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ing

에어팟

아직 2019년이 되려면 5개월 이상 남았고, 앞으로 내가 뭘 구매할지 모르지만, 현재까지 올 해 내가 구매한 것 중 가장 잘 샀다고 생각하는 건 애플 에어팟이다. 실은 에어팟이 처음 발표됐을 때 시장에서는 극과 극의 상반되는 피드백이 나왔고, 무선 이어폰에 대한 수많은 패러디가 나왔다(오랄비 전동칫솔 헤드랑 비슷한 건 정말 웃겼다)

실은 18만 원 이상이라는 가격이 부담돼서 며칠 동안 고민을 한 후, 주변에 에어팟을 이미 사용하는 친구들한테 정말 그 정도 가격 값을 하는지 물어봤다. 6명한테 물어봤는데, 모두 “신세계”라는 말을 하면서 무조건 사라고 해서 쿠팡에서 바로 질렀다. 애플 특유의 매끄럽고 세련된 디자인, 무겁진 않지만 고급스러움이 전달될 정도의 묵직한 in-ear 이어폰과 케이스, 이어폰을 넣고 닫을 때마다 손맛이 좋은 충전용 케이스의 자석, 귓구멍에 부담이 안 가는 우수한 착용감, 그리고 수준 높은 음질, 모두 최고다. 한쪽이라도 귀에서 빼면 음악 재생이 멈췄다가 다시 끼면 재생되고, 손가락 태핑으로 몇 가지 간단한 조작을 할 수 있는, 이런 세심한 디테일은 사용자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제 한 달 조금 넘게 사용하고 있는데, 엄청난 사용자 경험이다.

나는 좋은 제품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에 iOS의 시계에 대한 에서 애플의 세심한 디테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스티브 잡스는 죽었지만, 완벽한 제품에 대한 고집과 열정은 아직 애플에 잘 살아있는 거 같다. 시장이 정말로 원하는 게 제품의 본질에 잘 녹아 있어야지만,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기대했던 거 보다 더 좋은 사용자 경험은 브랜드 충성도와 함께 그 브랜드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만드는데, 한동안 시들었던 애플에 대한 내 존경과 사랑이 에어팟 때문에 다시 생겼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충 제품 만들어 놓고, 창조적인 마케팅이라고 포장하면서, 인기 연예인을 광고에 등장시키는 이런 얄팍한 상술은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면 그 제품 자체가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다.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제품이 줄 수 있는 본질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회사는 오래 못 간다.

에어팟은 내가 지금까지 사용해본 최고의 무선 이어폰이다. 그것도 다른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다. 기능, 디자인, 품질, 모든 면에서. 모든 스타트업은 이런 제품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Always Stay Humble

6월 20일 프라이머 13기 데모데이가 있었다. 나도 프라이머 파트너로서 활동한 지 이제 거의 3년이 되는데, 항상 느끼지만, 꼬꼬마 초기 스타트업과 같이 일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과 배움은 크다. 내가 프라이머 회사들에 주는 도움도 물론 있겠지만, 실은 내가 이들한테 배우는 점이 더 많다. 특히, 대부분 젊은 분들이라서 이들의 포기를 모르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다 보면, 항상 힘이 솟아난다.

이번 데모데이부턴 기조연설을 없앴다. 대신, 프라이머 선배 기수 창업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는데 이번에는 직방에 인수된 호갱노노의 심상민 대표와 대기업의 자회사인 29CM를 인수해서 화제가 되었던 스타일쉐어의 윤자영 대표가 그 주인공이었다. 나는 두 분 다 개인적으로 안다. 특히, 심상민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알았고 호갱노노가 성장하는 모습을 꽤 가까운 곳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이 두 분에 대해서는 이제 시작하는, 젊고, 경험보다는 패기로 사업하는 창업가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데모데이 무대에서 발표하는 걸 보니 짧은 시간 동안 훌륭한 사업가로 성장하신 거 같아서 기뻤다.

특히, 윤자영 대표님이 정말 좋은 발표를 했는데, 일반인들이 보면 스타일쉐어는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온 회사지만, 정작 그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본인은 스타일쉐어를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 주변에는 누구나 다 알만한 대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들도 있는데, 이 중 몇 분은 아직도 회사가 잘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을 하시고, 항상 초심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이런 분들 참 존경스럽다. 항상 겸손하고, 지금까지 이룬 일보단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지만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기업인이 작은 일 때문에 자만하는 경우를 목격하는데, 자만하기 시작하면 더 올라갈 곳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부턴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계속 위로 오르고 싶으면, 항상 겸손해야 한다.

스타트업(Startup)이라는 단어 자체가 뭔가를 시작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회사가 작든, 크든, 잘 되든, 안 되든, 항상 이제 시작하고 있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중요하다.

State of Tokens

Fred Wilson의 블로그에 소개된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William Mougayar의 ‘State of Tokens‘라는 자료를 봤다. 36장짜리 슬라이드로 길진 않아서 20분 만에 봤지만, 이후 한 시간 정도 생각을 했다. 요새 너무 혼란스러운 크립토, 블록체인, 토큰 분야에 몇 안 되는 본질주의자라고 항상 생각했는데, 이 슬라이드에는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내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안 읽어 보신 분들한테는 추천한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21장이다. 토큰이 정말로 유용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개의 질문을 해보라고 한다:
1/ 이 토큰이 없으면 비즈니스가 어떻게 될까?(=토큰이 없어도 상관없는 비즈니스가 아닌가?)
2/ 블록체인이 왜 필요한가?
3/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게, 블록체인이 어떻게 가능케 하는가?

안타깝지만, 내가 아는 ICO와 토큰 중 이 3가지 질문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게 하나도 없다. 2가지 질문을 통과하는 토큰은 한 5% 정도 되는 거 같다.

나만의 문 닫기

좀 오래된 책이지만, 최근에 공병호 박사의 ‘주말 경쟁력을 높여라’라는 책을 읽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다. 짧은 주말이 평생 축적되면 상당히 긴 시간이 되고, 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잘 활용해야지 성공적이고 생산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그런 누구나 다 알지만, 솔직히 대부분 사람이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내용이다. 다시 한번 시간의 소중함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세월을 부채로 만들지 말고, 자산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쇼생크 탈출’과 ‘미저리’로 유명한 작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의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인용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만의 장소에서 가장 잘 쓴다. 그런 곳을 마련하기 전에는 많이 쓰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집필실에 화려한 실내 장식 따위는 필요 없다. 집필 도구들을 모아두기 위해 고풍스러운 책상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내가 첫 번째와 두 번째로 출간한 소설 ‘캐리’와 ‘세일럼스 롯’은 대형 트레일러의 세탁실에서 무릎 위에 어린이용 책상을 올려놓고 내 아내의 휴대용 올리베이 타자기를 두드려 써낸 것들이다. 존 치버는 파크 애비뉴에 있던 자기 아파트 지하실의 보일러 근처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장소는 좀 허름해도 좋은데, 거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딱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의 문으로, 여러분은 이 문을 닫을 용의가 있어야 한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여러분의 결심이 진심이라는 것을 온 세상과 자신에게 공언하는 일이다. 여러분은 글을 쓰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실천하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문, 그리고 이 문을 자신의 의지로 닫는다는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일 할 때나, 아니면 멀리 볼 필요도 없고 그냥 인생을 살다 보면, 주위의 너무 많은 잡음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가는 인생 때문에 우리는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본질을 계속 놓치다 보면, 자신의 주관과 페이스대로 인생을 살기보단,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잣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우리만의 문을 찾아야 한다. 그 문을 내 의지로 닫아야 한다. 문 밖에는 여러 가지 유혹이 존재하고, 내가 그 문을 닫으면 여러 기회를 잃고, 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차단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 하고 싶은 게 있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본질이라면, 닫아야 한다. 닫은 후에는 나만의 프로세스에 따라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면 된다.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기업은 호구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는 오히려 대기업 마인드에 조금 더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다. 관련해서 전에 여러 번 포스팅을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카피하거나, 스타트업이 먼저 시작한 시장에 뛰어들어서, 막대한 자본과 인력으로 불쌍한 스타트업을 죽인다는 그런 논리를 잘 안 믿는다는 의미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건 민첩하고, 영리하고, 실력 있는 진정한 싸움꾼이지, 단순히 덩치가 크고 근력이 강한 골리앗이 아니듯,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싸움에서 이기는 건 항상 대기업은 아니다. 오히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스타트업인 경우가 많다.

실은 이보다 조금 더 나아가서 나는 오히려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호구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한다. 최근에 내가 본 것 중, “그게 되겠어? 내가 그 분야 좀 아는데, 절대로 안 돼”라는 마인드로 무장한 대기업이, 듣보잡인 스타트업이 전혀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너무 잘하는 걸 목격한 후, 본인들이 뒤늦게 같은 분야로 직접 뛰어들어간 사례들이 있다. 물론, 새로운 분야로 대기업이 진출하기 전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내부 설득, 시장 조사, 외부 컨설팅, 회장단 보고 등등의 프로세스를 타면, 아무리 빨리 시작해도 한 6개월에서 1년은 걸리는 거 같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과하면, 예산이나 인력 면에서 아주 든든한 사내 지원을 받는다. 특히, 이런 신사업을 오너가 직접 챙기면 초기 스타트업이 절대로 확보할 수 없는 엄청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도 큰 회사가 본인들의 주력 시장으로 들어온다고 하면 바짝 긴장하고, 어쩌면 우리는 망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하지만, 그동안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시장이 요구하는 제품을 제대로 만들어서 고객과의 확실한 관계를 만들었다면, 웬만하면 이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대규모 자본으로 공격을 해도 워낙 새로운 시장이라서 큰 기업이 이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이 시장에 맞는 제품을 유연하게 만드는 건 민첩한 스타트업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느라 노력하면서 대기업은 엄청난 돈을 쓰면서 마케팅을 한다. 작은 회사는 잘해봐야 페이스북 마케팅을 하지만, 대기업은 TV 마케팅까지 하면서 전 국민한테 이런 시장이 존재한다고 알려준다. 이런 마케팅의 결과로 시장 자체가 커진다. 그리고 이 분야가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게 되면, 일반인들이 관련 제품들을 검색하기 시작하고,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고 인기가 많은 제품이 검색에 걸리게 된다. 대기업 제품이 아닌, 바로 스타트업의 제품이다. 결국, 작은 회사가 시작해서 더디게 성장하던 시장이, 대기업 덕분에 엄청 커지고, 이들이 대신 마케팅을 해줬기 때문에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든 스타트업이 이기게 된다는 아름다운 결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호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항상 이렇게 행복하게 끝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크고 작은 사례가 최근에 한국이나 미국에서 많이 보이는 거 같다. 결국은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누가 가장 잘 만드냐의 싸움이 되는 거 같다. 그게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고객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편하고 잘 만든 제품이면 되는데, 좋은 제품은 반드시 돈과 머릿수의 함수는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기업이 돈으로 도배를 해서 공격하면? 그래서 우리 같은 VC가 있는 거다. 실은 대부분의 VC는 “삼성이 이걸 하면?” , “네이버가 똑같은 서비스를 출시하면?” , “구글도 비슷한 걸 하는데?” 등의 질문을 항상 하지만, 창업가가 이에 대한 좋은 논리가 있고, 그 논리가 현재 만들고 있는 제품에 잘 녹아있다면, 과감하게 투자를 한다. 왜냐하면, 이들도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잘 되는 걸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VC를 설득해서 돈을 받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그 누구보다 시장을 잘 이해해야 하고, 그 누구보다 내가 하는 일을 잘 해야 한다.

이 싸움에서 실패하면 대기업에 밀리는 건데, 너무 많은 사람이 본인 실력 탓은 안 하고 그냥 깡패 같은 대기업 탓만 하는데,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