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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rtible Note

이제 갓 시작해서 빠르게 성장하는 벤처기업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앞서 말한 적이 있다. 우리도 이제 15개의 회사에 투자했는데, 투자 할 때마다 밸류에이션 가지고 창업팀과 이야기하고 네고 하는 건 흥미롭지만 힘든 소모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중 몇 스타트업에는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투자를 했는데 그 이유는 밸류에이션 기반의 지분투자가 아닌 convertible note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Convertible note를 네이버나 다음에서 찾아보면 ‘태환권‘이라고 우리말로 번역 되는 거 같은데 그 뜻을 잘 읽어보면 미국에서 투자할 때 사용하는 거랑 개념이 많이 다른 거 같다. 나랑 내 주위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전환사채’라고 한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금융법적으로도 공식적인 상품이 아니라서 용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주 자세히 설명하자면 글이 굉장히 길어지는데 여기서는 기본적인 개념만 정리해 본다.

일단 ‘전환사채’라는 말을 하나씩 해석해보면 그 뜻을 대충 알 수가 있다. 내가 한 회사의 창업자로서 투자자로부터 convertible note를 받으면 그 돈에 대해서 회사의 지분을 주지 않는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갚아야 하는 단순한 어음/사채(대출금)이다. 하지만, 이 사채는 미래의 특정 시점에 회사의 지분으로 ‘전환’이 된다. 그러므로 ‘전환사채’이다. 지분으로 전환되는 그 특정 시점은 제대로 된 기관투자자가 투자사 및 창업팀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적당한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시점이다 (주로 Series A).

전환사채의 계약서도 가지각색이고 투자자마다 요구하는 특정 조건들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전환사채에는 다음 3가지가 반드시 있다:

1. 이자율 : 전환사채는 미래에 지분으로 전환되지만(물론, 전환 안 되고 돈을 다시 받거나 아니면 회사가 그냥 망하는 경우도 많다) 당장은 대출금과 같다. 전환되지 않을 경우 미래의 특정 시점에 – 주로 2년 후 – 돈을 다시 받게 된다. 물론 이자까지 합쳐서. 이자율도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5%~10% 정도이다.

2. 할인율 : 위에서 말했듯이 만약에 미래에 특정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Series A 기관투자가 이루어지면 전환사채는 그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회사의 지분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전환사채가 사용되는 시점은 일반인들이 주로 투자하길 꺼리는 리스크가 많은 벤처의 초기 단계기 때문에 이 시점에 회사를 믿고 고맙게 전환사채로 투자한 투자자들에게는 Series A 투자자들보다 더 유리한 할인율이 제공된다. 만약에 Series A 투자자들이 주당 5,000원을 지급했다면, 전환사채 투자자들은 이보다 할인된 가격에 주식을 구매한다(할인율에 따라서). 내가 본 할인율은 주로 15%~20% 정도이다.

3. 밸류에이션 캡(valuation cap) : 만약에 내가 특정 벤처기업의 완전 초기 시점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전환사채로 1,000만 원을 투자했다고 가정해보자(할인율 20%). 그런데 이 회사가 엄청나게 성장해서 12개월 후에 유명한 VC로부터 1,000억 원의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유치한다고 가정해보자. 회사의 입장에서는 아주 경사가 났지만 내가 투자한 1,000만 원이 지분으로 전환되면? (주식 가격으로 하면 좀 복잡하니까 대충 계산해도) 0.02%도 안 된다! 이건 좀 너무 한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내가 회사와 창업팀을 믿고 완전 초기에 투자했는데….
자,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밸류에이션 캡이라는게 있다. 내가 본 캡은 주로 20억 ~ 50억 원 정도인데 위의 경우에서 만약에 캡이 20억 원 이라면 Series A 투자자가 그 어떤 밸류에이션에 들어와도 (1,000억이든 1조 원이든) 내 1,000만 원은 20억 원 이라는 밸류에이션 기반으로 지분 전환이 된다.
* 물론 기관투자가 밸류에이션 캡인 20억 원보다 더 낮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하면 더 낮은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지분 전환 된다.

뭐, 다른 여러 가지 조건들도 갖다 붙이면 되지만 기본적으로 전환사채 계약서에는 위 3가지 조건들은 반드시 포함된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분이 궁금해하실 거 같다. 왜 전환사채로 투자할까?
이 또한 투자자들과 창업가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일단 밸류에이션 결정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전환사채는 지분투자가 아니라 단순한 대출/어음이기 때문에 이제 갓 시작한 회사의 가치가 1억이냐 100억이냐 싸울 필요가 없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일단 빨리 돈을 받아서 제품개발에 집중할 수 있고,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마음에 드는 회사라면 일단 빨리 적당한 할인을 받고 투자를 할 수 있어서 서로한테 나쁜 deal이 아니다(굳이 따지자면 투자자한테 오히려 더 불리하다.).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지표들이 – 유저 수, 매출, 성장률 등 – 만들어지는 시점에 밸류에이션은 결정될 것이고 기관투자자가 적당한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투자하면 그때 지분으로 전환된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전환사채 계약서가 아주 간단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지분투자를 할 경우 아주 길고 복잡한 계약서 몇 종이 있는데 전환사채의 경우 아주 standard한 (위에서 말한 3가지 조건이 나열된) 계약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빨리 검토/투자가 이루어진다.

창업자의 입장에서도 전환사채는 여러모로 볼 때 좋다. 이미 말한 대로 투자유치를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밸류에이션 정하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제품개발과 team-building에 모든 초점을 맞출 수가 있다. 또한, 지분투자를 받는 경우 투자유치 목표금액이 만약에 10억 원 이라고 하면 10억 원 전체를 투자자/투자자들로부터 확정을 받은 후에야 실제로 돈을 입금받을 수 있지만, 전환사채는 투자유치 목표금액이라는 게 딱히 정해지지 않기 때문에(그렇게 정할 필요가 없다.) 계속 rolling basis로 돈을 그때그때 계약서만 서명하고 받을 수 있다.
* 또한, 계약서가 매우 간단하고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돈 없는 스타트업에서 변호사 비용을 쓸 필요가 없다. 그냥 인터넷에서 convertible note 계약서 검색해서 여러 템플릿 중 하나를 사용하면 된다 🙂 

한국도 빨리 convertible note가 제도화되면 좋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방법을 좋아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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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STRONG Survey – 한국의 창업가들은 누구인가?

2011년 11월에 baenefit.com, 비석세스 그리고 벤처스퀘어 독자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서베이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한국의 창업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가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한 시간 만에 서베이를 만들었는데 그 결과에 대한 반응은 꽤 좋았다. 2011년도 서베이 결과는 여기서 볼 수 있다.

올해도 거의 비슷한 질문을 바탕으로 간단하게 서베이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역시 은근히 흥미로운 거 같아서 간단하게 정리를 해봤다. 참고로, 전체 결과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는 홍보가 제대로 안되어서 참여 인원은 2011년도의 76명의 거의 절반인 36명이다

1) 남성. 여전히 한국의 창업가들은 남성이 압도적이다(남자가 89%). 2011년도는 95%가 남성이었다.

2) To pivot or not to pivot. 응답자 중 67%인 24명이 창업 초기 아이템으로 현재 계속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즉, 오리지날 아이디어에서 피벗한 창업가들은 33%이다. 2011년에는 정확하게 절반인 37명이 피벗을 했다

3) Global. 83.3%가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며, 47.2%는 국내 비즈니스 및 글로벌 비즈니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는 2011년의 55%와 비슷하다.

4) Exit. 응답자 중 거의 절반이 인수/합병을 통한 exit을 선호한다고 했다. 물론, 이 중 95%는 exit은 커녕 쫄딱 망할 것이다 

5) 창업가들.
-19명(52.8%)이 부모님 중 한 분이 사업이나 창업을 했다고 한다. 사업도 유전인가?
-절반이 오전 7시 ~ 9시 사이에 일어난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침형 인간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늦게 자서 그런가?)
-취침시간은 평균 5시간 ~ 7시간으로 미국과 비슷한거 같다
-아침식사는 1/3은 반드시 먹고, 1/3은 가끔 먹고, 1/3은 먹지 않는다. 아침을 꼭 먹어야지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말은 거짓일 수도 있을거 같다
-술은 대부분 먹을 줄 알았는데 36명 중 15명은 술을 먹지 않는다
-절반 이상인 58.3%가 미혼이다
-63.9%가 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다. 이는 2011년 결과와 많이 다른데 당시 창업가 중 71%가 토종 한국 출신이었다
-8.3%는 창업한 걸 후회하고 있다
-91.7%가 처음부터 창업 결심을 했지, 취직을 못해서 창업의 길을 선택한게 아니다
-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는: 페이스북 > 카카오톡 > 트위터 > 링크드인
-잠자기 전에 가장 많이 확인하는 건 페이스북이다(31.6%)

6) Communication. 이 부분이 약간 의외였는데, 36명 중 21명이 하루에 이메일 보내고 받는데 사용하는 시간이 1시간 이하였다. 하루에 5시간 이상을 이메일 보내고 받는 창업가는 단 1명 밖에 없었다(내가 설문에 참여했으면 2명이 되었을거다). 대신, 72.2%가 하루의 5~25%를 직원들과 대화하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이것도 의외였다

7) Bootstrapped startups. 이들 중 39.4%는 첫 창업 시 본인들이 직접 자금을 조달했다. 이는 2011년도 수치와 거의 비슷하다.

8) 학력. 58.3%가 학사 학위. 22.2%가 석사 학위. 13.9%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창업가들이다. 이 중 대학교 중퇴는 2명이었다

9) 정신건강.
-불면증에 시달리는 창업가들은 19.4%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회사 이메일을 계속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대부분(66.7%) 공황장애 증상이 없지만, 27.8%는 약간있고 2명은 심각한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10) 슈퍼히어로. 한국에서 아이언맨이 대박났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역시 창업가들의 44.4%가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면 ‘아이언맨’이 되고 싶다고 했다

11) 안철수. 안철수씨가 정치를 하든 비즈니스를 하든 창업가들의 44.4%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이들은 후배 창업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친절하고 마음에 와 닿는 조언을 주셨다:
-강한 의지야 말로 가장 필요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다가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가 아니라, 반드시 해 낸다는 의지를 가지고 일합시다
-일단 시작하면 뭐라도 됩니다
-God bless you
-열심히해라.시간없다
-성공하는 참고할만한 이야기와 사람들은 주변에 널려있어요. 매일 매일 자신을 반성해 자기를 이겨나가는 것이 성공의 열매는 따먹는 첫 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실패한것에서 배워라
-육체적 정신적 고난이 끊임 없이 반복되고 대부분은 실패하는 게 창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이 창업이 아닌가 싶네요
-일단 저지르자

전체 결과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설문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고성장 회사의 가치

벤처기업의 가치(valuation)를 정하는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상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의 가치를 책정할 수가 없고, 수익이나 cash flow가 별로 없기 때문에 경제적 공식을 적용하는것도 쉽지가 않다. 또한, 비슷한 회사를 벤치마킹하는것도 정답은 아닌게 아무리 같은 분야에 있는 스타트업이라도 팀원들의 능력에 따라서 그 결과는 너무나 달라지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내가 아는 스타트업이 이런 상황에 처해있었다. 회사는 잘 성장하고 있었고 이제 더 큰 성장을 더 빠른 시간에 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투자를 받으려고 몇 몇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 회사가 10억짜리 회사인지 아니면 100억 짜리 회사인지 밸류에이션에 대해 여러가지 숫자와 이야기가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 중 많은 투자사들이 – 대부분 한국 – 이제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고성장 벤처기업의 가치를 (내가 보기엔) 맞지 않은 방법으로 산출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 스타트업과 비슷한 업종에 있는 상장회사의 PER (Price-Earnings Ratio: 주가수익비율)을 스타트업에 적용해서 가치를 결정하고 있었다. 투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계산하는게 1.그래도 뭔가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가치를 산출했고, 2.나중에 혹시 문책 받으면 변명 할 수 있고(특히 상부에), 3.본인들한테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 할 수 있는 점들이 있지만, 나도 초기 벤처기업들에 투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때 이 방법은 조금 억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기준으로(2013.10.29) 이제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 몇 tech 회사들의 PER를 보면 구글은 29.2, 오라클은 14.3, 마이크로소프트는 13.26, 시스코는 12.1이다. 다들 나름대로 tech에서 한가닥 한다는 회사들이고 PER가 다르긴 하지만 아주 터무니 없이 다르지는 않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어린’ 상장한지 얼마 되지 않는 페이스북의 PER는 189.49이다. 그렇다고 Facebook의 실적과 숫자들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보다 좋은 건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회사의 현재 건강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13.26의 PER를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큰 회사가 최근 10년 이상을 해마다 거의 두자리 수 성장을 하고 있는데 이런게 PER에 반영된다기 보다는 앞으로의 성장가능성과 주식시장의 기대심리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Facebook과 같은 신생기업이 (물론 성장 가능성은 좋다고 생각한다) 높은 PER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가능성에 대한 프리미엄 가치’는 비상장 기업에 가장 잘 적용된다. 이제 곧 상장기업이 될 Twitter는 수익이 없지만 회사 가치는 110억 달러이다. 수익은 커녕 매출도 전혀 없는 Pinterest의 가치는 38억 달러, Snapchat은 30억 달러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아직 상장하지 않은 고성장 스타트업의 가치를 결정할때 어느정도 안정된 상장기업의 지수인 PER를 적용하는건 무리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성장 스타트업에 대한 상대적인 가치가 적용되어야지 전 산업군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가 적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마치 같은 월터급 체급이라고 10대 복싱 선수와 50대 복싱 선수가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 PER도 고려하지만, 팀원들의 가능성, 서비스의 가능성 그리고 현재 비슷한 분야의 비상장 회사들의 가치 또한 전반적으로 잘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건부의 공동창업 개발자

투자자라면 자주 접하는 상황이며 개발능력이 없는 창업가 또한 자주 접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거의 매주 경험하는 상황인데 지난 주에 또 이런 일이 있었다. 개발은 못하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 열린마음으로 배움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굉장히 맘에 들고 탐나는 창업가가 우리한테 투자를 받고 싶다면서 왔다. 문제가 – 큰 문제 – 하나 있다면 1인 창업가 였고, 개발을 할 수 있는 full-time의 technical 공동 창업자가 없었다. 하지만 외주를 통해서 이미 제품은 개발이 되었는데, 내가 외주의 종말이라는 글에서 주장하는거와는 달리, 남이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이쁜 UI와 깔끔한 기능들로 무장된 좋은 모바일 앱이었다. 또한, 이 외주 개발자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면서 일을 했고 서로 궁합이 잘 맞아서 공동 창업자로 영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로써는 이 개발자에게 월급을 줄 형편이 되지 않아서 월급을 줄 수 있을 만큼의 투자를 받으면 바로 full-time 공동 창업자로 조인하겠다는 다짐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익숙한 상황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 하지만 개발 능력이 없는 – 똑똑한 창업가가 그동안 저축한 돈을 들여 외주 개발회사에 제품 개발을 맡겼고; 어느정도 완성된 베타 제품이 시장에서 반응이 괜찮았다; 그래서 그는 외주 개발자한테 아예 같이 스타트업을 해보지 않겠냐라고 물어보지만 그 외주 개발자는 결혼도 했고 자식들까지 있어서 당장 월급을 받지 못하면 안된다면서 본인이 가족들을 부양하면서 살려면 한 달에 최소한 얼마의 비용이 필요하니, 그 정도를 최소한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만큼의 투자를 유치하면 조인하겠다고 한다.

고민을 좀 했지만, 난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조건부 공동창업자”들의 공통점은 바로 “공동창업자”가 될만한 자격을 얻을 정도로 회사의 비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들어오면 조인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의 비전을 믿고 본인이 팀에 합류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투자금과는 상관없이 같이 일을 해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투자자들 또한 이런 믿음과 행동을 보고 싶어할 것이며, 그때 투자는 성사된다. 그 반대의 경우는 – 개발자가 합류하는 조건으로 투자하는 – 거의 본 적이 없다. 물론, 이건 그 1인 창업가가 개발자를 설득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는데, 이 또한 투자자들에게는 걱정이 되는 상황이다.
다른 이유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조금 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내가 지난 주에 만났던 창업가가 이 조건부 공동창업 개발자를 회사로 데려오기 위해서 필요한 투자금은 350,000 달러였다. 그 정도의 돈이 은행계좌에 있어야지만 그 개발자가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하고(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개발자다) 수개월 동안 마음의 평온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고 한다. 우리가 50,000 달러를 투자한다고 가정해보자. 만약에 남은 300,000 달러를 유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그럼그 개발자를 계속 외주로 활용을 하면서 우리의 투자금만 사용하게 된다. 투자자마다 다르겠지만 이 상태로는 아마도 개발자를 full-time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필요한 남은 300,000 달러를 선뜻 투자할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아주 운이 좋아서 필요한 350,000 달러 투자가 되어 개발자가 공동창업자로 조인했다고 가정해보자. 시간이 가면서 1년만에 투자금을 다 소진했지만 매출은 커녕 제품 자체도 pivot을 여러 번 해서 제품의 완성도에도 문제가 있다(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이런 과정을 겪는다). 돈을 다 써서 이제 다음달 월급을 주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면 월급을 위한 투자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던 이 조건부 공동창업가는 계속 회사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다른 곳으로 가면서 이 스타트업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물론 이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투자자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내 짧은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때 “투자금이 들어오면 full-time으로 조인할 거예요”라는 팀 중 잘 된 케이스를 거의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이런 팀에는 투자를 하지 않을거 같다.

한국 대기업들도 할 말 많다

hqdefault나를 잘 알고 내 블로그나 책을 읽으신 분들은 내가 대기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오늘은 대기업들의 편을 좀 들어보려고 한다. 솔직히 대기업 편드는 건 아니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몇 마디 한다는 게 맞을 듯. 오늘도 한 흥분하고 화난 창업가한테 한국의 대기업들이 벤처기업들을 죽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백 번 들었던 익숙한 이야기이다. 벤처기업이 좋은 서비스를 시작하니까 대기업에서는 이를 인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들이 직접 똑같은 서비스를 시작해서 결국 유망한 벤처기업을 죽였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런 것일까? 미국 대기업들은 무조건 직접 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한국 대기업들은 무조건 스타트업을 인수하지 않고 자기들이 다 하려고 하는 것일까? 겉으로만 보면 맞는 말이다. 숫자로 보면 한국에서는 작은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에 인수되면서 exit 하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 특히 실리콘 밸리와는 너무나 대조된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분이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미국의 M&A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이유는 대기업들의 마인드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아주 매력적이고 섹시한 스타트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대기업들의 문화는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생각이나 전략은 같다. 좋은 제품/서비스를 만들어서 고객을 만족하게 하면서 매출과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혁신이나 새로운 서비스는 작은 스타트업들이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서비스들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으면 대기업들의 레이더망에 걸린다. 돈이 될 서비스라는 판단이 서면 대기업 인력들은 여러 가지 시장 조사와 내부 연구를 통해서 스타트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게 더 좋을지 아니면 본인들이 직접 하는 게 더 좋을지 고민을 한다. 기술적 장벽도 별로 없고, 사용자들의 engagement도 아주 높지 않으면 주로 대기업에서는 무식하게 돈과 사람을 투입해서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해 버린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 이런 경우가 한국보다는 미국이 훨씬 더 많다 – 그냥 그 스타트업을 통째로 사버린다.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기술적 장벽 – 대기업이 따라잡기 힘들거나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어려운 기술
2. 사용자 수 – 이미 tipping point를 넘었기 때문에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해도 사용자 수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
3. 사용자 engagement –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 서비스를 너무 잘 만들어서 사용자들이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는 서비스일 경우
4. Team – 실리콘 밸리에서 유행하는 acq-hire(acquire + hire). 제품은 별 볼 일 없지만(좋은 경우도 많다) 팀원들, 특히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맘에 들 때

이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에서 대기업들이 작은 스타트업들을 인수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나열한 4가지를 다 가진 스타트업들은 거의 없고(있으면 말해주세요), 이 중 하나라도 보유한 매력적인 회사들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자선단체도 아닌데 후진 스타트업들을 뭐하러 인수하는가? 본인들이 직접 하면 더 빠르고 잘할 자신이 있으면 직접 하는 거다. 근데 왜 이걸 욕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언론에서는 마치 대기업들이 작은 회사들을 죽이는 것처럼 기사를 쓰는데 이건 정말 아닌 거 같다. 물론, 대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돈과 영향력을 부당하게 사용해서 작은 회사들의 비즈니스를 방해하면 욕을 먹어도 싸지만 남의 서비스를 카피해서 더 빠르고, 좋고, 싸게 제공하는 건 욕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소비자들한테는 좋은, 아주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자유경쟁 시장에서 남이 하는 서비스를 베끼는 건 욕할 수 없다.

얼마 전에 Altos Ventures 한 킴 선배의 Snapchat 이야기를 읽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를 정확히 잘 지적해 주셨다. 스냅챗이라는 LA 기반 스타트업의 소셜서비스가 10대들에게 불같이 퍼지는 걸 감지한 Facebook은 ‘Poke’라는 똑같은 자체 서비스를 만들어서 출시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그만큼 스냅챗의 팀은 시장과 사용자들에게 사랑받는 서비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대단한 페이스북마저 스냅챗을 따라잡지 못했다. 솔직히 큰 기업들이 자만하면서 스타트업을 그대로 카피했다가 재미를 별로 못 본 이런 사례들은 미국에 많다. 한국은 이와 약간 다른 거 같다.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카피하면 훨씬 더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드는데 그걸 가지고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죽인다고 욕하면 안 된다. 애초에 그 스타트업의 서비스가 별로였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발생한 거다. 시장에서 먹히지도 않는 허접한 제품을 만들어 놓고 대기업이 베껴서 더 잘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죽이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이제 좀 질린다. 그렇게 억울하면 대기업이 따라 해도 이길 자신이 있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들어라. 그러면 큰 회사에서 인수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만약에 실리콘 밸리에서 창업했다면 분명히 야후나 구글에서 인수했을 텐데 한국에 있어서 exit을 못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럼 실리콘 밸리로 가서 야후나 구글에 팔아보라고 말해보고 싶다. 그럴 자신 없으면 불평하지 말고 그냥 좋은 제품 만드는 데 집중해라. 한국의 M&A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대기업의 마인드도 어느정도 바뀌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건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섹시한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Ba2B7ic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