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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LA 스타트업

한 2주 전에 LA에 오랜만에 잠깐 다녀왔다. 4년 전에 LA를 떠나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분기에 한 번은 LA에 출장을 가야겠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한국의 생활이 바빠서 지난 4년 동안 거의 못 갔는데, 이번에 다녀오면서 앞으로는 자주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리는 한국과 미국, 이렇게 두 지역의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데, 미국에 있는 스타트업도 한인 또는 한인교포들이 창업한 회사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한 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많은 미국의 투자사는 한국에서 먼저 생긴 컨셉을 미국으로 가져와 로컬라이즈해서, LA를 발판으로 삼아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모델을 도입한 회사들이다. 여기 그 몇 개를 소개한다(알파벳순).

7TILL8: 이 스타트업은 진정한 LA스러운 회사이다. 서핑할 때 입는 웨트수트를 커스터마이즈해서 판매하는 회사인데, 기존 웨트수트가 가진 여러 가지 단점을 – 특히, 몸에 잘 맞지 않는 단점 – 보완한, 고가의 고급 웨트수트 D2C 회사이다. 회사의 이름도 재미있다. 전문 서퍼들이 가장 선호하는 파도를 탈 수 있는 시간이 저녁 7시 ~ 저녁 8시 사이인데, 여기서 7TILL8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KPOP Foods: 미국인들은 소스를 참 좋아한다. 그 어떤 식당을 가도, 그리고 그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거의 모든 음식에 다양한 소스를 뿌려서 먹는다. 대표적인 소스가 케첩, 머스터드, 타바스코, 마요네즈, 에이욜리, 스리라차 등인데 전 세계 소스 시장은 수십조 원 크기이다. KPOP Foods는 UCLA MBA를 졸업한 교포 창업가가 창업한, 한국 소스를 만들어서 D2C로 판매하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의 대표 소스는 고추장을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 한 KPOP Sauce, 그리고 마요네즈와 김치를 절묘하게 혼합한 Kimchi Mayo다. 미국인 친구가 있는 한국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동의할 텐데, 미국인들이 한국의 고추장과 쌈장을 정말 좋아한다. 존이랑 나는 항상 이 생각을 했었고, 누군가 고추장과 쌈장을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서, 제대로 마케팅하고 유통하면 타바스코보다 더 큰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회사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백인들이 햄버거에 고추장을 뿌려 먹는 모습이 벌써 상상된다.

MAKKU: 한국을 대표하는 술은 소주이지만, 소주보다 전통이 깊은 한국의 술은 막걸리다. MAKKU의 창업가는 글로벌 대형 주류회사인 AB InBev의 신사업 팀에서 일하면서, 밀레니얼들이 저알콜 음료를 선호하는 트렌드를 파악하고, 한국의 막걸리를 미국 시장에 맞게 만들어서 판매해야겠다는 아이디어로 퇴사했다. 현재 뉴욕과 LA의 다양한 도매상, 소매상, 그리고 식당을 대상으로 Korean Creamy Beer인 막걸리를 열심히 홍보하면서 판매하고 있다. 일본의 사케가 글로벌 주류가 될 수 있다면, 한국의 막걸리는 이보다 더 크게 될 수 있다고 우린 믿고 있다.

Millibatt: UCLA 박사들이 만든 회사인데, 초소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만들고 있는 high-tech 스타트업이다. Y Combinator 2017년 겨울 배치를 거쳤으며, 독보적인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바탕으로 아직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초소형 배터리의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다. 이 배터리가 얼마나 작은지는, 이 동영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More Labs: 이 회사와 이시선 대표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숙취해소 드링크를 미국에서 Morning Recovery라는 브랜드로 로컬라이즈해서 D2C로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More Labs의 비전은 다양한 생산성 드링크를 만들어서, 궁극적으로는 Red Bull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숙취해소를 돕는 Morning Recovery 외에, 집중력을 향상하는 Liquid Focus, 수면을 도와주는 Dream Well, 그리고 수분을 보충해주는 Aqua+ 제품이 있다.

PAIRELA: 여성용 바지를 직접 만들어서 D2C로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의 여성 대표님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하는 여성들이 편안하지만, 고급스럽게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시장에 별로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PAIRE-LA를 창업했다. 여성을 위한 좋은 pair of pants를 LA에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PAIRE-LA라는 이름을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이 회사에 뉴욕의 아주 유명한 VC랑 같이 투자했는데, Theory와 같은 좋은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Polydrops: 건축학을 공부하러 온 한인 유학생 부부가 창업한 회사이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캠핑용 트레일러를 수작업해서 D2C로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이들이 만들고 있는 트레일러도 상당히 쿨 한데, 이들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더욱더 쿨하다. 미래에는 한 명의 고용주와 계약해서 일 하는 고용의 형태가 프리랜싱 형태의 gig 방식으로 바뀔 것이고, 집을 사서 한 곳에서 주거하는 주거문화 또한 바뀔 것이다. 이렇게 주거와 고용의 형태가 바뀌면,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는 노마드 생활을 하는 인구가 증가할 것인데, Polydrops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이동 주거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Rael: 한국에도 사무실이 있고, 한국 미디어에서도 워낙 많이 소개되어서 친숙한 이름이다. 한국의 다양한 여성용품을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fem-care 스타트업이며, 한국의 유기농 면 생리대를 아마존에서 판매하면서 시작했다. 현재 미국 전역의 Target에서 라엘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아마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유기농 면 생리대 중 하나이다. 이젠 다양한 여성용품을 제조해서 D2C로 판매하고 있다.

실은 LA 지역에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는 훨씬 더 많지만, 위 회사들은 우리가 비교적 최근에 투자했고,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컨셉으로 사업을 하는 대표적인 스타트업들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결과를 내면서 미국과 전 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한 단계 상승했는데, 할리우드가 있는 LA보다 이 기운을 더 잘 실감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이 좋은 기운과 스트롱이 만들고 있는 한국과 북미/LA 간의 다리를 잘 활용해서, 모두 좋은 글로벌 비즈니스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Moderate Venture Markets

얼마 전에 TechCrunch에서 “Moderate Sized Market(적당한 크기의 시장)”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스타트업 펀딩 규모나 빈도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와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고, 투자받는 규모도 어마무시한 벤처허브들이 있고, 이와 반대로 펀딩 딜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벤처사막이 있다. 그리고 이 중간 어딘가에, 엄청나진 않지만, 그래도 계속, 꾸준히, 적당한 규모의 펀딩이 일어나는 곳이 있는데, 이런 곳을 적당한 규모의 벤처시장이라고 한다.

동일한 개념을 국가에 적용하면, 1년에 1조 원 ~ 3조 원 사이의 펀딩이 일어나는 나라를 moderate sized market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한국, 홍콩, 남미의 브라질, 콜롬비아, 유럽의 스페인, 스웨덴, 네덜란드, 스위스, 그리고 호주, 이렇게 10개 국가가 여기에 속한다. 실은, 모든 펀딩이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건 아니다. 우리도 지난 12개월 동안 30개가 넘는 투자를 했지만, 이 중 공개적으로 발표된 딜은 5개도 안 되기 때문에, 테크크런치에서 분석한 내용이 완벽할 순 없지만, 다양한 데이터를 오랫동안 수집하고 분석해왔기 때문에, 이 중간 규모 벤처 시장에서의 큰 트렌드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한 거 같다.

일단, 이 시장의 벤처펀딩의 특징은,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전체펀딩규모가 연 300% 성장하거나, 100% 감소하면, 투자자들이 난리가 날 텐데, 이 적당한 규모의 시장에서 펀딩이 년 50% 이상 성장하거나 감소하는 건 흔한 일이다. 그 이유는, 소수의 메가딜이 다수의 작은 딜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유니콘 고젝이 2018년에 $2.4B 투자를 받았는데, 그 해 인도네시아의 전체 펀딩은 $3.88B 였다. 그 다음 해2019년도는 이런 메가딜이 없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전체 펀딩은 $1.01B로 74% 대폭 하락했다. 미국에서 수치가 이렇게 크게 감소하면, 경기가 안 좋거나, 또는 투자환경이 급격하게 나빠진 게 그 이유일 텐데,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다른 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큰 딜이 시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남미 콜롬비아도 마찬가지다. 2019년에 소프트뱅크가 콜롬비아의 쿠팡인 Rappi에 $1B을 투자했고, 이로 인해서 이 나라의 전체 펀딩이 급상승했는데, 아마도 올 해 Rappi가 다시 대규모 투자를 받지 않거나, 또는 다른 유니콘 회사가 등장하지 않으면, 콜롬비아의 펀딩은 급하락할 것이다.

한국의 데이터는 약간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 10개 국가 중 가장 변화폭이 작다(2018 | $1.97B에서 2019 | $2.13B로, 8% 증가). 그래도 소수의 대형 딜이 전체 펀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패턴은 비슷한 거 같다. 2018년 펀딩의 대부분은 쿠팡이 받은 투자일거 같고, 2019년은 위메프나 토스의 대규모 투자이지 않을까 싶다.

또 한가지 괄목할만한 트렌드는 이 시장의 펀딩이 성장하는 이유는, 딜 당 펀딩규모가 커져서이지, 딜의 개수가 증가해서는 아니다. 10개 국가 중 절반 이상의 펀딩이 년 50% 이상 성장했다고 하지만, 펀딩된 스타트업의 숫자를 보면 변화가 거의 없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9개국의 VC가 그들이 좋아하는 회사에 더욱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지, 더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의 스타트업은 2019년도에 총 $100B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여기서 조사한 10개국 전체 펀딩을 합쳐도 $12B이 안 되는 걸 보면, 년간 1조 원 ~ 3조 원 펀딩하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있다는 게 이 기사의 결론인 거 같다.

척추

한 20년 전만 해도 해외에 있는 고객, 협력업체 또는 외국 지사와 일을 하려면 누군가 비행기를 타고 물리적으로 해외 출장을 가야 했다. 나같이 비행기 타는 걸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곤욕이고, 돈, 시간, 그리고 에너지가 상당히 많이 소요되는 게 해외 출장이다. 다행히도 그동안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서 이 분야에서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Skype와 Zoom과 같은 다양한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덕분에 이젠 물리적으로 미팅을 해야 할 때만 출장을 가고, 그 외의 업무는 대부분 사무실이나 집 또는 자동차에서 멀리 해외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화상컨퍼런싱을 하면 된다. 그것도 대부분 무료로. 나도 매일 미국에 있는 John이랑 통화하는데, 이런 좋은 소프트웨어가 없었다면, 우리 같이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회사는 비즈니스 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화상통화/화상회의 제품들이 주로 해외랑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이 사용했다면, 직접 만나지 않고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실제로 얼굴 보면서 미팅하는 효과를 구현해주는 이런 제품들을 이제는 같은 국가, 도시, 심지어는 같은 동네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트렌드가 조금씩 보이는데, 부산에 있는 스타트업이 서울에 있는 변호사랑 일할 때, 굳이 비행기나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도 화상회의를 통해서 미팅하는 경우를 나는 종종 본다. 실은 나도 요새 미팅이 연달아 있으면, 같은 삼성동에 있는 스타트업 대표님과 직접 만나지 않고, 스카이프를 이용해서 화상회의를 한다. 이러면 시간, 돈, 그리고 체력을 절약하면서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직접 만나지 않고 이렇게 통화를 하다 보면, 정말 할 말만 하기 때문에 모든 미팅을 상당히 효과적, 생산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

화상회의 소프트웨어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내가 가장 처음 사용했던 화상회의 제품은 Citrix와 WebEx 였다. 당시에는 훌륭한 제품들이었지만, 소프트웨어를 PC에 설치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했다. 이후 기술이 좋아지고, 인터넷 환경이 개선되면서 스카이프와 구글 행아웃이라는 훌륭한 무료 웹/모바일 제품이 나왔고, 요샌 카카오톡이나 왓츠앱과 같은 모든 메신저앱도 화상통화 기능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분야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비즈니스 하는 분들이 애용하기 시작한 Zoom은 Cisco/WebEx의 엔지니어였던 Eric Yuan이 2011년에 창업했는데, 월등한 화상회의 기술과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유료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인기가 많다. 줌은 2019년 3월에 상장했는데, 현재 시총은 거의 30조 원이다.

우리가 투자한 플링크는, 고객들에게 화상회의 기능을 제공하고 싶어하는 다른 스타트업이 별도로 스카이프나 Zoom과 같은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아도, 이런 기능을 쉽게 구현할 수 있는 페이지콜(PageCall) API를 제공하고 있다. 즉, 화상회의 기능이 비즈니스의 핵심인 스타트업의 척추와도 같은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제공하고 운영해주고 있다. 페이지콜의 대표적인 고객 중 하나인 설탭은 아이패드를 통해서 서울대생의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주로 과외라고 하면 선생님이 학생의 집으로 직접 찾아왔는데, 설탭을 통해서 전국 어느 곳에서 서울대생 선생님께 과외를 받을 수 있다. 설탭 서비스의 척추가 되는 화상회의 기술, 특히 수학 과외에서 중요한 끊김 없는 실시간 칠판 기능이 페이지콜 API로 구현됐다. 페이지콜의 또 다른 대표적인 고객은 수파자인데 이 회사 또한 화상 과외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에 20억 투자를 유치했다.

플링크는 이렇게 다른 서비스들의 척추가 되는 화상회의 기술을 API로 제공하면서, 계속 고객군을 차근차근 늘려가고 있는 B2B SaaS API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신생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계속 고객들에게 영업을 해야 하고, 페이지콜 API를 사용하라고 설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성장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근에 아주 괄목할만한 실적을 만들면서 성장하고 있다. 플링크의 고객사들이 첫 100만 분 수업 시간을 제공하는데 38개월이 걸렸는데, 두 번째 100만 분(누적 200만 분)을 달성하는데에는 9개월, 그리고 세 번째 100만 분(누적 300만 분)을 달성하는데에는 5개월이 걸렸다. 한국에도 이런 좋은 기술을 API로 제공하는 B2B SaaS 회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공시: 이 포스팅에서 언급된 설탭은 스트롱의 투자사이며, 수파자는 내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회사이다.

프라이머 16기 데모데이

원래 오늘은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악셀러레이터 프라이머 16기 데모데이였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행사가 취소됐다. 아주 아쉽지만, 안전이 최고라서 이런 힘든 결정을 하게 됐다. 과거에도 데모데이에 대해서 블로깅 한 적이 몇 번 있고, 모든 데모데이는 항상 새롭고, 항상 힘들고, 항상 설레지만, 이번 데모데이는 개인적으로 더욱더 기대가 되었던 게, 올 해 프라이머가 10살이 됐기 때문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한국 악셀러레이터 역사를 잘 생각해보면,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창업과 투자가 시작된 지 8년 정도 밖에 안 됐다고 생각한다. 2012년도에 우리 투자사 비석세스 정현욱 대표님이랑 beLaunch라는 행사를 처음 시작했는데, 이 무렵부터 한국에 제대로 된 체계적인 벤처생태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그 전에도 좋은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있었지만, 뭔가 체계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제대로 만들려고 한 노력은 8년 전부터 시작됐던 거 같다.

이보다 전에, 아마도 악셀러레이터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을 때, 권도균 대표님은 프라이머라는 악셀러레이터를 만들었고, YC와 같은 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긴 했지만, 나름 독자적인 한국형 버전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fine-tuning을 많이 하셨고, 나도 일부인 프라이머 파트너십은 아직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악셀러레이터를 당시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또 대단한 점은, 10년째 본인이 계속 프라이머를 굉장히 active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VC가 펀드를 시작하긴 하지만, 10년 동안 같은 파트너가 같은 이름을 걸고, 계속 active하게 펀드를 운영하는 사례가 한국에는 별로 없는데, 이런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프라이머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10년을 프라이머라는 이름으로 계속 좋은 회사를 발굴하고, 투자하고, 이 회사들이 잘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면에서 도와주고 ‘가속화(accelerate)’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프라이머가 정도를 걸으면서 잘 운영됐기 때문이다. 실은 스트롱도 이제 8년 밖에 안 됐는데, 나도 프라이머랑 권도균 대표님한테 배울 점이 너무 많다는걸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16기에도 좋은 회사들이 너무 많다. 이 회사들을 선발하는 과정은 상당히 힘들었고, 선발한 후에도 나는 몇몇 회사에 대해서는 과연 우리가 정말 좋은 회사를 잘 선발했을까, 그리고 선발 과정에서 더 좋은 창업가를 놓치진 않았을까, 등의 걱정도 했지만, 16기 창업가들과 3개월 이상을 같이 일해보니, 쓸데없는 고민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한국에서 가장 똑똑하고, 가장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 팀인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열심히 하고, 가장 인품이 훌륭하고, 가장 빨리 배우고, 가장 성공하기를 열망하는 창업가임은 확실하다. 그리고 나한테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데모데이가 취소된 게 더욱더 아쉽긴 하다.

참고로, 프라이머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우리 프라이머가 의미하는 건 DNA 합성과 복제가 되는 기초 유전자를 뜻한다. 즉, 10년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업가 정신의 합성과 복제가 되는 기반을 초기 창업팀과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Happy 10th Birthday Primer!

셀미트

지난 주에 미국의 Memphis Meats가 1,900억 원 정도의 투자를 받았다는 기사가 발표됐다. 빌게이츠와 리처드 브랜슨과 같은 유명한 개인들도 투자한 이 회사는 2015년도에 창업된 회사인데, 배양육을 개발하고 만드는 최첨단 기술의 스타트업이다.

지구에는 약 80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고, 이들이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 1년에 소비하는 가공 육류는 – 소, 돼지, 닭만 – 3억 톤 이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해마다 700억 마리의 가축이 도살되고 있다. 앞으로 늘어나는 육류 소비량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더욱더 많은 가축을 사육해야 하고, 죽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가축사육 시스템으로는 늘어나는 육류 소비량을 막대한 경제적, 환경적, 윤리적 파괴가 없이는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새로 개발해야 한다.

여기서 대체육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우리한테 익숙한 대체육은 요새 고공비행하고 있는 Beyond Meat나 Impossible Foods가 만드는 식물성 단백질 기반의 ‘가짜’ 고기다. 나는 둘 다 먹어봤고, 비욘드 미트의 초기 제품부터 먹어봤는데, 그렇게 맛이 없던 가짜고기를 현재 수준까지 끌어 올린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쪽으로는, 과연 과학의 힘으로만 진짜 고기의 맛과 질감을 식물성 단백질로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항상 갖고 있다.

환경, 경제,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도 동물성 단백질의 맛과 질감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게 바로 Memphis Meats와 같은 회사가 풀려고 하는 숙제이다. 바로 배양육(cultured meat)이라는 분야인데, 가축을 죽이지 않고 실험실에서 동물성 단백질을 만드는 분야이다. 즉, 실험실에서 진짜 고기를 만드는 기술이다. 나는 식물성 단백질 보단, 오히려 배양육 기술을 통해서 실험실에서 완벽한 동물성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면, 이게 진짜 고기의 맛과 질감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최첨단 기술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에서 오래전부터 연구되었고, 관련 스타트업도 몇 년 전부터 해외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국은 대체 단백질 경주에 늦게 뛰어들었다. 시장은 충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기술력, 자본력, 인력 면에서 아직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따라잡아야할게 많을 것이다. 우린 작년에 전라도 광주에 있는 배양육 스타트업 셀미트에 투자했다. 한국에도 이 정도 배양육 기술력을 가진 팀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우리에게 이런 좋은 팀에 가장 먼저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게 매우 감사했다.

실은, 이런 기술이 상용화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긴 하다. 크게 보면 두 개의 큰 산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험실에서 고기를 만드는 건 지금도 가능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많은 사람이 구매해서 먹게 하려면 대량생산체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큰 자본과 생산 노하우가 필요한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이론적으로 보면 실험실에서 만든 고기가 도축한 고기보다 안전하고 맛있지만, 이걸 대중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관련 부처의 승인이 필요한데, 분명히 축산업계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정부에서는 규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양육이 대중화가 된다면, 이건 정말 우리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크게 바꿀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나는 셀미트와 배양육 시장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