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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과 연쇄 창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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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안젤라 덕워스 교수의 ‘Grit’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유명한 책이라서 다들 많이 읽어봤을 거 같은데,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타고난 지능이나 재능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과 끈기라는 게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나도 이 책의 내용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릿의 내용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아웃라이어에서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는데, 특정 분야에서 남들보다 더 잘하고, 이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같은 일을 1만 시간 동안 연습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한 분야에서 제1인자가 된 학자, 작가 또는 운동선수는 대부분 1만 시간 동안 같은 연구, 집필, 또는 운동을 반복적으로 한 사람인데, 이는 10년 동안 매주 20시간씩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거랑 같다. 즉, 성공은 타고난 게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반복을 통해서 달성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는 ‘그릿’의 시사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미국의 이커머스 회사 Jet.com이 월마트에 약 3.5조 원에 인수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Jet은 이커머스 분야에서 꽤 유명한 Marc Lore가 창업한 스타트업인데, 창업 초기의 후광에 비해서 비용구조가 너무 좋지 않아서 비즈니스가 잘 안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월마트가 이 회사를 조 단위 금액을 쓰면서 인수했을까? 바로 창업가 Marc를 영입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업계의 소문이다. 아마존 때문에 큰 타격을 입고 있고, 더는 온라인 비즈니스를 이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한 월마트는 마크를 영입하기 위해서 그의 회사를 통째로 인수해버렸고, 인수 후 마크를 Walmart eCommerce의 대표이사로 승진시켰다. 참고로 마크는 Jet을 창업하기 전에 Diapers.com과 Soap.com과 같은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Quidsi를 창업해서 아마존에 약 6,000억 원에 매각한 경력이 있다.

월마트의 Jet 인수는 실은 한국 비즈니스 정서로 보면 약간 이해하기 힘든 딜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주위에도 그냥 이커머스를 잘 이해하는 사람을 채용하면 되지, 굳이 3조 원 이상의 돈을 주고 회사를 인수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분이 많은데, 위에서 말한 1만 시간의 법칙과 그릿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살짝 이해가 간다. 마크 로레와 그의 친구 비닛 바라라가 Quidsi를 창업한 게 2005년이다. 즉, 그는 10년 이상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동안 이커머스에 대해서만 생각했고,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1만 시간이 훨씬 넘는다. 1만 시간 이상을 한 분야만 파고들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험하고, 뭔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서 그는 이커머스의 달인이 되었고, 이 분야에 관해서는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게 되었고, 남이 얻지 못하는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마크는 물론 좋은 학교를 나왔고, 머리도 좋은 창업가지만, 그의 이커머스 성공신화는 타고난 게 아니라 끊임없는 투지와(=그릿) 1만 시간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커머스의 달인을 데려오기 위해서 월마트가 3조 원을 투자한 건데, 앞으로 월마트 이커머스가 어떻게 변할지 매우 궁금하다.

마크 정도로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내 주변에는 같은 분야에서 계속 비즈니스를 하는 연쇄 창업가들이 몇 명 있다. 실은 많은 전문가가 첫 번째 exit은 운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그 이후의 exit은 실력이라는 말을 한다. 아마도 이 실력은 10년 이상의 그릿과 1만 시간의 노력의 산출물인 거 같다. 한 분야에 대해서 오랫동안 파고들다 보면, 10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거 같다. 한 분야에서 계속 창업하는 연쇄 창업가들을 보면서, “아직도 저 분야에서 할 게 또 있나?”라는 질문을 하지만, 대가들은 한 분야를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난 1만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한 상대는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단 한 가지 발차기만 1만 번 반복해 연습한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이소룡

지금은 너무 힘들지만, 죽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버티다 보면, 내가 갑자기 앞서나가거나, 경쟁사들이 없어지는데, 이렇게 되면서 시장의 강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ZERO to ONE

너무나 유명한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얼마 전에 완독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조금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던 내용이 있었다. 특히 피터가 말하는 모든 기업이 반드시 답해봐야 할 다음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 투자사들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많은 질문을 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라면, 한 번 정도는 생각해보면 좋을 듯:

1/ 기술 – 점진적 개선이 아닌 획기적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2/ 타이밍 – 이 사업을 시작하기에 지금이 적기인가?
3/ 독점 – 작은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시작하는가?
4/ 사람 – 제대로 된 팀을 갖고 있는가?
5/ 유통 – 제품을 단지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할 방법을 갖고 있는가?
6/ 존속성 – 시장에서의 현재 위치를 향후 10년, 20년간 방어할 수 있는가?
7/ 숨겨진 비밀 –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독특한 기회를 포착했는가?

당장 제로 투 원은 힘들겠지만, 제로 투 제로 포인트 원이라도 하길.

외국어 표기법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에 의하면 San Jose 지명을 표시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산호세’랑 ‘새너제이’인데 코스타리카의 수도는 산호세라고 쓰고, 실리콘밸리의 도시는 새너제이라고 쓴다. 둘 다 알파벳 표기는 같고, 어차피 스페인어이기 때문에 원어나 영문 발음은 거의 동일하게 ‘산호세’ 이다. 많이 헷갈린다.

외국어라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거지만, 굳이 같은 단어를 이렇게 다르게 표시하고, 이 표기법에 어긋나면 공식적으로는 틀렸다고 하는 건 좀 구시대적인 발상 같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한글 표기법과 원어의 발음을 비교했을 때 차이가 너무 크게 나는 경우가 많아서, 이 부분은 다시 한번 전면 재검토를 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한다. 얼마 전에 마케팅 관련 책을 읽었는데, 화려한 컬러와 스타일을 자랑하는 신개념 주방용품 Joseph Joseph사를 한글로 ‘조셉조셉’ 이라고 표기했지만, 같은 책에서 이 회사의 설립자 Anthony Joseph와 Richard Joseph는 ‘조지프’라고 표기한 걸 봤다.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을 찾아보니, 사람 이름 Joseph의 올바른 표기법은 조지프이지만, 미국 회사이니 회사 이름은 미국인들이 발음하는 조셉 조셉이라고 표기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같은 이름을 성경에서는 ‘요셉’이라고 표기하는 걸 봤다. 참 복잡하고, 이상하다.

사진 2017. 3. 16. 오후 1 09 01

시대에 따라 새로운 용어들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웹스터 사전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서 해마다 개정판을 새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말이 아닌 이상 외국어 표기법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의 의견도 이해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은 한번 만들어 놓고 평생 사용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계속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Polychain Capital

AVC.com을 운영하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VC인 Fred Wilson과 Marc Andreessen이 투자한 Polychain Capital에 대해서 요새 공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최근에 내가 본 비즈니스 중 이 회사가 하는 게 가장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다. 웹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만 있다.

“The emergence of bitcoin and subsequent blockchain technologies has generated a new digital asset class in which scarcity is based on mathematical properties. Through cryptographic verification and game-theoretic equilibrium, blockchain-based digital assets can be created, issued, and transmitted using software. Polychain Capital manages a hedge fund committed to exceptional returns for investors through an actively managed portfolio of these blockchain assets.”

Polychain Capital은 회사가 아니라, 헤지펀드이고, 상장 또는 비상장 회사가 아닌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에만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이다. 요새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는 분야이고, 이 펀드가 하는 일이 흥미로워서 여기 창업자 Olaf Carlson-Wee한테 직접 연락을 해봤고, 그동안 몇 번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Polychain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참고로, Olaf는 Coinbase의 초기 멤버였고, 리스크관리팀을 담당했던 똑똑한 친구이다.

대부분 이 회사의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 실은 나도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 폴리체인이 하는게 왜 흥미로운지를 조금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에 투자한다는 건 애플리케이션 단이 아니라, 프로토콜 단에 투자하는 것이다. 아마도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해서 좀 아는 분들이 “블록체인은 인터넷과는 달리 대부분 가치와 부가 애플리케이션이 아니라 프로토콜 단에서 생성될 것이다”라는 이야기하는 걸 많이 들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블록체인을 인터넷에 비교한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투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점이 있다. TCP/IP, SMTP, HTTP나 SSL과 같은 인터넷 프로토콜에는 직접 투자를 할 수도 없고, 여기에 투자해서 돈을 벌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생성된 대부분 가치와 돈은, 인터넷 프로토콜 위에서 개발된 애플리케이션에서 만들어졌다. 즉, 인터넷 프로토콜 위에서 아마존, 구글 또는 페이스북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었고, 모든 투자는 이 애플리케이션 단에 집행된다.

여기서 블록체인과 인터넷이 달라진다. 블록체인의 경우, 애플리케이션 단에서도 가치가 창출되지만, 프로토콜 단에서도 이게 가능하다. 우리 투자사 코빗은 비트코인 프로토콜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고, 우리는 이 회사에 투자를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비트코인도 구매하면서 비트코인이라는 프로토콜 일부를 구매할 수가 있다. 이렇게 투자자들이 프로토콜 자체에 투자할 수 있다는 건 상당히 흥미롭고 혁신적인 개념이다. Polychain이 하는 건 프로토콜 단에 투자해서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을 확보하는 것인데, 인터넷과는 다르게 블록체인 프로토콜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회사에 투자하는 투자자보다 어쩌면 더 많은 부가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을 가진 투자자들한테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창작자와 소비자의 마켓플레이스

two-sided-marketplace-800px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분들의 지상과제는 수요와 공급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급/판매/생산하는 공급자들과, 이를 원하는 수요자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이들을 원활하게 매칭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도 많은 마켓플레이스에 투자를 했고, 모두 다른 비즈니스를 운영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을 잘 밸런싱해야하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중, 뭔가를 만드는 창작자와 이들이 만든 창작물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창업가들을 위해, 내 경험을 일부 공유하고 싶다.

내가 미국에서 운영하던 뮤직쉐이크도 크게 보면 마켓플레이스다.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와 이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음악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양면 음악 마켓이다.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 창작자와 소비자의 비율은 1:9 정도였다. 즉, 10명 중 한 명은 정성껏 우리 제품을 사용해서 음악을 만들고, 나머지 9명은 음악은 만들지는 않지만, 남이 만든 음악을 들었다. 우리의 초기 가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창작 본능을 갖고 있지만, 음악을 만든다는 거 자체가 너무 어려우므로 음악 창작 활동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악을 모르고, 악기를 연주하지 못 하는 사람도, 뮤직쉐이크를 사용해서 누구나 다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 수만 있다면, 세상 모두가 다 창작자가 될 것이라는 게 우리 서비스의 가장 근본적인 가설이었다. 우리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 집단에 모든 자원을 투입했다. “어떻게 하면 나같이 음악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이 음악을 재미있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뮤직쉐이크를 어떻게 더 쉽게 만들 수 있을까?”가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였다.

첨단 기술과 많은 노가다를 투입해서 우리는 더 좋은 음악창작 제품을 만들어서, 더욱더 많은 일반인이 창작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위에서 말한 1:9의 비율이 9:1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입한 후에 내가 배운 점이 있다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아무리 쉽고 재미있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음악을 만드는 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남이 만든 좋은 음악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데 관심이 있지, 본인들이 음악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고, 이런 경향은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창작활동에도 적용되는 거 같았다. 창작이 아무리 쉬워도, 창작자 대비 소비자의 비율을 3:7 이상으로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급하게, 창작자가 아닌, 우리 서비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소비자’한테 초점을 옮겨서 남이 만든 음악을 더 잘 발견하고, 듣고, 즐길 수 있는 쪽으로 서비스의 방향을 틀었다. 다양한 커뮤니티, 소셜 기능, 그리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뮤직쉐이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레이어와 플레이리스트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아마도 창작자와 소비자가 존재하는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팀이라면,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위에서 내가 말한 내용이 절대로 절대 진리는 아니지만,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은, 창작자-소비자의 마켓플레이스에서는 항상 소비자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거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 마켓플레이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소수의 창작자보다는 다수의 소비자가 최대한 이 플랫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돈을 쓸 수 있도록 회사의 자원을 투입하는 게 효과적인 방법인 거 같다. 소셜기능이 강화된 커뮤니티 관련 기능들이 잘 구현되면, 이런 소비자 기반 마켓플레이스의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뮤직쉐이크같이 창작자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든다면, 창작자의 비율을 소비자보다 더 높게 만들고(6:4 정도?), 이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사용할 수 있는 완성도가 높은 기능을 지속해서 출시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해보면 알겠지만, 이 각도로 접근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소수의 까다로운 입맛에 호소하는 제품을 잘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양면을 다 충족해야 하는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건 어렵다. 그런데, 공급자들이 뭔가를 창작해서 올려야 하고, 그 창작과정을 도와주는 툴까지 우리가 만들어서 제공을 해야 하면, 이는 단순 양면마켓플레이스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다.

<이미지 출처 = Reason Str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