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to ONE

너무나 유명한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얼마 전에 완독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조금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던 내용이 있었다. 특히 피터가 말하는 모든 기업이 반드시 답해봐야 할 다음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 투자사들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많은 질문을 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라면, 한 번 정도는 생각해보면 좋을 듯:

1/ 기술 – 점진적 개선이 아닌 획기적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2/ 타이밍 – 이 사업을 시작하기에 지금이 적기인가?
3/ 독점 – 작은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시작하는가?
4/ 사람 – 제대로 된 팀을 갖고 있는가?
5/ 유통 – 제품을 단지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할 방법을 갖고 있는가?
6/ 존속성 – 시장에서의 현재 위치를 향후 10년, 20년간 방어할 수 있는가?
7/ 숨겨진 비밀 –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독특한 기회를 포착했는가?

당장 제로 투 원은 힘들겠지만, 제로 투 제로 포인트 원이라도 하길.

외국어 표기법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에 의하면 San Jose 지명을 표시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산호세’랑 ‘새너제이’인데 코스타리카의 수도는 산호세라고 쓰고, 실리콘밸리의 도시는 새너제이라고 쓴다. 둘 다 알파벳 표기는 같고, 어차피 스페인어이기 때문에 원어나 영문 발음은 거의 동일하게 ‘산호세’ 이다. 많이 헷갈린다.

외국어라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거지만, 굳이 같은 단어를 이렇게 다르게 표시하고, 이 표기법에 어긋나면 공식적으로는 틀렸다고 하는 건 좀 구시대적인 발상 같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한글 표기법과 원어의 발음을 비교했을 때 차이가 너무 크게 나는 경우가 많아서, 이 부분은 다시 한번 전면 재검토를 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한다. 얼마 전에 마케팅 관련 책을 읽었는데, 화려한 컬러와 스타일을 자랑하는 신개념 주방용품 Joseph Joseph사를 한글로 ‘조셉조셉’ 이라고 표기했지만, 같은 책에서 이 회사의 설립자 Anthony Joseph와 Richard Joseph는 ‘조지프’라고 표기한 걸 봤다.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을 찾아보니, 사람 이름 Joseph의 올바른 표기법은 조지프이지만, 미국 회사이니 회사 이름은 미국인들이 발음하는 조셉 조셉이라고 표기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같은 이름을 성경에서는 ‘요셉’이라고 표기하는 걸 봤다. 참 복잡하고, 이상하다.

사진 2017. 3. 16. 오후 1 09 01

시대에 따라 새로운 용어들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웹스터 사전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서 해마다 개정판을 새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말이 아닌 이상 외국어 표기법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의 의견도 이해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은 한번 만들어 놓고 평생 사용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계속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Polychain Capital

AVC.com을 운영하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VC인 Fred Wilson과 Marc Andreessen이 투자한 Polychain Capital에 대해서 요새 공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최근에 내가 본 비즈니스 중 이 회사가 하는 게 가장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다. 웹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만 있다.

“The emergence of bitcoin and subsequent blockchain technologies has generated a new digital asset class in which scarcity is based on mathematical properties. Through cryptographic verification and game-theoretic equilibrium, blockchain-based digital assets can be created, issued, and transmitted using software. Polychain Capital manages a hedge fund committed to exceptional returns for investors through an actively managed portfolio of these blockchain assets.”

Polychain Capital은 회사가 아니라, 헤지펀드이고, 상장 또는 비상장 회사가 아닌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에만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이다. 요새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는 분야이고, 이 펀드가 하는 일이 흥미로워서 여기 창업자 Olaf Carlson-Wee한테 직접 연락을 해봤고, 그동안 몇 번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Polychain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참고로, Olaf는 Coinbase의 초기 멤버였고, 리스크관리팀을 담당했던 똑똑한 친구이다.

대부분 이 회사의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 실은 나도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 폴리체인이 하는게 왜 흥미로운지를 조금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에 투자한다는 건 애플리케이션 단이 아니라, 프로토콜 단에 투자하는 것이다. 아마도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해서 좀 아는 분들이 “블록체인은 인터넷과는 달리 대부분 가치와 부가 애플리케이션이 아니라 프로토콜 단에서 생성될 것이다”라는 이야기하는 걸 많이 들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블록체인을 인터넷에 비교한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투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점이 있다. TCP/IP, SMTP, HTTP나 SSL과 같은 인터넷 프로토콜에는 직접 투자를 할 수도 없고, 여기에 투자해서 돈을 벌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생성된 대부분 가치와 돈은, 인터넷 프로토콜 위에서 개발된 애플리케이션에서 만들어졌다. 즉, 인터넷 프로토콜 위에서 아마존, 구글 또는 페이스북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었고, 모든 투자는 이 애플리케이션 단에 집행된다.

여기서 블록체인과 인터넷이 달라진다. 블록체인의 경우, 애플리케이션 단에서도 가치가 창출되지만, 프로토콜 단에서도 이게 가능하다. 우리 투자사 코빗은 비트코인 프로토콜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고, 우리는 이 회사에 투자를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비트코인도 구매하면서 비트코인이라는 프로토콜 일부를 구매할 수가 있다. 이렇게 투자자들이 프로토콜 자체에 투자할 수 있다는 건 상당히 흥미롭고 혁신적인 개념이다. Polychain이 하는 건 프로토콜 단에 투자해서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을 확보하는 것인데, 인터넷과는 다르게 블록체인 프로토콜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회사에 투자하는 투자자보다 어쩌면 더 많은 부가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을 가진 투자자들한테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창작자와 소비자의 마켓플레이스

two-sided-marketplace-800px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분들의 지상과제는 수요와 공급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급/판매/생산하는 공급자들과, 이를 원하는 수요자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이들을 원활하게 매칭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도 많은 마켓플레이스에 투자를 했고, 모두 다른 비즈니스를 운영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을 잘 밸런싱해야하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중, 뭔가를 만드는 창작자와 이들이 만든 창작물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창업가들을 위해, 내 경험을 일부 공유하고 싶다.

내가 미국에서 운영하던 뮤직쉐이크도 크게 보면 마켓플레이스다.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와 이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음악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양면 음악 마켓이다.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 창작자와 소비자의 비율은 1:9 정도였다. 즉, 10명 중 한 명은 정성껏 우리 제품을 사용해서 음악을 만들고, 나머지 9명은 음악은 만들지는 않지만, 남이 만든 음악을 들었다. 우리의 초기 가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창작 본능을 갖고 있지만, 음악을 만든다는 거 자체가 너무 어려우므로 음악 창작 활동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악을 모르고, 악기를 연주하지 못 하는 사람도, 뮤직쉐이크를 사용해서 누구나 다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 수만 있다면, 세상 모두가 다 창작자가 될 것이라는 게 우리 서비스의 가장 근본적인 가설이었다. 우리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 집단에 모든 자원을 투입했다. “어떻게 하면 나같이 음악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이 음악을 재미있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뮤직쉐이크를 어떻게 더 쉽게 만들 수 있을까?”가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였다.

첨단 기술과 많은 노가다를 투입해서 우리는 더 좋은 음악창작 제품을 만들어서, 더욱더 많은 일반인이 창작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위에서 말한 1:9의 비율이 9:1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입한 후에 내가 배운 점이 있다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아무리 쉽고 재미있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음악을 만드는 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남이 만든 좋은 음악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데 관심이 있지, 본인들이 음악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고, 이런 경향은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창작활동에도 적용되는 거 같았다. 창작이 아무리 쉬워도, 창작자 대비 소비자의 비율을 3:7 이상으로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급하게, 창작자가 아닌, 우리 서비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소비자’한테 초점을 옮겨서 남이 만든 음악을 더 잘 발견하고, 듣고, 즐길 수 있는 쪽으로 서비스의 방향을 틀었다. 다양한 커뮤니티, 소셜 기능, 그리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뮤직쉐이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레이어와 플레이리스트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아마도 창작자와 소비자가 존재하는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팀이라면,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위에서 내가 말한 내용이 절대로 절대 진리는 아니지만,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은, 창작자-소비자의 마켓플레이스에서는 항상 소비자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거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 마켓플레이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소수의 창작자보다는 다수의 소비자가 최대한 이 플랫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돈을 쓸 수 있도록 회사의 자원을 투입하는 게 효과적인 방법인 거 같다. 소셜기능이 강화된 커뮤니티 관련 기능들이 잘 구현되면, 이런 소비자 기반 마켓플레이스의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뮤직쉐이크같이 창작자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든다면, 창작자의 비율을 소비자보다 더 높게 만들고(6:4 정도?), 이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사용할 수 있는 완성도가 높은 기능을 지속해서 출시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해보면 알겠지만, 이 각도로 접근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소수의 까다로운 입맛에 호소하는 제품을 잘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양면을 다 충족해야 하는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건 어렵다. 그런데, 공급자들이 뭔가를 창작해서 올려야 하고, 그 창작과정을 도와주는 툴까지 우리가 만들어서 제공을 해야 하면, 이는 단순 양면마켓플레이스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다.

<이미지 출처 = Reason Street>

큰 시장, 작은 시장

각자의 세세한 취향과 시각은 다르지만, 대부분 벤처투자자는 회사를 평가할 때 크게 팀, 시장, 기술을 보는 거 같다. 나도 처음 만나는 회사에 대해서는,
1/ 어떤 팀인가?
2/ 이 팀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시장 크기)
3/ 이 팀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지?
라는 큰 프레임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본다.

오늘은 2번째 포인트인 ‘시장크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실은, 창업가나 투자자한테 시장 크기는 매우 중요하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전체 시장의 크기가 250억 원이면 우리 같은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는 힘들다.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라도 시장의 100%를 가져가는 건 불가능하고, 30% 정도만 점유해도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데, 250억 원짜리 시장의 30%는 75억 원이다. 즉, 이 비즈니스가 아무리 잘 되도 75억 원 이상의 비즈니스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한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건 쉽지 않다. 창업자의 경우, 75억 원짜리 비즈니스를 운영하면 아주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살 수도 있지만, 우리같이 투자금의 큰 배수를 다시 회수해야 하는 VC는 이보다 더 빠르고 크게 성장하는 시장을 공략하는 비즈니스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나도 초기에는 이런 시장의 크기를 많이 따졌다. 요새 피칭 자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이 1,000억 원 이하의 비즈니스는” 시장크기가 너무 작아요.”라는 얄미운 피드백으로 투자검토를 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내가 마치 유니콘 비즈니스에 투자경험이 있는 VC인 양 “그렇게 작은 시장에서 사업해서 얼마만큼 성장하겠어요?”라고 몰아붙인 적도 있다. 그럼 우리는 엄청나게 큰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에만 투자했나? 그렇지 않다. 실은, 이와는 반대로, 남들이 보기엔 너무나 작은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에도 꽤 많이 투자했는데, 그동안 이 시장 크기에 대한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단 조 단위 규모의 시장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우리도 투자경험이 있는 사교육 시장, 음식 배달 시장, 부동산 시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모두 다 몇십조 ~ 몇백조 원 규모의 큰 시장이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절대적인 시장규모에 군침을 흘리게 된다. 이 어마어마한 시장의 5%만 먹어도 엄청난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중국 산수를(=”중국의 인구가 14억 명인데, 이 인구의 1%만 우리 고객으로 만들어도 1,400만 명이다”라는 비현실적인 시장 크기 산출 방법) 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 더 냉정하게 시장을 보면 – 특히, 투자한 후에 – 이 스타트업은 이미 존재하는 엄청난 시장의 일부를, 이미 그 시장에 오랫동안 포진해 있던 경쟁사와 우리와 비슷한 전략으로 최근에 진입한 신규 경쟁사들과 힘들게 싸워서 뺏어와야 하는 쉽지 않은 위치에 놓여있다는걸 알게 된다. 시장은 이미 존재하고, 엄청나게 크지만, 그 시장의 일부를 가지려면, 산전수전 다 겪은 온갖 경쟁을 이겨야 한다. 이거 진짜 쉽지 않다.

그럼 작은 시장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이 시장의 스타트업은, 위에서 말한 250억 원짜리 시장, 또는 이보다 더 작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시장으로 진입해서, 작은 시장을 더 키우거나, 또는 아예 없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투자자는 여기서 이 회사와의 대화를 멈춘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지만, 이런 비즈니스를 그냥 무시하고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경험 또한 여러 번 했다. 현재 시장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도 있지만, 이 시장에서는 없으면 안 되는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면서 시장 자체를 더 키우는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탄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쉽지 않다. 위에서 말한 이미 존재하는 시장을 공략하는 비즈니스와는 다르게, 없는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완전히 바닥부터 모든 걸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제품이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고객과 시장의 욕구 자체를 맨땅에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 또한 쉽지 않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시장이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고, 시장이 없다고 나쁜 게 아니다. 큰 시장일수록 그 일부를 점유하는 게 어려울 수 있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없는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게 예상외로 수월할 수 있다. 결국, 나만 잘하면 시장의 크기도 내가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