 직원 1명이 충분히 운영할 수 있고, 이 사람한테 주는 월급마저 아까운 그런 구조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캠프는 다르다. 마루 180과 구글캠퍼스가 생기기 전, 가장 먼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판을 짜기 시작했고, 디캠프가 현재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은 한국의 창업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많은 일을 소수정예로 운영하다 보니, 전 직원 모두 업무 과부하가 걸려 있는걸 내가 잘 알기 때문에, 방송에서의 이런 발언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펀드출자와 벤처 투자는 10만 원 단위로 집행되는 게 아니다. 꽤 큰 단위의 금액이 집행된다. 우리도 100억 원 이상의 펀드를 운용하지만, 이 분야에서는 이게 큰 규모의 펀드가 아니며, 미국의 펀드들과 비교하면 정말로 아주 작은 수준이다. 돈이 누구한테, 어떻게, 왜 투자되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히 공부를 해보면 과연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페이스북의 댓글들을 보면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밝히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내가 장담하건대, 밝혀도 이분들은 이해를 못 할 것이다. 벤처 펀드가 출자를 받고, 다른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펀드가 운용되는 프로세스는 그냥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꽤 복잡하기 때문이다. 물론, 복잡하다는 게 합법적이지 않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마지막으로, 전원책 변호사가 썰전을 벌이기 전에 디캠프에 딱 한 번만 방문을 했다면, 재단 분들과 딱 한 번만 이야기했다면, 젊은 친구들이 컴퓨터 하나로 네이버와 같은 회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광경을 딱 한 번만 봤다면, 그리고 이 창업가들과 딱 한 번만 이야기를 해봤다면,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번도 아니고, 세 번도 아니다. 한 시간만 할애해서 딱 한 번만 선릉에 왔었다면, 안 그래도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많은 업계 분들이 잠을 설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