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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질로

이 블로그 방문자 중 나이키 주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2005년부터 나이키 주식을 소량으로 꾸준히 사고 있다. 주식을 사는 이유가 그 회사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지만, 한 편으로는 그냥 나이키라는 회사와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의 팬으로서 회사의 일부를 소유하고 싶은 팬심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주에 나이키가 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월가의 예상보다 낮은 실적이기도 했지만, 이보다 장기적으로 훨씬 더 우려되는 내용들이 많아서, 주가가 하루 만에 20% 폭락했다. 찾아보니 2001년 이후로 최악의 단일 주가 폭락이었고, 하루에 한화로 30조 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증발해 버렸다.

주가 폭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장 큰 위협은 나이키가 요새 혁신에 소극적이고, 이에 따라 좋은 제품을 못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그동안 죽었다고 생각됐던 뉴밸런스와 아식스 같은 오래된 브랜드가 지속적인 혁신으로 러닝 시장에서 나이키를 앞지르고 있고, Alo, Hoka와 On과 같은 새로운 브랜드가 MZ 세대뿐만 아니라 X 세대의 취향까지 잘 파악해서 나이키의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먹어 치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외에도 중국 시장에서의 고전, 오프라인 매장을 버리고 온라인으로만 판매 채널을 집중한 점 등이 나이키 실적 부진의 직, 간접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나이키 주주로서는 참 안타까운 일이고, 이제 나이키도 서서히 맛이 가고 있는 것 같으니 다른 종목으로 갈아타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거의 20년 동안 나이키의 주식을 보유하면서 이 회사가 위기와 역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봤던 일인으로서 내 즉각적인 반응은, “time to buy more”였다.

기업은 생명체와 같이 유기적으로 성장과 하락을 반복한다. 수년 동안 매일 운동하고 건강했던 사람도 조금만 방심하면 몇 달 만에 체중이 수십 킬로 불면서 비만이 될 수 있듯이, 기업 또한 계속 잘하다가 조금만 방심하거나,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잘 못 하면 금방 위기가 올 수 있다. 이건 우리가 투자하는 스타트업이나, 나이키와 같은 글로벌 No.1 대기업이나 마찬가지다. 두 기업 간에 큰 차이가 있다면, 스타트업은 한 번 이렇게 하락하면 버틸 수 있는 체력과 자금이 없어서 망할 확률이 높고, 대기업은 다시 재정비해서 반등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더 있다는 것이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기업의 실적은 계속 up and down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나이키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까? 60년의 비즈니스 역사에서 이런 위기가 올 때마다 취했던 전략을 이번에도 똑같이 구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건 바로 본질로 돌아가고, 다시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는 것이다. 혁신과 좋은 제품으로 창업된 회사인만큼, 다시 한번 시장을 wow 시킬 수 있는 혁신적이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누구나 다 사업하다 보면 옆길로 빠질 수 있고, 본질을 잊어버릴 때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럴 때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건 나이키나 우리가 투자하는 스타트업이나 다 마찬가지다.

내가 너무너무 좋아해서, 아예 종이로 출력해서 가방에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나이키의 창업가 필 나이트가 1970년대에 직원들과 공유했던 메모 내용을 여기에 한 번 적어본다. 이런 철학, 정신, 원칙 위에 만들어진 회사는 꼭 리바운드할 것이라고 믿는다:

1/ Our business is change.
2/ We’re on offense. All the time.
3/ Perfect results count, not a perfect process.
Break the rules: fight the law.
4/ This is as much about battle as about business.
5/ Assume nothing.
Make sure people keep their promises.
Push yourselves push other.
Stretch the possible.
6/ Live off the land.
7/ Your job isn’t done until the job is done.
8/ Dangers
Bureaucracy
Personal ambition
Energy takers vs. energy givers
Knowing our weaknesses
Don’t get too many things on the platter
9/ It won’t be pretty.
10/ If we do the right things we’ll make money damn near automatic.

반짝 유행과 대세

얼마 전에 ‘요즘 애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부제는 “가장 학력은 높고, 가장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인데, MZ 세대에 대한 책이고, 시중에 나온 수많은 비슷한 책과 같이 MZ 세대는 이렇다 저렇다는 표면적인 이야기보단, 작가는 왜 MZ 세대가 가장 공부는 많이 하고, 가장 열심히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지를 어느 정도까지 분석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의 내용에 나는 대부분 공감할 수 없었는데, 어쨌든 요즘 애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본인들만의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MZ 세대의 대표적인 특징이 평균을 싫어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중시하고, 뭔가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남이 하면 따라 하고, 남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하는 우리 세대한테 잘 어필되고 판매되던 상품과 브랜드가 더 이상 빛을 못 보고 있다. 새로운 세대에게 잘 마케팅하고 판매하기 위해서 기존 브랜드는 과거 수십 년 동안 잘 작동하던 전략을 버리고 있고, 신생 브랜드는 지금까지 없던 방식과 전략으로 새로운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며칠 전에 운동하면서 잠깐 TV를 봤는데, 성수동 팝업 매장에서 다른 산업군의 브랜드와 콜라보를 계속하는 의류 브랜드를 구입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아주 길게 줄을 서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였는데, “브랜드 x 다른 브랜드” 식으로 신발부터 옷까지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소량으로 출시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회사였고, 젊은 친구들이 매장 밖에 긴 줄을 형성하면서 이 가게 안에 들어가서 즐겁고 비싼 쇼핑을 하는 뉴스 내용이었다.

기자가 매장 직원도 인터뷰하고, 젊은 커플 고객도 인터뷰했는데, 양쪽 다 하는 말이 비슷했다. MZ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트렌드에 상당히 민감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주목받고, 이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영업/마케팅 방법을 과감하게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고 이 새로운 방식조차 지속적으로 변형하면서 이들을 공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도 다양한 사업,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창업가들의 나이는 점점 더 어려지고 있어서 우리가 만나는 많은 창업가들이 MZ 세대인데, 이들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걸 좋아하고, 나 같은 세대의 사람들과는 모든 걸 다르게 보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회사가 이들의 취향에 모든 전략을 맞출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수십 년 동안 잘하던 사업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말을 조금 더 깊게 해석해 보면, 너무 유행을 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유행을 타는 고객들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하게 돈을 쓰게 만드는 게 힘들다. 트렌드를 세팅하고 리딩하는 세대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사업의 확장에는 도움이 안 되는 대규모 뜨내기 세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의 오프닝에서 썼듯이, MZ 세대는 전반적으로 돈이 별로 없다. 소셜미디어상에서는 파급력이 강할진 몰라도, 막상 구매력이 그렇게 어마어마하진 않다.

어떤 분들은 2년 반짝 사업을 성장시키고 적당한 가격에 팔고 빠질 목적으로 창업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지속 가능한 사업을 만들고 있고, 지속 가능한 사업은 최소 10년이 걸린다. 이렇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할 때, 반짝 유행하다가 없어질 것들과 지속적으로 유행해서 대세가 될 것들을 잘 구분해야 한다.

유행과 대세를 어떻게 구분할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냥 장기적인 방향을 정하고, 이쪽으로 꾸준히 가는 수밖에 없다. 중간 중간에 여러 가지 트렌드와 새로운 유행이 생길 것인데, 그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장기적인 대세가 될 수 있는 트렌드를 잘 선택하길 바란다.

헛똑똑이들

스트롱 내부 미팅을 할 때 내가 요새 자주 언급하고 강조하는 게 있는데, 바로 투자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고, 투자할 이유를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나를 포함해서 투자 인력이 5명으로 커졌는데,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세상을 다르게 보고, 지금까지의 경험도 다르기 때문에, 창업가나 회사에 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내가 아주 투자하고 싶은 회사에 대해서 다른 분들은 초부정적 피드백을 줄 때도 있고, 반대로 다른 분들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는 창업가에 대해서 나는 또 다른 시각으로 그 반대의 의견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실은,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과정에서 우린 상당히 많은 걸 배우고, VC로서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매우 바람직한데, 이렇게 서로의 논리와 주장을 남들과 공유하고 설득할 때 한가지 항상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건 나도 자주 빠지는 함정이고, 스스로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투자자, 또는 경험이 계속 축적되고 있는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느끼는 점이기도 하다. 바로, 투자하지 않기 위한 논리를 만들고, 이를 합리화하고 또 정당화 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실은, 모든 스타트업은 투자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수백 가지이고, 투자해야 할 이유는 거의 없다. 이건 모든 VC들이 잘 아는 사실인데,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특정 회사가 성공할 수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이유를 찾아서 투자해야 하는 업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가끔 잊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시장 조사, 데이터, 본인의 경험 등을 기반으로 투자하지 않기 위한 멋진 논리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 같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이 사업은 이미 다른 회사들이 시도해 봤는데 잘 안됐고, 저 사업은 시장을 다 먹어도 100억이 안되고, 저 창업가는 본인이 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고, 등등, 실은 구구절절 모두 맞는 말이다. 원래 뭔가를 반박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만큼 논리적이고 완벽한 게 없긴 하다.

나는 이런 걸 헛똑똑이 증후군이라고 한다. 똑똑한 투자자이고, 더 똑똑한 부정적인 의견이긴 한데, 결국엔 이렇게 해서 투자하지 않는 회사 중에 엄청나게 잘하는 곳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VC들이- 나를 포함 – 투자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 헛똑똑이 증후군에 빠지는데, 이건 좋은 투자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마인드셋이다.

실은 헛똑똑이 투자자들은 본인들이 창업가보다 똑똑하다는 걸 자꾸 증명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수치와 논리를 기반으로 특정 창업가와 사업에 투자하면 안 되는 이유를 계속 만드는데, 이런 분들은 투자하지 말고 그냥 직접 창업하는 걸 권장한다. 우리가 하는 이 투자라는 업은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잘 찾아서 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창업가보다 더 똑똑하다는 걸 이렇게 힘들게 계속 증명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다.

인생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수업

자주는 아니지만, 나도 가끔 세미나와 강연 요청을 받는다. 바쁘기도 하고, 내가 전문적으로 강연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대부분 다 사양하고 거절하지만,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기꺼이 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바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나 세미나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학생들이 미래의 창업가들이고, 이들이 스트롱의 미래 고객이기 때문에, 잠재 고객을 만나서 이들에게 스트롱벤처스에 대한 홍보를 하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 이유는 어쩌면 업무적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도 있는데, 바로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도 큰 배움을 얻기 때문이다.

내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학생들에게 내가 뭘 배울 수 있겠느냐는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학생들 대부분 아직 경험이 없는데, 경험이 없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갖고 있는 편견이 없고, 편견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의미 있는 상상과 질문들을 많이 한다. 바로 이런 대화를 하면서 나는 생각도 많이 하고 꽤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젊은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냥 왠지 나도 더 젊어지는 것 같고, 더 긍정적인 마인드를 얻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 질문을 자주 받는다. “기홍님은 지금 생각해 봤을 때,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 중, 일하면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됐던 수업은 어떤 거였나요?”

이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Public Speaking(말하기)’과 ‘Writing(쓰기)’ 수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준다. 내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땐 이런 수업이 존재하지 않아서, 나는 미국에서 유학할 때 말하기와 쓰기 수업을 들었는데, 요샌 한국에서도 이런 수업이 제공되는 거로 알고 있다.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생들에게 이 두 수업을 되도록 졸업하기 전에, 시간 날 때마다 수강하는 걸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쓰긴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공부를 위한 글쓰기나 취미를 위한 글쓰기는 꾸준히 해왔고, 나름 나만의 스타일로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동시에, 이 생각을 남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해서 매일 일정 시간을 할애해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매일 쓰면 글쓰기 실력은 누구나 향상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잘 쓰고 싶으면 쓰는 동시에 많이 읽어야 한다. 참고로, 나는 매년 50권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글쓰기는 이렇게 평생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쓰기 수업은 미국에서 유학할 때 한 번 들었다. 이 수업의 핵심은,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많이, 그리고 자주 써야 하고, 이만큼 많이, 그리고 자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기는 내가 항상 자신이 없었던 분야였다. 그런데, 대학원에 가니까 나보다 실력도 없고 멍청한 학생들이 남들 앞에서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면서 내 밥그릇과 기회를 빼앗아 가는 걸 직접 경험하면서, 나도 말을 좀 잘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대학원에서 ‘Public Speaking’이라는 수업을 2학기나 들었다. 이 수업은 3학점짜리 수업이니까 총 6학점을 들은 것이다. 실은, 나와 1대 1로 연습/훈련을 했던 코치는 학부생이었는데,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스탠포드 교수보다 나에겐 훨씬 더 뛰어나고 인상 깊었던 선생님이었다. 수업마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각자 3~5분 동안 발표를 하고, 이걸 동영상으로 촬영한 후 코치와 함께 자세하게 분석해서 발표 실력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나는 첫 학기에 B-를 받았지만 – 참고로 B 이하는 매우 형편없는 점수이다 – 그 다음 학기는 B+를 받았다. 성적은 조금 향상했지만 내 발표 실력과 청중 앞에 섰을 때의 자신감은 10배 정도 상승했다.

나는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상당히 자주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렇게 공부도 많이 하고, 일도 오래 한 사람들이, 본인의 생각을 남들에게 말이나 글로 전달하는 걸 보면, 초등학생 수준으로도 미달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이 있다면, 이분들에겐 더욱더 강력하게 ‘말하기’와 ‘쓰기’ 수업을 추천한다. 직장인들이라면, 이분들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컴백

얼마 전에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이 끝났다. 2주 동안 밤늦게까지 거의 매일 테니스를 봐서 행복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은 이제 대부분 은퇴했거나 늙어서 초반에 탈락했다. 이 중 우승 가능성이 아직도 높았던 조코비치 선수가 우승하길 바랬는데, 준준결승전에 부상으로 인해서 기권패 했다.

나는 이번에 조코비치 선수의 경기를 다 봤는데, 모든 경기마다 안타까움과 경외감의 두 가지 감정이 교체했다. 거의 완벽함을 자랑하던 선수가 나이 들면서 젊은 선수들에게 밀리는 걸 볼 때마다 역시 아무리 체력이 좋고 몸 관리를 잘해도 세월을 이길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있었지만, 반대로, 이제 거의 40세가 된 이 선수가 20대 초반 선수들과 체력적으로 대등한 경기를 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경외심이 생겼다.

특히, 이번 프랑스 오픈 시합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이 노장의 컴백 능력이었다. 남자 테니스는 5세트 중 3세트를 먼저 이겨야 하는데, 5세트를 모두 플레이하면, 그리고 정말 치열한 경기를 펼치면 5시간 이상 걸린다. 사업도 그렇지만, 운동 경기도 분위기와 흐름이라는 게 있어서, 이 분위기와 흐름이 내 쪽으로 오지 않으면 상승모드를 유지하는 게 정말 어렵다. 테니스의 경우 세트 스코어가 2대 1이면, 네 번째 세트에서 경기는 3대 1로 거의 종료된다. 즉, 2세트를 뒤지고 있으면, 그 이후에 다시 흐름을 뺏어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조코비치는 이런 통계에 포함되길 거부하는 선수다. 나는 그동안 이 선수가 세트 스코어 2대 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완벽하게 컴백해서 결국엔 다섯 번째 세트까지 가서 3대 2로 이기는 걸 너무 많이 봤다. 실은, 너무 많이 봐서 이 선수에겐 이게 당연한 것 같이 느껴지지만, 현실적으론 거의 불가능한 컴백을 조코비치는 밥 먹듯이 하고 있다는 점이 정말 놀랍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이런 불가능한 컴백을 이번 프랑스 오픈에서도 여러 번 보여줬다. 3 라운드와 4라운드 모두 세트스코어 2대 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결국엔 다섯 번째 세트까지 경기를 끌고 가서, 4시간 반이 넘는 시합을 하면서 두 번이나 3대 2로 역전승했다.

아무리 뛰어나고 위대한 선수들도 이런 컴백을 하기는 쉽지 않은데, 어떻게 조코비치는 반복적으로 이렇게 컴백 할 수 있을까? 결국엔 정신력, 체력, 자기관리,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선수들은 – 특히, 팀이 아닌 개인에게 퍼포먼스의 100%를 의지해야 하는 테니스와 같은 – 몸이 돈이기 때문에 정말 체력을 종교와도 같이 관리하는데 조코비치는 이런 운동선수 중에서도 심할 정도로 관리를 잘 한다. 몇 년 전에 메이저 대회 우승한 후에 초콜릿을 딱 한 입 먹은 후에 우승을 자축한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런 관리 스타일은 이 선수의 일상생활이다. 이런 자기 관리에서 오는 체력과 정신력은 다른 선수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다.

창업가들은 하루하루가 이렇게 뒤지고 있는 경기에서 컴백해야 하는 전쟁이다. 다른 경쟁 스타트업과의 경기에서 항상 지기 때문에 컴백해야 한다. 대기업과의 경기에서 이미 진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에 컴백해야 한다. 자신의 제품과의 경기에서 지기 때문에 컴백해야 한다. 고객과의 경기에서도 항상 지기 때문에 컴백해야 한다. 회사에 사람이 많아지면, 직원들에게도 치이면서 지기 때문에 항상 컴백해야 한다. 도대체 이기는 경기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매일, 매시간, 매 순간 컴백해야 한다.

이렇게 계속 컴백하기 위해서는 조코비치같이 창업가들도 몸과 마음을 잘 단련하고, 절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운동도 매일 해야 하고, 음식도 절제해야 하고, 술도 절제해야 하고,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하고, 뒤지는 경기에서도 항상 컴백할 수 있게 항상 스스로를 관리해야 한다. 이게 안 되면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업을 만들 수가 없다.

*참고로, 조코비치가 이번에 준준결승에서 기권한 이유는 늙어서 체력이 약해서라기 보단, 경기가 주최 측의 잘못된 결정으로 너무 늦게 밤 11시에 시작해서 새벽 3시가 넘어서 끝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적된 피로로 그다음 다시 경기하는 말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