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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만이 유일한 상수

나는 요새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이 분야에 있으면 워낙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빨리 변하기 때문에 변화와는 매우 익숙해져야 하는데, 인간의 본성이 변화를 싫어해서 그런지 나도 계속 자신을 훈련시켜야지만 이걸 더 잘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외국에 사는 후배가 한국에 잠깐 나왔는데, 한국 부모의 자식에 대한 높은 학구열과 극성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애를 안 키워서 잘 모르는데, 부모들의 극성이 예전보다 더 심해졌고, 애들을 남들보다 더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은 열정과 욕심은 더 높아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할 자격도 없고 필요도 없지만, 세상이 생각보다 빨리 바뀌고 있고, 이에 맞춰서 우리의 관점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분들한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남들만 의식하지 말고, 내 주위가 어떻게 바뀌고, 다른 나라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도 귀랑 눈을 한 번 정도 기울여 달라고 말해주고 싶다.

얼마 전에 Morning Brew에서 e스포츠 산업에 대해 짧지만, 강렬했던 기사를 읽었다. 이렇게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다는 걸 나한테 스스로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었던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7월 26일, 역사상 최초의 Fortnite World Cup이 뉴욕의 Arthur Ashe 경기장에서 열렸다. 참고로 아서 애시 경기장은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US Open이 열리는 테니스장인데, 약 23,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이다. e스포츠라고 하면 애들이 헤드폰 끼고 큰 모니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시간 낭비하는 사회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은 훨씬 더 많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런데 포트나이트 월드컵을 직접 관람할 수 있는 표 23,000개가 (표 값은 $50 ~ $150) 판매 시작하자마자 완판됐고, 30대 테니스 선수 두 명이 땀 흘리면서 열심히 테니스공을 쫓아다니는 걸 보는 대신, 100명의 10대들이 땀 흘리면서 열심히 키보드 두드리는 걸 관람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표를 구매한 것이다.

포트나이트 숫자와 상금도 어마어마하다. 온라인 예선경기 참가자가 무려 4,000만 명, 그리고 예선을 통과한 각 ‘선수’에게는 6,000만 원의 기본 상금이 주어졌다. 총상금 370억 원 중 솔로와 듀오 시합 우승 상금은 각 37억 원이었다. 참고로 타이거 우즈가 최근에 마스터스 골프 대회 우승했을 때 상금은 24억 원이었다.

나도 e스포츠 분야를 관심 갖고 보고 있고, 많진 않지만, 투자도 했지만, 이 숫자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나같이 예상치 못했고 놀랍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래봤자 게임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아직 많다. 참석자 수와 상금을 보고도 애들 장난이라고 하는 분들한테는 도대체 그럼 뭐가 심각한 비즈니스인지를 오히려 되물어보고 싶긴 했다. 아직 이분들한테는 쿠팡이나 크래프톤(블루홀)도 어린 친구들이 장난같이 운영하는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아니고, 삼성과 현대자동차만 제대로 된 사업이고, 이런 회사에만 자식들이 취직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이야기의 본론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나라도 이젠 남의 시선을 그만 신경 쓰고,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서 변화할 때가 된 거 같다. 하나뿐인 자식을 열심히 공부시켜서 좋은 대학에 진학 시키는 거 좋긴 하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고 변하는 걸 보면, 과연 초/중/고 12년을 모두 대학진학에 투자하고, 대학교를 가는 게 앞으로도 계속 예전같이 중요할지, 그리고 경제적으로 봤을 때 제일 나은 선택일지, 의문이 든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현존하는 너무나 많은 직업이 없어질 텐데, 많은 부모의 생각과 시선이 아직도 20년 전의 과거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참고로, 얼마 전에 내가 미국 부모한테 듣기로는, 미국 애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장 받고 싶어 하는 게 포트나이트 게임 팩과 게임을 더 잘 할 수 있게 받을 수 있는 과외라고 한다. 이 부모 모두 아이비리그 나온 변호사랑 회사 임원인데, 요새 딸이 열심히 포트나이트 온/오프라인으로 과외를 받고 있고, 그걸 너무 좋아하는 걸 옆에서 보면 본인들도 즐겁다고 하면서, “Well, the world is changing. Much faster than we think and we want it to.”라는 말을 했다.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이다. 정말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여기 발맞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 테스트

나는 “최고의 제품이야말로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다”라는 말을 과거에 자주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제품 자체가 너무 좋으면 굳이 마케팅하지 않아도 알아서 입소문이 퍼질 것이고, 이렇게 해서 얻게 된 고객이야말로 마케팅 비용을 태워서 인위적으로 만든 고객보다 훨씬 더 값지다는 의미다. 아무리 마케팅을 잘하고, 돈을 많이 써도, 제품이 후지면 다시는 고객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주위 사람들한테 안 좋은 소리를 해서 이런 사업이 커지기란 쉽지 않다. 기발한 마케팅 방법으로 많은 고객을 초기에 온보딩하고, 많은 제품을 판매해서 매출이 급격하게 상승하지만, 결국 제품을 사용해 본 고객의 피드백이 좋지 않아서 성장한 속도보다 더 빨리 하락해서 결국 망하는 비즈니스를 우리 주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초기 투자금을 대부분 마케팅에 사용하겠다는 스타트업은 항상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 돈으로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과 철학이 있었고, 지금도 큰 그림에서는 변함은 없다.

그래도 요샌 내가 이 말을 바이블같이 너무 자주 하지 않는 이유는, 워낙 경쟁이 심해지고 제품의 수준이 다들 높아져서, 좋은 제품이 있어도 어느 정도의 마케팅이 동반되어야지만, 남들보다 더 빨리 입소문을 만들 수 있고,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물론, 마케팅 비용 정당화의 기본은 아주 좋은 제품이다. 요새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회사는 제품을 출시하자마자 매달 일정 비용의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는데, 주로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에서 모든 비용을 집행한다. 아주 이상한 제품이 아니라면, 그래도 마케팅 비용을 쓰면 사용자들을 획득할 수 있고, 이 사용자들은 돈을 써서 회사의 매출에 기여를 한다. 그리고 매출이 조금씩 증가하면, 그만큼 마케팅 비용을 또 올려서 집행하고, 당분간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회사의 초기 수치를 보면 나는 판단이 잘 안 선다.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마케팅에 돈을 써야 하고, 마케팅으로 획득한 고객을 lock-in 시켜서 다른 곳으로 못 가게 만든 후부터 비로소 소위 말하는 질 좋은 매출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 단계까지 가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전에 내가 포스팅한 “마이너스 매출총이익“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어쨌든 계속 마케팅 비용을 쓰고, 계속 돈을 더 많이 써야 한다. 그래야지만, 초기 성장 곡선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회사를 봤을 때, 과연 이 비즈니스가 unit economics를 맞출 수 있는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이 단계에서는 정말 판단하기가 너무 힘들다. 돈을 쓰면 매출이 나오고, 돈을 더 쓰면 매출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그리고 현재 펀드레이징 중이라면, 투자자들이 온갖 정보를 다 요청할 것이다. 이 비즈니스가 정말 product market fit을 찾았고, 그 fit에 마케팅 비용을 집행해서 성장이 생기는 건지, 아니면 그냥 돈을 쓰니까 수치는 당연히 올라가고, 이걸 실제 성장과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지가 참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스타트업한테 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여러 번 해보라고 권장한다.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는 속도에 의도적으로 변화를 줘서, 우리 매출과 성장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자세히 관찰하고 마케팅 대비 성장을 정량화하라는 의미인데, 게임 서버에 수많은 사람이 일제히 접속했을 때 게임이 원활하게 돌아가는지의 여부를 집중적으로 체크하는 스트레스 테스트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그 반대의 개념으로 내가 그냥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일주일 또는 길게는 한 달 정도 마케팅 비용 집행을 아예 멈춰보라는 권장도 가끔 한다. 마케팅에 돈을 전혀 쓰지 않을 때, 매출이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면, 이건 우리가 어느 정도 product market fit을 찾았고, 고객이 기꺼이 돈을 내고 사용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는 의미라고 해석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이런 패턴이 정량화된다면, 투자 받는 게 수월해진다. 하지만, 마케팅 비용 집행을 감소했을 때, 매출도 그대로 떨어지거나 비용을 줄인 비율보다 매출의 하락 비율이 더 크다면, 이 비즈니스는 지속성이 약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전반적인 사업을 검토해보면 좋다. 마케팅을 아예 하지 않으니까, 2주 안으로 매출이 거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봤는데, 이런 비즈니스에 투자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거랑 비슷하다.

내가 아는 사업을 잘하는 팀은 모두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회사에서 집행하는 마케팅 비용을 정당화하고 공식화하기 위해서 여러 정량적인 시도를 하는데, 온라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모두 명심하면 좋을 것 같다.

죽지만 말자

우리도 이제 3개의 펀드를 통해서 8년 동안 한국과 미국에 있는 120개 이상의 회사에 투자했다. 아직 멀었지만, 100개 넘는 회사에 투자하면 그래도 꽤 재미있는 데이터와 패턴이 보이는데, 얼마 전에 다음과 같은 데이터를 정리해봤다.

몇몇 대표 포트폴리오 회사에 대해서 스트롱이 투자했던 시점의 월매출/연매출과 2019년 6월의 매출과 2019년 예상 연 매출을 비교해봤다. 이 회사들 모두 우리 투자사 중 잘하는 회사들이지만, 실제로 숫자를 비교해보니까 어마어마한 성장이 보였다. 이 회사 중 절반 이상은 우리가 투자할 때 월매출이 하나도 없었고, 시작점이 “0”이기 때문에 이런 회사 중 몇 개는 월매출이 수십억 배 증가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평균을 내보면, 우리가 처음 투자할 때 대비 현재 월매출이 15배는 증가한 거 같다. 나도 이렇게 숫자를 뽑아보니까 상당히 놀랍고 기뻤다.

그런데 실은 이 데이터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여기엔 한가지 함정이 있다. 바로 우리가 처음 투자한 시점이다. 위에서 말한 매출 성장이 1~2년 만에 일어난 거라면 정말로 대단한 거지만 – 실제로 어떤 투자사는 1년도 안 되어서 이런 비약적인 성장을 했지만 – 이런 성장을 한 평균 기간은 4년이다. 즉, 시작과 끝을 비교해보면 큰 성장이었지만, 4년이라는 기간의 성장 곡선을 보면 수많은 up과 down이 있었다. 우리도 매달 투자사들의 수치를 보는데, 올라가고 잘하는 것보단 내려가고 못 하는 게 더 많으니 이런 성장하는 수치를 봤을 때 더 놀랐던 거 같다. 실은 가장 비약적인 성장을 한 회사 중 절반 이상이 여러 번의 망할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티면서 계속 전진했고, 이런 땀과 노력이 인제야 열매가 맺어지기 시작하는 거 같다. 5년이 걸렸다.

전에 어떤 트레이너로부터, 근육운동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한계에 부딪히는데, 이때 계속하다 보면 섬유질이 파괴되고 찢어지고, 그때 새로운 근육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바닥을 쳤다 올라오기를 반복한 우리 투자사의 좋은 성장을 봤을 때 이 근육이 찢어지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계에 도달해서 더는 못 하겠다고 느끼는 그 시점에, “한 번만 더” , “조금만 더”를 다짐하면서 팀원들을 이끌고 계속 한 대표들의 회사가 이렇게 4~5년 후에 엄청난 성장을 한 거 같다.

이 회사들의 대표들이 공통으로 했던 말이 이제 기억난다. “죽지만 말자” 였던거 같다. 죽지 않으면, 더 강해지고, 더 강해지면, 죽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다.

미친 성장과 미친 펀딩만이 답인가?

sun-581299_640프랑스 요리 중 푸와그라(Foie Gras)라는게 있다. 불어로 ‘살찐 간’이라는 뜻인데, 거위의 간을 페이스트 형식으로 만든 요리다. 이걸 만들기 위해서 거위를 못 움직이게 고정한 후 강제로 사료를 하루에 여러 번 먹여서 사육하는데, 이렇게 하면 간이 커진다고 한다. 얼마 전에 CB Insights에서 발표한 내용 중 ‘The Foie Gras’ing Of Startups‘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여기서 말하는 살찐 간 스타트업은, 짧은 기간 안에 펀딩을 너무 많이 받아서 덩치가(=밸류에이션) 비대해지는 회사인데, 투자를 많이 받아서 ‘살찐’ 회사의 밸류에이션은 하늘을 치솟지만, 정말로 이 회사의 가치가 그렇게 높은지 비교·분석해봤다.

2013년부터 1,000억 원 이상의 엑싯(IPO와 M&A 포함)을 한 스타트업 500개 이상을 분석했고, 전체 투자받은 금액이 1,000억 원 이하인 회사(=적게 투자받은 회사)와 1,000억 원 이상인 회사(=많이 투자받은 회사)로 구분한 후, 이들이 인수됐을 때의 기업가치 또는 IPO 기업가치를 비교했고, 그 이후의 단기/장기 기업가치의 변화도 비교해봤다. 모두 미국 기업이었고, 다음과 같은 시사점이 있었다:
1/ IPO 이후에는, 많이 투자받은 회사가 적게 투자받은 회사보다 실적이 현저하게 떨어짐.
2/ 가장 많이 투자받은 회사들이 장기적으로는 가장 적게 성장함.
3/ 1,000억 원 이하로 투자받은 많은 회사가 가장 좋은 엑싯을 함.
4/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와 같은 메가 펀드로부터 큰 투자를 받은 회사들의 엑싯 자체는 가장 컸지만,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계속 줄어들고 있음.
5/ 페이스북과 같은 회사는 예외 – 투자도 많이 받고, 엑싯도 컸고, 수익도 큼. 그런데 페이스북과 같은 아웃라이어들이 미디어를 도배하기 때문에 많이 투자받고 엑싯하는게 무조건 좋다는 인식이 생김.

한 회사가 투자금을 주주가치와 주주 이익으로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좋은 지표는 그 회사의 엑싯 기업가치 대비 총 투자받은 금액이다. 투자를 적게 받은 회사가 엑싯을 크게 하면, 이 지표는 높고, 투자를 많이 받은 회사의 엑싯이 상대적으로 작으면, 이 지표는 낮다. 즉, 요새 미디어에서 매일 흔하게 읽을 수 있는 1,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회사들의 끝이 항상 해피엔딩은 아닐 거라는 말이다. 기업가치 수조 원에 수 천억 원을 투자받은 회사도 IPO 하거나 인수되어야 하는데, 그때 기업가치가 낮거나, 그 이후에 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낮아지면 이 회사의 ‘효율’은 상당히 낮다는 뜻이다.

투자를 많이 받은 대표적인 회사 – 가장 많은 펀딩을 받고, 가장 밸류에이션이 높은 – 11개 중 6개인 스냅, 그루폰, 드롭박스, 징가, 렌딩클럽과 그린스카이는 IPO 이후 기업가치는 오히려 하락했다. 이 중 기업가치가 올라간 회사인 트위터나 Zayo Group도 기업가치 성장이 2배 이하였고, 다큐사인은 IPO 이전이나 이후나 기업가치는 거의 같다.

그런데 투자를 적게 받은 회사의 가치 변동을 보면, 조금은 다른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투자를 적게 받은 회사 중, IPO 기업가치가 가장 높은 9개 스타트업 중 6개인 Veeva Systems, Palo Alto Networks, ServiceNow, Tableau Software, Splunk와 Ubiquiti Networks는 IPO 후 시총이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ServiceNow는 기업가치가 IPO 이후 1,900% 증가했다.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B2C 회사보단 B2B 회사들이 투자를 적게 받았지만, 장기적인 기업가치는 훨씬 더 높아지는 거 같다.

이 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실리콘밸리의 메가 펀딩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미친 펀딩과 미친 성장은 겉으로만 번드르르하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 특히, public market의 관점에서 – 봤을때 오히려 미친 펀딩과 미친 성장은 실패로 가는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오히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 스타트업은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더 적게 투자받고, 더 좋은 엑싯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팀의 몸값이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처음 창업하고, 창업한 지 얼마 안 돼서 딱히 수치가 있는 제품도 없고, 이전에 아무런 실패나 성공의 경험도 없고, 과거 직장 경력도 5년 미만인 창업팀의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정하는 게 좋을까? 우리도 초기 투자를 주로 하니까 이런 팀을 자주 만나고, 이런 팀에 투자하게 되는 경우, 회사의 가치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자주 하게 된다. 얼마 전에도 이런 팀을 만났다. 이전 스타트업에서 3년 정도 일 한 공동 창업가 두 명이 힘을 합쳐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고, 아직 MVP 단계도 아니라고 생각되는 제품을 만들었고, 과거 스타트업에서 일 한 경험은 있지만, 본인들이 실제로 뭔가를 창업한 경험은 없었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비즈니스와 거의 동일한 모델이 미국에서 엄청나게 잘 성장하고, 투자도 많이 받았다는 걸 계속 나한테 영업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기업가치는 30억 원 ~ 50억 원이라고 은근슬쩍 주장했다.

솔직히 나는 창업가들이 원하는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이게 높다 낮다라는 이야기는 잘 안 한다. 밸류에이션이라는게 정말 고무줄 같은 거고, 나는 그 가격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 그 가치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시장에 있다면 그 밸류에이션이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한두 번 만난 팀이고, 내가 잘 모르는 비즈니스라서,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내가 먼저 뭐라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창업가들이 자주 물어본다. “대표님은 이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면서. 그러면 나는 옳고 틀리고의 여부를 떠나서,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걸 말해주면서, 이건 정말 100% 내 생각이니까, 일단 시장에 그 밸류에이션을 받아들이는 투자자가 있는지 없는지 “쇼핑”을 좀 다녀보라고 한다.

위에서 말 한 창업가들도 나한테 계속 본인들이 생각하는 30억 ~ 50억 (물론, 본인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건 50억 원이겠지) 밸류에이션이 내가 보기에 어떤지 의견을 굳이 듣고 싶다고 해서, 나는 이분들한테 내가 솔직하게 생각하는 밸류에이션은 3억 원이라고 했다. 좀 충격적이라는 표정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 내가 왜 이 회사가 3억 원짜리인지 설명을 좀 했다. 일단 특정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확보하기에는 두 명의 공동창업가의 직장경력이 너무 짧아서 새로 시작하는 비즈니스는 그냥 완전히 맨땅에서 헤딩하는 거와 똑같고, 실패했든 성공을 했든 과거에 창업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이건 상당히 높게 평가될 텐데 그것도 이 회사는 아녔다. 그러면 나는 주로 이 두 명의 공동창업가의 몸값이 바로 회사의 현재 밸류에이션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에 두 분이 연봉을 많이 주는 직장에 가도 각각 최대 1.5억 원 이상은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1년 연봉만을 기준으로 하냐면, 이 스타트업의 수명이 1년 이상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3억 원이라는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나온다.

만약에 이 두 분이 직접 창업한 경험이 있다면, 그리고 진짜로 회사를 만들고, 사람을 고용하고,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만들었다면, 그 규모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나는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줬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값진 경험은 대한민국 인구의 5%도 해보지 못하는거라서 그 경험 자체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성공이나 실패 경험이 전혀 없다면, 창업가들의 몸값이 높을 수가 없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창업가들한테 내가 준 조언은 다음과 같다. 어차피 내가 말한 3억 원이라는 밸류에이션은 맘에 들지 않고, 이 밸류에이션에 그 어떤 금액을 투자받더라도 희석이 너무 심하니까, 오히려 그런 걸 방지하게 위해서 우리가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인위적으로 조금 높여서 5억 원에 투자하는 옵션이 하나 있고, 아니면 지금 투자를 받지 말고, 어떻게든 버티면서 제품을 만들고 출시해서, 이 제품을 시장이 원한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초기 수치를 갖고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는 옵션이 있다고 했다. 전자의 경우, 일단 희석이 많이 되고, 투자금이 많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투자받는다는 장점이 있고, 후자의 경우, 지금은 배고프지만, 수치를 조금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괜찮은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팀은 그래서 후자의 옵션을 선택했고, 나는 가끔 업데이트를 달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가끔 터무니없이 자신의 몸값과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높게 평가하는 팀이 있는데, 다른 투자자는 모르겠지만 나는 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회사의 가치를 생각하니,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