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1.07%

스타트업을 하는 게 힘들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유니콘이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라 극히 드문 아웃라이어라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다. 이제 8년이 된 우리 첫 번째 펀드의 경우, 5년 뒤에 거의 절반의 스타트업이 망한 걸 보면, 스타트업 생존율은 정말 낮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CB Insights에서 Venture Capital Funnel이라는 제목으로 스타트업의 생존 관련한 다양한 수치를 트래킹하는데, 나는 이걸 흥미롭게 읽고 있다. 참고로 2015년 12월에 처음으로 이 연구를 시작했고, 그 이후 2017년 3월, 그리고 2018년 9월에 동일한 샘플을 대상으로 세 번째 조사를 했다.

2008년~2010년 사이 미국에서 시드펀딩을 받은 1,119개의 스타트업이 시드펀딩을 받은 후, 후속 투자를 어떻게 받고, 몇 개의 회사들이 살아남는지를 계속 트래킹했는데, 이 중 67%의 스타트업이 특정 시점 이후 후속 투자를 못 받아서 엑싯에 실패하고, 15% 만이 4번째 펀딩(주로 시리즈 C)에 성공했다고 한다. 몇 가지 결과는 다음과 같다:
–1,119개 회사 중 거의 절반인 48%가 시드펀딩 이후 첫 번째 후속 펀딩을 받는다.
–67%가 망하거나, 좀비 회사가 되거나, 또는 먹고사는 회사가 된다(먹고 사는 건 회사에는 좋지만, 투자자한테는 전혀 아니다). 또한, 이 먹고사는 회사는 수년 동안 근근이 먹고 살다가, 결국엔 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30%가 IPO나 M&A로 엑싯을 했다.
–위의 30% 중 13개의 회사가 5,000억 원($500M) 이상으로 엑싯했는데,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이 1조 원에 인수), 젠데스크($632M IPO)와 트윌리오($1.1B IPO)가 여기에 포함된다.

자, 이제 모두가 관심 갖는 질문. 도대체 몇 퍼센트가 유니콘이 됐을까? 상당히 낮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단 높다. 12개의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됐는데, 1,119개 회사 중 1.07%이며, 우버, 에어비앤비, 슬랙, 스트라이프 등이 이 유니콘들이다.

뭐, 이 연구 결과에서 특별한 배움이 있거나, 교훈이 있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미국이랑 한국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라서, 딱히 한국의 창업가들이 뭔가를 벤치마킹하고 배울 수 있는 건 없지만, 여기서 말하는 큰 결론은 미국이나 한국의 스타트업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투자받는 건 정말 어렵지만, 좋은 회사라면 그래도 어떻게 해서 첫 번째 투자는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속적으로 후속 투자를 받는 회사의 수는 급격하고 감소하고, 이 중 1% 만이 유니콘이 된다는 결과는 참 맥빠지는 수치지만, 그만큼 치열하고 어려운 분야이니 더욱더 허슬링하고 열심히 하게 만드는 자극이 될 수도 있는 거 같다.

어설픈 제품

얼마 전에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하는 대표님이랑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도 하드웨어 하는 회사에 몇 번 투자해봤는데, 참 어렵고,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하드웨어 창업가들한테 내가 항상 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는데, “Hardware is hard(하드웨어는 어려워요)”랑 “하드웨어로 돈 버는 회사는 딱 한 개 있는데, 애플이라는 회사다”이다. 그만큼 뭔가를 물리적으로 만들고, 이걸 판다는 게 어렵다는 뜻 인 거 같다.

그리고, 웬만한 제품은 중국이 아주 싸고 빨리 카피하기 때문에, 하드웨어는 진입장벽이 너무 낮은 비즈니스가 아니냐는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분이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 100년 역사를 가진 독일의 하드웨어와 중국이 6개월 만에 카피해서 훨씬 싸게 파는 제품이 겉으로는 똑같이 생겼지만, 실제로 사용을 해보면, 그 허접함이 바로 탄로 난다는 이야기였다. 눈으로만 보면 동일하지만, 사람이 직접 사용해봤을 때 느끼는 그 미묘하고 정교하고 예민한 차이점이 – 별거 아닌 거 같지만 – 좋은 제품과 어설픈 제품을 차별화하고, 훨씬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여기서 결정된다고 한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예를 들었느냐 하면, 독일은 0.1mm 차이에 신경을 쓰고, 일본은 0.3mm, 미국은 0.5mm에 관해서 이야기하지만, 중국은 1mm에 대해서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아직도 German engineering이라는 말이 하드웨어 쪽에서는 의미가 있고, 중국이 더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만큼 독일과 일본은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공을 들이고, 겉으로 보면 다 똑같지만, 시장은 이런 미묘한 차이를 잘 알고 있는 거 같다.

미팅이 끝나고 나는 우리 투자사들이 만드는 제품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소프트웨어든 하드웨어든, 이런 완벽함을 추구하는 대표의 집요함과 의지는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건인데, 우리 투자사 대표들도 다 이 기준을 통과하진 못 한다.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만드는 제품 중 내가 봐도 정말 어설픈 제품도 많다. 그리고 워낙 뛰어난 창업가들이 많고, 이들이 완벽한 제품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런 어설픈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서 있을 자리는 점점 더 없어지고 있다. 어설픈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들은 이 사실을 빨리 깨닫고, 항상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치열하게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

“이 정도면 충분해” , “어차피 우리 경쟁사도 우리랑 비슷해”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쩌면 나는 스스로 속일 수 있을지언정, 시장은 절대로 못 속인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어설픈 제품을 만들 거면,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

무엇 보단, 누구

동일한 사업을, 동일한 시장에서 하는 회사가 두 개 이상이 있는데 – 어떤 경우는 10개가 넘는다 – 어떤 회사는 너무 잘 되고, 어떤 회사는 잘 안 되는 현상을 우린 자주 경험한다. 실은 이유는 너무 많다. 겉으로 봤을 때는 완전히 똑같은 비즈니스 같지만, 실제로 깊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경우도 많고, 크게 보면 같은 시장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지갑을 열어서 돈을 내는 고객은 다른 경우도 많다. 그런데 정말로 동일한 시장을 대상으로, 똑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인데, 한 회사는 일등이고, 다른 회사는 꼴등인 경우가 있는데,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정말 누가 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거 같다.

투자하는 사람들은 “뭘 하냐 보단, 누가 이걸 하냐가 정말 중요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나도 실은 입으로는 이 말을 그동안 해 왔지만, 실제로 몸이나 마음으로는 이게 정확히 어떤 말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우리 투자사가 동일한 비즈니스를 하는 경쟁사보다 월등하게 잘하거나, 또는 월등하게 못 하는 걸 보면서, 어떤 비즈니스를 하거나, 어떤 시장에 있거나, 어떤 제품을 팔거나,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이걸 누가 하냐라는걸 최근에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실은 잘못하고 있는 우리 회사들이 더 많지만, 그래도 여기선 잘하는 회사를 예로 들고 싶다. 한국에서도 워낙 미디어를 많이 타서,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거 같은데, Morning Recovery라는 숙취 해소 드링크를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More Labs의 이시선 대표의 올해 3월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올해 예상대로 매출 2,000만달러를 돌파하면 원조인 한국 숙취 해소 음료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국내에서 ‘여명808’을 만드는 그래미의 2017년 매출은 310억원이다. 향후 2~3년 안에 원조(元祖)를 제칠 가능성도 높다.” 올해 과연 이 매출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앞으로 3년 안으로 원조를 제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여명 808이나 컨디션은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해봤고,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내가 직접 보고 아는 건, 두 회사/제품 모두 LA의 코리아타운을 벗어나지 못했고, 미국의 메인스트림 시장으로는 전혀 침투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같이 술을 별로 안 먹고, 회식 같은 걸 안 하기 때문에, 이런 숙취 해소 드링크를 위한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 다였던 거 같다. 그리고 이런 말이 “~카더라”라는 채널을 통해서 마치 정설과 같이 고정된 거 같다.

우리도 실은 이 회사의 비즈니스를 처음 접했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지만, 이시선 대표를 만나고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그 누구도 백인들한테 한국 스타일의 숙취 해소 드링크를 못 판 건, 시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걸 시도했던 사람들이 잘 못 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미국은 밀레니얼들이 가장 술을 많이 먹기 때문에, 한국과 같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아저씨 전략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색다른 메시징/패키징/마케팅으로 미국 학생들과 밀레니얼들을 대상으로 홍보와 판매를 시작했고, 이 전략이 잘 통했다. 숙취 해소 드링크로 시작한 회사가 이젠 Red Bull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회사가 되겠다는 큰 비전을 세우고, 조만간 두 번째 제품인 Liquid Focus를 출시한다. 모닝리커버리가 한국의 재료인 헛개 기반의 숙취 해소 드링크라면, 리퀴드포커스는 인삼이 재료인 에너지 드링크이다.

이런 걸 직접 옆에서 보고,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무엇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이걸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No, Maybe, 그리고 Yes

사진 2019. 5. 19. 오후 3 22 13대기업 라이프에도 적용되지만, 특히 벤처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거절(rejection)’에 익숙해져야 한다. 실은, 이건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지만 – 어릴적 갖고 싶은 장난감을 부모님이 사주지 않거나, 가고 싶은 학교에 떨어져서 못 들어가거나 하는 게 다 이 거절이라는 범주에 들어간다 –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스타트업을 하면서 남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NO’ 인 거 같다.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5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NO였고, 이에 따른 거절을 정말 많이 당했던 거 같다. 실은, 그땐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고, 우울하기까지도 했다. “이렇게 좋은 회사에 저 VC는 왜 투자하지 않을까” , “저 인간은 나보다 잘난 것도 없고, 운 좋아서 저 위치에 있으면서, 왜 나를 개무시할까” , “왜 이렇게 나는 되는 게 없을까” 뭐, 한번 거절 당할 때 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를 정말 괴롭혔고, 자다가도 이 생각을 하면 열 받아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깨달은 건, 스타트업하면서 YES를 NO보다 더 많이 들으면 오히려 진짜 이상한 거고, 내가 거절 당하는 건 내가 개인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배기홍’이라는 인간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비즈니스와 실적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거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나를 개인적으로 거절하고 무시하는 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자가발전 했던 거 같다. 좌절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리고 완벽하게 떨구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떨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가 이런 거절에 굉장히 무덤덤해지고 면역력이 생긴 사람이 됐다는걸 느꼈다. 그리고 미팅-피칭-거절이라는 과정을 하루에도 여러번 경험하다보니까 이젠 중요한 미팅이 있어도, 크게 기대하지 않고, 크게 기대하지 않으니까, 거절당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혹시나 잘 되도 크게 기뻐하지 않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최적화 된 태도를 스스로 개발하게 됐다.

그러다가 투자를 하는 VC가 되었고, 나는 스타트업을 할때보단 거절당하는 일이 없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자금을 모집하기 위해서 스타트업할 때 VC한테 피칭하듯이, 이젠 LP들한테 피칭을 해야 했다. 회사를 VC한테 피칭할 때는 뭔가 제품도 있고, 수치도 조금 있고, 이걸 기반으로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VC는 뭔가 수치를 만들려면 길게는 10년이 걸리는 업인 관계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오롯이 나와 존이라는 인간을 믿고 돈을 달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게 잘 될 리가 없었다. 결과는 엄청난 NO와 거절이었고, VC한테 뺀찌 먹을때와 LP한테 뺀찌 먹을때의 그 느낌이 묘하게 달랐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부족, 자존감 상실, 남에 대한 원망 등의 과정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P한테 거절 당하는 것 보다 그 빈도는 낮지만, 좋은 회사에 투자하고 싶은데, 대표이사한테 거절당해서 투자를 못 하는 경험도 몇 번 겪어 봤는데, 이 또한 꽤 자존심 상하고 순간적으로 좌절하는 상황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거절에 아무리 익숙하다고 해도, YES라고 할 줄 알았던 사람이나 기관으로부터 NO 라는 답변을 받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다. 특히, 연속적으로 거절을 당하면 – 심할땐, 30번 연속으로 –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육체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그런데도, 계속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데, 이럴 때 내가 스스로 다짐하면서 최면을 거는 말이 있다. 이는 아마도 많은 운동선수와 사업가가 이런 거절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NO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이 실제로 의미하는 건 NO가 아니라 MAYBE이다. 그리고 MAYBE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로 의미하는 건 YES이다. 여기서 핵심은, NO라고 말을 했을 때 이걸 MAYBE로 해석을 해서, 다시 일어나서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이고, MAYBE를 YES로 확실히 전환하는 방법은 또다시 일어나서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모든 거절을 이 프레임으로 생각하면, 거절이 결국엔 YES가 되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오늘도 많이 거절당하지만, 매번 다시 일어나서 NO가 MAYBE가 되고, MAYBE가 YES가 되는 스트롱한 하루가 되길.

투자자와 소통하기

투자자 – 투자사와의 관계를 많은 분이 결혼에 비유한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하는 거 같은데, 나는 우리 투자사와 스트롱의 관계가 결혼 정도까진 아니고,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명확한 비즈니스 관계가 더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책임이자 의무 중 하나가 서로 잘 소통하기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소통이라면 좀 애매하기도 하고 광범위한 뜻이 포함되는데, 창업가와 투자자 간의 소통 중,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간과되기 쉬운 게 투자자에 대한 비즈니스 업데이트/보고인 거 같다. 우리도 많은 회사에 투자했고, 투자계약서에 투자사는 투자자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비즈니스 업데이트를 제공하는 게 명시되어 있지만, 이걸 종교와 같이 잘 실행하는 대표도 있고, 아예 정기적인 업데이트는 안 하고, 특별한 일이 발생할때만 – 안타깝게도, 이 특별한 일이 주로 회사의 잔고가 거의 바닥났거나, 비즈니스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거나 하는 그런 나쁜 상황일때 – 연락을 하는 대표가 있다. 실은, 스타트업 운영하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고, 일만 해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지만, 나는 우리 대표님들한테 그래도 시간을 만들어서 투자자들한테 매달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투자자’는 단지 스트롱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그 회사에 조금이라도 투자를 한, 개인과 기관 모두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투자를 받았으면, 회사에 돈을 제공한 투자자들에게는 이 돈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비즈니스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업데이트를 하는 건 계약서를 떠나서, 너무나 당연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창업가의 업무 시간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많은 양의 보고를 너무 자주 해달라고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어떤 대표나 한 달을 마감하면, 비즈니스를 정리하고, 한 달 동안의 수치를 트래킹하고, 잘한 점을 정리하고, 잘 못 한 점도 검토하고, 현재 은행에 얼마의 캐시가 남아 있는지 등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좀 어색하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발생하겠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우리 비즈니스에 가장 중요한 KPI들이 나올 것이고, 매달 이 KPI를 모니터링하고 트래킹하면서 우리가 뭘 잘하고 있고, 뭐가 부족한지를 감이 아닌 객관적인 수치를 기반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정리하는 자료를 그냥 그대로 투자자들과 공유해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막 이쁘고 formal 한 자료를 만들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남을 위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비즈니스를 스스로 평가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만드는 그 내용을 그냥 공유하면 된다. 어떤 회사는 굉장히 자세하고 분석적인 자료를 만들기도 하고, 이런 자료를 보면 대표이사가 비즈니스를 이렇게 자세히 모니터링하고 트래킹한다는 사실에 우리도 가끔 놀랄 때가 있지만, 대부분 그냥 이메일로 내용을 공유한다.

이런 월간 업데이트를 투자자들과 공유하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그냥 커뮤니케이션의 빈도를 높이는 데 있다. 이 글의 초반에서 말했듯이,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대표의 특징은, 비즈니스가 급격하게 안 좋아질 때, 다급하게 연락이 온다는 점이다. 주로, 회사 통장에 한 달 치 월급 밖에 남아 있지 않거나, 직원이 대부분 퇴사해서 회사에 인력이 몇 명 안 남았을 때이다. 6개월 만에 이렇게 갑자기 연락이 와서 회사에 돈이 급하니까 투자를 검토해달라고 하거나, 다른 투자자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우린 당연히 적극적으로 같이 고민하고 도와주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 때가 많다. 일단 회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해서 소통하면서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잘 공유를 했다면, 투자자들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회사에 현금이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을 수개월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더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대표의 우선순위 넘버 원은 무조건 비즈니스, 제품, 그리고 고객이다. 이걸 소홀히 하면서 투자자들한테 보고하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건 우리도 원치 않은 거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매달, 매주, 매일, 검토하고, 트래킹하고, 모니터링하는 것 또한 위의 비즈니스, 제품, 고객이라는 상위 개념에 포함되는 중요한 일이고, 이걸 그냥 그대로 공유해 달라는 게 내 포인트이다. 만약에 이런 걸 전혀 하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문제가 있다. 나는 우리 투자사들한테 이런 정기 업데이트 공유를 부탁하면서, 항상 포함해 달라고 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재 회사에 남은 현금 상황이다. 이걸 공유해줘야지만 투자자들도 다음번 펀드레이징은 언제부터 또 해야 하는지 같이 준비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회사가 투자자들한테 바라거나 부탁하고 싶은 내용이다. 이건, 좋은 엔지니어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이 될 수도 있고, 다른 VC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정기적인 보고나 업데이트를 잘 안 한다고 우리랑 연락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언제든지 연락은 되고, 내가 만나서 비즈니스 상황 업데이트를 받고 싶으면, 연락하고 만나면 되지만, 우리가 워낙 투자사가 많다 보니까, 나야말로 꼭 만나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주로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이메일을 통한 정기적인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