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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머 18기 미팅

얼마 전에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1호 악셀러레이터 프라이머 18기 선발 대면 인터뷰를 다 마쳤다. 서류지원 이후 50개+ 회사를 후보로 뽑았고, 이 회사들을 3주 동안 1시간씩 대면 미팅을 했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굉장히 힘들다. 주중에는 나도 일이 많아서 대부분 주말을 이용해서 미팅했는데, 다시 한번 주말에 시간 내주셔서 나랑 미팅한 창업가분들에게 이 포스팅을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다.

빽빽하게 앞뒤로 잡힌 미팅으로 도배가 된 토/일 캘린더를 보면 실은 스트레스 엄청 쌓이고 한숨까지 나오는데, 이게 또 막상 회사들을 만나보면 오히려 에너지가 충만해져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번에도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너무나 뻔한 아이디어지만 시장의 다른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잘 하는 창업가들도 많았다. 전형적인 엄친아 창업가, 해외 유명 대학 출신 창업가, 현재 대기업 소속인 스텔스 창업가 등, 다양했다. 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분은 부모님 빚을 갚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시작한 창업가, 그리고 무명 연습생 생활을 오랫동안 한 창업가였다. 프라이머 선발과는 무관하게 모두 모두 파이팅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젊은이들이 한국에 너무 많고, 이런 친구들 때문에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지만, 반면에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열심히 사는 젊은 창업가들도 많다는 걸 이번에도 나는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스트롱도 워낙 초기에 투자하지만, 프라이머는 우리보다 더 앞 단계에 투자하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명의 파운더들을 짧은 기간 안에 만나보면 요샌 어떤 서비스와 제품이 시장에서 유행하고 있고, 창업가들은 어떤 트렌드에 민감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MZ 세대는 요새 뭐하고 있는지, 즉 이 시장에 대한 맥을 어느 정도 짚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프라이머 기수를 진행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매우 활발하고 앞으로 더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실은, 여러 가지 매크로 지표를 보면, 앞으로 한국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그래도 유일한 희망이 스타트업 생태계이며, 나도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일원인 만큼, 이 분야만이라도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간절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초기 창업가들을 많이 만날수록 마음의 위안이 된다.

대부분 간절하게 프라이머 투자를 받고 싶어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선발되지 못한다. 내가 이 분들한테 항상 강조하는 건, 프라이머 투자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자기만의 사업을 하라고 한다. 이 창업가들이 그 좋은 학교 나와서, 그 좋은 직장 다니다가, 이 어려운 길을 가는 이유가 프라이머 투자 받기 위한 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고, 더 큰 의지가 있을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고, 주변에 잡음도 많이 들릴 것이다. 이게 너무 많이 쌓이다 보면, 내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한 박자 쉬면서, 항상 이 초심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결국, 사업 자체가 좋아서 하는 거지, 투자를 받고, 어떤 투자자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이 지저분하고 힘든길을 가는 건 아니지 않냐.

통계의 맹점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우린 숫자를 좋아한다. 나도 이전 포스팅에서 비즈니스를 증명하고, 투자자를 설득하려면, 여러 가지 요소가 중요하지만, 결국엔 숫자가 최고의 무기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고, 숫자는 객관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자 믿음이고, 나도 이걸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이 에서 강조했듯이, 숫자는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이걸 포장하는 방법에는 약간의 거짓말과 거품이 끼어 있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발견한다. 얼마 전에 내가 경제상식 관련 책을 읽다가 이런 숫자와 통계의 맹점을 발견한 게 있어서 여기서 공유한다.

경제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나는 항상 경제라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고 – 실제로 어렵다 – 그래서 기본적인 경제 상식이 별로 많지 않다. 이 책을 읽다가 취업률과 실업률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실업률과 통계적으로 말하는 실업률의 정의가 꽤 다르다는 걸 배웠다.

이 책에 다음의 예제가 나왔다.

“한 가족이 있다. 정리해고를 당한 후 몇 년 째 집에서 놀고 있는 아버지, 반찬값이라도 벌기 위해 아는 친구네 식당에서 잠깐씩 일하는 어머니,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잡지 못해 영어 학원에 다니는 첫째, 전문대 졸업 후 임시로 편의점 알바를 하는 둘째, 이 가운데 취업자와 실업자는 각각 몇 명일까?”

언뜻 보면 너무 뻔하다. 나는 4명 다 실업자라고 생각해서 취업자 0명, 실업자 4명이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취업자 2명, 실업자 0명이 정답이다. 통계에서 말하는 실업률에는 이들 그 누구도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업률의 정의는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인데, 위의 예시에서는 아버지와 첫째는 이력서를 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고 분류되기 때문에,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머니랑 둘째는 지속성이나 금액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돈을 벌고 있어서 취업자로 분류된다. 즉, 실업률 100%라고 보이는, 이 가족의 통계상 실업률은 0%이다.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현재 4% 초반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아서, 나는 그나마 실업률을 잘 방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통계의 맹점인 것 같다. 통계적 실업률에 포함되지 않지만, 고려되어야 할 요소가 취준생과 구직 포기자라고 난 생각하는데, 이 두 그룹이 한국에는 다른 나라보다 꽤 많은 거로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스페인의 작년 실업률은 거의 14%여서 굉장히 높지만, 이 숫자를 조금 더 깊게 파보면, 스페인 사람들은 취업이 잘 안 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계속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면서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 수치가 높아진 이유도 있다. 아예 취업하기를 포기하는 거 보다 이렇게 계속 노력하고 있는 게 더 좋은 신호가 아닐까 난 생각한다.

결론은…실업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건 아니고, 많은 숫자에는 이런 통계의 맹점이 존재하니, 통계를 너무 믿기보단 그냥 참고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고성장 vs. 중성장 vs. 저성장

창업가나 투자자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대부분 스타트업이 무에서 시작하는 회사라서, 모두가 성장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손꼽아서 이야기한다. 우리 또한 초기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성장이 분명히 그중 하나라고 답할 것이다. 투자자들이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산정할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게 절대적인 수치이지만, 절대적인 수치가 조금 작아도 그 성장 자체가 좋다면,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얼마큼 성장해야지 좋은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지만, 많은 VC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오랜 기간동안 매달 20%씩 계속 성장할 수 있으면, 유니콘 가능성이 있는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번 달 매출이 1,000만 원 이라면, 20% 성장하면 다음 달 매출은 1,200만원, 그리고 그 다음 달 매출은 1,320만 원, 이렇게 올라가는 건데, 언뜻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것 같다. 그런데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복리의 마술이 적용되면서 갈수록 성장 자체가 가팔라진다.

주식회사 고성장, 중성장, 저성장이라는 3개의 스타트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세 회사 모두 비슷한 비즈니스를 하고, 모두 사업 시작 첫 달 매출이 1,000만 원이었다. 고성장은 첫해 매달 20% 성장했고, 중성장은 10%, 그리고 저성장은 5% 성장했다. 이걸 그래프로 한번 그려보자.

1 yr

차이는 명확하다. 시작은 같지만, 갈수록 그래프 차이가 나면서 고성장은 12개월 후 월매출이 약 7,400만 원, 중성장은 약 2,900만 원, 그리고 저성장은 1,700만 원이다. 이 성장이 지속되고, 계속 같은 성장을 2년(=24개월) 동안 한다고 가정해보고 이걸 다시 그래프로 그려보자.

2 yrs

세 회사의 차이는 더욱더 명확해진다. 같은 1,000만 원 선에서 출발했지만, 2년 후 고성장의 월매출은 6.6억 원, 중성장은 9,000만 원, 저성장은 3,000만 원이다. 고성장은 2년 만에 월 매출 66배, 중성장은 9배, 저성장은 3배 성장했다. 복리의 힘이 대단하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투자자들이 오랫동안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회사들을 좋아하고, 이런 회사에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매기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또 생각해볼 건, 이런 성장이 평생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회사도 평생 매달 이렇게 성장할 수 없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성장률이 줄어들 것이고, 한자릿수가 되면서 대부분 성장을 못 하거나, 아니면 완만한 성장곡선을 그리게 된다.

그래프를 한 번 더 그려보자. 고성장은 2년 동안 매달 20%씩 성장했지만, 극심한 경쟁 때문에 3년 차부턴 월 성장률이 5%로 줄었고, 이후 계속 5%만 성장을 했다. 반면 중성장은 오히려 좋은 인재들을 영입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서 3년차 부터 월 20% 성장을 했다. 저성장은 그냥 계속 5%씩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이 꾸준히 저성장을 했다.

3 yrs

고성장이 초반에 워낙 점수를 많이 따서 아직 절대적인 수치는 압도적이지만, 후반부에 가속하고 있는 중성장의 성장은 괄목할만하다.

실은,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작은 성장이 계속 반복되고 쌓이다 보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초반에 너무 빨리 성장하다 보면, 성장통을 겪게 되고, 어느 순간 그 성장이 멈추는데, 그때 그동안 조금 더디게 가던 경쟁사들이 확 치고 올라올 가능성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정답은 적당하게 아주 꾸준히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꾸준하지만, 성장폭이 너무 작아도 안 되고, 꾸준하지만, 성장폭이 초반에 너무 커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Morning Brew 인수

전에 내가 즐겨보는 뉴스레터 Morning Brew에 대해서 한번 을 쓴 적이 있는데, 며칠 전에 Business Insider가 모닝브루를 인수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 회사 뉴스레터의 팬이고, 바빠도 되도록 모닝브루 기사는 많이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우리도 콘텐츠 관련 회사에 투자를 좀 했고,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시간 대학교 학부생들이 5년 전에 창업한 스타트업이 한화로 거의 850억 원에 인수된다는 소식은 느낌이 좋았다.

나도 잘 몰랐던 사실인데, 모닝브루는 지금까지 가족 및 친구들한테 $750,000만 투자를 받았고, 올해 매출이 $20M(=230억 원)이고, 수익까지 나고 있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세상에 널린 게 콘텐츠긴 하다. 그리고 하나의 콘텐츠가 나오면, 이걸 재탕하는 기사도 너무 많이 나오고, 대부분 무료로 인터넷으로 제공된다. 그래서 콘텐츠나 미디어 사업을 하면, 대부분 VC는 이 회사는 돈 못 벌겠다고 생각하고, 투자를 안 한다. 실은 나도 모닝브루를 처음 발견했을 때, 기발한 콘텐츠 생산 및 재생산 능력을 갖춘 어린 친구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돈을 벌 수 있겠냐고 의심했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비즈니스를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투자사도 아니고, 내가 아는 창업가도 아니지만, 그냥 개인적인 독자 및 팬으로서 축하하고 싶다.

헤이 구글

Google Home Mini몇 년 전부터 음성인식 스피커와 같은 음성 AI 기술과 제품들이 뜨기 시작했지만, 내 반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뜨뜻미지근했다. 내가 꼰대라서 그런지, 아니면 젊은이들의 감각을 못 따라가서 인지 잘 모르겠지만, 굳이 기계랑 대화 하는 게 별로였고, 초반에만해도 기계가 음성 인식을 잘 못 해서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 했다. 그래서 굳이 음성으로 가전기기를 키고, 끄기보단 그냥 리모컨으로 했고, 기계에 날씨를 물어보거나 음악을 틀어달라고 명령하지 않고, 그냥 손가락으로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게 나한테는 훨씬 편했다.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게, 음성으로 기계에 지시를 내리는 것보단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갔다. 에어비앤비로 집을 통째로 빌렸는데, 이미 전에 한 번 빌렸던 집이고, 이 집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향 시스템이 없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출발 바로 전에 그냥 그동안 집에서 놀고 있던, 개봉도 안 한 구글 홈 미니를 챙겼다. 이 외에는 다른 옵션이 없었기 때문에 숙소에서 미니를 설치하고, 폰에 있는 스포티파이 앱을 연결했다. 실은 이 연결 부분은 구글답지 않게 사용자 경험이 직관적이지 않아서 조금 애를 먹긴 했는데, 일단 세팅 이후의 경험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음향 자체도 웬만한 스피커보다 좋아서, 볼륨을 조금 키우면 집 전체, 그리고 마당까지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다 퍼졌는데,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음성 기능이 너무 훌륭했다. 기계학습의 결과인 거 같은데, 나랑 와이프가 한국어, 영어, 심지어는 사투리로 말하는 대부분의 음성이 완벽하게 인식됐고, 이걸 몇 번 하다 보니 앞으로 손가락이 아닌 음성과 시각으로 기계와 소통하는 미래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볼륨 조절, 노래 검색, 재생 등을 멀리 부엌에서 음성으로 마루에 있는 미니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게 너무나 편리했다.

앞으로 우리 집에서 “헤이 구글”을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