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生MBA리포트] 테크 회사가 가장 좋아하는 MBA

MBA의 길

기고자 소개) 박은정씨는 와튼스쿨(Wharton School) 졸업 후 현재 Top MBA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MBA 지원자들에게 도움을 준 경험을 기반으로 “미국 Top MBA 가는길(매일경제)“를 공저하였으며, 현재 자신만의 노하우와 지식을 바탕으로 최신 MBA 트렌드와 어느 학원에서도 해 주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진짜 MBA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연세대학교 상경계열 졸업 후 삼일회계법인에서 일을 했으며 현재 미국 동부 피츠버그에서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박은정씨의 글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mbaparkssam@gmail.com으로 연락주세요.
*박은정씨가 운영하는 MBA의 길에 가시면 MBA 관련 더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많은 분들이 요즘 가장 입사하기를 원하는 회사들 입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테크 회사와 MBA가 별 연관이 없게 느껴졌지만 요즈음은 이러한 회사들이 신규 인력을 채용할 때 가장 먼저 문을 두드리는 곳이 탑 MBA 학교들입니다. MBA들 역시 과거 투자은행과 같은 파이낸스에 쏟았던 관심을 테크 회사로 돌리고 있습니다. 2007년의 경우 MIT는 단 13.1%가 테크 회사에 입사했지만 작년에는 무려 두 배가 넘는 30.7%를 테크 회사에서 데려갔습니다. 같은 기간동안 파이낸스 회사에 입사한 졸업생 비율은 26.1%에서 12.9%로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컨설팅의 경우 37.2%에서 32.1%로 약간 낮아졌네요. MIT 슬론 학생 중 22명은 아마존으로 14명은 구글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각 7명씩 데려갔습니다. 총 350명 정도 되는 학생 중 15%에 가까운 50명이 이 4개 회사에 입사한 셈입니다. 반면 MIT 학생을 가장 많이 데려간 10개 회사 중 파이낸스 계통은 모건 스탠리 단 하나로, 보잉 사와 함께 5명을 채용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다른 학교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양상입니다. 아마존,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시스코, 이베이, 페이스북, IBM, 인텔, 링크드인과 같은 회사들이 탑 MBA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Job offer를 줄 때 stock option을 내 거는 경우들도 있고요. 2015년에 하버드를 졸업한 학생 중 9%는 생긴 지 채 3년이 되지않은 스타트업에 조인했으며, 졸업생의 36%는 취직 시 주식이나 스탁옵션을 약속받았습니다.

MBA 채용에서 가장 박차를 가하고 있는 회사는 아마존입니다. 제프 베조스의 경영 방식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욕을 먹고 있기는 하나, 일단 MBA 취업 시장에서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Ross를 2015년에 졸업한 학생 중 무려 59명이 아마존으로부터 job offer를 받았고, Ross, Duke, Kellogg, MIT, Columbia 단 다섯 개 학교에서 아마존이 채용한 학생 수는 121명에 달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듀크를 사랑해서 19명을 채용했습니다. 반면 애플은 켈로그에서 8명, MIT에서 7명, 컬럼비아에서 6명, 듀크에서 4명을 데려갔습니다. 구글이 가장 사랑한 학교는 MIT로, 14명이 채용되었습니다.

졸업생의 가장 많은 비율이 테크 회사로 진출한 학교는 어디일까요? 놀랍게도 University of Washington의 Foster School of Business로서 졸업생의 43%가 테크회사에 채용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도 포함되어 있지만, EMC, NetApp, Samsung, Tektronix, VMWare같은 회사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졸업생의 30% 이상이 테크로 진출한 회사는 카네기 멜론, 버클리, UCLA, MIT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피츠버그의 카네기 멜론은 클래스 규모가 굉장히 작은데도 불구하고 상당수가 이러한 테크 회사에 채용되고 있고 특히 카네기 멜론이 operation쪽에서 가진 강점과 아마존의 해당 분야의 필요성 때문인지 아마존에 채용되는 수가 많습니다. 스탠포드의 28%, 하버드의 20%, 와튼의 11%, 컬럼비아의 6.9%가 테크로 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원자들이 지원 학교를 선정할 때 랭킹보다는 본인이 미래에 일하고 싶은 분야를 더 깊이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가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MBA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한 적은 있지만, 테크 회사들은 위에서 보이는 것처럼 점차 MBA 채용을 늘리고 있고, MBA 학생들 역시 기존의 컨설팅이나 파이낸스 회사보다 테크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요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핫’한 산업이라는 것도 이유일 테고 조금 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원하거나 서부에 정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물론 테크는 여전히 컨설팅이나 파이낸스에 비해 기본 연봉이 $125,000 정도로 $15,000 정도 적고, 보너스 역시 비슷하거나 $15,000 정도 적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차이는 스탁옵션 등으로 해소하고 있습니다. UCLA에서도 작년 졸업생의 34.1%는 주식 관련 보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구글 등의 기업들이 요즘 MBA를 많이 뽑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MBA에 가서 이 회사들에 취업하겠어!’라고 지원을 시작하기보다는 본인의 장단점과 현재까지의 커리어 패스를 잘 고려하셔야 합니다. 테크회사들이 채용하는 사람 수를 늘리는 것보다 몇 배 이상으로 취업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수는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초기, 소규모 스타트업들은 비자 스폰서를 해줄 수가 없는 경우가 많고, 비자 스폰서를 해줄 수 있는 테크 공룡들의 경우에는 외국인(특히 인도 및 중국인)들과의 극심한 경쟁을 뚫어야 합니다. 때문에 무작정 MBA 지원을 결정하기 보다는 MBA 이후의 목표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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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poetsandquants.com/2016/01/16/where-tech-firms-are-finding-their-mba-talent/2/>

PLAY like Nexon

사진 2016. 1. 19. 오전 7 48 48이 분야에서 일하면 얼마전에 출간된 신기주 기자의 ‘플레이’ 라는 책을 읽어 본 분들이 꽤 있을 것 같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니콘 회사 중 하나이자, ‘freemium’ 또는 ‘free to play’ 라는 개념을 게임에 세계 최초로 적용한 게임회사 넥슨의 이야기를 상당히 재미있게 쓴 책이다. 실은 나는 거의 4년 전부터 종이책을 읽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전 부터 다시 종이책과 전자책을 병행하면서 읽기 시작했고 한국 돌아와서 완독한 첫 종이책이 플레이다.

이건 서평이 아니라서 책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쓰지는 않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아마도 나한테 이 책이 더 흥미로웠던 이유는 아직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 꽤 많이 등장했고,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흥미롭게 관찰하던 회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2008년 – 2012년 뮤직쉐이크 시절, 넥슨아메리카 사무실 안에서 작은 방을 얻어서 일을 했었고 본사는 아니지만 넥슨 미국 지사를 통해서 넥슨에 대해서 많은걸 보고 배웠다. 책에 등장하는 몇 인물들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분들인데 이렇게 치열하게 도전하면서 일을 하셨고,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인지는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 창업을 하셨거나 창업을 고려하시는 분들은 읽으면 느끼는게 많을거 같고, 스스로의 현 주소 및 앞으로의 방향을 재정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창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분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 분들한테는 꽤 큰 감동과 인생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사업가나 창업가들이 존재하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창업가들은 만들어 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들 중 살면서 어느 시점에 인생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는 사건을 통해서 창업을 결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같은 경우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Khosla Ventures의 비노드 코슬라의 강연을 들은게 내 커리어 인생을 바꾸게 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플레이’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계기를 제공하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이들이 인생을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봤으면 한다. 그리고 창업을 해서 수 조원의 돈을 벌고 유니콘 기업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부자지도를 부를 대물림 받은 재벌들이 아닌 자수성가한 창업가들로 채워줬으면 한다.

플레이에는 맘에 드는 문구들이 많이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김정주도, 정상원도, 송재경도, 서민도, 일이 이렇게 풀릴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 20대였던 공학도들이 국가 인프라 전략을 앞서 읽고 시장의 흐름을 예측한 다음 거기에 걸맞은 상품을 먼저 준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환란을 예측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들은 그저 남들보다 더 무모했고, 누군가 미래를 만들어주길 기다리는 대신 미래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했을 뿐이다. 도전했고, 실패했다. 행운이 따라줬고, 불행도 따라왔다. 그리고 부활했다.”

그 누구의 길도 아닌. My way.

사진 2016. 1. 9. 오후 5 04 54작년부터 John과 나는 권도균 대표님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악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의 파트너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우린 본격적으로 8기 부터 조인했는데, 얼마 전에 9기 모집이 끝났다. 9기에는 586명이 참가를 했고, 이들이 135개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지원했다. 내 주위에는 더 이상 한국에는 투자할 회사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젊은 친구들의 창업 열기가 시들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프라이머 9기 지원한 분들을 보면 오히려 한국의 창업 현실은 이와 반대로 매우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이 중 20개 정도의 팀들은 프라이머 9기로 선발되겠지만, 대부분은 선발되지 못 할 것이다. 선발되지 못 한 분들에게 내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전혀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하던 일 계속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프라이머 같은 악셀러레이터에 지원하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고, 많은 밤을 세웠던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합격 통보를 받으면 정말 김 빠지고 실망이 크다는 것 또한 잘 안다. 어떤 팀들은 불합격이 창업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꿈꾸던 비즈니스를 접고, 힘들게 만든 팀을 해체하고, 창업 자체도 그만둔다. 나는 이들이 남의 길이 아닌 자신들의 길을 가라고 해주고 싶다. 물론, 프라이머에 합격하면 당연히 좋다. 투자도 받고, 프라이머 파트너들의 적극적인 도움도 받고, 다른 프라이머 동기/선배 회사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지만 악셀러레이터가 창업의 종착점은 아니다. 이는 그냥 창업의 과정에서 거쳐가는 수많은 과정 중 하나이다. 되면 좋지만, 안 되도 좋다. 중요한 건 창업가와 팀이 시작한 걸 끝까지 믿고 밀어 붙이는 것이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이런게 악셀러레이터 지원 뿐이겠나. 투자도 마찬가지이다. 스타트업의 목표는 투자를 받는게 아니다. 돈이 떨어져서 투자를 받으면 하고 싶은걸 조금 더 하고, 사업 초기에 세운 가설들을 조금 더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여유가 약간 더 생기는 것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투자를 많이 받은 회사가 성공한 회사는 절대로 아니다. 투자를 못 받아도 그만이다. 그냥 내가 원래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된다.

아직 성공했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온오프믹스, 스타일쉐어, 그리고 마이리얼트립 모두 프라이머 회사들인데 2010년도에 선발된 1기 회사들이다. 이 회사들이 현재 위치까지 오기에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고, 미안하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그만큼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게 비즈니스이다. 창업은 남들과 경쟁하는 경진대회가 아니고, 창업가들은 연예인이 아니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길을 가는게 아니라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프라이머 9기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모든 스타트업들이 너무 조바심 갖지 말고, 좀 길게 보고 자신만의 my way를 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두 회사의 이야기 – part.2(한인텔)

이 전 포스팅의 두 번째 이야기다. 테이크톡스를 운영하던 오현석씨와 김태호씨, 이 두 분 다 아주 맘에 들었다. 둘 다 좋은 엔지니어들이고, 성품도 너무 훌륭했다. 그리고 가진것도 없고, 경험도 없었지만 북미 시장에 도전하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한때는 우리가 테이크톡스에 투자할까 검토를 했는데 이 와중에 비즈니스를 접고 둘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김태호 대표는 LA로 와서 레코미오를 창업했고 우리는 이 회사에 투자했다. 오현석 대표는 이전에 본인이 창업해서 이미 잘 운영되고 있던 한인텔로 돌아가서 여행 비즈니스에 집중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인텔에도 투자를 했다. 워낙 탄탄한 비즈니스라서 한인텔은 레코미오 만큼은 힘들진 않았지만 중간 중간에 당연히 여러번의 고비도 있었다. 그리고 2014년 말에 옐로모바일의 여행부문 자회사 옐로트래블에 인수되었다. 현재 오현석 대표는 옐로트래블이 인수한 우리펜션, 한인텔, 플레이윙즈, 자리 4개사를 편입한 옐로트래블랩스의 대표이사로 한국 최고의 여행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고 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외대 컴공과 선후배 사이인 오현석 대표의 한인텔과 김태호 대표의 레코미오에 스트롱이 모두 투자를 했고, 이 두 회사가 2014년 말에 나란히 일주일 간격으로 좋은 회사들에 인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연의 일치이며, 타이밍과 운의 공이 매우 컸다. 하지만, 역시 이 재미있는 시나리오의 핵심에는 우리가 항상 강조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품도 중요하고, 계획도 중요하고, 회사도 중요하고, 모두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게 ‘사람’이 없으면 다 소용없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한테 투자를 했고 이들을 끝까지 믿었다.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도 많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위, 아래 왔다갔다 하는 롤러코스터의 연속인 2년 이었지만 ‘사람한테 투자해라’는 정말로 절대불변의 진리라는걸 몸소 경험했다(이 두개의 exit 이후에 나는 한국외대 공대 출신 창업가들이라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만나려고 노력했다).

‘두 회사의 이야기’ part.1과 part.2는 실은 회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것도 아주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두 분은 어쩌면 수 년 후에 다시 창업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면 둘이서 뭘 하든 그냥 무조건 투자하겠다.

두 회사의 이야기 – part.1(Recomio)

*이 포스팅은 얼마 전에 김태호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 ‘미국에서의 창업, 그 3년의 짧은 기록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올린다

2012년 비글로벌 – 당시에는 beLAUNCH 였다 – 최종 피칭 스타트업 20개 중 TakeTalks 라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뉴욕에 본사를 두었지만, 창업자들은 한국인들이었고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한국인들과 미국 원어민 선생들을 동영상으로 연결해 주는 서비스였다. 당시 발표는 이 회사의 엔지니어 김태호씨와 사장 오현석씨가 했다. 둘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선후배 사이였고, 오현석씨는 한인텔의 창업자/대표이기도 했는데, 잠시 한인텔을 떠나서 테이크톡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두 분 한테서 긍정적인 인상과 에너지를 받았고 계속 연락을 하면서 지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테익톡스는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나는데 실패했고 오현석 대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인텔 비즈니스에 집중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면서 김태호씨가 free agent가 되었는데, 그의 개발 능력을 대략 알고 있었던 John과 나는 태호씨를 LA로 초청했다. 한 번 와서 LA 분위기도 보고, 가족들과 살기에 좋은 곳인지 확인해 보라는 차원에서, 당시 우리도 없는 살림에 비행기 표를 보내줬다(실은 American Airlines로 부터 협찬받은 마일리지를 활용했다).

태호씨가 봤을때도 따뜻한 천사의 도시 LA가 나쁘지 않았고, LA에서 다시 창업을 하라고 우리도 계속 설득을 했다. Strong이 많이는 투자하지 못 하지만 기본 시드머니를 제공하고 사무실도 제공할테니 일단 무조건 LA로 와서 뭐를 개발할지는 그때 정하자고 계속 설득을 했고, 몇 주 후에 태호씨와 와이프 지연씨, 그리고 두 애기들 이렇게 4 가족의 LA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게 2012년도 말이었을 것이다. 태호씨에게는 모든게 낯설었지만, 오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는 회사 설립, 취업 비자, 아파트 계약, 중고차 구입 등 ‘개발’과 관련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원사격을 했다. 당시 태호씨가 하고 싶었던 분야는 추천, 개인화, 빅데이터 였고 우리는 회사이름을 Recom.io라고 지었다. 김태호 대표가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영어나 기획 그리고 비즈니스 스킬을 보강하기 위해서 내 어릴적 친구이자 뮤직쉐이크 동료였던 서철씨가 co-founder로 조인을 했다.

솔직히 그 이후 2년 간 레코미오의 스타트업 생활을 요약하자면 ‘투쟁’ 과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 이라고 하는게 맞을거 같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호 대표의 블로그를 참고하면 되지만 결론적으로 2년 동안 4개의 제품을 출시했지만 시장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데에는 모두 실패했다. 1년 조금 지나서 회사는 돈이 떨어졌지만, 추가 투자를 받기에는 수치가 뒷받침 해주지 못했다. 그 이후 김태호와 서철은 거의 1년을 무보수로 일했다. 서철씨는 미혼이라서 김태호씨보다는 상황이 조금은 더 나았지만, 주말마다 결혼식 같은 행사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서철씨는 피아노 전공자이다). 하지만, 처자식이 있는 김태호씨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이 내용이 당시의 상황을 요약해 준다.

“LA 생활을 돌아보면 일을 떠나 감정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딜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을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살던 집에서 짐을 빼 스토리지로 모두 옮겼는데 그 때 크지도 않은 집 구석구석에서 많은 수의 진통제 통들을 발견했다. 집사람이 집안에 소홀한 나 대신 타지에서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진통제로 버텨왔던 것이다. 나에게 티도 내지 않고.
하나는 좀 부끄럽긴 한데 우리 부부가 돈이 없어서 2년 간 옷도 못사고 살았는데 속옷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속옷 앞이 다 터져 나갔고 집사람은 뒤가 다 터져 나갔다. 당시 서로 이제 모든 팬티가 결국 찢어졌구나 하고 웃어넘겼지만 그 모습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집사람을 보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며 살고 있는건지 내 자신이 싸이코패스 처럼 느껴졌었다. 진통제통과 찢어진 팬티. 그 강렬한 이미지.”

뭐, 돈 없는 스타트업들의 창업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평생 경험할 수 없는 개고생을 하는 면에서 보면 레코미오 또한 다른 고생하는 스타트업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영어도 유창하지 않은, 한국에서 교육받고 코딩 기술을 익힌 개발자 출신의 창업가가 미국에서 창업을 하면서 부딪히는 현실의 벽과 물가가 싸지 않은 캘리포니아에서 없는 살림으로 4 가족을 동시에 꾸려 나가야 하는 생활은 한국에서 창업해서 고생하는 회사들과는 확실하게 다르고,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나 또한 11개월 이상을 미국에서 무급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그 2년 동안의 에피소드들을 웃으면서 자세히 공개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코미오는 결국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 몰렸다. 옆에서 이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던 우리가 먼저 이들에게 회사 문 닫고 일단 다른 곳에 취직하라고 제안했다. 서철, 김태호 실력 정도면 모두 실리콘밸리나 LA의 왠만한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에 취직해서 억대 연봉을 받는 건 솔직히 어려운 일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아뇨, 조금만 더 해보죠. 우리야 그냥 다른 곳에 취직하면 되지만 그래도 투자자분들(스트롱이 유일한 투자자)에게 최소한 투자금은 돌려드려야죠.” – 먹고 살 돈이 없어서 와이프와 두 애들을 한국으로 보내고, 스트롱벤처스 사무실에서 6개월 동안 먹고 자고 있던 김태호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 때 나는 정말 이런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했다. 너무 보람찼다. 그리고 반드시 이 상황을 역전 시켜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착하게 살고, 열심히 살고, 연예인처럼 자기 PR을 하지 않아도 능력이 있다면 하늘이 한 번은 도와 준다는 말이 정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정확하게 3개월 후, 몇 몇 기업들이 레코미오 인수에 관심을 보였고 2014년 말에 레코미오는 아주 좋은 회사에 인수되었다. 스트롱벤처스한테는 첫번째 exit 이라는 훈장을 선물해준 너무나 고마운 인수였다. 이렇게 김태호, 서철은 LA의 생활을 정리하고 실리콘 밸리로 이사를 갔다. 둘 다 너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새 보금자리에서 일하고 있고 나랑은 아직도 자주 연락하면서 지낸다. 큰 일을 할 친구들이다. 우리가 exit을 시킨것도 아니지만, 어쨋든 이런 좋은 팀을 초기에 알아보고, 투자하고, 같이 고생하면서 좋은 결실을 맺게 되어 즐거운 연말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모두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굴곡없는 성공 스토리 보다는 누군가 밑바닥에서 부터 성장하는 그런 growth story들을 더 좋아하고 공감을 한다. 이런 각도에서 봤을때 레코미오 이야기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스토리 보다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어떻게 아냐고? 2년 동안의 그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바로 옆에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2년 밖에 안 되었지만, (워낙 빠르게 변하는 동네라서)기억을 조금씩 더듬으면서 이 글을 쓰다가 혼자서 웃고 울곤 했다. 힘들어서 지금 포기하고 싶지만, 조금 더 버티고 있는 창업가들한테 조금이나마 영감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