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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주문

call-center-1015274_1280거의 4개월 동안 집에서 운동하고, 아파트 계단만 오르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헬스클럽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듣지만, 눈으로는 여기저기 배치된 TV 스크린으로 뉴스도 보고 스포츠도 보면서 주로 운동을 하는데, 오전 시간에 케이블 TV에 자주 보이는 광고 중 하나가 배칠수 씨가 광고하는 배칠수 플라워다. 촌스러운 광고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냥 끝까지 보내되고, 다양한 꽃을 1588-39000번을 통해서 전화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다(확인해보면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전에 내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내 아이폰으로 다양한 업무와 일들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통화도 꽤 많이 한다. 그런데 요새 어린 친구들은 전화를 통화기기로 사용하기 보단, 그냥 작은 컴퓨터로 사용하는 거 같다. 친한 친구들이랑 가족과 전화 통화도 하지만, 거의 다 카톡이나 문자나 영상으로 소통하고, 실제 전화 통화 하는 건 우리 세대보단 상당히 많이 줄어든 거 같다. 과거 글에서 설명했듯이, 밀레니얼들은 잘 모르는 사람과 전화 통화하는 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더 심하게 말하면 통화 포비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일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통화를 꽤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 거에 대해서는 큰 공포감이나 불안감은 없지만, 이런 나도 가급적이면 전화 통화는 용건만 간단하게 하고, 더 자세한 건 문자나 이메일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그냥 전화기 건너편 사람과 너무 오래 통화 하는 건 조금 부담스럽고, 왠지 에너지가 많이 고갈된다는 느낌이 항상 들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현상이 정말로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냥 누군가와 통화 하는 거 자체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스마트폰의 작은 자판으로 거의 말하는 속도만큼 빨리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세대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실시간 통화를 하지 않는걸 선호하는 것 같다. 실은 어떤 경우에는 뭔가 복잡한 걸 설명하려면 그냥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빨리 해결되지만, 밀레니얼은 이걸 잘 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배칠수 1588-39000 꽃 광고를 볼 때마다 저 회사는 젊은 세대를 위한 꽃 배달 서비스보단, 우리 부모님과 같이 인터넷이나 앱으로 뭔가를 주문하는 게 힘든 분들이 주 고객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전화를 최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생각하는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뭔가를 팔려고 하는 회사가 전화 주문을 광고에서 강조한다는건 조금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서비스가 잘 안될 것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바일/인터넷 세대가 아닌 많은 시니어 분들은 오히려 이렇게 전화를 걸어서 상담원에게 제품, 주소, 결제 정보를 말로 알려주는걸 더 편하게 생각하고, 한국과 같이 노령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어쩌면 이 전략이 상당히 잘 맞아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화 주문을 통해서 큰 비즈니스를 만들려면 비즈니스가 커질수록 전화를 받고 주문을 처리해야 할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냥 작게 사업을 유지하면 상관없지만, 이런 전화주문 꽃 배달 서비스로 전국에서 1등이 되려면 굉장히 잘 훈련된 고객 응대 인력과 효율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모든 걸 내재화하면 비용이 매출과 비슷한 속도로 늘어나고, 전문 CS 업체에 외주하면 우리 인력만큼 잘하지 못 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아마도 전화 주문이 비즈니스의 메인이고, 이걸 유지하기 위해서 대규모 고객 응대 팀과 시스템을 운영하는 분들이 한국에도 꽤 있을 텐데, 이런걸 다들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도전받는 자, 도전하는 자

얼마 전에 내가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동네 세탁소 사장님을 만났다. 양손 한가득 고객 세탁물을 수거해서 내려가고 있었는데 봉지나 가방도 없이 그냥 맨손, 가슴, 그리고 턱으로 빨랫감을 받치고 있었고, 빨래가 시야를 가려 1층 눌러달라고 나한테 부탁하더라.
“사장님 이러다가 빨래 길거리에 흘리면 큰일 나겠어요. 지금도 양말 떨어질려고해요”
“에이 안 흘려요. 이걸 20년 넘게 했는데요”
“…..”

세탁특공대랑 런드리고의 미래가 너무 밝다.

우리 아파트 정문 앞 상가 건물에 있는 세탁소를 이 자리에서 20년 넘게 하고 계신 사장님과 사모님은 정말 열심히 사신다. 아파트 모든 동호수를 매일 돌면서 세탁물을 배달하고, 또 수거하는 작업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젠 어디에 누가 살고, 그 집에는 어떤 옷을 입는지까지 다 알고 있다. 그것도 이 모든 게 어떤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어 있는 게 아니라, 두 분 머리에 그대로 입력되어 있다. 그동안 비즈니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거의 독점하다시피 이 동네의 모든 세탁을 담당했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 그리고 위의 엘리베이터 에피소드를 봤을 때, 이 동네 세탁소의 비즈니스도 앞으로 서서히 줄어들 것이고, 언젠가는 대체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꼭 세탁이 아니더라도, 이런 현상의 반복은 우리 주위에서 늘 일어나고, 비즈니스 역사를 보면, 항상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올 초에 고인이 된 클레이튼 크레스텐슨 교수의 이노베이터스 딜레마와 파괴적 혁신 책 내용도 요약해보면, 시장의 1등 강자들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항상 하던대로 비즈니스를 하다가, 아주 작고 하찮은 경쟁사의 출현을 못 보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다가 결국엔 이들에게 시장을 빼앗기는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이 충분히 크다면, 어느 곳에서나 그 시장의 일인자가 있다. 이 일인자는 아주 오랫동안 이 시장을 지배한, 역사가 100년이 넘는 대기업일 수도 있고, 이런 대기업을 1등에서 끌어내린 혁신적인 스타트업일 수도 있다. 어쨌든, 큰 시장에는 항상 도전받는 자가(=현재 1등) 있고, 도전하는 자가(=1등 외)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순위가 계속 바뀐다는건데, 어떤 시장은 이 주기가 굉장히 길고, 어떤 시장은 짧다. 세탁소는 주기가 꽤 긴 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아파트 정문 앞의 세탁소는 거의 20년 동안 자기만의 비즈니스를 했다. 그동안 단골은 늘어났고, 이 분야의 혁신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하던 대로만 비즈니스를 해도 – 어쩔때는 과거보다 더 질이 떨어지는 서비스를 제공해도 – 고객은 계속 여기에 세탁물을 맡겼다. 내가 알기로는 국내 세탁시장의 규모는 3조 원~5조 원이다. 이런 큰 시장에서, 혁신과 발전이 없다는 걸 똑똑한 창업가들이 놓칠 리 없다. 1990년대 말에 세탁소의 프랜차이즈화를 통해서 세탁품질, 비용, 그리고 유통의 혁신을 추구하자는 비전하에 ‘크린토피아’라는 회사가 창업됐고, 현재 크린토피아는 대한민국 세탁 시장의 1등이 됐다. 당시에는 동네 세탁소가 도전받는 1등이었고, 크린토피아가 도전하는 자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순간에 크린토피아가 도전받는 1등이 됐다.

그런데 이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세탁특공대, 워시온, 리화이트, 런드리고 등의 모바일 세탁소 앱들이 몇 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동네세탁소와 크린토피아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이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새로 등장한 모바일 세탁앱 중 하나가 시장의 1등을 먹을 것이고, 도전하는 자 – 도전받는 자의 구도는 또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반볼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현상을 보면 볼수록, 수많은 업체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계속 시장 1등 자리를 지킨다는건 정말 힘든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을 보면, 비슷한 플레이를 과거에 시도했던, 그리고 지금도 이 거대한 회사들을 이기기 위해서 도전하고 있는 수많은 신생 스타트업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계속 시장의 1등을 지킨다는 건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언제나 이 구도는 바뀔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영원한 도전자도 없고, 영원히 도전받는 자도 이 시장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즈니스는 재미있고, 우리 같이 ‘도전하는 자’들에 투자하는 이 업 또한 매우 재미있다.

Millibatt

2016년도 말에 미국에 있는 내 파트너 존이 LA의 한 한인 여성 창업가를 만났는데, 어렵고 복잡하지만 좋은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우리도 투자검토 하자는 연락이 왔다. UCLA 박사 재닛 허 대표와 같은 실험실 출신의 박사 리랜드 스미스 공동창업가가 시작한 비즈니스는 Millibatt이라는, 말 그대로 소형 배터리를 만드는 하이테크 사업이었다. 실은 내가 깊은 공학 백그라운드가 없어서, 공학 박사들이 하는 사업을 100% 이해하기는 힘들었고, 우리가 주로 투자하는 쪽은 이런 좋은 기술을 기반으로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consumer internet 분야이기 때문에, 검토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거기다가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법을 통해서 배터리를 더 작게, 하지만 수명은 더 길고 강력하게 만드는 미션으로 창업된 회사라서 업계 전문가들한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 또는 “그거 절대로 못 한다”라는 피드백이 주를 이루었다.

밀리뱃은 저렴한 소형 배터리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아직 진행 중이지만, 기존 배터리 제조업체보다 거의 10배 이상 수명이 높은 배터리를 10분의 1 단가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모든 전자기기의 크기는 더 작아질 것이고, 배터리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제품이 계속 출시될 것이다. 예를 들면, IoT 제품이나 웨어러블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렇게 새로운 제품이 계속 출시되고, 그 크기가 작아지면, 더 작고 강력한 배터리가 필요할 텐데, 이 시장이 밀리뱃이 공략하고 있는 시장이다.

기술도 괜찮다고 판단했고(실은, 소위 말하는 업계 전문가들이 이거 하기 힘들다고 했기 때문에 더 끌렸다), 시장도 앞으로 엄청나게 성장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무엇보다 이 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LA 기반의 한인 창업가가 시장의 문제를 파악하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좋은 기술 백그라운드와 지식을 기반으로 거대한 시장을 공략하는, 우리가 좋아하는 플레이를 하는 회사였다. 2017년 초에 우리가 처음 투자했고, 이후에 밀리뱃은 Y Combinator 2017년 배치를 거쳐, 3년 반 이상의 연구와 개발, 그리고 수많은 iteration을 통해서 소형배터리를 만들고 있고, 아직 상용화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지만, 이번에 꽤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었다.

밀리뱃 배터리와 파나소닉 배터리로 wireless motion sensor에 전원을 공급하는 데모 동영상인데, 여러 가지 면에서 밀리뱃 배터리가 우수하다는걸 볼 수 있다.

Enjoy!

수평적 vs. 수직적 마켓플레이스

1594372376716먹거리 관련 이커머스 하는 창업가들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이거 쿠팡이나 마켓컬리가 하면 우린 그냥 망하는 거 아닌가요?”이다. 당연히 쿠팡이나 마켓컬리가 할 수 있고, 돈도 더 많고 사람도 더 많기 때문에 이 두 회사가 맘먹고 뭔가 시작하면 상당히 무서운 상대가 될 수 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와 이 전문가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수직적 마켓플레이스(vertical marketplace)를 시작하는 창업가들이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숨고와 같은 앱에도 이 동일한 카테고리가 있는데, 후발주자로서 경쟁할 수 있겠어요?”이고, 특정 분야에서 중고거래 서비스를 시작하는 창업가들이 많이 받는 질문은, “당근마켓같이 폭풍성장하고 있는 중고거래 서비스가 있는데, 이게 되겠어요? 당근마켓 들어가 보면 비슷한 게 이미 있는데요.”이다.

실은, 다 너무 당연한 질문이고, 이제 갓 시작한 스타트업이 이미 product market fit을 찾았고, 이 fit을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투자도 많이 받았고, 좋은 인재도 많이 채용한 쿠팡, 숨고, 당근마켓과 같은 회사를 이기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쉽지 않은 거와 못 하는 거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나는 아무리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장의 강자가 있어도, 이들보다 더 잘 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숨고당근마켓은 전형적인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다. 숨고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공급자와 이들의 서비스를 필요로하는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웬만한 분야의 서비스를 모두 다 제공한다. 지금 숨고에 들어가 보면 각종 레슨, 홈/리빙, 이벤트, 비즈니스, 디자인/개발, 건강/미용, 알바 등과 같은 카테고리가 있는데, 결국 모든 분야에서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다. 당근마켓도 비슷하다. 지역기반이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사고팔 수 있다. 즉, 세상의 모든 제품을 공급자와 수요자가 중고거래할 수 있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다. 두 플랫폼 모두 수평적으로 모든 걸 다루기 때문에, 커버하는 분야가 광범위하고, 이렇게 광범위 하므로, 겹치는 분야에서 사업을 하면 이 글 초반에 언급했던 그런 질문들을 많이 하는 것이다.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는 모든 분야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기 때문에, 볼륨의 싸움에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약점 또한 많은데, 대표적인 약점이 전문성의 부재이다. 즉, 너무 많은 분야에 있는, 너무 많은 사용자를 수용하다 보니, 각 분야의 특성을 고려한 마켓플레이스를 만들기보단, 한 번에 모든 산업/시장/공급자/수요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보편적인 마켓플레이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즉, 수평적 마켓플레이스에 존재하는 모든 수직마켓에 하나의 통일된 공식을 적용하는 게 이들의 비즈니스이다. (내가 직접 해보진 않았지만)예를들면, 숨고에서 반려견 산책해 줄 사람을 구하면, 숨고의 일반 프로세스를 따라서, 펫시터들이 견적을 보내고, 내가 견적을 수용하면 둘이 날짜와 시간 등의 세부사항을 채팅으로 조율한 후에 공급자가 수요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숨고의 다른 카테고리를 사용해도 공급과 수요를 매칭하는 프로세스는 동일하다.

그런데, 펫시터만을 매칭해주는 도그메이트라는 수직적 마켓플레이스가 있다. 도그메이트를 사용해보면,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프로세스가 훨씬 더 정교하고 전문적이라는걸 알 수 있다. 개가 몇 살인지, 어떤 종인지, 대형견인지 소형견인지, 사람과 잘 어울리는지, 다른 개들과 잘 어울리는지 등등 기본적으로 나한테 가족 같은 반려견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맡길 때 최대한 사고가 안 나고, 서로의 경험이 유쾌할 수 있도록, 상당히 전문적으로 매칭 프로세스를 설계했다. 또한, 펫시터들이 반려견을 산책시키거나 돌봐주면서 주인에게 정기적으로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반려일지까지 공유하게 하는 아주 세심한 프로세스가 플랫폼에 녹아 있다. 반려견돌봄이라는 특정 버티컬에서 요구되는 이런 중요한 전문성이 도그메이트라는 수직적 마켓플레이스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숨고와 같이 큰 수평적 마켓플레이스가 존재해도, 도그메이트와 같은 전문적인 수직적 마켓플레이스가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당근마켓도 비슷하다. 당근마켓을 보면 중고명품을 사고파는 공급자와 수요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수천만 원짜리 명품시계를 사고파는 프로세스가, 1,000원 짜리 잡화 사고파는 프로세스랑 동일하다. 위의 숨고와 같이 모든 분야에 하나의 통일된 프로세스를 적용하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새 많이 생기고 있는 중고명품 앱들을 보면, 고가의 명품을 안심하고 사고팔 수 있게 최적의 프로세스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준다. 예를 들면, 직접 명품을 수거하거나, 진품 여부를 검증해주거나, 또는 위탁 판매해주거나 하는, 모든 걸 다 거래하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가 절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수직적 마켓만을 위한 플랫폼 경험을 제공한다.

시장 규모가 작은 수직적 마켓도 있겠지만, 여기서 언급한 반려동물 돌봄 또는 중고명품과 같은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다. 그래서 수평적 마켓플레이스와 수직적 마켓플레이스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을 – 그리고 수평적 마켓플레이스가 수평적으로 더 확장할수록 이 균열은 커지고, 균열이 클수록 기회는 커진다 – 잘 활용하면 좁지만 아주 깊은 시장에서 큰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

*완전공시: 숨고, 당근마켓, 도그메이트는 스트롱 투자사입니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1등 마케팅

마케팅에 대한 내 생각을 여러 번 공유하고, 관련 글을 쓴 적이 있다. 요샌 나도 적당하고 적절한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하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인 내 철학은, “가장 완벽한 제품 그 자체가 최고의 마케팅”이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할 수만 있다면, 돈을 따로 쓰지 않아도 저절로 마케팅되고, 고객들이 저절로 우리를 찾아온다는 생각인데, 이 기본적인 프레임은 지금도 아주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런 생각에 대해서는 모두 다 의견이 다르다. 제품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니,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려면 마케팅에 돈을 엄청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고, 이런 전략을 써서 성장한 사업도 우리 주변에는 상당히 많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초반에는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과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마케팅하고, 성장해서 투자를 더 받으면, 요샌 TV나 지하철과 같은 전통 미디어에서까지 광고하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나도 마케팅 전문가는 아니고, 듣는 것도 많고, 보는 것도 많아서 그런지, 이 마케팅이라는 거에 대해서 항상 자주, 그리고 많이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 임홍택 씨의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에서 스타벅스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을 읽었다. 스타벅스는 국내의 매출 1위 커피 프랜차이즈인데, 2017년 스타벅스의 한국 매출이 1.3조 원이었다. 재미있는 건, 국내 2위~6위의 5개 커피 회사 투썸플레이스, 이디야커피, 커피빈, 엔제리너스, 할리스커피의 매출 총합이 8,200억 원이니, 1위 스타벅스 한 곳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점이다. 뭐, 워낙 큰 글로벌 기업이고, 이 분야에서는 자리매김을 확실히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아주 쇼킹한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스타벅스가 이렇게 국내 1위의 커피전문점으로 성장했지만, 스타벅스의 광고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이걸 보면서 생각해보니, 스타벅스 광고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스타벅스는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은 마케팅 예산의 대부분을 제품 광고와 프로모션에 쓰지만, 스타벅스는 광고와 프로모션이 아닌 브랜딩에 대한 투자와 내부 직원을 첫 번째 고객으로 두고 아끼는 기업문화에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실은 브랜딩이라는 거 자체는 상당히 모호하고,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 또한 마케팅이라는 큰 범주에 포함되는 일종의 마케팅 기법이다. 그래도 스타벅스 이야기를 읽으면서, 1등 회사들이 그 업계에서 아주 확고한 1등 자리에 오르려면 어떤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마케팅을 단순히 자본의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은, 핵심 무기인 자본이 떨어지면 바로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연예인, 할인, 광고 등…그 이상의 가치를 시장에 전달할 수 있어야지만 부동의 업계 1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