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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래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콘텐츠 플랫폼을 만드는 우리 투자사 더핀치에서 최근에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다.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인데, 누구나 다 쉽게 작가가 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니, 평소에 글을 쓰고 싶었던 여성분이라면 한 번 시도해보면 좋을 거 같다.

타래의 글로벌 벤치마크가 됐던 제품은 전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블로깅 플랫폼 Medium인데, 모바일에서 누구나 다 쉽게, 본인이 원하는 주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다양한 창작 기능과 공유 기능을 제공한다. 또한, 글을 발행한 후에는 크리에이터가 본인의 글에 대한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대시보드가 제공되고, 이 창작물과 창작자를 누가 응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내 팬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일부는 무료로 읽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더핀치는 돈을 내야지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유료 플랫폼이었고, 유료였기 때문에 작가로 활동하는 분들의 수가 제한적이었는데, 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배운 건, 작가라는 타이틀이 없는 일반인 중에도 아주 훌륭한 글을 쓰는 창작자들이 한국에는 너무 많은데, 이들이 조금은 더 가볍게 모바일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은 제한적이라는 것이었다. 실은 글을 쓴다는 개념 자체가 가벼운 게 아니다. 나만 해도,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릴 때는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그 앞에서 뭔가 새로운 각오로 콘텐츠를 만드는데, 이런 게 부담스럽긴 하다. 요샌 그냥 가볍게 손가락으로 폰을 켜서, 본인의 생각을 그때그때 기록하면서 덜 심각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세대가 등장했고, 이런 캐주얼 창작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들이 시장이 있다.

타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쉽게 모바일로 글을 쓰고, 본인의 창작물을 발행하고 공유하고, 그리고 편안하게 다른 여성분들의 글을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평소 가벼운 창작 활동을 하고 싶었다면 여기에서 시작하면 된다. 많은 분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어쩌면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모든 스타트업이 초기에 개발팀이 필요한가?

나는 개발팀을 항상 강조해왔다. 우리가 주로 투자하는 분야가 소위 말하는 consumer internet 분야이다 보니, 남의 제품을 소싱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직접 제품을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그리고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온디맨드(=O2O) 비즈니스에 상당히 많이 투자한다. 쉽게 말하면, 생활밀착형 서비스들에 스트롱의 돈을 대부분 투자한다. 실은 이런 기업들이 겉으로는 기술이 없고, 그냥 인터넷으로 물건 팔고, 인터넷으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단순한 서비스를 만드는 것 처럼 보이지만, 잘 되는 서비스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들 뒤에, 보이지 않는 곳에 상당한 기술이 구현되어 있다. 특히, 이런 생활밀착형 서비스들은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하고, 많은 정보가 왔다 갔다 하므로, 확장성과 자동화 관련 첨단 기술이 도입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좋은 개발팀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했고, 과거에는 그 어떤 비즈니스를 하든, 개발력이 없는 팀은 절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실은 지금도 기본적인 방향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방법은 조금은 바뀌었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말하는 이커머스나 온디맨드와 같은 컨슈머 인터넷 비즈니스에 해당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돈도 없고 자원도 없는 스타트업이 소위 말하는 product-market fit을 찾기 전에는 가능하면 돈을 쓰지 않고 lean 하게 가야 한다. 이에 대한 중요성은 과거에도 항상 강조됐지만,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투자금으로 기업가치를 올려놓고 그 기업가치를 정당화하지 못하는 유니콘들 때문에, 요새 와서 이 “린”이 더욱더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개발을 모르는 창업자가 물건이 시장에서 판매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개발팀을 꾸리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 돈 낭비다. 그건, 나중에 어느 정도 컨셉이 증명되면 해도 된다. 이럴 경우, 발 빠른 창업가들은 간단하게 구글폼으로 설문조사를 하거나, 간략하게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선주문을 받아본다. 돈도 안 들고, 시간도 별로 안 드는 방법이다. 조금 더 시간을 들인다면 – 그리고 이 방법도 돈은 거의 안 든다 – 와디즈나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활용해서 과연 본인이 생각하는 비즈니스가 시장에서 반응이 있을지 테스팅을 해본다.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마켓플레이스를 만들고자 하면, 어떤 창업가들은 수요와 공급을 수작업으로 연결하는 거로 시작한다. 내가 아는 많은 대표들은 본인들이 직접 발품 팔면서, 전화로 시작했다.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마치 규모가 꽤 있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이건 우선순위와도 겹치는 내용인데, 뭔가를 판매하는 이커머스 회사라면, 세련된 이커머스 플랫폼 보단, 판매하는 제품이 이 회사의 핵심 상품이다. 이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입증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바로 고객이 이 회사의 핵심 상품인 제품을 좋아하고, 돈을 내고 구매하냐이기 때문에, 일단 모든 자원을 좋은 제품을 만들고 소싱하는데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게 어느 정도 증명이 된 후에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어도 늦지 않다. 어떤 분들은 이 반대의 전략으로 움직이는데, 이건 lean 한 방법은 아니고, 시작하기도 힘들다.

또 다른 이유는, 요새는 헤비한 개발력이 없어도, 스스로 공부를 좀 하면 간단한 플랫폼을 직접 만들 수 있는 DIY 제품들이 상당히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커머스 분야에서 이런 툴들이 가장 많이 제공되고 있는데, 카페24, 고도몰, 그리고 미국이라면 Shopify와 같은 이커머스 사이트를 쉽게 만들 수 있는 템플릿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계속 생기고 있고, 네이버 스토어팜이나 카카오톡 스토어를 활용하면 웬만한 규모의 비즈니스까지는 처리가 가능하다. 본인이 다 만들지 않아도 제품 판매, 결제, 그리고 배송까지 처리해주는 제품이 요샌 많이 있고, 과거와는 달리 이런 개별 모듈과 기능 자체가 큰 비즈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창업가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고 있어서, 제품 완성도도 상당히 높다.

우리 스트롱 대표들을 포함, 내가 아는 많은 창업가들이 요샌 이런 방법으로 창업해서 꽤 괜찮은 규모의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실은 개발력이 있어도, 쉽고 저렴한 방법으로 컨셉을 테스트하고, 이게 어느 정도 시장에서 통할 것 같은 확신을 얻으면, 이미 시장에서 제공되고 있는 제품을 lean하게 구현해서 빨리 성장하는 회사들이 오히려 더 잘 하는 것 같다. 물론, 쿠팡과 같은 큰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제품과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좋은 개발력이 필수이다. 고도몰이나 카페 24와 같은 플랫폼으로 시작했다가, 짧은 시간에 규모가 너무 커져 버린 비즈니스들의 플랫폼 성장통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뭔가 빨리 만들어서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각각의 필요에 따라서 세밀하게 커스터마이징을 하거나, 원하는 세련된 기능을 구현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완전히 자체 플랫폼으로 마이그레이션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이런 결정 자체를 하기 위해서는 개발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새 나한테 모든 스타트업이 개발력이 필요하냐고 물어본다면, 소프트웨어가 회사의 업이라면 당연히 필요하지만, 위에서 말 한 이커머스/D2C/온디맨드 비즈니스라면 개발력이 있으면 훨씬 좋지만, 그렇다고 개발력이 없다고 시작하지 못하거나, 또는 우리가 절대로 투자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시점이 오면 개발력은 필수다. 우리가 필요한걸 그때그때 직접 in-house에서 만들 수 있는 건 회사가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는 능력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 있어서 돈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이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개발력은 매우 중요하다.

Strong LA 스타트업

한 2주 전에 LA에 오랜만에 잠깐 다녀왔다. 4년 전에 LA를 떠나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분기에 한 번은 LA에 출장을 가야겠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한국의 생활이 바빠서 지난 4년 동안 거의 못 갔는데, 이번에 다녀오면서 앞으로는 자주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리는 한국과 미국, 이렇게 두 지역의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데, 미국에 있는 스타트업도 한인 또는 한인교포들이 창업한 회사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한 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많은 미국의 투자사는 한국에서 먼저 생긴 컨셉을 미국으로 가져와 로컬라이즈해서, LA를 발판으로 삼아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모델을 도입한 회사들이다. 여기 그 몇 개를 소개한다(알파벳순).

7TILL8: 이 스타트업은 진정한 LA스러운 회사이다. 서핑할 때 입는 웨트수트를 커스터마이즈해서 판매하는 회사인데, 기존 웨트수트가 가진 여러 가지 단점을 – 특히, 몸에 잘 맞지 않는 단점 – 보완한, 고가의 고급 웨트수트 D2C 회사이다. 회사의 이름도 재미있다. 전문 서퍼들이 가장 선호하는 파도를 탈 수 있는 시간이 저녁 7시 ~ 저녁 8시 사이인데, 여기서 7TILL8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KPOP Foods: 미국인들은 소스를 참 좋아한다. 그 어떤 식당을 가도, 그리고 그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거의 모든 음식에 다양한 소스를 뿌려서 먹는다. 대표적인 소스가 케첩, 머스터드, 타바스코, 마요네즈, 에이욜리, 스리라차 등인데 전 세계 소스 시장은 수십조 원 크기이다. KPOP Foods는 UCLA MBA를 졸업한 교포 창업가가 창업한, 한국 소스를 만들어서 D2C로 판매하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의 대표 소스는 고추장을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 한 KPOP Sauce, 그리고 마요네즈와 김치를 절묘하게 혼합한 Kimchi Mayo다. 미국인 친구가 있는 한국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동의할 텐데, 미국인들이 한국의 고추장과 쌈장을 정말 좋아한다. 존이랑 나는 항상 이 생각을 했었고, 누군가 고추장과 쌈장을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서, 제대로 마케팅하고 유통하면 타바스코보다 더 큰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회사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백인들이 햄버거에 고추장을 뿌려 먹는 모습이 벌써 상상된다.

MAKKU: 한국을 대표하는 술은 소주이지만, 소주보다 전통이 깊은 한국의 술은 막걸리다. MAKKU의 창업가는 글로벌 대형 주류회사인 AB InBev의 신사업 팀에서 일하면서, 밀레니얼들이 저알콜 음료를 선호하는 트렌드를 파악하고, 한국의 막걸리를 미국 시장에 맞게 만들어서 판매해야겠다는 아이디어로 퇴사했다. 현재 뉴욕과 LA의 다양한 도매상, 소매상, 그리고 식당을 대상으로 Korean Creamy Beer인 막걸리를 열심히 홍보하면서 판매하고 있다. 일본의 사케가 글로벌 주류가 될 수 있다면, 한국의 막걸리는 이보다 더 크게 될 수 있다고 우린 믿고 있다.

Millibatt: UCLA 박사들이 만든 회사인데, 초소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만들고 있는 high-tech 스타트업이다. Y Combinator 2017년 겨울 배치를 거쳤으며, 독보적인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바탕으로 아직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초소형 배터리의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다. 이 배터리가 얼마나 작은지는, 이 동영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More Labs: 이 회사와 이시선 대표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숙취해소 드링크를 미국에서 Morning Recovery라는 브랜드로 로컬라이즈해서 D2C로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More Labs의 비전은 다양한 생산성 드링크를 만들어서, 궁극적으로는 Red Bull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숙취해소를 돕는 Morning Recovery 외에, 집중력을 향상하는 Liquid Focus, 수면을 도와주는 Dream Well, 그리고 수분을 보충해주는 Aqua+ 제품이 있다.

PAIRELA: 여성용 바지를 직접 만들어서 D2C로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의 여성 대표님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하는 여성들이 편안하지만, 고급스럽게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시장에 별로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PAIRE-LA를 창업했다. 여성을 위한 좋은 pair of pants를 LA에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PAIRE-LA라는 이름을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이 회사에 뉴욕의 아주 유명한 VC랑 같이 투자했는데, Theory와 같은 좋은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Polydrops: 건축학을 공부하러 온 한인 유학생 부부가 창업한 회사이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캠핑용 트레일러를 수작업해서 D2C로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이들이 만들고 있는 트레일러도 상당히 쿨 한데, 이들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더욱더 쿨하다. 미래에는 한 명의 고용주와 계약해서 일 하는 고용의 형태가 프리랜싱 형태의 gig 방식으로 바뀔 것이고, 집을 사서 한 곳에서 주거하는 주거문화 또한 바뀔 것이다. 이렇게 주거와 고용의 형태가 바뀌면,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는 노마드 생활을 하는 인구가 증가할 것인데, Polydrops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이동 주거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Rael: 한국에도 사무실이 있고, 한국 미디어에서도 워낙 많이 소개되어서 친숙한 이름이다. 한국의 다양한 여성용품을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fem-care 스타트업이며, 한국의 유기농 면 생리대를 아마존에서 판매하면서 시작했다. 현재 미국 전역의 Target에서 라엘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아마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유기농 면 생리대 중 하나이다. 이젠 다양한 여성용품을 제조해서 D2C로 판매하고 있다.

실은 LA 지역에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는 훨씬 더 많지만, 위 회사들은 우리가 비교적 최근에 투자했고,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컨셉으로 사업을 하는 대표적인 스타트업들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결과를 내면서 미국과 전 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한 단계 상승했는데, 할리우드가 있는 LA보다 이 기운을 더 잘 실감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이 좋은 기운과 스트롱이 만들고 있는 한국과 북미/LA 간의 다리를 잘 활용해서, 모두 좋은 글로벌 비즈니스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Moderate Venture Markets

얼마 전에 TechCrunch에서 “Moderate Sized Market(적당한 크기의 시장)”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스타트업 펀딩 규모나 빈도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와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고, 투자받는 규모도 어마무시한 벤처허브들이 있고, 이와 반대로 펀딩 딜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벤처사막이 있다. 그리고 이 중간 어딘가에, 엄청나진 않지만, 그래도 계속, 꾸준히, 적당한 규모의 펀딩이 일어나는 곳이 있는데, 이런 곳을 적당한 규모의 벤처시장이라고 한다.

동일한 개념을 국가에 적용하면, 1년에 1조 원 ~ 3조 원 사이의 펀딩이 일어나는 나라를 moderate sized market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한국, 홍콩, 남미의 브라질, 콜롬비아, 유럽의 스페인, 스웨덴, 네덜란드, 스위스, 그리고 호주, 이렇게 10개 국가가 여기에 속한다. 실은, 모든 펀딩이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건 아니다. 우리도 지난 12개월 동안 30개가 넘는 투자를 했지만, 이 중 공개적으로 발표된 딜은 5개도 안 되기 때문에, 테크크런치에서 분석한 내용이 완벽할 순 없지만, 다양한 데이터를 오랫동안 수집하고 분석해왔기 때문에, 이 중간 규모 벤처 시장에서의 큰 트렌드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한 거 같다.

일단, 이 시장의 벤처펀딩의 특징은,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전체펀딩규모가 연 300% 성장하거나, 100% 감소하면, 투자자들이 난리가 날 텐데, 이 적당한 규모의 시장에서 펀딩이 년 50% 이상 성장하거나 감소하는 건 흔한 일이다. 그 이유는, 소수의 메가딜이 다수의 작은 딜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유니콘 고젝이 2018년에 $2.4B 투자를 받았는데, 그 해 인도네시아의 전체 펀딩은 $3.88B 였다. 그 다음 해2019년도는 이런 메가딜이 없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전체 펀딩은 $1.01B로 74% 대폭 하락했다. 미국에서 수치가 이렇게 크게 감소하면, 경기가 안 좋거나, 또는 투자환경이 급격하게 나빠진 게 그 이유일 텐데,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다른 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큰 딜이 시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남미 콜롬비아도 마찬가지다. 2019년에 소프트뱅크가 콜롬비아의 쿠팡인 Rappi에 $1B을 투자했고, 이로 인해서 이 나라의 전체 펀딩이 급상승했는데, 아마도 올 해 Rappi가 다시 대규모 투자를 받지 않거나, 또는 다른 유니콘 회사가 등장하지 않으면, 콜롬비아의 펀딩은 급하락할 것이다.

한국의 데이터는 약간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 10개 국가 중 가장 변화폭이 작다(2018 | $1.97B에서 2019 | $2.13B로, 8% 증가). 그래도 소수의 대형 딜이 전체 펀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패턴은 비슷한 거 같다. 2018년 펀딩의 대부분은 쿠팡이 받은 투자일거 같고, 2019년은 위메프나 토스의 대규모 투자이지 않을까 싶다.

또 한가지 괄목할만한 트렌드는 이 시장의 펀딩이 성장하는 이유는, 딜 당 펀딩규모가 커져서이지, 딜의 개수가 증가해서는 아니다. 10개 국가 중 절반 이상의 펀딩이 년 50% 이상 성장했다고 하지만, 펀딩된 스타트업의 숫자를 보면 변화가 거의 없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9개국의 VC가 그들이 좋아하는 회사에 더욱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지, 더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의 스타트업은 2019년도에 총 $100B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여기서 조사한 10개국 전체 펀딩을 합쳐도 $12B이 안 되는 걸 보면, 년간 1조 원 ~ 3조 원 펀딩하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있다는 게 이 기사의 결론인 거 같다.

척추

한 20년 전만 해도 해외에 있는 고객, 협력업체 또는 외국 지사와 일을 하려면 누군가 비행기를 타고 물리적으로 해외 출장을 가야 했다. 나같이 비행기 타는 걸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곤욕이고, 돈, 시간, 그리고 에너지가 상당히 많이 소요되는 게 해외 출장이다. 다행히도 그동안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서 이 분야에서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Skype와 Zoom과 같은 다양한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덕분에 이젠 물리적으로 미팅을 해야 할 때만 출장을 가고, 그 외의 업무는 대부분 사무실이나 집 또는 자동차에서 멀리 해외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화상컨퍼런싱을 하면 된다. 그것도 대부분 무료로. 나도 매일 미국에 있는 John이랑 통화하는데, 이런 좋은 소프트웨어가 없었다면, 우리 같이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회사는 비즈니스 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화상통화/화상회의 제품들이 주로 해외랑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이 사용했다면, 직접 만나지 않고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실제로 얼굴 보면서 미팅하는 효과를 구현해주는 이런 제품들을 이제는 같은 국가, 도시, 심지어는 같은 동네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트렌드가 조금씩 보이는데, 부산에 있는 스타트업이 서울에 있는 변호사랑 일할 때, 굳이 비행기나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도 화상회의를 통해서 미팅하는 경우를 나는 종종 본다. 실은 나도 요새 미팅이 연달아 있으면, 같은 삼성동에 있는 스타트업 대표님과 직접 만나지 않고, 스카이프를 이용해서 화상회의를 한다. 이러면 시간, 돈, 그리고 체력을 절약하면서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직접 만나지 않고 이렇게 통화를 하다 보면, 정말 할 말만 하기 때문에 모든 미팅을 상당히 효과적, 생산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

화상회의 소프트웨어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내가 가장 처음 사용했던 화상회의 제품은 Citrix와 WebEx 였다. 당시에는 훌륭한 제품들이었지만, 소프트웨어를 PC에 설치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했다. 이후 기술이 좋아지고, 인터넷 환경이 개선되면서 스카이프와 구글 행아웃이라는 훌륭한 무료 웹/모바일 제품이 나왔고, 요샌 카카오톡이나 왓츠앱과 같은 모든 메신저앱도 화상통화 기능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분야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비즈니스 하는 분들이 애용하기 시작한 Zoom은 Cisco/WebEx의 엔지니어였던 Eric Yuan이 2011년에 창업했는데, 월등한 화상회의 기술과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유료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인기가 많다. 줌은 2019년 3월에 상장했는데, 현재 시총은 거의 30조 원이다.

우리가 투자한 플링크는, 고객들에게 화상회의 기능을 제공하고 싶어하는 다른 스타트업이 별도로 스카이프나 Zoom과 같은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아도, 이런 기능을 쉽게 구현할 수 있는 페이지콜(PageCall) API를 제공하고 있다. 즉, 화상회의 기능이 비즈니스의 핵심인 스타트업의 척추와도 같은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제공하고 운영해주고 있다. 페이지콜의 대표적인 고객 중 하나인 설탭은 아이패드를 통해서 서울대생의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주로 과외라고 하면 선생님이 학생의 집으로 직접 찾아왔는데, 설탭을 통해서 전국 어느 곳에서 서울대생 선생님께 과외를 받을 수 있다. 설탭 서비스의 척추가 되는 화상회의 기술, 특히 수학 과외에서 중요한 끊김 없는 실시간 칠판 기능이 페이지콜 API로 구현됐다. 페이지콜의 또 다른 대표적인 고객은 수파자인데 이 회사 또한 화상 과외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에 20억 투자를 유치했다.

플링크는 이렇게 다른 서비스들의 척추가 되는 화상회의 기술을 API로 제공하면서, 계속 고객군을 차근차근 늘려가고 있는 B2B SaaS API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신생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계속 고객들에게 영업을 해야 하고, 페이지콜 API를 사용하라고 설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성장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근에 아주 괄목할만한 실적을 만들면서 성장하고 있다. 플링크의 고객사들이 첫 100만 분 수업 시간을 제공하는데 38개월이 걸렸는데, 두 번째 100만 분(누적 200만 분)을 달성하는데에는 9개월, 그리고 세 번째 100만 분(누적 300만 분)을 달성하는데에는 5개월이 걸렸다. 한국에도 이런 좋은 기술을 API로 제공하는 B2B SaaS 회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공시: 이 포스팅에서 언급된 설탭은 스트롱의 투자사이며, 수파자는 내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