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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잡는 법

fish-3062032_1280스트롱과 같은 초기 투자자, 그리고 내가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와 같은 악셀러레이터는 단순 돈보다는 더 큰 도움을 스타트업한테 제공한다. 어떤 투자사는 체계적으로 제품 빌딩, 팀 빌딩, 투자유치 등과 같은 주제로 교육 코스를 만들어서 초기 창업가들을 도와주면서 포트폴리오 회사에 큰 부가가치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진 않지만, 이제 시작하는 회사가 필요한 여러 가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product market fit을 같이 찾고, 능력 있는 인재를 유치할 때 나도 그분을 면접하기도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스타트업이 성장할 때 가장 필요한 건 좋은 제품, 좋은 돈, 좋은 인재인데, 여기서 좋은 제품은 VC들이 아무리 도와줘도 한계가 있다. 제품 자체는 투자자보단 창업가들이 더 잘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VC들의 도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부분은 후속 펀드레이징과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이 성장을 잘 관리하고 가속할 수 있는 좋은 인재 소개 및 연결이다.

우리도 이제 투자사가 120개가 넘기 때문에, 모든 회사에 내가 이런 도움을 매일 적극적으로 줄 수가 없다. 마음이야 항상 회사의 co-founder와 같이 열심히 대표들과 같이 바닥에서 구르고 싶고, 체력도 아직 20대랑 맞짱뜰 자신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7년 전에 1호 펀드 하나만 운용할 때는 투자사가 별로 없었고, 우리 일도 지금같이 복잡하고 바쁘지 않았기 때문에, 존이랑 나랑 우리 투자사들과 정말 타이트하게 같이 일했고, 특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 회사들의 미국 지사 역할을 했다. 비석세스가 시작할 때 2012년 beLaunch라는 2,000명 이상이 참석한 큰 행사를 한국에서 했는데 해외에서 온 대부분의 이름있는 손님은 존이란 내가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초대했고, 비론치 행사 준비와 운영에 우리도 깊게 관여했었다. 코빗 같은 경우도, 우리가 제일 먼저 투자했고, 2차 투자는 Tim Draper와 엔젤리스트의 Naval Ravikant와 같은 미국의 좋은 엔젤한테 받았는데, 이 사람들을 연결하고, 투자 관련 대부분의 일을 존이 미국에서 하면서 투자유치를 성공시켰다. 쿠팡에 인수된 Recomio라는 회사의 경우도, 인수 전 과정에 우리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이 회사에는 엔지니어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회사의 비즈니스 담당자 역할을 했다.

실은, 이렇게 하니까 우리도 뭔가 뿌듯했고, 결과도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해보면, 투자자가 또 너무 이렇게 앞단에 나서서 창업가들과 같이 실무를 하는 게 항상 좋지는 않은 거 같다. 일단 우리같이 많은 회사에 투자하는 VC에게는 한 회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봤을 때 시간을 가장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아니다. 많은 회사,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기 때문에, 한 회사와 깊게 일하다가, 다시 빠지고, 또 다른 회사와 깊게 일하고, 이 과정을 지속해서 반복해야 하는데, 특정 회사와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면 다른 곳에서 빵꾸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현실은…나는 힘들어하는 특정 회사들과 시간을 상당히 많이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안 좋은 건, VC가 힘든 일을 다 대신해주면, 창업가의 경쟁력과 전투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능성이 있는 창업가들한테 투자하고, 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걸 도와주는 게 초기 VC인데,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리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래서 시간도 없고, 남을 가르치는 것보다 내가 일단 일을 처리하는 게 더 쉽고 간단하기 때문에, 앞단에 내가 나서서 창업가 대신 많은 일을 처리하곤 했는데, 이렇게 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창업가의 경쟁력이 오히려 약해진다는 걸 많이 느꼈다. 펀드레이징 예를 들면, 전에는 피칭 자료를 아예 내가 수정해주고, VC 직접 소개하고, 미팅까지 참석하고, 그 이후의 과정을 follow-up 하는 것까지 내가 다 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내가 훨씬 더 익숙한 과정이라서 시간도 절약하고 중간에 발생할 수 있는 마찰과 소음을 줄일 수 있지만, 창업가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어려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배우는 게 별로 없다. 결국, 그다음 라운드를 진행하게 되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걸 많이 경험했고, 이러면 오히려 나만 지치고 더 피곤해진다.

그래서 이제 나는 웬만하면 모든 걸 창업가들한테 위임한다. VC 소개가 필요하면 당연히 연결은 내가 해 주지만, 이메일로 한 번 연결하고, 그 이후의 모든 건 알아서 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 투자사와 다른 VC와의 미팅에는 참석하지 않고, 진행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좋은 창업가들은 알아서 본인들이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걸 종종 경험한다. 대표의 경험 부족과 미숙함 때문에 큰 실수를 해서 일이 잘 안 풀리면, 안타깝긴 하지만, 이것도 나는 이분한테는 값진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더 잘할 것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것이다.

투자를 하다 보면, 한 회사에 우리 단독으로 투자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VC랑 같이 투자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데 VC마다 철학이 다르고, 전략이 다르고, 투자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중간에 창업가가 이런저런 미세 조정과 조율을 잘 해야 한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조금만 어긋나도, 큰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가 생길 때마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다른 VC한테 직접 전화해서 우리끼리 잘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 항상 창업가를 통해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해야지만, 이 창업가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향상되고, 앞으로 있을 수많은 라운드와 인간관계를 핸들링 할 수 있는 경험과 배움이 쌓이기 때문이다. 정말 답답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나는 웬만하면 이젠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아주면 하루의 양식이 되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의 양식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나도 요샌 이 말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고 있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나한테도 훨씬 편하고, 단기적인 스트레스는 생기지만 장기적인 스트레스는 덜 생긴다는 걸 자주 경험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혁신에 대해서

내가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요새 어떤 분야가 뜨나요?” , “요새 스트롱은 어떤 분야에 투자하세요?”이다. 아마도 많은 VC가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는 거로 알고 있다. 실제로 벤처투자자 중 그 시점에 가장 핫한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다. 몇 년 전에 IoT로 인해 마치 모든 기계가 서로 소통하는 세상이 금방 올 것 같았던 때가 있다. 이때 하드웨어와 IoT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도 있었고, 이 분야에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서 관련된 회사를 쥐잡듯이 찾아서 만나는 VC도 많았다. 그 이후에는 VR, O2O, 블록체인 등등 내 기억으로는 해마다 한두 개의 핫한 분야가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있는 거 같다. 나도 투자를 시작할 때 이런 유행을 열심히 좇던 시절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화두가 되는 유행에 투자를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분야에 있는 창업가는 누가 있는지를 조사해서 특정 분야의 회사를 전부 다 만났던 적도 있었던 거 같다. 뭐, 그래서 좋은 회사에 투자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새 누가 나한테 우린 어떤 분야를 보고 있냐고 물어보면, 그냥 특별하게 보는 분야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안 보는 분야도 없다고 한다. 실은,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해보면, 오히려 남들이 별로 핫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야의 회사를 더 관심 갖고 본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나는 세상을 갑자기 바꾸는 극단적인 혁신을 별로 안 믿는다. 지금도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여러 기술과 과학은 연구되고 있고, 실험실이나 연구실에는 구현 가능한 기술이 여러 가지 존재한다. 하지만, 진짜 혁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기술이 제품화가 되고, 대량으로 만들어져서 우리 삶에 깊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정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과 돈이 많이 투자되어도, 실현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 말하는 점진적 혁신을 하는 기술이나 제품에 주로 투자한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많이도 아니고,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싸게 만드는 그런 스타트업들이다. 최근에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 이 기자는 토스, 배달의 민족, 타다, 미소 등과 같은 서비스가 무슨 혁신이냐면서 상당히 부정적인 톤으로 글을 썼다. 밑에 댓글들을 보면 역시나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기자가 병신이라는 내용의 댓글을 수없이 달았고, 스타트업이 아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자가 맞고, 이 기자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을 단 사람들이 병신이라는 댓글을 달았다(다른 이야기지만…한국의 댓글 싸움을 읽는 건 항상 흥미롭다). 나는 둘 다 나름 맞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이 기자는 혁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다고 생각한다. 실은 위에서 말한 토스, 배달의 민족, 타다와 같은 서비스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와 제품이기 때문에, 아주 조금만 바꿔서,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싸게 만들면 이게 엄청난 혁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혁신은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행하든 안 하든, 실리콘밸리에서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분야든 아니든, 정부에서’AI 펀드’ , ‘(핫한 분야)의 펀드’를 만들어서 이 분야에 투자하는 VC에 돈을 주든 안 주든, 어떤 VC들이 이미 유행이 지났다고 하는 분야와는 상관없이 모든 분야를 본다. 왜냐하면, 소수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주는 혁신보다는, 다수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꿔주는 혁신이 나한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Under-promise and over-deliver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과 같은 long form 콘텐츠를 쓰고 공유 가능한 소셜미디어에는 정말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고, 이 들은 온갖 종류의 생각, 글, 동영상과 사진을 공유한다. 내가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서인지, 내 페이스북 친구의 절반 이상은 아마도 일과 연관된 사람들일 것이다. 너무 많아서, 어느 순간 친구 수락 자체를 나는 포기했다. 나도 하루에 여러 번 페이스북에 습관처럼 들어가서 이런저런 글들도 포스팅하고, 남이 포스팅한 글도 보는데, 정말 유용한 정보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자기자랑글이라는걸 부인할 순 없을 거 같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내가 요새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 좀 자제해달라고 부탁한 부분은, “나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내용의 자랑글은 가능하면 포스팅하지 말아달라 이다. 팀원들과 하루 20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는 글, 미친 성장을 위해서 폭풍 야근을 하고 있다는 내용, 제품 론치하기 위해서 매일 밤샘하고 새벽 4시에 집에 가는 걸 자랑하는 글, 주문이 폭주해서 최고의 일매출 도달한 스크린샷, 등등…뭐 이런 내용의 글이다. 뭐, 이게 나쁜 건 아니고, 스스로 어필하고, 회사를 마케팅하는 방법의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한 게 높을수록 실망도 크듯이, 이렇게 계속 대표이사가 페이스북 펌프질하는걸 보고 뭔가 대단한 게 있을 줄 알고 투자자들이 미팅한 후, 숫자를 까보니까 별거 없는 경우가 더 많아서, 크게 실망하고, 오히려 그 대표와 회사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다. “1년 365일 전 직원이 폭풍야근을 하고, 미친 열정을 갖고 일만 생각하면서, 매월 엄청난 매출 성장과 ROAS를 만들고 있는 회사가 이것밖에 못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가만히 있었으면 본전은 하는데, 오히려 본전도 못 챙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 창업가는 진짜 열심히 일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 중 몇 년째 하루 20시간 일하는 사람도 있고, 이분들한테는 스타트업이 인생 그 자체다. 이렇게 깊은 사명감으로, 정말 열심히 일하면, 솔직히 소셜미디어에 하루가 멀다고 주저리주저리 포스팅할 시간도 없다. 이런 분들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행하고 숫자로 보여준다.

내가 우리 대표들한테 드리는 충고는 “under promise, over deliver(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이다. 여기저기 너무 과장 광고를 많이 하고 다니면 어쩔 수 없이 더 약속하고 덜 해주게 되는데, 열심히 일했다는 내용의 긴 포스팅을 쓸 시간에 고객 한 명 더 만나거나, 그냥 잠을 더 자는 게 회사에는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홍보가 후진 제품을 살리지 않는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내용인데, 최근에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창업가와 해서, 몇 자 또 적어본다. 홍보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 좋은 제품과 기능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이런 게 있다는 걸 잘 모르니 홍보를 해야 하는데, 본인도 개발자고 다른 팀원도 개발자라서 홍보나 마케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홍보 담당자를 풀타임으로 채용하거나, 아니면 외주업체에 돈을 주고 PR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대표를 몇 분 만났다.

10년이면,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는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한평생이고, 이 기간 동안 세상이 바뀐다. 그래서 내가 1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의미 없고, 어떻게 보면 꼰대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본질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년 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초기 뮤직쉐이크 제품은 PC 기반의 설치형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그 이후에 플래시 기반의 웹 앱을 출시하고 – 당시 플래시 기술이 우리가 추구하는 기능을 다 지원하지 않아서 정말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폰이 나온 후에는 모바일 앱까지 출시했다. 모바일 앱은 단순히 음악을 쉽게 만드는 툴을 넘어서, 기존 유명곡을 재미있게 리믹스 할 수 있었는데, 음악에는 저작권이라는 골치 아픈 권리가 있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오래된 명곡 Jackson 5의 “ABC” 리믹스 앱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위에서 말한 각 마일스톤을 도달할 때마다 우리 팀의 분위기는 흥분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도전이었고, 시장에 소문만 나기 시작하면, 이제 우린 떼돈 벌고 대박 터질 거라는 생각에 잠도 잘 못 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 예상과는 달리, 출시하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시장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플래시 앱도 그랬고, 모바일 앱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렸던 결론은, 너무 잘 만든 제품이지만 우리의 약한 홍보력으로 인해 시장이 아직 모르기 때문에 포텐이 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대부분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홍보나 PR을 해주는 담당자가 없어서 외부 PR 회사와 계약하고 홍보와 PR을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우리 담당 홍보 컨설턴트까지 배정이 됐다. LA 쪽에서는 신생 회사였지만, 꽤 잘하기로 소문났었기 때문에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홍보만 잘하면 대박 날 거라서 이 정도 비용은 충분히 지불할만하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미디어에 뮤직쉐이크 관련 PR 활동을 했지만, 트래픽이나 매출에는 변화가 없었다. 몇 개월 동안 “이렇게 하면 되겠지” , “조금만 더 알려지면 될 거야” 등의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은 시도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잘 안 됐다. 그리고 서서히 현실을 인지하게 됐다. 제품이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리 홍보를 많이 해도, 절대로 시장에서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우리가 후진 제품을 만든 건 아니다.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었지만, 시장에서 제품을 보는 시선과 우리가 내부에서 봤던 시선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우리는 이걸 지속적인 제품 개발과 개선으로 풀어야 했는데, 홍보에서 찾으려고 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최근에 만난 많은 대표가 뮤직쉐이크 시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뭔가 잘 만든 거 같은데,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니, 홍보로 해결하려고 하고, 내부에 홍보력이 없으니까 외부 마케팅/PR 에이전시에 비싼 돈 주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제품과 product-market fit의 문제이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제품은 수백억 원을 써서 TV나 지하철 광고를 해도 말짱 헛거다. 일시적인 상승효과는 경험할 수 있겠지만, 돈을 쓰는 홍보를 멈추는 그 순간 트래픽과 매출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제품이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홍보와 마케팅에 너무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 제품이 좋으면, 알아서 고객이 알게 되고, 알아서 사용하게 된다. 요샌 모두가 바쁘고, 비슷한 제품도 너무 많아서, 홍보를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 그리고, 이건 과거에 비해서 일부 맞다고 생각한다 –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불변의 본질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맛있는 식당은 안 알려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줄을 서고, 좋은 제품은 안 알려도 사용자들이 찾아서 사용하고, 돈을 쓰게 되어 있다.

기존투자자가 주는 총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당장 매출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몇 가지 예외 케이스를 제외하면, 투자를 받아야 한다. 투자를 안 받거나, 못 받는 경우도 너무 많지만, 받기 시작하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이라면 투자를 여러 번 받아야 할 것이다. 요새 내가 자주 경험하는 초보 창업가들이 후속 투자를 받을 때 저지르는 실수는 기존 투자자들을 잘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미 투자를 받은 회사고, 이미 주주명부에 투자자들이 있다면, 후속 투자를 받기 위해서 본격적인 펀드레이징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상의하고, 가장 먼저 돈 달라고 부탁할 사람은 신규 투자자가 아니라 기존 투자자라는 말이다.

얼마 전에 그렇게 친하지 않은 VC한테, “스트롱 투자사 A사 요새 라운드 돌고 있더라고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좀 쪽팔리지만 나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대표한테 연락하니까, 지난 몇 개월 동안 본인들 실적이 별로 좋지 않아서 스트롱이나 다른 기존 투자사들이 당연히 관심 없고 투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이 회사는 원하는 금액을 추가 투자받지 못했다. 실적도 좋지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펀드레이징 접근 방법이 좀 틀렸던 거 같다. 관심 있는 VC도 있었다고 들었고, 내가 이분들과 직접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이미 다른 기존 투자사들이 있는데, 왜 이 회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주들은 추가 투자를 하지 않을까? 대표 말대로 그렇게 회사가 좋으면, 기존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커밋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후속 투자를 받을 계획이 있으면, 그리고 펀드레이징 시점과 조건과 같은 기본적인 계획이 만들어지면, 기존 투자자들과 이 부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 만약에 10억 원의 후속 투자를 받을 계획이라면, 많든 적든, 어느 정도는 기존 투자자들로부터 미리 확보해서, ‘총알을 어느 정도 장전’하고 전쟁터에 나가서 새로운 VC와 협상을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전략이다. 어떤 경우에는 기존 투자자들이 원하는 금액을 모두 투자해서 굳이 새로운 투자자들 만나서 시간 낭비하는 걸 대폭 줄여주는 경우도 있다(전문 용어로는 inside round 라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 한 전체 10억 원을 기존 투자자들이 하진 않더라도, 한 절반인 5억 원 정도만 기존 투자자들이 재투자해 준다고 하면, 이 창업가의 펀드레이징은 훨씬 더 수월해진다. 이 회사를 가장 잘 아는 기존투자자들이 재투자한다는 의미는, 금액과는 상관없이 이 회사를 잘 모르는 신규 투자자들한테 큰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신규 투자자한테도 믿음을 줄 수 있지만, 기존 투자자들이 일부 보태준 총알로 총을 장전해서 나가면 싸우는 사람한테도 자신감이 많이 생긴다.

간혹, 기존 투자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분들한테 재투자를 아예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대부분 투자자는 우선매수권과 pro-rata 권리 등이 있어서, 어쨌든 무조건 먼저 물어보는 게 맞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