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면 안 되는 4가지

no compromise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건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인생의 다양한 면을 경험하는 거와 비슷하다.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자, 타협의 연속이기도 하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세상이 내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우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스타트업도 여러 가지 상황을 봐가면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므로 가끔은 타협을 해야 한다.

하지만 – 특히,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내 경험과 생각에 의하면 제품, 채용, 숫자와 현금흐름이다.

1/제품 – 좋은 제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제품을 출시했는데 예상보다 냉담한 시장의 반응, 투자자들의 무관심, 현저하게 저조한 사용률 등, 이 흔한 문제들은 마케팅을 잘 못 해서가 아니다. 제품이 후졌기 때문이다. 제품을 제대로 만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많은 경우, 스타트업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핑계로 제품의 완성도에 대해서 타협하는 창업팀을 본다. 원래 의도했던 기능을 구현하려면 6개월이 더 걸리고, 더 많은 개발인력이 필요하므로 “일단 이 정도만 해놓고 출시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라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위안하면서 출시를 강행한다. 하지만,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실패다. 그리고 그나마 몇 안 되었던 초기 사용자들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B급 제품을 사용하면서 이미 좋지 않은 사용자 경험을 했기 때문에 회사와 제품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떠난다. 이들을 다시 부르는 건 쉽지 않다.
사진을 올리면 비율이 깨져서 매우 보기 싫은 서비스가 있었다. 창업팀에게 물어보니, 사진 올리는 기능 자체는 작동하니 – 그래서 MVP를 만들었으니 – 비율 깨지는 건 일단 사용자 피드백을 받은 후에 고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건 잘못된 접근 방법이다. 일단 이들은 MVP의 정의 자체를 잘 모르고 있다. 그리고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돈을 버는 제품을 만드는 건 디테일이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제품의 완성도와 타협하면 안 된다. 원래 의도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솔직히 이렇게 만들어서 출시해도 잘 안 될 확률이 90%이다. 출시가 늦어져도 상관없다. 출시가 늦어지는 게, 이상한 제품을 조기 출시했다가 다시는 이 바닥에서 명함을 못 내미는 거 보다는 낫다.

2/채용 – 항상 강조하는 거지만, “당신이 지금 힘들게 채용해서 만드는 team이 바로 당신이 만들 회사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라” 솔직히 아무도 모르는 가난한 스타트업이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능력 있는 개발자들은 돈 많이 주는 회사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는데 굳이 미래가 불투명하고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 스타트업에 올 이유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창업가는 시간이 갈수록 인재채용의 기준을 낮추고, 결국 적당한 수준만 되면 아무나 채용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개발자를 채용하고 싶었지만, 결국엔 “그래, 우리 형편에 이 정도가 어디냐” 하면서 스스로와 타협한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채용할 때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된다. 가능성이 보이니 일단 같이 일하면서 모자란 20%는 우리가 채워줘야지 하는 접근도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일하고 즉시 회사에 가치를 더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동의하지 않지만, 나는 스타트업 최초 10명의 멤버들을 채용함에서는 100% 맘에 들지 않으면 채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100% 맘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하면, 타협하지 말고 그냥 다른 기존 멤버들이 조금 더 열심히 일하는 게 맞다. 돈 없는 스타트업의 최고의 채용 전략은 100% 맘에 들지 않으면 채용하지 않는 거다.

3/숫자 – 출시 후 지속해서 제품을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다양한 지표를 모니터링 해야 한다. 어떤 숫자가 중요한지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funnel을 체계적으로, 정량적으로, 그리고 미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나도 뮤직쉐이크 시절 여러 가지 숫자들을 관리했는데 가끔 이 수치들과 타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매주, 그리고 매달 목표 수치들이 있는데 약간 모자라지만 거의 비슷하면 목표달성이라고 자신을 격려한 적이 몇 번 있다. 좋지 않은 습관이다. 왜냐하면, 조금씩 모자란 숫자들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그렇다고 회사가 망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제품과는 그만큼 멀어지기 때문이다. 지표들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숫자들이 미달이라면, 왜 그런지 정확한 원인을 밝혀야 한다. 숫자와 타협을 하면 이런 원인분석 과정을 건너뛰는데 이는 서비스 개선을 방해하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4/현금흐름 – 위에서 말한 3가지 정말 중요하지만, 현금흐름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초기 스타트업은 무조건 비용을 아껴야 한다. 사장들은 매일 1원 수준까지 미시적으로 비용을 관리해야 한다. 솔직히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사장이 신경 쓸 일이 매우 많다. 창업 초기에는 모든 걸 해야 하는데 일일이 영수증 관리하고 청구서 확인하는 게 은근히 귀찮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다. 그런데 귀찮다고 청구서 내역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미 처리한 걸 다시 내는 경우도 있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이 작은 비용들이 쌓이면 큰 비용이 되고 “내야 하는 거니까 청구되었겠지.”라는 사고방식이 머리에 굳어지기 시작하면 매출이 없는 스타트업의 죽음이 시작된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개인이나 기업이나 파산한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스타트업들은 존재하는 첫날부터 경제학의 이 기본 법칙을 위배하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현금흐름 관리에 있어서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된다.

한국에서도 꽤 잘 알려진 Y Combinator의 Kevin Hale이 얼마 전에 브라운대학에서 이와 비슷한 조언을 했다.

숫자에 집중해라. 비용을 최소화하고, 집을 사무실로 사용해라. 사람들이 요구하는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들과 대화해라.

타협은 유연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연성은 일반적으로는 좋다. 하지만 제품, 채용, 숫자, 현금흐름과는 타협하면 안 된다. 창업 초기만큼은.

<이미지 출처 = https://chicagoagentmagazine.com/what-will-homebuyers-compromise-on-in-2013/>

O2O와 불안해소(anxiety relief)

O2O

O2O와 불안해소

얼마 전에 Benchmark Capital의 노련한 투자자 Bill Gurley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아 맞다 이거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몇 자 적어본다.

요새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스타트업 용어 중 하나가 O2O다(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약자이지만 모두가 사용하니까…). 원래는 online to offline의 약자인데 요샌 솔직히 이게 online to offline 인지, offline to online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전자상거래만 하던 회사들이 물리적인 상점을 오픈하는 경우는 online to offline이지만, 요새는 기존의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offline to online이 더 많은 거 같다. 후자의 경우(offline to online), 주로 오프라인으로만 운영되던 비즈니스에 기술을 적용해서 효율성과 편리함을 더하는 경우인데 모바일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최근엔 손끝에서 그 효율성과 편함을 즐길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offline이 차지하는 부분을 최대한 제거하면서 이를 online으로 대체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버를 생각해보자. 전통적으로 택시를 부르고, 타고, 목적지까지 가고, 돈을 내는 과정은 100% 오프라인 프로세스였다. 집에서 거리로 나가 손으로 택시를 잡고, 택시 문을 열어서 타고, 목적지에 도달하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요금을 내고, 택시에서 내려서 목적지로 걸어갔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콜택시 제도를 통해서 택시를 부르는 게 조금 편해졌고, 현금 말고 카드결제나 NFC를 이용한 교통카드 결제가 가능해졌다. 우버가 나오면서 우리는 택시에 타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과 결제까지 손가락 몇 번 까딱해서 처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만 제외하면 모든 게 online으로 옮기게 되었다. 앱을 통해서 음식을 배달하는 것도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재미있는 점은 대부분의 O2O 비즈니스에서 offline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려면 물리적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하며,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만든 음식을 먹으려면 누군가는 우리 집으로 음식을 갖다 줘야 한다. O2O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들이 교통과 같은 offline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해소하는 건 매우 힘들다. 이건 교통 당국이나 다른 기관에서 해결하는 게 더 맞다. 하지만 online 프로세스를 더욱더 사용하기 쉽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건 스타트업들의 몫이다. 또한, offline 부분은 마음대로 못 하므로 전체 프로세스에서 offline 부분을 최소화하면서 online 부분을 극대화하면 O2O 업체들이 전체 비즈니스에서 제어 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이게 스타트업들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나는 이 offline/online 비중에 대해 조금 더 유식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적합한 단어를 생각해내지 못했는데, 벤치마크의 빌 걸리는 오프라인 프로세스를 최소화하면 고객들의 “불안 해소(anxiety relief)”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칼라닉이 우버를 창업했을 때 그가 처음부터 강조했던 건 앱을 통한 결제뿐만이 아니라 팁의 계산과 결제였다. 미국의 경우, 택시기사한테 팁을 줄 때 도대체 얼마를 줘야 할지 항상 혼란스럽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달하고, 계산하고 내려야 하는데 이 팁 때문에 사용자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해 한다(팁 문화가 없는 한국에서는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나는 과거에 라스베가스에서 팁 때문에 택시기사와 동전을 던지면서 싸운 적도 있다). 우버는 이 팁까지 모두 앱으로 자동으로 처리해서 사전에 불안요소를 제거한다. 음식 배달이나 식당 예약도 비슷한 거 같다. 식당에 전화해서 누구와 통화해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6명 자리가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귀찮음과 불안을 배달 앱과 예약 앱들은 사전에 제거해 준다.

잘 생각해보면 ‘offline’ 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오프라인 비즈니스들은 이런 사람 대 사람의 상호작용이 필요한데, O2O 비즈니스들은 이런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불안감과 마찰을 해소할 방법에 대해서 잘 생각해봐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물리적으로 필요한 오프라인 프로세스를 제외한 나머지 프로세스는 모두 온라인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가져온 프로세스는 최고로 간단하고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이길 수 있는 O2O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용기의 재정의

courage지난 몇 년 동안 책을 많이 안 읽었는데 한 6개월 전부터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말콤글래드웰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처럼 동일한 책이지만 과거에 경험이나 지식이 별로 없을 때랑 지금이랑은 읽었을 때 많은 차이가 났다. 책의 내용은 그대로지만, 내 지식이 조금 더 깊어졌고 내용을 흡수하는 능력이 질적으로 향상해서인지 더 많이 공감했다. 현재 글래드웰의 David and Goliath 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굉장히 흐뭇하게 읽고 있다. 챕터 하나하나가 주옥같고, 통찰력이 넘치는 책인 거 같다.

이 책에 ‘용기’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글래드웰은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한다.
2차 대전 직전, 영국 정부는 독일군이 맘먹고 런던에 대해 공중폭격을 시작하면 영국이 완전히 초토화될 거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윈스턴 처칠 수상은 이런 재난이 발생하면 60만 명의 사망자와 120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할 것이며, 런던 시민 약 400만 명이 도심 외곽으로 피난 갈 것으로 예측했다. 폭격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는 극에 달할 것이기 때문에 영국은 런던 외곽에 정신병원까지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1940년 가을 독일군은 실제로 런던에 엄청난 공중폭격을 하기 시작했다. 57일 연속 폭격을 시작으로 그 이후 8개월 동안 런던에 수 만개의 폭탄을 퍼 부었다. 피해는 참혹했다 – 4만 명 사망, 6만 4,000명 부상, 100만 개의 빌딩 파괴. 영국 정부가 우려하던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영국이 우려하던 런던 시민들의 반응에 대한 예측만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려했던 런던 시민들의 극심한 공포와 공황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외곽에 준비했던 정신병원들을 찾는 사람들도 없었다. 폭격이 지속되고 그 강도는 더욱 심해졌지만, 오히려 런던 시민들은 동요하지 않고 더욱더 평온을 유지했다. 그들은 오히려 폭격에 대해 덤덤해지고 별거 아니라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전쟁이고,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이런 예상과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을까? 2차 대전이 끝난 후 캐나다 정신과 의사 맥커디는 이 현상을 연구하면서, 폭탄이 떨어진 피해지역의 시민들을 세 분류로 구분해봤다.

첫 번째는 사망자들이다. 당연한 거지만 이들한테 이 폭격의 경험은 매우 참혹하다(이미 죽어서 그 참혹함을 남들에게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두 번째는 ‘간발의 차이(=near miss)’ 라고 한다. 이들은 폭탄이 명중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상응한 피해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사람들이다. 폭탄이 떨어지는 걸 목격하고, 파괴력을 직접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이 죽는 걸 목격한다. 그리고 이들이 경험하고 본 건 미래에 지울 수 없는 큰 쇼크로 남는다.

가장 중요한, 그리고 위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세 번째 부류는 ‘큰 차이(=remote miss)’ 이다. 이들은 사이렌 소리를 듣고, 공중에 떠 있는 폭격기들을 목격하고,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폭탄은 멀리 떨어져서 이 ‘리모트미스’ 군은 그 어떤 피해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한테 이 무시무시한 상황은 완전 반대의 작용을 한다. 이미 폭격을 생존했기 때문에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폭격이 일어나면 폭격과 연관되는 내부 감정은 극심한 공포가 아닌 ‘불사신의 맛이 약간 가미된 흥분감’ 과도 같다고 한다.

독일군의 폭격이 시작되기 전에는 공포에 떨던 런던 시민들이었지만 폭격이 시작되고 끝나고, 다시 시작되고 끝나고를 반복하면서 near miss보다는 remote miss들이 많이 생존했다. 그리고 이들은 “야, 이거 별거 아니네. 폭탄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용기가 생긴 것이다.

글래드웰은 ‘용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재정의) 한다.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용감하게 만드는 용기는 선천적인 게 아니다. 굉장히 힘든 상황을 극복했는데, 되돌아보니 이 상황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느낄 때, 그때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게 용기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다. 솔직히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창업해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거 자체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도 무섭지만, 그 길을 한발씩 움직일 때마다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결정이 창업가와 그의 팀원들을 어떤 힘든 상황으로 몰아갈지 항상 두렵다. 대부분의 결정은 틀리고, 초기 스타트업은 휘청거릴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죽을 각오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서 생존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결정을 더욱더 많이 할수록, 그리고 계속 죽지 않고 살아남을수록 새로운 용기가 생긴다. 왜냐하면, 망할 거 같았지만 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그리고 그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죽을 거 같았는데 살아남았구나.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 때마다 창업가는 더욱더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이 프레임워크를 개인적인 경험에 적용해보면 공감한다. 전에 몇 번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뮤직쉐이크 시절 2009년은 나한테 – 당시에는 –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12개월 동안 수입 한 푼 없이 버텼는데 그땐 정말 죽을 거 같았지만, 막상 그 힘든 상황을 극복한 후에 내가 느낀 건 마치 내가 불사신이라도 된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 물가 높은 LA에서도 3 가족이(=사람 2명과 개 한마리) 1년 동안 수입 한 푼 없이 살았는데, 앞으로 내가 뭘 못하겠냐는 생각도 했던 거 같다. 글래드웰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 힘든 상황을 극복했기 때문에 그 상황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다고 느꼈던 것이고, 이로 인해서 용기가 생긴 것이다. 지금도 나는 계속 남들이 보면 참 쉽지 않은 새로운 일들을 벌이고 있는데, 2009년을 버티면서 습득한 용기 때문인지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 또한 주워 담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용기를 습득하려면 힘든 상황들을 많이 극복해야 한다. 물론, 그런 상황 앞에서 무릎 꿇고 무너지면 안 된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젊었을 때부터 과감한 결정을 하고 힘든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극복하는 걸 권장한다. 그래야지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더 큰 용기를 습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near miss를 경험해서 큰 충격을 받더라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회복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힘든 결정을 하고 힘든 상황을 경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20대 초반에 위에서 말한 뮤직쉐이크 상황을 경험했다면 지금쯤 더 큰 용기가 생겨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zkIWHh5XhGg>

기억에 남는 회사

요새 예능프로 ‘복면가왕’을 즐겨 보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시간 날때마다 다시보기 기능으로 그동안 못 봤던 편들을 와이프랑 거의 다 봤다. 내가 즐겨 듣던 옛날 노래들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고, 이젠 흐린기억속에만 존재하는 가수나 연예인들이 가면을 벗고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더 이상 TV에서 활동하지 않는 가수들 또는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컴백을 준비하는 가수들이 가면을 벗으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저라는 가수는 모르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 노래는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아 저런 노래가 있었지’ 정도만 기억해 주시면 죽을때까지 행복할 거예요” 인거 같다.

내 주변의 좋은 창업가들도 대부분 이 복면가수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위대한 창업가로서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거나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인생을 살고 있다기 보다는,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 하고 있다. 내가 아는 이들은 분명히 후세에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보다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기업을 기억해주길 바랄것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싶다. 솔직히 20년, 30년 후에 나는 뭘하고 있을지 또는 그때까지 스트롱벤처스가 살아 있을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잘 되서 그때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 좋겠다. 현재 우리 계획대로라면 20년 후에는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400개가 넘을 것이다. 이 중 많은 회사들이 크게 성장해서 앞으로 스트롱벤처스나 배기홍은 기억하지 못해도, “아, 그런 좋은 회사에 투자한 VC 구나” 정도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기억해 주면 완전 땡큐다.

Review를 통한 불공평 해소

얼마 전에 택시를 타고 강남에서 서울역까지 넘어갈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 좋지 않은 택시경험을 많이 했지만 이건 최악이었다. 좌석벨트 미착용은 이제 나한테는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 기사분은 운전 자체가 저질이었다. 초급가속, 초급정지, 멀미가 날 정도의 끼여들기는 정말 지옥같아서 한 마디 했지만 역시 돌아오는 건 침묵과 더 거친 보복성 운전이었다. 운전을 업으로 하는, 운전을 가장 잘 해야하는 택시 기사분의 수준미달 운전실력에 화가 났다. 도대체 이럴땐 어디에 하소연하고 아까운 내 돈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제대로 된 평가(=review)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나마 카카오택시는 별점이라도 줄 수 있지만, 이 또한 많이 부족하다. 별점 2개와 별점 3개의 차이는 상당히 애매하다. 만약에 승객들이 택시기사를 고를 수 있다면, 단순 별점을 가지고 좋은 기사인지 아닌지 판단하긴 힘들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으면, 돈을 낸 손님은 서비스에 대한 자세하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들은 이런 평가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일부 평가시스템들이 완벽하지는 않다. 영혼없는 – 주로 리워드를 노린 – 평가도 많고, 알바생들을 고용해서 평가를 왜곡시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내가 돈을 내고 택시를 타는 손님이라고 나만 택시기사를 평가하는 건 공평하지 못하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도 손님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손님이나 서비스 제공자나 서로에 대한 평가를 전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현실이 많은 옵션 중 특정 서비스를 선택하고 이에 대해서 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손님에게 더 불리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전에 투자한 홈케어 O2O 서비스 닥터하우스도 이와 비슷한 평가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다. 집수리는 택시보다 훨씬 더 비싸고 규모가 크다. 또한, 택시같이 한번 타고 끝나는게 아니라 이사가기 전까지는 수리한 집에서 온 가족이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삶의 질과도 직결된다(뭐, 택시승차는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왔다갔다 하긴한다). 그런데 막상 공사를 맡긴 업체나 기술자가 일을 엉망으로 해놓고 “원래 그 공사는 그렇게 하는거예요” 라면서 나 몰라라 하면 문제가 커진다. 이런 업체나 기술자는 다시는 이 바닥에서 일을 못 하게 해야하며,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바로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이다.

제대로 만든 평가 시스템은 바이어와 셀러에게 동등한 권리를 줄 수 있는 공평성을 시장에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좋은 시스템을 바이어와 셀러가 좋은 의도로 잘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