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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on Group의 몰락 – Part 1

위키피디아는 내부자 거래를 (insider trading)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특정 기업의 주식이나 증권 (채권, 스톡 옵션 등)을 그 기업과 관련된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기반으로 개인들이 사고 파는 행위. 임원, 핵심 직원들, 이사회 및 대주주들과 같은 “내부자”들이 기업의 주식/증권을 사고 파는건 불법 행위가 아니지만, 그 사고 파는 행위 자체가 공개되지 않는 정보를 남용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발생해야한다.

하지만 언론에서 주로 “내부자 거래”라는 말이 언급될때는 99.9% 거의 불법적 거래와 연관이 있다. 뭐, 그렇기 때문에 언론에 나오는것이지만서도. 즉, 특정 개인들이 아직 시장에 공개되지않은 기업의 정보를 바탕으로 주식 거래를 했을때 우리는 주로 내부자 거래라는 말을 접한다. 간단한 예로, 나랑 친한 친구가 작은 생명공학 벤처기업에 다닌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 회사는 곧 아주 큰 제약업체한데 인수될것이라는 내부 정보를 내 친구랑 내가 술을 먹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부터 나는 은행과 주위 친구들한테 빚을 내면서까지 돈을 모아서 내 친구가 다니는 벤처기업의 주식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정말로 얼마 후에 이 벤처 기업은 제약회사에 인수되었고 내가 산 주식의 가치는 하루 아침에 5배가 되었다. 아주 전형적인 내부자 거래 케이스이며, 엄연한 불법 행위이다.

거의 1년이 넘게 법의 심판과 검토를 받고 있는 월가의 현대 역사상 가장 큰 내부자 거래 소행에 대한 내용을 연재해 보도록 하겠다. 나 또한 이 케이스를 1년 넘게 신문과 잡지를 통해서 follow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이런저런 연구와 조사를 많이 하였는데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흥미롭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한 음모와 사기에 놀랄 따름이다. 2009년 12월 초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언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 중 하나인 뉴욕의 Galleon Group이 2009년 10월에 문을 닫았다.
Galleon은 전 Needham & Company사의 사장인 Raj Rajaratnam에 의해서 1997년도에 설립되었으며, 2009년도에 내부자 거래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현재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모두 빼낸 상태이다. Rajaratnam씨는 2008년 10월달에 5명의 공범들과 함께 체포되어 다수의 사기 및 내부자 거래 협의를 받고 있다. 그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Raj Rajaratnam의 등장
1985년 작지만 탄탄하기로 소문난 Needham & Co. 투자은행에 한 젊은이가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로비에 나타났다. “인터뷰 하러 왔습니다”하면서 그는 자신감있게 말을 하였다 –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아주 기억에 남을만한 큰 미소와 함께. 그의 이름은 Raj Rajaratnam 이었다.
스리랑카 태생의 Rajaratnam씨는 재봉틀 제조업체인 Singer의 매니저였던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그는 영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워튼 스쿨에서 MBA 학위를 마친 후 Chase Manhattan 은행에서 2년 동안 일을 했다. 그당시 월가의 많은 젊은이들과 같이 그는 앞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반도체 산업의 가능성을 일찍 깨달았고, 이와 관련된 투자은행 업무 및 연구조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Needham에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당시 돌던 소문에 의하면 Needham은 전문성과 경험보다는 낮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살인적인 업무시간을 소화할 수 있는 의욕찬 젊은이들을 채용하였다. Needham의 창업자인 George Needham 씨는 “나는 절름발이들을 채용해서, 아주 x뺑이를 치게 만들지.”라는 말을 버릇처럼 했다고 전해진다.
Needham씨는 직원들에게 정보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였다. 그는 Raj와 같은 analyst들한테 24시간 눈과 귀를 열고 다니라고 하면서, 비행기를 타면 옆좌석 사람한테 정보를 캐고, 술집에 가면 바텐더한테 정보를 얻으라는 말을 바이블처럼 주입시켰다. 그리고 그는 매우 검소했다. 직원들의 비용청구서를 일일히 직접 다 확인하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직원들한테 비행기에서 항상 1박을 하는 스케줄을 강요했다. 심지어는 쓰레기통에 먹다 버린 음료수가 있으면 비서들을 나무라기까지 할 정도로 Needham씨는 짠돌이 였다.
Raj는 이런 빡빡한 분위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그는 이미 미국의 사양산업으로 간주되어 남들이 잘 분석하지 않는 컴퓨터 칩 산업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밤 비행기를 타고 날라가서 실리콘 밸리의 하루 90달러짜리 모텔방을 숙소로 삼으면서 칩 산업의 전문가와 임원들과 하루 종일 미팅을 하면서 커넥션을 만들어갔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허영심에 가득찬 월가의 analyst들에 익숙한 실리콘 밸리의 임원들은 약간 어리숙하지만, 순진하고 백만불 짜리 미소를 가지고 있는 Raj한테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Raj Rajaratnam의 성장
Raj는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그리고 더 정확한 정보 수집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1987년 초에 전 Applied Materials사의 CFO인 Gerald Taylor씨가 “chemical vapor deposition (CVD: 화학기상성장법)”이라는 신기술에 대해서 월가의 큰 투자은행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을 할때 어떤 analyst는 발표 도중 잠이들 정도로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였지만, Raj는 직접 실리콘 밸리로 날라가서 Taylor씨 및 Applied Materials사의 엔지니어들을 만나서 이 기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이해한 후에 그가 향 후 배포한 산업동향 보고서에 이 신기술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분석 자료를 포함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는 이 회사의 고객들과 전화통화나 미팅을 통해서 회사의 현황 및 산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 그 당시만 해도 이렇게 까지 공을 드리는 analyst는 없었다.
이런 그의 노력은 빛을 발휘하였다. 그는 Applied사를 비롯한 다른 칩 제조업체들이 – Atmel, Oak Technology, Opti, Xilinx – 상장할때 Needham사를 주 투자은행으로 이용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으며, 이 회사들의 사장들은 대부분 Needham한테 비즈니스를 주는게 아니라 Rajaratnam씨한테 비즈니스를 준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서서히 그의 발굴의 영업능력은 월가에 소문나기 시작했고, 큰 투자은행들에서 Raj한테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냈지만, Raj는 Needham에서 초고속 승진을 통해서 1991년도에 사장이 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 한가지 – 보통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직원들을 관리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장감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노가다’ 현업 일들은 이제 새파란 MBA 출신의 analyst들이 하는게 보통 이 바닥의 생리이다. 그런데 Raj가 사장이 되던 해에 신입 analyst인 Gerald Fleming이라는 직원이 아침 미팅에서 Applied사의 주당 수익 (EPS)이 41센트일거라는 발표를 하였다. 조금 후에 Raj는 그 정보는 틀렸고, 자신의 “믿을만한 소스”에 의하면 42센트라고 반박하였고, Applied에서 수익을 발표했을때 실제 EPS는 42센트였다. 그만큼 Raj는 계속 현장감을 유지하고 있었고, 더 중요한거는 수많은 정보통들의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Rajaratnam씨는 1992년도에 기술주들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위한 헤지펀드를 설립하였고, 그가 그동안 쌓은 방대한 소스들로부터 나오는 정보를 기반으로 큼직큼직한 투자를 시작하였다. 2년 후 그는 Needham사의 지분을 17%나 소유하게 되었고 – 창업자 George Needham은 26%를 소유하고 있다 – 연봉만 10억 이상을 받고 있었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인 Raj였지만, 그는 겸손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입사원들한테 그는 “George의 이름으로 회사는 설립되었지만, 여기서 실제 보스는 바로 나야.”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곤 했다.

실리콘 밸리의 정보왕
Rajaratnam의 리더쉽은 매우 독특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같이 카리스마로 가득찬 리더였고, 특히 직원들을 한계점까지 몰고가서 잠재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리더쉽으로 유명했다.
그가 먹지 못할 정도로 매운 소스는 이 세상에 없다고 자랑하는걸 들은 후 직장 동료가 그 다음날 세상에서 가장 맵다는 하바네로 고추로 만든 Armageddon이라는 소스를 한병 가지고 왔다. 거장내 모든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Raj는 이 소스로 범벅한 닭날개 2개를 원샷하고 바로 화장실로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토를 했다고 한다. 그는 그날 조퇴하였다. 그 정도로 Raj는 승부욕이 강했고, 직원들도 그만큼 강해지길 원했고 그렇게 몰아붙였다.
1990년 초,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 소프트웨어와 Intel에서 제조한 값싸고 성능좋은 프로세서는 새로운 개인 컴퓨팅 시대의 장을 열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Raj가 그토록 열심히 쫓아다니던 칩 산업이 활기를 되찾았다.
인텔은 경쟁사 AMD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1994년도에 AMD는 인텔과의 큰 법적 소송에서 승소하였고, 투자자들은 AMD의 486 칩들이 과연 인텔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시장점유율을 갉아 먹을수 있을지 모두 궁금해하고 있던 때였다.
1994년 3월 21일 – AMD의 1사분기 실적 발표 2주 전 – Raj는 그의 사무실에서 열심히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있었다. 싸인팬으로 그는 작은 공책에 날짜와 이름 2개를 적었다. 하나는 AMD를 포함한 여러 tech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매니저 이름이었고, 다른 하나는 칩 제조업체어서 일한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의 이름이었다. 첫 페이지에 Raj는 “5억 달러 이상 될수도 있슴.”이라고 적었고, 그 옆 페이지에는 “목표는 4.84억 달러” 그리고 “새로운 목표 5.15억 달러”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486 1백만개” 및 486 칩의 가격을 몇개 적었다.
4월 4일, AMD는 5.13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1사분기 매출을 발표하면서 월가를 깜짝놀래켰다 – 그 매출을 가능케한 486 칩이 예상보다 더 많은 900,000개 이상 팔렸다고 하면서.
노트광인 Raj는 이와같이 업무와 관련된 모든 통화와 대화에서 나온 정보는 무조건 필기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공책들에는 Raj와 같은 네트워크와 인맥이 없는 대부분의 analyst들이 확보하기 힘든 주옥같은 정보들이 즐비했다.

To be continued in “Galleon Group의 몰락 – Part 2

출처 및 참고:

-Fortune “Dangerous liaisons at IBM: Inside the biggest hedge fund insider-trading ring” by James Bandler
-Wall Street Journal “Raj Rajaratnam: The Inside Story” by Nathan Koppel
-Wall Street Journal “The Man Who Wired Silicon Valley” by Robert A. Guth and Justin Scheck
-Wall Street Journal “Fund Chief Snared by Taps, Turncoats” by Susan Pulliam

AdMob과 워튼의 슈퍼스타 Omar Hamoui

때는 2005년도. 워튼 스쿨 MBA 학생이었던 Omar Hamoui는 필라델피아 UPenn 캠퍼스의 끝자락에 있는 학생용 기숙사/아파트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fotochatter라는 모바일 사진 공유 사이트를 창업하기 위해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열심히 컴퓨터에 매달려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략적인 서비스의 뼈대는 만들었는데 역시 가장 큰 어려움은 마케팅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갓 시작한 서비스를 어떻게 미래의 고객들한테 알리는가가 가장 큰 숙제였다. 그것도 이건 인터넷 서비스가 아니라 모바일 서비스였다. 모바일서비스를 온라인 상에서 광고하는건 약간 실용적이지 못할뿐더러 엄청나게 비싼 방법이었다.

MBA 수업에서 배운 pricing 방법들을 사용해서 대략적인 계산을 해보니 온라인 광고를 하면 모바일 유저 한명을 등록시키는데 드는 비용은 무려 $30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돈도 없고 방법도 효과적이지 못하고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을 그는 했다. 그대신 그 당시만 해도 생소하고 이제 걸음마 단계인 모바일 웹 광고 시장 쪽으로 Omar는 눈을 돌렸다. 모바일 웹 광고 비용은 1센트 CPC (Cost Per Click – 유저들이 모바일 웹 브라우저에서 광고를 한번 클릭할때마다 fotochatter와 같은 광고주가 내야하는 비용) 밖에 안했고 초기 테스트 결과는 훨씬 효과적이었다. 광고를 클릭하는 유저 중 10%가 fotochatter 서비스에 등록을 하였고, 그 결과로 인해서 순수 온라인 광고와 비교해 봤을때 유저 한명을 등록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30에서 10 센트로 드라마틱하게 절감되었다. 그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모바일 광고 시장의 가능성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고,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를 발견하였다는걸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2006년도 1월 Omar는 나랑 비슷하게 (아 근데 결과는 비슷하지가 않다 ㅋㅋ) 워튼 MBA 프로그램을 중퇴하고 AdMob이라는 모바일 광고 플랫폼 서비스를 창업하였다. AdMob은 우리가 잘 아는 구글의 광고 플랫폼이자 cash cow인 애드센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AdMob은 구글 애드센스가 웹에서 정평한 온라인 광고를 모바일 영역에 적용하는 서비스이다. 광고주들은 돈을 내고, 퍼블리셔들은 그 광고를 본인들의 모바일 사이트나 아이폰 앱과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집어넣어서 유저들에게 노출을 시키는거다. 유저들이 광고를 클릭하거나 서비스에 등록할때마다 퍼블리셔들과 AdMob은 광고주들이 지불한 광고비용을 나누어 먹는 그러한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창업 후 5년을 fast forward 해보자. 2009년 말에 구글은 AdMob을 무려 7억5천만 달러에 (한화로 약 9,000억원) 인수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참고로 구글의 AdMob인수 가격은 지금까지 구글이 인수하였던 벤처기업 중 3번째로 비싼 가격표이다. 첫번째는 31억 달러의 DoubleClick이고 두번째는 16억 달러의 유튜브이다. 또한, 이 deal은 여러 사람들에게 참으로 많은걸 시사하였다. 일단 불경기로 인해서 침채되어 있던 전체 tech 시장의 M&A가 다시 한번 활발해지고 있다는걸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신호탄의 역할을 하였다. AdMob은 비상장 회사라서 정확한 매출이나 재무재표는 공개되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년매출이 대략 4천5백만 ~ 6천만 달러라고 추정하고 있다. 구글의 인수가격인 7억5천만 달러는 AdMob 매출의 약 16.7배인데 이러한 배수는 2005년 M&A 황금기때나 볼수있던 그러한 multiple이다. 배고픈 entrepreneur들한테도 너무나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IPO 시장이 말라가고 있는 지금 구글이나 마이크로스프트한테 회사를 파는건 모든 벤처인들의 로망인데 이 시장이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걸 의미하기도 한다. 모바일/온라인 광고 시장 또한 구글의 AdMob 인수로 인해서 오랜만에 활기가 돌고있다. 2009년도는 온/오프라인 광고의 암흑기였지만 구글의 AdMob 인수 소식은 다시 광고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는 건강한 신호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구글한테 질세라, 이 발표 이후 Apple은 Quattro Wireless라는 다른 모바일 광고 네트워크를 2억 7천 5백만 달러에 인수하였다. 특히 나한테는 이 소식이 단순히 큰 deal이라는걸 넘어서 개인적으로 많은걸 느낄 수 있도록 해준 뉴스였다. 워튼이라는 동문 네트워크를 통해서 Omar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아주 친한거는 아니다) 내 주위에 있는 학교 선배가 이런 대박을 맞았다는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당연히 부럽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나도 Omar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학교를 중퇴하고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대박을 나도 맞을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구심이 들지만 어찌되었던간에 명문 MBA를 그만 둔게 주위에서 손가락질 하는거와 같이 그렇게 병신같은 선택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쯤 하게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

AdMob과 모바일 광고에 대해서 조금 더 dive in을 해보자. “저는 그 당시 모바일쪽에서 뭔가를 하려고 했던 수많은 벤처인 중 한명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핸드폰 제조업체나 캐리어랑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니까 모바일 쪽으로는 그 어떤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게 이 바닥 현실이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짜증이 나서 그러면 내가 직접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AdMob을 창업하였습니다.”라고 Omar는 AdMob의 초라하였던 시작을 회상한다. AdMob은 현재 15,000개 이상의 모바일 웹사이트들을 통해서 매달 100억개의 배너와 텍스트 광고를 서비스하고 있다. 코카콜라, P&G, 아디다스와 나이키 등이 주 고객 리스트에 포함된다. 곧 구글의 식구가 될 AdMob과 (현재 미국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구글은 둘이 합쳐서 이제 미국의 모바일 광고 시장의 21%를 점유하게 된다. 2위는 AdMob의 경쟁업체인 Millennial Media인데 12%를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는 야후가 10%이고 마이크로소프트가 8%를 차지하고 있다.

솔직히 아직 전체 광고시장에서 모바일 광고가 차지하고 있는 portion은 상당히 작다. 2009년도 미국의 모바일 광고 시장의 크기는 4억 1천 6백만 달러였는데, 이는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소비된 240억 달러에 비하면 매우 보잘것없는 금액이다. 그렇지만 Omar의 주장은 앞으로 모바일이야말로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미디어 플랫폼이며, 지금부터 모바일 광고를 하는 업체들은 앞으로 몇년 후면 타 경쟁사들보다 시장에서 훨씬 더 경쟁력있는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거라고 한다. 모바일 광고와 기존의 광고 매체를 – 신문, 라디오, TV 그리고 심지어는 인터넷까지 – 차별화하는 가장 으뜸 요소는 바로 모바일 광고의 reach와 relevance이다. 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에 의하면 세계에는 약 46억명의 핸드폰 사용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핸드폰의 숫자는 전세계 TV 보유 숫자보다 3배나 많고, 데스크탑과 랩탑 PC수를 합친것 보다 5배나 더 많다고 한다. TV와 PC와는 달리 핸드폰은 우리 몸에 거의 24시간 붙어 있다. 식당에 식사하러 가거나, 백화점에 쇼핑하러 갈때, 심지어는 화장실에 큰일보러 갈때 PC는 가져가지 않지만 핸드폰은 손안에 항상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적시적소에서 광고주들은 소비자들한테 relevant한 광고를 핸드폰을 통해서 밀어 (push) 줄 수가 있다. 즉, 내가 강남 압구정동의 스타벅스 앞을 지나갈때 나의 위치를 핸드폰의 GPS 시스템을 통해서 파악한 후 현재 스타벅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커피 할인 행사 내용을 핸드폰 화면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 물론, 그전에 핸드폰에서 내가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이메일등을 통해서 내가 커피를 즐겨 마신다는 성향을 이미 파악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time and location relevant한 광고를 밀어 줄 수 있는것이다. 즉, 구글이 선두하였던 쿠키와 사용자 행동을 기반으로 하는 적절한 온라인 광고에 “실시간 위치”라는 아주 파워풀한 차원을 추가한 것이 모바일 광고의 힘이지 무한 가능성이다.

특히 2007년도 아이폰의 출시는 이러한 모바일 광고 시장의 tipping point가 되었다. 또한, AdMob이 구글의 관심을 끌기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의 발판을 마련해주었던 순간이기도 하였다. 애플이 소개한 App Store와 특별한 조건이나 인맥이 없던 그 누구나 사용해서 앱을 개발할 수 있었던 SDK는 몇년 후인 지금 생각해도 모바일 웹과 우리가 모바일 기기와 컨텐츠를 사용하는 방법을 영영 바꾸어 놓은 일생 일대의 사건이었던거 같다. Launch한지 18개월도 안되어서 App Store에는 10만개의 아이폰 앱이 있었고 아이폰 유저들은 이러한 유/무료 앱들을 20억번이나 다운로드를 했다. Omar는 이런 하늘이 주신 평생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08년 7월달에 App Store가 소개되었는데 그 이후 몇 주 안되어서 AdMob은 전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폰 3G 광고 마켓플레이스를 출시하였고 그 결과로 2009년도 말 AdMob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서 아이폰 앱과 아이폰 브라우저들에서 노출된 광고 횟수는 자그마치 25억번 이었다. “아이폰 앱 전용 모바일 광고 포맷을 그때 저희가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다들 긴가민가 했었던거 같아요. 그때까지만해도 모바일쪽으로 시도하였던 모든 새로운 initiative들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AdMob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라고 Omar는 그 당시 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AdMob은 코카콜라와 나이키와 같은 대형 브랜드들이 소비자들한테 24시간 모바일 웹을 통해서 광고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하지만, 뮤직쉐이크와도 같은 코딱지만한 벤처기업들이 모바일 분야의 노력을 현금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플랫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작은 회사들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서 이걸 가지고 딱히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AdMob을 이용하면 손쉽게 모바일 광고 매출을 생성할 수 있다. 실제로 AdMob 의 고객 중에 Fortune 500대 기업은 절반도 안된다. 나머지 반은 거의 다 뮤직쉐이크와 같은 작은 개발사들이다. 현재 AdMob은 160개국에서 모바일 광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나라의 소비자들을 reach할 수 있는것도 놀랍지만, AdMob이 또 하나 잘하는거는 바로 방대하고 분석적인 데이타를 모든 publisher들한테 제공을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어느 나라에서, 어떤 모바일 브라우저를 통해서, 어떤 연령층의 고객들이, 어떤 광고를 몇번 클릭했는가 등등…그전에는 전혀 볼수조차 없었던 이러한 알짜배기 고객정보를 작은 개발사들한테 제공을 해준다. 돈없고 힘없는 작은 회사들이 겪는 바로 이런 에로사항들이 Omar가 5년 전에 본인이 직접 느꼈던 불편함이었고, 용감한 entrepreneur라면 누구나 다 그렇듯이 그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AdMob을 창업한것이다. 그것도 2007년 8월부터 2008년 1월까지 내가 5개월 동안 거의 매일 왔다갔다하던 UPenn의 캠퍼스에서 말이다.

구글의 AdMob 인수 소식은 모바일 광고 시장이 이제 곧 커지기 시작할거라는 신호탄이자, 모바일 광고 시장은 온라인 광고 시장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될거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미 Google AdSense for Mobile 서비스를 개발해서 서비스하고 있던 구글의 엔지니어들조차 AdMob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동안 만든 모바일 광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실패하였고, 더 이상 스스로 in-house에서 모바일 광고 솔루션을 만들기에는 기회의 창과 시간이 많지 않다는걸 느낀 구글은 AdMob을 사버린 것이다. 워튼 동문들한테 듣기로는 이제 워튼의 모든 entrepreneurship 관련 수업 자료에는 Omar Hamoui와 AdMob의 영웅담이 실려져 있고, 창업을 꿈꾸고 있는 모든 미래의 워튼 MBA들한테 Omar는 영웅으로 등극을 하였다고 한다. AdMob의 대박난 exit 소식을 통해서 나도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고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학교를 다니다가 나랑 똑같이 중퇴한 선배가 이렇게 잘된게 마치 내 일인 마냥 기쁘다.

AdMob 소식을 계기로 워튼 학생들도 창업을 좀 많이 했으면 좋겠다. 워튼은 솔직히 학교의 명성에 비해서 – Financial Times는 워튼을 9년 연속 No.1 business school 랭킹을 부여하였지만, MBA를 해본 사람들은 워튼은 2위나 3위인걸 누구나 다 안다. HBS가 부동의 No.1이고 2위를 가지고 스탠포드와 워튼이 항상 경쟁을 하는거 같다 – entrepreneurship이 너무 저조한 학교이다. 유명한 펀드매니저나 월가의 큰손들 중에는 워튼 출신들이 상당히 많이 있지만 워튼 출신의 인터넷 entrepreneur를 꼽아보라고 하면 딱히 생각나는 이름이 없었던게 정말 아쉬웠는데 이제는 Omar Hamoui라고 당당하게 말을 할수가 있어서 기쁘다 (내가 아는 워튼 출신의 또다른 쓸만한 창업자는 JibJab의 Gregg Spiridellis이지만, 아직 JibJab은 exit을 하지 못했다). 아 쓰바…나도 너무 늙기전에 워튼 entrepreneurship 수업 자료에 이름 한번 올라가보자 (“MBA를 중퇴하면 안되는걸 증명하는 대표적인 실패 케이스”로?? ㅋㅋ)

그래서 나도 빨리 분발해서 잘하자는 의미로 Entrepreneur 잡지에 실린 Omar Hamoui 사진을 얼굴에 대고 사진을 찍어봤다. Omar와 AdMob의 운빨과 정기를 팍팍 빨아들여보자. 옷도 워튼 Cohort D 티셔츠다.

Go East, Young Man!

나는 2007년도 7월20일 워튼 경영대학원이 있는 미국 동부의 필라델피아에 도착하였다. 본 학기가 시작하기 약 한달 전에 도착하였는데 모든 MBA candidate들이 거쳐야하는 pre-term (실제 학기가 시작되기전에 워튼 생활에 적응하고 앞으로 2년동안 같이 공부 하게될 MBA 동료들과 친해지라고 주어지는 모든 학생들이 거쳐야하는 과정이다. 앞으로 2년동안 마시게될 맥주의 양을 가늠하고 학교 주변 술집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좋은 사교 기회이기도하다). 내 기억으로는 나랑 같이 입학한 Class of 2009 (한국은 2007년도 입학이면 07학번이지만, 미국은 졸업 년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09학번이다) 중 한국인 학생들이 약 40명이 있었다. 순수 한국에서 온 학생들만 40명이었지만, 미국에서 자란 교포들까지 합치면 약 50 ~ 60명의 한국인들과 Korean American들이 우리 학년에 있었던 거다. 전체 입학생들이 800명인걸 감안해보면 입학생의 약 7% 정도가 한국학생들이니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해마다 정확한 한국 학생의 수는 바뀌지만 이 비율은 거의 유지가 된다고 보면 된다. 공부를 대충하다가 나는 중간에 그만두고 현재 휴학 중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무사히 2년 과정의 MBA 프로그램을 마치고 당당하게 MBA라는 타이틀을 얻은 한국 동기들은 나와는 달리 고액연봉을 받으면서 대부분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랑 같이 입학한 40명의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직장을 잡았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예상치 못하였던 불경기로 인하여 줄어든 미국에서의 절대적인 job opening과 – 특히, 뱅킹과 같은 금융관련 직종 – 2년 공부를 하였지만 역시나 넘지 못한 언어의 장벽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취업 비자를 받는게 외국인으로써 만만치는 않지만 솔직히 작년만큼 H-1B 취업 비자가 많이 남아돌았던 때를 기억할 수가 없다는게 대부분 미국의 이민 변호사들의 의견이다 (그 이유는 해마다 외국인 취업 비자를 가장 많이 신청하는 Microsoft, CiscoGoogle이 작년에는 불경기로 인해서 채용 동결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비자문제는 아닌거 같고, 이 또한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미국 회사에서 한국사람들을 채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던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동기들이 MBA 오기전에 다니던 직장으로 다시 돌아갔고, 그렇지 않고 미국오기전에 다리를 확실히 불태우고 온 사람들은 다른 직장을 구하였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인 삼성과 LG도 포함된다. 유학을 해본 내 경험에 비춰보면 솔직히 한국인으로써 미국에서 유학을 한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일을 하는건 조금 짜증나고 어쩔때는 굴욕적이기까지도 한 과정이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외국계 컨설팅 회사나 investment bank에 입사하면 그나마 연봉이 높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괜찮지만, 순수 토종 한국 기업에서 일을 하는건 나도 솔직히 많이 꺼려하고 “정말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하던 히든 카드였다. 물론, 요새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삼성이나 LG 같은 회사들도 해외 인재 채용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전반적인 기업 이미지들이 글로벌화되었으며, 연봉 수준도 상당히 많이 올랐다고 주위에 있는 분들을 통해서 들었다 (그래봤자 솔직히 외국회사에서 받는거보다는 적다. 어찌되었던간에…)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들의 상황은 대충 이렇다. 내 말에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이건 어찌되었던간에 내 생각이니 그냥 읽고 넘어가 주시면 좋겠다. 그런데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상황과는 달리 요새 미국에서 MBA 학위를 취득하는 외국인들은 스스로의 바램과 의도하에 미국에 남기보다는 동쪽 (아시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재미있는 기사를 최근에 읽었다. James Tsai라는 친구가 있다. 동부의 명문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작지만 네임밸류가 있는 Middlebury College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 Bank of America에서 부사장까지 승진을 하였다. 그것도 26살 이라는 어린 나이에 말이다. Tsai씨는 마케팅과 전략으로 유명한 Northwestern 대학Kellogg 경영 대학원에서 곧 MBA 학위를 마치고 졸업 후 첫 직장을 찾으려고 아주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아니라 중국에서 말이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Tsai씨와 같은 엘리트들의 졸업 후 진로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무조건 미국에 남아서 일을 하는거 였다. “중국에서 직장을 구해보려고 백방 뛰어다니면서 알아보고 있습니다.”라고 Tsai씨는 말을 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건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미국인들이 아시아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주위 친구들은 마치 전기와 TV가 나오지 않는 원시국가로 유배당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했는데 이제는 이 모든것이 바뀌었다. 아니, 아직 바뀌고 있다고 하는게 맞는 말인거 같다.

이제 다국적 기업과 아시아 기업이 능력있는 재원들한테 제공하는 복지혜택과 연봉 수준은 거의 비슷해지고 있다. James Crawford는 몇년 전 Columbia Business School에 입학하기전의 상황을 매우 생생하게 기억한다. 시카고 근교의 집 부엌에서 James의 아버지는 James를 앉혀놓고 한마디 충고를 하였는데 그 말은 “Asia”였다. 앞으로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로 바뀌고 있으니까 졸업 후에는 반드시 아시아로 가서 일할 생각을 가지고 학교 생활 2년을 하라는 말이었다. 현재 MBA 2년차 과정에서 공부중인 Crawford 씨는 다양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30년 후에 국제적 경험이 없는 제 커리어를 생각할 수는 없을거 같습니다.”라고 그는 말을 한다. 올해 32살인 내 후배인 워튼 스쿨의 Andrew Maywah는 MBA 전에 실리콘 밸리에 있는 오라클 본사에서 아주 편안하고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였지만 졸업 후에는 중국에서 일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3개의 잡 오퍼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다. “마치 옛날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가 된 기분이 드네요. 미국보다 훨씬 흥분되고 재미있는 기회들이 중국에는 많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을 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중국인과 인도인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식 교육을 받는 많은 중국인들의 부모들은 몇십년전 꿈의 땅인 미국에서 American Dream을 이룩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이민해왔지만 이제 이들의 아들 딸들은 다시 본국 중국으로 그 반대의 역이민을 가고 있다. 우리나라와 똑같이 중국인들도 이런 현상을 “회귀 현상”이라고 하는거 같다.

세계의 중심이 정말로 동양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많은 대기업들이 이런 기회를 전략적으로 잘 이용하고 있다. 10년전만 해도 아시아 기업들은 미국에서 현지 채용을 위한 채용 박람회를 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도 10년전 스탠포드에 있을때는 삼성LG 정도만 실리콘 밸리의 고급 중식/일식 식당을 예약한 후에 유학생들을 위한 예비 채용 간담회를 개최하였지 그외의 기업들은 찾아보기가 그다지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채용 박람회를 해도 상당히 허접하게 하였던걸로 기억한다. 불과 3년전에 삼양사에서 필라델피아에서 진행하였던 유펜 유학생들을 위한 간담회에 대해서 잠시 내가 썼던걸로 기억하는데 이후에 삼양사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상당히 허접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China Investment Corp.와 같은 중국 국영 투자사나 Tencent와 같은 중국의 IT 포탈회사들도 적극적으로 미국의 유수 MBA 학교에 와서 현지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카고 대학의 Booth School은 최근에 중국 기업들로부터 채용 관련 문의와 관심이 워낙 높아져서 아예 이 기회를 통해서 홍콩에 취업 서비스 센터를 새로 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아시아 기업의 현지채용 트랜드를 현재 리드하고 있는 회사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삼성전자이다. 작년에만 삼성전자는 미국의 top 10 MBA 학교에서 50명의 현지인들을 고용하였다 (아쉽게도 삼성전자의 내부 전략 컨설팅 그룹인 Samsung Global Strategy Group에서는 한국인들은 뽑지 않고 외국인들만 고용한다. 이러한 제도를 솔직히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비즈니스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생각과 견해를 수집하기 위해서 외국인들만 뽑는다고 삼성의 채용 담당자들은 말을 한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50명의 외국 현지인들은 삼성전자가 해마다 뽑는 한국 유학생들의 수는 제외한 숫자이다. 전략적인 사고가 중요시되는 그룹인 만큼 마케팅과 전략으로 잘 알려진 Kellogg School에서만 올해 16명의 MBA를 뽑아갔다고 하는데 이 숫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인 General Mills나 P&G;가 켈로그에서 뽑아가는 학생 수보다 더 많은 숫자이다. 삼성의 김근배 부사장의 말에 의하면 올해는 삼성전자에서 작년보다 2배나 많은 MBA들을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한국기업 치고는 참으로 기발하고 놀라운 움직임인거 같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가 좋아지고 있는건지, 대우가 좋은건지 아니면 미국에서 잡을 찾기가 힘들어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간에 삼성전자의 이러한 현지채용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단단히 효과를 보고 있다. Kellogg 졸업생인 28살의 Jonathan Scearcy씨는 작년에 미국 기업들로부터 30개의 오퍼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삼성전자를 선택하였다. 그는 회사생활에서 남들보다 더 빨리 승진하고 잘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젊었을때부터 국제 경험을 많이 쌓고 외국 문화에 많이 노출되는거라고 하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 삼성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MBA들의 졸업 후 dream job을 시대별로 구분할 수 있다. 1980년대 MBA들은 졸업 후 모두 월가로 가서 쉬지않고 열심히 일해서 보통 직장인들은 평생 꿈도 꾸지 못하는 $을 1년 보너스를 챙기는걸 선호하였다. 1990년대 MBA들은 닷컴과 대박의 꿈을 가지고 너도나도 할거없이 서부 실리콘 밸리로 향하였다. 아마도 이 시기에 가장 많은 MBA 휴학생들이 탄생했을것이다. 2000년대 중반에는 너도나도 할것없이 사모펀드 붐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트랜드는 바로 아시아이다. 미국 top MBA 스쿨에서 졸업 후 아시아에서 일을 하는 졸업생 수는 최근 5년 동안 5%에서 10%로 무려 2배나 증가하였다. BusinessWeek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Go East, Young Ma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과연 이 현상이 얼마동안 지속될까? 많은 전문가들은 이게 일시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한다. 주로 불경기때는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지만 여러 MBA 스쿨들이 경험하고 있는 학생들의 아시아 진출 현상은 불경기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근본적인 세계 경제 축의 아시아 이동으로 인한 영구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꽤 큰 규모의 MBA 졸업생들이 중국, 베트남, 인도, 한국 등에서 근무하겠다고 지원하는 사례는 과거에 가끔씩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오랫동안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라고 인력 채용 회사인 Manpower의 사장 Jeff Joerres는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력의 역유출 현상을 미국 정부도 이제는 심각하게 취급하기 시작하였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미국의 우수한 교육을 받은 후에 Sergey Brin이 모국인 러시아로 돌아가서 구글을 창업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앞에서 언급한 James Tsai씨가 아버지 나라인 중국으로 돌아가서 세상을 바꿀만한 일을 하면 미국의 국제 경쟁력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한번도 이런 현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미국인들은 앞으로 세계 경제의 축이 아시아로 이동하는걸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많은 MBA 졸업생들의 포커스는 현재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고 BusinessWeek는 말을 한다.

여기서 나는 내 견해를 조금 더 말해보고 싶다. 내 생각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미국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 같다. 왜냐하면 아시아로 가는 MBA들은 결국 몇년 뒤에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아시아와 미국의 대기업 및 벤처기업에서 잠깐씩 일한 경험이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직도 professional career를 가장 빠르고 생산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은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 그럴것이다. 아시아의 career life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래동안 열심히 조금은 무식하게 일을 하는 do more with more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career life는 do more with less라는 효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불변의 법칙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야근’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거다. 과연 일이 정말로 그렇게 많아서 야근을 해야하는걸까? 그전날 술쳐먹고 해롱해롱 거리다가 회사에 늦게 출근해서 저녁시간까지 동료들과 커피마시고 노가리 까다가 보니 일은 하나도 못했고, 담배 한대 피고 야근이나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야근하는게 아니고? 매우 단적인 예이지만 이렇게 몸을 혹사하면서 일을 하다보면 단기적으로는 아시아의 국가 경쟁력이 한순간 급상승하지만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중국의 성장이 좋은 예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어느 순간에 그 성장은 멈추게 되어 있고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상과 개념은 수백년동안 축적되어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수년, 심지어는 수십년 동안 바뀔 수는 없는 것들이다. 내 친구들 중에서 삼성의 Global Strategy Group에서 일을 하는 MBA 졸업생들이 꽤 있다. 이 중 단 한명도 5년을 한국에서 채우지 못하였다. 모두들 3-4년 근무한 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쌓았던 아시아에서의 글로벌한 경험을 (한국에서의 경험이 글로벌한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바탕으로 미국의 기업에서 열심히 그리고 빨리 corporate ladder를 올라가고 있다. 하나같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하였던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글로벌 비즈니스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ins and outs를 많이 배운거 같다. 이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으로 와서 제대로된 내 career를 쌓고 싶다.” Samsung Global Strategy Group에서 일하는 외국인들한테 제공하는 연봉과 혜택의 반만 줘도 목숨바쳐서 일할 한국 사람들 꽤 많이 있을텐데….

*미국인들의 효율성 –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때 놀란게 몇가지가 있었는데 스타벅스 매장의 opening hours가 그 중 하나이다. 미국 스타벅스는 보통 새벽 5시30분에 문을 연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5시30분에 이미 매장에 커피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직장인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새벽 5시30분은 한국에서는 3차하고 집에 들어가는 시간인데 ㅋㅋ. 미국인들은 매우 일찍 일어나서 효율적으로 일을 한다. 근무시간에는 잡담도 잘 안하고 땃짓도 잘 안한다. 점심도 주로 간단하게 자리에서 먹고 계속 일을 한다. 그대신 6-7시면 업무를 끝내고 집에 가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동료들끼리 회식을 해도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고 집에 일찍 가서 일찍 자고 그 다음날 또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한다. 본받아야하는 문화인거 같다.

Education, not school

우리 나라 같이 좋은 학벌을 목숨같이 여기는 사회에서는 좋은 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나도 개인적으로 항상 궁금하게 여기던 것이 바로 창업과 학벌의 상관관계이다. 반드시 좋은 학교를 나와야지만 창업을 할 수 있는것일까? 더 나아가서는, 성공한 entrepreneur가 되려면 출신 학교와 졸업장이 중요할까? 중요하다면 그 중요도는? 개인적으로는 거의 상관없다라고 생각하지만, 또 막상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흔히 말하는 미국의 아이비 리그 학교 출신이고 그 중 다수의 사람들이 MBA와 같은 고등학위를 소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친하게 알고 지내는 창업자들이 미국의 창업자 중 몇 퍼센트 일까? 1%? 극히 소수일거라고 생각한다.

이 이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와 그만큼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내가 읽어본 조사 중 가장 insightful한 내용은
하버드 법대의 수석 연구원이자 UC 버클리의 객원 교수인 Vivek Wadhwa가 작년 10월 TechCrunch에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하여 기고한 글이다. 그가 조사해 본 결과 대학교와 성공적인 창업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한다 . 그는 저명한 대학교의 팀원들과 ‘창업가 정신’ 관련 3개의 큰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하였다.

1. 연구 대상이었던 628명의 미국인 창업자들은 총 287개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이 중 상위 10위권 대학은 19%밖에 없었다. 즉, 81%의 창업자들은 평범한 ‘보통’ 학교를 다녔다.
2. 인도나 중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서 창업을 한 317명의 외국인 중 인도 최고 대학인 IIT 졸업생 수보다 이류 대학 취급받는 델리 대학 출신이 2배나 많았다. 중국의 경우, 중국 최고의 대학교인 칭화대나 후단대 출신보다 ‘보통’ 학교인 천진대와 상해 쟈오통대 출신의 중국인들이 실리콘 밸리에서 더 많이 창업을 하였다.
3. 다양한 산업군 549개의 성공적인 회사의 창업자들 중 아이비 리그 출신은 6% 밖에 안되었다.
4. 이 연구에서 가장 의미있는 발견은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학교를 아예 다니지 않은 사람들간의 차이점들이다. 와드화 교수가 표본으로 삼았던 회사들은 평균적으로 42명의 직원들이 있었고 평균 연매출은 미화 570만 달러였다. 아이비 리그 졸업생들이 창업한 회사들은 평균 55명의 직원과 연매출 670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고, 고등학교만 졸업한 창업자들이 세운 회사들은 평균 매출 220만 달러에 직원 18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물론, 미국의 모든 창업자들과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는 아니었으며 고등학교만 졸업한 대표적인 창업자 중에는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있지만 이번 표본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이 모든걸 종합해 보면, 성공적인 창업가를 결정하는 요소는 학교의 이름보다는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교육 그 자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는 더 나아가서는 오히려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은 창업가들이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노력하며, 졸업 후 밀고 당겨줄 수 있는 동문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에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우기 때문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한,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출신 학교를 막론하고 교육의 가치를 매우 중시 한다고 한다. Kauffman 재단의 보고서에 의하면 설문대상 창업자 중 70.3%가 대학교 교육이 중요하다고 한다. 특히 아이비 리그 졸업생들은 이 보다 더 많은 85.7%가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흥미롭게도 동문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한 사람들은 이 중 18.8%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하버드나 스탠포드 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가지 않을 필요는 없다. 일류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으면 인생에 여러가지 도움이 되니까. 가령 골드만 삭스와 같은 투자 은행에 취직하려면 아이비 리그 졸업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VC firm에 취직하려면 성공적인 창업가가 되거나 또는 일류대학을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금 애매하다. 왜냐하면 한국사람들이 미국에서 창업한 회사들이 거의 없어서 비교∙분석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성공한 벤처기업들의 창업가들은 서울대학교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미국으로 진출하지 못한 국내 기업들을 성공적인 벤처기업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한 점들이 있다. 아마도 이러한 국내의 현실 때문에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일류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창업의 꿈조차 꾸면 안된다라는 생각을 하고 바로 이런 생각들이 몸에 배이기 때문에 창업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되는거 같다.

성공적인 창업의 공식에는 일류 대학 졸업장이 반드시 필요한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류대학을 졸업했다고 벽에 걸린 졸업장을 볼때마다 스스로 자만하지 말고, 삼류대학을 졸업했다고 창고 깊숙히 처박아놓은 졸업장을 볼때마다 후회하지 마라.

<이미지 출처 = “http://www.shaunrosenberg.com/dont-let-school-interfere-with-your-education“>

Congrats Class of 2009!

Time really flies. 처음부터 내가 쓴 글들을 읽으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블로그의 목적은 MBA 프로그램을 하면서 직접 몸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점들을 형식없이 자유롭게 써보고 가능하면 내 이름으로 책을 하나 출판해보고 싶은 작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중간에 진로를 바꾸면서 더 이상 워튼 스쿨에서의 MBA 생활에 대해서는 쓰지는 않았지만 계속 동기들과 같은 반 친구들이랑은 정기적으로 연락은 했었다.

그러던게 벌써 나랑 같이 입학하였던 Class of 2009이 지난 주 일요일에 졸업을 하였다. 멀리 있는 관계로 나는 졸업식에 참석은 하지 않았지만 주로 Facebook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니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Class of 2009만큼 이번 불경기에 타격을 많이 받은 MBA들은 없을정도로 정말 “죽음의 학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거 같다. 약간 과장해서, 경기가 좋을때는 워튼 스쿨 졸업생들은 많게는 20개 이상의 offer를 받는다. 이 중 고르고 골라서 지 맛대로 고액연봉을 받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데 올해는 듣자하니 워튼 스쿨 졸업생들 중 50%만이 full time offer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다들 능력있는 친구/후배/선배들이니 나름대로 좋은 직장들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다행인거 같다. 아무쪼록 모두 성공해서 대한민국, 나아가서는 세계 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거물들로 대성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나마 기도하겠다. 그리고, 많은 MBA들이 이번 economic crisis에 대한 책임을 같이 느끼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나는 언제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졸업을 할까? 글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