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아름다운 UX

App fatigue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넘쳐나는 앱 홍수 속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앱 피로도’이다. 나는 작년에 우리 투자사 앱을 제외한, 새로운 앱을 5개도 안 깔았다. 이 중 실제 회원가입을 한 앱은 2개밖에 안 된다. 솔직히 요샌 앱스토의 2백만 개 이상의 앱을(애플 앱스토) 상상만 해도 토할 거 같다. 그 정도로 앱 피로도가 심하다. 이제 웬만큼 잘 만들었고, 내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앱이 아니면, 설치도 안 하고, 설치했는데 사용할 때 조금이라도 사용자 경험(UX)이 후지면, 바로 삭제해버린다. 왜냐하면, 훨씬 더 잘 만든, 비슷한 앱이 수십 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나같이 극단적이진 않겠지만, 이게 현실이긴 하다. 지금 모바일 앱을 만드는 창업가라면, 정말로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UX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성공할 확률은 5%도 안 되는데, 보기만 해도 짜증 나는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출시하는 건 앱스토의 공간낭비이자 피로도 테러다. 나는 만나는 모든 팀들한테 이 ‘아름다운 제품’에 대해 많이 강조하지만, 이걸 제대로 이해하는 창업가는 많지 않은 거 같다. 내가 작년에 만난 대부분 팀은 그냥 “good enough” 제품을 만들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태도로 사업을 하는데 – 스트롱 투자사 포함 – 한 5년 전에는 통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젠 아름다운 제품이 없으면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사용하고 싶었던 한 제품이 가입과정에서 ‘닉네임’을 필수로 요구했는데, 나는 그냥 이 앱을 지워버렸다. 작은 키보드로 새로 가입하는 거 자체가 불편한데, 왜 굳이 닉네임을 필수로 요구할까? 만든 분들은 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난 이해가 안 갔다.

2018년도는 더 어렵다. 과거에는 B2B 앱을 만들면 B2C같이 아주 예쁘고 쿨한 UX는 필요 없고, 그냥 기능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했던 거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젠 B2B 제품도 고객을 계속 확보하고, 확보된 고객을 락인 하려면, 반드시 아름다운 UX를 갖춰야 한다. 신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을 경험하기 때문에, 이들은 회사에서 사용하는 앱들도 회사 밖에서 사용하는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 앱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사용하기 편하고, 보기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떤 B2B 스타트업의 UI/UX 담당자는 화면을 확대해서 픽셀 하나하나씩까지 맞춰 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 정도 장인 정신이 있어야지 일단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대충 만들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팀이 있다면, 딱 그만큼만 대충 될 것이고, 초경쟁 사회에서 ‘대충’은 실패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따기 쉬운 열매

Picking the low hanging fruit얼마 전에 만난 팀과 low hanging fruit에 관해 이야기한 내용을 간략하게 적어본다. Low hanging fruit이라는 말은 미국에서 비즈니스 하면서도 많이 사용하는데, 직역하면 가장 따기 쉬운, 낮은 곳에 열린 열매이고, 이 의미는 ‘가장 쉬운 작업이나 가장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 이다.

그 어떤 사업도 깊게 들여다보면, 몇 가지 단순한 원리와 법칙이 존재하고, 잘하는 사업가는 이 간단한 비즈니스를 남들보다 월등하게 잘 하는 거 같다. 물론, 여기에서 조심해야 하는 점은 단순하다고 해서 쉽다는 게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단순한 비즈니스를 어떤 창업가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실행하는데, 또 어떤 창업가는 쉽게 쉽게 접근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쉽게 접근하는 분들은 위에서 말한 low hanging fruit을 잘 파악하고 가장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처리하면서,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하나씩 차근차근 달성해간다. 이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열매가 열린 높이는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비즈니스건 가장 낮은 곳에 열려서, 가장 따기 쉬운 열매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회사는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했지만, 절대적인 시장 자체는 해외가 훨씬 크다. 한국에서 서비스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었고, 고객이 있고 매출도 발생하고 있다. 매출이 크진 않지만, 꾸준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고객군이 존재하는 건 증명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대표는 지금 하는 매출의 10배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서비스의 영문 버전을 힘들게 만들어서 출시했다. 해외 시장이 더 크기 때문에 해외 서비스도 같이 진행을 하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렇게 해서 한국과 해외 서비스 모두 아주 잘 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 팀의 low hanging fruit은 이미 출시해서 운영하는 한국 서비스다. 팀원 모두 한국에 있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영어보다는 한국어 서비스를 만드는 게 훨씬 더 쉽다. 그리고 이미 한국에서 돈을 내는 고객이 있다(만약 한국에서는 도저히 돈을 내고 사용할 수 있는 고객군이 없다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게 맞다). 대표이사는 한국 서비스를 지금보다 훨씬 더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굳이 왜 해외 서비스를 시작할까? 그냥 한국 서비스에 더 집중해서, 지금보다 더 좋고,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으로 개선해서 사용자 수와 매출을 성장시키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더 쉬운 방법이 아닐까?

영어도 잘 못 하고, 해외 시장도 잘 모르고, 한국과 해외 모두 집중할 수 있는 자원이 없는데, 굳이 이렇게 따기 어려운 열매를 먹으려고 하는 건 작은 스타트업한테는 자살행위다. 개발인력을 어렵게 할당해서 만든 영문 제품을 보니, 영어도 콩글리시가 섞여 있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나 경험 또한 좋지 않았다. 그리고 이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영어로 고객 응대를 해야 할 텐데, 그건 누가 어떻게 할까? 내가 보기에 이 팀은 스타트업이라면 가장 있으면 안 되는 입장에 처해있다. 바로, A급 제품을 하나 만드는데 모든 걸 다 투자해야 하는데, 그 누구도 완벽하게 만족하게 하지 못하는 C급 제품이 두 개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 제품에 투자해야 할 자원이 여러 곳에 분산되면서 집중도가 흐트러졌고, 그 흐트러진 집중과 자원을 다시 한곳에 모으려면, 엄청난 각오와 결정이 필요하다.

이 분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사장님, 목표하시는 월 매출이 1,000만 원이고, 현재 한국에서 만들고 있는 월 매출이 200만 원이면, 모자라는 800만 원의 매출을 현재 운영하는 한국 서비스에서 추가로 만드는 게 쉽나요, 아니면 전혀 모르는 해외 시장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해서 거기서 만드는 게 쉽나요?”

그 대답은 너무나 뻔할 것이다. 일단 low hanging fruit을 모두 다 따 먹고, 그 이후에 높이 열린 열매를 먹는 게 맞는 전략이다. 특히나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스타트업이라면.

<이미지 출처 = Pictures and Stories>

Strong CEO들

최근에 ‘워렌버핏이 선택한 CEO들(The Warren Buffett CEO)’이라는 책을 읽었다. 실은 2003년도에 발행된 책이라서 연식도 있고, 당시 내용과 2017년 현실과는 다른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워렌버핏 관련 책을 많이 읽었고, 인수할 회사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 책으로는 배웠는데 바로,
1/ 이해할 수 있는 기업
2/ 장기 전망이 밝은 기업
3/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경영하는 기업
4/ 가격이 매력적인 기업
이다. 그런데 3번의 정직하고 유능한 CEO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제공한다.

버크셔해서웨이의 회사 CEO의 인생은 기업 인수 전과 후가 별반 다르지 않다. 버핏이 회사를 인수한 이후에도(주로 통째로 인수) 변하는 건 없고,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회사를 잘 운영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월가와 같은 외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본인이 하는 비즈니스만 잘 하면 되기 때문에, 인수 이후 오히려 사업에 대한 집중도는 높아지고, 실적은 대부분 향상한다. 대부분 자신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설명하지만, 본인의 업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도 한다. 외부의 잡음에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컨트롤 할 수 있는걸 가장 잘하는 이런 모습은 실은 워렌버핏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20명 이상의 CEO들이 버핏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서로 만난 적도 없으며, 같은 주인을 모시지만, 서로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버핏이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대하는 게 사실인 거 같다. 아, 물론, 버핏을 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 다 칭찬만 하는데, 그 디테일이 너무 같아서 신기할 뿐이다.

이 책을 덮고, 과연 스트롱 대표님들은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우리도 이제 투자사 숫자가 거의 90개에 육박하는데, 이 중 나랑 대화를 많이 하는 분도 있고, 거의 안 하는 분도 있을 텐데,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모든 분들한테 보여준 모습과 태도는 한결같았는지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는 버핏과 같이 남한테 좋은 인상만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버핏은 의도적으로 남들한테 좋은 인상만 보여주길 원하는 거로 알고 있다). 실은,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보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도 싫다. 살면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와 캐릭터를 가지는 건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든 나쁘든, 모든 사람이 나를 한결같이 보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스트롱 대표님들,
올해도 1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내년에도 죽을 각오로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불타고,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잘 되는 회사들은 모두 열심히 합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THANK YOU.

YULIP 2번째 이야기

Yulip-2구글캠퍼스서울에서 진행하는 ‘엄마를 위한 캠퍼스(Campus for Mom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체에 무해한 립스틱 YULIP을 만드는 원혜성 대표님 이야기를 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6월 텀블벅을 통해서 진행한 첫 번째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목표를 350% 초과 달성해서 1,750만 원으로 마감한 것도 성공이었지만, 실제 제작과 발송이 지연되는 많은 크라우드펀딩 캠페인과는 달리 약속했던 납기를 정확하게 맞춘 것도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고객들의 피드백을 취합하고 반영하면서 드디어 신제품을 위한 두 번째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이 며칠 전에 다시 텀블벅을 통해서 돌아왔다. 첫 번째 캠페인과 같이 3가지의 새로운 립스틱이 양산될 예정이며, 이 중 립 올마이티라는 제품은 100% 비건 립스틱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율립은 우리 투자사도 아니고, 나랑은 그 어떠한 비즈니스적인 관계도 없다. 다만, 그동안 나는 원 대표님과 가끔 만나서 사업 이야기를 하면서, 전혀 모르는 화장품 시장에 대해서 나름 공부하면서, 한 창업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실체가 없던 무형의 아이디어가, 립스틱이라는 유형의 제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멀리서 보면서, 이런 분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가 응원하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기저기 유니콘 이야기만 들리고 보이는데, 이 유니콘들의 시작은 모두 소박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 같다…아모레퍼시픽도 1945년 개성에서 모발용 동백기름을 가내수공업으로 판매하면서 만들어진 회사라는 걸 나는 항상 스스로 상기시킨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 있으면 여기서 펀딩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텀블벅>

튼튼한 다리

추석 연휴를 미국에서 보내기 위해 약간 일찍 출국했다. 그런데 미국에 내리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페이스북 노티가 떠서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줄 알고 급하게 확인해보니, 우리 투자사 코빗이 넥슨의 지주회사 NXC에 인수된 기사로 내 담벼락이 도배되어 있었다. 모든 인수가 그렇듯이, 상당히 오랫동안의 물밑 작업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그냥 속으로 “이제 기사화되었구나” 라면서 연휴를 즐겼다.

귀국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번 인수는 2개의 기록을 달성했다. 일단 국내 가상화폐 업계의 최초 인수합병 사례이자, 국내 스타트업 피인수 사례로는 최고 기록이다(이전까지 기록은 카카오의 626억 원 록앤올 인수). 나도 이 블로그를 통해서 코빗 이야기를 꽤 많이 했는데, 스트롱은 코빗의 첫 번째 투자자였다. 이 딜이 완전히 체결되었을 때, 2013년 5월 유영석 대표와의 첫 번째 만남을 살짝 떠올렸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참 쉽지 않은 사업이었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인수되는 게 모든 사업의 최종 목표이자 종착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이 많은 좋은 회사에 합류해서 아주 뿌듯하고 기뻤다.

코빗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우리가 코빗 초기 투자자로서 우리 역량이 되는 만큼 적극적으로 지원사격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름 회사가 언제든지 필요할 때 밟을 수 있고, 반대편 먼 곳으로 연결해주는 튼튼한 다리 역할을 하려고 항상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인수는 스트롱한테도 아주 좋은 exit 사례가 되었지만, 이 외에도 우리가 처음부터 지향하고자 한 ‘창업가들의 든든한 파트너’ 역할을 한 계기가 되었다. 실은, 이 점이 제일 좋다.

며칠 전에 교수님 선배들과 만났는데, 똑똑한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실험실 제자가 너무 똑똑해서, 그 지도 교수보다 더 잘 나가면 진심으로 뿌듯해하면서 이끌어주는 교수도 있지만, 이와 반대로 시기심으로 인해 그 제자를 밟고, 앞날을 방해하는 교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우리 같은 VC한테는 이런 엇갈린 답변이 나올 수가 없다. 우리는 무조건 우리보다 월등하게 똑똑한 창업가한테 투자해야지만, 모두 다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코빗은 아주 좋은 사례다. 우리 다른 투자사들도 마찬가지지만, 유영석 대표와 김진화 이사는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능력이 출중한 분들이다.

바람이 있다면, 코빗이 넥슨의 글로벌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좋은 가상화폐 서비스로 성장하고, 코빗의 창업팀과 직원분들이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후배 창업자들을 자극하고 격려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