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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유니콘 지도

unicorn-market-map-08.27.2019Cowboy Ventures의 Aileen Lee가 ‘유니콘’이라는 말을 만들고 사용하기 시작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지금은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라면 유니콘이라는 말을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만, 2013년 11월 2일 TechCrunch에서 처음으로 유니콘이라는 말 – horse가 아니라 word – 이 등장했을때는 정말 신박했다. 당시 유니콘의 정의는 “2003년 이후 창업된 미국 소재 소프트웨어 회사 중 기업가치가 $1B 이상인 비상장/상장 기업” 이었고, 39개 밖에 없었다. 실은, 그땐 39개라는 숫자도 엄청 많다고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니콘의 정의가 조금 바뀌었는데, 2019년 유니콘 기업의 정의는 “기업가치가 $1B 이상인 비상장 기업” 이고, CB Insights에 의하면 전 세계에 393개나 있다.

얼마 전에 CB Insights에서 전 세계 모든 유니콘이 그려진 지도를 봤는데,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여기서 공유한다. 393개 유니콘의 전체 기업가치 총합은 $1,218B이고, 이 중 미국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중국이 143개로 2위다. 미국과 중국이 전 세계 유니콘의 86%를 차지하고 있고, 한국은 9개로 6위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 공식 유니콘이 9개 – 밸류에이션 순으로 쿠팡, 크래프톤, 옐로모바일,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비바리퍼블리카(토스), L&P 코스메틱스(메디힐), 위메프, GP 클럽, 야놀자 – 라는 건, 실은 상당히 높은 숫자라고 생각한다.

이 지도를 큰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유니콘 지도에서 가장 큰 분야는 핀테크(전체 유니콘의 12%). 그다음은 이커머스,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그리고 AI인데, 모두 각각 11%씩 차지.
2/ 핀테크 분야에서 가장 밸류에이션이 높은 스타트업은 $22.5B인 Stripe, 이커머스는 $11.2B인 Wish,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는 $10B인 중국의 부동산 플랫폼 베이커 자오팡.
3/ 가장 기업가치가 높은 유니콘 넘버 1 기업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고, 최근에 탤런트 이승기씨가 “숏확행”으로 광고하고 있는 틱톡을 소유하고 있는 중국의 Bytedance. 나도 잘 몰랐는데, 바이트댄스를 CB Insights에서는 AI 회사로 분류하고 있음. 2018년 11월 소프트뱅크가 투자할 때 기업가치는 무려 $75B. 2위 또한 중국 회사인데, 중국의 우버 디디추싱이 $56B. 3위가 $50B인 전자담배 업체 쥴. 이제 곧 IPO 해서 유니콘 리스트에서는 사라질 $47B의 위워크가 4위이고, 에어비앤비가 $29B으로 5위.
4/ 유니콘 1위(바이트댄스)와 2위(디디추싱) 기업이 모두 중국 스타트업.
5/ 전체 유니콘의 5%가 기업가치 $10B이 넘는 데카콘. 쿠팡은 유니콘 리스트에서 22위인데, 밸류에이션이 $9B이라서 아직은 이 5% 안에 들어가지 못함.
6/ 전체 유니콘 중 31%가 턱걸이 유니콘(기업가치가 정확히 $1B)

앞으로 5년 후에 CB Insights 유니콘 리스트에는 과연 몇 개의 유니콘 기업이 있을지, 그리고 또 어떤 재미있는 이름과 회사가 등장할지 무지하게 기대된다. 특히, 한국에는 유니콘이 몇 개가 있을지.

<이미지 출처 = CB Insights>

시작

road-1668916_1280얼마 전에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이시언이 배우 생활 힘들게 시작할 때 도움받았던 분들을 찾아가면서 감사의 말을 전달하는 걸 봤다. 무명일 때 같이 고생한 박성현이라는 친구이자 연극배우와 영화 ‘친구’에서 이시언을 캐스팅한 영화감독 곽경택을 찾아가서 배우로서의 시작을 가능케 해줘서 고마움을 표현하는걸 인상 깊게 봤다. 스스로 “대배우”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이시언이 아직은 대배우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알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능청스러울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여유와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고, 그 여유와 자신감이 싹틀 수 있었던 건 바로 이시언의 시작을 도와줬던 이런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참 흥분되고 설레는 말이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두렵고 공포스러운 말이기도 하다. 실은 스타트업이라는 말 자체도 시작과 여러 가지 면에서 관계가 깊다. 이 방송을 보면서 시작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도 스트롱의 시작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봤다. 2012년도 존이랑 정말 무모하게 맨땅에서 시작했을 때, LP를 모집하고 펀드를 만든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 줄 전혀 몰랐다. 실은 상당히 순진해 빠졌고, 어리석기까지 했고, 돈이 전혀 안 모여서 시작한 지 6개월 후에 그냥 접을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접지 않고, 계속 허슬링하면서, 그래도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우리가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우리를 도와준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업을 하면서 만난 많은 분이 소중하고 고맙지만, 나는 특히 우리의 시작을 도와줬고, 그래서 스트롱벤처스의 존재를 가능케 했던 분들한테 진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 1호 펀드는 워낙 작았고, 처녀 펀드이다 보니, 그 누구도 선뜻 LP 참여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냥 친구와 지인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줬는데, 그때 정말 운 좋게 다음커뮤니케이션이 LP로 들어왔다. 당시 다음 투자팀의 김주리 팀장님이라는 분이 스트롱을 많이 밀어주셨는데, 이분이 없었으면, 다음이 LP로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됐다면 오늘의 스트롱이 없었을 거다. 1호 펀드는 그렇게 꾸역꾸역 만들었지만, 금방 소진했고, 10배 규모의 더 큰 2호 펀드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똑같은 악몽이 반복됐다. 아직 별다른 실적이 없어서, 그 누구도 선뜻 LP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모태펀드를 집행하는 한국벤처투자의 글로벌 팀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한테 커밋을 해줬다. 그리고 우린 “Korean Government가 우리 LP다. 나라가 우릴 믿는데, 너네는 왜 못 믿냐.”를 해외 LP들한테 엄청나게 마케팅했고, 시간이 꽤 오래 걸렸지만, 무사히 2호 펀드도 마무리했다. 이때 한국벤처투자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LA 촌놈들을 엄청 많이 도와주셨던 분이 지금 알토스에 계시는 조지윤 매니저님이다.

우리가 계속 사업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원동력은 우리 투자사이다. VC는 좋은 회사에 투자해야지만 계속 생존할 수 있는데, 우린 운이 좋게 첫 번째 펀드부터 좋은 창업가들한테 투자할 수 있었다. 우리가 8년 동안 120개 넘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이 중 스트롱 포트폴리오 1호 회사는 비석세스이다. 1호 투자사라는 이유만으로도 정현욱 대표님과 비석세스는 우리한테는 의미가 크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으면서 계속 펀드를 만들고 투자를 할 수 있게 한 스트롱벤처스의 실적과 숫자를 만드는데 압도적으로 기여를 한 코빗의 코파운더 유영석 대표와 김진화 이사님한테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항상 이런 스트롱의 힘들고 미약한 시작을 기억하면서, 나도 누군가 시작하는 걸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기는 하루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K-Entrepreneurs

1566547639303우리가 처음으로 투자하는 회사 대부분은 꼬꼬마 스타트업이다. 법인도 없는 회사, 이제 막 시작한 회사, 그리고 이제 막 고객과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한 회사들이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70%를 차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잘 안 되는 회사가 확률적으로 더 많지만,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면서 상당히 아름다운 성장 곡선을 그리는 회사도 가끔 생기고, 이 곡선을 계속 유지하면서 더 큰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금액보다 더 큰 투자를 받아야 한다. 우리보다 더 큰 후속 투자를 하는 좋은 VC가 한국에도 많이 있고, 나도 우리 투자사들을 자주 소개하는데, 영어를 잘하는 대표님, 또는 한국보다 외국 VC들이 잘 이해하고 좋아하는 성격의 비즈니스라면 – 예를 들면, B2B SaaS 또는 매출보단 다른 지표의 성장을 추구하는 회사들 – 미국이나 일본 VC와 연결을 자주 시도해본다. 실은 VC 투자라는 게 돈이 들어가기 전에 투자자와 창업가의 인간적인 관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자주 보고 자주 이야기해야지 이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인지 투자자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외국에 있으면, 그만큼 투자 받는 게 어렵다. 그래도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투자사와 함께 외국에 같이 가거나, 아니면 외국 VC를 한국으로 초대해서 미팅 자리를 알선한다.

2주 전에 미국과 아시아에서 투자를 크게 하는 일본계 VC를 한국에 초대했다. 나랑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한 사이고, 한국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투자자라서 우리 투자사의 시리즈 A/B 후속 투자를 위해서 가끔 연결해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2박 3일 동안 한국으로 불러서, 우리 사무실이 있는 구글캠퍼스 미팅룸을 사흘 내내 잡아주고, 우리 투자사들과 미팅을 주선했다. 영어를 잘하는 대표들은 알아서 잘했지만, 영어를 못하는 경우 내가 같이 참석해서 중간 중간에 통역도 해주면서 좋은 이야기를 같이 많이 했다.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나랑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 창업가들이 너무 “inspiring” , “focused” , “smart” , “energetic” , “fearless” 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면서, 일본 창업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걸 강조했다. 3일 내내 같이 이동하고 미팅하면서 들었던 일본과 한국의 차이점에 대한 요점은:

1/ 일본 창업가는 경쟁을 싫어하고, 누군가 먼저 특정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면, 그 분야에서 창업을 잘 안 한다. 실은, 이게 내가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한국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한국은 어떤 게 잘 된다 싶으면, 3개월 내로 비슷한 사업을 하는 카피캣들이 5개~10개는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친구들은 이미 한국에 전동스쿠터 스타트업이 5개 이상 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일본의 경우, 대형통신사 KDDI가 유니콘 스쿠터 회사 Lime에 투자했고, KDDI가 직접 Lime을 일본에서 론치 한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한국 같으면, 이 소식을 들으면, “대기업이 전동스쿠터 사업을 시작한다는 건 시장이 있다는 의미고, 대기업은 빨리 못 움직이니까, 내가 똑같은 사업을 시작해서 더 빨리 성장해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너도나도 이 분야에서 창업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대기업이 하니까 잘하겠지. 나는 빠지자”라는 식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2/ 일본 시장도 현재 돈이 넘쳐흐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창업가들이 투자를 많이 받아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기도 전에, 그리고 product market fit을 찾기도 전에 돈을 흥청망청 쓴다고 한다. 제품도 제대로 안 만든 상태에서 TV 광고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마케팅에 돈을 많이 쓴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투자사들 만나서 더욱더 놀란 것 같다. 정말 적은 돈으로 정말 오래 버티고, 그러면서 product market fit을 찾는 모습이 너무 인상 깊다고 했다.

3/ 한국 창업가들이 전반적으로 focus가 좋다고 한다. 많은 일본 창업가들이 자기들이 만드는 제품이나 시장에 대해서 잘 모르고, 도대체 뭘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데, 이번에 만난 한국의 창업가는 모두 다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전문가이고 집중도가 높다고 한다.

4/ 나는 우리 대표들이 영어를 너무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일본 VC들은 일본 창업가에 비하면 한국 창업가는 영어를 너무너무 잘한다고 칭찬까지 한다.

5/ 어쩌다가 Y Combinator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국에서 YC 들어간 회사가 4개인데 (미미박스, 센드버드, 숨고, 미소) 아마도 일본에서는 YC에 지원한 회사가 하나도 없을 거라고 한다. 이 숫자는 한국에서 직접 YC 지원하는 스타트업 숫자지만, 미국에서 지원하는 한국계 창업가까지 합치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만큼 일본 스타트업은 글로벌 시장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인 거 같다.

6/ 이 친구들은 쿠팡을 상당히 부러워 하는 거 같았다. 손정의 회장은 일본 회사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그만큼 한국 회사들이 더 quality가 높다고 한다.

7/ 아베 정권도 2023년도까지 20개의 유니콘을 일본에서 만들겠다고 발표한 기사에 대해서는, 일본 VC들은 오히려 “절대로 말도 안 된다”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들으면서, 한국 시장과 한국 창업가의 수준과 가능성에 대한 내 믿음이 더 확고해졌다. 중국이나 미국, 그리고 일본조차도 한국보다 훨씬 큰 시장이지만, 우리도 나름 아주 탄탄하고 자랑스러운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고 있고, 오히려 옆 나라 일본의 VC들이 한국 스타트업을 더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에 투자자나 창업가 모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알박기

정식용어는 아니지만, 부동산 용어 중 “알박기”라는 말이 있다. 사전을 보면 “재개발 예정 지역의 알짜배기 땅을 미리 조금 사 놓고 주변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땅값을 많이 불러 개발을 방해하며 개발업자로부터 많은 돈을 뜯어내려는 행위.”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내가 일하는 이 분야에서도 알박기와 비슷한 패턴을 최근에 몇 번 봐서 몇 자 적어본다.

어떤 스타트업은 VC 투자 말고 기업들로부터 투자를 받는다. 우리 같은 VC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투자하지만, 많은 기업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투자하고, 한국에서는 이런 투자를 “SI성(Strategic Investment)” 투자라고 한다. VC가 아니라 기업으로부터 투자받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스타트업의 사업이 특정 대기업의 중장기적 사업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면, 투자를 통해서 서로 시너지를 만들고, 대기업보다 자원은 부족하지만,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스타트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아서 이런 파트너십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는, VC로부터 투자를 받지 못해서, 여기저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 대기업이나 스타트업 모두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서로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를 같이 하다가, 결국 인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이런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은 exit을 하고, 더 큰 기업의 더 많은 자원을 활용해서 지금과 다른 차원의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다. 대기업은 직접 하려면 시간과 돈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한 사업을, 그동안 투자도 했고, 호흡을 어느 정도 맞춰본 스타트업을 인수해서 본격적으로 펼쳐볼 수가 있다. 그리고 혹시나 미래에 다른 경쟁기업이 이 스타트업을 인수해서 우리한테 위협이 될 수 있는 리스크를 미리 제거하는 차원에서도 괜찮은 전략이다.

그런데 가능하면 스타트업 입장에서 피했으면 하는 상황도 나는 자주 본다. 매출도 거의 없고, 팀도 과거 창업 경험이 없는데, 기업가치 100억 원에 투자유치를 하는 스타트업을 만난 적이 있다. 어떤 근거로 회사 가격이 이렇게 비싸냐고 물어보니까, 이전 투자자로부터 기업가치 80억 원에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라운드는 100억 원 정도가 돼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조금 더 상황을 들어보고, 주주명부도 보니까, 이전에 한 번 투자를 받았는데, 어떤 기업한테 전략적인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나는 잘 모르는 기업이다. 그리고 이 기업은 밸류에이션은 상관없이 최대 5,000만 원까지만 투자하는 정책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창업팀은 평소 본인들이 원했던 80억 원이라는 밸류에이션에 5,000만 원을 투자받아서, 0.65%라는 매우 작은 지분이 희석됐고, 잘 받은 투자라고 생각했다. 실은, 겉으로 보면 잘 받은 투자가 맞다. 높은 밸류에이션에 지분 희석은 최소였기 때문에.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투자 받을 때 발생한다. 일단 5,000만 원은 요새 금방 쓰는 돈이다. 다음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수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초기 스타트업이 적은 금액으로 의미 있는 수치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특히, 이 회사는 80억 원이라는 기업가치에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후속 투자는 이보다 더 높은 가치로 받아야 하는데, 적은 돈으로 100억 원짜리 회사를 만드는 건 어렵다. 나 같은 VC는 이 회사의 기업가치를 훨씬 낮게 평가할텐데, 그러면 후속 투자가 down valuation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고, 이렇게 되면 여러 가지로 회사에 불리하다. 더욱더 골치 아픈 건, 이전에 받은 전략적인 투자계약서를 보면, 후속 투자 주식가격이 더 낮아지면 반드시 기존투자자의 동의를 받아야하고 – 또는, 아예 후속 투자는 더 낮은 밸류에이션에 받지 못하게 하는 계약서도 있다 – 그렇게 될 경우, 스타트업한테는 완전히 불리하게 걸리는 리픽싱이라는 독소조항도 있다. 즉, 주식 가격이 낮아지는 만큼, 그리고 낮아지는 정도에 따라서 이전 투자자들이 회사의 지분을 더 받게 되는 조항인데, 80억 원짜리 회사가 만약에 20억 원의 밸류에이션으로 후속 투자를 받게 되면, 0.65%를 갖고 있던 기존투자자에게 회사 지분이 터무니없이 많게 재할당되는 복잡한 공식이 있다.

겉으로 보면, 밸류에이션 상관없다는 말이 굉장히 창업가나 회사에 우호적으로 들리지만, 이런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이런 상황이 의도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투자도 부동산의 알박기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투자자가 나쁜 마음을 갖고,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면, 결국에 스타트업은 망하거나 아니면 헐값에 전략적 투자자한테 넘어가게 된다.

실은, 위 예시의 숫자는 조금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만들었고, 내가 아는 대기업의 투자자는 이런 분들이 없지만, 이런 상황은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서 조심하면 좋다.

벤처캐피탈의 역사

한국벤처투자(KVIC)에서 매달 KVIC 마켓워치라는 유용한 저널을 발간한다. 한국벤처투자는 한국의 벤처캐피탈 역사와 처음부터 같이 했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데, 이런 정보를 민간과 공유하기 위해서 발간하는 저널이다. 마켓워치 6월 호 뒷부분에 ‘미국 벤처캐피탈의 역사 및 시사점’이라는 섹션이 있는데, 나도 이 분야에 종사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잘 몰랐던 내용이 많아서 꽤 재미있게 읽었다. 내용을 좀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부터 벤처캐피탈이란 용어가 사용되진 않았지만, 미국은 19세기 말부터 기술 혁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과학 기술 기반 회사들이 비즈니스에 필요한 새로운 제품과 생산 공정을 개발하기 위해서 내부 기업 부설 연구소에 투자하고, 외부 발명가한테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은행이 점점 위험을 회피하는 분위기라서 창업가는 공식적인 은행이나 금융기관으로부터 보단 주변 가족, 친구, 또는 성공한 기업인으로부터 초기 자금을 투자받았는데, 우리가 농담처럼 말하는 3F가(Friend, Family, Fool) 초기 모험 자본을 대주면서 시작됐다. 내가 몰랐던 사실은 GM이나 포드와 같은 대형 자동차 회사와 항공 회사조차 초기 자금은 그냥 개인들이 제공해줬다고 한다.

이렇게 비체계적으로 투자가 되다가 1929년 10월 뉴욕 주식거래소가 폭망하는 대공황을 시작으로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재편되었는데, 큰 틀로 보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류했고, 상업은행은 창업가에게 모험자본을 더는 제공할 수 없게 되면서 중소기업의 중요한 자금줄이 끊기게 됐다. 이 시기에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이뤄졌고, 벤처캐피탈이라는 용어는 이때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벤처캐피탈이 필요한 이유는 실험 단계에 있는 사업을 위해 공모로 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모집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 사업에 대한 자금 조달은 위험에 익숙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며, 새로운 사업의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됐다.

현재의 LP-GP 구조의 벤처캐피탈 형태는 1950년대 말에 출현했다. 기존의 벤처캐피탈도 파트너십 구조로 만들어졌지만, 가족들의 자본으로만 이루어졌고, 주로 공모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했는데, 유명한 VC인 Tim Draper의 아버지 Bill Draper가 만든 DGA(Draper, Gaither and And 가족 외의 돈을 투자받을 수 있고, GP가 연간 운용보수와 배당 일부를 받을 수 있는 성공보수의 개념이 적용된 최초의 합자 조합(LP: Limited Partnership)의 벤처캐피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1950년도 이전에는 MIT가 있는 보스톤을 기반으로 동부에서 벤처캐피탈이 더 많이 생겼는데, DGA를 시작으로 캘리포니아로 그 축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DGA가 캘리포니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된 논리는 당시만 해도 서부에는 중소기업에 체계적으로 자금을 대줄 수 있는 민간 투자 은행 그룹이 없었기 때문에, 서부의 벤처캐피탈은 중소기업과 상업은행들에 의해 큰 환영과 지원을 받으리라는 것이었는데,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서부 벤처캐피탈의 성공은 다른 투자자들이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모이게 하는 큰 자극이 됐다.

1970년대에 와서는 LP와 GP 모두에게 큰 수익을 안겨 줄 수 있는 Limited Partnership 형태의 벤처캐피탈이 본격적으로 정착되면서 대형 펀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욱더 많은 VC가 생기고, 이들이 더욱더 많은 회사에 투자하면서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회사의 지분을 청산하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 대형 증권거래소는 아직도 소규모 스타트업을 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회사는 유동성이 낮은 장외시장에서 상장돼야 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71년 나스닥 시장이 새롭게 열리면서 벤처캐피탈의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나는 나스닥이 벤처캐피탈 성장에 이렇게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걸 이걸 보고 알았다. 그러면서 실리콘밸리의 인터넷 혁명이 시작하면서 벤처캐피탈 산업은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했고, 그동안 시장의 up and down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면서 계속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런 흐름을 타면서 스트롱벤처스와 같은 VC도 생기게 된 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미국이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19세기 말부터 기술 중심의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할 방안에 대해서 고민한 그 시작점 자체가 다른 나라한테는 넘사벽이다. 그래서 중국이나 다른 나라가 아무리 노력하고 빨리 따라잡으려고 해도 이런 역사, 경험, 그리고 저력을 넘는다는 건 정말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기술 중심의 중소기업이 많이 생겨야 한다는 사실을 일찍 파악했고, 이 기업들에 돈을 제공하기 위해서 Limited Partnership이라는, 투자자와 투자받은 기업 모두가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우수한 형태의 벤처캐피탈이라는 구조를 탄생시켰다는 건 미국이기에 가능했던 거 같다.

1938년 1월 13일 자 WSJ 사설은 벤처캐피탈을 “수익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지 않은 투자”로 정의를 했다. 실은 지금까지 내가 들어봤던 벤처캐피탈의 그 어떤 정의보다 명쾌하고 정확한 개념인데, 81년이 지난 지금도 이 정의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수익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지 않은 투자를 하는 나, 선후배, 그리고 동료 VC들이 참 자랑스럽고 왠지 든든하다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