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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와 투기

나는 워런 버핏의 팬이다. 버핏의 가치투자에 대해서 여러 번 을 썼고, 실은 벤처투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은근히 비슷한 부분도 상당히 많다는 걸 항상 느끼고 있다. 어쩌면, 버핏의 투자철학과 내 개인적인 철학에 공통점이 많을 수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버핏이 좋아서 이 분의 투자철학을 내 일과 인생에 적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잘 아는 분야에 투자하는데 많은 시간을 집중했다. 나는 실은 내가 잘 못 하는 분야를 개선하는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기보단, 내가 잘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투자하는 방식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거 같다. 그래서 아무리 시장이 크고, 좋아 보이는 비즈니스라도,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별로 도움이나 가치를 더해줄 수 없으면, 과감하게 패스를 했다. 실은 이런 투자 방식이 맞냐 틀리냐에 대해서는 항상 찬반의 논쟁이 있지만, 어쨌든 이건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 투기는 귀로 하고, 투자는 눈으로 하는 거라고 하는데, 어쨌든 나는 투기가 아니라 투자를 하는 사람이다.

블록체인과 크립토가 이제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보이면서, 나의 이런 철학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백서를 읽고, 다양한 ICO들의 기반 기술과 비즈니스에 대한 나름의 연구, 조사와 공부를 해봤지만, 도저히 내가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기와 사기가 아닌 크립토 비즈니스와 ICO를 구분하는 건 이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기가 아닌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비즈니스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까진 오지 못했다. 아직 내 지식이 얕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이해하지 못하면 투자하지 말자는 원칙에 충실하게, 잘 이해하지 못하는 ICO나 크립토 비즈니스는 거의 패스하긴 했다. 남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고, 유명한 투자자들이 줄을 서도, 투기하긴 싫었다.

그런데 조금만 다른 시각에서 생각을 해보면, 실은 크립토 분야를 정말 잘 이해하는 사람은 아직 없는 거 같다. 너무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고, 크립토의 특성상 글로벌 단위에서 이런 엄청난 변화들이 잠도 안 자고 24시간 내내 일어나고 있다. 법도 없기 때문에 계속 규제가 생겨나고 있고, 규제의 변화에 맞춰 또 다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시장과 기술의 특성상, 100% 이해하긴 힘들고, 또 그렇게 100% 이해한 후에 투자하면 이미 늦을 것이다. 적절한 비유일진 모르겠지만, 90년도 후반에 아마존과 구글에 투자한 사람들이 과연 이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고 투자했을까? 아닐 것이다. 창업팀이 좋고, 비전 자체는 공감했기 때문에 투자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는 어쩌면 이건 투자라기보단, 눈과 귀로 투자와 투기를 동시에 한 게 더 맞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치투자는 확실히 아녔다.

크립토와 ICO도 이런 접근을 해야 하지 않으냐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고 있다. 일단 확실한 건, 생각만큼 커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반짝하다가 없어질 유행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정말로 세상이 탈중앙화되고, 전 세계가 토큰화된다면, 이건 엄청난 game changer가 될 것이고, 이 분야에 투자하지 않은 VC는 도태될 것이라는 건 너무나 명확하다. 잘 모르지만, 그래도 계속 예의주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너무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블록체인과 크립토 분야에 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뭐, 그게 이 분야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고,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지만, 내가 최근에 만난 좋은 개발인력의 절반은 블록체인, 크립토, ICO를 하고 있고,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투자자들도 이 분야에 베팅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똑똑한 인력이 새로운 분야에 올인 하는건, 분명히 뭔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나 기술에 대해서는, 투기와 투자가 섞인 형태의 투자전략이 필요할 거 같다. 시간이 지나면 판명될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잘 되면 이건 투자고, 잘 안 되면 투기다.

State of Tokens

Fred Wilson의 블로그에 소개된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William Mougayar의 ‘State of Tokens‘라는 자료를 봤다. 36장짜리 슬라이드로 길진 않아서 20분 만에 봤지만, 이후 한 시간 정도 생각을 했다. 요새 너무 혼란스러운 크립토, 블록체인, 토큰 분야에 몇 안 되는 본질주의자라고 항상 생각했는데, 이 슬라이드에는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내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안 읽어 보신 분들한테는 추천한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21장이다. 토큰이 정말로 유용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개의 질문을 해보라고 한다:
1/ 이 토큰이 없으면 비즈니스가 어떻게 될까?(=토큰이 없어도 상관없는 비즈니스가 아닌가?)
2/ 블록체인이 왜 필요한가?
3/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게, 블록체인이 어떻게 가능케 하는가?

안타깝지만, 내가 아는 ICO와 토큰 중 이 3가지 질문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게 하나도 없다. 2가지 질문을 통과하는 토큰은 한 5% 정도 되는 거 같다.

홈런왕들

유명한 펀드 앤드리슨호로위츠의 파트너 Chris Dixon은 ‘베이브루스 효과’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1920년대의 전설적인 타자 베이브루스를 모르는 분은 없을 텐데, 이 선수의 특징은 삼진아웃도 많이 됐지만, 일단 배트에 공이 맞으면 엄청난 장타를 쳤다. 실은 전설적인 VC들과 전설적인 타자 베이브루스는 공통점이 많다. VC들도 많은 투자를 하는데, 대부분 망하지만, 소수의 회사가 대박 나서 전체 펀드를 만회해주고, 상당한 수익도 챙길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유명한 VC들의 역사를 보면, 삼진 아웃도 많이 되지만, 만루홈런을 치는 경우를 많이 본다.

CB Insights에서 역사상 가장 큰 홈런 28개를 분석해봤는데, 꽤 길지만 재미있다. 시간 되면 모두 읽어보길 권장한다. 이 중 내 눈길을 끌었던 홈런 2개가 있는데, WhatsApp과 한국의 넥슨이다.

WhatsApp은 2014년 Facebook이 약 25조 원에 인수했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큰 비상장 회사의 exit이다. 총 650억 원 정도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놀랍게도 Sequoia Capital한테만 투자를 받았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주로 여러 명의 VC로부터 투자 받는 게 더 흔하지만, 왓츠앱의 경우, Sequoia로부터 시리즈 A 85억 원, 시리즈 B 565억 원을 모두 받았다. 그만큼 세쿼이아는 왓츠앱을 믿었고, 왓츠앱도 세쿼이아를 믿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홈런 딜인 트위터도 같이 총 650억 원의 투자를 받았지만, 15명 이상의 VC로부터 이 돈을 모았다. 결국,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인수했을 때 세쿼이아는 투자금액의 50배인 3조 원 이상을 회수했다.

넥슨의 이야기도 참으로 흥미롭다. 2011년도 일본에서 약 8조 원의, 당시로써는 가장 성공적인 게임회사 IPO를 했다. 넥슨의 알려진 투자사는 소프트뱅크코리아와 Insight Venture Partners밖에 없고, 투자 금액은 아직도 공개된 건 없지만 그렇게 크진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은 넥슨이 상장했던 시점에 IPO를 한 또 다른 게임업체가 있었는데, 넥슨의 라이벌이라고 간주하였던 Zynga도 나스닥에 약 8조 원에 상장했다. 징가가 미국 회사이고, 당시 예상 시가총액이 더 높았기 때문에, 세계적인 관심은 넥슨보다는 징가의 IPO에 주목되었는데, IPO 이후에는 그 관심이 뒤바뀌었다. 상장 이후 넥슨의 주가는 230% 이상 올랐지만, 징가는 60% 정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넥슨이 훨씬 더 적게 투자를 받았지만, 투자자들의 수익률은 징가보다 훨씬 더 높은 홈런 딜 이였다.

이런 홈런을 VC들은 ‘fund maker’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회사 하나가 전체 펀드를 만회해준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우리 첫 번째 펀드의 fund maker이자 홈런은 코빗이었는데, 앞으로 스트롱도 이런 만루홈런을 계속 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하나의 만루홈런을 치기 전에는 엄청나게 많은 삼진아웃을 당할 각오는 항상 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아니라 비즈니스다

블록체인과 크립토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도,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한국에 없을 정도로 요새 이 분야가 뜨고 있다. 나도 비트코인, 암호화폐, 블록체인, 그리고 ICO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관련 분들과 자주 이야기를 한다. 이런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듯, 이번에 프라이머 13기에 지원한 많은 회사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90년도 후반 인터넷이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퍼지고 있을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회사 이름 앞에 ‘e’만 붙이고 뒤에 닷컴만 붙이면 눈먼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실제로 이렇게 해서 투자를 받고 망한 회사가 엄청나게 많았고, 이후 닷컴 버블이 무너지면서 1차 인터넷 붐이 꺼졌다. 물론, 인터넷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혁신과 성장을 반복하면서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인프라가 되었다. 요새 블록체인을 보면 비슷한 상황이 보인다. 너도나도 “블록체인 기반의 xxx”를 외치면서 투자자들에게 피칭을 하고 있다. 이게 참 재미있는 게, 정말 재미없어 보이는 스타트업이고, 하나도 섹시하지 않은 비즈니스모델인데도, 이걸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겠다고 하면 갑자기 흥미로워지는 걸 보면, 나도 눈먼 투자자는 아닌지 의심이 간다. 그냥 데이터베이스 위에서 만들면 재미없고,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하면 재미있어 지는 게, 참 재미있다.

어쨌든, 나는 블록체인은 많은 걸 변화할 거라고 생각하고, 정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블랙스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게 자연스럽게 블록체인 위에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비즈니스를 설명할 때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라고 꼭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런데 요새는 당연히 모든 비즈니스가 인터넷 기반이기 때문에, 굳이 “우리 비즈니스는 인터넷 기반으로 돌아갑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하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 일 거 같다. 한 5년~10년 후에는 모든 비즈니스가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블록체인 기반의 비즈니스”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직 decentralization보다는 centralization이 더 쉽지만, 미래에는 decentralization이 제대로 구현되어 모든 비즈니스는 분산 인프라 기반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 모든 게 자연스럽게 블록체인 위에 올라간다면, 도대체 어떤 비즈니스가 정말로 이길 수 있을까? 우리 같은 투자자는 블록체인이 아니라 뭘 봐야 할까? 아마도 다시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결국엔 좋은 팀, 좋은 제품, 좋은 시장이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요새 “블록체인 기반의 비즈니스”를 볼 때 아예 ‘블록체인’ 자체를 제외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도 좋은 비즈니스 같다면, 이런 비즈니스에 투자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실수하지 않는 삶

얼마 전에 뉴욕의 큰 헤지펀드 회사에서 근무하는 친구랑 잠깐 통화 하다가 암호화 화폐 이야기로 대화가 흘렀다. 아직 큰 기관들은 비트코인이나 다른 코인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하지 않고 있지만, 모두 다 이 분야를 예의주시하고 있고, 규제와 법이 조금 제도화되고, 정부의 정책이 구체화되면 꽤 큰 기관들의 돈이 암호화 화폐 시장에 투자될 거라는 이야기를 이 친구가 해줬다. 그래서 나는 이 친구한테 그러면 남들이 다 기다리고 있을 때 너희 회사에서 먼저 대량 투자하면 남들보다 훨씬 더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지 않냐고 물어봤다.

이 친구는 그렇게도 할 수 있고, 잘 되면 좋지만, 잘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본인이 그런 리스크를 질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큰 조직에서 잘 살아남고, 승진하기 위해서는 홈런을 치기보다는 그냥 삼진 아웃만 안 되면 된다고 하면서, 본인의 생존 전략은 잘 하는 거 보다는 실수만 안 하는 거라고 했다. 어차피 자기 회사도 아니고, 월급 받는데, 잘 하면 회사 오너가 부자 되는 거고, 못 하면 본인이 욕먹거나 짤리니까, 그냥 튀는 행동 하지 않고, 적당히 눈치 보면서, 실수만 안 하면서 회사 생활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다른 회사로 더 높은 연봉 받고 이직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다.

뭐, 남의 회사 생활과 생각에 대해서 내가 왈가왈부할 수도 없고, 하기도 싫다. 그리고 나도 월급쟁이 생활을 하면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지만, 이런 태도를 갖고 일하진 않았다. 마치 내 회사라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실수하지 않으면서 살기보다는, 가능하면 홈런을 칠 방법을 찾으면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실은 위에서 말한 내 친구의 생각과 태도에서 나는 왜 오너와 월급쟁이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공무원들이 모두 이런 태도로 일하니까, 제대로 진행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도 해봤다.

VC에도 이런 게 적용될까? 어떤 VC는 투자금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투자를 하고, 어떤 VC는 손실은 당연히 발생하니, 모든 손실을 커버할 수 있는 홈런의 확률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투자를 한다. 맞고 틀린 건 없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실수하지 않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은 VC 투자랑 잘 맞지 않는 거 같다. 오히려 PE나 전통적인 주식 투자에 맞는 전략이 아닐까 싶다. 이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성공한 VC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성공한 투자사보다는 실패한 투자사가 수적으로 훨씬 많다. 하지만, 잘 된 회사들의 성공 배수가 어마무시하기 때문에 다수의 실패한 투자사의 손실은 재무제표에서는 소수점으로 보인다.

인생에도 이런 원칙이 적용되는 거 같다. 그냥 실수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대부분 뭔가 새로운 걸 잘 시도하지 않지만,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는 사람들은 많이 실수한다. 하지만, 운이 따르면 엄청나게 성공하는 것도 이런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