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바이블 2

채용하지 말아라

내가 만약에 투자자에서 다시 창업가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지만, 안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중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능하면 투자를 받지 않고, 둘은 웬만하면 사람을 뽑지 않고 싶다. 본인은 열심히 투자하면서, 창업하면 투자를 안 받겠다는 말은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VC가 싫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의 자본 없이 내가 스스로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어서 첫날부터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고, 아무리 좋은 VC라도 투자를 받으면 사업에 간섭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내가 만들고, 남의 돈 안 받고, 정말로 그동안 내가 보고, 느끼고, 실수한 배움을 그 누구의 간섭 없이 모두 다 사업에 적용해 보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웬만하면 외부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 말이다.

채용에 대해서도, 내가 그동안 280개 넘는 회사에 투자하면서 옆에서 간접적으로 배운 점이 정말 많은데, 그 중 딱 하나의 배움을 뽑자면, 가급적이면 채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시작할 땐 소수 인원으로 모든 걸 한다. 영어의 do more with less 정신으로 서로의 계급이나 직책 따지지 않고, 그냥 그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처리한다. 개발자가 화난 고객의 전화를 받아서 고객 서비스를 할 때도 있고, 영업 사원이 포토샵을 배워가면서 웹사이트 디자인을 할 때도 있다. 이 시기에 대표이사는 회사의 모든 잡일을 한다. 그리고 전원 모두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내가 아는 잘 되는 회사의 초기 멤버들은 창업 초기엔 일주일에 거의 100시간씩 일 했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을 더 채용하는 게 오히려 회사에 부담을 안기는데, 돈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더 채용한다는 건 회사에 큰 재무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새로 채용한 사람에게 업무를 가르칠 시간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인력이 일을 더 많이 하는 게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에 어떤 회사는 투자를 받고, 어떤 회사는 매출을 만들면서 스스로 돈을 버는데,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가장 먼저 사람을 채용한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대규모 채용을 하는데, 이때부터 회사는 망가지기 시작한다. 특히, 정말로 필요해서 사람을 채용하는 전략이 아닌, 일단 사람을 채용하고 이 사람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전략을 실행하는 회사는 생산성에 적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일단, 현금이 상당히 빠르게 소진된다. 스타트업 운영비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인데 사람을 많이 채용할수록 비용 구조가 악화된다. 그리고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채용하다 보니까, 제대로 된 채용을 못 한다. 70% 정도만 맘에 들면, 그냥 나머지 30%는 회사에서 채워준다는 생각으로 채용한다. 결과는, 나머지 30%를 채워주기 위해서 돈은 더 많이 써야 하고, 이 30% 채우기에 동원되는 다른 사람들의 업무가 지장 받으면서, 여기서 생산성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채용하다 보면, 결국엔 회사에서 노는 사람들이 생긴다. 한국의 경우, 사람을 마음대로 해고하지도 못해서, 노는 사람들이 회사의 시스템 뒤에 숨어서 일하는 척하기 시작하면 정말 골치 아프다.

이렇게 갑자기 커진 회사들이 문제가 발생해서, 사람을 대량 해고하면, 신기하게도 매출은 오히려 더 증가하고 비용은 내려가는데, 이런 경험을 해본 창업가들은 이제 되도록 사람을 안 뽑으려 한다.

스타트업의 첫 번째 채용 전략은 “웬만하면 채용하지 말아라.”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100% 맘에 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채용하면 안 된다. 조금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은 회사가 채워주면 된다는 생각은 직원의 절반 이상이 놀아도 시스템으로 잘 굴러가는 대기업에만 해당한다. 100% 맘에 드는 사람을 못 찾으면, 그냥 현재 임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힘들겠지만, 이렇게 하면 오히려 생산성이 더 올라가고, 실적이 훨씬 더 잘 나온다. 이건 내가 수년 동안 커지는 회사들을 옆에서 보고 배운 점이다.

그래서, 일단 가급적이면 채용하지 말아라. 임직원들이 모두 200% 캐파로 일해서 더 이상 더 많은 일을 못 한다면, 그리고 100%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으면, 그때 한 명씩, 아주 천천히 채용해라. 그리고 정말 개 같이 일 할 수 있는 사람만 뽑아라.

작은 동기부여

회사의 주인인 창업팀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 제품도 잘 만들고, 돈도 좀 벌고, 투자도 받으면 점점 더 회사의 규모가 커진다. 이러면서 직원도 더 채용하고, 채용한 직원이 또 다른 직원을 채용하게 되며, 이렇게 머릿수도 늘어난다. 직원 수가 늘어나는 것은 일단 좋은 현상이다. 사업이 괜찮게 되어 더 많은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매출을 만들어내고, 새로 온 사람들이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일감이 많다는 의미이다. 또는, 매출을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큰 매출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는 회사여서 외부 투자를 받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채용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지금 인원수를 늘릴 타이밍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어쨌든 회사의 임직원 수가 증가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늘어나는 직원 수와 대표이사의 스트레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비례하여 증가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 명의 직원에서 두 명의 직원이 됐을 때 대표이사의 스트레스는 두 배가 되지만, 두 명의 직원에서 네 명의 직원이 되면 대표이사의 스트레스는 열 배가 된다. 이런 식으로 직원 수가 계속 늘어나면, 대표이사는 어느 순간 하루 24시간 아무 생각도 못 하고, 그/그녀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직원들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를 나는 자주 본다.

직원들에 대한 이들의 고민 종류는 가지각색이지만, 공통적인 가장 큰 이유는 직원들의 동기 부여이다. 같이 시작한 공동 창업가들이나 완전 초창기 멤버들은 지분을 꽤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누가 옆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되고, 회사의 주인은 그 주인의식 자체가 자동으로 동기 부여가 된다. 그 누구도 옆에서 정기적으로 이들에게 인위적으로 동기 부여를 할 필요도 없고, 매니저나 경영진이 소위 말하는 ‘스타트업 뽕’을 정기적으로 투약할 필요가 없다. 이들이 그냥 스스로 매일 스타트업 뽕을 맡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분이 없거나 적은 직원들은 다르다. 이들은 대부분 월급쟁이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다. 그냥 회사에서 일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월급을 받는 분들인데, 이들은 누군가 – 주로 대표이사나 경영진 – 정기적으로 동기부여를 해줘야만 계속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들이라서, 대표들은 이들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동기부여하여 능력치의 120%를 발휘하게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리고 직원이 많아지면 이 고민만 하다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실은, 나도 직원이 수십 ~ 수백 명 되는 조직을 운영해 본 적은 없다. 스트롱벤처스도 나를 포함해서 8명의 작은 조직이다. 물론 이 작은 조직에서도 나도 직원들의 동기부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지만, 50명 이상 되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들과는 차원이 다른 로우 레벨 고민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저기서 보고, 듣고, 경험한 바에 의하면 직원들을 동기부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방의 거창한 동기부여보다 아주 소소한 동기부여를 자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똑똑한 대표라면 이런 소소한 동기부여를 적절한 타이밍에 캐주얼하게 자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영업 사원이 100만 원짜리 계약을 했다면,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서 우리가 같이 만든 제품으로 100만 원 계약을 했다고요? 정말? 대단한데요? 다음엔 150만 원 계약을 목표로!” 뭐, 이런 식으로 이 분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 이런 칭찬과 동기부여가 계속 쌓이다 보면 엄청난 자신감과 애사심이 생기고, 이게 결국엔 실적으로 돌아올 것이다. 직원들이 조금씩 지칠 때마다 적시에 이들에게 계속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영감과 에너지를 불어넣는 어떤 대표는 이런 말을 직원들에게 자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 뭔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남이 만든 제품을 돈을 내고 삽니다. 그런데, 우린 우리가 직접 만든 제품으로 이번 달 매출 300만 원이나 했어요. 그것도 우리를 생판 모르는 남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사기 위해서 지갑을 열었단 말이에요. 생각해보면 이게 정말 대단한 업적이죠.” 솔직히 이 말을 듣고 동기 부여가 안 되는 직원이 과연 있을까?

이런 작은 좋은 일들이 쌓이다 보면, 그 회사가 언젠가는 1,000억 원대 매출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유명한 VC로부터 대규모의 투자도 받는다. 이런 건 아주 거창한 동기부여로 이어지고, 계속 이런 크고 작은 동기부여 엔진이 돌아가면서 회사는 건강하게 성장한다. 세상의 모든 거창한 동기 부여. 아주 작은 동기부여가 계속 쌓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The Startup Bible – 2024 정리

해마다 12월 마지막 주에는 한 해 동안 쓴 글에 대해 정리하는데, 2024년도 이제 거의 다 끝나서 이 블로그의 한 해를 정리해 본다.

이 글을 포함, 2024년에 난 98개의 글을 올렸는데, 이는 3.7일에 한 번씩 포스팅을 한 셈이다. 매주 월요일, 그리고 목요일 포스팅을 하니까, 포스팅 수치는 거의 같다. 긴 휴가를 가거나, 월요일과 목요일이 공휴일이면, 새 글을 잘 안 쓰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는 날 수 있다. 98개의 포스팅을 읽기 위해서 The Startup Bible 블로그를 방문한 분은 오늘을 기준으로 총 131,494명이다. 월평균 10,957명, 하루 평균 360 명이 방문한 셈이다. 작년 대비 11%정도 트래픽이 증가했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더 많이 읽히는 글을 포스팅하면, 더 많이 공유되어 자연스럽게 많은 트래픽이 유입되는 것 같다. 가끔 예상치 못하게 많이 읽히고 공유되는 글이 올라오면, 일 트래픽이 5,000까지 뛰는 걸 봤다. 올해도 바빠서 더 자주 포스팅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월요일과 목요일이 아니라 매일 글을 올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더 긴 글을 쓸지 생각해 본 적도 있는데, 이건 시간과 여유의 문제라기 보단, 내 스타일의 문제라서, 나는 그냥 비교적 짧은 글을 내 페이스에 맞춰서 계속 올릴 계획이다.

2024년도에 가장 많이 읽힌 Top 10 글은 다음과 같다:

1/ 개발자도 회사의 조직원이다
난 이 글이 이렇게 많은 댓글을 기록하고, 스타트업 업계에 이렇게 큰 센세이션을 일으킬 줄 상상도 못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개발자들을 싸잡아서 욕할 의도는 전혀 없었고, 겉으로 보면 회사에서 돈 버는 기능과 가장 먼 곳에 있는 개발팀과 개발자들을 일례로 든 포스팅이다.

2/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다
1번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과 댓글을 보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추가로 설명한 글인데, 역시 이 글도 꽤 격하고 극단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참고로, 회사 와서 돈 벌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족을 위한 일을 하다가 집에 가는 사람들은 월급 받을 자격이 없다는 내 생각은 변함없다.

3/ 작은 시장, 작은 사람들, 큰 결과
우리가 오래전에 투자한 LA의 한인 창업 B2B SaaS 스타트업 AuditBoard의 드라마 같은 창업 이야기, 성장기, 그리고 exit 이야기. 난 아직도 이 회사의 엑싯이 현실 같지가 않다. TTT(=Things Take Time).

4/ 워라밸은 없다
요새 내 주변 스타트업 창업가들이나 직원들 보면 정말 일 열심히 안 한다. 오후 6시 이후에 아직도 불이 켜진 스타트업을 요새 유니콘이라 할 정도로 너무 일들을 안 한다. 그러면서 너도나도 워라밸을 외치는 이 현실이 정말 불만인데, 이 불만을 토로한 글이다.

5/ 월급쟁이 VC
최근에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한캐피탈 vs. 어반베이스 사건 때문에 영감을 받아서 쓴 글이지만, 이 글의 결론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투자자들에 대한 내용이다.

6/ 제2의 한류
우리가 올 한 해 해외 투자자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했던 표현이 바로 “The Second Korean Wave(제2의 한류)”이다. 그만큼 한국이 자랑스럽고, 한국이 전 세계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cultural force가 됐다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현실이다. 하지만, 이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 걱정되고, 부끄럽고, 하여튼 여러모로 좀 그렇다.

7/ 벌이는 놈, 말리는 놈, 치우는 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상적인 창업팀의 구성. 일을 벌이는 놈이 있어야 하고, 이놈을 말리는 놈도 필요하고, 결국 일을 벌이면, 이 일을 뒤에서 잘 치우는 놈이 있어야 한다. 이런 세 명으로 만들어진 창업팀은 상당히 오래 가더라.

8/ 개 같이 일하기
4번의 ‘워라밸은 없다’와 일맥상통하는 포스팅이다. 스타트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똑똑하게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고, 개 같이 일하지 않으면 개 같이 실패할 것이다.

9/ 스타트업의 지분 할당
참 신기한 게, 이 글은 2023년도에는 가장 많이 읽혔던 No.1 포스팅이다. 솔직히 글을 쓴 사람인 나에게 물어보면, 이 글은 그냥 특색 없는 평범한 글이다. 그런데 많이 읽힌 걸 보면, 회사가 성장하면서 어떤 인재를 영입해야 하고, 이들을 채용할 때 스톡옵션이나 회사의 지분을 어떻게 부여하는 게 최선의 방법인지 고민하는 창업가들이 많다는 긍정적인 신호인 것 같다.

10/ 헛똑똑이들
매주 화요일마다 하는 우리 내부 전체 회의를 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짧게 정리해 본 글. 너무 많은 VC들이 똑똑하지도 않으면서 헛똑똑이 치장과 분장에만 집중한다.

이상 2024년에 가장 많이 읽힌 글 10개였다. 2023년과 2024년 탑텐 글을 비교해 보면, 겹치는 글이 딱 한 개밖에 없는데, 몇 년 전만 해도 해마다 겹치는 글이 5개 이상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그땐 좋았던 글이 지금은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사람들의 취향이 이젠 너무 최신 것만 선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올해도 이렇게 1년 동안 쓴 글들을 분석하면서 스타트업 바이블의 2024년을 마무리해 본다.

Happy New Year everyone!

노가다에 대해서

투자자나 창업가나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가 자주 하는 질문은 과연 특정 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이 가능할까인데 영어로 이 질문을 하면 “이 비즈니스가 얼마나 scalable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유니콘 회사가 아주 빠르게 성장을 했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스타트업 분야에서 워낙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들이 이 단어에 집착한다고 난 생각한다. 아주 효율적으로,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건 당연히 좋고, 투자자로서 나도 스케일이 가능한 사업을 발견하면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쉽게, 그리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요새 정말 찾기 힘들다. 나는 오히려 이런 비즈니스가 있다고 하면 약간 의심하고,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필요 이상으로 스케일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 같다.

최근에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많은 창업가들이 성장보단 생존에 집중하고 있는데, 계속 성장을 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은 이런 상황이 죽고 싶어질 정도로 답답할 것이다. 우리 투자사 대표 몇 분은 이런 답답함과 짜증 남에 대해서 우리랑 편안하게 자주 이야기하는 편인데, 최근에 했던 이런 대화가 기억난다. B2B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영업 속도가 느리고 매출 성장이 너무 더뎌서 매우 초조해하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 분과의 미팅이었다.

일단, 기업에 판매할 B2B 제품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제품보단 주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가 투자한 어떤 B2B SaaS 회사들은 제품만 만드는 데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힘들게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 제품을 기업 고객에게 판매하는 건,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첫 번째 B2B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 달 이상 영업하는 경우도 자주 보는데, 이렇게 해서 확보한 고객에게 발생하는 매출은 기대 이하이다. 이분은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년 열심히 영업해도 유료 고객이 15개도 안 될 것이고, 이들로부터 나오는 매출도 크지 않아서, 과연 내가 맞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고객 한 명 한 명씩 영업하는 방법이 맞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미친 성장’을 하는 다른 스타트업같이 아주 효율적으로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회사는 아주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솔직한 의견은, B2C 제품이나, B2B 제품이나,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론에서는 마치 쉽게 사업을 확장하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모든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같이 포장하는데, 나는 큰 스케일은 수많은 작은 노가다가 축적될 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샌 웬만한 사람들이 다 사용하는 드롭박스 같은 제품도 사업 초반에는 창업자가 직접 지인들 사무실을 방문해서 이들의 PC에 제품을 설치해 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주면서 성장했고, 에어비앤비도 창업자들이 직접 호스트의 숙소를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서 대신 올려주면서 성장했다. 우리 투자사 당근도 판교에서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창업자들이 직접 물건을 하나씩 올려서 판매하면서 시작했다.

동네 가게를 위한 B2B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많은 동네 가게 사장님들에게 한 방에 크게 노출할 수 있는지 고민할 시간에, 그냥 하루 종일 동네 가게 문 두드리고 찾아가서 영업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뚜벅뚜벅 걸어 다니면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들에게 직접 제품을 설치해 주다 보면, 진짜 사업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세상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고객 한 명씩 상대하면서 노가다 작업을 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 계속 스스로 의심하겠지만, 고객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다섯 명이 되고, 다섯 명이 50명이 되면서, 그때부터 사업엔 스케일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스케일이 생기기 전 까진 그냥 옛날 방식대로 하나씩 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뛰어야 한다.

스케일은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하고, 이런 노가다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큰 스케일이 만들어진다. 대신, 멈추지 말고 계속 해야 한다.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세상의 모든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The Startup Bible – 2023 정리

해마다 12월 마지막 주에는 한 해 동안 쓴 글에 대해 정리하는데, 2023년도 이제 며칠 안 남아서 이 블로그의 한 해를 정리해 본다.

2032년에 난 96개의 글을 – 이 글 포함 – 올렸는데, 이는 3.8일에 한 번씩 블로깅을 한 셈이다. 매주 월요일, 그리고 목요일 포스팅을 하니까, 포스팅 수치는 거의 같다. 긴 휴가를 가거나, 월요일과 목요일이 공휴일이면, 새 글을 잘 안 쓰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는 날 수 있다. 96개의 포스팅을 읽기 위해서 The Startup Bible 블로그를 방문한 분은 오늘을 기준으로 총 224,471명이다. 월평균 18,706명, 하루평균 615명이 방문한 셈이다. 작년 대비 15% 정도 트래픽이 증가했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글을 더 자주, 많이 포스팅하면 트래픽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것 같다. 가끔 예상치 못하게 인기가 많은 글이 올라오면, 이 트래픽은 더 올라간다. 올해는 바빠서 더 자주 포스팅하고 싶다고 생각할 여유도 없어서 그냥 꾸준히 일주일에 두 번만 글을 썼다. 당분간은 이 페이스를 유지할 계획이다.

2023년도에 가장 많이 읽힌 Top 10 글은 다음과 같다:

1/ 스타트업의 지분 할당
이 글이 왜 가장 많이 읽혔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실은 이 글은 내가 우리 투자사 대표들과 자주 공유하는 글인데, 그렇다고 내가 수천 명의 대표들과 이 글을 공유한 건 아니라서 이 글이 많이 읽힌 건 의외였다. 그냥 나름대로 상상해 보면, 많은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더 좋은 인력을 외부에서 영입하거나 내부에서 승진시켜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고 있고, 이때 회사의 지분이나 스톡옵션을 어느 정도 부여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하는 것 같다. 건강한 고민이고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2/ 자존감과 체력
이 글은 실은 나의 원픽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수록 육체적으로 더 많은 운동을 하라는 조언인데, 체력이 좋아지면 자존감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이건 과학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내년도 열심히 운동하시길!

3/ 재택근무, 사이드잡, 그리고 떨
올해 미국 출장을 꽤 많이 갔는데, 갈 때마다 느꼈던 재택근무의 단점에 관해서 쓴 포스팅이다. 동의하는 분들도 있었고, 강하게 동의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는데, 이건 사람마다 다르고, 회사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다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론 재택근무에 대해서는 매우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4/ 슈퍼앱의 위험
누구나 다 만들고 싶어 하는 게 모든 걸 다 해결하는 슈퍼앱이지만, 그만큼 만들기 어려운 게 슈퍼앱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모든 창업가들이 쫓는 신기루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부터 너무 슈퍼앱이라는 허무맹랑한 목표를 잡지 말고, 아주 작은 기능에서 시작해서, 이걸 지속적으로 확장하면 궁극적으론 슈퍼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한국인들의 7 가지 실수
해마다 Top 10에 들어가는 스타트업바이블의 고전이다. 이 글을 쓴 지 1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매해 2,000명 이상 읽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글이기도 한데 23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나는 전부 다 읽어 봤는데 댓글들을 읽을 때마다 세상은 참 다양하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낀다.

6/ IRR, Multiple, 그리고 DPI
이 글은 아마도 VC들, 또는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LP들이 많이 읽지 않았겠느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벤처 펀드를 평가할 때 중요한 지표가 IRR, Multiple, 그리고 DPI인데, 이 중 IRR과 Multiple은 허수가 많이 있고, 투자를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DPI라는 수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잘 알 것이다.

7/ B2B 이탈 방지
B2B – 특히, B2B SaaS – 제품은 개발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걸 기업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힘들게 확보한 고객사가 이탈하면 제품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엔 타격이 큰데, 이런 B2B 고객의 이탈에 대한 내 생각을 두서없이 정리해 본 글이다.

8/ 마른 수건 쥐어짜기
올해 정말 힘든 한 해였다. 마른 수건 쥐어짜듯이 비용을 줄이고, 인력도 줄이고, 주변 모든 창업가들이 피똥 싸면서 버텼다. 그런데 우리 투자사들을 보니, 마른 수건을 쥐어짜고, 또 쥐어짜는 걸 반복하면서 비용구조를 극적으로 개선 시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9/ 일인 창업팀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일인 창업팀은 좋은 점보다는 그렇지 않은 점이 많은 것 같다는 내 개인적인 생각을 글로 정리해 봤다. 일인 창업가 팀이 혼자서 사업을 잘 못 할 것 같아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창업이라는 정말 외로운 길을 혼자서 오래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다.

10/ 벤처 혹한기의 장점
불경기는 벤처 생태계의 모든 분들에게 괴로운 시기임은 분명하지만, 예상치 못 했던 장점 또한 있다. 돈이 없기 때문에 모두 다 돈을 아끼고, 어떻게 하면 매출을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흑자를 만들 수 있을지, 이런 건강한 고민을 호경기 대비 훨씬 일찍, 그리고 훨씬 자주 고민하기 때문에, 불경기 때 좋은 회사가 창업될 확률은 상대적으로 높다.

이상 2023년에 가장 많이 읽힌 글 10개였다. 작년에도 이 말을 한 것 같은데, 몇 년 전만 해도 가장 많이 읽힌 10개 포스팅을 정리하다 보면, 그 전 해의 탑텐 글과 절반 이상이 겹쳤었는데, 올해는 겹치는 글이 딱 한 개밖에 없었고, 대부분 2023년도에 새로 올라온 글들이 가장 많이 읽혔다. 뭐, 이게 특별히 좋거나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냥 해마다 얕게 분석하면서 발견하는 이런 사실이 재미있다.

올해도 이렇게 1년 동안 쓴 글들을 분석하면서 스타트업 바이블의 2023년을 마무리해 본다.

Happy New Year ever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