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f 인생

얼마전에 나보다 나이가 꽤 많으신 분들과 같이 저녁 먹는 자리에 참석했다. 선배님들도 있었고, 그 분들의 친구분들도 있었다. 이 중 절반은 그날 처음 보는 분들이었다. 나만 빼고는 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 일했고, 나이가 대부분 50대 초,중반인만큼 회사에서는 이제 모두 꽤 높은 위치에 계시는 분들이었다. 술이 어느정도 들어가자 그 중 한분이, “내가 30대 초반에 친구가 뭘 같이 해보자고 했는데 그땐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서 못했는데, 그 놈이 이젠 갑부가 됐어. 그때 그걸 했어야 하는데…” 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 분이, “야, 나도 옛날에 인도네이사에서 원목을 수입해볼까 생각했었는데 와이프가 말려서 못했지. 그거 했었으면 지금쯤 강남에 빌딩 몇 개 샀을거야” 라고 바로 맞받아쳤고 이 후 한시간 동안 각자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그때 그렇게 하지 않은거에 대한 후회를 했다.

가기 싫은 2차에 갔는데 술이 더 많이 들어갈수록 이런 what-if 인생 이야기는 더 심해졌다. 과거에 다른 결정을 했다면 지금쯤 다르게 살고 있었을 인생에 대한 동경 이야기들, 솔직히 별로 듣기 싫었다. 그런 이야기를 한들 바뀌는건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내가 열심히 살아야할 현재의 삶에 대한 집중도만 떨어질 뿐이다.

물론 나도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으면 지금은 다른 삶을 살고있었을텐데….그런데 이제는 그만 해야겠다. 그리고 현재 무엇인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하고, 하지 않았으면 이에 대해서는 입 다물어야겠다. 이 분들같이 나는 15년 후에 what if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만 가르치고 행동하기

갈수록 내 주변에는 본인이 직접 뭔가를 이룩한 사람들보다는 그런 사람들을 알고 있는, 그리고 그런 사실 자체를 너무나 자랑스럽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돈 많은 사람, 유명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랑 친하거나 잘 알고 지내는게 이런 사람들과 전혀 친분이 없는거 보다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조금은 생각이 다르다. 돈 많은 사람을 아는거 보다는 본인이 돈이 많은게 좋고, 유명한 사람을 아는거 보다는 스스로가 유명해 지는게 좋다. 성공한 사람 100명 아는거보다 나 스스로가 성공한 사람이 되는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내가 누군지 알아? 내 초등학교 친구가 그 사람이야” 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거 같다. 얼마전에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랑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런 투자업무를 하고 있다고 하니까 자기가 아는 이 분야의 유명한 이름들을 줄줄이 읊으면서 그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고, 저 사람은 와이프 사촌이고, 다른 사람은 예전에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느니 등, 한 20분 동안 다른 사람 이야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정작 본인에 대해서 할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친하다는 그 사람들이랑 정말로 알기는 아는지, 실제로 친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주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행동은 못 하고 항상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거 같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창업은 커녕 벤처기업에서 일도 안 해 보고, 심지어는 스스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제품 홍보 포스팅 한 번 안해본 사람들이 마케팅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 소셜은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려고 하는걸 보면 우습다 못해 재미있다.

행동. 참 쉬운 단어이지만, 하기는 어렵다. 세상 사람들이 좀 덜 가르치고, 더 많이 행동하면 좋겠다.

정부과제로 먹고 사는 회사들

대한민국같이 나라가 앞장서서 스타트업들을 도와주고 생태계를 만드는데 이렇게 노력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괄목할만한 발전을 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면 나도 가끔 놀란다. 이 발전에 정부가 직, 간접적으로 많은 공헌을 한 걸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캠페인들이 모두 잘 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잘 안된 것들이 더 많고 그중 일부는 스타트업들을 오히려 죽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중 대표적인 건 수도 없이 많이 생기는 정부과제 및 프로젝트들이다. 내 주위에 있는 스타트업 중 정부과제를 한두 개 하지 않은 업체가 별로 없을 정도로 많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정부과제들이 안타깝게도 많은 스타트업들한테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가 된 거 같아서 좀 아쉽다. 일단 대부분 과제를 자세히 보면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나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유행을 따라가는 내용이 더 많다. 예를 들면, 핀테크나 IoT가 요새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정부도 이 분야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에 – 그리고 분명히 대통령이나 장관급 레벨에서 “요새 핀테크가 대세인 거 같은데 우리도 뭐 좀 합시다”와 비슷한 말을 회의에서 했을 거다 – 굉장히 모호한 주제의 과제들을 발표한다. 주제도 모호하지만, 담당자들도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러므로 외부심사위원단을 만드는데, 주로 교수님이나 연구원들을 위주로 구성한다. 안타깝게도 이들도 시장에서 이런 기술들이 어떻게 구현되어 서민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지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과제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포지셔닝 된다. 물론, 거창한 보고서를 작성하기에는 매우 좋다. 주제가 모호할수록 보고서는 거창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과제이기 때문에 솔직히 목에 걸면 목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들이면 웬만하면 과제에 회사를 끼워 맞춰서 지원이 가능할 거 같다. 과제선정을 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특정 과제와 상관없는 스타트업들이 선정되는 걸 자주 봤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타트업들한테 웬만하면 정부과제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한다 – 회사가 정말로 돈이 없는데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면, 그리고 정부과제 외에는 정말로 대책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과제가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절대로 아니다. 일단 그 기간 동안 개발하는 제품이 회사의 비즈니스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걸 개발했기 때문에 과제 기간 동안의 경험이나 지식을 자산화하는 게 쉽지 않다. 더욱더 중요한 건 그만큼 본업에 충실해야 할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된다. 정부과제를 하면서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들도 상당히 많다(간혹 이런 게 없는 운 좋은 과제들도 있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본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노가다를 할 바에야 그냥 다른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여러모로 봤을 때 좋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게 그런데 참 마약같다…..일단 자체 제품이 정상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정부과제 하나만 하겠다고 시작한 게, 해보니까 법인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게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도 좋으니 하나만 더 하고, 두 개가 세 개가 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정부과제로만 먹고 사는 회사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간혹 본다. 그리고 본업과는 상관없는 정부과제 수행 전용인력을 채용하고, 여러 개를 하다 보니 정부과제 관련 문서 작업만 따로 하는 인력을 채용하고 – 주로 hwp 문서작업에 능숙한 – 식구가 늘다 보니 부담감이 늘어서 계속 사업을 유지하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과제를 계속하게 된다.

솔직히 나는 정부과제를 별로 해보지 않았고 – 2000년도 초반에 한국의 B2B 벤처기업 자이오넥스에서 조금 해 봤다 – 최근에는 전혀 안 해서 정확한 건 잘 모른다. 위에서 말한 시나리오는 그냥 지금까지 만났던 정부과제로 먹고사는 회사들과 이야기한 내용을 기반으로 그려본 거다. 그리고 분명히 본업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정부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스타트업들도 있고, 충분히 자산화가 가능한 과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이야기하기 싫고, 만나기 싫은 회사들이 있다. “뭐, 정부과제 몇 개 더 하면서 버텨보죠.”라고 하는 스타트업들이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오늘은 내 41번째 생일이다. 이제 나는 본격적으로 40대를 시작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보면 건방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아무튼 나도 많이도 살았다. 어제 샤워하고 거울을 보면서 이제 20대의 몸매와 근육을 유지하려면 거의 3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걸 느꼈다. 20대에는 이틀에 한번 1시간만 운동해도 근육이 잘 붙었는데 이젠 매일 2시간씩 해도 근육의 질이 그때랑은 좀 다르다는걸 몸소 체험하고 있다.

어쩔때는 내 나이 절반의 젊은 창업가들과 일을 해야하고, 나보다 더 똑똑하고 젊은 VC 들과 이제 경쟁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나한테 체력과 정신력은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이게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일을 함에 있어서 체력적으로 밀리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아쉬운건 세월을 돌리기 전에는 내가 이에 대해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냥 시간은 흐르고, 나는 늙어가고, 몸은 예전같지 않아진다.

그런데 나는 이 게임을 계속 하고 싶다. 그리고 그냥 하기 위해서 하는게 아니라 젊은 친구들과 제대로 경쟁하고, 항상 이길 수는 없겠지만 치열하게 해보고는 싶다. 나는 그냥 무조건 열심히, 그리고 오래 일하는거 보다는 영리하고 잘 해야한다는걸 강조한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저하되고 있는 내 체력과 더 빨리 죽어가는 뇌세포를 생각해보면 남들보다, 특히 젊고 똑똑한 친구들보다, 기본적으로는 더 오래, 그리고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게 내 결론이다. 그리고 더 오래, 열심히 일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멘탈 자체도 변해야하고 리셋되어야 한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내 삶의 모든 부분을 전반적으로 한 단계 UP 해보기로 했다.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물리적으로 일 하는 시간을 늘려보기로 했다. 담배는 원래 안 했고, 일 한다는 핑계로 가끔 먹던 술도 이제는 완전히 끊어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아직 이건 실천은 못 했다). 과거에는 하루에 한 시간만 운동하면 체력이 유지되었다면 이제는 하루에 3시간이라도 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다. 그리고 절대적인 근무량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일하는 양을 늘려야겠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어차피 YOLO 다(=You Only Live Once). 죽으면 평생 쉬고 잘 수 있다.

피드백 물어보기, 피드백 주기

얼마전에 아는 동생을 만났다. 취준생인데 명문대학을 졸업한것도 아니고, 딱히 내세울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서 취업하는데 상당히 고생을 하고 있다. 얼마전에 면접을 본 회사로부터 불합력 통보를 받았는데 내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떨어졌는데 이유가 중요한가요” 라고 했다. 면접한 회사에서 불합격 이유를 알려줬는지 물어보니 “그런게 어디있어요. 불합격 통보라도 왔으니 다행이죠. 작은 회사들은 아예 연락도 안와요.” 라면서 너무나 당연한듯이 말을 했다.

우리나라의 현실인거 같다. 그 누구도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누구도 피드백을 달라고 묻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불신과 오해만 생기고, 발전이 없거나 더디다. 위의 동생은 똑똑하고 일도 잘 할거 같지만, 면접만 하면 미끄러진다. 몇 번 대화를 하다보면 떨어지는 이유가 대략 짐작은 간다. 면접관이라면 누구나 다 파악할 수 있는 점이고, 쉽게 고칠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이 사람한테 자세한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물론, 본인도 안 물어봤다. 나도 이런 경험을 한국에서 여러번 했다. 개인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나 뭔가를 거절당하면, 왜 거절했는지 그 이유를 나한테 정확히 설명을 해주는게 그동안 내가 투입했던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이번에는 안 되겠습니다.” 또는 “안타깝네요. 다음번을 기약하시죠.” 라는 답변을 제공한다. 일언반구의 피드백도 없다. 이번에는 왜 안 되었고, 다음에 잘 되려면 뭘 고치고 보완해야하는지에 대한 말이 없다. 그런데 나는 항상 물어본다. “뭐가 부족했는지 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겠습니까?” , “피드백을 좀 받아볼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본인들이 결정을 했으면서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내가 피드백을 달라고 하는게 마치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나는 악착같이 물어본다.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혹시 내가 뭘 잘 못 했는지, 그리고 잘 못 했다면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배우기 위해서.

그나마 VC는 피드백에 익숙한 직업이다. 그렇지 않은 투자자들도 수두룩 하지만, 내 주위의 제대로 된 투자자들은 투자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면 창업가들한테 왜 그런지에 대한 자세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어떤 경우는 창업가들이 수긍을 하고, 어떤 경우는 수긍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투자자 나름대로의 생각과 피드백을 제공하는 건 목숨을 걸고 투자 한번 받아보겠다고 열심히 사는 그 창업자에 대해 우리가 표시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피드백이 아주 길 필요는 없다. 우리가 투자하지 않는 분야라서, 또는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산업이라서 투자를 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짧지만 말이 되는 피드백이다. 창업자들도 거절을 당하면 항상 피드백을 달라고 부탁하라고 나는 권장한다. VC들이 항상 맞지는 않지만 – 실은 대부분 틀린다 – 그래도 투자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니 투자 성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어떤 부분에 더 신경을 쓰고, 고칠게 있다면 어떤걸 고쳐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피드백을 주고, 받고, 물어보는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지면 그만큼 모두가 다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