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소개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warm intro”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말 그대로 해석해보면 “따뜻한 소개” 인데, cold call 이라는 말과 비교해가면서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갈거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을 소개받아야 하는데, 그 사람을 잘 아는 사람이 소개해주는걸 warm intro 라고 한다. 창업 열기가 후끈하고, 너도 나도 스타트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점에 VC들을 만나고싶어하는 창업가들이 엄청 많아졌다. 돈이 필요한 창업가들은 가능한 많은 VC를 만나고싶어하고, 이들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모든 커넥션을 동원해서 소개를 받으려고 한다.

나도 매일 여러 개의 소개 이메일과 전화를 받는다. 한국과 미국에 있는 창업가들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을 직접 받거나, 아는 분들을 통해 소개를 받는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완전히 모르는 분들한테 오는 미팅 요청은 대부분 정중하게 거절하고, 소개를 통한 미팅요청도 내가 아주 잘 알거나 친한 분들이 소개해 준 사람들을 위주로 만난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물리적으로 몸이 하나라서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목적이 아닌 비즈니스 미팅이기 때문에 우리 사업에 도움이 되는 미팅만 선택하다 보니 여기서 절반 이상이 거절당한다. 다른 이유는 신뢰의 문제이다. 스타트업 하다 보면 불확실성과 모든 자원의 절대적인 ‘부족’ 과 매일 싸워야 한다. 투자자로서 이런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것도 힘든데 창업가의 신용도나 백그라운드 체크에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면 일을 하는 게 힘들다. Warm intro는 이 고민거리를 제거해 줄 수 있다. 내가 이미 잘 알고, 믿고, 어쩌면 과거에 공동투자를 해본 경험이 있는 친한 사람이 꼭 만나보라고 소개해주는 창업가면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만나본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르는 분들의 미팅요청을 거절한다는 게 이 분들이 나한테 보낸 이메일을 아예 읽지 않거나, 아니면 사업내용을 보지 않는 건 아니다. 모두 다 보긴 본다. 단지,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 특히, 신뢰 부분 – 깊게 몰입해서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은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얼마전에 내가 어떤 분한테 만날 필요가 없을 거 같다고 하니까, “30분만 시간을 할애해 달라고 하는 건데, 너무 한 거 아니냐. 만나보지도 않고 어떻게 나와 내 비즈니스를 판단할 수 있다는 거냐.” 라는 답변을 하셔서 약간은 미안한 마음에 그 이유에 대해 몇 마디 적어봤다. 이분한테 내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warm intro를 받던지, 아니면 조금 더 매력적인 비즈니스로 매력적인 소개 이메일을 쓰시라는 것이다.

텀블버그 Instant Transfer

우리 투자사 텀블버그에는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나도 ‘중학교 3학년 학생의 거대한 로켓‘ 을 시작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후원했는데 최근에는 ‘일러스트북 : <케찹 머스타드 와사비>‘ 와 ‘맥주 일러스트 북 <맥주도감>‘ 을 후원했다. 이 캠페인들은 솔직히 수십억원의 펀딩이 필요한 대형 규모의 프로젝트들은 아니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텀블버그가 이 분들의 작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에 텀블버그 개발팀이 굉장히 큰 성과를 이루었는데 바로 Instant Transfer 기능의 개발과 완성이다. 이를 통해서 이제는 펀딩 마감 즉시 진행자의 통장에 돈이 찍히는 경험을 구현할 수 있었는데, 현재 프로젝트 진행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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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프로젝트 마감 후 돈이 들어오기 까지는 3주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 기간을 하루로 단축하면서 결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했다고 보면 된다.

실은 텀블버그 외에도 다른 많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존재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떤 업체들은 영업력을 강조하고, 다른 업체들은 크라우드펀딩은 마케팅의 싸움이라고 한다. 하지만, 텀블버그는 그동안 꾸준히 기술력을 강조했었고, 이러한 회사의 철학과 비전이 Instant Transfer와 같이 겉으로 봤을때 화려하거나 요란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좋은 기능으로 구현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문제가 많고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온라인 결제 부분에서 큰 성과를 거둔 텀블버그 팀이 자랑스럽다.

스케일이 항상 이기는건 아니다

iguana-clip-art-RTdBe6bT9이 전 포스팅에서 트래픽과 스케일에 대해서 좀 적어봤는데 많은 분들이 다양하고 좋은 피드백을 주셨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정도의 트래픽 확보가 가능하다면 일단 스케일에 집중을 하고 그 이후에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도 괜찮다는 의견, 어정쩡하게 트래픽을 키우면 비용만 많이 발생한다는 의견, 그리고 트래픽의 크기를 떠나서 궁극적으로는 그 ‘quality’ 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질 좋은 진성 트래픽을 어느 정도의 스케일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면 아주 이상적인 비즈니스가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둘 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Scalability’ 라는 말을 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실리콘밸리나 한국이나 스타트업을 하시는 분들은 너도나도 빨리 스케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실은 스케일이 항상 좋은건 아니지만, 투자자로서 나도 항상 강조하기 때문에 이걸 뭐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사용자 베이스가 없고 확장/성장이 느리다고 해서 그 비즈니스가 투자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이구아나를 키우는 사람들을 위한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에 이구아나를 키우는 인구가 어느정도 규모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수백만명 – 수천만명은 아닐것이다. 스케일이 힘들다고 무조건 나쁜 비즈니스라고 판단하기 전에 이 사용자 베이스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면 좋을것이다. 회원들의 수는 적지만 이들이 정말로 이구아나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 플랫폼에서 하루에 1시간 이상 체류하면서 정보도 확인하고, 다른 회원들과 교류하고, 또 이구아나 관련 사료나 제품들을 구매한다면, 매일 수백만명의 회원들이 사이트를 방문해서 1분도 체류하지 않고 나가는, 단순히 광고로 돈을 버는 포탈사이트 보다는 훨씬 더 안정된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 아니, 안정적일뿐만이 아니라 존재의 가치가 있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물론, 스케일에서는 완전히 밀린다. 아무리 성장을 해도 우리나라 인구 모두가 다 이구아나를 키우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은 사용자 베이스를 위한 제품이라도 각 사용자가 많은 시간과 돈을 고정적으로 지불할 의향이 있는 하드코어 서비스라면 나는 베팅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서비스는 특정 버티컬의 플랫폼으로 진화할수 있고, 탄탄한 플랫폼으로 성장한다면 이구아나 시장과 같이 작지만 충성도가 높은 사용자들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재활용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히 존재한다.

비즈니스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면, 시장과 스케일에 대해서도 한 번 정도 고민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타겟 시장이 엄청나게 크다면, 서비스 단가를 아주 저렴하게 책정하거나 아예 무료로 제공하는것도 방법이다. 낮은 ARPU(=Average Revenue Per User)를 큰 스케일이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타겟 시장이 작다면 아주 충성도가 높고 질이 좋은 사용자들이 존재하는 시장이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아주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100% 다 장악해도 스케일이 나오지 않는 시장을 대상으로 무료 또는 단가가 너무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정도의 스케일이면 적당할지는 각자가 계산해서 판단해야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clipartpanda.com/clipart_images/iguana-clipart-3374042>

사용자만 많으면 돈을 벌 수 있을까?

Photo Aug 09, 8 27 27 AM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지만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스타벅스가 얼마전부터 무선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Powermat 이라는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건데 나도 스타벅스에 조금 오래 있으면 항상 사용한다. 근데 커피가게에서 굳이 무선 충전까지 제공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유선 충전할 수 있는 전기 콘센트도 있는데 말이다.

업계 분에게 물어보니 스타벅스에서 커피만 사서 가지말고 매장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고, 최대한 편하게 그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한다. 그동안 스타벅스에서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했겠지만, 결론은 일단 스타벅스 매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커피를 비롯한 더욱 더 많은 음료수와 음식을 구매하기 때문에 고객들의 매장 방문 횟수 뿐만 아니라 체류시간을 늘리는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커피가 당장 필요하지 않고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스타벅스 매장에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거리를 제공하면 일단은 매장으로 들어와서 시간을 보낼 것이며, 시간을 보내면 자연스럽게 구매율이 증가할거라는 이론 때문이다. 편리한 무료 무선 충전도 이러한 견인 역할을 할 수 있을거 같다.

내가 아는 많은 회사들이 이와 비슷한 전략을 갖고 있다. 정확한 비즈니스모델은 아직 없지만 일단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서 사용자 수를 늘리고, 이들을 서비스에 계속 lock 시키고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언젠가는 이 많은 사용자들에게 뭔가를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가장 쉽게 팔 수 있는건 광고일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모델을 별로 안 좋아한다. 창업 첫날부터 회사가 돈을 벌 수는 없지만 투자자 돈 까먹으면서 몸집만 불리고 너무 오랫동안 돈을 벌 생각이 없는 비즈니스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거와 돈을 많이 못 버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거랑은 다르다. 나는 개인적으로 1억 명의 유저가 있는 무료 서비스보다는 100명의 유저가 있는 유료 서비스를 선호한다.

그런데 스타벅스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일단은 사용자들을 엄청 끌어모으고 그 다음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라고 하는 창업가들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살짝 했다. 다른 분들은 이런 류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당신의 스타트업이 바로 lean 스타트업이다

이 분야에서 일하면 ‘lean 스타트업’ 이나 ‘lean 방식’ 이란 말을 굉장히 자주 듣는다. 솔직히 나도 좋아하는 말이고 Eric Ries의 책 The Lean Startup을 처음 읽었을때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출간된지 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린 방식’에 대해서 강연하고 컨설팅하면서 먹고 사는 분들이 있으니 정말 대단한 방법론이다.

나는 아직도 모든 스타트업들한테 무조건 ‘lean’ 하게 회사를 운영하라고 하지만 이들한테 듣기 싫은건, “린 스타트업 방식에 위배됩니다.” 라는 말이다. 오랜 고민 후 뭔가 하려고 했는데, 책 또는 관련된 기사나 논문을 읽어보니 본인들이 생각하는 바가 린 스타트업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고 계속 남들이 린 방식에 대해서 정의해 놓은 틀에 본인의 사고와 방법을 끼워맞추려는 창업가들을 가끔씩 본다.

이들한테 나는 항상 역으로 “도대체 당신이 생각하는 린 스타트업이 뭔데?” 라고 묻는다. 린 스타트업 공식이란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대부분 이론과 내용이 그렇듯이 에릭 리스가 ‘린 방식’을 발명한건 아니다. 이미 수 십년 동안 창업가들이 실행하는 걸 잘 관찰한 결과를 구체적, 논리적, 분석적으로 설명한거다. 내가 생각하는 린 방식은 별거 없다. 비용을 최대한 아끼고, 내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십분 활용하면서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하고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는거다. 더 간단히 말하면 그냥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하기’ 다. 이는 대부분의 벤처인들이 이미 매일 고민하고 몸소 실행하는 방법이자,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굳이 내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이 린 한지, 린 하지 않은지 고민하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정답이 없는 스타트업 세계에서 나를 굳이 린 방식이라는 틀에 맞출 필요는 없다. 돈 아끼고, 열심히 일하고, 조금씩 발전한다면 당신이 운영하는 스타트업이 바로 린 스타트업이고, 그게 바로 린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