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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채용

채용 관련된 글을 나는 지금까지 꽤 많이 썼다. 스타트업은 결국엔 사람의 싸움이고, 좋은 사람들이 회사에 있으면 사업 아이템이 이상해도 결국엔 길을 찾아서 성공적인 사업을 만드는 걸 개인적으로도 너무 많이 경험했다. 반대로, 나쁜 사람들이 회사에 많으면 아무리 기술과 아이템이 기발해도 결국엔 사업은 망한다는 것도 직접 옆에서 많이 봤다.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이나 채용이 가장 중요하지만, 대기업은 그래도 사람과 시스템이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하는데, 스타트업은 시스템이 없고, 결국엔 사람들이 초기 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에, “당신이 지금 힘들게 채용해서 만드는 team이 바로 당신이 만들 회사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라”라는 말이 완벽하게 100% 적용될 수밖에 없다.

작은 스타트업은 좋은 인재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렵고, 우리 투자사 대표들도 항상 좋은 사람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우리에게도 많이 한다. 이 장애물을 잘 통과해서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치자. 어려운 협상 과정을 통해서 형평성에 어긋날 정도로 다른 기존 직원분들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채용했는데, 막상 같이 몇 개월 일해 보니, 아웃풋이 형편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럴 땐 정말 난감하다.
또는, 여러 번의 인터뷰에서 보여준 화려한 말빨과 자기 PR에 속아서, 비슷한 경력자들보다 훨씬 더 높은 연봉을 주고 채용한 사람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일을 못 해서 속았다고 느꼈던 경험을 많은 대표들이 했을 것이다.

이럴 때 암호화폐 분야에서 가장 기업가치가 높고 사업을 잘하는 미국 Coinbase의 채용 시스템을 참고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코인베이스에서 발표한 기사에 의하면, 회사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으면 연봉 협상은 불가능하고, 같은 지역에서 같은 직책으로 입사하는 직원들은 모두 동일한 연봉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경력 7년 차 개발자나 15년 차 개발자나, 둘 다 직책이 수석 개발자면, 똑같은 연봉으로 입사해서 일한다는 의미다.

나도 처음에 이 기사를 읽었을 땐 갸우뚱했는데, 나름 꽤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연봉 수준이라는 게 실제 실력으로 결정되기보단, 과거의 경력과 인터뷰할 때의 ‘말빨’로 책정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실력은 없지만, 단순히 인터뷰를 잘 한 사람이, 실력은 좋지만, 말을 썩 잘못 한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신, 동일한 포지션은 동일한 연봉으로 입사하지만, 1년 후에 업무 평가를 통해서 그때부터 차등적으로 대우한다는 채용 정책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채용에 있어서는 능력주의를 지향하고, “능력대로 평가받고 돈을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하지만, 새로 입사하는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건 너무 힘들다. 이를 도와주는 여러 가지 방법론과 소프트웨어가 있지만, 그래도 채용의 성공 확률은 아직 50대 50인 것 같다. 인터뷰를 엄청나게 잘 한 사람이 막상 일해보면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고, 이전 직장에서 10점 만점 평가와 평판을 받은 사람도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코인베이스의 정책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지만, 이 기간에 자신을 증명하고, 1년 후에 훨씬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도 좋은 채용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한국같이 한 번 채용하면, 사람을 해고하는 게 힘든 곳에서는.

호랑이의 눈

얼마 전에 아주 오랜만에 우리 투자사 대표님을 직접 만나서 같이 식사했다. 이메일, 메신저, 그리고 전화로는 자주 이야기를 했지만, 직접 만나는 건 거의 1년 만이었는데, 역시 사람은 자주 만나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식사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총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눴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스타트업이었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라서 유독 힘든 상황이 많았지만, 매달 좋은 성장을 만들면서 스트롱이 처음 투자할 때 대비 말 그대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이 회사의 성장 그래프를 보면 정말로 눈이 부시다). 하지만, 눈부신 성장 뒤엔 대표님의 눈물이 많았다. 코파운더의 탈퇴, 노가다에서 시스템으로의 전환의 어려움, 힘든 채용, 그리고 잘 모르는 분야라서 어려운 펀딩 때문에 스트레스가 상당히 많이 쌓인 듯 했다.

특히 펀딩 관련해서 대표님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우리가 이 회사를 처음부터 봤었고, 내부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큰 시장에서 좋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걸 내부자로서 알고 있지만, 이 시장과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고, 요새 글로벌 경제도 좋지 않아서 아마도 이 사업을 처음 접하는 투자자들은 선뜻 투자하길 꺼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이렇게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나는 대표님의 눈빛에서는 희망과 자신감을 봤다. 말로는 요새 스트레스가 너무 많고,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적이 없다고는 했지만, 눈은 마치 영화 록키에서 말하는 ‘호랑이의 눈(eye of the tiger)’같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성공에 굶주린, 그리고 희망과 자신감이 넘쳐서 옆 사람들에게 전염될 정도의 그런 마음에 드는 눈빛이었다.

이 분을 내가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났다. 좋은 대기업에서 일을 잘하고 계셨지만, 본인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이 험난한 창업의 세상으로 나왔고, 대부분의 창업가들과 같이 초기에는 세상으로부터 보기 좋게 거절당했었다. 당시엔 두려움과 불확실로 가득 찬 눈빛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내가 회사를 괜히 그만뒀나, 이게 정말로 안 되는 사업인가, 뭐 이런 생각이 눈빛에 반영됐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며칠 전에 내가 봤던 건 완전히 다른 눈빛이었다. 그때와 같이 아직도 사업은 너무 어렵지만, 이젠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자신감과 확신의 눈빛이었고, 성공을 갈망하는 독기가 가득 찬 눈빛이었다. 록키가 승리할 때의 그 eye of the tiger였다.

그래서 너무 좋았고, 이런 분이 하는 스타트업에 우리가 투자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오늘도 모두 독기찬 호랑이의 눈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되길.

리드 투자자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의 70% 정도에 스트롱이 첫 번째 기관 투자를 했다. 그만큼 일찍 투자하는 걸 선호한다. 그리고 이렇게 첫 번째 기관 투자하는 회사의 절반 이상에 우리가 단독 투자한 거로 알고 있다(정확한 계산은 아직 안 해봤다). 일찍 투자하는 걸 우린 선호하지만, 이렇게 투자하면 굳이 다른 공동 투자자와 같이하는 것 보단, 혼자 단독 투자하는 걸 더 선호한다. 투자의 효율성과 속도를 위해 클럽딜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고, 맘에 드는 회사가 있으면 굳이 다른 곳과 같이 투자하면서 보험?을 확보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단독 투자하는 건 아니다. 투자하고 싶은 회사를 만났는데, 이미 이 회사가 우리보다 먼저 다른 투자자와 이야기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투자자랑 같이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공동 투자할 때도 우린 가장 크게 투자해서 우리가 리드하는 걸 선호한다. 정해진 방법은 없지만, 여러 명의 VC가 같이 투자할 때는 주로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리드 투자자가 계약 조건을 결정하고, 계약서 또한 리드 투자자의 계약서를 다른 투자자들이 그대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각 투자사마다의 방법과 원칙이 다르기 때문에 남의 계약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게 힘들 수 있어서, 대세에는 지장 없는 수준에서 사소한 내용을 수정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이건 생각해보면 꽤 상식적이다. 여러 명의 투자자가 참여하지만, 같은 라운드에서 발행되는 같은 종류의 주식이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건 일반적이진 않다.

하지만, 리드 투자자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투자하고, 심지어는 투자가 거의 마무리된 시점에 막차로 들어와서 투자하면서, 굵직한 계약 내용을 리드 투자자와 굳이 다르게 가져가는 경우를 나는 상당히 많이 봤다. 그것도 가장 먼저 총대를 메고, 가장 큰 금액을 투자하는 리드 투자자보다 본인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끝까지 고집하는 경우도 본 적이 많다. 실은, 이건 피투자사 대표가 투자 협의하는 과정에서 알아서 교통정리를 잘 해줘야지 모든 과정이 수월하게 진행되는데, 돈을 받는 대표 입장에서는 이렇게 잘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주로 리드 굳이 다른 조건을 고집하는 다른 투자자와 이야기해서 정리해야 한다.

10억 라운드에 1억도 투자하지 않는 공동 투자자에게 굳이 다른 조건을 고집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우린 원래 이런 조건으로 투자해야 합니다.”라는 1차원적인 대답을 듣는다. 여기에다가 “우리도 원래 이렇게 투자합니다.”라고 대답하면, 이건 그냥 서로 싸우자는 거라서 어쨌든 상대방을 잘 설득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걸 설득하다 보면, 뭐 대단한 거라고 굳이 이런 것까지 리드 투자자가 해야 하냐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특히, 내가 사람이 아니라 벽과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원래 그런 건” 이 세상에 없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이에 따라서 모든 게 변해야 한다. 대기업, 공공기관 또는 금융기관이라서 몇 가지 원칙이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과거에는 통하던 방식이 현재에도 통하라는 법은 없다. 이게 현실이라면, 현실에 맞춰서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 수십 년 동안 해 왔던 방식을 못 바꿀 정도로 변화의 의지가 없는 경직된 조직이라면, 그냥 이 스타트업 게임에서 빠지면 된다. 실은 굳이 본인들이 빠지지 않아도, 언젠가는 밀려나게 되어 있다.

자주 웃기

지난 며칠 동안 Y Combinator에서 창업가들에게 보낸, 좋은 시절이 끝나가니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라는 이메일이 우리나라에서도 공유되면서 큰 화제가 됐었다. 이미 많은 분이 내용을 정독했을 텐데, 요약하자면 13년간의 스타트업 호황이 끝나가니까 이젠 허리띠 졸라매고 돈 아끼면서 비즈니스 모델 빨리 강화해서 돈을 벌든지 아니면 내년 말까지 쓸 수 있는 펀딩을 빨리 확보해놓으라는 내용이다. 이 외에 세쿼이아 캐피탈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고, 한국 VC들도 급랭하는 시장에 대한 경고를 너도나도 앞다퉈서 하고 있다.

나도 이 내용에 모두 동의한다. 실은, 이 상황은 이미 예견됐던 건데, 모든 악재가 그렇듯이 예고 없이,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와서 놀란 거지, 경제 위기 자체를 예상 못 했던 건 아니다. 팬데믹이 시작한 후, 글로벌 경기가 무너질 거라고 대부분 경제학자가 예측하면서 경고의 메시지를 시장에 보냈다. 그리고 그때도 많은 VC가 조심하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나 포함). 하지만, 고민하고 시간 투자해서 이런 경고음을 보낸 노력이 민망할 정도로, 경기가 나빠지긴커녕, 오히려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할 정도로 경기는 과열되면서, 시장에는 돈이 넘쳐흘렀다.

2021년도 한 해에만, 전 세계의 벤처투자금 $620B이 무려 9,000개가 넘는 딜에 투입됐고, 이는 과거 벤처투자의 모든 기록을 큰 차이로 경신한 숫자이다. 작년 한 해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돈지랄”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정말로 유동성이 넘쳐흘렀고, 말은 안 되지만 “현금이 제일 싸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물론, 이런 돈지랄을 보고, 누구나 다 끝은 좋지 않을 거라는 걸 예측하지만, “내가 아무리 비싸게 사도, 다른 사람이 더 비싸게 살 거야”라는 생각으로 계속 시장이 과열됐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엔 이 모든 게 한 번에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조정모드로 돌입하고 있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도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펀딩은 어떻게, 언제 해야 할지, 그리고 스트롱이 보는 현재 상황은 어떤지 최근에 많이 물어보고 있고, 나도 다른 VC와 비슷한 경고의 메시지 외엔 다른 말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2020년 4월에 나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극단적 조치‘라는 포스팅을 통해서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조건 사전에 비용 절감하고 사람을 해고해야 한다는 강력한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이건 좀 틀린 조언이긴 했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우려했던 글로벌 쇼크 수준의 불경기가 오진 않았고, 단지 몇 달 동안 코로나19 쇼크만 있었고, 이후에 시장은 더 과열된 돈지랄로 보복 컴백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어떨까? 나는 경제학자는 아니라서 이번에도 틀릴 수 있겠지만 – 그런데, 경제학자들도 항상 틀린다 – 이번엔 모든 객관적인 수치가 꽤 심각한 글로벌 경제 쇼크로 향하는 것 같다. 불경기, 인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 전쟁, 환율 폭등 등, 이미 경제 위기는 시작됐는데, 그동안 다들 현실을 부정하면서 돈 수도꼭지를 펑펑 틀고 있었다. 이제 돈줄이 메마르기 시작했는데, 이번 위기는 과거 금융 위기와 같이 갑자기 모든 게 한 방에 무너지는 양상을 보이진 않을 것 같다. 과거의 글로벌 위기는 대부분 블랙스완의 성격이 있었는데, 이번 쇼크는 이미 모두가 어느 정도 예견했던 시장의 조정이라서 오히려 아주 천천히 조정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천천히 금융 위기가 오면, 좋은 점은 위기를 제대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다시 호황이 온다고 하는데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요새 내가 우리 대표님들에게 드리는 조언은 그냥 평소 하던 대로 돈 아끼면서 사업하고 – 우리 투자사들은 펑펑 쓸 돈이 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 사람 채용 신중하게 하고, 되도록 신사업 시작하지 말고 기존 사업에서 돈 더 벌자 이다. 그렇게 버티면서 그냥 자주 웃으면 된다.

남 탓 하지 말기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오래된 병 중 하나가 남을 탓하는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이건 한국 사회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전 세계인에게 해당하긴 하는데, 그냥 내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에 남 탓하는 문화가 조금 더 많이 퍼져있는 것 같다.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그래도 조금은 더 유연한 사고를 하고 있고,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 분들이라서 남 탓하는 분위기가 여기엔 덜 하지만, 최근에 내가 느꼈던 몇 가지 생각을 기록해본다.

몇 년 전만 해도 해외 투자자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높진 않았다. 일단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서 잘 몰랐고, 잘 모르기 때문에 투자할만한 시장으로서의 매력도가 낮았다. 그래서 우리도 잠재 해외 LP들을 만날 때 가장 고생하고 시간을 많이 썼던 부분이 한국이 투자할만한 시장이고, 한국에도 정말 좋은 tech 스타트업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한국에서도 유니콘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한국의 이미지도 좋아지면서, 이런 노력이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시장을 아예 모르면, 질문 자체를 못 하는데, 한국이라는 시장에 대한 지식이 생기자, 해외 투자자들은 더 많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중 exit 관련 지적을 가장 많이 받았다. 아무리 좋은 회사가 많이 나와도 이들이 exit 할 수 있는 시장이 없다면 투자자로서는 매력도가 많이 떨어지는데, 한국은 지금도 exit 시장이 유니콘이 나오는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고, 몇 년 전에는 정말 약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뿐이지, 한국도 exit 시장이 생기고 있고,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IPO 시장도 조금씩 활성화되고 있고,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 또는 큰 스타트업의 다른 작은 스타트업 인수 사례가 조금씩 나오고 있고, 인수 가격도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큰 회사들의 생각이 굳이 돈 써서 다른 회사를 인수할 바에야 본인들이 직접 하는 거였는데, 직접 해보니 그냥 다른 회사 인수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싸고 스트레스 덜 받는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직접 하기보단 인수하는 것도 좋은 옵션이라는 개념은 있지만, 아직은 최대한 싸게 인수하려고 한다. 아마도 이 생각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될 것이고, 제값을 주고 회사를 인수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더 많이 인수하지 않고, 인수해도 너무 싸게 한다고 불평들을 많이 한다. 그리고 스타트업 대표들이 이런 대기업을 욕하고 탓한다. 나는 솔직히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는데, 비싸게 인수되지 못하는 스타트업 자신을 탓해야 한다. 사는 사람이 물건의 가격이 100만 원이라고 하면, 그건 100만 원짜리 물건이다. 시장에서 그 가격 이상 지불할 의향이 없는데, 혼자서만 가격이 1억 원이라고 우기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게 싫으면, 그냥 회사를 팔지 않으면 된다. 더 비싸게 회사를 팔고 싶고, 그 가격을 인수자에게 주장하고 싶으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면 된다. 시장은 냉정하고, 시장에서 정하는 게 회사의 가격이니, 남 탓하지 말고,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큰 가치와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