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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제조 2.0 – part 2

바로 이전 글 ‘K-제조 2.0 – part 1‘에서 한국이 원래 제조 강국이고, 화장품같이 누구나 다 한국이 잘 만드는 걸 아는 분야도 있지만, 콘택트렌즈나 콘돔과 같이 우리가 잘 몰랐던 분야도 한국이 제조를 잘한다는 내용에 대해서 적어봤다. 이런 새로운 분야의 스타트업에 우리가 투자하면서 계속 스스로 물어봤던 건, “그러면 왜 이 렌즈나 콘돔을 직접 생산하는 한국의 제조업체에서 본인들의 브랜드를 잘 만들어서 직접 판매하지 않을까?” , “이미 우리 투자사들이 이 공장에 OEM 생산을 맡기고 자신들의 브랜드로 잘 판매하고 있는데, 이걸 생산업체에서 직접 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동일한 제품인데.”와 같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실사를 하면서 공장에 이 질문을 직접 했는데, 해외 시장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냥 본인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업체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제품을 엄청난 브랜드로 키우고, 대단한 이커머스 플레이를 할 의지가 별로 없었다.

여기서 우린 기회를 봤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제품 중 한국에서 가장 싸고, 빠르고, 품질 좋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 상당히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제조업체가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양질의 제조업체에서 만든 Made in Korea 제품을 북미 시장에서 잘 판매할 수 있다면, Dollar Shave Club과 같은 유니콘 스타트업이 여러 개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전 글에서 언급했던 우리 투자사들이 이 작업을 하고 있고, 아직 엄청나게 큰 회사로 성장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이런 가능성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미국 시장을 잘 알고, 영어가 가능하고, 미국에서 좋은 인재 채용이 가능한 이런 창업가들은 한국의 제조 공장과 글로벌 시장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고, 이런 분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면, 한국이 가진 작은 시장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훨씬 더 큰 글로벌 시장을 가장 잘 만든 제품으로 공략할 수 있는 공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스타트업들이 크게 성장하면, 역으로 한국의 제조 업체를 인수하면, 업계에서 말하는 수직 통합을 통해서 더 큰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이런 사례를 우리가 직접 경험해보진 못 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K-제조 2.0이 시작됐다. 이런 긍정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한국이 계속 제조의 강국으로 남길 바란다.

K-제조 2.0 – part 1

스트롱벤처스에서 우리는 많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지만, 미국과 그 외 지역의 글로벌 회사에도 투자한다. 지금까지 우린 24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이 중 30%가 한국이 아닌 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대부분 미국이지만, 동남아나 유럽에서 사업하고 있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지역을 떠나 이 모든 회사가 가진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한국’이라는 큰 테마이다. 해외 스타트업도 한인이 창업한 회사들이고, 한국이 잘하거나,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입증된 컨셉을 기반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이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다 보니, 한국이 전통적으로 잘하고,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제조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가 투자한 꽤 많은 스타트업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D2C /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하는데, 자체 제작하기보단 대부분 한국의 공장에 OEM을 맡기고 본인들의 브랜드로 판매한다. 뒤에서 이들의 제품을 직접 만드는 제조 분야를 보다 보니,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배우고 있다.

일단, 한국은 정말로 제조 강국이 맞다. 굳이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재벌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좋은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만들고 있는 중소 제조업체와 공장이 이 작은 나라에 정말로 많다는 걸 매번 느끼고 있는데, 어떤 제품은 중국보다 더 저렴하게 만들고, 어떤 제품은 독일이나 일본보다 더 견고하고 우수하게 만드는 공장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라고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기반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스트롱 투자사들이 꽤 많은데, 이 중 어떤 회사는 한국이 원래 잘하는 거로 유명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고, 어떤 회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이 잘하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화장품은 한국이 원래 잘 만드는 거로 유명하다. 뉴욕에 있는 Cardon은 한국에서 제조한 남성용 뷰티 제품을 북미 시장에서 잘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율립은 한국에서 제조한 클린 뷰티 립스틱을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한국이 화장품 제조 강국이라는 점은 굳이 내가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많은 업계 관계자가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도 화장품 제조 강국으로의 포지션을 우리가 계속 잘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한국이 잘 만드는 게 또 있다. 아니, 굉장히 많다.
우리 투자사 옵틱라이프는 루킹굿이라는 콘택트렌즈 이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데, 자체 렌즈 브랜드도 같이 판매하고 있다. 우린 이 회사를 검토하면서 이 시장의 여러 가지 문제점과 재미있는 점을 동시에 발견했는데, 한국이 콘택트렌즈 제조 강국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왠지 유럽이나 일본에 OEM 생산을 의뢰할 것만 같은 렌즈같이 정교한 제품도 한국의 공장에서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또 다른 우리 투자사는 뉴욕에 있는 Issawrap이라는 스타트업이다. P.S. Condoms라는 브랜드를 이커머스로 판매하고 있는데, 이름에서 금방 알 수 있듯이 콘돔을 섭스크립션으로 판매하는 서비스다. 그리고 이 제품은 한국에서 만들고 있다. 이 회사를 우리가 검토하면서 비즈니스 모델 면에서도 미국의 Dollar Shave Club과 유사성을 많이 봤는데, Dollar Shave Club의 면도기도 한국의 도루코에서 생산하고 P.S. Condoms의 콘돔도 한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 회사의 창업가들 말에 의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콘돔을 가장 잘 제조하는 기술과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콘택트렌즈와 콘돔뿐만이 아니다. 제조업이 과거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이었던 한국이 만드는 제품 중 글로벌 시장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제품과 시장이 이 외에도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고, 이런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딩, 마케팅, 그리고 판매할 수 있는 좋은 창업가들과 연결되면 엄청나게 큰 비즈니스가 여러 개 나올 수 있다고 난 요새 생각하고 있다.

K-제조 2.0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우린 가장 앞단에서 한국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이런 큰 흐름을 요새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다.

요샌 글을 길게 안 써서, 이번 포스팅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포스팅에서 내 생각을 더 텍스트화해 보겠다.

저전력 모드

올해 내내 불경기가 지속될 것 같고, 이런 시장 상황을 감안해서 투자자들이 매우 보수적으로 자금을 집행하고 관리하고 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대표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거나, 주변에 있는 다른 대표들한테 요새 투자 받는 게 얼마나 힘들고, 받더라도 원하는 조건의 투자를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을 것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 다 힘들어하고 있다. 이 힘든 시기에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야할지, 편딩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그냥 어떻게 하면 올해 살아남아서 내년에 다시 성장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을지, 이런 고민을 모두 다 하고 있고, 우리에게 자주 물어보면서 미팅을 요청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정답을 줄 수가 없어서 항상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나도 자주 말하지만, 우리가 스트롱을 시작했던 2012년도 이후 2023년까지 경기가 나빴던 해가 실은 없었다. 살짝 경제 위기가 올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운 좋게 경기는 나름대로 계속 좋았기 때문에 투자하기엔 너무나 좋은 지난 10년이었다. 우리도 투자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경험하는 불경기라서 나도 참고할 과거의 경험이 없어서 나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 VC들에 조언도 구하고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있지만, 이분들도 모든 불경기가 다르고, 모든 회사가 다르기 때문에 아주 뾰족한 답을 제공해주진 못한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시기엔 돈을 최대한 아끼고, 확실한 매출이 예상되는 일이 아니라면 새로운 걸 벌리지 않는 게 정답이라는건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요새 우리 투자사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거의 매일 하고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런웨이가 6개월 정도 남았을 때 펀딩을 시작하면 그래도 돈이 떨어지기 전에 투자받을 수 있었지만, 이젠 불면증 걸리지 않고 사업하려면 12개월 이상의 런웨이를 확보해 놓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인위적으로 런웨이를 확보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고통스럽다.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비용을 줄이는 게 더 쉽고, 스타트업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은 정리해고다. 최근에 내가 몇몇 대표들에게 직원 수와 상관없이 가능하면 회사 인력의 절반을 정리하라고 조언하고 있는데, 실은 직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돈이 꽤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의 절반을 내보낼 정도로 우리가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대표들은 다시 한번 심사숙고 해보길 바란다.

오랜 기간 동안 한 방향만 보면서 열심히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해고하는 것 자체가 정서적으로 힘들지만, 실은 대표이사들이 또 고민하는 게 있다. 이렇게 많은 인력을 내보내면, 매출 자체가 줄어들 것이고, 성장이 정체되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매출이 줄어들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면, 투자받는 건 더 힘들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정리해고에 대해서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나는 그래도 무조건 하라고 한다. 사람을 절반 이상 정리하면 매출은 줄어들겠지만, 비용은 더 줄어들 것이고, 이렇게 하면 BEP를 맞추면서 동시에 운이 좋으면 흑자 전환할 수 있다. 그 어떤 VC도 성장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걸 꺼리겠지만, 투자는 나중에 고민할 일이고, 일단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사업을 유지하면서 살아남으면서 다시 성장할 방법을 계속 모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핸드폰이나 노트북의 배터리가 거의 다 소모되면, 불필요한 기능과 프로세스를 다 죽여서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저전력 모드라는 게 있다. 나도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고, 휴대용 충전기가 없으면, 되도록 폰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정말로 필요한 이메일과 카톡만 확인하면서 충전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저전력 모드에서는 페이스북이나 쓸데없는 브라우징 같은 건 아예 하지 않는다.

많은 스타트업 대표에게 지금이 이렇게 저전력 모드로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시기이다. 불필요한 모든 비용을 최소화하고, 재충전이 가능한 시점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정말로 해야 할 일만 해야 한다.

얼마 전에 내가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내용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개인적인 의견과 스트롱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내용이지만, 다른 VC 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포트폴리오 대표들에게 할 것이다. 파이팅.

요새 내가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많이 하는 말:
1/ 불경기에 성장은 쉽지 않다. 성장 안 해도 괜찮다.
2/ 그래도, 가급적이면 수치가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면 좋겠다.
3/ 수치가 떨어지더라도, 너무 많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면 좋겠다.
4/ 불경기에 펀딩 어렵다. 무리하게 펀딩 시도하지 말아라.
5/ 지난 라운드랑 동일한 밸류인 flat round도 괜찮다. 요샌 이렇게 받아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6/ 지난 라운드보다 낮은 밸류인 down round도 괜찮다. 돈 주겠다는 귀인이 있으면, 그냥 무조건 받아라.
1/ ~ 6/번의 내용이 자신만만하고 야심 찬 창업가들에겐 김빠지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서 속상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존심 상하고, 속상해하려면, 일단 회사가 있어야 한다. 회사가 망하면 자존심도 안 상하고 속상할 일도 없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거다. 2024년까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자. 그리고 그 이후에 다시 성장이나 펀딩이나 밸류에이션 이야기를 해보자.

투자의 본질

얼마 전에 내가 ‘긍정의 단련’이라는 글을 썼는데, 이 글을 보고 나에게 따듯한 메시지를 많은 분들이 보내주셨다. 요새 워낙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 마인드를 가지고 계속 사업을 하는 창업가분들을 나는 지지하고 응원하고 존경한다는 내용이었고, 이 글의 내용은 100% 진심이다. 실은, 시간이 갈수록 창업가들과의 접점이 더 많아지고, 새로운 창업가도 많이 만나지만, 오래된 창업가분들을 계속 볼수록, 이들에 대한 존경심은 더욱더 깊어진다. 사업을 하는 분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DNA를 가진 분들인 것 같고, 나는 왠지 이런 분들에게 끌리는 DNA를 가진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신 몇 분들은 내가 “따뜻하고” , “인간적이고” , “다른 VC는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스트롱은 다른 것 같은” 투자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마치 내가 돈과는 상관없는 따뜻한 투자를 하는 자선사업가인 것처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에 많은 분들이 나한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회사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는데, 간혹 보면 돈을 버는 것과는 상관없는 비영리사업에 투자 검토를 해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이번에 쓰신 글을 보면, 스트롱은 확실히 다른 투자자들과는 다른 것 같아서”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우리는 차가운 투자자보단 따뜻한 투자자에 훨씬 더 가까운 게 맞다. 아무래도 초기 투자를 하다 보니, 제품과 시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딱 하나의 투자 기준만 선택하라면 당연히 ‘사람’이기 때문에 따뜻한 마음으로 투자를 접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따뜻한 접근이 돈과는 상관없는 접근이라고 생각하는 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고 이분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철저한 자본주의자이다. 남한테 돈을 받아서, 이 돈을 다른 분들에게 투자하는 사람들이고, 이렇게 할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투자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버는 것이다. 실은 우리의 밸류체인에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LP도 스트롱에게 투자하는 금액보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이 돈을 우리는 스트롱의 포트폴리오 회사에 투자하고, 우리 또한 우리가 투자하는 금액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들도 결국엔 스트롱의 투자를 받아서 회사를 키우고, 큰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사업을 하는 것이다. 물론, 돈이라는 것으로 모든 걸 너무 단순화하긴 했지만, 솔직히 투자는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니라 단순한 것이다.

이렇게 먹고 먹히는? 투자의 사슬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따뜻한 투자를 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인간관계가 당연히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 다 같이 돈을 벌어야지만 이 관계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결국엔 사업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이고, 투자의 본질도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이다.

번아웃도 이기는 성과

작년에 많은 창업가들이 번아웃을 경험했을 것이다. 번아웃의 의미가 워낙 광범위해서 그냥 피곤한 것도 번아웃이라고 하지만, 심각한 공황장애나 우울증 또한 번아웃에 포함된다. 육체가 너무 피곤해서 오는 번아웃 현상은 휴식을 취하면 좋아지지만, 정신이 피곤해서 오는 번아웃 현상은 그냥 쉰다고 바로 개선되진 않는다. 특히, 이런 번아웃 현상이 아주 오랫동안 쌓이기만 했다면, 육체는 물론 정신이 매우 피곤해지는데, 이걸 그냥 방치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한 정신병으로 번질 수도 있다.

작년에 이런 번아웃 현상을 호소하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나는 요새 대표들 만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대표님 요새 정신은 괜찮으신가요?”이다. 그리고 전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좀 민망했고, 이런 질문을 받는 분들도 불편해했지만, 이젠 정신병이 감기와 같이 누구나 다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편안하게 이런 정신 건강에 대해서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스타트업 대표나 직원들이 번아웃 증상을 호소하면, 일단 좀 쉬어야 한다. 되도록 회사에서 좀 멀어져야 하고, 업무 생각을 하지 말고 필요한 만큼 휴식을 취해야 한다. 어떤 대표는 공황장애가 너무 심하게 와서 가족들과 한 3개월 동안 제주도에서 휴가를 보냈다고 하고, 어떤 스타트업 팀장은 우울감이 너무 커져서, 한 달 동안 휴직하고 집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운동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런 경험이 있거나, 같은 회사 또는 주변에 이런 경험을 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일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일이 인생보다 먼저 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인생이 위험해지면, 일단은 일을 좀 손에서 놓고 무조건 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분들이 공통으로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회사 상황이 어렵거나, 일이 잘 안 돼서 오는 스트레스와 번아웃은 아무리 오랫동안 휴식을 취해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오히려 본인들에겐 일을 안 하고 쉬는 것 자체가 더 큰 번아웃을 유발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어떤 분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두 달 동안 가족들과 멀리 강원도로 휴가를 갔고, 이 기간에는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아예 안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업무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더 큰 공황장애를 유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을 해도 힘들고, 일을 안 해도 힘들어서 돌아버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도 참 안타깝게 들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미안하지만, 스타트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대표나 직원분들의 번아웃을 한 방에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성과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과는 매출이 될 수도 있고, 유저증가가 될 수도 있고, 엄청난 제품 출시가 될 수도 있고, 또는 대규모 펀딩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야기했던 많은 분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많은 스트레스와 번아웃 증상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걸 경험했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컬 한 건, 이런 성과가 제대로 나오기 시작하려면, 엄청난 스트레스와 번아웃 증상이 쌓이고 쌓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