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기준점

요새 내가 읽고 있는 건, TBWA의 광고인 박웅현 씨의 “여덟 단어”라는 책이다. 쉽게 읽히는 책인데, 그 내용은 상당히 맘에 든다.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박웅현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덟 단어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여덟 단어는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다. 책을 요약하자면, 어차피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내가 내 인생을 잘 사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인생의 기준점을 밖에 찍고 그걸 따라가지 말고, 기준점을 내 안에 찍고 나만의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다.

이 여덟 단어 중 첫 번째 단어인 ‘자존’이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요새 와서 자존감이라는 말이 꽤 중요해진 거 같다. 과거에는 이 말 자체가 별로 사용되지 않았는데, 요샌 미디어나 여러 강연이나 일상생활에서 자존감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걸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닌 거 같다. 그만큼 현대인들이 자존감 없이 살고 있다는 의미인 거 같고, 현대인 대부분 스스로 자존감을 찾거나 회복할 수 없으니, 또 여기서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면서, 다양한 책, 강연, 자존감 학습 도구 등이 시장에 출시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자존감이 부족한 채로 세상을 살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같이 일하는 창업가는 모두 하나같이 자존감이 넘쳐흐르는 분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사업이 잘될 때 보단 안 될 때가 더 많고, 이에 따라서 자존감 또한 요동치긴 하지만, 남들이 다 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밖에 있는 기준점을 따라가지도 않고,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내 기준점에 따라 삶을 사는 이분들을 보면, 자존감 없인 정말 힘든 일인 거 같다.

이 책에서 박웅현 씨가 미국 유학 갔을 때 교수님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한국 교수는 학생들한테 지식을 주입하면서 “네 안에 무엇을 넣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면, 미국 교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강조하면서 사람 안에 있는 고유의 무엇을 끌어내는 교육을 한다고 했는데, 나도 한국과 미국에서 받은 교육 경험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맞는 거 같다.

남들이 찍어 놓은 바깥의 기준점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내가 가진 나만의 기준점에 세상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창업가들 모두 화이팅이다.

고객이 항상 옳을까?

창업가나 투자자한테 사업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어보면, 다양한 의견과 답변이 오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건 ‘고객’일 것이다. 비즈니스를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경험 있는 사업가들도 아마도 수십 년 동안 사업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고객의 목소리를 무조건 잘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나도 100% 동의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 좋은 제품, 좋은 서비스라도 시장에서 고객이 사용하지 않으면, 그건 좋은 기술도 아니고, 좋은 제품도 아니고, 좋은 서비스도 아니다. 그냥 시간 낭비, 돈 낭비 한 거다. 스타트업바이블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책에서도 나는 “좋은 제품”의 정의는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라고 했고, 그만큼 고객의 목소리와 고객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스티브잡스와 같은 창업가는 반대 의견을 항상 강조하긴 했다. 잡스는 항상 고객은 본인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고객은 멍청하기 때문에, 고객의 의견을 물어보거나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면, 절대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강조하기로 유명했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고객을 가장 철저하게 무시했던 사업가는 스티브 잡스였던 거 같다. 실은 포드 자동차의 헨리 포드도 그 옛날에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포드가 한 말 중 이런 그의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게 바로 이 말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에게 원하는 게 뭔지를 물어봤다면, 더 빠른 말을 원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고객이 항상 옳을까? 고객의 목소리가 정말 중요할까? 나는 아직도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면, 절대로 사업이 망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잡스와 포드의 입장에서는 왜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이해는 간다. 만들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이걸 조금 더 싸고, 빠르고, 좋게 만드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고객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지만, 이걸 더 싸고, 빠르고, 좋게 만들려면, 점진적인 발전과 수정이 필요한데, 이런 변화는 주로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창업한 많은 스타트업이 설문조사나 고객 인터뷰를 통해서 데이터를 수집한 후, 개발을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는 잡스나 포드와 같이 고객의 목소리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고객의 목소리에 너무 집중하면, 세상을 바꿀만한 new new thing은 만들 수 없을 거 같다. 왜냐하면, 포드가 말했듯이,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기 때문에 고객한테 물어보면, 그들은 본인들이 아는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물리적인 키보드를 없애고, 터치스크린으로 작동되는 아이폰을 만든다고 선언하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앞으로는 사람들이 폰으로 전화보다 이메일, 게임, 그리고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더 많이 할 거라고 했을 때, 노키아나 모토로라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비웃었다. 왜냐하면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외부 컨설팅 업체를 통해서 광범위한 글로벌 고객 인터뷰를 했는데, 이 고객 중 그 누구도 터치스크린 폰이나 애플리케이션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언급하는 블랙스완의 성격을 지닌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면, 오히려 고객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진 일반 대중(=고객)에게서는 절대로 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실은 이런 현실은 창업가들을 상당히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인가, 아닌가? 완전히 무시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까지 참고해야 하는가? 우리 투자사들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하는데, 최근에 이 두 가지를 어느 정도 적당히 잘 혼합하는 대표와 이야기하다가 재미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 회사는 1년 365일 고객의 목소리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받고 있는데, 가장 많은 요청을 받는 기능은 그다음 업데이트에 가장 먼저 적용한다고 한다. 많은 고객이 원하는 기능이기 때문에, 점진적인 제품 개선을 위해 서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요청이 적은 내용에 대해서도 전사적으로 열띤 토론을 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이런 것들이 어쩌면 위에서 말 한, 블랙스완의 성격을 지닌, 회사의 운명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끔 이런 기능도 적용해보기도 한다고 한다.

무시하고, 비웃고, 싸우기, 그리고 이기기

culture-1292900_640마하트마 간디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고,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이분의 삶과 투쟁을 가장 잘 요약한 말은 이 말인 거 같다:

“First they ignore you, then they laugh at you, then they fight you, then you win(처음엔 사람들이 당신을 무시할 것이고, 그다음엔 당신을 비웃을 것이고, 다음엔 당신과 싸울 것이고, 그러고 나서 당신은 이길 것이다)”

이 말의 뜻은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알 것인데, 창업을 생각하고 있거나,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라면, 잘 기억하고 명심하면 좋을 거 같다. 왜냐하면, 현재 이분들의 현실을 간디의 이 말이 거의 100%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르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다가, 이걸 알게 되면 다들 잘 안 될 것이라고 비웃는다. 그런데 죽지 않고 잡초같이 잘 자라면, 그땐 너도나도 따라 하고, 돈 많으면 돈으로 누르려고 하고, 덩치가 크면 협박하고, 언론과 친하면 악성 루머를 퍼뜨리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싸우려고 한다. 여기서 무너지는 스타트업도 많지만, 잘 버티다가 결국엔 성공하는 회사와 창업가도 가끔 본다. 우리 투자사들도 모두 무시-비웃음-투쟁-승리, 이 4단계 중 어딘가에서 현재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최근에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바로 식물성 단백질 제품이 아닐까 싶다.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가짜 고기’를 만드는 최근에 상장한 Beyond Meat와 아직은 비상장 회사지만 투자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Impossible Foods도 인제야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시작은 매우 소박하고, 주류 동물성 단백질 회사들로부터 무시와 비웃음을 당했다. 아마도 육류회사들은 이런 대체 단백질 회사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처음에는 몰랐을 것이고, 참신하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조명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대중이 조금씩 알게 되자, “식물성 단백질”이라는 말 차제가 말이 안 된다고 무시했다. 2009년도에 LA에서 창업된 Beyond Meat는 2014년에 Beast Burger라는 정말 맛없는 식물성 햄버거 패티를 처음 출시하면서 앞으로 가축 도살을 완전히 종료시키겠다고 선언했는데, 미국축산협회 임원들은 미친 소리라면서 욕하고 비웃었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작고, 빠르고, lean 한 스타트업의 특성을 살려서 Beyond Meat는 계속 빠르게 실패하고, 테스트하고, 실행하면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실제 고기와 맛이 꽤 근접한 가짜 고기를 만드는 데 점점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고, 그 힘든 여정에 Impossible Foods가 조인하면서, 계속 이 산업을 키우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가 움직이고, David Chang과 같은 유명한 쉐프도 움직이기 시작하자, 축산협회는 그제야 이게 생각보다 심각한 위협이 될 거라는 걸 감지했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비웃었지만, 이제는 방해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2019년도에 미국 30개 주의 공무원들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태어나고, 사육되고, 도살되지 않은 고기로부터 나오지 않은 단백질에 “고기, 버거, 소세지, 터키 또는 핫도그”라는 명칭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물론, 축산협회의 엄청난 로비가 있었을 것이다. 이 30개 주 중 7개 주는 이미 이 법안을 통과시켰고, 미주리에서는 식물성 단백질 제품에 “고기”라는 말을 사용하면, 벌금 100만 원 이상과 최대 1년 징역까지 살 수 있다.

이 싸움에서 과연 식물성 단백질 회사들이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축산협회는 너무나 경제적, 정치적으로 힘이 센 조직이라서 수백 년 동안 본인들한테 말 그대로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해 준 동물성 단백질 비즈니스가 타격받는 걸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최대 육류가공업체 Tyson Foods나 Smithfields Foods와 같은 회사는 양다리를 걸치면서, 오히려 본인들도 식물성 단백질 제품을 출시해서 조심스럽게 마케팅하고 판매를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은, 식물성 단백질 산업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산업이라도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무엇인가가 등장을 하면, 기존 플레이어들과 항상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갈등이 생긴다. 당장 한국에서도 택시연합회와 타다가 이런 “무시, 비웃음, 싸움”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면, 실은 성경에서나 다윗이 이기지, 현실에서는 골리앗이 항상 이긴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아주 끈질기고 강인한 다윗이 등장해서 골리앗을 이기는 경우도 우린 경험한다. 지금은 무시당하고, 비웃음당하지만, 계속 버티면서 내 갈 길을 가다 보면, 어쩌면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알박기

정식용어는 아니지만, 부동산 용어 중 “알박기”라는 말이 있다. 사전을 보면 “재개발 예정 지역의 알짜배기 땅을 미리 조금 사 놓고 주변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땅값을 많이 불러 개발을 방해하며 개발업자로부터 많은 돈을 뜯어내려는 행위.”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내가 일하는 이 분야에서도 알박기와 비슷한 패턴을 최근에 몇 번 봐서 몇 자 적어본다.

어떤 스타트업은 VC 투자 말고 기업들로부터 투자를 받는다. 우리 같은 VC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투자하지만, 많은 기업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투자하고, 한국에서는 이런 투자를 “SI성(Strategic Investment)” 투자라고 한다. VC가 아니라 기업으로부터 투자받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스타트업의 사업이 특정 대기업의 중장기적 사업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면, 투자를 통해서 서로 시너지를 만들고, 대기업보다 자원은 부족하지만,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스타트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아서 이런 파트너십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는, VC로부터 투자를 받지 못해서, 여기저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 대기업이나 스타트업 모두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서로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를 같이 하다가, 결국 인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이런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은 exit을 하고, 더 큰 기업의 더 많은 자원을 활용해서 지금과 다른 차원의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다. 대기업은 직접 하려면 시간과 돈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한 사업을, 그동안 투자도 했고, 호흡을 어느 정도 맞춰본 스타트업을 인수해서 본격적으로 펼쳐볼 수가 있다. 그리고 혹시나 미래에 다른 경쟁기업이 이 스타트업을 인수해서 우리한테 위협이 될 수 있는 리스크를 미리 제거하는 차원에서도 괜찮은 전략이다.

그런데 가능하면 스타트업 입장에서 피했으면 하는 상황도 나는 자주 본다. 매출도 거의 없고, 팀도 과거 창업 경험이 없는데, 기업가치 100억 원에 투자유치를 하는 스타트업을 만난 적이 있다. 어떤 근거로 회사 가격이 이렇게 비싸냐고 물어보니까, 이전 투자자로부터 기업가치 80억 원에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라운드는 100억 원 정도가 돼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조금 더 상황을 들어보고, 주주명부도 보니까, 이전에 한 번 투자를 받았는데, 어떤 기업한테 전략적인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나는 잘 모르는 기업이다. 그리고 이 기업은 밸류에이션은 상관없이 최대 5,000만 원까지만 투자하는 정책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창업팀은 평소 본인들이 원했던 80억 원이라는 밸류에이션에 5,000만 원을 투자받아서, 0.65%라는 매우 작은 지분이 희석됐고, 잘 받은 투자라고 생각했다. 실은, 겉으로 보면 잘 받은 투자가 맞다. 높은 밸류에이션에 지분 희석은 최소였기 때문에.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투자 받을 때 발생한다. 일단 5,000만 원은 요새 금방 쓰는 돈이다. 다음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수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초기 스타트업이 적은 금액으로 의미 있는 수치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특히, 이 회사는 80억 원이라는 기업가치에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후속 투자는 이보다 더 높은 가치로 받아야 하는데, 적은 돈으로 100억 원짜리 회사를 만드는 건 어렵다. 나 같은 VC는 이 회사의 기업가치를 훨씬 낮게 평가할텐데, 그러면 후속 투자가 down valuation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고, 이렇게 되면 여러 가지로 회사에 불리하다. 더욱더 골치 아픈 건, 이전에 받은 전략적인 투자계약서를 보면, 후속 투자 주식가격이 더 낮아지면 반드시 기존투자자의 동의를 받아야하고 – 또는, 아예 후속 투자는 더 낮은 밸류에이션에 받지 못하게 하는 계약서도 있다 – 그렇게 될 경우, 스타트업한테는 완전히 불리하게 걸리는 리픽싱이라는 독소조항도 있다. 즉, 주식 가격이 낮아지는 만큼, 그리고 낮아지는 정도에 따라서 이전 투자자들이 회사의 지분을 더 받게 되는 조항인데, 80억 원짜리 회사가 만약에 20억 원의 밸류에이션으로 후속 투자를 받게 되면, 0.65%를 갖고 있던 기존투자자에게 회사 지분이 터무니없이 많게 재할당되는 복잡한 공식이 있다.

겉으로 보면, 밸류에이션 상관없다는 말이 굉장히 창업가나 회사에 우호적으로 들리지만, 이런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이런 상황이 의도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투자도 부동산의 알박기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투자자가 나쁜 마음을 갖고,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면, 결국에 스타트업은 망하거나 아니면 헐값에 전략적 투자자한테 넘어가게 된다.

실은, 위 예시의 숫자는 조금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만들었고, 내가 아는 대기업의 투자자는 이런 분들이 없지만, 이런 상황은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서 조심하면 좋다.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

나는 요새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이 분야에 있으면 워낙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빨리 변하기 때문에 변화와는 매우 익숙해져야 하는데, 인간의 본성이 변화를 싫어해서 그런지 나도 계속 자신을 훈련시켜야지만 이걸 더 잘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외국에 사는 후배가 한국에 잠깐 나왔는데, 한국 부모의 자식에 대한 높은 학구열과 극성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애를 안 키워서 잘 모르는데, 부모들의 극성이 예전보다 더 심해졌고, 애들을 남들보다 더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은 열정과 욕심은 더 높아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할 자격도 없고 필요도 없지만, 세상이 생각보다 빨리 바뀌고 있고, 이에 맞춰서 우리의 관점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분들한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남들만 의식하지 말고, 내 주위가 어떻게 바뀌고, 다른 나라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도 귀랑 눈을 한 번 정도 기울여 달라고 말해주고 싶다.

얼마 전에 Morning Brew에서 e스포츠 산업에 대해 짧지만, 강렬했던 기사를 읽었다. 이렇게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다는 걸 나한테 스스로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었던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7월 26일, 역사상 최초의 Fortnite World Cup이 뉴욕의 Arthur Ashe 경기장에서 열렸다. 참고로 아서 애시 경기장은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US Open이 열리는 테니스장인데, 약 23,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이다. e스포츠라고 하면 애들이 헤드폰 끼고 큰 모니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시간 낭비하는 사회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은 훨씬 더 많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런데 포트나이트 월드컵을 직접 관람할 수 있는 표 23,000개가 (표 값은 $50 ~ $150) 판매 시작하자마자 완판됐고, 30대 테니스 선수 두 명이 땀 흘리면서 열심히 테니스공을 쫓아다니는 걸 보는 대신, 100명의 10대들이 땀 흘리면서 열심히 키보드 두드리는 걸 관람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표를 구매한 것이다.

포트나이트 숫자와 상금도 어마어마하다. 온라인 예선경기 참가자가 무려 4,000만 명, 그리고 예선을 통과한 각 ‘선수’에게는 6,000만 원의 기본 상금이 주어졌다. 총상금 370억 원 중 솔로와 듀오 시합 우승 상금은 각 37억 원이었다. 참고로 타이거 우즈가 최근에 마스터스 골프 대회 우승했을 때 상금은 24억 원이었다.

나도 e스포츠 분야를 관심 갖고 보고 있고, 많진 않지만, 투자도 했지만, 이 숫자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나같이 예상치 못했고 놀랍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래봤자 게임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아직 많다. 참석자 수와 상금을 보고도 애들 장난이라고 하는 분들한테는 도대체 그럼 뭐가 심각한 비즈니스인지를 오히려 되물어보고 싶긴 했다. 아직 이분들한테는 쿠팡이나 크래프톤(블루홀)도 어린 친구들이 장난같이 운영하는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아니고, 삼성과 현대자동차만 제대로 된 사업이고, 이런 회사에만 자식들이 취직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이야기의 본론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나라도 이젠 남의 시선을 그만 신경 쓰고,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서 변화할 때가 된 거 같다. 하나뿐인 자식을 열심히 공부시켜서 좋은 대학에 진학 시키는 거 좋긴 하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고 변하는 걸 보면, 과연 초/중/고 12년을 모두 대학진학에 투자하고, 대학교를 가는 게 앞으로도 계속 예전같이 중요할지, 그리고 경제적으로 봤을 때 제일 나은 선택일지, 의문이 든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현존하는 너무나 많은 직업이 없어질 텐데, 많은 부모의 생각과 시선이 아직도 20년 전의 과거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참고로, 얼마 전에 내가 미국 부모한테 듣기로는, 미국 애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장 받고 싶어 하는 게 포트나이트 게임 팩과 게임을 더 잘 할 수 있게 받을 수 있는 과외라고 한다. 이 부모 모두 아이비리그 나온 변호사랑 회사 임원인데, 요새 딸이 열심히 포트나이트 온/오프라인으로 과외를 받고 있고, 그걸 너무 좋아하는 걸 옆에서 보면 본인들도 즐겁다고 하면서, “Well, the world is changing. Much faster than we think and we want it to.”라는 말을 했다.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이다. 정말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여기 발맞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