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바이블 2

스타트업 바이블 2 – Kindle Edition

지난 몇 일 동안 많은 분들이 ‘스타트업 바이블 2’를 iTunes Bookstore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항의/문의가 들어왔다. 실은 iTunes에서 스타트업 바이블 2를 당분간 내렸다.
아이북스를 시작으로 국내/외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전자책 판매를 시작했고 그동안 요구맹 출판사와 같이 아주 자세히 판매실적을 모니터링을 해왔는데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특히 스타트업 바이블 1권 종이책의 실적과 비교했을때 전자책 판매 실적은 정말 형편 없었다 (약 1/10 수준). 정확한 원인은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내가 단기적으로 내린 결론은 1. 아직 한국의 전자책 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2. iTunes가 아직 한국에서 오픈되지 않았다, 정도인거 같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쓰겠다.

다만, 미비하지만 전자책 판매실적을 분석해보면 몇가지 재미있는 트렌드가 보이는데 바로 아마존의 강세이다. 한국에서 킨들이 보급되지 않았고, 아마존 코리아가 있는것도 아닌데 아마존에서 스타트업 바이블 2의 판매가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리디북스나 예스24도 꾸준히 판매는 되고 있지만 아마존 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몇개월 동안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당분간 iTunes에서 스타트업 바이블 2를 내리고 아마존을 통해서만 판매를 해보기로 했다.

여기서 구매할 수 있다: 스타트업 바이블 2 킨들 버전

외주의 종말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면 누구나 다 개발이나 디자인을 외주(outsourcing)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경험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대부분 좋지 않거나 결과물이 뭔가 모자란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나 또한 개발과 디자인을 외주한 경험이 많은데 사람을 찾지 못해서 매번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던 만큼 결과 역시 상당히 좋지 않아서 이젠 절대로 외주를 하지 않는다. Strong Ventures는 핵심 개발과 디자인을 외주로 처리하는 회사에는 절대로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걸 재해석하면 창업팀에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없으면 웬만하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런 회사들은 유료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제로이기 때문이다.

좋은 서비스를 만든다는건 정말 힘들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수십가지 또는 수백가지 선택의 옵션을 가지고 있는 고객의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만드는 건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어렵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은 경험으로 이런 현실과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변덕스러운 고객의 취향에 맞는 서비스는 어떻게 개발할까? 정답은 디자인 -> 개발 -> 테스팅 -> 디자인 -> 개발 -> 테스팅의 반복이다. 영어로 여러 가지 표현이 있겠지만 ‘product iteration’이 가장 적합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장은 너무나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가 고객의 취향을 100%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완벽하게 준비해서 출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서비스를 launch 하는 과정 중에도 시장은 계속 바뀌고, 새로운 경쟁사가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머리에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빨리 디자인하고 개발해서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출시하는 게 중요하다. 진정한 제품개발은 바로 이 MVP를 출시 한 후에 시작된다(그런데 내가 아는 많은 회사는 제품을 일단 출시하면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다).

출시 후에 고객의 반응을 잘 살펴봐라. 그리고 지속해서 테스팅을 해봐라. 가령, ‘구매’ 버튼을 화면의 우측 상단에 놓을지(A), 좌측 하단에 놓을지(B) 또는 화면 정중앙에 놓을지(C) 너무 고민하지 말아라. 랜덤으로 A, B, C 테스팅을 한 후에 가장 클릭과 구매율이 높은 위치를 선택해서 구현하면 된다. 버튼의 색은? 이 또한 테스팅을 통해서 유저들이 가장 많이 클릭하는 색깔을 선택하면 된다. 중요한 건 24시간 x 7일 계속 이런 테스팅을 통해서 시장에서 가장 잘 먹힐만한 제품으로 우리의 서비스와 기능들을 최적화하는 작업이다. 이게 서비스의 성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이런 빠른 테스팅을 – 내가 아는 몇몇 스타트업들은 하루에 이런 테스트를 5번 이상 한다 –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회사 내부에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단시간 내에 지속적인 product iteration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좋은 UI/UX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Pinterest의 grid design에 우린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별거 아닌 거 같지만, 핀터레스트 공동창업자 Evan Sharp는 이 최적화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 무려 50가지 버전의 그리드 디자인을 만들어서 실험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끊임없는 테스팅을 통해서 사용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리드 열의 너비, 색감, 사진을 나열하는 방법 등을 최적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버전은 192픽셀의 고정 너비와 지속해서 변화하는 높이의 그리드형 UI이다.

디자인이랑 개발을 외주하면 과연 이런 빠른 product iteration이 가능할까? 돈 받은 만큼만 일하는 외주업체가 이런 거 신경이나 쓸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특히 외국에 있는 외주업체라면 위에서 말한 A,B,C 테스팅 한 사이클 돌리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디자인과 개발을 외주로 처리하는 스타트업에서 시장을 장악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제품 개발을 외주로 처리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신 경제의 슈퍼스타들 – 개발자와 디자이너

제품이 후져도 영업력 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아마도 우리 아버지 세대였던거 같다. 그때는 무조건 영업과 마케팅 능력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었던 때였던거 같다. 영업/마케팅 인력이 회사를 먹여살렸기 때문에 이들이 회사에서 가장 인정받고 몸값도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실리콘 밸리의 새로운 슈퍼스타들은 영업 이사도 마케팅 이사도 아닌 개발자와 디자이너다.

The Engineer
Strong Ventures의 웹 사이트에는 ‘창업팀에 개발자가 없는 스타트업이라면 정중히 거절합니다. 스트롱 벤처스는 직접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팀만을 지원합니다.’라고 써놨다. 우리와는 다른 레벨인 Y 콤비네이터가 투자하는 모든 스타트업은 개발자 출신의 공동 창업자가 있던지, 창업 구성원 모두가 개발자 출신이다. Y 콤비네이터가 소액 투자해서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서비스가 에어비앤비와 드롭박스인데, 두 스타트업 모두 개발자가 창업팀의 주를 이루고 있다.

언젠가 어떤 젊은 친구가 좋은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왔다. 그런데 그는 프로그래밍 능력이 없었고 개발자 공동 창업자도 없었다. 우리는 투자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창업팀에 개발자가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왜 아이디어에 투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가끔 ‘백만불 짜리 아이디어’라는 말을 하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모순이다. 아이디어는 실제 제품화가 되어서 형체를 갖기 전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개발자’이다. 그런 개발자가 없는 팀에 투자하는건 돈 낭비이다.

벤처기업의 최초 제품의 개발은 절대로 외주하면 안된다. 개발 외주는 영업으로 먹고사는 원청회사나 하는 하도급이다. 전세계 식당을 평가하는 Michelin Guide에서 별점 만점을 받는 음식점은 절대 공장 소스를 쓰지 않는다. 하물며 기술 기반의 인터넷 벤처가 자신의 혼과 생명인 제품 개발을 어떻게 외부인에게 맡기나? 외주업체는 그냥 돈 받은 만큼 일해서 제품을 넘기면 끝이다. 제품에 대한 사랑도 책임감도 없다. 나중에 잘못되도 상관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찮게 본다. 이미 우리나라 대학교에는 수년 동안 공대 지망생이 줄고 있고, 공대 학생마저 요새는 고시나 회계사 시험을 공부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기계적으로 열심히 밤새서 일하는 비숙련 노동자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과는 너무나 다른 슬픈 현실이다. 언젠가 내가 유튜브와 트위터를 방문했을 때 매니저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우리 회사 최고 자산은 엔지니어죠”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페이스북은 제품보다는 우수한 개발 인력을 통째로 채용하려고 회사를 인수한다. 페이스북의 이런 도매금 인력 인수는 ‘acqhire’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인수를 의미하는 ‘acquire’와 채용을 의미하는 ‘hire’의 합성어다. 회사 자산 중에 사람이 제일 탐나서 회사를 인수하는 걸 의미한다. 물론 저커버그도 개발자 출신이다.

The Designer
유튜브의 공동 창업자 채드 헐리, 그루폰의 공동 창업자 앤드루 메이슨, 그리고 애플의 공동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기술이나 기능은 나중 문제라고 생각하는 ‘디자인’ 근본주의다. 특히 채드 헐리와 앤드루 메이슨은 디자이너 출신이다. 채드 헐리는 첫 직장 페이팔에서 회사 로고를 디자인했고, 앤드루 메이슨은 시카고에서 웹 디자인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유튜브와 그루폰 사이트를 방문해보면 단순한 느낌이 들면서도 유용하다. 요란한 화장 없이 단정하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기능을 배열한 이런 디자인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물론 소비자 가전제품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애플의 제품 디자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오죽했으면 최근에 내가 만난 실리콘 밸리의 투자자들은 “일단 디자인이 좋으면 무조건 투자하겠다”고 할까?

웹 서비스의 – 특히 B2C – 생명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 경험(UX)이다. 즉, 인간은 새 서비스를 볼 때 첫 느낌이 좋아야 서비스를 계속 사용하고 싶어한다. 아니면 바로 사이트를 떠난다. 아무리 기능이 좋고 유용한 서비스라도 ‘나쁜 디자인’ 안에 갇혀 있으면 사용자의 눈길도 못 받는다. 소개팅에서는 일단 상대 외모가 좋아야 호감이 간다. 첫인상이 나쁘면, 사람을 더 알고 싶은 흥미가 없어서 빨리 자리를 벗어나려고 꾀를 쓴다. 웹 서비스에서도 첫인상이 나쁘면 바로 웹 브라우저 탭을 닫아버린다. 디자인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벤처는 대개 창업 단계에 디자이너를 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디자이너가 아예 없는 회사도 많다. 전에 개발자가 없는 창업팀은 시작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하나 더 말하면, 디자이너가 없는 창업팀은 시작은 해도 오래가기가 어렵다.

왜 창업팀에는 디자이너가 있어야 할까? 오랫동안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디자인을 컨설팅한 디자이너 펀드의 Enrique Allen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 경쟁이 심화하면서, 브랜드와 사용자 경험이 성공을 이끄는 필수 조건이 됐다. 제품의 기술은 둘째다.
-혁신의 핵심은 전면적인 협업이다. 디자인·기술·비즈니스 지식의 전면적인 융합은 제품의 수정과 반복을 더 빠르게 하고 제품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
-디자이너 출신 창업자는 단순히 시각적 능력뿐 아니라, 인간의 욕구와 겉으로 표출되지 않은 기회를 발견하는 독보적인 능력이 있다.

개발자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대체로 디자인이 대접을 못 받고 있다. 많은 CEO가 애플을 벤치마킹하면서 “우리 회사의 핵심은 디자인입니다”라고 말은 해도, 막상 행동은 반대다. 디자인 인력을 줄이고, 디자이너를 막 부린다. 디자이너는 많이 생각하고, 많이 그려보고, 많이 실험하는 게 생명인데 밤새워서 시키는일 하느라 바쁜게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일상인거 같다. 거의 막노동자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디자인을 정통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용자 경험까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감수성이 예민한 창업자였다. 스티브 잡스처럼 기술이 인간과 친구가 되려면 어떤 형태를 갖추고 어떤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창업자야말로 기술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 중심에서 두 세계를 적절하게 혼합할 수 있는 마법사다.

자동차 운전대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와 자동차 전체와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수 있는 디자이너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오래가는 벤처를 하려면 둘 다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창업팀에 필요하다.

역시 멋진 서비스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개발자가 없다면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없고, 디자이너가 없다면 스타트업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우리시대의 슈퍼스타인 개발자와 디자이너들과 어울려라, 그리고 잘 모셔라. 이 사람들이 없으면 창업해서 성공 못한다.

스타트업 바이블 2: 계명 10 – 개발자와 동업해라‘와 ‘계명 11 – 명품에는 명품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를 정리한 내용이다.

MBA와 창업

“MBA 학위는 창업함에 있어서 유용할까?”

나 또한 MBA 과정에 발을 담가 봤고, 내 주위에는 MBA 출신들이 엄청 많기 때문에 매우 예민한 이슈이다. 분명히 나랑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사실 MBA는 창업과는 전혀 상관없고, 오히려 창업에 방해가 되는 학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도 MBA 과정에 발을 담가봤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MBA 프로그램 중 하나인 와튼 경영 대학원에 입학해서 첫 학기를 다녔다. 졸업도 못해놓고 다 아는 양 말하긴 민망하지만, 가장 바쁘고 힘든 첫 학기를 보낸 학생 관점에서 MBA 과정이 대략 어떤지는 안다. 와튼 스쿨의 MBA 과정에는 해마다 약 900명이 입학한다. 이 중 대략 30% 정도가 – 물론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 졸업 후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에 취업하거나 본인이 직접 창업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왜 바로 창업하지 않고 굳이 20만 달러 가까운 혹독한 수업료를 내고,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MBA 학위가 필요할까?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난 후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하려고요.

공자님 말씀이다. 다만, 현실성과 신빙성이 떨어진다. 나도 MBA 과정에서 경영 이론과 마케팅 전략을 공부했다. 또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기존 기업이 특정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신물 나도록 읽어보고 리포트를 작성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가 창업을 해보니 MBA 과정에서 배운 어떤 이론이나 사례도 통하지 않았다. 이론은 말 그대로 실용성이 떨어지는 일반론이며,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교과서적인 모범 전략을 구사할 만한 인력도 자금도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다른 기업이 내 회사와 같은 상황이 아닌 이상, 다른 기업의 사례는 말 그대로 다른 회사의 사례일 뿐이다.

내 경험상 벤처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MBA 과정에서 배운 내용은 첫째, 남들보다 빠르고, 좋고, 싼 걸 추구해야 하는 벤처 창업에서는 이미 과거의 것이다. 둘째, 와튼 스쿨에서 배출한 MBA 졸업생이 지금까지 총 8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이는 나뿐만 아니라 내 동문이자 잠재적 경쟁자도 다 똑같은 내용을 안다는 뜻이다.

벤처 현장은 전쟁터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시대로 움직이지 말고 현장에서 싸우는 자신이 직접 현장을 분석하고 전략을 짜서 즉각 행동해야 한다. 이런 기술은 책으로는 못 배운다. 오로지 몸으로 부딪히고 쓰러지고 일어나는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다.

MBA 학위가 창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창업의 꿈을 가지고 입학한 사람도 막상 졸업이 가까와지면 투자비 회수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2년간 소중한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면, 수익은 둘째치고 본전 생각이 간절해진다. MBA로 월급쟁이 몇 년 하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도 있는데 창업이란 기약도 없는 투자를 한 번 더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더 현실적인 어려움은 대출 상환에 대한 압박이다. MBA 졸업생 대부분은 20만 달러 가까이 되는 MBA 과정 학비 때문에 대출을 받는다. 보통 평균 10만 달러 넘게 빚을 진다. 학자금 대출이 1억 원이 넘는데 억대 연봉을 뿌리치고 무급 창업자의 길을 밟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 MBA 과정의 기본이 되는 cost-benefit 분석을 해보면 완전 미친 짓이다.

앞에서 언급한, 졸업 후 창업하겠다던 와튼 MBA 학생 중 몇 명이나 실제로 창업을 했을까? 내가 아는 건 4명 미만이다. 대신 MBA 학위는커녕 학사 학위도 없는 젊고 거침없는 청년이 세상을 바꿀만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한다. 하버드를 중퇴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나 졸업을 6개월 앞두고 MIT를 중퇴한 드롭박스 공동 창업자 아라쉬 퍼도우스키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고 MBA가 아주 쓸모없는 학위라고 생각하지 말자. 대기업, 컨설팅, 은행 또는 중견 벤처에 취업할 때는 아주 유용하다. 다만, 실제 창업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또한, MBA 과정을 졸업하면 누릴 수 있는 큰 특혜가 있는데 바로 동문 인맥이다. 미국에도 학연이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동문이 전화했는데 일면식이 없다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일 진행이 훨씬 편하다. 대신, 좋은 동문 인맥을 만드려면 좋은 학교에서 MBA를 해야한다.

“돈이 많으면 좋지만, 평생 그 돈을 쓰지 않는 건 마치 늙어서 섹스하려고 체력을 비축하는 거와 같습니다.” 오마하의 현자 워런 버핏이 한 명언이다.

공부 더하고 경험 더 쌓고 창업하려고 MBA 과정 2년을 보내는 건 마치 40대에 섹스하려고 20~30대에 체력을 비축하는 거와 같다

아직도 창업하기 위해서 MBA를 하겠는가? ‘스타트업 바이블 2: 계명 03 – MBA 갈 돈으로 창업하라‘를 읽고 판단해 봐라.

제시카 알바와 ‘벤처 정신’

이번 주에 열린 TechCrunch Disrupt 2012 행사에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할리우드 여배우 제시카 알바가 스피커 중 한명으로 참석했다. 배우로써가 아니라 LA 기반의 연쇄 창업가 Brian Lee와 The Honest Company를 공동창업한 창업가로 ‘당당하게’ 행사에 초대받은 것이다. 사회자가 그녀에게 스타트업을 하면서 배운 점에 대해서 물어봤다. 나는 그냥 “너무너무 재미있다” 정도의 흔해빠진 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녀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만 그 표정과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스타트업은 너무 너무 너무 힘들어요. 정말로.

세상의 모든걸 가진 제시카 알바도 할리우드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지금 스타덤의 자리에 올랐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녀는 어렸을적 폐렴과 합병증 때문에 학교보다 병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도 성공하기 전에는 무명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스타트업이 힘들다고 했다. 이 말을 할때 나는 제시카 알바의 표정과 눈을 잘 봤다. Bullshit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스타트업 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이게 정말 쉬운게 아니라는걸. 인생의 모든걸 바쳐도 안될 확률이 더 큰, 어쩌면 처음부터 지는 싸움이라는 걸. 어렵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냥 대충 하는 사람들이다. 벤처정신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벤처 정신’은 정확히 뭘까? 전에 내가 벤처 정신으로 똘똘 무장한 일본인 아카이와씨에 대한 재미있는 글을 하나 쓴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냥 힘든 상황에서 굳은 각오로 남들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받으면서도 목표를 추구하는 정신일 것이다. 스타트업을 하다보면 누구나 다 한번 정도는 벤처정신으로 밀어붙인 경험이 있을것이다.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거다.

실리콘 밸리에서 요즘 잘나가는 Airbnb 또한 벤처 정신이 느껴지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일화로 유명하다. 2008년 오바마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콜로라도의 덴버에서 열렸다. 몇만명에서 수십만명까지 모이는 행사여서 주위 숙박시설은 턱없이 부족했고 수천에서 수만명이 숙소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여기서 에어비앤비의 진가가 발휘되면서 엄청나게 많은 트래픽이 에어비엔비로 몰리기 시작했다. 행복한 고민이었지만 이들은 폭발하는 트랙픽을 감당하느라 서버도 늘리고 회선 속도도 늘리느라 수입보다 지출이 훨씬 많이 발생했다. 창업팀은 신용카드 네 개를 한도까지 털었고 물론 개인 저축도 다 올인했다.
하지만 그래도 모자랐고 이 기발한 청년들은 그때 기지를 발휘했다. 민주당원에게 잠자리도 팔았는데 다른건 왜 못 팔랴. 오바마 대통령 후보 얼굴 그림이 그려진 시리얼을 아침으로 팔기로 했다. 물론, 그림과 포장 디자인은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일반 시리얼을 1,000상자 사서 500개는 오바마 그림이 그려진 상자로, 나머지는 매케인 (공화당 후보) 그림이 그려진 상자로 재포장했죠. 원래 3 달러정도 하는 걸 40 달러에 팔았는데 오바마 시리얼은 동났어요. 당분간 에어비앤비를 운영할 자금을 모았죠. 매케인 시리얼은 많이 남았는데, 식사비용을 아끼려고 저희가 다 먹었어요.

에어비앤비는 시리얼 판매로 3만 달러를 벌었고 곧 Y Combinator한테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1조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을 받는 슈퍼 스타트업이 되었다.

스타트업 운영은 (정말 정말 정말) 어렵다. 그래서 보통 정신이 아닌 벤처 정신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 이렇게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지만, 노력 없이는 성공도 없다. 에어비앤비 창업팀이 시리얼을 길거리에서 강매했다면, 우리는 못해도 이 정도는 해야한다.

나 또한 이런 경험을 여러번 했다. 배기홍의 벤처정신이 궁금하면 ‘스타트업 바이블 2: 31계명 – 벤처 근성은 기본이다‘를 참고하도록. 그리고 여러분들의 벤처정신 경험도 같이 공유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