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하던 거나 잘하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 정부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부인할 수 없는 fact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도 모태펀드의 돈을 받았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 VC는 금액은 차이 나지만, 정부의 출자를 받아서 이 돈을 민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우리 같은 민간 조직보단 느리고, 제약 사항이 있어서 명확한 한계가 있지만, 이렇게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서 노력하는 대통령과 그 밑에 있는 분들한테는 비난보단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래도 항상 아쉬운 부분은 있는데, 내가 그동안 정부 관계자분들과 이야기하고, 같이 일하면서 항상 조언하고, 가끔은 화도 냈던 몇 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최근 수개월 동안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발표하고 시행한 많은 정책과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직은 갈 길도 멀고, 해야 할 일도 많다는 걸 느끼면서 몇 자 적어본다.

일하면서 누구한테나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역할과 분수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스타트업 생태계와 함께 일 하면서, 항상 지켜야 하는 제1의 원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정부는 leader가 아니라 feeder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는 말 그대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앞장서서 이끄는 사람/기관인데, 이 역할은 항상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 또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 피더는 리더들이 생태계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옆에서 여러 가지 도움과 지원을 제공(=feed)해주는 사람이다. 주로 정부, 대학, 기관, 대기업 등이 이 피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벤처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한데, 한국에서 앞으로 몇 개의 유니콘을 만들겠다는 발표를 할 때마다 나는 정부가 피더가 아니라 리더를 자칭하면서, 분수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부는 리더가 절대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리더들의 가장 큰 특징이자 필수조건은 ‘입으로 하는 리딩’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리딩’인데, 정부는 태생적으로 행동이나 실행과는 거리가 조금 멀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보단 훨씬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정부에서 발표하는 창업 지원정책은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보면 스타트업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걸 느낀다. 담당자들이 스타트업에 대해서 너무 몰라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미안하지만, 이 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혀 발전이 없는 부분이다. 스타트업 경험을 못 한 정부 담당자들은 – 그리고 대부분 스타트업 경험이 없다 – 사업을 시작하고, 미친 듯이 정신적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참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른다. 책으로만 습득하고, 본질을 파악하지 못 하는 주변 지인을 통해서 들은 얕은 지식을 정책에 적용하려고 하니까 이런 일이 항상 발생한다. 이건 어떻게 개선의 여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이게 우리한테 가장 필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장기적인 꾸준함과 인내를 갖고 정책과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킬 수 있는 배짱과 끈기를 가진 공무원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정책이란 것 자체가 긴 호흡을 갖지 못한다. 특히 한국은 더 그렇다. 5년짜리 단임제 대통령, 그리고 1년이 멀다 하고 자리가 바뀌는 정부 관료들의 숨은 절대로 긴 호흡을 가지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한 3개월 동안은 새로운 정부에 적응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아무런 활동이 없다. 그다음 6~8개월 동안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담당자들이 바뀌고, 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만들고, 발표한다. 일단 이러면서 1년이 지나간다. 남은 4년 중 3년 동안 새로운 정책들이 부분적으로 실행되고, 마지막 1년은 또 그다음 정권 준비한다고 날아간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정부 관료들은 3년 동안 무조건 실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서 큰 착각이 발생하는 거 같다. 이 실적이라는 게 범국가적인 실적이 되어야 하는데, 정부 관료들은 “내 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이러다 보니, 담당자가 바뀌면, 이전의 정책과 프로그램이 아무리 잘 돌아가고 있어도, 백지화시키고 나만의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고 도입한다.

스타트업은 장기 마라톤이다.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길게는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벤처를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설계하려면, 이런 스타트업의 주기를 잘 이해하고 이 주기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 실은, 정부에서 만든 정책 중 꽤 잘 만들었고, 잘 돌아가고 있는 것도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새 담당자가 오더라도, 자꾸 새로운 걸 하지 말고 그냥 원래 하던 거만 잘해도, 지금보단 훨씬 더 좋은 그림이 만들어질거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겸손하게, 매일 허슬하기

지난주에 포춘지에서 충격적인 기사를 읽었다. “How the Kleiner Perkins Empire Fell”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1972년도에 설립되어, 거의 30년 동안 실리콘밸리 최고의 명문 VC 명성을 유지했던 클라이너 퍼킨스의 몰락에 대한 내용이었다. 솔직히 이 VC가 과거에 비해서 좋은 회사를 많이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직감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몰락할 정도로 바닥으로 내려왔다는 건 이 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미디어가 항상 현실을 100%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포춘 정도면 신빙성 있고, 글의 내용 자체는 상당히 공감이 갔다. 기자가 쓴 다음 문장이 클라이너 퍼킨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 같다. “20년 전에 클라이너 퍼킨스는 벤처캐피탈 산업의 꼭대기에 우뚝 서 있었다. 요샌, 그냥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하는 여러 VC 중 하나일 뿐이다.”

오늘은 클라이너 퍼킨스가 왜 잘 못 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이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된다. 뭐, 기사가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고, 한때 거의 벤처캐피탈의 왕이라고 불리던 회사가 몰락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밑에는 너무 자만하고 방심했다는 이유가 깔려있지 않을까 싶다. 투자하는 회사마다 대박 나고, 주변에서 계속 칭찬하고 받들어주면, 아무리 겸손한 사람이라도 자만하기 쉽고, 이 자만심이 너무 커지면 다시 겸손해지는 건 굉장히 어려워진다. 아마도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스스로 다짐했다. 항상 겸손하게 행동하고, 마치 오늘 투자를 시작한 사람처럼 매사에 긴장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물론, 우리가 클라이너 퍼킨스랑 같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한참 멀었고, 어쩌면 아무리 잘해도 이 회사만큼 투자를 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래도 같은 일을 몇 년 하다 보면, 자기만의 일하는 스타일이 생기고, 나만의 방법론이 만들어지는데, 운이 좋아서 이런 나만의 방법으로 인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자만할 수 있고, 자만하는 그 순간부터는 절대로 올라갈 수가 없고 내려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실은 VC야 말로 자만하면 한 방에 훅 없어질 수 있는 직업이다. 왜냐하면, VC 산업만큼 ‘경험’과 ‘연륜’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는 분야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말하지만, 30년 경험 있는 파트너와 이제 갓 대학교를 졸업한 초짜 심사역이 투자한 회사 중 어떤 회사가 성공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즉, 경험이 많다고 일을 더 잘하는, 대부분의 다른 분야에서는 너무나 당연시되는 이 원칙이 투자업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가 많든 적든, 경험이 많든 적든, 모든 VC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항상 허슬링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클라이너 퍼킨스 기사를 읽고 요새 나는 다시 한번 바짝 긴장하면서 자신을 푸쉬하고 있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이메일 하나하나, 미팅 하나하나, 전화 통화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서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실은, 얼마 전에도 이런 계기가 있었는데, 타이거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무리 골프천재라도, 그리고 우승이 확실시되어도, 매 샷 마다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서 임하는걸 보고 나도 똑바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겸손하게, 언제나 허슬하다보면, 그리고 운이 억세게 좋으면, 가끔씩 대박도 나고 우승도 하는거 같다.

차이를 인정하기

우리도 요새 새 펀드를 만들고 있고, 아무리 업력이 좀 있고, 숫자가 나쁘지 않아도, 역시 남의 돈 받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거라는걸 매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좋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도 어렵지만, 투자하기 위해서 남의 돈 투자 받는 거에 비하면, 투자는 오히려 쉽다는 생각도 가끔 하고 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피칭할 때 느끼겠지만, VC도 매우 다양하다. 모두 성향이 다르고, 투자 분야, 스테이지 등에 따라서 선호하는 회사와 창업가가 다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같은 펀드에 출자하는 LP들도 모두 다르다. 이건 LP들 개인적인 성향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 회사의 역사와 색깔 등에 따라서도 아주 다르다는 점을 항상 느낀다. 예를 들면,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손실을 보호하는데(=downside protection) 너무 신경 쓰진 않는다. 초기 투자의 성격상 리스크가 크고 어차피 손실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모든 노력과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손실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초기 투자에서 홈런을 친다면 이 손실을 모두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을 좋아하는 LP도 있지만, 엄청나게 싫어하고 이런 투자를 이해하지 못 하는 LP도 있다.

한국과 외국 LP 간에도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한국 LP는 거의 물어보지 않지만, 해외 LP는 항상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스트롱벤처스 파트너들의 파트너십이 정말 strong 하냐? 내가 돈 맡겼는데, 너희 둘이 싸워서 파트너십이 깨지면 어떻게 하냐?” 이다. 우리 회사와 펀드의 수익률 등의 정량적인 수치도 당연히 중요시하지만, 내가 요새 느끼는 건, 큰 해외 LP는 수치보단 이런 파트너십의 역사와 견고함에 엄청 신경 많이 쓴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많은 VC가 만들어졌다가 다시 해체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VC의 실적보단, 파트너십의 문제 때문이다. 파트너들이 서로 싸워서 헤어지면서, VC가 해체되는 걸 나도 꽤 많이 봤는데, 결국 이들을 믿고 돈을 맡긴 LP 한테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된다. 또한, 담당 파트너가 만약에 회사를 나갔다면 투자사들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져서 곤혹을 치르는걸 많이 봤다(전문용어로는 ‘고아’가 됐다고 한다).

실은, 이 질문을 받으면 나랑 존의 파트너십은 아주 탄탄하다는 걸 뭔가 정량적으로 증명하는 게 쉽진 않지만, 내가 강조하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긴 하다. 일단 우리 둘을 모두 아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우린 정말 다르다. 성향도 다르고, 회사에 대한 시각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성격 자체도 아주 다르다. 이런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사업을 하다 보면 엄청 많이 부딪히고, 엄청 많이 싸우는데, 우리도 실은 그렇다. 8년 동안 맨날 싸웠고, 서로 동의하지 못했고, 요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파트너십은 더욱더 strong 해졌고, 앞으로 더 strong 해질 것이다. 여기엔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일단 우린 비즈니스 동료이기 전에 초등학교 친구라는 점이 강하게 작용하는 거 같다. 워낙 어릴 적부터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자랐기 때문에 – John은 내 세컨드 와이프라는 농담도 자주 한다 – 아무리 의견 차이가 커서 대판 싸워도, 파트너십이 안 깨진다. 그리고 올해로 우리가 8년째 스트롱을 같이 운영하다 보니, 이미 그동안 너무 많이 의견충돌하면서 서로를 솔직하게 경험했고, 이게 8년 동안 지속하다 보니까 이젠 웬만하면 금이 가지 않는 파트너십이 만들어진 거 같다.

이렇게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하면서 같은 방향을 보고 비즈니스 하는 걸 잘 표현한 영어가 있는데 바로, “agree to disagree”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동의한다는 의미이며, 역사가 오래된 VC 파트너십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브랜드를 갖고 비즈니스를 한다는 건, 파트너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 같다. 하지만, 같은 방향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천천히 가고, 어떤 사람은 빨리 가고, 어떤 사람은 지름길을 택하고, 어떤 사람은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이런 방법론에서 상당히 많은 fine tuning이 필요한데, 여기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매우 중요한 거 같다.

우린 이제 VC로서 8살이 됐다. 솔직히 8년 경력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한국은 찾기 힘들지만, 미국의 경우 파트너십의 역사가 20년 이상인 좋은 VC가 많은데, 이들에 비하면 우린 아직은 완전 주니어 VC이지만, 남이 만들어 놓은 하우스에 취직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하우스를 8년 동안 잘 지켰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잘하고 싶다.

같이 성장하기

우리 투자사 중 온라인 취미 클래스를 모바일로 제공하는 클래스101이 얼마 전에 꽤 큰 시리즈 A 투자 유치를 했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게 투자를 많이 받은 거와 회사가 성공하는 거랑은 상관관계는 약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큰 투자를 받으면 두 가지 측면에서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일단, 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내부 자신감이 강해진다. 그동안은 스스로 열심히 한다고 모니터만 보고,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누군가 외부에서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건, 이렇게 열심히 일 하는 게 헛짓은 아니라는걸 인정하는 거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다른 건, 이렇게 큰 투자를 받은 내용이 보도되면, 좋은 인재를 채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인재들은 몸값이 비싼데, 큰 투자를 받은 회사에 입사 지원 할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클래스101은 내가 직접적으로 알고 경험한 스타트업의 컴백 스토리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다. 아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재미있고, 술 먹으면서 즐겁게 안줏거리 삼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당시 힘들었을 때는 정말 절망적이었다. 이 컴백 이야기에 대해서는 내가 전에 잠깐 적이 있다. 클래스101 투자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나는 미국에 있는 강광욱 교수님한테 카톡으로 감사하다는 문자를 전했는데, 오늘은 강교수님과의 인연, 유니스트와의 인연, 그리고 클래스101 투자에 대해서 좀 써보고 싶다.

2015년 2월 나는 한국에 잠깐 출장 나와 있었는데, 여기서부턴 강광욱 교수님이 페이스북에 쓴 내용을 그대로 공유한다:

당시 한국을 출장차 방문 중이셨던 Kihong Bae 대표님은 바로 답장으로 (2월 11일 밤 11시경) 유진과 나에게 이메일을 주셨다. 마지막 문장이 “I am actually in Korea right now but leaving on 15th back to LA. Would love to talk / email with you.”
방학이었던 나는 메일을 받고 바로 전화를 했는데 미팅중이었던 터라, 다음날 (2월 12일 밤 11시경)에 답변을 쓴다. “배기홍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그리고 일정이 맞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2월 15일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 2층 어느 한식 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한 시간 여의 짧은 만남을 하게 된다. 창업교육센터를 시작하면서 답답한 마음에 처음 읽었던 책이 ‘스타트업 바이블’이었는데 당시 배대표님의 첫 소개 말씀이 ‘스타트업 바이블’이라는 책을 썼다 하셔서, 아 그럼 혹시 중앙대 출신 아니시냐며 여쭙다가 동문 선배님임을 알게 되었다. 그날 UNIST의 특강을 요청드리고 다음에 한국 나오실때 (당시에 LA에서 거주 하셨음) 울산에 와주십사 요청을 드렸는데 공항까지 쫓아나와준 수고로움 탓인지 기꺼이 응해 주셨고, 다음달인 3월 9일 UNIST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처음 강의를 해주셨다.

그날 공항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중 하나가 내가 잘은 모르지만, 뭔가 실속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데 도와주시라! 였다. 기계연에서 일하면서 정부 프로그램 들의 보여주기식을 좀 알던터라 그리 말씀드렸는데, 당시 Strong Ventures는 초초기 투자를 하고 있었고 남들이 서울할 때 지방의 가능성을 보고 계셨다.

아마도 ‘스타트업 바이블’ 책에서 그 고충과 치열함을 봤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학교라는 인연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짧은 만남의 강렬한 인상때문일까.. 나 역시 자연스레 의지한 부분이 있었고,
서울에서 beGlobal 서울 컨퍼런스가 있는데 학생들과 와보면 어떻겠냐는 배대표님 말씀에 버스 한대를 이끌고 울산에서 DDP까지 가서 보면서 그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이 무모함이 아마 배대표님께도 조금은 믿음을 주었던지 그 이후 계속 Skype 통화를 하면서 UNISTRONG이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었다.

학생들 선발, 지원금, 숙소 선정, 비행기 등 한번도 대규모로 학생들에게 지원을 해준적도 없고 무모 했는데, 우한균 교수님은 뭐 해보지뭐, 내가 알아서 할께 해봐! 라고 하셨던것 같고 배대표님과 나의 실험은 그렇게 한발작씩 나가게 된다. 그 첫해 프로그램에 뽑힌 팀이 페달링, NPC, 그리고 Nspoons. 페달링과 엔스푼즈는 이미 교내에서 두각을 날리던 팀이라 이 팀이 해외연수(학생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던것 같다. 해외연수로)가 아닌 Incubating을 가는데 상당히 반발이 있었던 것 같다.

여튼 그렇게 인연을 맺게되어 아마 학생들도 Strong Ventures의 배기홍 존남 대표님께서도 처음 프로그램이라 더욱더 많은 시간을 쏟으셨던것 같다. 4주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직접 내가 LA에 가서 보고 학생들과의 1:1 면담, 문제점 등을 물어보았고, 다들 힘들지만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때 LA의 한 소주방에서 노래방 기기(?)를 앞에 두고 소주와 김치찌게가 놓인 긴 방에서 한국/미국인 투자자를 모시고 Pitching하던 장면도 잊을수가 없다. 배대표님께서 조금 웃기죠? 하시며 민망해 하셨던것 같은데 아무렴 어떠냐, 다들 저렇게 진지한데 라고 답변 했던것 같다. 다음날 아마 Strong Ventures와 StudyMode에서 페달링과 엔스푼즈에 5천만원 정도로 투자할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위의 강교수님 이야기를 내 버전으로 다시 해석을 좀 해보면…실은 한국 출장 나오면 엄청나게 바빠서, 원래 계획에 없던 미팅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게 내 원칙이다. 주로 5일 한국 출장 나오면, 오찬 미팅부터 시작해서, 저녁 1차, 2차 까지 하면 하루에 미팅을 7개 정도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한 3일 차 정도 되면 빨리 마무리하고 집에 가고 싶을 정도로 바쁘고 정신이 없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유니스트라는 학교의 교수가 시간을 내달라고 하니까 당연히 귀찮기도 하고, 몸도 피곤하니까, 다음에 한국 다시 나올 때 그때 보자고 한 거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사람은 그냥 포기하는데, 강교수님은 좀 집요했다. 결국, 이분은 이번에 만나지 않으면 LA까지 쫓아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국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잠깐 보기로 했고, 그 만남으로 인해서 유니스트와의 인연이 생겼고, 좋은 유니스트 창업가 회사들에 투자하게 됐다(클래스101, 엔스푼즈/헤이마일로, 10B/씀).

클래스101 후속 투자로 인해 스트롱벤처스 투자사의 기업가치가 올라간 건 투자자로서 당연히 너무 좋다. 그런데 이런 밸류에이션을 떠나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건, 바로 2015년 2월 강광욱 교수님과의 첫 만남 이후, 4년 동안 우리 모두 같이 성장했다는 점이다. 클래스101 창업멤버들은 우리가 처음 투자할 때는 사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던 순진한 학생들이었는데, 이젠 기업의 미션과 가치에 대해서 나랑 이야기하고, 직원들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모티베이트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 4년 동안 진흙밭에서 구르면서 학생에서 사업가로 멋지게 성장한 것인데, 실은 나는 개인적으로 이게 너무너무 감동적이다. 뭐, 그렇다고 내가 뭘 해준 건 없지만, 그냥 옆에서 이 여정을 같이 한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강광욱 교수님은 이제 한국을 떠나 미국의 Salisbury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한국-미국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가장 좋은 네트워크와 산지식/산경험을 확보한 한국 교수님이 된 거 같다. 교편을 잡고 있는 교수님이지만, 내 눈에는 이미 본인은 entrepreneur로 성장하셨다.

나는? 나 또한 클래스101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일단, 사람의 힘은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누가 봐도 망한 회사를 이렇게 멋지게 컴백시킬 수 있었던 건 타이밍과 운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결국엔 이 젊은 친구들이 만든 작품이다. 그리고, 끝나기 전에는 끝나지 않았다는 다소 상투적인 이 말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남이 끝났다고 해도, 내가 끝나지 않았다고 하면, 아직은 끝나지 않은 것이고, 이런 자세와 마음가짐에서 변화는 시작되는 거 같다.

우리 모두 앞으로 같이 더욱더 성장하길.

즐기며 일하기

올해 초였던 거 같은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 22살의 종이접기 달인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됐다. 그냥 일반적인 종이접기가 아니라, “한장종이접기”라는 분야의 달인인데, 말 그대로 종이 한장을 자르거나 분리하지 않고, 도면 하나 없이 온전히 한 장을 접어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청년이었다. 일반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오타쿠의 경지에 오른 이 젊은 친구가 한장종이접기 하는 걸 보면 정말 예술 그 자체였다. 원래 이 프로는 내가 보는 방송은 아니지만, 이날만큼은 TV에 눈을 고정하고 끝까지 다 봤다. 전에 내가 올렸던 텀블러 창업가 David Karp의 부모님같이, 이 친구의 어머니도 일반 한국 부모님과는 달리,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아들을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이 친구가 여러 번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프로젝트가 바로 호랑이 접기 였는데, 이 프로에서 다시 한번 도전을 하고, 여러 번 실패 후, 성공했다. 성공하면서 이 주인공은 “어떤 것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죽을 때까지 종이접기를 할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종이접기를 제일 좋아하니까 그만둘 생각은 없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은 나한테는 울림이 매우 컸던 거 같다. 이 말을 하면서 이 청년의 얼굴에서 내가 봤던 그 뿌듯한 성취감과 기쁨의 표정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 같다. 내가 일하는 이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대부분의 창업가는 하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기 때문에 힘들어도 버티면서 계속 전진하지만, 이런 완벽한 성취감의 표정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즐기면서 일하고, 하는 일을 즐겨라”라는 말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고, 이게 틀렸다고 하는 전문가도 많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이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 이 말이 틀렸다면, 내가 가장 가까이서 매일 보는 창업가들은 미친 사람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좋은 학교 나오고, 그 좋은 직장 다니다가,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원으로 사업을 한다는 건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다. 그래도 이분들이 힘든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 하는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물론, 즐긴다고 다 잘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비현실적이고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일을 하려면, 최소한 그 일을 즐겨야 한다.

우리 집 앞에 내가 애용하는 이발소가 있다. 바버는 젊은 청년인데, 아직 경험도 적고, 돈도 별로 없어서, 좌석 3개짜리 미용실의 자리 하나를 바버샵으로 개조해서 운영하는데, 개업 첫날 부터 나는 다니기 시작했고, 이젠 꽤 친해져서 이발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이 친구도 사업에 관심이 많아서, 언젠가는 독립해서 바버샵을 차릴 계획을 갖고 있고, 소위 말하는 unit economics에 대해서 우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발소 같은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돈벌이가 이발사가 일하는 절대적인 양에 비례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와 같이 크게 확장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친구도 당연히 그 말을 잘 이해하고 있고 나한테 다음과 같을 말을 했다. “그렇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바버를 오랫동안 즐기면서 하려면 노동 자체를 즐겨야 해요. 노동을 싫어하는 사람은 바버를 절대로 오래 못 하죠.”

농구선수였던 서장훈씨는 일을 즐기면서 하라는 말을 버릇처럼 반박하면서 그건 말도 안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서장훈씨가 신체적으로 월등했지만, 농구선수로서의 커리어는 그렇게 빛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하는 일을 즐기지 못해서 그랬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