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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 첫 인상

사진 2017. 9. 13. 오후 6 25 43구글캠퍼스 임정민 센터장의 역작 ‘창업가의 일’을 얼마 전에 읽었다. 워낙 내가 잘 아는 분이고(나랑 스탠퍼드에서 같이 공부했다), 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결과물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훌륭했다. 나도 책을 써 본 경험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스타트업같이 복잡한 분야의 이야기를 누구한테나 재미있고 읽기 쉬운 글로 쓴다는 건 고난도의 작업인데, 제프리의 그동안 경험과 통찰력이 녹아있는 ‘창업가의 일’은 한국 스타트업계에서 오랫동안 애독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 물론, 내가 쓴 스타트업 바이블 1권과 2권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인터넷에는 자세한 서평이 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여기서 다 나열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책의 머리말을 시작하는 “1999년 스탠퍼드 대학에 등교한 첫날은 내 인생이 바뀐 날이다.”라는 첫 문장은 내가 1999년 스탠퍼드 유학 첫날의 느낌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내용이라서 격하게 공감했다. 인생을 잘 사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학교에서 좋은 학점 받아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안정적인 월급쟁이 생활을 하는 거라고 믿고 있었던 내 인생 철학을 스탠퍼드 대학원과 실리콘밸리는 완전히 바꿔버렸다. 나는 학교를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많은 스탠퍼드 학생들은 캠퍼스는 공동창업자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인력시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졸업 후에 어떻게 하면 Cisco에 – 당시 Cisco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tech 회사 중 하나였다 – 취직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많은 스탠퍼드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Cisco 같은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스탠퍼드 대학의 첫인상과 경험은 지금 내가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스타트업 분야로 입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Vinod Khosla라는 전설적인 VC의 강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과거에 자세히 블로깅 한 적이 있다. 실은, 스탠퍼드 대학과 비노드 코슬라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대기업에서 남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첫 경험, 그리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첫인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첫 경험이나 첫인상을 접할 기회는 살다 보면 누구한테나 한두 번쯤은 찾아온다. 이 기회를 그냥 놓치냐, 또는 잡느냐는 전적으로 본인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가장 힘든 오늘

요새 나는 운동 횟수를 조금 줄인 대신,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 강도를 높이는 데 음악이 도움이 많이 돼서, 계속 유투브 뮤직을 들으면서 웨이트를 하는데, 주로 복싱 관련 음악을 많이 듣는다. 특히 영화 ‘록키’ 음악을 즐겨 듣는데, 피로도도 감소하고, 항상 기분이 좋아진다. 요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록키 트레이닝 뮤직이다.

미국에서 한 일 년 정도 복싱을 했다.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는, 그때 스트레스가 심해서, 뭔가 때려야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을거 같아서 시작했다. 어느 날 내가 흘린 땀에 미끄러질 정도로 샌드백을 미친 듯이 치는데, 땀과 함께 눈물이 막 쏟아졌다. 뭐, 그냥 이유도 없이 갑자기 펑펑 흘렀다. 실은 참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있었고, 아마도 속에 있는 불안감, 우울함, 창피함, 나약함, 뭐 이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눈물로 방출되었던 거 같다. 따뜻한 눈물을 흘리면서 샌드백을 치다 보니, 기분이 다시 진정되고, 내 주변을 다시 사심 없이 볼 수 있었다. 뭔가 정화가 되고, 새로운 희망이 생긴 거 같았고, 이는 내가 다시 몇 주 동안 일에 열심히 집중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런 패턴이 가끔 반복됐다.

스트레스.
스타트업을 한다면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나도 항상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거 같다. 일이 안 풀릴 때는 안 풀리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일이 잘 풀려도 나름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것도 강도가 상당히 높다. 워낙 힘든 분야라서, 일이 좀 잘 풀리면, 솔직히 막 불안해진다. “왜 갑자기 일이 잘 풀리지?” , “곧 상황이 다시 나빠질 텐데 그땐 어떻게 하지?” , “이걸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뭘 더 해야 할까?” 뭐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도 나는 항상 스스로 위안 삼는 게 있다. 투자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창업가가 받는 스트레스와는 그 차원이 다르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 대표들이 더 힘들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서 자신을 달랜다. 그래도 불안하면, 일을 멈추고 크게 심호흡을 여러 번 한다. 좀 걷기도 한다. 와이프랑 이야기도 한다. 뭐, 솔직히 인생 자체가 스트레스의 연속이긴 하지만, 인생의 스트레스는 그래도 up and down이 있다. 하지만, 창업의 스트레스는 조금 다르다. 이 스트레스는 up으로만 가지, 좀처럼 down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참, 끝이 안 보인다는 건 더욱더 무섭고 stressful 하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오래 하려면, 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완전히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나는 일찌감치 깨달았고, 그냥 잘 관리하고 최대한 스트레스와 타협을 하면서 사는 게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주로 운동, 가족과의 대화, 개 산책 등으로 이걸 잘 해소했는데, 작년부터는 마음 챙김(mindfulness)이라는 가벼운 명상도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지만, 꽤 유용하고, 이걸 계기로 마음 챙김 관련 앱과 비즈니스도 좀 보기 시작했는데, 미국에서는 이 분야가 전망이 꽤 밝은 거 같다.

스타트업을 하면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 실은,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긴 한데, 그래도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하루였다면,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길.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힘들고 미친 짓을 오래 할 수가 없다.

버핏의 기업지배구조

우리 투자사 국민도서관에서 빌린 ‘워렌버핏의 주주 서한’을 요새 읽고 있다. 1979년부터 2011년까지, 33년 동안 버핏이 직접 손수 쓴 주주 서한의 핵심을 모아 놓은 책으로, 그만의 독특한 가치투자 철학과 투자비법에 대해서 배울 기회라고 생각한다. 워낙 내가 좋아하는 분이라서, 버핏 관련 책은 많이 읽었는데, 이 책이 제일 실용적이고 어려운 내용도 많아서, 집중하면서 독서하고 있다.

버핏은 도덕성을 상당히 강조한다. 책에서 기업지배구조 부분에 대해 상당히 공감하는 내용이 있어서, 그냥 이 내용의 일부를 여기서 카피해본다. 2010년 7월 26일, 워렌 버핏이 자사의 경영자들(버핏은 이들을 ‘올스타’라고 한다)에게 보낸 메모에 있는 내용이다:

최우선 과제는 우리 모두 버크셔의 명성을 계속해서 열심히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완벽해지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나는 25년 넘게 이 메모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돈을 잃을 수는 있습니다. 게다가 많은 돈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명성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단 한 치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동료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해.” 이 말이 사업활동에 대한 변명이라면, 이는 거의 틀림없이 잘못된 근거입니다. 만일 도덕적 판단을 평가할 때 나온 말이라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언제든 누군가 그런 말로 변명한다면 사실은 타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그런 변명을 한다면 기자나 판사에게도 그렇게 변명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당성이나 적법성 때문에 주저하는 일이 있으면 내게 꼭 전화하십시오. 그러나 그렇게 주저할 정도라면 십중팔구 경계선에 매우 근접했다는 뜻이므로 포기해야 합니다. 경계선 근처에 가지 않고서도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업 활동이 경계선에 접근했는지 의심스럽다면 그냥 경계선을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십시오.

그 당연한 결과로 나쁜 소식이 발생했다면 즉시 내게 알려주십시오. 나는 나쁜 소식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곪아 터진 다음에는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Salomon은 즉각적으로 대처했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나쁜 소식을 외면한 탓에 8,000명이나 되는 직원과 함께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알면 화낼 일을, 오늘도 누군가 버크셔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 종업원 수가 25만 명을 넘어가므로 이들의 부당 행위가 발생하지 않는 날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당 행위의 기미가 조금만 나타나도 즉시 비난한다면, 이런 행위를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부당 행위에 대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여러분의 태도가 우리 기업문화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나는 이 부분을 주말 내내 여러 번 읽고 생각해봤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해.”라는 말을 그동안 나도 얼마큼 했는지, 그리고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문제가 곪아 터질 때까지 가만히 보고 있던 적은 없었는지 생각하면서 반성을 했다.

최근 tech 분야만 봐도,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버핏의 서한은 실은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잘 지키지 못한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너무 다양하고, 비즈니스를 하는 방법도 너무 다양하지만, 명확한 right or wrong은 존재하고, 이 기준은 세월이 바뀌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Do the right thing.

카나리아섬의 코리안 커넥션

스트롱벤처스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기서 포스팅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랑 존이 어린 시절을 보낸 섬에 대해서도 여기서 포스팅한 적이 있다. 우리가 살았던 Gran Canaria 섬은 인구 백만이 안 되는, 제주도보다 인구가 조금 더 많은 섬이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이 섬의 수도인 라스팔마스에 거주하는 한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라스팔마스 한인의 기원은 1960년대부터 이 섬을 기지로 원양어업을 하던 선원과 관련 종사자들로부터 시작했다. 원양어업은 건설업과 함께 수십 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외화벌이 주력산업이었는데, 1970년대에는 무려 7,000여 명의 한인이 이 섬에 살았다(이는 라스팔마스 인구 350,000명의 2%). 많은 한인이 가족과 함께 이민 와서 스페인에 정착했고, 2세들을 스페인의 현지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한국의 원양어업 산업이 하락하면서, 한인 인구는 1,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와중에 많은 한인은 원양어업에서 손을 떼고 다른 산업으로 진출했고, 이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꽤 부유하고 성공적인(=relative affluence) 삶을 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직에는 창업과 스타트업도 포함된다. 이 작은 섬 출신의 한인 창업가, 벤처투자자, 스타트업 종사자가 몇 명 있는데, 오늘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국 드라마와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스트리밍 하는 서비스로 시작한 뉴욕의 DramaFever를 창업한 박석 대표와 그의 친동생 박현 이사 모두 우리와 같이 이 섬에서 자랐다. 우리한테는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스트롱도 드라마피버 초기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심하게 반대해서 투자하지 않았다(John은 매우 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도대체 누가 한국 드라마를 보겠냐?”라면서 이 투자를 반대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멍청한 발언이었다. 드라마피버는 2014년도에 소프트뱅크에 좋은 가격에 인수됐고, 나는 후회했다.

우리 첫 번째 펀드에서 투자한 Recomio는 쿠팡에 인수됐는데, 2명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은 서철이라는 친구다. 서철 또한 라스팔마스에서 자랐고, 여기서 존이랑 나랑 같은 초등/중학교에 다녔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철이는 나랑 LA에서 고생하면서 뮤직쉐이크를 함께 운영했던 동료이기도 했다.

실은 레코미오를 쿠팡에 소개하고, 연결해 준 사람이 있는데, 바로 쿠팡맨을 만든 쿠팡의 물류 담당(전) 정태혁(Kevin Chung) 이사다. 태혁이도 우리랑 이 섬에서 같이 자랐고, 모두 다 같은 초등/중학교 동창이다. 어릴 적, 섬에서 코 흘리면서 같이 축구하고, 수영팬티만 입고 물장난치던 친구들이 커서 이런 좋은 딜을 같이 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우리 두 번째 펀드에서 투자한 SnackFever라는 회사에 대해서도 내가 가끔 포스팅을 한다. 실은 이 회사의 창업자 장조경(Jo Jang) 대표도 우리랑 같이 이 섬에서 자랐다. 조경이는 나보다는 동생인데, 나랑, 존이랑, 위에서 말한 철이랑 태혁이랑 모두 다 같은 초등/중학교/고등학교에 다녔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산동네에 있어서 스쿨버스로 약 45분 정도 가야 했는데, 내가 가끔 어린 조경이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직은 작고, 우리 이름과는 아직은 어울리지 않게 ‘약한’ Strong Ventures를 만든 존과 내가 있다. 페이팔 출신들이 모두 다 엄청난 회사를 만들고 성공해서 이들을 좋은 의미로 ‘페이팔 마피아’라고 하는데, 우리도 우리끼리 농담처럼 ‘카나리아 또는 라스팔마스 마피아’라는 말을 가끔 한다. 실은, 아직 그 누구도 대단한 성공을 이룩하진 못했지만, 이 작은 섬 출신의 한인들이 이렇게 한국과 미국의 스타트업 분야로 진출해서, 성공을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참 재미있다.

참고로, tech 분야가 아니라서 여기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카나리아섬 출신의 가장 성공한 한인 창업가/기업인은 매출 1조 원의 기업 인터불고를 창업한, ‘스페인의 선박왕’ 권영호 회장님이다.

듣기만 해도 힘이 나는 단어, ‘도전’

rockybalboa도전. 벤처 쪽에서 일하면, 이 말 정말 많이 듣는다. 그리고 또 많이 사용들 한다. 너무 많이 쓰이는 단어지만, 도전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매번 큰 희망과 에너지를 준다. 며칠 전에 ‘SBS 스페셜’ 478회 ‘성신제의 달콤한 인생‘ 편을 보고 나는 도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짜릿하고 찌릿한 느낌을 다시 한번 깊게 경험했다.

성신제. 내 나이 또래 분 중 이 이름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성신제 피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토종 피자 프랜차이즈였고, 솔직히 (개인적으로) 맛은 별로였지만, 독특한 재료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한 외식업체였다. 솔직히 나는 성신제 대표는 성신제 피자만 창업한 줄 알았는데, 이보다 훨씬 더 깊은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분이다. ‘피자헛’을 한국으로 가져온, 그래서 피자라는 음식이 매우 생소했던 1984년에 한국에 피자를 소개한 분이고, 이후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천당과 지옥을 9번이나 왔다 갔다 한, 한국 외식업계에 한 획을 그은 사업가다. 그동안 엄청난 돈도 벌었지만, 이후 계속되는 실패로 모두 다 날렸고, 지금은 70의 나이에 케이크 사업을 다시 시작한 1인 창업가이다. 궁금해서 성신제를 검색해보니,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나름 엘리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그리고 왜 그 나이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냐?”라고 묻는다. 이 분은 넘어지면, 계속 자빠져있거나, 아니면 다시 일어나거나, 두 가지 옵션밖에 없는데, 자빠져 있으면 죽는 거니까, 다시 일어나는 방법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하면서 오늘도 묵묵히 세계 최고의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서 베이킹을 하고 있다.

왜 난 이 실패한 아저씨 이야기를 잠도 안 자고 봤을까?(난 보통 11시 전에 잔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정말 불행한 이야기인데, 왜 가슴이 벅찼을까? 잠자리에서도 왜 와이프한테 계속 성신제 대표 같은 분이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잠이 들었을까?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어떻게 보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이 도전정신 때문인 거 같다. 좀 식상하고, 촌스럽고, 올드하지만, 난 이런 스토리가 좋다. 아직도 가슴이 벅차다. 요새 수 십억 원의 빚을 갚기 위해서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는 연예인 이상민 씨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돼서 더 짠했던 거 같다.

<이미지 출처 = Total Roc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