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유전자 재조합 식품에 대한 고찰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이 제일 먼저 신경쓰는 부분이 바로 먹거리 이다. 요새 한국이나 미국이나 ‘잘먹고 잘사는법’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고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미래의 식량 곤충). 동네 슈퍼에서도 쇼핑을 많이 하지만 유기농 제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슈퍼나 마트도 자주 가고, 이제는 뭐를 하나 사더라도 재료랑 영양성분 표기를 보는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다고 보면 다 이해한다는 건 아니다).

유기농 제품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계속 증가하면서 요새 미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게 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 재조합 식품)라는 레이블이다. 식품 제조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유전자 조작 유무를 표기하기 시작했고 Non-GMO Project나 Just Label It!과 같은 관련 단체들은 이걸 의무화 시키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표적인 아이스크림 업체 Ben & Jerry’s와 멕시칸 semi-패스트푸드 업체 Chipotle는 아예 유전자 재조합 재료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에 둘러쌓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GMO는 굉장히 안 좋은 거라는 생각을 하고 슈퍼에서도 non-GMO 라벨 제품들을 찾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최근에 이를 반박하는 기사와 글들을 통해서 우리가 잘 몰랐던 유전자 재조합 식품에 대한 사실을 몇가지 알게 되었고 스스로를 교육하는 차원에서 여기 몇 자 적어본다.

-과학일 뿐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인간의 삶은 굉장히 편해지고 윤택해졌다. 유전자 재조합도 생명과학일 뿐이지 음식에 나쁜 짓을 하는게 아니다. 이미 수천년 동안 농부들은 다양한 교배 방법을 통해서 더 강하고 맛있는 작물을 재배하고 있었고 80년대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서 과학자들이 다른 품종의 특성을 특정 식물의 DNA에 심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가뭄을 더 잘 견디는 씨앗이나 해충의 피해를 덜 입는 씨앗이 탄생하게 되었다. 1996년도에 유전자 재조합이 상용화 되었고 이제 우리가 먹는 옥수수와 콩의 80%가 유전자 재조합된 품종들이다.

-농부들의 선택이다: 유전자가 재조합되지 않은 씨앗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오히려 농부들이 유전자 재조합 품종을 선호한다. 뭐, 이유는 뻔하다. 유전자 재조합 씨앗은 내성이 더 강하고,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수확을 가능케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월등하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하는 사실은 농부들은 상당히 똑똑한 사람들이고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유전자 재조합 씨앗을 사용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적인 면도 있지만, 맛도 좋고 건강에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본인들도 이걸 먹고 이들의 가족들도 먹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근거: 그동안 많은 연구 결과가 진행되었지만 유전자 재조합 농산물들이 건강에 나쁘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에 대해서는 가장 까다롭다는 유럽의 모든 식품 관련 규제 기관들에서는 유전자 재조합 농산물들이 안전하고 일반 농산물만큼 영양소가 풍부하다고 인정을 했고 이는 미국의 식약청도 마찬가지이다.

-엄격한 규제: 생명공학으로 탄생한 농산물들은 내가 생각했던 거 이상의 시험과 규제를 받는다. 새로운 씨앗이 탄생되면 미국 농무부로부터 검사를 받아야 하며, 미식약청으로부터 자발적 – 하지만, 거의 의무적이다 – 검사를 받게 된다. 씨앗들에 살충제나 해충제가 들어가 있다면 미국 환경청의 검사까지 받아야 한다. 이런 과정 때문인지 새로운 씨앗을 개발해서 상용화 하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은 약 1,0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이와 반대로 비유전자 재조합 방식으로 개발되는 씨앗은 정부의 검사나 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지구를 살리는 GMO 농산물: 유전자 재조합 씨앗들은 오히려 지구를 살리고 있다. 대부분의 GMO 씨앗들은 해충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충제의 사용을 극적으로 감소시킨다. 실제로 2012년도에 살충제 감소로 인해 전세계 탄소배출량을 267억 킬로나 줄였다고 한다 (이는 1년 동안 자동차 1,180만대가 방출하는 탄소와 동일)

-심리적 요인: 약간의 심리적 요인도 작용을 한다. “유전자 재조합” 이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일부 GMO 업체들은 비GMO 업체들이 영리적인 목적 때문에 일부러 이런 무시무시한 용어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기까지도 한다.

지구를 사과로 생각해보자. 이 사과를 반으로 쪼개고, 또 반으로 쪼개고, 32등분으로 쪼갤때까지 잘라보자. 그 32개의 사과조각 중 하나가 바로 농업을 할 수 있는 땅의 크기이다. 나를 비롯한 선진국 사람들은 잘 못 느끼고 있지만 지구의 자원부족과 식량부족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그리고 앞으로 이 문제는 더욱 더 심해질 것이다. 매일 전세계 인구 9억명이 고픈배를 움켜잡고 잠을 청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좁은 땅덩어리에서 더 많은 수확을 해야만 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생명과학의 발전을 통한 유전자 재조합이 필수인거 같다.

나도 맹목적으로 non-GMO 라벨만을 선호했었는데 이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거 같다.

<참고: Wall Street Journal “Meet Mr. Frankenfood”>
<이미지출처 = http://www.thefarmersdaughterusa.com/>

용맹스럽게 싸우는 자

한국이나 미국의 능력 있는 투자자 중 창업이나 벤처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는 분들도 더러 있지만 창업가들과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려면 벤처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게 –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 여러모로 좋다고 난 생각한다. 물론,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왜냐하면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거나 조언을 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창업자의 입장에서 현실을 볼 수 있어야지만 회사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평생 대기업에서만 일을 한 임원은 배고픈 벤처기업의 힘든 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위 말하는 교과서적인 좋은 이야기만 할 수 밖에 없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이에 대해서 내가 이래라 저래라 말 할 자격은 없다. 나보다 훨씬 좋은 회사에 투자하고 좋은 조언을 주는 벤처 경험이 전혀 없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건 이런 분들의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어리고 경험없는 창업가들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 “마케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유통만 40년 했다.”, “한국은 그런 시장이 없다.” 등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마치 본인들이 만들어 내고 본인들만 유일하게 경험한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창업가들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노련한 창업가라면 그냥 듣고 흘릴 내용이랑 깊이 기억해야 할 내용을 구분할 수 있는 경험과 내공이 있지만 이제 막 시작한 창업가들은 이런 저런 말들에 생각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사업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창업 경험이 없고, 벤처에서 일한 경험이 없고, 창업가들과 오랫동안 같이 눈높이를 맞춰보지 않고, 대기업에서만 충분한 예산과 자원을 가지고 일했고, 벤처를 책으로 배운 분들은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면 이런 이야기들을 아예 창업가들한테 안 했으면 좋겠다. 하더라도 그냥 부드러운 의견으로 제공하지 마치 자기가 모든 걸 다 알기 때문에 미숙한 창업가는 무조건 본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전혀 모르거나 경험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창업가들은 이런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참고만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실행 할 때만 비로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못하고 있는 건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장에서 피튀기면서 목숨을 위해 싸우는 건 창업가이기 때문에 남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본인의 소신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결과는 오로지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고 직접 싸워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고민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은 게 바로 스타트업이라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바이블에서도 자주 인용했던 말인데 여기서 한번 더 인용해 본다:

“중요한 것은 비평가들이 아니다. 공(功)은 실제 경기장에서 먼지와 땀 그리고 피에 뒤범벅되어 용맹스럽게 싸우는 자의 몫이다. 그는 실수하고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또, 가치 있는 이유를 위해 열정과 헌신으로 자신을 불태운다. 무엇보다 그는 마지막에 주어지는 위대한 승리와 패배를 알기에, 그것들을 전혀 모르는 차갑고 겁 많은 영혼들과 결코 함께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시민의식’ 연설 중. 1910년 4월 23일 파리 소르본 대학. 테오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

<이미지 출처 = http://www.keepcalm-o-matic.co.uk/p/have-a-good-day-and-ignore-all-naysayers/>

Man in motion

영화 “Stand by Me“와 함께 80년대를 대표하는 성장물인 “St Elmo’s Fire”의 주제곡 “Man in Motion”은 언제나 들어도 명곡이다. 원래 이 곡은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릭 헨슨이라는 휠체어를 탄 장애운동선수를 위해서 만들어 졌지만 영화 때문에 유명해졌다. 최근 몇개월 동안의 나를 굉장히 잘 묘사할 수 있는 단어들이 바로 이 ‘man in motion’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듯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사람은 항상 변해야 한다. 우리 주변 모든것이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일부인 우리 또한 변해야지만 조화롭게 살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서 변화만큼 어려운 건 없다. 특히 세상을 어느정도 살았고 자기가 속해 있는 분야에서 나름 어느정도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내 자신이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변화를 외치고 투자사들과 주변 사람들한테 “변화만이 살 길이다”를 설교하지만 다른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 스스로는 본능적으로 변화를 거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 습관을 바꾸는게 싫고, 수치스럽고, 귀찮았고, 왠지 남의 압력에 의해서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싫었던거 같다.

특히 올 해 이런저런 장애물에 부딪히고 난관이 많았는데 – 뭐, 인생 자체가 그렇지만서도 – 내가 고집하고 선택한 나만의 접근방법들 때문에 여러번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다. 그제서야 나는 이런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은 바로 나 자신한테 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바꾸고 내 방식만을 고집하지말고 변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가 항상 옳을 필요도 없고 내 접근이 항상 맞을수가 없다는 걸 올 해 들어와서 정말 많이 느꼈고, 지난 몇 개월 동안 나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계속 움직이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해봤다. 물론, 아직 완벽하게 익숙치 않아서 쉽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잘 훈련시키고 있다. 이렇게 하니까 마음도 편해지고, 시야도 넓어지고, 내 인생 자체가 풍요로워지고 있다. 물론, 여러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 결과도 좋아지고 있다.

Man in motion – 우리는 항상 움직이고 항상 변해야 한다. 변화는 두렵고 죽을만큼 싫지만 변화를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이메일 copy-paste

오늘 아침에도 내가 청하지 않은 여러개의 이메일들이 inbox에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일단 그냥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방에 보낸 대량 이메일이면 바로 지우고, 제목을 보고 불특정 다수한테 보낸 이메일인거 같으면 지웠다. 그리고 나머지 이메일들은 다 열어서 훑어봤다. 이런 이메일들은 대부분 회사소개와 투자요청 이메일들인데, 거의 100% 다 쓰레기통으로 가버린다.

그런데 실은 나는 이런 이메일들을 왠만하면 일단 다 열어서 보긴 본다. 안 그래도 바쁜 세상인데 청하지 않은 이메일을 (=unsolicited email)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나도 과거에 뮤직쉐이크 시절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으로 모르는 사람들한테 수 천개 심지어 수 만개의 cold 이메일을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분들의 마음과 공이 불쌍하고 미안해서라도 다 읽어 보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개봉확률이 낮은 대량의 cold email을 보내더라도 최소한의 노력과 생각을 하고 보냈으면 하는게 내 개인적인 바램이다. 혹시 앞으로 나한테 또는 다른 사람들한테 부탁성 이메일을 보낼 계획이라면 개봉/답변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다음 사항들에 좀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

-적당한 카피/페이스트: 이런 이메일들은 어쩔 수 없이 copy/paste를 해야한다. 투자자한테 내 서비스를 소개하는 이메일이라면 받는사람 이름과 회사 이름만 다르고 나머지 부분은 아마도 다 똑같을 것이다 (나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잘 안다). 하지만, 이것도 적당히 하면 좋다. 기본 frame은 같지만 받는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더 customize 하는 걸 권장한다. 왜냐하면, 하루에 30개의 이메일을 기계적으로 보내는 사람과는 달리 받는 사람은 이메일을 읽다보면 그냥 다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성의없이 쓴 이메일을 과연 읽어야 하는건지 의문이 든다.

-받는사람: 너무 많은 이메일을 보내다보면 받는사람이 헷갈릴 때가 있다. 가령, 조금 전에 John이라는 사람한테 보낸 이메일을 “Dear John”으로 시작했는데 Mark한테 가는 그 다음 이메일도 “Dear John”으로 보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고칠 수 있는 실수지만, 받는 사람은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다.
*더 심한 건 그냥 받는사람을 본인으로 해놓고 모든 사람들을 대량으로 bcc:하고 보내는 이메일들이다.
**이보다 더 멍청한 건 To:에 아주 대놓고 받는 사람들 이메일들을 공개적으로 다 나열해서 보내는 경우다.

-제목: ‘받는사람’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제목’도 실수를 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얼마전에 받은 이메일의 제목이 “Stone Ventures의 투자를 받고 싶습니다” 였다. 이게 Strong을 Stone으로 잘 못 쓴건지 아니면 이전에 보낸 이메일이 Stone Ventures 대상이라서 이런 실수를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제목 자체를 굉장히 평범하게 “귀사의 투자를 받고 싶습니다”로 하면 되지만 이렇게 하면 받는 사람이 이게 빤히 불특정 다수한테 보낸 이메일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냥 바로 쓰레기통으로 보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회사이름: ‘받는사람’과 ‘제목’과 동일하다. 나도 전에 뮤직쉐이크에서 YouTube에 보내는 이메일에 ‘Facebook’ 이라고 쓴 적이 있다. 물론 그냥 ‘귀사’라고 하면 되겠지만 그러면 위에서 말한 동일한 리스크가 발생한다.

-폰트종류/색깔 통일: 어떤 이메일 클라이언트를 사용하냐에 따라서 이건 좀 달라지는데, html 텍스트로 이메일을 작성하다보면 copy/paste한 내용의 폰트 종류와 색을 잘 통일해야한다. 이게 안되면 paste한 부분만 폰트가 다르고 색이 다르기 때문에 좀 우스워진다. 나는 그래서 주로 그냥 노트장에다가 모든 내용을 paste하고 여기서 일반 텍스트로 copy한 후에 다시 paste를 한다.

이메일을 보내야하는 대상이 1,000명인데 이렇게 하나씩 신경을 쓰다보면 언제 다 보내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메일 받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사소한 부분과 detail에는 신경을 좀 써야 한다. 나도 얼마전에 이런 cold email을 대량으로 보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매일 시간을 block 해놓고 10개의 이메일을 10일 동안 매일 보냈다. 무식하게 copy/paste를 하지 않고 이메일 하나 하나씩 정성스럽게 customize해서 보냈는데 (물론, copy/paste를 기반으로) 100개 이메일 중 답변이 온게 10개 미만이었고 그 중 실제로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한게 2건이다. 즉, cold email 방법은 확률이 매우 매우 낮지만 그 낮은 확률 속에서도 뭔가 일을 만들고 싶다면 제대로 잘 작성을 해야 한다.

결국은 제품이다

오늘 새벽에 USV의 Fred Wilson의 “No Pain No Gain“이라는 포스팅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 포스팅의 내용은 고통이 더 클수록 얻는게 더 값지다는건데 육체적인 고통에 대한 건 아니고 특정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서비스에 익숙해 지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을수록 더 높은 부가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일 확률이 높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예를 들었다. Pandora나 Spotify (둘 다 한국에서는 음원 저작권 때문에 즐길 수 없는걸로 알고 있다) 같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그냥 채널, 음악 또는 아티스트만 설정하면 알아서 자동으로 계속 음악을 재생해서 굉장히 쉽지만 어느 정도 듣다보면 계속 똑같은 음악이 반복되어 금방 싫증이 난다. 이와 반대로 SoundCloud는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좀 들어가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아티스트들을 팔로우하고, 음악을 큐레이션하고 다른 유저들이 포스팅한 음악을 다시 리포스팅 하다보면 그 결과물은 훨씬 더 다채롭고 서비스 사용자 경험이 매우 흥미롭다.
Fred는 트위터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시간을 들여서 본인도 계속 트윗을 하면서 실험하고, 나랑 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팔로우하고, 이들의 트윗을 잘 읽고 다시 리트윗하고, favorite하다 보면 그 어떤 소셜 미디어나 블로그를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트위터 만의 매력과 유용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 두번 사용해서 되는게 아니라 이건 어느정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한다. 마치, 아무도 발견하지 않은 조용하고 깨끗한 해변가를 찾으려면 산을 오르고 정글을 지나야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SoundCloud나 Twitter를 사용하다가 자기 맘대로 안되고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왜 나만 잘 모르겠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익숙해질 때까지 이 제품들을 사용하는 유일한 이유는 좋은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사용하기 어려운 서비스인데 각 단계마다 사용자 경험을 불편하게 하거나 에러가 나면 모두 중도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귀찮고 어려워도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계속 이런 제품들을 사용하게 만드는 건 product manager, 디자이너 그리고 개발자들의 뼈를 깍는 고민과 노력이 제품에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디테일에 대한 집착과 마지막 10%에 대한 집착 때문인거 같다. 역시 한국 회사들이 많은 생각과 주의를 기울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공공사이트들은.