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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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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imagine39/크라우드픽>

많이 쓰는 사람이 있고, 적게 쓰는 사람이 있겠지만, 내 주변에 페이스북을 안 쓰는 지인은 1%도 안 된다. 특히, 나는 페이스북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업무적으로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고, 이미 페이스북이 내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됐다. 솔직히,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있지만, 페이스북 없인 살 수 없고, 그래서 페이스북이 웬만한 자동차 회사보다 시가총액이 훨씬 높은가보다. 매일 바뀌지만, 페이스북의 시총은 1,000조 원이 넘는다.

나는 페이스북을 2006년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전에는 .edu 이메일이 있는 학생들만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 수 있었는데, 아마도 2006년도부터 그냥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완전히 오픈했고, 이때 미국 친구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나도 회원 가입을 했다. 당시 페이스북이랑 지금의 페이스북은 완전히 다른 제품이고,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는데, 그동안의 이 눈부신 성장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2021년 일사분기 페이스북의 MAU는 28.5억이다. 어마무시하다. 이는 한국 인구의 50배 이상이고, 14억 명 중국 인구의 두 배인 셈이다. 즉, 나라로 따지면, 페이스북 공화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살고 있고, 매일 사용하는 플랫폼인데, 큰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걸 보면 정말 잘 만들었고,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전에 어떤 기사를 보니, 전 세계 VC 투자금 중 40%가 결국엔 페이스북과 구글에서 광고하는데 사용된다고 하던데, 참 웃지 못할 일인 것 같다. 구글과 페이스북에 각각 절반씩 흘러간다고 가정하면, 전 세계 VC 투자금의 20% 정도가 페이스북의 지갑으로 간다. 과학적으로 분석한 건 아니지만, 대략 찾아보니, 페이스북의 2020년도 매출이 $86B 이었다. 페이스북의 상위 100개 고객의 매출 기여도가 20% 정도인 $17.2B라고 하니, 나머지 $70B 정도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2020년도 전 세계 VC 투자금 규모는 대략 $300B이고, 여기서 20%가 페이스북에 갔다고 하면, $60B이니, 얼추 맞지 않을까 싶다.

지금 페이스북이 여러 가지 면에서 비난받고, 소송당하고 있고, 항상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고 있지만, 17년 전에 하버드 대학교 기숙사에서 2학년이었던 마크 저커버그가 만든 나라? 치곤 나쁘지 않게 성장했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술, 인터넷, 모바일, 소셜과 플랫폼이 합쳐지고, 여기에 멱법칙(power law)과 복리가 제대로 작용하면, 어떤 성장이 가능하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명 최고의 산출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팀이라는,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필수재료이다.

그냥, 오늘은 페이스북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몇 자 적어봤다.

답은 데이터에 있다

우리 투자사 중 지지틱스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게임에 대해서는 매우 심각한 차민창 대표님이 2016년도에 창업한 회사인데, 게임을 만들거나 퍼블리싱하는 회사가 아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게임 중 하나인 라이엇게임즈의 대표작 LoL(League of Legends)의 데이터를 분석해주는, 게이밍과 이스포츠라는 큰 시장의 스타트업인데, 회사의 정확한 비즈니스는 데이터 분석 플랫폼이다.

LoL은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라, 마치 야구나 농구처럼 팀원들과 하는 팀 게임이라서 혼자서만 게임을 잘한다고 상대팀에게 이기는 게 아니다. 팀의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건 이 개인들의 팀 플레이, 그리고 팀의 우승에 대한 기여도이다. 이렇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LoL에서 팀의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드는 최적의 팀 전략이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스포츠 영화의 걸작 머니볼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수를 채용하고, 배치하면서 승률을 높였는데, 지지틱스는 LoL을 위한 머니볼이라고 생각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이 게이밍 산업을 우린 이스포츠(e-sports)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전통적인 스포츠인 야구나 농구와 같이 자본이 투입되면서, 상당히 큰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직 역사가 짧아서 이스포츠에 대해서 “이게 무슨 스포츠야? 애들 장난이지.”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 숫자를 보면, 이미 웬만한 운동경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즐기는 종목이 됐다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됐다). 전통적인 스포츠를 좋아하는 관객은 이제 죽어가는 사람들이고, 이스포츠 관객은 이제 태어나는 사람들인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어떤 게 더 큰 시장을 형성할진,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지지틱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회사의 엔지니어 조민규 님의 글을 참고하면 된다. 6월 기준으로 110만 MAU, 8만 DAU, 그리고 2,200만 PV를 달성하고 있는데, 게임도 아니고 게임 데이터 분석 플랫폼치곤 상당히 높다.

현재 지지틱스에서 좋은 개발자분들을 채용하고 있는데, recruit@your.gg로 연락하거나 로켓펀치의 채용공고를 참고하면 된다. 게임을 좋아하면 더욱더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데이터로 세상을 바꿔보는 그 도전 자체를 즐기면 된다.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이, LoL도 답은 데이터에 있으니까.

레이저 집중

요새도 초등학교에서 이걸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해가 떠 있으면, 돋보기를 이용해서 빛을 모아서 종이를 태우는 실험을 했다. 빛 에너지, 빛의 굴절, 빛의 집중 등과 관련된 과학의 원리를 이런 재미있는 실험을 통해서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우주에 흩어져 있는 햇빛을 이렇게 한곳에 모으면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는 걸 배우고 어린 마음에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요새 내가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집중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항상 예시로 드는 게 이 돋보기로 종이 태우기 이야기다. 이런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떤 분들이 보면 “라떼는 말이야…” 하는 꼰대 같을 수도 있지만, 사업에서의 집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만큼 적절한 비유가 없기 때문에 계속 이 이야기를 한다.

한 가지에만 초집중하는 걸 미국인들은 laser focus라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만 잘하면 성공한다는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돈과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도 모두 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손발로 실행은 항상 잘못 하는 게 이 laser focus이기도 하다. 하나만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데, 왜 항상 창업가들은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할까?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자신을 너무 믿어서 자신감이 넘쳐흐르면 여러 가지를 다 하는 경우가 있고, 이와 반대로 자신감이 없어서, 어디서 매출이 나오고, 어떤 제품이 잘 될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하는 경우가 있다.

B2C, B2B, B2G,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등…가끔 이 모든 걸 다 하는 인원 10명 이하의 스타트업을 만난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이런 회사가 실은 꽤 많다. 하나만 죽어라 해도 잘 안되는 게 사업인데, 이렇게 많은 일을 굳이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항상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하다. 겉으로 보면, 달라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다 똑같기 때문에 그렇게 회사의 자원을 많이 활용하는 게 아니라는 답을 많이 한다. 또는, 다른 일이긴 하지만, 회사의 핵심은 이 중 하나이고, 나머지는 그냥 자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핵심이 아닌 5가지 일에는 대표의 시간이나 에너지를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할애한다는 내용과 비슷한 답변을 많이 듣는다.

어떤 사업이 잘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많은 걸 하는 창업가의 딜레마는, 이렇게 사업을 하면 사업이 망할 때까지도 어떤 사업이 잘될지 전혀 감을 못 잡는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를 하다 보면, 타이밍이나 트렌드에 따라서 이 중 한 가지가 잘 되는 시점이 오는데, 그러면 그 사업에 집중하고, 또 이게 잘 안되고 다른 사업이 잘 되는 것 같으면, 또 그쪽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계속 근근이 먹고 사는 걸 반복하는 사이클에 빠진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 하기 때문에, 그 하나의 분야에서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뾰족함을 절대로 만들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분야의 최고가 되지 못해서, 계속 이것저것 벌리기만 하고, 절대로 회사는 발전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알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손과 발로 실행을 잘 못 하는 게 레이저 집중이다. 스타트업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단, 덜 해야지만 성공의 확률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난 생각한다. 집중의 돋보기가 혼란의 렌즈가 되지 않도록 모두 명심하길 바란다.

스케일에 대해

Y Combinator를 만든 폴 그레이엄은 USV의 프레드 윌슨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한 달에 2번~4번 정도 글을 써서 올린다. 프레드 윌슨은 굵직한 주제들에 대해서 비교적 짧게, 그리고 가볍게 글을 쓰는 반면, 폴 그레이엄은 꽤 길게, 그리고 무겁게 글을 쓰는데, 두 명 모두 전 세계 창업가, 투자자, 비즈니스맨들이 즐겨 읽는 통찰력 넘치는 글을 무료로 전 세계와 공유하고 있어서 나도 개인적으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폴의 글 중 2013년도에 쓴 ‘Do Things that Don’t Scale‘이라는 글이 있는데, 내가 즐겨 읽었던 글이다. 모두 다 고속성장과 스케일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던 시절, 이 글은 여기에 큰 일침을 가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같이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창업가들이 피, 땀, 영혼, 그리고 육체를 갈아서 하나씩 만들어가는 걸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라면, 상당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이 글에 담겨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서 내용은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사업 초반에는 확장성과는 먼, 노가다로 하나씩 모든 걸 직접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많은 창업가들이 뭔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놓으면, 고객들이 알아서 구매하고 사용하리라 생각하지만, 이렇게 되는 경우를 나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본인이 보기엔 굉장히 좋은 걸 만들어서, 출시했는데, 이걸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제품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사업을 접어버리는 경우도 많이 본다. 물론, 정말 필요 없는 제품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시장성이 있는 제품이라도, 알아서 자동으로 스케일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초반에는 창업가들이 몸으로 스케일을 만들어야 하고, 비행기(=스타트업)가 날 수 있게, 활주로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어떤 투자자는 창업가가 이런 노가다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으로 해결해야지만 스케일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할 텐데, 이 말 또한 틀린말은 아니다. 다만, 스타트업 초반에는 이렇게 할 수가 없다. 폴 그레이엄은 “초반에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창업가들이 스스로 회사의 소프트웨어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스케일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에 정말 많이 동의한다. 드롭박스의 창업가 드류 하우스턴은 창업 초반에는 직접 고객을 찾아가서 랩톱에 드롭박스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주고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고객을 만들었고, Stripe 또한 겉으로는 온라인으로 가맹점 등록하면 즉시 결제가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뒷단에서는 창업가들이 수작업으로 다른 PG사에 모두 회원가입을 대신해주면서 고객을 만들었다.

이렇게, 회사 초반에는 스케일과는 거리가 멀게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으로 스케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스케일이 만들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창업하자마자 고객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1호 고객이 있어야지만, 10호 고객이 생길 수 있고, 10호 고객이 있어야지만 100호 고객이 생기고, 여기에 소프트웨어를 적용하면, 복리의 마술이 작동하면서 생각보다 빨리 고객 수가 증가한다. 지금은 잘되고 있는 회사들의 누적 고객 수에 대한 분석을 자세히 보면, 첫 1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는데 12개월이라는 기간이 걸렸다면, 그 이후 1만 명의 추가 고객을 확보하는 데에는 3개월, 또 그 이후에 1만 명의 추가 고객을 확보하는 데에는 1개월, 뭐, 이런 식으로 복리가 적용될 것이다. 이 회사들에게 첫 1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첫 10명의 고객 확보이고, 첫 10명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첫 번째 고객 확보인데, 이건 무조건 발로 뛰어야 한다. 즉, 스케일이 안 되는 일을 먼저 해야지만, 스케일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고객의 이야기만 했는데, 매출이나 MAU 등과 같은 다른 지표에 대해서도 이 내용은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문제의 깊이와 너비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창업하기 전에 자신의 아이디어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설문조사이다. 우리 투자사 모아폼과 같은 전문 서베이 제품을 사용하거나, 간단한 구글폼을 이용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어느 정도 확신을 하게 되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다. 내가 만난 많은 창업가에게 혹시 제품을 만들기 전에 잠재 고객과 이야기하거나, 시장 조사를 해봤냐고 물어보면, 이런 설문 결과를 보여준다. 대부분 현재 시장에 있는 제품의 더 편한 대체 솔루션이 있다면 응답자의 80% 이상이 바꿀 의향이 있거나, 이런 게 나오면 응답자의 80% 이상이 돈을 지불하고 사용해볼 의향이 있다는 내용의 설문 결과를 보여준다.

일단 설문 조사는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설문을 작성할 때, 작성자는 본인이 원하는 답변을 얻기 위해 설문을 만든다는 건 여러 연구를 통해서 밝혀진 바가 있고, 설문 결과에 대해서 본인은 그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고,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잠재 고객의 입과 손가락에서 나온 결과는 믿으면 안 된다. 뭐, 그래도 아예 이런 설문 조사를 하지 않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해보는 게 도움이 되겠지만.

문제는, 이렇게 80% 이상의 설문 응답자들이 우리 제품이 나오면 사용할 의향이 매우 크다고 했는데, 막상 출시하면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다. 그 많던 잠재 고객은 어디 갔고, 왜 아무도 설문에서 말한 대로 우리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까?

일단, 설문 조사는 시장과 고객의 진짜 지불용의를 반영하지 않는다. 입을 여는 거와 지갑을 여는 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문조사를 정말 제대로 했고, 여기서 나온 80%라는 결과가 진짜인데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 포스팅의 주제인,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깊이와 너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설문 대상의 80%가 현재 시장에 있는 솔루션이 불편하다고 하면, 뭔가 문제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불편해하는 상당히 넓은 문제이다. 그런데, 현존하는 제품보다 더 뛰어난 대체 솔루션을 제공했는데도 불편함을 호소하던 80%의 고객이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싼 우리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이 문제가 넓긴 하지만, 깊진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즉,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느끼기엔 좀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탈 정도로 불편하진 않다는 뜻이다. 문제가 더 깊어야지만, 대부분의 고객이 지갑을 열고, 기꺼이 돈을 쓸 지불 의사가 생기는데, 이렇게 애매하게 불편하면, 우리가 바라던 반응이 안 일어날지도 모른다. 새로운 제품의 switching cost보다 혜택이 (월등히) 더 커야 하는데, 문제가 깊지 않고 넓기만 하면, 혜택보단 switching cost가 더 크고, 결과적으로는, 좋은 대체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어렵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신용카드를 긁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게 이 포스팅에서 말하는 문제의 너비와 깊이이다. 카드를 들고 다니는 불편함, 카드 수수료, 플라스틱이 환경이 미치는 영향, 카드가 안되는 상점, 마그네틱 손상 등의 플라스틱 신용카드의 명확한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카드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결제 솔루션을 많은 창업가들이 연구한다. 그리고 이미 시장에 모바일 결제 등의 다양한 대체 솔루션이 존재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갑에서 플라스틱 카드를 꺼내서 단말기에 긁는다. 왜냐하면, 너무 편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신용카드 기술이 좋고, 인프라가 너무 잘 만들어져서, 카드를 긁는 것만큼 편한 결제 방법이 없다. 이 글에서 말한 것처럼, 신용카드의 문제점이 당연히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를 인정해서, 이게 굉장히 넓은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모바일 결제와 같은 대체 방법으로 갈아탈 정도로 그 문제가 깊진 않기 때문에 신용카드를 당장 대체할 수 있는 솔루션이 한국에서 대중화되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건 넓고 깊은 시장의 문제를 파악해서 이걸 공략하는 건데, 이런 시장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문제 자체의 너비는 적당하지만, 굉장히 깊은 걸 선호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